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 정량화 vs 인류원리
머리말
4년 내내 열심히 실험하고 문제 풀고 물리에 몰두했던 많은 친구들은
지금 물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에 종사하고 있고,
그 4년 동안 거리를 누볐던 나는 오히려 물리학자의 길을 가고 있다.
- 왜 그럴까? 공학자가 아니라 과학자로 남으려면 실적의 체화가 아니라 호기심의 유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 생활과 사회를 과학화한다는 의미를 제대로 알려면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과정으로서의 과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 과학을 비판하는 것조차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과정으로서의 과학이라는 기틀을 유지해야 설득적이다.
우리는 정치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보통의 생활 속에서 과학의 원리들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것 자체를 교육받지도 못했다
.- 저자는 본문 속에서 이 과학의 원리들에 대해 여러 방향에서 사색한다.
그러나 과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라는 틀을 스스로 명쾌히 규정하는 데는 실패한 듯 하다.
과학은 언제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여 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서의 방법론을
가장 철저하게 관철시켜왔기 때문이다
-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정부가 1년에 얼마만큼의 돈을 어디에다 쓰는지, 기초과학에 어떤 정책을 세우고 있는지,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는 과학자들이 태반이다.
더 큰 문제는 과학이라는 활동과정 자체가 갖는 특성에 대해 과학자들 스스로가 오해하는 부분도 많다는 점이다. 여전히 내 주변의 적지 않은 동료들은 과학이란 실험적으로 검증되는 것이어야만 한다거나
경험적 지식의 총체라는 이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아마도 과학이라는 경계를 잠시라도 벗어나서 그것을 성찰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 무엇이 문제일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으며,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전망은 있는가?
나처럼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사회에 대한 일종의 봉사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들이 자신의 전문지식을 틀어쥐고 권력화하기 시작하면, 소수의 전문가 집단은 배를 불리겠지만
사회 전체는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 앎의 문제가 아니라, 알려는 의지의 문제.
제1부 정치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1 - 대통령 지망생에게 ‘물리학’은 전공필수
합리적인 이성에 기초해서 계몽의 시대를 거치고 근대 및 현대 과학의 혁명적 발전을 주도한 서양에서는
‘이성적인reasonalbe’ 사고방식이 널리 퍼져 있다.
이치에 맞지도 않고 근거도 없는 주장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목소리만 크면 만사형통이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이를 문자나 텍스트 없이, 결과적으로 ‘논리’ 없이 감성적 대화에 길든 결과라고 했는데,
나는 이것을 과학적 전통의 부재로 이해하고 있다
. - 요컨대, 도구적 이성으로서의 과학인 비판적 이성으로서의 과학을 체화하지 못했다.
‘과학적’이라는 개념은 대체로 방법론에 대한 것이라는 점을 사람들은 종종 잊어버린다.
- 정말 ‘과학적’이라는 개념은 방법론에 대한 것일까?
누가 되더라도 가장 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서의 과학에 대한 마인드를 가질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 합리적인 사고방식은 진공상태에 존재한다. 최소한이라고 붙였을 때,
이 최소한이라는 영역조차 우리가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2 - 부패한 정치인이 한 방에 검증되지 않는 까닭
뒤엠 - 콰인 명제 : 하나의 실험적 사실에 대해 원칙적으로 무한한 이론과 가설이 존재할 수 있고
그 층위 또한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실험이 이론과 다른 결과를 냈다 하더라도
그 어긋남이 이론의 제1가설에서 기인한 것인지
혹은 하부의 수많은 보조 가설에 의한 것인지 논리적으로 확증할 수가 없다.
; ‘증거에 의한 이론의 과소결정underdetermination of theory by evidence’
수성의 근일점 이동과 뉴턴 역학, 중성미자와 표준모형, 이론 자체의 정합성과 완결성이 굳건하면
그만큼 한두 가지 실험 결과로 폐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의 흠결이 드러나더라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의 지지를 철회하기란 무척 어렵다. ‘검증에 의한 후보의 과소결정’
한두 의혹으로 이명박 이론이 쉽게 반증되지 않으면 그것은 그 이론이 옳은 것이라는
더욱 강력한 신뢰를 퍼뜨리게 된다.
대선후보 검증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니다.
경험적으로 얻는 정보로부터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판단 기준이 획득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수많은 사건과 현상을 분석하고 판단하는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항상 경험만능주의에 빠질 위험에 처하게 된다.
