공원을 나와 길을 건너는데 길이름이 무너미길이다. 이곳 장수동과 부평의 구산동을 잇는 고개가 무너미(물넘이) 고개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다른 곳의 무너미 고개와는 다른 재미있는 이름 유래가 있다. 관악산의 무너미 고개나 설악산의 무너미 고개는 습기를 잔뜩 품은 안개가 고개를 넘어가면서 무너미 고개라고 하는 것인데, 이곳은 특이하다. 이곳은 조선시대 이곳에 운하를 파려고 한데서 생겨난 이름. 조선 시대에 3남 지방에서 거둬들인 곡식은 조운선(漕運船)에 실려 황해를 거슬러 올라와 한강을 따라 서울로 오게 되는데, 오는 길목에 강화와 김포 사이의 손돌목이 뱃길이 험해 조운선이 자주 침몰하는 것. 하여 안전한 조운을 위해 이곳 장수천과 부평의 굴포천을 잇는 운하를 뚫어 강화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한강으로 들어오려고 한 것인데 바로 무너미 고개의 바위들을 뚫지 못해 중지하였단다. 그러니까 무너미 고개는 물이 넘으려다 미수에 그친 고개이구나.
조선 시대에도 운하를 뚫으려고 했다는 것이 생소할 수도 있지만 사실 태안반도 밑의 안면도도 바로 조운선의 안전을 위해 운하를 뚫는 바람에 섬이 된 것이 아닌가? 요즈음 한반도 대운하 계획 때문에 찬반 대립이 심한데, 여기에 굴포운하 하나 파는 것과 한반도 대운하 파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것 아닌가? 환경은 환경대로 파괴하면서 큰 실익도 없는 대운하를 왜 굳이 파려는 것일까?
물넘이 고개는 비류고개 또는 벼리고개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비류고개에도 뜻이 있다. 그 옛날 고구려 유리왕자가 아버지 주몽을 찾아오자 소서노는 아들 비류와 온조를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온조는 하남위례성에 도읍지를 정하고, 비류는 이 곳 고개를 넘어가 미추홀에 - 지금의 문학산성 부근으로 추정 - 도읍지를 정했기에 비류고개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끔 문학산 북쪽에 자리 잡은 인천지방법원에 재판 하러 가면서도 그곳이 예전 미추홀이란 생각도 못하였네!
거머리산은 기슭에서부터 군부대의 철망이 가로막고 있어 길을 따라 거머리산을 돌아 거머리산과 물넘이 뒷산 사이의 보세이고개로 간다. 사실, 뭐~ 바로 조금만 우회하면 보세이 고개인데 굳이 올라갈 필요가 있나 하는 꾀가 난 것이 주 이유이긴 하지만... 그런데, 하필이면 이름이 거머리산일까? 이 산에 거머리가 그렇게 많나? 보세이 고개를 향해 가는데 길가 도랑 건너 창고 앞 바위에 한 인물상이 바위에 기대어 있다. 팔이 잘린 그리스 조각상이다. 이런 곳에 그리스 조각상이? 원래 조각상이 저 자리에 있지는 않았을 테고, 누군가의 장소를 빛내 주던 저 조각이 효용가치가 없어지자 이렇게 한적한 곳에 버려진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조각상의 표정도 영 떨떠름해 보인다.
보세이고개에서 물넘이뒷산으로 오르는 곳에는 군사시설이 있으니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판이 있는데, 누군가 버팀목을 부러뜨려 쓰러져있다. 나도 경고판을 무시하고 물넘이뒷산을 오른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거마산에서 이리로 오르는 건데, 계획이 어긋나 상아산, 관모산을 거쳐 오르게 되었다.
여기서 퀴즈 하나! 내가 지금 지나온 곳도 능선이 계속 이어지는데, 왜 한남정맥이라고 하면 거마산을 통해 가는 것만을 말할까? 바로 장수천 때문이다. 원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대간과 정맥의 정의는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이다. 이런 개념에서 본다면 내가 지나온 길이 비록 능선이 이어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중간에 작은 하천인 장수천이 산과 산 사이를 비좁게라도 통과하기에 정맥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대간, 정맥이 아닌 산맥으로 배웠는데, 일본인 학자가 한국의 산맥을 기존의 전통적인 한국의 개념을 무시하고 중간에 물이 통과하여도 산들이 연속하면서 땅 밑의 지질구조가 연속으로 같으면 산맥으로 부른 것이다. 다~ 지들이 우리나라 지하자원 착취하기 편하게 산맥이름 붙인 것이 아닐까? 1대간 9정맥이 예전에 비하면 많이 알려지고 있으나 아직도 미흡한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하소설인 ‘태백산맥’도 작가 조정래 선생께서 ‘백두대간’으로 제목을 바꿔보심이 어떨까?
