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똥모자 교장과 사총사>
1부
"딩동! 딩동!"
"택배 왔습니다."
누리가 잠이 덜 깬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내려섰습니다.
"엄마! 엄마!"
엄마의 대답은 들리지 않고
누리의 목소리만 집안 가득 울려퍼질 뿐입니다.
현관 입구에 선 누리가 큰 소리로 말해습니다.
"잠깐만요."
"박차미씨 앞으로 온 택뱁니다."
누리는 엄마 앞으로 온 택배 상자를 받아들고 요리조리 움직여보았습니다. 무겁지도 않고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누리는 문구칼로 상자를 뜯어보았습니다.
"이게 뭐지? 히히, 엄마 속옷이네?
우와, 팬티가 왜 이렇게 작은 거야?"
누리는 빨주노초파남보 일곱가지 색깔의 팬티와 브라자를 하나씩 손가락에 걸어 빙글빙글 돌려봅니다.
"누리야! 너, 너, 뭐하는거야? 얘, 얘가 미쳤나봐. 그거 당장 내려놓지 못해!"
엄마가 오신 것도 모르고 팬티 돌리기 놀이에 빠져 있던 누리는
엄마의 속옷들을 집어던지고 잽싸게 방으로 도망갔습니다.
"저 저 저녀석이! 아프다고 학교도
안 간 녀석이! 아휴, 속상해."
지금쯤 누리네 반 친구들은 담임선생님의 감시하에 수학문제를 풀고 있을 겁니다.
수학문제 풀기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픕니다.
어제 종례시간에 담임선생님이
공개적으로 한 말이 있습니다.
"내일은 수학문제 풀기 하는 날이다. 많이 틀린 순서대로 청소
당번 정하는거 알고 있지?"
누리네 담임선생님 이름은 공부득입니다. 선생님은 늘 '공부만이 살 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부엌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습니다. 엄마는 택배상자 사건을 그새 까먹었나 봅니다. 누리가 좋아하는 카레라이스를 만들고 계십니다. 누리는 무슨 생각인지 엄마 몰래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아파트 놀이터로 걸어가던 누리의 눈이 점점 동그래집니다. 아이들이 없어야 될 놀이터 그네가 하늘 높이 올라갔다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 타고 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혹시?'
'설마?'
누리는 날듯이 놀이터로 뛰어갔습니다.
"어! 누리다."
"누리야, 기다리고 있었어."
"뭐하느라 이제 오니?"
누리네 반 친구들입니다.
미달이, 부진이, 봉수가 벌써 와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집에 오는 길에
했던 얘기들이 생각났습니다.
"우린 왜 태어난걸까?"
"왜긴? 공부하기 위해 태어났지."
"아,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놀기만 하는 학교는 없을까?"
대충 이런 얘기들이었습니다. 그 때 봉수가 비장하게 말했습니다.
"우리, 내일, 학교 가지 말자."
미달이와 부진이가 봉수의 말이 끝나자 동시에 말했습니다.
"엄마한테 혼날텐데!"
그 말에 봉수가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배가 아프다고 해. 그리고 손으로 배를 쓰다듬으면서 인상을 쓰는 거야. 물론 밥을 먹으면 안돼."
봉수의 말에 누리와 미달이와 부진이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넷은 어릴 때부터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습니다. 같은 유치원에 다녔고 지금도 같은 학교, 같은 반입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만난 네 명의 친구들은 강강수월래를 하듯 서로서로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그 때 경비원 아저씨가 다가와 물었습니다.
"얘들아, 너희들, 왜 여기 있니? 학교 안갔어?"
넷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놀이터 놀이기구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참내, 고녀석들, 도대체 무슨 일이람?"
경비원 아저씨는 고개를 절래절래 젓더니 쓰으윽 지나가 버렸습니다.
넷은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물론 학원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에 넷은 엄마를 따라 병원에도 갔었고, 맛없는 죽을 먹고 하루 세 번 약도 먹었습니다. 어떤 의사선생님은 장염이 의심된다고 했고 어떤 의사선생님은 신경성 위장장애라고 했습니다.
