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후반 당시에 노동자들이 즐겨 불렀던 노래들, 그리고 노래운동을 하는 쪽에서 만들어져서 불려졌던 노래이야기를 들려드릴까해요.
지난번 김영동 이야기까지 해드렸는데요. 이런 노래들은 대부분 학생들 또는 지식인들이 먼저 불렀던 노래들이거든요. 그러면서 기회가 될때 노동자들에게 가르쳐지거나 함께 불려지거나했는데요. 노래라는 건 누구나 지을 수 있고 부를 수 있잖아요? 단지 시간이 없고 여유가 없을뿐이죠. 또 감히 노래를 만들 엄두를 잘 내지 못하죠 난 못배웠으니까, 그런데 필요가 있으면 어떤때는 지어보기도하고 또 자신의 취향에 맞는 노래가 있으면 열심히 부릅니다.
당시 학생들은 잘 모르고 있었으나 오히려 노동자들사이에서 인기를 끌었거나 많이들 불렀던 노래들을 오늘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이제 드디어 노동가요의 초창기모습을 보는건데요. 그 첫 테잎을 끊어줄 노래는 놀랍게도 '불나비' 입니다.
이 노래가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 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이 노래를 처음 들은건 학교쪽에 퍼지기 시작했을 때인데 아마 84년 즈음으로 기억해요. 그런데 노동현장에 계셨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70년대 후반에도 부르셨데요. 또 음악적 스타일로 봤을때 70년대 전반으로 내려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락적인 리듬이 전반적이죠. 백비트라고해서 "불을 찾아 헤매는 불나비 처럼" 뒤에 액센트를 두죠. 이런식의 분위기는 70년대 초반에는 키보이스 등의 아주 소수의 팀들이 활용하긴 했지만 아직 좀 낯선 양식이었구요. 70년대 후반에가서 트롯트고고 등의 양식으로 좀더 대중화되는 모습을 보였거든요.
그런 점에서 70년대 후반에 지어졌을 것 같고 또 당시 노동자들이 직접 지은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뭔가 노동운동에 관여하고 있던 학생층, 지식인층에 의해 어쩌다가 지어져서 노동자들에게 먼저 알려지고 불려졌던 것으로 짐작하고 있구요. 제가 당시 분들에게 "이 노래를 어디에서 들으셨나요" 하고 여쭤봤더니 "내가 70년대 후반에 청계피복 근처에 왔다 갔다 할 때 들었는데" 이러시더라구요.
노동문제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고 상당히 투쟁력을 갖춘 청계피복노조, 원풍모방, 동일방직, YH노조 등 노조들이 생기기 시작 했던 시기이기도 하구요. 몇 주 전에 들려드렸던 '공장의 불빛' 이 동일방직노동자들의 투쟁사례를 담은 노래였는데요.
이렇듯 어떤식으로든 노동자들은 노래가 필요했을 것이구요. 어떤식으로든 불렀을 겁니다. 그런 노래중에 하나가 바로 '불나비' 입니다.
이 노래의 확실한 기원을 저는 모르고 있는데요. 도대체 이 노래를 누가 언제 지었는지 어떻게 퍼뜨렸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83년 중반까지도 이 노래를 노동현장에 가면 만나는데 학생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답니다. 그 당시 청계피복노조 같은 곳에 기타를 가르치러 당시 학생이었던 문승현씨가 갔었는데 본인은 처음 듣는 이 노래를 노동자들이 부르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이 노래를 배우고 와서 저도 알게됐죠. 노동운동의 대선배들 경우에는 이 노래의 확실한 기원을 알고 계실 수도 있겠는데요. 제보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노동자들이 좋아하는 노래는 특성이 있습니다.
제가 나중에 80년대 부분에서 해드리겠습니다만 "서방님의 손가락은 여섯개래요" 이런 노래는 안부른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사실 지식인들이 노래를 열심히 지으면서도 이 노래를 노동자들이 즐겨부를지 짐작을 할수가 없었어요. 그들의 삶을 같이 살지 않았고 특히 당시 대학생들은 워낙 다른 삶을 살고있었기 때문에요. '불나비'는 묘하게 신납니다.
당시 대학생들의 생각은 이랬습니다.
전태일 수기 같은 것을 보면 그렇잖아요. 노동자들은 맨날 굶고다니거나 풀빵밖에 못먹고 사니까 매일 우울하고 슬플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만나보고 나서는 깜짝 놀라죠. "이렇게 씩씩하단 말이야?" 노동자들은 늘 슬퍼야 된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동정해야 될 것 같은 마음으로 찾아갔는데 아닌거죠. 오히려 고민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은 지식인과 대학생들이구요. 노동자들은 아주 깡순이들이죠. 몸을 움직여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허구헌날 "저는 불쌍한 노동자예요" 이러고 살수는 없는거죠. 막판까지 몰리지만 그래도 살아야하는 사람들은 그 비참한 상황에서도 툭툭 털고 살아가야 할 수 밖에 없죠.
"삶도 슬퍼 죽겠는데 슬픈 노래를 나보고 또 부르라고?" 이런거죠.
그러니까 신나게 부를 수 있는 이런 류의 노래가 필요한 겁니다. 또 인기가 있었고 80년대까지도 마찬가지구요. 이를 지식인들이 이해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95년 노동가요공식음반에서 준비했습니다. '불나비' 들어보시죠.
