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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은
32204393 조하은
자살한 건가 싶기도 했어. 사는 게 으레 그렇듯 제 어깨가 싫어져서 땅에 처박힌 건 아닐까. 했지. 하늘이 새를 버린 게 아니라, 새가 하늘을 버린 거야. 새도 하늘을 떠난 거지. 그러니까 자살해 버린 거잖아.
소은은 구역이 났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에 착용한 은색 실반지가 살갗을 깊숙이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힘을 풀진 않았다. 소은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속눈썹 사이로 차창 밖의 검붉은 것이 뭉그러진 채 흘러내렸다. 마치 제 속눈썹이 날붙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시금 눈을 감은 소은은 호흡의 결을 가다듬으며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깜빡, 붉음이 갈색과 뒤섞인 채 느릿하게 불거지고, 무언가 점점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깜빡, 불어터진 몸체 위로 타이어가 지나간 자국이 보였다. 깜빡, 모든 것이 선명했다. 차창 밖에서 죽어 있는 것은 커다란 새였다. 두 날개를 합한 크기가 차 프레임의 가로 넓이 정도 됐다. 가죽과 날개뼈가 처참하게 뭉그러져 볼품없어진 새를 낱낱이 뜯어보던 소은은 물씬 올라오는 신물을 억지로 삼켜 냈다. 목구멍으로 끈적한 침과 차마 문장이 되지 못하고 조각나 버린 단어들이 한데 엉켜 넘어갔다. 어디로 내려가는지 몰랐다. 그렇지만 왠지 선뜩한 기운이 목구멍을 태우는 것은 분명했다. 익숙한 느낌이었다.
설을 맞아 잠시 친가에 들렀다 오는 길이었다. 친가는 완도에 있었다. 작은 섬이었지만, 그 섬의 겨울은 매해 소란했다. 간만에 얼굴을 마주한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반가운지 달이 해를 삼키는 것도 모를 정도로 먹고 마시고 웃어 댔다. 시끄러운 분위기에 적응하는 건 늘 어려웠으나 소은은 표정을 입을 줄 알았다. 상황에 알맞은 표정을 꺼내 걸고, 듬뿍 굄받는 법을 알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터득하게 된 버릇 같은 삶이었다. 일가친척 사이에서는 제법 무게가 있는 걱정과 사뭇 예민할 수 있는 질문들이 오갔다. 개중 몇 가지는 조용히 과일을 깎던 소은에게로 던져진 것이었다. 말을 참지 않아도 되는 곳. 가벼운 청중의 앞인, 가족들과 함께 나눠 마시는 웃음은 나이 지긋이 든 노인들의 혀를 풀어 놓았다. 느 애비는 오늘도 안 온다디야? 섭하구만. 그래두 너 아기일 땐 자주 왔었는데…… 만나는 사람은 있는지, 결혼할 생각은 있는지, 아이는 낳을 것인지, 주임은 연봉이 얼마 정도 되는지. 그런 질문을 받게 될 때마다 소은은 작게 웃어넘겼다. 웃음은 무엇이든 도로 돌려보내는 힘이 있었다. 절절 끓는 분노도, 우울도, 따분함도 소모할 수 있는 유일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얼굴 전면에 걸고 나면 질문은 늘 타자에게로 돌아갔고, 그러면 소은은 설거지를 하겠다는 구실로 자리를 뜰 수 있었다. 그렇게 설거지를 하다 잠시 숨을 돌리려 바깥으로 향한 게 어제의 일이었다. 담배 한 대를 태우려면 마을 어귀까지 걸어 나가야 했다. 작지만 큰 섬은 빛 새는 곳이 없어서, 슬리퍼를 직직 끌며 따끔한 겨울 밤공기를 별도리 없이 들이마셔야 했다. 무심한 사람은 이런 곳 안 와. 중얼거리며 소은은 연초를 물었다. 손끝이 피워 올리던 새벽과 연기와 사과 냄새가 몸 전체에 엉겨 붙는 듯했다.