- 이명박의 ‘내가 옛날에 해봤는데...’ 그러나 이런 보편적 오류 속에서 어떻게 최선의 선택이 가능하며 변화가 가능할까?
과거 이론을 폐기하기 위해서는 지독한 결단이 필요하다.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3 - 터무니없이 낮은 엔트로피, BBK 사건
엔트로피, 즉 무질서도를 표현하는 또다른 방법은
어떤 시스템이 가질 수 있는 상태가 얼마나 많은가를 따지는 것이다.
지구라는 생태계가 낮은 엔트로피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태양으로부터 안정적인 에너지를 공급받기 때문이다.
낮은 엔트로피 상태로 시스템이 옮겨갈 확률이 지극히 낮기에 과학자들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믿는다.
엔트로피가 매우 낮은 상태 - 이명박 대선후보가 각종 방송과 신문과 잡지에서 “BBK는 나의 것”이라고 인터뷰한 모든 내용은 거짓이다. 어느 누구든지 한번쯤은 제정신이 아닐 수도 있고 또 뭔가를 착각해서 큰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그럴 확률이 매우 낮기는 해도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야말로 결국 지극히 상식적이 당연한 결과가 아니라 엔트로피가 매우 낮은,
확률이 지극히 낮은 결과가 아닐까?
그리고 또한 우리는 BBK를 잊어가고 있으며, 이 역시 엔트로피의 증가가 여실히 반영된 결과이리라.
상식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상식이 잘못되었다고 얘기하려면 그럴 만한 충분한 근거를 함께 제공해야 한다
- 요컨대, 상식은 옳은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관습이다.
뒤엠-콰인 명제야말로 이 관습에 기초한 것이리라.
그러므로 우리에겐 대전제, 대원칙 - 형이상학이라는 존재론 - 이 필요한 지도 모른다.
정치에 대한 객관적 관찰은 가능한가? - 관찰의 이론 의존성
포퍼와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 : 과학활동의 가장 큰 특징은
내부에 스스로를 기각할 수 있는 반증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실험이란 어느 이론을 물질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에딩턴의 일식 관찰 : 에딩턴의 실험 결과는 그리 신뢰하지 않았지만 일반상대론은 지지되었다.
그 이유는 일반상대론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론적인 매력 때문이었다.
언론 : 소재, 사진, 취재원, 전문가,
이 모든 것은 편집부의 ‘이론’이나 선험적인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언론 기사를 정치적인 행위자로 볼 필요가 있다.
경제위기론이나 서민경제 파탄론은 정부를 공격할 때 매우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메뉴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모든 국민을 경제적으로 만족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능한 좌파정권이 나라를 망친다’는 자신의 이론이 입증되기 위해서는, 정말 나라가 망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것은, 어느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나라가 망하지 않을 만큼 그 사회가 성숙했음을 의미한다.
‘누가 집권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정말 그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 자신의 ‘이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차기 정부에서 지금처럼 또 무리하게 ‘나라 망해가는 관측’에만 열을 올릴지 모른다.
목소리가 큰 이론, 예측만 있고 검증이 없는 이론, 신념이 과학으로 둔갑한 이론,
자의적인 비교와 장대높이뛰기 선수를 방불케 하는 고도의 비약이 무시로 감행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것들이 모두 팔이 안으로 굽는 효과를 내면서
다른 것을 밀어내는 배타성을 강화한다는 점이다.
- 어째서 이런 비과학적 이론이 통용될 수 있을까? 아니 더 각광받을 수 있을까?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비과학적인 존재이기 때문인가? 이런 굽는 효과가 없다면 과연 상식적인 사회가 될까? 아니 그런 배타성 자체가 없어질 수 있을까?
1인 1표는 자연의 원리? - 진화론과 우주론
대칭성symmetry :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똑같은 정도
공간의 균질성homogeneity과 등방성isotropy : 공간이 균질하다는 말은
공간상의 위치에 따라 물리법칙이 바뀌지 않는다는 말, 등방적이란 말은
한곳에 서서 어느 쪽을 바라보나 차이가 없다.
우주의 팽창에서도 우리는 우주 공간의 한 지점이 여느 다른 지점과 근본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주의 ‘어디서나, 어느쪽을 보아도’ 다 똑같다는 이 평범해 보이는 사실을
사람들은 ‘우주 원리Cosmological Principle'라고 부른다.