다시 월요일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학교에 가야합니다. 더 이상 꾀병을 부렸다가는 들통이 날 게 뻔합니다. 어쩌면 엄마들은 이미 꼬병이란 걸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넷은 약속이나 한 듯 경비실 앞에서 만났습니다.
5일을 죽만 먹어서인지 다들 기운이 없어 보였습니다.
"오늘 급식 메뉴는 뭘까?"
"돈까스가 나왔으며 좋겠다."
"나는 볶음밥"
"난 닭고기"
그 때, 낡은 소형차 한 대가 아파트 입구에 멈춰섰습니다. '스시첸 아파트'에선 볼 수 없는 고물자동차였습니다.
누리와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그 낡은 소형차를 쳐다보았습니다.
운전하던 아주머니가 머리를 창 밖으로 내밀었습니다.
"얘들아, 이 근처에 아주 맛있는
토스트 가게가 있다던데 어디야?"
아주머니는 똥모양의 주황색 모자를 쓰고 하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습니다. 게다가 4월인데 갈색 털코트를 입고 있습니다.
"봉봉 토스트요?"
동네 맛집은 다 꿰고 있는 봉수가 되물었습니다.
"오! 그래, 그래, 봉봉 토스트! 알고 있으면 좀 가르쳐 줄래? 며칠동안 아무 것도 못 먹었더니 쓰러질 지경이구나."
며칠동안 아무 것도 못 먹었다는 말 때문인지 봉수는 얼른 차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저기 '다있소 문구점 보이시죠? 그 옆골목으로 들어가면 '느낌표 책방' 간판이 보일 거예요. 바로 그 옆이에요."
"어머, 고맙다. 자세히도 설명해 주는구나. 너희들, 혹시, 금은동 초등학교에 다니니?"
"네! "
넷이 동시에 아주 큰 소리로 대답하자 아주머니는 이를 드러내며 웃더니 손을 한번 흔들고는 가버렸습니다.
네 명이 나란히 교실로 들어서자 반 친구들이 우루루 몰려들었습니다.
"야! 너희들, 꾀병이었지?"
"학원에도 안 왔던데, 진짜 아픈 거 맞아?"
"단체로 식중독이라도 걸린거야?"
친구들은 의심반 걱정반의 표정으로 참새처럼 시끄럽게 물었습니다.
그 때, 아침조회 시작 종이 울렸습니다.
그 순간 아이들은 마치 잘 훈련된
애완견처럼 자리에 가 얌전히 앉았습니다.
"드르륵! 드드득! 툭!"
교실문이 열렸다 닫혔습니다.
머리를 8:2로 가지런히 빗어넘기고 몸에 딱 달라붙는 회색조끼늘 입은 공부득 선생님이 손에 뭔가를 잔뜩 들고 들어왔습니다.
"첫시간이 시작되기 전까지 풀어야 될 '우리말 골든벨퀴즈'다.
다들 국어사전 꺼내도록! 준비, 시작!"
누리는 순간, 뒤통수가 흔들렸습니다. 월요일에 반드시 가지고 와야하는 국어사전을 집에 두고 온 것입니다. 부진이도, 미달이도, 봉수도 서로 돌아보며 눈빛을 교환하는 걸 보니, 국어사전이 없나 봅니다.
"국어사전 없으면 어떡해야 하는지 알지?"
공부득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넷은 두 손을 깍지 끼고 머리에 얹었습니다. 공부득 선생님은 깍지 낀 두 손 위에 동화책 한 권씩을 올려 놓으며 나지막히 속삭였습니다.
"책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라."
