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이야기 1
[스포일러 주의]
소설 레미제라블의 줄거리가 드러나 있습니다.
레미제라블을 읽을 계획이 있는 분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글을 일고 레미제라블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신다면, 저의 소망이 이뤄진 거라 생각합니다.
[스크롤 압박 주의]
장황해서 죄송합니다. 원래 좀 모자란 수다쟁이라서 그렇습니다. 이해 바랍니다.
#1
레미제라블.
비참한 사람들이지요. 왜, 누가 비참한 사람들일까요.
일차적으로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밑바닥’ 또는 ‘바닥 밑 지하층’ 사람들의 비참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비참함은 소설 속에서 배경에 머무릅니다. 잠깐 동안 빅토르 위고가 밑바닥 삶을 이야기하는데, 그의 만연체 이야기 스타일에 비추어 보면 정말 잠깐 이야기한 것에 불과합니다.
[1권에서 장황하게 미리엘 주교 이야기를 하고, 2권에서는 시작부터 워털루 전투를 매우 길게 이야기하지요. 그뿐 아닙니다. 곳곳에서 이야기와 상관없는? 설명이 매우 장황하게 이어집니다. 그것 때문에 레미제라블이 거대한 분량을 가지게 되었고, 읽는 데 지루함을 느껴 완독을 포기하게 만든다 생각합니다].
어쩌면 주된 등장인물들 하나하나가 모두 비참한, 가엾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두가 가엾은 사람입니다.
장발장이 테나르디에와 파트롱 미네트(파리 범죄조직)에게 강도를 당할 때에도 ‘가엾은 사람아’라고 외치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가엾은 존재’라고 외치고 싶은 빅토르 위고의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가엾은 사람이고, 누가 누구를 판단할 자격이나 내가 옳고 너는 그르다 말할 자격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2
주요 등장인물 중에서 ‘가엾은 마리우스’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마리우스. 그는 누구인가.
저는 왜 마리우스가 불쌍하다 생각할까요.
영화를 보신 분들은 코제트와 함께 A heart full of love를 부르던 사랑에 빠진 도련님, 또는 ABC 카페 동료들과 Red and Black을 부르며 혁명을 고민하는 젊은이를 연상하시겠지요.
하지만, 제가 마리우스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결정적인 장면은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 생각한 가엾은 마리우스가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는 장면입니다.
마리우스는 어머니를 여의고, 부르주아인 외할아버지 질노르망 영감에 의해서 키워집니다(마리우스는 살롱에서 하는 왕당파 모임에 할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자연스럽게 왕당파의 생각에 물들지요.). 마리우스의 아버지는 어디에 있을까요.
마리우스의 아버지 퐁메르시 대령은 나폴레옹을 따라 워털루 전투에 참전했다가 가까스로(테나르디에의 의도치 않은 도움으로?) 목숨을 건지고 돌아오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왕정이 복구된 프랑스에서 나폴레옹 군대의 장교인 그에게는 군인 연금도 지급되지 않았지요.
왕당파인 할아버지 질노르망 영감은 보나파르트파인 퐁메르시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퐁메르시에게 아들 마리우스를 볼 생각을 말라고, 만약 아들을 만나려고 한다면, 마리우스에게 재산을 한 푼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퐁메르시는 마리우스를 위해 애끓는 부정을 억누르고 조용히 살아갑니다.
어느 날 질노르망 영감은 마리우스의 아버지 퐁메르시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습니다. 그는 마리우스에게 아버지의 임종과 장례를 지키라고 말하고, 마리우스는 아버지에게 향하지만, 아버지의 임종 앞에서 아무런 감정적 동요도 느끼지 못합니다. 마리우스는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아버지는 이미 마리우스와는 관계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무엇이 그렇게 만든 것일까요).