쉬지 않고 물넘이뒷산 정상까지 올랐다. 그런데, 무슨 산 이름이 물넘이뒷산인가? 혹시 물넘이(무너미) 고개 뒤에 있는 산이라고 하여 물넘이뒷산이라고 하는 것 아닐까? 여기서부터 부평3거리로 내려설 때까지 계속 능선을 따라 전진하는데, 안부능선까지 내려갔다 올라갔다하며 조그만 9개의 봉우리를 지나갔다. 이쪽은 군부대가 있어 호젓한 산행을 즐긴다 싶었더니만 철학산으로 오르니 눈앞의 넓은 골짜기에는 죽은 자들의 도시가 펼쳐져 있고, 여기서부터는 죽은 자들에게 참배하러 오는 참배객들을 위해 능선 위에도 콘크리트 포장길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한가닥 능선은 오른쪽으로 뻗어가고, 또 하나의 능선은 왼쪽으로 뻗어가며 신월산, 약산을 거쳐가는데 신월산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중간에 죽은 자들의 도시로 들어오는 도로를 건너가야 하기에 나는 오른쪽 능선을 택해 걷기로 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신월산쪽으로 가야 원래의 한남정맥이다. 내가 간 오른쪽 능선에서도 물을 만나지 못했고, 이쪽 능선은 중간에 도로도 안 만나는데 왜 이쪽은 한남정맥으로 안 볼까? 걸을 때는 몰랐는데 부평3거리로 내려와 거리를 건널 때 나도 모르게 복개된 천을 건너고 있었던 것. 즉 이리로 오면 물을 건너기에 정맥의 정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양쪽으로 갈라진 능선은 부평3거리 앞에서 거의 만나듯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어 양 능선 가운데의 넓은 골짜기에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죽은 자의 도시가 건설되어 산사면에는 수많은 공동묘지들이 펼쳐지고 있다. 골짜기 안에는 화장장도 있어 그 일대의 골짜기는 화장터골이라고 부른다네. 이곳처럼 둥그렇게 펼쳐진 커다란 골짜기 안에 공동묘지가 조성되어 있는 것은 처음 본다. 오래된 묘지들이 모여있는 곳은 약간은 무질서한 자연촌락으로, 최근에 조성된 묘지 구역은 차례차례 구획된 곳에 질서정연한 단지마을로 이렇게 망자들의 도시도 산자들의 도시를 닮아있다.
앞으로 인천시는 이곳을 그대로 죽은 자의 도시로만 남겨놓지 않고, 수목장(樹木葬)을 실시하는 등으로 산림이 우거진 생태공원으로 거듭나게 하여 산 자와 죽은 자들이 같이 어울리는 ‘인천가족공원’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그렇지! 우리도 인구 증가와 국토 개발로 점점 더 좁아져 가는 이 땅에서 죽은 자의 공간을 언제까지나 저들만의 음습한 공간으로 남겨둘 수는 없겠지. 그런 의미에서 청계산에 화장장을 만들려는 것을 마냥 반대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벽제 화장장만으로는 이미 한도를 초과한 마당에 어딘 가에는 화장장이 들어서야 하는데, 이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무조건 내 동네에는 안 된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죽은 자와 산 자가 멋지게 어울릴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장묘공원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능선을 걷자니 나타나는 공터에 폐차장으로 가야 할 버스가 세워져 있다. 폐차장으로 가는 대신 음식점으로 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차림표 위에 쓰여 있는 글이 나의 시선을 끈다. ‘귀곡산장 TV 방영된 집’ 그렇지! 여름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납량특집중에 어느 방송에선가 귀곡산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였던 생각이 나는구나. 귀곡산장에도 나온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은 별로 유쾌하지 않을 것 같은 데, 저렇게 광고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런 공포체험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나보지? 하긴 실제 가평에는 산속에 귀곡산장이라는 으스스한 카페를 만들어 영업을 하는 곳도 있다고 하더구먼.
이제 포장길은 계곡 안쪽으로 내려가고, 나는 계속 능선을 따라 전진하며 질러가기 위해 무덤들 사이도 전진해 본다. 전에 구리와 서울시의 경계능선을 따라 걸으며 망우리 공동묘지 한가운데를 등산하였는데, 이곳 한남정맥을 걸으면서도 무덤 한가운데로 걸을 줄은 생각도 못하였다. 능선 막바지에 이르니 발밑으로 도시의 흐름이 여울목을 지나가는 강물처럼 빠르게 흐르고, 그 건너편 봉함산에서 한남정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나는 급하게 떨어지는 산비탈을 조심조심 쌍지팡이를 짚으며 부평3거리로 내려섰다. 그런데, 부평3거리로 알았는데 교통표지판에는 부평4거리라고 하네? 4거리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 부평지회. 이 간판을 보니 청소년기에 보광동에 살 때에 이태원 이슬람 성전에서 매일 울려 퍼지던 이슬람 음악(아잔)이 생각나는구나. 그 때는 한국에 이슬람이라고는 그곳이 유일하였는데, 이제 이렇게 부평에도 지회가 생길만큼 이슬람도 교세가 많이 확장된 모양. 그리고, 그 때는 주로 이슬람권에 근무하던 상사직원들이 한국에 들어와서도 이슬람을 믿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이슬람권 사람들도 한국에 많이 살고 있으니 그 만큼 교세도 많이 확장되었겠지.