<불나비 듣기>
사실 이 당시에 노동자들은 작곡능력이 없었죠. 대학생들은 그래도 좋은 환경에서 가끔 기타도 배우고 피아노도 배우고 음악적 소양을 갖고있는 친구들도 있고 해서 듣고 배운 것들도 있고 그래서 '메아리' 등에서 직접 작곡을 해서 노래들을 지어 부르기도 했는데요. 당시 노동자들은 학력이 그다지 높지도 못했거든요.
이러다보니까 노래가 필요한데 어떡하겠어요? 있는 곡에다가 가사를 바꿔부르는 수 밖에 없는거예요.
이렇게 불려진 노래는 그냥 가사만 남아있고 음반으로 만들어지진 않았죠. 그래서 이번에는 원곡으로 들려드릴수밖에 없는데요.
여러분 '전우야 잘 자라' 라는 노래 아시죠?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앞으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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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우야 잘 잘라' 악보 ⓒ |
이 노래를 가지고 여학생들은 또 고무줄놀이를 했다고 하는데 지금의 20대여성들까지도 이 노래로 고무줄놀이를 했다고 그러더라구요. 이 노래가 1950년 6.25전쟁이 있고 나서 9.28수복 직후 나왔던 노래입니다. 이 노래를 노동자들이 끄집어냈는데요. 군대가면 다 아는 노래였으니까요. 결국 올라가서 공산당을 무찌르자 라는 내용입니다만 특히 2절에서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달빛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피던 화랑담배연기속에 사라진 전우야" 이런 가사들은 정말 기가막힌 가사들이죠. 이런 비극성이 가슴에 남아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불려졌습니다.
이 곡에다가 노동자들은 이렇게 바꿔불렀습니다 "전태일 동지의 흘린 피를 헛되이 하지마라 평화시장 노동자들은 끝까지 투쟁한다"
저도 개사된 모든 부분은 모르고있구요. 이 앞 소절만 알고있습니다.
현인선생의 목소리로 들어보겠습니다. 당시 이 목소리에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입혀졌다고 생각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전우야 잘 자라 듣기> 이렇게 노동자들이 직접 작곡은 하지 못했더라도 개사하는 수준으로라도 노래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옆에서 부추겨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마당극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그렇구요. 또 투쟁사례를 가지고 연극으로 만들어서 발표하기도 했었구요. 윤형주 노래 중에 이런 노래가 있죠. "아 미운사람~" 노동자들은 또 이렇게 불렀습니다. 저도 기억나는데요 "노동자가 얼마나 노동을 더 해야 아~ 살수있나" 이렇게 바꿔불렀구요. 이 노래는 학생가에도 꽤많이 퍼질 정도로 유명한 노래였습니다. 또 저는 들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농촌지역에서 시작된 것으로 기록되어있는 것 중에서는 '타향살이' 노래에다가 "뉴질랜드 쇠고기야 어째서 한국왔냐" 이렇게 불려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려드릴 노래를 이제 소개해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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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일방직 똥물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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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노래를 부르는 현장을 직접가서 봤었는데요. 제가 대학교 2학년 초였을때 동일방직 해고 노동자들이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나서 그리고 민주화의 봄 기간동안 즉 광주항쟁 직전까지 그 시기에 그 노동자들에게 똥물을 퍼부었던 책임의 주인공이 노총의 김영태라는 수장이었는데 그 수장의 방을 점거하고 농성을 하죠. 결혼한 노동자들도 있고 아이업고 와서 젖 먹이면서 농성을 하고있었습니다. 3,4월 민주화의 봄을 맞고있었던 대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이 지원방문을 많이 갔었는데요. 저는 선배언니들 손잡고 구경을 간 것이죠. 저로서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처음 본 경험이었습니다.
가서 보니까 노조위원장 사무실 큰 벽면에 빽빽하게 노래 가사들이 적혀있어요. 그 중에 기억나는 노래중의 하나가 우리가 흔히 '이별가' 라고 하는 '올드랭자인' 이라는 노래였어요.
예전에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끝나고 왕관쓰고 손흔들때 나오기도 했던 노래이고 송년회할때도 많이 부르고 또 한때는 '애국가' 의 가사를 붙여서 부르기도 했었죠. 동일방직노동자들이 불렀던 맨 마지막 후렴구가 이랬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권리 어디에 있나요 하늘아 너는 아는가 노동자의 슬픔을" 마지막 구절이 너무나 선명했어요. 보통 개사곡들이 잘못하면 곡의 이미지하고 가사의 이미지가 안 맞아서 약간 노래가 재미없어지기도 하는데 이 곡은 특히 마지막부분이 악곡의 느낌과 상당히 잘 맞아 떨어졌던 것 같아요. 한탄스럽기도 하고 하늘에 막 절규하고싶은 심정들이요. 역시 개사한 녹음본은 기록이 없구요. 가사없는 연주곡으로 갖고왔습니다.
당시 노동자들이 이 노래를 끙끙 끌어안고 어떻게 가사를 붙일까 고민했을 모습들,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르면서 동일방직노동자들이 투쟁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올드랭자인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