아버지의 장례를 마친 후 파리로 돌아온 마리우스는 어느 날 교회에 갑니다. 교회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마뵈프 영감(바리케이트에서 순교하는 사람으로 소설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이 마리우스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말합니다. 이유를 묻는 마리우스에게, 그는 그 자리에는 ‘특별한 은혜’가 있다 말합니다. 아들을 사랑하지만,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들에게 나타날 수 없는 아비가, 기둥 뒤에 숨어서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바라보는 장면을 목격한 그 자리에서 그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었을 겁니다(정말 이 장면에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어쩌면 일부러 마리우스에게 그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리우스는 눈물짓던 아비가 바로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깨닫고 아버지의 사랑을 뒤늦게 느끼기 위해, 자신의 오해를 사죄하기 위해 매일 주말 아버지의 무덤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는 할아버지와 안락한 도련님 생활, 왕당파의 생각과 생활을 모두 버립니다.
마리우스는 할아버지 질노르망 영감 때문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어찌보면 왕당파인 할아버지의 정치적 신념 때문에 아버지를 잃은 것입니다. 만약 아버지가 왕당파였다면, 그는 아버지를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교회에서 마뵈프 영감과 만나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되고, 아버지를 다시 찾게 됩니다. 정치적 이념이란 것이 아버지와 아들을 갈라놓았지만, 결국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관계를 회복시킨 것입니다.[대단히 종교적이지만(레미제라블은 매우 종교적입니다), 프랑스 사회의 종교적 문화 속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할아버지와 단절하게 됩니다. 하나(아버지)를 얻었으나, 다른 하나(가족인 할아버지와 이모)를 잃게 되지요. 여전히 할아버지를 미워하고, 할아버지의 정치적 이념을 증오합니다.
#3
마리우스는 할아버지 집을 나와 고르보 누옥(예전에 장발장이 코제트와 거주했던 곳이고, 테나르디에 가족이 옆 방에 거주한다)에서 생활합니다.
집을 나온 초기 ABC카페 멤버들과 교류가 있었지만, 마리우스는 그들의 혁명이나 사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영화 속 모습과 달리, 마리우스는 혁명가가 아닙니다(어떤 이의 좌절된 기대처럼, 빅토르 위고는 혁명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날 마리우스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코제트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녀가 누구인지, 어디에 사는지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에포닌이 그에게 도움을 줍니다. 에포닌의 도움으로 그는 코제트가 사는 곳을 알게 되고 코제트와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지요.
영화를 보신 분들도 다 아시겠지만, 마리우스는 코제트와 이별합니다.
바로 에포닌의 질투 때문입니다[그렇다고 그녀를 미워하진 마세요. 에포닌이야말로 참으로 가엾은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그녀는 마리우스 대신 총에 맞아 죽잖아요].
장발장은 코제트와 함께 산책할 때마다 가까이서 지켜보던 마리우스를 형사 끄나풀로 오해하고,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었을까 걱정하며 불안해 합니다. 그런 그에게 에포닌은 ‘떠나라’는 익명의 쪽지를 남기고, 장발장은 거처를 옮기기로 결심합니다.
장발장의 손에 이끌려 다시 도망자의 길을 가게 된 코제트는 마리우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에포닌에게 남기지만, 에포닌은 마리우스에게 전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에포닌은 절망하는 마리우스에게 바리케이트에 있는 친구들이 기다린다는 이야기를 하고, 마리우스는 절망에 빠져 죽기 위해 바리케이트로 갑니다. 마치 모든 희망을 잃은 마뵈프 영감(당시 민중을 대변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이 절망 가운데 바리케이트를 무덤삼아 죽는 것처럼.
[실사 영화(1998년, 니암 리슨 주연)에서도, 뮤지컬에서도 마리우스를 혁명과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으로 그리지만, 그것은 분량의 압박으로 이야기를 축약해야 하는 상황에서 바리케이트에 있던 마리우스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원작을 개조한 것이라 이해합니다.]
할아버지(또는 그의 정치적 이념) 때문에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었던 마리우스가 이번에는 에포닌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사랑하는 코제트를 잃습니다. 참으로 기구하지요.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장발장의 헌신으로 코제트를 다시 찾게 됩니다. 장발장이 어떤 과정으로 바리케이트에 가고, 바리케이트로 갈 것인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는 원작에서 자세히 이야기합니다만, 코제트의 행복을 위한 장발장의 헌신과 사랑이 바로 코제트와 마리우스를 다시 만나게 한 힘이었습니다.
