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이삭의 믿음 // 본문 : 히브리서 11 : 20 // 24년 6월 19일 // 찬송
성경의 주제는 믿음으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라들은 믿음으로 꽃단장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꽃단장한 사람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꽃단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사랑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이삭도 믿음으로 꽃단장을 했습니다.
생명을 넘겨주는 언약의 후손을 이어가는 전수이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릴 때 이삭은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삭은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갈 만큼 성장했고 힘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릴 때 도망갈 수 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릴 때 도망갈 수도 있었고 아브라함을 힘으로 제압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믿음으로 순종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습니다.
이삭, 위대한 아버지 그늘묵상에 강한 사람이 이삭입니다. 그는 상당히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어서 진취적인 족장감으로는 어울리지 않습니다에 가려져있습니다.
이삭은 40세의 늦은 나이에 리브가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60세의 늦은 나이에 야곱과 에서 쌍둥이를 낳았습니다.이삭은 우물을 팔 때마다 물이 나왔습니다. 또 농사를 지으면 100배나 축복을 받았습니다.아브라함은 175세를 살았고, 이삭은 180세를 살았고, 야곱은 147세를 살았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중에서 이삭이 가장 오래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삭에 대한 성경의 기록이 아브라함과 야곱보다 훨씬 적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삭은 인생이 굴곡지지 않고 평탄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이삭의 인생을 한마디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보면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유산, 장자권, 대기업경영권... 두아들이 있으면 누가 상속권을 이어가야되는가가 큰 이슈거리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의문점이 생깁니다. 이삭이 야곱과 에서를 축복할 때 이삭이 야곱에게 속아서 실수로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7장에 보면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이삭이 맏아들 에서를 불러서 “내가 이제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니 너는 나가서 사냥하여 별미를 만들어 오라 내가 먹고 너를 마음껏 축복하리라”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에서가 사냥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때 어머니 리브가가 그 말을 듣고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려고 하니까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 그리고 어머니 리브가가 좋은 암소새끼 두 마리를 잡아서 별미를 만들고 염소새끼 가죽으로 야곱의 손과 목에 입혀서 이삭에게 들여보냈습니다. 이삭이 처음에는 의심을 하는데 야곱이 자신이 에서라고 말을 하니까 야곱이 에서인 줄 알고 장자의 축복을 했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하고 이삭이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했습니다. 나중에 에서가 이 사실을 알고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에서를 피하여 하란에 있는 외삼촌 라반에게로 도망을 갔습니다.
이삭이 야곱과 에서를 축복할 때 분명히 이삭이 야곱에게 속아서 실수로 이삭이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 해답은 창세기 27장 33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7장 33절 말씀에 보면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라고 했습니다. 왜 이삭이 심히 크게 떨었을까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놀랍고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라는 말의 ‘하라드’는 ‘떨다, 두려워하다, 놀라다’라는 뜻인데 단순히 야곱에게 속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무엇인지 확인하였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발견하면 죄인은 두려워 떨 수밖에 없다.
사실 이삭은 에서를 더 사랑했습니다. 에서는 남성답고 사냥을 좋아하고 털도 많고 성격도 털털했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여성스럽고 털도 없고 어머니와 함께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같은 뱃속에서 쌍둥이로 나왔는데도 외모와 성격 신앙까지도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에서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복중에서부터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25장 21절에서 23절 말씀에 보면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가 임신하였더니 /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고 했습니다. 야곱과 에서가 복중에서부터 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큰자가 작은자를 섬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중에서부터 야곱을 선택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이삭은 그의 아들들이 출생할 때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에게 행하시고자 하는 뜻을 정하셨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이 이삭에게 두 아들을 주실 때 정해 놓으셨던 뜻을 일생 동안 간직하고 그대로 행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는 인간적인 사랑에 휩쓸리어, 또한 세상의 관계에 따라 장자인 에서를 야곱보다 배나 사랑하고 귀하게 여겼으며 또한 그에게 특혜를 주었던 것이다
창조 언약은 노아에게, 아브라함에게 그리고 이삭에게 계속 이어져 다른 모습으로 그 의미를 다양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이삭의 축복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도 야곱이 에서의 축복을 가로챘고 에서가 뒤늦게 와서 아버지에게 다시 축복해 주길르 바랬을 때 왜 야곱에게 축복한 것을 취소하고 다시 에서에게 하면 안 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에서를 보면은 장자권을 팥죽 한그릇에 장난치듯 넘겨주고, 아버지 이삭에게 야곱에게 복을 빌어주고 남은 것이라도 있으면 저에게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에 축복이 그렇게 값없이 이사람 저사람에게 주는 것인가요. 성경에 내용은 뒤집을 수 없습니다.
