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물빛 동해안의 하얀 파도를 감상하며 삼키는 한 모금의 커피, 그 맛을 그리워한다면 당장 강릉 경포해변으로 달려가야 한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어 이슬람 문화권으로, 다시 유럽으로 전파된 커피는 이제는 전세계에서 널리 사랑받는 음료로 자리잡았다. 커피기행을 제대로 하기 위해 강릉시의 커피박물관 ‘커피커퍼’를 찾아가본다.
1. 역사를 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커피
커피는 6~7세기 경 에티오피아의 한 목동에 의해 발견됐다. 빨간 커피열매를 먹고 흥분하는 양들을 목격한 목동이 그것을 따먹자 피곤도 가시고 정신까지 맑아지는 경험으로 커피의 역사가 시작됐다.
커피는 술을 마시지 않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제일 처음 음료로 등장했다. 이슬람교 수도자들이 명상과 수도를 하는데 커피의 도움이 컸기 때문이다. 아랍권 전역을 지배했던 오스만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은 커피제국의 심장부가 되기에 이르렀다.
커피가 제일 처음 유럽으로 전파된 것은 베니스의 무역상을 통해서라고 한다. 1645년에 베니스에 처음으로 커피하우스가 오픈된 이후 커피는 유럽 전역에 전파됐다. 이교도인 아랍인들이 즐겨 마셔서 ‘악마의 음료’라 불리던 커피는 유럽인들의 문화 속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고 이제는 전 세계인의 음료가 됐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음 커피를 마신 사람은 고종이었다. 아관파천 이후 덕수궁에 머물던 고종은 덕수궁내의 정관헌에서 커피를 즐겨 마셨다. 이때 커피는 ‘양탕국’이라 불렸다. 고종이 즐겨 마시던 커피는 이후 손탁호텔에서도 맛볼 수 있었다. 그 후 하나둘 다방들이 생겨나면서 예술인들이 다방커피를 마시며 담론을 즐기는 문화까지 시작됐다.
[왼쪽/오른쪽] 경포대해변과 커피 / 어느 카페 안에서의 커피
2. 우리나라 최대의 커피박물관과 커피농장
강릉시 왕산명 산중에 들어선 커피농장 커피커퍼(Cofee Cupper)는 국산 커피 생산을 위해 커피나무 재배에 힘써 왔다. 결국 국산 커피열매로 커피를 추출하는데도 성공했다. 커피농장 온실에는 26년간 공들여 키운 최초의 국산 커피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주렁주렁 열린 커피열매를 보면 국산커피시대로 한걸음씩 다가섬을 실감하게 된다.
커피박물관 외관
우리나라 최대의 커피박물관 전시물은 다양하고 방대하다. 커피의 역사에서부터 터키쉬 커피추출법, 이태리식 에스프레소 만들기까지 커피에 관한 모든 것을 공부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다양한 로스팅기구와 커피메이커의 변천사를 둘러보는 재미까지 쏠쏠하다.
[왼쪽/오른쪽] 커피박물관 야외카페 / 커피박물관 실내
[왼쪽/오른쪽] 커피나무가 자라는 커피박물관 온실 / 커피박물관 기념품샵
3. 가장 맛있는 커피는 어디에서 생산될까?
커피가 최초로 발견된 곳은 에티오피아였지만 예맨을 침략한 에티오피아인들이 예맨의 고산지대에서 커피를 재배하면서 예맨의 모카항이 커피를 실어나르던 항구로 유명했다. 그곳의 이름을 딴 ‘모카커피’는 일약 유명 커피 브랜드가 됐다.
커피 재배는 적도를 중심으로 남위 25도와 북위 25도 사이의 열대와 아열대 기후지역에서 잘 자란다. 커피가 재배되는 지역에 따라 맛과 풍미가 다르지만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과 하와이안 코나가 최고급 프리미엄 커피로 대접받는다. 이밖에도 안데스 산맥 고산지대의 콜롬비아커피와 에티오피아의 아라비아커피가 고급 품종으로 여겨진다.
이제는 왕산골 계곡에서 재배된 ‘코리안 스타일’의 커피가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키는 날을기대해도 될 것 같다.
4. 로스팅과 바리스타 체험으로 나만의 커피를
커피 생두는 그저 씨앗에 불과해 아무런 맛을 내지 않는다. 생두에 열을 가해 볶게 되면 생두의 조직이 파괴되고 그 속에 함유되었던 지방, 유기산, 당분, 카페인 등의 성분들이 각기 제 맛과 향을 낸다. 이 생두를 볶는 과정이 로스팅이다. 생두를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천양지차다.
커피박물관의 로스팅 체험은 언제나 들뜬 분위기다. 프라이팬에서 생두를 공들여 볶은 후 식히는 과정이 신기하고 재미나기 때문이다. 직접 로스팅 한 원두를 담아서 가방에 넣을 때는 나만의 커피 맛을 기대하며 마음까지 뿌듯해진다.
[위/아래 왼쪽/아래 오른쪽] 로스팅 체험 / 로스팅 체험 / 로스팅을 마친 커피
5. 커피가 강릉으로 간 까닭은?
강릉에서는 매년 10월 커피축제가 열린다. 뜬금없이 왜 강릉이 커피의 도시가 됐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지만 그 배경을 살펴보면 결코 뜬금없지 않다. 강릉은 원래 물맛 좋고 경치 좋기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커피의 명인들이 하나둘 강릉지역으로 파고 들었다. ‘테라로사’와 ‘보헤미안’ 같은 유명 커피하우스가 좋은 예이다. 커피 애호가들은 저마다 강릉으로 커피 순례를 나섰다. 강릉커피축제의 근간은 뭐니뭐니해도 안목항(현 강릉항) 커피거리다. 지금은 거의 철거됐지만 한때 강릉항(과거의 안목항) 주변으로 커피자판기가 줄지어 있는 진풍경이 펼쳐졌었다. 강릉커피축제는 향토문화축제와 더불어 강릉의 이색문화제로 당당히 자리잡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