冶父 是是여 水不離波波是水라 鏡水塵風不到時에 應現無瑕照天地니 看看하라
說宜 指水全是波요 指波全是水라 毘盧華藏이 物物頭頭요 萬像森羅가 全機無垢로다 機無垢여 本淸淨하니 鏡淨水澄하야 風塵이 不到라 湛湛地에 明歷歷하야 輝天鑑地하고 曜古騰今이로다 要會麽아 要會인댄 高着眼이어다
야부 是여 是여, 물은 물결을 떠나지 않으니 물결이 바로 이 물이로다. 거울 같은 물에 塵風이 이르지 않아야 應해서 나타나매 티없이 天地를 비추니 자세히 보고 보아라. 설의 물전체가 이 물결임을 가리키고 물결 전체가 이 물임을 가리켰도다. 비로자나와 화장세계가 사물 하나하나에 다 갖추어져 있고 삼라만상 전부가 때(垢)가 없도다.
삼라만상에 때가 없음이여. 본래 청정하여 거울도 맑고 물도 맑아서 풍진이 이르지 않음이라. 맑고 맑은 곳에 밝고 역력해서 하늘을 빛내고 땅을 비춰서 옛에도 빛났고 지금도 빛나도다.
알기를 요하는가. 알고자 하면 눈을 높이 뜰지어다(高着眼).
冶父 我여
說宜 指天指地獨立底人이로다
야부 我여 설의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가리키며 홀로 서있는 사람이다.
冶父 赤裸裸淨洒洒하야 沒可把로다
說宜 古人이 道하사대 阿呵呵是甚麽오 南北東西에 唯是我라하시니 雖云南北東西에 唯是我나 爭乃一切處에 摸索不着이리오 是可謂境上施爲渾大有나 內外中間覓摠無로다
야부 적나라(赤裸裸)하고 정쇄쇄(淨洒洒)하여 가히 잡을 수 없다. 설의 고인이 말하되 하하하! 이무엇인가. 남북동서에 오직 이 '나'라 하시니, 비록 이것은 가히 경계 위에서 혼연히 크게 있으나 내외 중간을 찾아봐도 모두 없음이로다.
冶父 我我여 認得分明成兩箇라 不動纖毫合本然하니 知音이 自有松風和로다
說宜 若道我有인댄 眼中着屑이요 若道我無인댄 肉上剜瘡이니라 所以로 道호대 有我直應還未達이요 若言無我更愚癡라하니 一體上에 兩般見이여 析虛空作兩片이로다
兩頭俱不涉하야사 方得契如如니 踏得家田地하야 唱出無生曲이로다 無生曲子를 孰能和오 蕭蕭松籟送淸音이로다
야부 我여, 我여. 인식하면 분명히 두 개(주관·객관)를 이룸이라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본연에 합하니 知音者가 있어 저절로 솔바람에 화답하도다.
설의 만일 내가 있다고 말한다면 눈 속에 티가 있음이요 만일 내가 없다하면 긁어서 부스럼을 만듦이라. 그러므로 말하길 내가 있다 하면 도리어 통달하지 못하고 만일 내가 없다하면 더욱 우직하리라.
한 몸에 두 가지 견해가 있음이여, 허공을 쪼개서 두 조각을 만듦이로다. 두 가지에 모두 들어가지 말아야 바야흐로 여여한데 계합하여 자기집의 땅(家田地)을 밟고 무생곡을 부르리라.
무생곡에 누가 능히 화답하겠는가. 소슬한 바람소리가 청음을 보냄이로다.
冶父 聞이여 說宜 本是一精明이 分爲六和合이니 合處에 如瞥地하면 見處가 是眞聞이니라
야부 聞이여 설의 본래 한 精明이 나뉘어져 육화합(六境+六根=六識)이 되었으니 합한 곳에서 깨달으면 보는 곳이 듣는 것이니라.
冶父 切忌隨他去이다
說宜 滿耳非音이어니 聞箇甚麽며 廓然無我어늘 聞底는 是甚麽오 了得如是하면 鶯歌與燕語를 從敎鬧浩浩어니와 若未如然인댄 宮商幷角徵가 化我常抽牽하리니 所以로 道호대 切忌隨他去라하시니라
야부 간절히 경계를 따라가지 말지어다.
설의 귀에 가득한 소리가 아니거늘 듣는 것이 무엇이며, 확연히 내가 없거늘 듣는 자는 이 누구인가.
이같이 깨달으면 꾀꼬리 소리와 제비의 지저귐을 시끄러운 대로 맡겨두거니와 만약 그렇지 못하면 궁상각치우(세상의 모든 소리)가 나를 항상 끌어당기리라. 그러므로 말하되 간절히 경계를 따라가지 말지어다.
冶父 聞聞이여 猿蹄嶺上이요 鶴唳林間이라 斷雲風捲하고 水激長湍이로다 最好晩秋霜午夜에 一聲新雁이 覺天寒이로다
說宜 (好는 一作愛라) 鶴唳猿啼聲入耳하니 誰信圓通門大啓오 反聞聞處에 心路斷하면 八音이 盈耳不爲塵하리라 不聞이 曾不礙於聞하니 頭頭爲我話無生이로다 夜靜秋空征鴈響이여 一聲聲送報天寒이로다 且道하라 是聞가 不是聞가 淡薄豈拘聲色外며 虛閑寧墮有無中이리오
야부 聞이여, 聞이여, 원숭이는 고개위에서 울고 학은 숲속에서 우는데 조각 구름은 바람에 걷히고 물은 긴 여울져 흐르도다.
가장 좋은 늦가을의 서리내린 한 밤에 새끼 기러기 한 소리가 하늘이 차가움을 알리도다.
설의 (好는 한 곳에서는 愛로 됨) 학이 울고 원숭이 우는 소리가 귀에 들어오니, 누가 圓通門이크게 열린 것을 믿으리오. 듣는 곳을 돌이켜 다시 듣는 곳에 마음길이 끊어지면, 팔음이 귀에 가득하더라도 번뇌가 되지 않으리라. 듣지 않는 것이 일찍이 듣는 데 걸리지 않으니 낱낱 사물이 나를 위해서 무생을 말하도다
고요한 밤 가을하늘에 날아가는 기러기의 메아리여, 한 소리 울려 하늘이 차가움을 알려오도다. 또 일러라. 이것이 듣는 것인가. 듣지 않는 것인가. 담박한 것이 어찌 聲色 밖에 걸릴 것이며 비어 고요함이 어찌 유무증에 떨어지리오.
冶父 一이여 說宜 天地之根이요 萬化之源이라 千途가 共向於彼하고 萬像이 皆宗於此로다
야부 一이여 설의 천지의 근본이며 온갖 변화의 근원이라. 천 가지 길이 다 저것(一)을 향하고 삼라만상이 이것을 근본하도다.
冶父 相隨來也로다
說宜 三界萬法에 皆從斯起하니 兵隨印轉이요 影逐形生이로다 야부 서로 따라 옴이로다
설의 삼계의 만법이 다 이것으로부터 일어나니 군사들은 印(깃발)을 따라 움직이고 그림자는 형상을 좇아 나타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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