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우회원들 무적 태풍부대를 가다
2017년 10월 19일 아침 8시.
압구정 현대백화점 주차장은 활기가 넘친다. 주차장에 줄지어 서있는 대형 버스 앞 유리창에는 행선지를 표시하는 전광판과 함께 나들이옷을 차려입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신선한 가을 아침을 여는 도심의 싱그러운 풍경이다.
의정동우회의 설중식 사무총장이 우리 버스 앞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그는 아직도 군인 정신이 남아있어 늘 절도 있고 예의 바르며 빈틈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좋아한다.
하반기 부대방문지로 중부전선의 28사단 의무근무대가 선정되었고 회장단에서 사전 준비를 거쳐 오늘 그 장도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일행은 총 36명이다. 회원 27명에 가족회원이 9명이다. 45인승 버스가 만석이 되지 못하여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동기생은 9명이 참석했고 가족회원 까지 11명이나 되어 이공윤 회장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8시 30분이 되자 우리를 태운 서울 72바 6629호 중앙고속 버스는 주차장을 빠져 나간다. 목요일 아침 시간이기에 시내를 벗어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아침 햇살이 차창을 통해 따뜻하게 들어온다. 사무총장의 안내로 오늘하루 안전 운행을 책임질 버스 기사 안중명 씨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이 버스는 지난번에도 의정 동우회원을 모신 적이 있는 구면 버스란다. 사무총장이 오늘 일정과 주의사항을 소상하게 안내한다.
오늘 일정은 28사단 의무근무대를 격려방문하고 태풍전망대와 자유수호박물관 그리고 연천허브마을을 견학하게 되어있다. 이공윤 의정동우회장이 인사를 하는 동안 차는 서울 외곽을 벋어나 동두천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단풍철이 좀 늦어져서인지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하는 아직도 녹색이 짙다. 머지않아 이 잎들은 만산홍엽이 될 것이다.
쉬지 않고 1시간 20분을 달려 동두천시 외곽 소요산 입구에 있는 자유수호평화박물관에 도착한 시간은 9시 50분이다. 이 박물관은 동두천시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6.25전쟁에 대한 이해와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다가 목숨을 바친 분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에 UN군으로 전투병을 파견한 16개 참전국과 5개 의료지원국의 활약상을 널리 알리고 길이 보전하기 위해 1997년에 착공하여 5년에 걸친 공사를 마무리 하고 2002년 5월에 개관하였다. 전시장은 12,000평 부지위에 지상 4층과 야외 전시장으로 되어 있다. 1층은 로비와 해방에서부터 6.25 전쟁까지의 시대적 사실을 12개 도자기 부조로 이미지화해서 전시했고 전쟁으로부터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한 병사들의 역동적 몸짓을 표현한 상징물을 설치해 놓았다. 오늘은 기획 전시로 동두천시 서예협회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2층은 1,4후퇴와 중공군의 춘계대공세를 막아내는 지평리 전투 등 치열했던 전쟁의 모습을 모형으로 연출해 전시했고 16개 참전국과 5개 의료지원국가의 부스를 만들어 각각 그 나라 군복을 입은 군인을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했고 유품과 한국전쟁과 관련된 각국 자료들을 잘 정리하여 전시해 놓았다. 박물관 해설사는 특별히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부스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룩셈부르크는 UN군으로 1개 소대 병력을 파병하여 독립된 작전 수행을 할 수 없어 벨기에 대대에 배속시켜 작전을 해서 개관 초기에는 한 부스에 두 나라를 전시하였으나 룩셈부르크 정부에서 독립된 부스를 요구하여 따로 부스를 만들고 룩셈부르크 정부에서 가지고 있던 6.25 참전 용사들의 자료를 모두 가져와 이곳에 전시 했다고 한다.
전투지원국은 미국, 영국, 호주, 네델랜드, 캐나다, 뉴질랜드, 프랑스, 필리핀, 그리스,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에디오피아, 골롬비아, 터키,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16개국이다.
의료지원국은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이탈리아, 인도 등 5개국이다. 전시관 안에는 6.25 전쟁으로 인한 피해 상황을 적어놓았다. 16개국가중에서 미국이 가장 많은 인원을 파병하였다. 전쟁기간 3년 동안 연인원 1,789,000명을 전투에 참가시켰고 이중 137,250명이 희생되었다. 전사나 부상 또는 포로가 되어 북으로 끌려갔다. 미군 사망자만 36,940명이나 된다. 영국군도 56,000명 파병되어 1,078명이 전사하였다.