그렇게 무거운 어깨를 들썩이며 땅끝대로를 지나고 있었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탓에 귀가 후 눈부터 붙일 심산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세 시의 대낮이었고, 도로 옆 절벽에서는 파도가 찰박였다. 설답지 않은 한산한 귀갓길이었다. 세상은 고요하게 제 업무를 수행했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 문구를 붙이고 의욕적으로 달리던 다른 차선의 경차도, 파도의 백색 소음도, 코끝을 자극하는 비릿한 내음도 전부 제 할 일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은은 몰랐다. 차선을 벗어난 그 순간 제 역할을 잊어버린 이팝나무가 되어 수천 겹의 불안을 머릿속으로 피워낼 뿐이었다. 꽁지깃이 기다랗고 하얗던 자신의 십자매. 그 아이의 몸에 차가운 철장이 새겨지던 날이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잠시 차를 도로변에 멈춰 세운 채 도로 위의 새를 응시하던 소은이 미끄러운 손으로 휴대폰의 잠금을 풀었다. 축축한 손가락 탓인지 급한 마음 탓인지 지문 인식에 자꾸만 실패하여 결국은 핀을 입력했다. 최근 통화 목록의 스크롤을 내리던 소은이 머뭇거리다 이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서아영.
여보세요. 언니?
몇 번의 수신음 끝에 스피커에서는 웅얼거리는 소리가 났다. 양치 중이었는지, 치열에 거품이 부딪치는 소리도 함께 났다. 거품 소리가 맞을까. 칫솔 소리이지 않을까. 그런 것이 다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저 가을이 보고 싶었다. 노란 줄무늬를 열댓 개나 가진 자신의 고양이가 절실했다. 북적거리는 머리의 깊고도 먼 곳에서 쓸모없는 생각을 하나둘 건져 올리던 소은이 마침내 입술을 뗐다.
아영아, 나…… 가을이 좀. 가을이 목소리 듣고 싶어. 가을이 잘 있지?
가을이 낮잠. 그리고 떨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그래요.
아영은 소은의 직장 후배이자, 친한 동생이었다. 삼 일 전 그녀는 연휴 동안 가을을 잠시 맡아 주겠다고 호기롭게 발화했다. 의아한 듯 묻는 목소리 끝에는 평안과 한낮의 무료가 물씬 묻어나왔다. 소은은 핸들을 고쳐 잡았다.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와 ‘낮잠’이라는 익숙한 단어는 소은의 뱃속을 선회하는 선뜩한 기운을 한 뼘 정도 걷어 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불안했다. 어딘가 불편했다.
신년을 맞아 본사에서는 소포 꾸러미 하나를 보내 왔다. 매년 부쳐 오는 것이지만, 어쩐지 소포를 수령할 때마다 소은은 알 수 없는 기분에 숨을 죽이곤 했다. 조심스레 풀어 본 꾸러미 속에는 여러 종류의 떡이 담긴 작은 상자와 더치커피, 분홍 실내화가 담겨 있었다. 더치커피. 아영이 선물한 신년 선물과 비슷한 것 같아 소은은 작게 웃었다. 전체적으로 둥그런 디자인에 코듀로이 재질로 된 실내화는 금세 가을의 놀잇감이 됐다. 조그맣게 돋은 송곳니로 실내화의 쿠션을 마구 찌르는가 하면, 소포 안에 몸뚱어리를 집어넣어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곤 했다. 명랑하고 사랑스러운 헛짓거리에 소은은 한숨을 내쉬며 박스를 안아 올렸다. 짐짓 엄한 음성으로 발화하면 자신의 품속에서 소파로 유연하게 점프할 고양이를 알고 있어서였다. 정말 가을은 생긴 것처럼 놀았다. 크림치즈처럼 소파에 뭉그러진 채 낮잠을 잤고, 소은이 악몽을 꾸느라 작은 소리로 앓을 땐 에메랄드빛 동공을 키우며 손바닥에 머리를 비비곤 했다.
