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하우스
엄원태
주인 내외가 나를
저수지 가 비닐하우스지기로 임명한 건 지난가을이다
갇혀 지낸 지 이백육십구일이 흘렀다
대체로 견디기 힘든 날들이었지만,
한겨울 밤 추위는 따로 기록 해둘 만한 시련이었다
목줄에 바투 묶인 탓에 운동을 할 수도 없었던 것도
고통스런 일 중의 하나였다
그럭저럭 봄을 맞이하자
하우스 안 닭장에 병아리 스무마리가 추가 입양됐다
내 임무는 한층 뚜렷해졌는데, 목줄은 더 꼬이며 짧아졌다
주인 내외는
앞마당을 에워싼 철망 울타리에 강낭콩 덩굴을 올리고
하우스 출입문 위에는
공사장에서 주워 온 '안전제일'이란 플라스틱 문패를 달았는데,
최근엔 철책 게이트 옆에다 '민들레하우스'라는 앙증스런 팻말까지 달았다
그리하여 뜻밖에 평화롭다는 민들레영토의 지킴이가 되었지만,
목줄에 묶인 신세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여름 오기 전, 장맛비가 얼마간 열기를 식혀주겠지만
본격적인 더위를 견딜 각오 역시 만만찮을 게다
내 유일한 전략이란 명상과 낮잠,
그나마 낮잠이 조금 더 편한 선택 사항인 셈이다
민들레하우스 철책 안에는
상치며 쑥갓, 그리고 국화 화분 몇개가 전부,
나는 목줄이 풀리더라도 닭장은 물론이고
푸성귀며 화분 따윈 절대로 건드리지 않을 것인데,
주인 내외는 그런 나를 아직도 믿지 못해서
오늘도 목줄이 단단히 매였는지 확인하고 돌아갔다
ㅡ시집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 창비,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