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찌감치 섬교회에서 목회할 때 컴맹은 면했다.
우선, 김영선 목사가 섬을 떠나 육지로 부임해 가면서 주고 간
워드프로세서(컴퓨터 전신)로 문서 만들기를 익혔었다.
활천사 공모전에는 이 기기를 이용하여
‘분재’라는 제목의 수필을 써서 응모하였고,
장원 없는 차석을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육지에서 개최되는 교역자회에 참석하게 되면
젊은 교역자들이 사무실에 모여 컴퓨터를 이용해 자료를 뽑아보거나
설교문작성 시연(試演)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참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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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전기문제가 해결되고 가전제품이 들어오면서 컴퓨터를 구입했다.
섬에도 깜박이는 12볼트 전기시대는 흘러가고, 220볼트 시대가 열린 것이다.
섬에 부임한 지 십년이 지난 1992년도였던가?
그러나 컴을 구입하고도 설치를 자꾸 미뤘다.
컴퓨터에 대해서 배운바가 없기 때문이었고,
비싼 걸 망치지나 않을 가 겁이 났던 거다.
한번은 컴 을 잘 아는 젊은이가 섬에 들어 왔길래 설치를 의뢰했고,
기본적인 설명을 들으면서 시운전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사용법을 익히고 주보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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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던가 요르단으로 출국하기 전 작은 아들목사가
“카페를 한 번 운영해 보세요!” 라고 해서
“나는 문서작성밖에 모르는데 어떻게 카페를 운영하느냐?” 반문했다.
“쉬워요, 그냥 프로그램 따라서 만들어 쓰면 돼요!” 라고 해서
“그럼, 하나 만들어 봐라!”
이렇게 해서 카페 ‘요르단강변’이 생겨났다.
*(나는 아직도 어떻게 카페를 개설하는지 모른다.)
요르단에서는 딸이 대문을 고쳐 주었고...
그 동안 가끔 글 써서 올리는 재미를 익혀왔다.
누군가 카페를 방문해서 읽어본다고 생각하면 책임감도 느끼게 된다.
이젠 소명카페지기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제대로 된 카페의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것을 보면서
글을 더 잘 써야 하겠구나 라고 다짐하게 된다.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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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소명카페지기 목사님이 이것저것 자상하게 가르쳐 주지만
컴치에 가까운 나는 관리면에서는 아직도 초보나 다름없다.
만들어 진 프레임 안에서 사용은 잘 하는 편이지만...
앞으로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