가을의 눈만 보면 소은은 놀라울 정도로 멀쩡해졌다. 불규칙하던 숨도 곧이어 잠잠해지곤 했다. 가을은 소은의 현재를 부드럽게 이끌고, 과거를 손쉽게 지워 버렸다. 자신의 크림치즈색 고양이가 두 팔을 포개고 색색거릴 때 소은은 저 아이의 팔만큼 가장 완전한 구조물도 없을 것이리라 믿었다. 사랑하는 것과 함께 둥글어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마다 목덜미에 기분 좋은 소름이 돋았다. 서로 다른 온도의 객체가 공존하는 곳은 방이 두 개나 되는 꽤 넓은 오피스텔이었지만, 비단 공간의 크기로 측정하는 벅참은 아니었다. 이건 작디작은 원룸에서부터 돋아났던 기분, 비로소 온전할 수 있다는 생각, 안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의 동의어였다. 가을은 소은이 무언가를 위해 처음 투쟁이란 것을 하게 만든 유일한 생명체였다.
오피스텔로 이사 오기 전 소은이 머물던 곳은 적막감이 감도는 원룸이었다. 스물둘에서 스물여섯이 될 때까지 소은은 줄곧 그 집에서 살았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4층짜리 건물이었고, 총 A동과 B동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소은은 A동 101호, 그러니까 1층에 살았다. 입구 문턱을 밟으면 바로 자신의 집 문이 보였다. 빌라 입구는 황량하게 뻥 뚫려 있었다. 보안키도 여닫이문도 없는 빌라는, 그리고 소은의 현관문 앞은 단연 전단지 부착 알바들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스물둘에 무작정 독립을 선언하고 나와 살기 시작한 만큼 집에 관해서는 무지했다. 보증금 백에 관리비 포함 월세 이십 오, 지어진 지 꽤 된 벽돌 천사빌라. 이곳이 남향인지, 서향인지, 벽지가 뜨진 않았는지, 수도가 새어 나오진 않는지. 심지어는 가스 신청하는 법도 몰랐다. 나는 쥐죽은 듯 살다가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죽어 버릴 거야. 매달 공과금 청구서를 쥐고 전단지를 현관문에서 떼어내며 습관처럼 중얼거리던 말이었다. 정말 그랬다. 소은은 점점 침묵을 닮아 갔다. 집은 여전히 침묵이어서 외롭지 않았다. 소은에게 있어 집이란 항상 무른 과육처럼 쉽게 터지거나, 금방 문질러 지워 버릴 수 있을 만큼 고요한 인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실면적 구 평짜리 집도 본가보다는 나았다. 세 발자국 걸으면 책상에서 침대로 갈 수 있고, 다시 옆으로 세 발자국 걸으면 침대에서 부엌 싱크대 앞으로 갈 수 있었지만 본가보다는 그편이 더 자유로웠다.
소은은 경영학과에 재학했다. 흥미가 있어서 진학했다기보다는 성적에 맞추어 대강 갔다는 표현이 더 옳았다. 나름의 국가장학금과 근로장학금으로, 조금씩 나오는 생활비 대출로 연명하다 우연히 봉사하러 간 유기묘 보호 센터에서 코숏 고양이 가을을 만났다. 고엽처럼 앙상한 작은 몸뚱어리에 소은은 자주 시선을 빼앗겼다. 우는 가을에게서 웅크려 있는 자신의 어린 모습을 빈번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삼 주에 한 번, 이 주에 한 번 걸음하던 곳을 이제는 일주일에 두 번도 더 가게 되었다. 갈비뼈가 다 드러난 아이가 봄과 겹쳐 보이는 게 첫 번째 이유가 됐다. 두 번째로는, 이유랄 것도 없었다. 가을이 점차 생기를 되찾고 배를 까뒤집어 보여 주는 것에서 조금씩 당겨 안았던 무릎을 펴는 어린 제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입양할게요.
이번 주 금요일 오후 세 시쯤 방문 예정 맞으시죠? 신분증 챙겨서 들러 주세요.