#4
마리우스는 장발장의 사랑과 헌신으로 가족과 재회하고(이 즈음에는 할아버지 질노르망 영감과도 화해하지요), 코제트의 사랑을 되찾습니다. 그런데 마리우스는 코제트와 결혼한 후 코제트와 장발장을 이별하게 만듭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일까요. 코제트와 장발장을 갈라놓다니.
결혼 이후 장발장은 매일 마리우스의 집을 찾아와 코제트와 시간을 보냅니다.
마리우스는 어느 날 은행 강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장발장을 의심합니다.
장발장은 특별한 일도 없는데 매우 부유하고, 결혼 후에도 아주 큰 돈을 지참금으로 내어 놓았으니까요. 그의 돈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의심합니다.
마리우스는 도덕적 결벽증으로 장발장이 내어놓은 돈에 손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량한 장발장을 순수한 코제트에게서 떨어뜨리기로 작정합니다.
마리우스는 자신의 도덕성에 흠이 되지 않는 방법으로 계획을 실행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그냥 비겁할 뿐입니다.
마리우스는 장발장과 코제트가 만나는 장소를 응접실에서 지하 빈방으로 옮기고, 지하 빈방에 있던 벽난로의 불을 끄고, 안락의자를 치우는 방법으로 장발장에게 집에 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마리우스의 뜻을 이해한 장발장은 코제트와 거짓 작별을 고하고 더 이상 찾지 않습니다.
코제트를 잃은 장발장은 마리우스를 원망하지 않은 채 조용히 물러나 식음을 전폐하고 죽어가지요(소설에서 장발장은 순전히 코제트와의 이별을 견디지 못해 일종의 상사병으로 죽습니다).
장발장은 마지막 유언이나 다름 없는 편지를 쓰면서 자신이 마리우스에게 준 지참금이 정당하게 사업을 통해 번 돈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고 제발 그 돈을 코제트를 위해 써달라고 애원합니다(원작에서는 뮤지컬과 달리 코제트를 사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은 게 아닙니다. 뮤지컬이 좀 더 낭만적이기는 하지만요.).
장발장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마리우스입니다. 마리우스의 옮음에 대한 욕구, 도덕적 결벽성이 장발장을 죽인 것입니다. 빅토르 위고는 아마도 ‘우리의 도덕적 판단이 때로 얼마나 잔인한가’라고 말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우스의 가엾음은 여기에 있습니다.
마리우스는 다른 이가 가진 이념과 신념, 질투와 욕심에 의해 소중한 사람을 모두 잃었다가, 누군가의 사랑과 도움으로 그들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런데 마리우스는 장발장에게서 인생의 전부인 코제트를 빼앗아 버렸습니다. 장발장의 생명을 빼앗았습니다.
마리우스는 옳음에 대한 욕구 또는 옳고 그름에 대한 자신의 판단으로 누군가를 절망으로, 죽음으로 밀어넣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말이죠.
여기서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가엾은 마리우스를 용서하는 장발장입니다. 장발장의 용서는 마리우스가 살아갈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입니다. 마리우스가 옳음에 대한 욕망 또는 도덕적 결벽성을 가진 캐릭터라면, 장발장을 죽게 했다는 자책으로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없을테니까요. 코제트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마리우스가 장발장에게 사과하는 장면은 깊은 절망과 슬픔, 죄책감이 배어있는 매우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나 뮤지컬에서는 단순히 자신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을 몰라봐서 미안하다는 투이지만, 아마도 분량의 압박으로 장발장과 코제트의 이별 과정을 모두 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해합니다.]
#5
이렇듯 마리우스는 가엾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마리우스와 같이 가엾은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도 상실의 슬픔과 아픔으로 채워지지만, 마뵈프 영감이나 장발장과 같은 타인의 사랑과 도움, 신의 은혜와 용서로 상처를 치유받고 기쁨과 희망을 회복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사랑을 잊은 채 나의 도덕적 잣대로 누군가에게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와 상실의 슬픔을 안겨주지요. 가엾은 마리우스처럼.