네 명이 동시에 '휴'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4학년이 되면서 공부득 선생님은 여러가지 규칙을
선포하였습니다. 그 중 하나가 '깍지낀 손 위에 동화책 얹기'입니다. 준비물을 안가져왔을 때의 규칙입니다. 만일 책을 떨어트리면 삼일 내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해야 합니다. 5분도 안지나 봉수의 책이 떨어졌습니다. 10분쯤 지났을 때 미달이와 부진이의 책이 동시에 떨어졌습니다. 누리는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20분쯤 지났을 때, 교실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뚜벅 뚜벅! 누군가 누리 가까이 다가 오는 것 같은데 돌아볼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책이 떨어질 게 분명합니다. 발 소리가 멈추더니 그 누군가가 누리 머리에 올려진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어어어, 그 그 그러시면 안되...."
공부득 선생님이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을 더듬었습니다.
"어머, 이 동화는 내가 읽고싶었던 건데, 내가 좀 빌려가도 되겠죠?"
반 아이들 모두는 하던 걸 멈추고 이 장면을 쳐다보았습니다. 누리는 자기도 모르게 얼른 대답했습니다. 아주 큰소리로 말이에요.
"네!"
누리의 대답과 동시에 아이들은 공부득 선생님을 쳐다보았습니다.
얼굴이 덜익어 얼룩덜룩한 붉은 파프리카 같습니다.
"교 교장선생님! 그 책은..."
이번에도 공부득 선생님은 말을 잇지 못합니다.
반 아이들은 이제 낱말찾기'같은건 이미 뒷전입니다. 뭔가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습니다.
"아! 내 소개를 못했군요.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부로 금은동 초등학교에 새로운 교장으로 부임한 변부자 라고 해요.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듯한 얼굴입니다. 맞습니다. 오늘 아침 등굣길에 봉봉토스트 위치를 묻던 고물소형차 운전자입니다.
반 아이들이 그 말을 듣고 저들끼리 소곤거립니다.
"야야, 교장선생님 모자 좀 봐. 꼭 똥덩어리같아."
"동화책에 나오는 똥 뒤집어 쓴 두더지 같아."
"맞아.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 에 나오는 그 두더지."
누리는 교장선생님 덕분에 책읽고 독후감 쓰기를 안해도 됩니다.
점심 시간입니다.
미달이와 부진이와 봉수는 식판을 앞에 놓고 한숨만 쉬고 있습니다.
누리도 그다지 먹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4학년이 되면서 영양사 선생님이 바뀌었는데 음식맛이 영 별로입니다. 유기농웰빙식단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잘 먹지 않습니다.
"누리는 좋겠다."
미달이가 말했습니다.
"세상은 불공평해."
부진이가 말했습니다.
"미달아! 부진아! 걱정마. 내게 좋은 생각이 있어."
봉수가 숟가락으로 국물을 휘휘 저으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습니다.
"뭔데? 뭔데?"
미달이와 부진이와 누리까지 봉수 눈을 쳐다보며 봉수 쪽으로 목을 쭈욱 뺍니다.
"우리가 읽어야 할 동화책을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께 빌려드리자."
"뭐?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께?"
미달이가 시금치 한조각을 깨작깨작 씹으며 말도 안된다는듯
말했습니다.
그 때 공부득 선생님의 낮고 두툼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얘들아! 골고루 다 먹도록 해라. 음식 남긴 사람은 텃밭에 물주기다."
반 친구들은 오후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 놀았지만 사총사는 텃밭에 물주기를 해야했습니다.
누리와 봉수는 비린내 나는 고등어조림을 남기고 미달이와 부진이는 토란국을 남겼습니다.
텃밭에서 봉수가 점심 먹으며 했던 얘기를 다시 꺼냈습니다.
"야! 솔직히 우리가 동화책 읽을 시간이 어딨냐? 영어학원이랑 수학학원 끝나고 집에 가서 밥 먹으면 학습지하고 숙제하면 잘 시간인데, 언제 책을 읽어?"
미달이와 부진이는 봉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따 수업 끝나고 교장실로 가보자."
봉수가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종례가 끝나고 반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뒤 사총사는 탐정놀이를 하듯 주위를 살피며 교장실로 향했습니다.
교장실은 1층 현관 오른쪽 첫번째 방입니다.
앞장서서 걸어가던 봉수의 눈이 교장실 문 앞에서 동그래졌습니다.