시월의 어느 중순,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한 소은은 반짝이는 케이지를 괜스레 만지작거렸다. 천사빌라 옆, 작은 동물병원에서 구매한 베이지색 케이지였다. 그런데 내 집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했던가. 혹 되지 않는다면……. 소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자꾸 욕심이 생겼다. 소은은 공간이 자아내는 안정보다는 생명체에게서 찾을 수 있는 안정을, 집주인의 퉁명스러운 말투보다는 사랑스러운 울음소리를, 내가 너를 구했다는, 그리고 네가 나를 구했다는 모종의 ‘구원’을 두 눈으로 확인받고 싶었다. 그 증명은 보호 센터의 코숏 고양이를 데려옴으로써 가능해질 것이라 믿었다. 센터에서는 간단한 입양 절차를 종이로 건네주었고, 소은은 명료하게 적혀 있는 질문들을 경직된 자세로 바라보았다. 뻣뻣하게 굴러가던 두 눈이 두 가지 문항 앞에서 멈추었다.
- 똑같은 상처를 주지 않을 것인가?
- 반려동물을 키울 환경적 조건이 갖춰져 있는가?
아이가 죽으면 그럼 그때 나도…… 소은은 생각했다. 그때 나도 가야지. 능동으로 살다가 수동적으로 죽어 버려야지. 꼭 먹고 자고 버티고 연명하다 가 버려야지. 똑같은 상처를 안기지 않을게. 나만은 너를 버리지 않아. 정갈하게 쓰인 ‘예’에는 유독 잉크가 뭉쳐 있었다. 펜촉에 힘을 실어 꾹꾹 눌러 적은 탓이었다.
그리고 가을을 조심스레 케이지에 담아 원룸으로 데려오던 그 오후 네 시, 소은은 처음으로 집주인과 언쟁을 벌였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도 되냐고 물었다가, 퉁명스럽고 무심한 ‘야, 시끄럽잖아’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소은은 높게 걸려 있던 햇발이 반쯤 무너질 무렵까지 목에 핏대를 세우고 항변했다. 이후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와 신도 벗지 않고 바닥으로 엎어졌다. 흐트러진 소은의 머리칼을 헤집으며 가을이 아장아장 걸었다. 아무렇게나 놓인 베이지색 케이지가 햇빛을 받아 유독 그을린 것처럼 보였다. 소은은 웃었다. 가을과 케이지와 자신의 작은 원룸이 마치 미술관에 걸린 커다란 하나의 그림 같았다.
독립은 사칙연산 하던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넷이었던 가족을 둘이라고 사칙연산 해야만 했던 밤을 견디다 못해 나온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소은은 외동이었지만, 침묵과 분노를 동생 삼아 무럭무럭 제 키를 키워 갔다. 결혼과 손주 보기를 독촉하는 부모 밑에서 식을 치른 어린 부부는 퇴근만 했다 하면 서로를 불초하게 여기며 헐뜯었다. 네년이 나를 좀먹고 자라나지. 거짓말하지 마. 네 놈이 나를, 내 인생을 막아 버린 거잖아. 서로를 부인하는 상황이 형성될 때면 소은은 몸을 웅크렸다. 무릎을 당겨 안고 벽과 문의 사이, 그 좁은 모서리에 등을 밀어 넣으면 벌어진 문틈 사이로 밝은 그림자가 부모의 언성처럼 늘어졌다. 그 꼴이 미치도록 보기 싫었다. 웅크리고 귀를 막는 와중에도 자신의 발 앞까지 늘어지는 그림자만은 벌레 보듯 노려봤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소은은 문틈이 벌어지는 꼴을 못 봤다. 항상 방문을 꼭 닫아야만 잠이 들 수 있었다.