생사 : 늙어가는 것, 이것이 물리학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삶의 균질성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균질 공간에 사회관계가 발생함으로써 그 공간은 비균질적인 공간이 된다.
이 비균질성의 대표적인 형태가 바로 계급이요 학벌이요 성별이요 인종이다.
5천 년 역사를 돌아봐도 노무현만 한 ‘천출’이 최고 권력자의 위치에 오른 예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1인 1표라는 균질 공간 덕분에 가능했던 결과였다.
- 노무현의 당선은 우주원리인가?
제2부 문화
스필버그를 매혹시킨 물리학자 - 랜덜과 선드럼, ‘위계 문제’의 돌파구를 찾다.
기초과학이나 기초인문학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가 어떤 스토리를 생산해낼 능력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고,
요즘 같은 세상에는 그것이 곧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상상력이 지식보다 중요하다” - 생물학자가 만들어낸 영화
2008년의 한 통계를 보면 대졸 취업자의 90퍼센트 이상이 이공계, 인문학의 피폐함니모를 찾아서와 애덤 서머스
새로운 물리 상황을 재해석하고 그것을 그럴듯한 이야기로 새롭게 만들어내는 데에는
그 사회의 전반적인 인문학적 풍토가 큰 도움이 된다.
과학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 과학 이론과 아름다운 스토리라인의 5가지 상관관계
과학 이론과 체계의 아름다움
그 이론이 우리에게 줄지도 모르는 필연성에 대한 감각(와인버그; 와인에 벌레가??)
과학의 어떤 요소들이 과학자들에게 아름답다는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가?
(아름다운 과학 이론과 아름다운 스토리 라인의 유사한 관계)
1. 일관성consistency : 앞에서 한 말과 뒤에서 한 말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 성질
훌륭한 과학 이론이란 그 근본적인 원리와 상충하는 어떤 것,
즉 비정상성이 없는 이론이다. 곧 이론의 내적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예) QED → 표준모형 → 힉스 입자의 예견
예) 1차 초끈혁명(1983) : 초끈 이론에 비정상성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초끈이론으로 몰려들었다.
예) 인과의 지평선causality horizon, 지평선의 문제 :
광년 떨어진 별 X와 지구 사이에는 1년보다 짧은 시간 동안에는 어떤 인과관계도 없다.
즉, 1년 동안은 지구와 인과적으로 격리되어 있다
.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의 나이만큼 지평선을 그어보면 관측 가능한 우주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인과적으로 전혀 관계가 없는 광활한 우주의 모든 영역이 왜 서로서로 거의 똑같아 보이는 것일까?
- 급팽창 이론 : 원래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급팽창하면서 서로 멀어졌다.
2. 보편성(Universality) : 상대성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상대성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물리법칙이다.
이론이나 법칙은 그것이 적용되는 제한조건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같은 이론이라도 제한조건이 비교적 덜한 이론,
그래서 좀더 보편적인 이론이 더 나은 이론으로 평가받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3. 필연성inevitability :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중력의 존재에 대한 필연성 :
어떤 기준에 대해 가속하는 좌표계가 있을 때 그 좌표계를 중심으로 물리를 기술하게 되면
모든 것을 특정한 방향으로 당기는 어떤 힘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힘이 바로 중력이다.
즉 좌표계를 바꿔가며 물리를 기술하더라도 물리법칙이 똑같아지려면 중력이 꼭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등가원리다. 가속하는 좌표계와, 가속은 하지 않고 그 반대편에 적절한 질량이 있는 좌표계는
물리적으로 동일하다.
4. 단순성Simplicity : 오컴의 면도날 “조금이면 족할 것을 가지고 많이 사용하는 것은 낭비다.”
이론적으로 허용되는 힉스 입자의 질량을 얻기 위해
우리는 이론에 도입된 원래 양과 양자보정 사이에 10 ^{32}정도의 미세 조정을 해야만 한다.
두 사람에게 각자 서른두 자리의 숫자를 쓰게 한 후 그 두 숫자를 비교했을 때 한 자리도 틀리지 않고
똑같은 경우와 같다.
우주상수의 경우는 더 심각해서 10 ^{120} 정도의 미세 조정이 필요하다.
불행하게도 단순성과 자연스러움은 대체로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
미세 조정의 문제를 넘어선 한국 드라마 - 「태왕사신기」와 「주몽」의 차이점
주몽 : 그 신성이 줄거리의 핵심과 전혀 결부되지 못하고 있다.