커다란 글씨로 '금은동 어린이들!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거든요.
사총사는 왠지 안심이 되었습니다.
봉수가 숨을 크게 한번 쉬고 교장실 문을 똑똑 두드렸습니다.
"들어오세요."
순간 사총사의 발이 바닥에 딱 달라붙은 것처럼 네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눈동자 8개만 떼루룩 떼루룩 굴렀습니다.
용감하게 교장실 문을 두드렸던 봉수가 누리 뒤로 숨었습니다.
"누리야, 네가 문 열어."
봉수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습니다.
이번엔 미달이와 부진이가 봉수 뒤로 숨었습니다.
"들어 오세요."
안에서 조금 전보다 더 큰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리는 눈을 꼭 감고 교장실 문을 달칵, 열었습니다.
그 순간, 방금 구운듯한 치즈피자의 달큰하고 꼬소한 냄새가 후욱 풍겼습니다. 사총사는 언제 긴장했냐는 듯 피자냄새에 이끌려 미끄러지듯
교장실로 들어갔습니다.
"오! 잘 왔다. 마침 피자를 먹으려던 참인데 같이 먹을래?"
변교장은 피자 한조각을 들고 킁킁 냄새를 맡으며 말했습니다.
"네!"
사총사가 이렇게 동시에 이렇게 씩씩하게 대답하는 건 처음입니다.
대답보다 먼저 나간 손들은 이미 피자 한조각씩 들고 있습니다.
눈깜짝할 새에 대형피자 한 판을 다 먹어치웠습니다.
"너희들도 배가 고팠나 보구나? 나도 오늘 급식은 입에도 못댔단다. 비린내 나는 건 딱 질색이거든, 게다가 미끄덩거리는 토란국이라니, 생각만 해도 욱 ㅡ"
똥모자를 고쳐쓰며 변교장은 입 안에 남아있는 피자를 꿀꺽 삼키며 말했습니다.
"아참, 근데 너희들, 무슨 일로 온 거니? 내게 용건이 있어서 온 거 같은데."
사총사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봉수가 누리의 옆구리를 쿡쿡 찌릅니다.
미달이와 부진이는 치즈가 묻어 있는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습니다.
"교장선생님, 아침에 저를 위기에서 구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누리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습니다.
"오! 그거? 내가 진짜 읽고 싶어서 그랬던 거야. 그 인사 하려고 온 거니?"
"아, 아니요. 사실은 부탁드릴 게 있어서 왔어요."
봉수가 자꾸 누리 옆구리를 찌르자 누리는 다시 한번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 뭔지 들어보자. 그 전에 이름을 알고 싶은데."
"제 이름은 오 누리예요."
"저는 도 봉수입니다."
"전 안 부진이예요."
"양 미달입니다."
"흠ㅡ 좋은 이름이구나. 그래, 무슨 일인지 봉수가 말해볼까?"
"저기요, 저ㅡ 교장선생님! 저희들 책도 빌려가실래요? 아주 재미있는 책들이에요."
봉수가 눈을 감고 턱을 들어올려 웅변하듯 외쳤습니다.
"좋아! 내가 빌려갈게.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변교장은 하얀 안경을 오른쪽 검지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했습니다.
사총사는 변교장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부탁이요?"
"무슨 부탁인데요?"
미달이와 부진이가 돌아가며 되물었습니다.
변교장은 '끄응' 하는 소리를 내며 똥모자를 벗었다 다시 썼습니다. 그 순간 교장실 벽 한쪽이 쩌억 갈라지더니 좁은 오솔길이 나타났습니다. 사총사는 그만 입을 헤에 벌린 채 그대로 돌이 되어버린 듯 온 몸이 뻣뻣해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사실, 금은동 초등학교를 지키는 수호신이란다."
말을 마친 변교장은 스르르 몸이 줄어들더니 두더지로 변했습니다.
말이 안되는 일이 사총사의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무 말도 못하고 뚫어져라 자신을 쳐다보는 사총사를 바라보며 두더지가 말을 이었습니다.