일찍이 부모는 열여덟의 소은을 두고 이혼했다. 매일 외도를 밥 먹듯이 하는 엄마를 뒤로하고 양육권은 아빠에게로 돌아갔다. 나주에 있는 전력공사에서 일하는 아빠는 출퇴근을 타지로 했고, 통근이 힘들단 이유로 나주에 방을 하나 얻었다. 그 인과는 텅 비어 있는 ‘소은’만의 집으로 귀결됐다. 소은에게 남은 것은 하얗고 꽁지깃이 기다란 십자매 한 마리뿐이었다. 다녀왔습니다. 불도 켜지 않아 먼지만이 고요하게 내려앉은 집에 소은의 낮은 티백 같은 음성이 뚝 떨어졌다. 교복 넥타이와 가방을 벗어 던지자마자 부지런히 발을 움직여 향한 곳은 십자매가 있는 새장 앞이었다. 아이는 똑똑했다. 소은이 철장 문을 열어 주지 않아도, 알아서 제 부리를 움직여 새장 밖으로 나와 거실 전체에 바람을 일으켰다. 소은은 제 어깨에 앉아 비비적대는 십자매를 ‘봄’이라고 불렀다. 가늘게 퍼지는 새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으니 방 안엔 비문만이 늘어갔지만, 소은은 그 소리를 듣기 위해 매일같이 말을 걸었다. 아주 작았던 아이를 아파트 출입구 쪽 계단에서 구출해 내어서, 그리고 기적적으로 봄이 다 가기 전 살아났다고 해서 봄이었다. 커다란 뜻은 없었으나 유독 ‘봄’이라고 발음하면 혀끝이 포근해졌다. 봄이 갸웃대는 왼쪽 어깨 위가 따뜻한 무게로 휩싸였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봄과 함께 네 번째 봄을 맞이했을 때 엄마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다.
단체 문자를 받고 처음엔 인사불성이었다. 토할 것같이 뛰는 심장을 다독인 채 갔던 장례식장에서는 엄마의 새 남편이 부쩍 수척해진 얼굴로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잠시 머물다 가도 되나요. 남자는 잔뜩 허물어진 표정으로 소은을 응시했다. 그러고서는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푸석해진 안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은은 엄마의 영정 사진을 재차 확인했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하얀 국화 몇 송이와 목청이 떠내려갈 듯 우는 어린아이 두 명을 확인했다. 아마 새 배우자의 아이인 듯했다. 저렇게까지 우는 걸 보니 당신을 많이 사랑했던 모양이네. 별다른 질투나 시기 같은 부끄러운 감정이 일진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이 믿기지 않을 뿐이었다. 다시 결혼했으면 행복하게 잘 살아야지, 왜 여기서 멀뚱하게 있어. 당신 얌전한 사람 아니잖아. 사망 원인은 혈전으로 인한 돌연사였다. 사인을 들었을 때는 도리어 헛웃음이 나왔다. 누구보다 강인하던 여자였는데. 두 손으로 헌화할 때도, 향을 피울 때도, 입관식 진행이 끝나고 발인한 뒤 엄마를 봉안할 때에도 소은은 울지 않았다. 삼 일 내내, 그리고 사흘이 되는 날까지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모두가 잠든 빈소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북엇국을 먹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손을 떨며 우는 외할머니의 등에 시선을 두었다. 다시 엄마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거나, 당신 한복 입은 적 없었는데 합성인가, 티 안 나게 잘했네 같은 생각을 했다. 그렇게 꼬박 나흘을 빈소에서 보낸 뒤 일정한 걸음으로 자신의 집을 찾았다. 조그마한 생동감이라도 움트고 있을 집을 기대하며 발을 들였다.
자살한 건가 싶기도 했어. 사는 게 으레 그렇듯 제 어깨가 싫어져서 땅에 처박힌 건 아닐까. 했지. 그러니까 자살해 버린 거잖아. 너는 새장을 나올 수 있었는데도 나오지 않은 거잖아. 그렇지? 자살한 거잖아. 했어? 너는 자살했어?