신속한 의사결정과 과감한 행동력은 고구려라는 ‘군사국가’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었다는 것이
고구려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기본 시각이다.
태왕사신기 :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은 역사가 아닌 신화, 신화에 대한 이야기라면 굳이 역사가 아니어도 된다.
이것이 드라마를 비롯한 허구 장르의 자유가 아닐까?
개인적인 원한과 단순한 권력욕은 단소 저급한 요소들이다. ;
그런 면에서 선덕여왕에서 미실이라는 캐릭터는 매우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역사로 드라마를 비판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다.
즉 반증 가능성이 별로 없다. 사실이 아닌 사실성(reality)이라는 인문학적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데우스 엑스 마키나 : 「디 워」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여론화가 만들어낸 졸작. 서사의 극단적 실종과 증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하나의 행위에 이어서 다음 행위가 일어나는 것과,
하나의 행위의 결과로 다음 행위가 일어나는 것은 다르다.
상식은 보편성과 관계가 있다. 기본적인 상식이 충족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낀다.
김수현이 인간 본성을 통찰하는 데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 인생은 아름다워, 그 미세한 사랑의 떨림부터 왁자한 인간 관계의 풍성함까지~
한국 영화, 제작비 100억 원에 과학 자문료는? - 고전역학이 부족했던 「신기전」
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과학적인 사고방식’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과학의 발전과 두 차례의 과학혁명은 서양인들의 인식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에게 과학은 그저 복잡한 수식이나 법칙들로서만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이는 전문 과학자 집단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식을 다루거나 문제를 푸는 것은 어느 정도 따라가도
말과 스토리로써 큰 어려움을 느끼는 듯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나는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인문학의 발전이 중요하고 또 인문학이 도약하기 위해서도 과학과의 끊임없는 소통이 필요하다고 본다.
- 과학적이란 말 자체는 상식적이지 않다. 과학적이란 말조차 과학이란 무엇이고 과학적이란 무엇인가라는 논의와 연구를 통해 생성되는 부산물일 것이다.
제3부 사회
인류의 무지를 증명한 물질 - 우주상수가 정말 암흑 에너지일까?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정체 - 케플러의 법칙에 따르면 은하의 회전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별일수록 그 회전 속도의 제곱은 거리에 비례해서 감소한다. 즉, 멀리 있는 별일수록 회전하는 속도가 줄어든다. 그러나 실제 관측한 결과는 케플러의 법칙과는 너무나 달랐다. 중심에서 멀리 있는 별들의 속도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 암흑물질의 도입, 표준모형에는 없는 물질
우주의 역사에서 왜 하필 지금(대폭발 이후 137억 년이 지난 현재) 암흑 에너지와 여타의 물질들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어 우주가 가속 팽창하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이 의문을 “왜 지금Why Now?”의 문제라고 부른다.
우주상수 : 우주의 공간 자체가 가지는 에너지 밀도. 대폭발 이래 우주는 시간에 따라 계속 팽창을 해왔기 때문에 우주의 크기는 곧 우주의 시간과도 같다. ΛCDM(ΛCold Dark Matter)
암흑물질도 살리지 못한 미국 경제 - 하우스만과 스투제니거의 암흑물질 설
암흑물질은 미국의 해외투자 ; 미국이 해외에 직접 투자할 때, 지식과 기술, 브랜드 등에서 얻는 지식 서비스.
암흑물질을 계산에 넣으면 그 모든 누적적자가 상쇄되어 경상수지 곡선은 수지가 비슷하게 맞아더어지는 평행한 모습을 보인다. 이는 마치 실제 관측한 은하회전 곡선이 거리에 따라 감소하지 않고 거의 동일한 속도 분포를 보이는 것과 닮았다.
암흑물질론이 나온 지 3년여가 지난 시점에서 사후적으로 본다면 이 이론은 틀렸다. 근본적으로는 빚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미국 경제의 기형적 구조 때문임이 확실해 보인다.
- 과학 이론의 사회 적용의 문제점 ; 가치중립적으로 보이는 과학 이론이 사회에 적용될 때 가치가 결부된다. 과학이론의 보편성이 사회에까지 적용되기는 어렵다. 더구나 우주에 암흑물질이 있다고 경제에도 암흑물질이 있다는 식의 은유는 비논리적인 ‘귀추’이다(그러나 이런 귀추야 말로 과학 이론의 본질일 수도 있다).