"초등학교의 수호신들은 어린이들이 행복한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 해 노력해야 해. 근데 내가 일을 게을리 하는 바람에 금은동 초등학교는 어린이들이 다니기 싫어하는 학교가 되고 말았지."
사총사는 마치 자신들을 두고 하는 말처럼 들려 머리를 긁적이거나 이상한 콧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두더지가 말을 이었습니다.
"그래서 삼신 할머니께 벌을 받아 두더지가 되고 말았지. 삼신 할머니는 이 세상 모든 어린이들이 행복하게 살길 바라시거든."
여기까지 말을 하고 두더지는 눈이 부신지 앞발로 한참동안 눈을 비벼댔습니다.
"사정은 잘 알겠어요. 근데 부탁이 뭔가요?"
겨우 정신을 차린 누리가 물었습니다.
"내겐 이번이 삼신할머니가 주신 마지막 기회야. 이번 기회를 놓지면 나는 영영 햇빛을 보지 못하고 땅 속에서 두더지로 살아야 해. 그래서 너희들의 도움이 꼭 필요해."
두더지가 힘이 쭉 빠진 채 울먹이며 말하자 봉수, 미달이, 부진이도 한마디씩 합니다.
"도와줄게요."
"우리가 무엇을 하면 되죠?"
"힘내요. 수호신님!"
두더지는 그제야 힘이 나는지 앞발로 탁탁 박수를 두세번 쳤습니다.
"그럼 날 따라와. 보여줄 게 있어."
두더지는 뭔가에 쫓기는 것처럼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며 오솔길로 걸어나갔습니다. 사총사도 두더지를 따라갔습니다. 한참 후에 도착한 곳은 커다란 동굴 앞이었습니다. 주변은 커다란 나무들이 해를 가려 어두침침했습니다.
"여기가 어디예요?"
미달이가 주머니에서 사탕봉지를 꺼내 사탕 하나씩 나눠주며 물었습니다. 많이 걸어 힘들고 배가 고프던 차라 사탕은 말할 수 없이 달콤했습니다.
두더지와 사총사는 동굴 앞에서 잠시 쉬며 사탕을 먹었습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갈 건가요?"
부진이가 입 안에 남아있는 단맛을 음미하듯 쩝쩝 소리를 내며 물었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 이 안에는 '어둠의 요정'이 살고 있어."
두더지가 말했습니다.
"어둠의 요정요?"
봉수가 물었습니다.
"그래, 어둠의 요정!"
두더지는 작은 눈을 더 작게 뜨며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어둠의 요정을 물리치러 가는 건가요?"
봉수가 주먹을 불끈 쥐며 다시 물었습니다.
"그건 아니야. 어둠의 요정이 훔쳐간 걸 찾아 올 거야."
두더지가 말했습니다.
"어둠의 요정이 뭘 훔쳐갔는데요?"
미달이가 사탕 하나씩을 더 나눠주며 물었습니다.
"금은동 초등학교의 즐거움!"
두더지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몹시 괴로운 듯 말했습니다.
사총사는 각자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래서 학교 가기 싫었던 걸까? 그래서 공부하기 싫었던 걸까? 그래서 시험 볼 때면
머리가 깨지도록 아팠던 걸까? 그래서 담임선생님이 싫었던 걸까? 그래서 책읽는 게 싫었던 걸까? 그래서 급식이 맛이 없던 걸까? 그래서 숙제하는 게 그렇게 싫었던 걸까?
누리와 친구들은 즐거움이란 찾아볼 수 없고 싫은 것 투성이의 학교생활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습니다.
"두더지님! 아니, 수호신님! 지금 당장 동굴로 들어가요."
"그래요. 가서 결투를 해서라도 즐거움을 찾아와야겠어요."
누리와 봉수는 당장에라도 뛰어들어갈 기세로 말했습니다.
"난 좀 무서워."
"나도, 어둠의 요정이 괴물처럼 무서울거 같아.
부진이와 미달이는 둘이 손을 꼬옥 잡은 채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