소은은 새장이 있는 제 방의 베란다 입구 쪽에 서 있었다. 소은의 뒤로는 방금 닫은 하얀 미닫이문이 있고, 그 문은 오른쪽 벽면과 맞닿아 있었다. 벽면에는 올리브색 벽지가 엉성하게 발라져 있었다. 청록색 줄기와 이파리들이 서너 개씩 그려져 있는 벽지였다. 봄이 답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스스로 풀칠한 올리브색 종이였다. 눈을 내리깔면 나무판자 무늬의 흰색 바닥이 보였다. 발밑에는 흰색 아메카지 가방이 뒤집힌 채 놓여 있고, 그리고…… 다시 눈을 들어 올리면 새장 속에서 목이 꺾인 채 죽은 ‘봄’이 보였다. 소은은 허겁지겁 철장 고리를 풀고 봄을 안아 올렸다. 추웠다. 봄이 차가웠다. 한참을 더듬거리던 소은의 손등에 투명한 것이 투두둑 떨어졌다. 그제야 소은은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높이가 다른 슬픔이 흰색 바닥에, 소은의 무릎 위에, 봄의 몸 위에 쓸어 담을 수 없을 만큼 떨어져 내렸다. 소은은 아주 울었다. 처음 태어난 것처럼, 다시 세상에 제 존재를 알리는 것처럼,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는 것을 자각한 사람처럼 목놓아 울었다. 거실 전체가 웅웅거렸다. 더듬거리는 바닥이 먼지로 수북했다. 무릎을 바닥에 깔고 엎드린 상태로 잠들었다 깨어난 소은은, 다음 날 하나뿐인 가족에게 ‘전화’로 독립을 통보했다. 전화 너머에서는 한참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래’라는 말이 짧게 흘러나왔다.
언니? 듣고 있어요? 제가 뭐라고 했게요?
……응. 알았어. 그런데 있지. 봄, 아니 가을이가…… 미안. 못 들었어.
커다란 갈색 새의 몸 위에 철장을 하나씩 그려 넣던 소은이 느릿하게 대답했다. 혀끝에서부터 쇳물을 한 사발 삼킨 것만 같은 향이 났다. 심장이, 피가 도망간 열 손가락이, 공중이 두근거렸다. 꼭 터질 것처럼 뜨겁고 서늘했다. 지금은 겨울인데. 겨울이어서 서늘한 것일지도 몰랐다.
운전대를 고쳐 잡으며 소은은 어지러운 머리를 두어 번 흔들었다. 천천히 엑셀에 발을 가져다 올렸다. 소은의 흰색 중고 아반떼가 부드럽게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바짝 눌어붙은 검붉은 불행이 사이드미러에 담겨 서서히 멀어졌다. 바닷바람이 자꾸만 시원하게 불었다. 소금물의 입자가 공중을 수놓으며 소은의 코와 눈을 자극했다. 소은은 따끔거리는 눈으로 앞을 응시했다. 절벽이 바다를 돌려보내는 소리가 났다. 그게 꼭 자신의 십자매가 부리로 찍어 올렸던 음계 같아서, 소은은 혀를 씹고 또 씹었다. 알싸한 피 맛이 감돌았다. 땅끝대로를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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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녕하세요, 하은 학우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목구멍으로 끈적한 침과 차마 문장이 되지 못하고 조각나 버린 단어들이 한데 엉켜 넘어갔다.", "절벽이 바다를 돌려보내는 소리가 났다."와 같은 인상 깊은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하은 학우님만의 개성이 담긴 심상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글이었습니다. 주제를 새로운 견해로 풀어내려고 노력하신 모습이 보여 좋았습니다. 다만 이야기가 현재보단 과거에 치중된 것 같아, 현재성이 희미해진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하은 학우님. 낮은 티백 같은, 그게 꼭 자신의 십자매가 부리로 찍어 올렸던 음계 같아서, 등 서정적인 묘사와 그 기능이 아주 잘 드러난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정적인 묘사를 이용해서 글을 쓰는 걸 개인적으로 어려워하는 편이라, 괜히 학우님의 글을 더 자세히 읽어본 것 같아요. 봄이 지나 가을을 만나고 현재는 겨울이라는 것을 마지막 부분에 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가 겨울이라는 묘사를 앞부분에 더 넣어주면 그러한 흐름이 더 잘 드러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보다는 과거에 치중되어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하은 학우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선 ‘자살한 건가 싶기도 했어’ 라는 문장이 굉장히 흥미로워서 첫 문장부터 이목을 끌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소은이 죽음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이 굉장히 관념적이라는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능동으로 살다가 수동적으로 죽어 버린다는 문장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뒤로 갈수록 소은을 둘러싼 배경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셔서 소은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하은 학우님! 잔잔하게 물 흐르듯이 덤덤히 말하는 듯한 묘사가 두드러지게 잘 나타난 글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서정적인 묘사를 쓰는 것을 잘 못하고 어려워해서 학우님의 글을 더 집중적으로 본 것 같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현재보다는 과거에 이야기가 더 치중되어 있어서 그것이 좀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하은 학우님. '네가 나를 구했다는 모종의 ‘구원’을 두 눈으로 확인받고 싶었다.', '가을과 케이지와 자신의 작은 원룸이 마치 미술관에 걸린 커다란 하나의 그림 같았다.' 두 문장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문장에 학우님만의 분위기가 잘 담긴 것 같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다만 수월하게 읽히지 않는 문장들이 조금씩 있었습니다.