과학자와 사주·풍수 - 과학적 원리로 설명한 배산임수
점쟁이의 주장은 반증 불가능하다. ; 동일한 사건을 반복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점은 과학 실험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주나 사주명리학에서는 한 사람이 태어날 때의 상황보다도 그 아기가 처음 잉태될 때의 상황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 근본적으로 사주를 포함한 동양학은 환경과 개체를 분리하지 않는다. 따라서 태어날 때의 상황이란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만큼 그것을 대표할 수 있는 기호들이 그 운명과 성향을 함축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현대의 첨단 의학조차 사람의 신체와 성격 형성에 어떤 요소들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거의 아는 바가 없다. - 사주는 단순히 경험적 체계가 아닌 직관적 체계이기도 하다.
풍수에 따른 배치가 행운을 불러들이는지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행운이 무엇인지를 정량적으로 규정하는 문제부터 어렵다. 가족의 건강과 가족 간의 높은 친밀도가 그 가정의 행운인가 복인가 하는 문제는 과학의 손을 벗어난다
. - 과학의 확장이 필요하다. 자연과학과 형이상학과의 만남, 고대로의 귀환?
정치·외교에도 과학이 필요하다 - 정량화와 모형화, 그리고 시뮬레이션
과학을 과학답게 만드는 방법론 중에서도 정량화와 모형화는 특히 중요하다.
기사 등급 디지털화 : 부정적 의견 ① 회원들이 자신의 기사가 수치로 환산되는 것을 싫어할 것이다.
② 기사 등급 판정이라는 과정 자체가 결코 숫자로 점수 매겨질 수 없고, 설령 그렇더라도 객관적일 수 없다.
지은이 생각 ② 사람의 주관적 판단 결과가 객관적 자료로 남게 된다. ① 편집부가 독점한 편집권의 일부를 일반 회원들이 공유할 수 있다.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 : 가까운 혹은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을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예측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는 것 ; 국제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국가 사이의 갈등 상황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그 속에서 공통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했던 토머스 셸링(200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노력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게임이론으로 분석한 미국산 쇠고기 협상 - 수학 이론이 말하는 성공적인 위협
협상의 과학적 조건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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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결정 |
한국의 결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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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인준 |
FTA 거부 |
쇠고기 개방 |
A(50, 15) |
B(-50, 5) |
수입 거부 |
C(100, 10) |
D(0, 0) |
양자가 각자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면 그 결과는 C가 된다. 서로가 이득을 보는 윈-윈의 결정을 내린다.
이런 게임을 비영합 게임non-zero game이라고 한다.
“만약 한국이 수입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FTA를 비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위협 ; D로써 한국의 C를 위협. A로 갈 수밖에 없다. D보다는 크기 때문에.
토머스 셸링, 자신의 이득값을 삭감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상대방을 위협할 수 있다.
만약 쇠고기 수입으로 인한 손해가 FTA에 의한 이득을 초과하면(즉, 100보다 더 크면),
한국이 A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 정부가 쇠고기 수입의 손해를 100보다 작다고 인정해 버리면 스스로 운신의 폭을 줄이게 된다.
통상관리들이 쇠고기 수입의 손해를 FTA의 이득보다 두 배(200)로 크게 계산했다면, D로 갈 수 있을지언정 A로 가지는 못한다. ; 스스로의 이득을 삭감해버리면 누가 봐도 한국이 수입 개방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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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결정 |
한국의 결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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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인준 |
FTA 거부 |
쇠고기 개방 |
A(-100, 15) |
B(-200, 5) |
수입 거부 |
C(100, 10) |
D(0, 0) |
“성공적인 위협이란 그것을 이행할 때 상대방보다 자신이 더 많이 다친다는 위협”이다.
한국관리들은 오히려 <표2>의 이해득실을 공공연하게 한국 국민들에게 주장해 왔다. ;
스스로의 이득을 삭감하려는 노력을 포기했다.
이 이론 자체가 결코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각 행보를 수치로 환산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더라도
사회 현안들을 의미 있게 정량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오히려 각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각종 협상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확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게임이론의 틀을 받아들이기로 한다면, 남는 문제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했을 때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떤 이익이나 손해를 볼 것인지 보다 면밀하게 따져
그 상대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즉, 사회의 고민을 보다 전문화·세분화시킬 수 있고
그 모든 결과를 통합적인 시각에서 관찰하는 것이 좀 더 가능해지리라 기대된다.