에서가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저에게 주실 복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않으셨습니까?”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가 너를 다스리도록 했고, 그의 모든 친척을 그에게 종으로 주었고, 곡식과 새 포도주가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그러니, 나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겠느냐?” 에서가 그의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비실수 있는 복이 어디 그 하나뿐입니까? 저에게도 복을 빌어 주십시오, 아버지” 이 말을 하면서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모든 하나님 백성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 그들은 모두 가문을 이끌 자녀와 관련한 고민을 가졌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오랜 시간 동안 지연되며 가문을 이끌 장자가 없었던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삭은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과는 다른 고민이 있었습니다 쌍둥이 자녀를 놓고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삭의 실수 : 실수가 아니라 완벽한 시나리오입니다. 이삭은 에서였지만 하나님은 야곱이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일을 망각하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일대로 이루어 가심을 보고 심히 크게 떨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야곱에게 속아서 실수로 야곱에게 장자의 복을 했지만 그 일을 변경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하고 에서에게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의 실수를 통해서도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일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김종순목사 어머니는 6.25전쟁때 북한에서 빈손으로 내려와서 부천에서 쌀장사를 하면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어느날 그의 어머니가 새벽 예배때 하나님께 300원의 헌금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당장 돈이 없어서 헌금봉투에 300원의 헌금을 작정한다고 써냈습니다. 그 당시 300원은 상당히 큰 돈이었습니다. 배우지 못해서 겨우 이름과 숫자정도 쓰시는 어머니가 헌금봉투에 300원의 헌금을 작정한다고 쓰는데 그날따라 동그라미가 잘 그려져서 동그라미를 일곱 개나 그렸습니다. 실수로 동그라미를 일곱 개나 그려서 3,000만원을 헌금한다고 작정을 한 것입니다.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다시 쓰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강단에 올려드리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동그라미는 내가 쳤어도 책임은 하나님이 지시옵소서”하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결국 그의 어머니는 작정한대로 3,000만원의 헌금을 드리게 되었고 자녀들이 큰 축복을 받았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실수로 야곱을 축복했는데 하나님은 이삭의 실수를 통해서 하나님이 작정한 일을 이루셨습니다. 사람이 실수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실패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실수와 실패를 통해서 하나님이 작정하신 일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서 때로는 실수와 실패를 한다고 할지라도 실수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작정해 놓으신 일대로 이루어지는 복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포항교회 생선가게집사 교회부지: 지금의 제철소자리: 바닷물이 잠김- 계약= 45억이 되게하다 ]
그렇다면 이삭은 에서를 선택했는데 하나님은 왜 야곱을 선택하셨을까요? 이삭은 인간적 또 외모적인 면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적 또 내면적인면을 보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믿음을 보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이삭의 믿음을 계승할 자가 누구인가? 또 믿음을 후손에게 계속 계승할 자가 누구인가를 보셨습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관점에서 보실 때 야곱이 에서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에서는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축복권을 팔았습니다.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리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야곱을 보세요. 왜 야곱이 복중에서 에서와 다투고 복중에서 나올때도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습니까? 왜 야곱이 에서에게 팥죽을 주고 장자의 축복권을 샀습니까? 왜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여가면서 까지 축복기도를 받았습니까? 믿음입니다. 야곱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자 하는 야곱의 믿음입니다.하나님은 야곱의 믿음을 보시고 야곱을 선택하시고 야곱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창 25:34)라고 한 것을 신약에서는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히 12:16)라고 하였다.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는 것을 망령된 것이다. 에서는 장자권, 즉 하나님의 언약의 후손을 잇는 복을 음행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이것이 에서의 우상숭배이다.