글을 쓰며 많은 생각을 하신 것이 글에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소은의 감정과 생각들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조금 더 현재에 가까운 소설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무겁고 깊이감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하은 학우님. 학우님만의 섬세한 문장이 글의 분위기를 더욱 살려 주는 것 같았습니다. '토할 것같이 뛰는 심장'이나 '집이란 항상 무른 과육' 같은 비유들이 신선했고, 저도 모르게 그 문장들에 감각이 동화되는 듯 했습니다. 초반에 언급된 집안 어른들과의 대화의 필요성이 살짝 궁금하기도 했지만, '능동으로 살다가 수동적으로 죽어 버려야지.' 라는 소은의 생각에 직결되는 무언가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하은 학우님! 우선, 소은이가 갖고 있는 삶에 대한 회의감이 모든 문장에 잘 묻어난 것 같아 소은이의 상황에 더욱 공감하며 글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십자매에겐 '봄'이란 계절을, 그리고 고양이에겐 '가을'이란 계절로 이름을 지은 부분이 가장 와닿았습니다. 봄과 가을이란 계절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사계절 중 가장 짧은 계절이기에 가장 아쉬움을 담고 있는 계절임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 애틋했습니다. 작품의 시작을 알린 '자살한 건가 싶기도 했어. ~'라는 문장이 작품의 후반부에 다시 나와 소설의 주제를 다시 상기시킬 수 있어 좋았습니다. 좋은 소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하은 학우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잔잔하게 그렇지만 지루하지 않게 잘 읽은 것 같습니다. 우선 상황이나 장면의 묘사가 디테일 해서 좋았고 동시에 특유의 묘사 방법이 시적이라 잔잔한 글을 더 감동적으로 느껴지게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정갈하게 쓰인 ‘예’에는 유독 잉크가 뭉쳐 있었다. 펜촉에 힘을 실어 꾹꾹 눌러 적은 탓이었다.'라는 문장에서 글의 흐름 속에 자연스레 등장하는 묘사인 동시에 그 상황을 잘 그려주고, 주인공의 심적인 묘사까지도 되는 것 같아서 좋은 문장이라고 느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하은 학우님 안녕하세요:) 소설 잘 읽었습니다. 소설 전체에 참신한 묘사가 계속 나와서 내내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순수리말 표현도 글의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소설 머리에 등장한 “자살한 건가 싶기도 했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문단을 변주하여 중간에 배치한 구조가 특히 인상 깊습니다. 과거에 중심을 둔 글이면서도 그 속에 더 먼 과거를 잘 녹여내신 것 같았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하은 학우님! 글 잘 읽었습니다. 화자인 '소은'이 과거에 겪은 경험이 세밀하면서도 짧은 분량에 적절히 함축되어 있어 글의 몰입도를 높였다고 생각합니다. 학우님만의 색다른 비유법 또한 소설을 읽는 과정에서 눈에 띄었습니다. 글의 초반에 드러난 반려묘인 '가을'에 대한 소은의 애착의 이유를 글의 후반에 소은의 과거를 제시하며 풀어낸 점에서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소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