- 저자는 궁극적으로 정량화를 과학적 방법론의 핵심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상식적 기반의 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4부 인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확률뿐이다 - 양자역학의 세계
코펜하겐 해석의 탄생
2. 양자역학에서는 바닥 상태와 1차 들뜬 상태가 애매하게 섞여 있는 상태가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가능한
모든 고유 상태들이 중첩되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상태를 결맞음 상태coherent state라고 한다.
3. 중첩 상태에 있는 물리계 S에서 물리량 P{를 측정하게 되면, 고유 상태가 중첩되어 있는 정도에 따라
P의 값이 확률적으로 결정된다.
4. 일단 측정이 이루어지고 나면 물리계 S는 그 측정값을 주는 고유 상태로 완전히 고착된다.
이런 상태를 결어긋남 상태incoherent state라고 한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다시 같은 물리량을 측정하면 100퍼센트의 확률로 원래의 값을 얻는다.
우리 인류가 양자역학을 100퍼센트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력 이론 없이 우주 연구가 가능할까? - 한국의 첫 우주인
왜 그렇게 우주개발계획에 열광했을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실현되기 어려운 꿈을 현실로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상상력에 눈을 뜨고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는 것 자체가 사회 전체에 큰 활력을 줄 수 있다.
눈에 보이는 한순간의 화려한 성공 뒤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이 있었고
수없이 많은 실패가 있었다. 특히나 우주개발계획과 같은 국가적인 프로젝트를 준비할 때는
이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수적이다.
몇몇 상위권 유명 대학 물리학과에서도 일반상대론 강의가 전혀 없는 실정이다.
한국에서 버젓이 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해도 상대성이론 하나 제대로 못 배우고 졸업할 확률이 지극히 높다.
우주에 대한 기본적인 관측도 하지 않고 우주로 나간다는 건 어찌 보면 참으로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와인버그 ; 우주인이 행하는 과학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고등학교 과학경시대회 수준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굳이 사람이 직접 행할 필요도 없다는 지적은 흥미롭다.
허블 우주 망원경을 무인 로켓에 실어 올렸다면,
같은 가격에 무려 일곱 대의 똑같은 망원경을 쏘아 올렸을 것이라는 추정은
유인우주계획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한국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을 썼던 미국에서조차
스펙터클 쇼맨십이 최첨단 과학으로 둔갑하여 천문학적인 돈을 낭비해왔다면
한국도 이를 더욱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국가 차원에서 보다 대대적이고 체계적이며 장기적인 기초과학 육성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요즘처럼 교육이나 과학에 경제 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결국 질 나쁜 다이어트로 우리 몸의 근육을 줄이는 일이다.
- 그보다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나로호를 쏘아 올려야하는가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먼저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저자 말대로 우리에겐 먼저 ‘관측’이 필요한 지도 모른다.
양자역학과 관찰자 - 관측자의 중요성과 고착되지 않는 고유 상태
관측의 결정적인 역할 : 불확정성의 원리는 자연에 내재한 그 원초적 한계를 의미한다.
각 고유상태는 이 물리계가 그 고유상태에 대응하는 물리량의 가능한 값들을 하나씩 간직하고 있다.
누군가 이 계를 측정하지 않으면 이것은 계속 중첩 상태로 남는다.
(방사성 원소의 상태)=(붕괴한다)/sqrt {2}+(붕괴 안 한다)/sqrt {2}
뚜껑을 열었을 때 그 운명이 결정된다. 그 전의 상태는 어정쩡하다.
(고양이의 상태)=(죽었다)/sqrt {2}+(살았다)/sqrt {2}
측정은 뭔가 거시적인 물리법칙과 관계있는 반면 양자역학은 미시적인 세계를 다루기 때문이다.
이 난점을 피하는 한 가지 방법은 미시적인 물리계와 거시적인 관측자를 포함하는 하나의 계를 생각해서
그 계 전체에 적용되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 파동함수를 얻는 것이다.
휴 에버렛의 다세계 해석(1957년) : 양자역학적 중첩 상태가 관측에 의해 하나의 고유 상태로 고착되지 않는다.
관측을 해서 살아 있는 고양이를 보게 되면,
우리와 다른 우주에서는 우리가 죽은 고양이를 보는 관측을 한다는 것이다.