창세기 32장에 보면 야곱이 거부가 되어 벧엘로 돌아옵니다.
그때 에서가 야곱을 헤치려고 군사 400명을 거느리고 왔습니다. 군사 400명을 거느리고 왔다는 것은 에서도 거부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창세기 36장에 보면 에서의 후손들이 나옵니다. 에서의 후손들 중에 족장도 많습니다. 즉 에서와 에서의 후손들도 재물과 권세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에서와 에서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섬겼다는 말씀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축복권을 팔아먹었듯이 그 후손들도 하나님 섬기는 믿음을 다 팔아먹어 버린 것입니다.
반면에 야곱과 그 후손들은 12지파를 이루어 하나님을 섬기는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받는 나라와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흉년때의 믿음: 나오미는 이스라엘을 떠나서 모압땅으로 갑니다.
이삭은 흉년의 때에 가나안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농사가 잘되고 가축이 크게 불어납니다. 그러자 이것을 시기한 블레셋 사람들이 모든 재산의 근원이 되는 우물을 막아 버립니다. 그리고 이삭에게 그곳을 떠나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삭은 할 수 없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라는 곳에 장막을 쳤고, 거기에서 다시 우물을 팝니다. 그런데 또 거기에서도 그랄 사람들과 충돌이 생겨 브엘세바로 옮깁니다.“이삭이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이것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보여주었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갈대아 우르와 하란을 떠나는 결단을 통해 가나안에 도착했을 때 정착하여 사는 곳마다 장막을 치고 하나님께 단을 쌓았습니다.(창12:8) 그리고 그 단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것을 그대로 아들 이삭이 이어갑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하나님중심, 예배중심, 경건 중심으로 살겠다는 다짐인 것입니다.
축복의 능력을 아는 믿음입니다. 27장 4절에 이삭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로 죽기 전에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이삭의 다른 기록에서도 성경은 그가 축복하는 자임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이삭의 마음과 삶의 중심에 있던 모습입니다. 그는 축복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이었고, 그는 축복의 능력이 있음을 믿은 사람입니다. 그는 그가 말한 대로, 그가 비는 대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 그의 믿음을 성경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분명 이삭의 기록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가 자녀에게 축복한 것을 중요한 사건으로 강조합니다. 그것이 또한 믿음으로 한 행동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삭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능력에 대하여 민수기 6장 22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 찌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민6:22-27)
우리는 축복의 능력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에 축복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입을 열어 다른 사람을 위하여 복을 빌면, 그 복이 그에게 그대로 임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반대로 우리가 입을 열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저주를 하면, 그 저주가 그대로 그에게 임하는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에 축복과 저주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입을 열어 축복의 말, 좋은 말, 격려의 말, 힘을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말을 받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지 모릅니다.
인도는 땅도 넓고 인구도 13억6천6백여만명이 되는 큰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인도는 가난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인도의 서남쪽 해안지방에 있는 케랄라주는 지상천국과 같다고 합니다. 다른 주에 비해서 교육수준과 경제수준이 비교도 안될만큼 높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케랄라주는 예수님의 12제자중 하나인 도마가 복음을 전하고 또 도마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곳입니다. 그래서 케랄라주는 기독교신자가 20%나 된다고 합니다. 힌두교국가에서 기독교신자가 20%라는 것은 대단한 복음화율입니다. 도마가 복음을 전한 후에 2,00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 믿음을 계승받아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은 케릴라주를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선택하시고 축복해 주신 것은 야곱은 믿음을 계승받고 믿음을 계승시켜 나갈 자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믿음을 잘 계승 받을 자입니까?
믿음을 잘 지킬 자입니까? 믿음을 잘 계승시켜 나갈 자입니까?
아니면 에서처럼 필요하면 언제든지 믿음을 팔아버릴 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