[쓰고보니, 성경에 나오는 주인에게 큰 빚을 탕감받은 이가 자신에게 작은 빚진 자의 멱살을 잡고 재판정으로 끌고가는 이야기와 비슷하군요].
하지만, 희망이 있지요. 진정한 사과와 참회, 그리고 용서라는 희망이......
덧붙임.
레미제라블 실사 영화(1998년, 니암리슨 주연, 개인적으로는 원작을 많이 '훼손'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레미제라블 뮤지컬 10주년, 25주년 공연 실황 DVD(개인적으로 10주년 판의 장발장-콤 윌킨슨, 자베르-필립 퀘스트, 25주년판 에포닌-사만다 바크스가 좋았습니다),
뮤지컬 영화(2012, 휴잭맨, 러셀 크로우 주연, 에포닌은 25주년과 같은 배우입니다)를 보시며
무더운 여름을 나시면 어떨까요.....^^
첫댓글 스크롤 압박 받았어요...그래서 천천히 다시 읽겠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케릭터와 역할 분담이 너무나 정교하게 설정되어서 이런 소화제가 항상 도움이 되네요~
전 뮤지컬과 영화에서 귀에 익은 멜로디가 너무 좋습니다. 특히 자베르 (경위? 경감?)의 노래 <Stars! > 너무 좋아합니다.
가사 마지막 소절...너무너무 좋습니다.
한글 자막도 조금 어색해서 이렇게 살짝 손봤네요
감사합니다. 저도 stars...자주 들어요. 특히 10주년 공연 필립 퀘스트.. 정말 압권입니다. 가사도 자베르적 세계관을 명확히 보여 주고요....선악. 명암.의 구조. 심판의 하느님...
역시 우리의 주인공 장발장의 압도적인 이미지...look down 합창과 함께 시작하는 스크린을 빅토르 위고가 자리에서 직접 봤다면 벌떡 일어났겠죠? ^^
지난 가을에 직접 그렵봤습니다~
숨은 숫자 (죄수번호) 찾아주세요^^
우와... 대박입니다...정말 멋지시네요. 전 성악 레슨 시작했습니다. stars. bring him home....불러보고 싶어서요....^^
@찬솔 성악?
와~~ 넘 멋지십니다!!
이 그림과 어울리는 시는 바로...
[ 이 또한 지나가리 This too shall pass away.] 같습니다.
이 시는 4연시더군요...전체를 번역해봤었네요^^
Stars....
브로드웨이의 샛별 흑인 스타 <놈 루위스>목소리 최고입니다.
https://youtu.be/m4Ym_uxLly8
PLAY
전 필립 퀘스트를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놈 루이스도 좋지만.. 머랄까. 자베르는 수도승 같은 금욕주의자인데.. 퀘스트가 잘 살렸다고 생각합니다. 머 러셀 크로우는 노래 전문이 아니니까... 생략이고요....
@찬솔 네~
암튼 뮤지컬 영화는 음악이 중심이라 몇번을 봐도 질리지 않고 정말 재미있기만 합니다
이 젊은 친구들도 맛깔나게 부르죠?
https://youtu.be/ob5UJS2WwQ8
PLAY
참 잘하네요. 그런데 너무 이쁘게 부르네요. 이 노래는 자베르의 캐릭터를 보려줘야 하는데..... 선(자신).악(장발장)의 분명한 구분과 신념. 권위에 대한 절대 순종과 구원의 확신. 악에 대한 경멸과 혐오. 이항대힙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는 노래인데.... 저는 아쉽네요.... ㅎㅎ
@찬솔 ^^ 취향은 조금씩 다르군요~
노가다, 일식집 서빙, 병원일 등등 평범한 젊은 친구들이지만 짧은 시간에 호흡을 맞춰 무대에 올랐죠..탁월한 화음과 순수한 우정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느낌...전 좋아요^^
장발장 영화도 좋더라고요 ㅠ 뮤지컬 ㅠ 감동 ㅠ 장발장이 멋지고 딸이 사랑스럽다능~
네. 저도 너무 좋았습니다. 다음엔 자베를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찬솔 자베르 경위 얘기 기대만땅~~
@난독중 기대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