관측자 역시 관측 대상만큼이나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실험자가 사용하는 기구들은 모두 관측자의 범주에 포함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리학 방정식 - 우주상수와 인류원리
G _{mu`nu} `=`8`pi`G`T _{mu`nu}
G _{mu`nu}는 아인슈타인 텐서 : 시공간의 정보를 담고 있다. 시공간의 굴곡
T _{mu`nu}는 ‘에너지-운동량 텐서’ : 공간에 퍼져 있는 에너지와 운동량의 분포
(시공간의 휘어짐) = (에너지 분포) ; 질량이 있으면 시공간이 휘어진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에너지(질량)가 서로 얽혀 있는 것이다. 중력이 시공간의 특성으로 설명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 전체의 시공간은 어떠할까?
그 속에 있는 온갖 질량과 에너지들은 또 어떻게 우주의 시공간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
피조물인 인간으로서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신의 산물이 아닐는지... ; 이신론(理神論)
‘로버트슨-워커 측량metric’이 주어지면 아인슈타인 텐서(공간 정보)는 자동적으로 얻는다.
우변인 에너지 분포를 먼지와 빛으로 기술하면 프린트만 방정식을 얻는데,
이 결과 우주는 팽창하거나 수축한다. 아인슈타인은
이 동적인 우주를 받아들이지 않고 우주상수 Lambda를 하나 집어넣는다. 우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
허블에 의해 우주는 팽창한다는 것이 밝혀짐. 그러나 LAMBDA CDM은 매우 성공적.
(와인버그의 인류원리) 우주 상수는 왜 그렇게 작을까? ; 우주상수의 문제 : 인간이라는 지적 생명체가 태어나 자기가 살고 있는 우주를 다시 관찰하려면 그런 지적 생명체의 탄생에 용이한 자연환경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이 조건을 만족하기 위한 적절한 크기의 우주상수. ;
왜 우주상수가 그리 작은가에 대한 직접적인 답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우주가 처음 생길 때 먼 미래에 인류라는
지적 생명체의 존재를 미리 기획이라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생명체가 태어나기에 적합한 환경(은하나 별이나 행성이 형성되는 따위)이 우주에서 만들어지고,
실제로 그 어느 곳에서 생명체가 태어나 오랜 시간 진화가 가능해야 하며,
마침내 고등의 지성을 가진 생명체가 생겨날 조건은 매우 까다로운 조건임에 분명하다.
인간의 존재 자체가 우주의 근본적인 비밀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셈이다.
아마도 혹은 적어도 인류원리는 물리학의 최첨단에서
인간과 과학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는 것 같다. - 인류원리는 과학인가?
‘인류원리’가 실종된 한국 정부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교훈
디오크레티아누스의 교훈 “ 제도나 시스템으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의 자율성이 얼마나 중요한가 보여준다.
인간의 존재 자체가 결국 모든 문제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과학에서 인류원리는 인간의 존재 자체를 자연의 질서가 간직한 비밀을 풀 수 있는 중대한 실마리를
제공하는 계기로 인식된다.
국가는 제도 자체의 모순점을 가리기 위해 시위의 ‘불법성’을 강조함으로써 무력으로 개입한다.
인간 스스로 만든 후천적인 사회질서들 또한 응당 그러해야 함이 자연의 질서에도 매우 부합해 보인다.
불행히도 많은 제도들은 그 사회 구성원들이 얼마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에
가장 적합한가의 기준이 아니라 가장 힘 있는 사람들의 영향력을 얼마나 더 강화시킬 수 있는가의 기준으로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생존 조건에는 생물학적 조건만 포함되는 게 아니라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욕망도 포함한다.
그 인간다움에 대한 욕망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약간 다를 수 있다.
후천적인 법과 제도와 온갖 사회적 협약들은
당연히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작동해야만 한다.
안타깝게도 언제부터인가 국제 외교와 정치에서는 종종 이 근본 원리가 잊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휴 에버렛의 다세계 해석이나 와인버그의 인류원리는 그야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이론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가늠하기 힘든 비약은 우리 사회가 과학에 대해 얼마나 ‘혼란’스러워하는지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물리학자로서 수시로 물리학 이론과 사회를 접목시키려고 노력하지만,
미세 조정 문제나 암흑물질처럼 필연성이 떨어진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연결은 단순한 구호로만 극복하기에
그 간극이 무척 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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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흥미롭지만 만만치가 않으네요....관심있게 읽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