3년 동안 UN군은 총 1,924,893명이 참전하였고 그 중 40,66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부산에 UN군 묘지를 조성했고 각지에 참전비와 충혼탑을 만들어 놓았다. 이런 희생을 통하여 대한민국은 오늘을 만들게 된 것이다.
좌 편향된 지각없고 철없는 일부인사들은 오늘도 미군철수를 주장하고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고 날 뛰고 있다. 이런 자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값진 희생이 행여 빚 바라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먼 이국에서 목숨을 바쳤겠는가?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다. 옷깃을 여미고 우리는 그들을 위해 머리 숙여 위대한 희생정신에 고마운 묵념을 올려야 한다.
박물관 3층은 영상자료실이다. 6.25 전쟁 기록물을 12분짜리 영상물로 만들어 보여주고 있다. 그 외에 인천상륙작전과 포로수용소 등을 영상물로 볼 수 있다.
나는 이곳에 있는 한탄 이호왕 박사 기념관을 들러보았다. 내가 1965년 임관하여 대구 육군중앙의무시험소에서 곤충학장교로 근무할 때 유행성 출혈열의 매개체인 들쥐를 잡아 참진드기(mite)를 분류하고 바이러스 배양을 위해 그 분께 가져다 드렸던 기억이 새롭다. 선생님은 함경남도에서 출생하여 서울의대를 졸업하시고 미국 미네소다 대학에서 미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다. 귀국하여 서울의대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 교수와 학장으로 근무하시면서 평생을 유행성 출혈열 연구로 사셨다. 세계 최초로 E.H fever의 원인 바이러스를 발견했고 그 이름을 한탄 바이러스라고 명명하였다.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 의과대학 교과서에도 발견자로 등재돼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바이러스를 배양하여 유행성 출혈열 백신을 개발한 사실이다. 이로써 우리나라 유행성 출혈열 예방에 새장을 열게 되는 큰 업적을 남기셨다. 러시아와 중국 북쪽에 있던 유행성 출혈열이 중공군 참전으로 우리나라에 전파되었고 철의 삼각지를 중심으로 유행되었는데 주로 한탄강 근처 들 쥐에 기생하는 참 진드기가 매개동물로 알려지면서 박사님은 거의 한탄강에서 생활하셨다. 그 분의 아호가 바로 暵灘인 것도 이 지역을 흐르는 한탄강과 무관치 않다.
이런 분의 기념관이 평화 박물관에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그분이 쓰시던 현미경이며 각종 장비들을 돌아보면서 옛날 선생님 모습을 그려봤다.
박물관 입구에는 벨기에 유명한 조각품인 오줌 누는 소년상이 있다. 이것은 두 나라 우호증진의 일환으로 벨기에 참전용사들의 기부금으로 제작되어 이곳에 설치하였다고 한다.
야외 전시장에는 6.25전쟁 때 사용되었던 정찰비행기를 비롯하여 대포 탱크 등 전쟁 물자들이 전시돼 있다. 10시30분에 영상물을 관람하고 자유스럽게 박물관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현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UN 참전용사들을 위한 박물관이 있음에 가슴 뿌듯한 관람이었다.
우리는 다시 차를 달려 11시30분에 28사단 의무근무대에 도착하였다. 우리가 군대 생활을 하던 70년대 초반의 명칭으로는 사단 의무참모부일 것이다. 널찍한 연병장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ㄷ"자형으로 배열 돼 있다. 근무대장과 간부들이 마중을 나왔다. 반가웠다. 내가 의정장교로 근무 했던 것 하나만으로도 친숙함이 전해져온다. 부대현황을 청취하기 위해 지휘관실로 안내됐다. 의자에는 피로회복제인 비타Q 가 놓여있다. 먼길 오신 선배들에 대한 배려이다. 고마웠다. 잠시 담소를 나누고 공식적인 방문 행사가 사무총장의 진행으로 시작 됐다. 의무근무대장 소개가 있었다. 신광용 중령으로 의정54기다. 우리가 22기이니 32년 후배다. 2사단 의무대장으로 근무도 했고 남 수단에 파병도 됐던 인물이다. 부대 간부들 소개가 있고 환영인사를 했다. 이어서 의정동우회 회장이 방문 인사들 중에 몇 분을 소개 했다. 특별히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28사단에서 근무했던 김회수 예비역 대령과 초대 28사단 의무대장을 역임하신 나균섭 예비역 대령이 소개됐다. 우리는 뜨거운 박수로 선배 두 분을 맞았다. 이어서 이공윤 의정동우회장의 격려사기 있었고 격려금 30만원이 현금으로 전달됐다. 특별히 초대 의무대장을 지내신 나균섭 선배께서는 후배들이 건강하게 운동 할 수 있도록 축구공과 농구공 등 10개를 개인적으로 기증해 주셨다.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져 있는 선물이다.