또 하나 웃기는 광고는 어느 법무법인의 광고 - ‘판,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직접 상담, 처리해드립니다.’ 훗! 훗! 변호사가 많아져 경쟁이 치열해지며 어느 정도 광고 규제가 풀리니 이런 광고도 나오는구나. 나도 걱정이다. 앞으로 FTA로 외국 로펌들이 몰려오고, 로스쿨로 변호사들이 대폭 늘어나면 나도 밥 굶게 생기는 것 아닌가?
길을 따라 걸으며 육교를 건너는데 밑으로는 경인선 철길이 지나가며 바로 왼쪽에 백운역이 자리 잡고 있다. 전철 타고 인천 갈 때 분명 이 육교 밑을 지나갔으렸다? 이번 지나는 길가에선 현수막 하나가 나의 눈길을 끈다. "목격자를 찾습니다...... 은색 볼보 차량에 못이나 열쇠 같은 물건으로 차량 한쪽 면을 많이 손상시킨 사람을 목격하신 분 연락바랍니다. 사례금 100만원" 그 심정 충분히 이해간다. 나도 차를 산 지 얼마 안 되어 어떤 놈이 내차 옆구리를 뾰족한 것으로 일부러 긁고 간 것을 발견했을 때, 순간적으로 '어떤 XXX인지 잡히면 죽여버리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지.
부평서중을 따라가다 봉함산으로 올라서 다시 능선을 따라 전진하자니 오른쪽은 인천시 부평구, 왼쪽은 인천시 동구. 호젓한 구르지 고개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선 곳은 호봉산. 잠시 정상에 서서 지나온 한남정맥의 산줄기를 쳐다보다. 지나온 한남정맥의 산들이 저 멀리서부터 나를 따라오고 있다. 꽤 많이 걸은 모양이다. 내 무릎이 피곤하다는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나는 가방에서 무릎 아대를 꺼내어 양쪽 무릎에 대고 계속 전진, 다시 내려선 곳은 장고개. 그러나 오른쪽으로는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어 고개의 주목적인 소통의 역할은 제대로 못하고 있는 셈.
다시 오르막. 이번 능선은 봉함산이나 호봉산을 오를 때보다는 좀 더 경사가 있는 데다가 힘이 조금 빠져서인지 내 몸은 양 지팡이에 더 의지하게 된다. 어느 정도 높은 능선으로 올라오니, 아! 바다다! 왼쪽으로 인천부두가 보이고, 바다 건너 영종도의 백운산도 뚜렷하게 보인다. 이제 철마산 정상에 서니 앞으로 계속 뻗어나가는 능선 상에 내가 가야할 원적산도 바로 앞이다. 시계는 벌써 5시 5분을 넘어서고 있다. 어둡기 전에 빨리 가야겠다.
나는 급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능선을 전진해 가나, 갑자기 능선은 뚝 떨어지고 밑으로 차들이 바쁘게 부평구 산곡동과 동구 가좌동 사이의 원적산길을 오가고 있다. 허! 참! 아까 원적산을 쳐다볼 때는 능선이 이렇게 뚝 떨어질 줄은 몰랐는데... 내 다리는 조금 천천히 가자하나 나는 두 지팡이에 의지하여 빠른 걸음으로 원적산길로 내려섰다. 시간은 5 : 20경. 여기서 원적산을 올려다보려니 갑자기 원적산이 더 커 보인다. 어떡한다? 여기서 다시 산을 오르면 원적산에서 철마산 - 여기도 철마산이다. 인천에는 철마산이 3개나 있다. - 까지 능선을 타고 간 다음에 아나지 고개로 내려와야 하는데 내려올 때는 어둠 속에 내려와야 하지 않을까?
그래, 무리는 금물. 다음을 기약하자. 마음은 계속 올라 효성산(중구봉)까지 가서 2006. 12. 25. 계양산부터 등산하여 왔던 효성산 정상에서 내 발자국을 합치고 싶으나 아직은 야간산행은 금물. 나는 다시 산을 오르는 것을 단념하고 다가오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버스에 오르며 운전사에게 차가 부평역까지 가는 지를 물으려 하는데, 어럅쇼? 투명 플라스틱 판이 운전석을 감싸고 있다. 요즘 하도 이상한 놈들이 많으니 운전사를 보호하려고 - 운전사를 보호하는 것이 바로 승객들을 보호하는 것이겠지. - 이런 장치까지 설치하였구나. 서울 버스들은 아직 이런 시설은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인천이 바닷가로 워낙 드센 놈들이 많아 인천부터 이런 걸 설치하였나?
의자에 앉으니 오늘 모처럼 8시간 20분의 장거리 산행을 하고난 내 몸은 자꾸 의자로 가라앉으려고 한다. 나는 버스 안에서 자칫 부평역을 지나칠까봐 솜처럼 풀어지려는 내 몸을 부여잡고 안내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여자 목소리에 억지로 귀를 기울이며 부평역을 향하여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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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여튼 대단한 열정이네. 우리도 함 가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