부대 현황을 청취했다.
28사단은 태풍 부대다. 부대 마크가 남색 바탕에 흰색 고리가 맞물려 도는 모습이다. 마치 태풍의 회오리와 같은 모양이다. 적군을 만나면 태풍처럼 섬멸 할 수 있는 의지를 표현 한 것 같다. 부대 마크의 푸른색은 정의와 평화를 상징하고 흰색은 백의민족을 뜻 한다고 한다. 1953년 5월 1일 논산에서 부대가 창설되어 동부 전선을 거쳐 현재의 위치로 이동하여 우리나라 중심부인 중부전선의 방어를 담당하는 GOP부대다. 155마일 휴전선 중에 19.5km의 전선을 방어하고 있다. 산하에는 80. 81. 82연대가 편재돼 있고 1개 연대가 최전방 철책선의 GOP를 담당하고 있다. 28사단은 그간 44회의 대간첩 작전을 수행하여 8명의 간첩을 생포 했으며 1953년 휴전 막바지에 6.25 전쟁사에 기리 남은 베티고지 전투 등 모두가 중부전선의 요지인 연천과 전곡지역을 방어하는 28사단 장병들의 무용담이다. 10분 정도 사단홍보 영상물을 관람하고 부대시설을 돌아봤다. 의무근무대안에 있는 진료실에는 전문의 군의관 9명이 배치되어 진료를 하고 있다. 내과 3명, 치과2명, 외과 2명, 한방의료 1명 그리고 정신과 전문의 1명과 간호장교 2명이 근무하면서 장병들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 옛날 의무참모부와는 비교 할 수 없는 시설과 인력으로 구성되어있다. 지역 거점 병원은 덕정에 있는 양주병원이라고 한다. 숫자로 이름 부르던 옛날 군병원 명칭은 모두 사라졌다. 유사시에 운영되는 이동전개형 의무시설도 구경하였다. 모든 진료 장비를 탑 차에 싣고 야전에 나가 T자형으로 전개시켜 즉시 진료 할 수 있는 이동 진료 시설이라고 한다. 입원실과 방사선실 등을 돌아 본 뒤에 부대 식당으로 안내 되었다.
병사들이 식사를 마친 12시 30분에 우리는 부대 간부들과 함께 식당에 모였다. 목사 직분을 가지신 이규종 선배께서 식사 전 기도를 인도해 주셨다. 오늘 점심 메뉴는 소고기볶음과 김치, 생선튀김과 김치 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맛이 있어 주는 밥 외에 한 주걱을 더 얻어먹었다. 오랜만에 군부대 밥을 먹어본다. 격세지감이 든다.
부대 연병장 지휘대 위에 걸린 현수막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무적태풍인의 건강지킴이!
마음까지 치유하겠습니다.
폭언/욕설NO 비속어 NO 고은 말OK 바른말 OK"
현대화된 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부대 장병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부대를 떠난다. 간부들이 모두 나와 거수경례로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한다. 가슴이 따뜻해져 온다. 의무근무대 모든 장병들이 견강하게 소임을 다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28사단에서 운영하는 태풍전망대까지는 의무대에서도 1시간이 넘게 전방지역으로 이동을 해야 한다. 임진강을 건너 연천지역으로 38선을 넘어야 한다. 이곳은 군 통제 지역이다. 검문소를 통과하고도 10여 km를 구비 돌아 산 정상에 있는 전망대 주차장에 정차한 시간은 오후2시20분이다. 의무근무대로 부터 1시간 15분 걸렸다. 멀리 들어온 셈이다.
태풍전망대는 연천군 중면 황산리에 있는 비끼산(비슬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해발 264m의 수리봉에 1991년 12월 3일에 개관하였다. 서울에서 65km, 평양에서는 140km 떨어진 곳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11개 전망대 중에서 북한과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전망대라고 한다. 6.25전쟁직후에는 남방과 북방한계선이 2km 거리였는데 1968년 북한군이 철책 선을 남으로 이동하여 설치하므로 우리도 앞쪽으로 철책을 이동시켜 지금은 군사분계선까지 800m 북한군 초소까지 1600m로 11개 전망대 중에서 적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게 되었다고 한다. 전망대에 도착하여 안내 병의 설명을 듣는다. 지휘봉을 길게 잡고 모형도 앞에 서서 일사천리로 설명을 한다. 이전망대도 연인원 100만 명이 넘게 다녀갔다고 한다. 명실상부한 안보교육장이다. 조금 전 동두천 자유 수호 박물관에서 보았던 영상물에 우리나라 젊은 학생들에게 6.25 전쟁을 질문하니 어느 나라와 싸운 것도 제대로 모르고 언제 일어났는지도 잘 모르는 전후 세대에게 이만한 안보 교육장은 없을 것 같다. 전망대 아래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임진강은 오늘도 말없이 북에서 남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다. 강폭이 80~100m 정도이고 수심은 1.5~2m 정도 되는 강이다. 강 건너 북한 땅 들판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밤새워 서로를 경계해야 하는 오늘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비감스럽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앞 봉우리가 그 유명한 베티고지란다. 휴전 직전인 1953년 7월 14일 오후부터 시작하여 다음날 새벽까지 13시간 동안 김만술 소위가 이끈 35명의 소대병력과 중공군 2개 대대1500명과의 전투에서 고지주인이 19번이나 바뀌는 가운데 최후의 승리를 거둔 6.25전사에 길이 남게 된 전투란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은 350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역사적 현장인 베티고지에는 말없는 나무들만 무성하다.
설명을 듣고 망원경으로 북한 산하를 살펴봤다. 조용하다. 북쪽으로는 사진을 찍지 말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전망대 밖 광장에는 호주와 태국군 참전 기념비가 서 있고 실향민 망향비도 있다. 북녘을 향해 거대한 성모님상이 서있다. 성모님께 우리나라를 봉헌하는 기도를 드렸다. 성모님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며 북녘을 바라보고 계실까? 광장 가운데 소년전차병전적비가 있다. 1952년 중학생이었던 120명의 소년들이 전차병으로 13주간 교육을 마치고 베티고지 전투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한다. 전적을 기념하기 위해 2004년에 이곳에 기념비를 세웠다.
오후 3시에 우리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전망대를 떠난다. 예정보다 30분 늦게 오늘의 마지막 방문지인 연천 허브마을에 도착하였다. 1시간 예정으로 허브 빌리지를 구경한다.
자연과 문화가 경계 없이 서로 어우러져 있어 아름다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란다. 연천군 왕징면 북삼리 222번지 임진강변에 대지 17000평에 허브 농장과 음악공연장 팬숀 등 다양한 휴식 공간을 만들어 놓은 종합 레져 타운이다. 지중해 휴양지를 연상시킨다. 입장료가 대인은 하절기에 7000원이며 단체와 소인은 4000원이다. 9시에 문을 열고 오후9시에 문을 닫는다. 허브체험관, 허브역사관, 주상절리, 들꽃동산, 야외음악공연장, 허브 족욕장, 식당 과 펜숀 등 다양한 공간을 구성해 놓고 있다. 허브 농장에 가득 핀 보랏빛 허브 향에 모처럼 취해 본다. 동기생들과 커피 팩토리에 들렀다. 4500원하는 원두커피를 마셔 본다. 마침 이규종 선배님도 이곳에 계시다. 이 허브 빌리지가 전두환 전 대통령 자녀분이 주인이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지금은 경영권이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 선배님께서 10여 년 전에 이곳에 들렀을 때는 입구도로에 관광버스가 줄서 있었다고 한다. 오늘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허브 빌리지도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는 것 같다.
4시30분에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치고 서울로 떠난다. 오늘 하루 우리는 많은 구경을 했다. 옛날 추억도 더듬어 보고 안타까운 오늘의 현실을 가슴으로 아파도 해 보았다. 그러면서 우리 후손들에게는 더 이상 아픈 역사를 넘겨주지 말자는 다짐도 해 본다.
오늘 일정을 준비한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28사단 모든 장병들의 건강과 무훈을 빈다.
2017년 10월 20일
의정 22기 유병태 가 쓰다.
|
첫댓글 자세한 28사단 부대 방문기 잘 모았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총동우회의 연간계획중의 하나인 28사단 의무근무대 방문 및 전적지 답사 (자유수호평화박물관, 태풍전망대와 허브빌리지까지)를 아주 상세하게 잘 써주신데 대해 마음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많은회원이 동참하지 못해 아쉬움이 많았는데 여러가지사정상 동참치 못한 분들께도 상세히 소개하게 됨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재삼 감사드립니다.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