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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간 아들녀석이 병장을 계급장을 달고서 지난 6.27.~7.1까지 4박 5일 휴가를 다녀갔습니다.
부산에 있는 관계로 얼굴도 못 본체 화천 7사단 철책에서 오천만의 불침번근무를 위하여 부대로 다시 돌아 갔습니다.
2009년 아들녀석을 군에 보내놓고, 엄동설한의 날씨에 제법 염려도 하였고.. 처음엔 힘든다고 투덜거리기도 하던 녀석이 제대날짜를 곱고 있으니 세월만 고장도 없이 잘도 흐르네요..
작년초 휘날리는 눈바람을 헤치고 화천으로 아들녀석의 면회를 다녀오고(1박 2일), 개나리 만발할 때 아들녀석 휴가 다녀간 뒤(4박 5일) 소회를 몇자 끄적 거려 둔 것을 발견하고서.... 혹, 원우님께서도 군대간 아드님이 있는지 이심전심의 마음으로 올려봅니다. 일독하셔도 좋고 그러지 아니하여도 좋고 그렇습니다. 우리 원우님들과 공통화제가 아니라서 일정기간이 지나면 본 글은 삭제할 생각하오니 개인사 글을 올렸다고 타박하지 마시기를....
<화천에서 1박 2일>
2010.1.2. 오늘은 아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다. 동녘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하였으나 아직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녘이다. 아내는 며칠간 준비한 아들에 줄 먹거리와 언손을 녹일 손난로, 발을 데워줄 양말 그리고 아들이 사달라고 부탁한 것들을 자동차 드렁크에 실었다. 아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간난 아기때부터 키워준 외손자가 보고 싶으시다는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나는 차를 몰아 외곽고속도로를 지나 작년에 새로 개통한 서울 춘천간 고속도로를 달리고 또 달리고 있다. 눈이 많이 온다. 춘천시내에 들어서자 스노우 체인을 채우지 않은 자동차는 달릴 수 없을 만큼 도로에는 많은 눈이 쌓였다. 부대 앞에서 아들과 10시에 만나기로 하였는데.. 춘천에 도착하니 벌써 9시가 넘었다. 도로변에 승용차를 세워놓고 바퀴에 체인을 감을 까 하다가 미리 예약하여둔 화천의 민박집에 연락하여 화천의 사정을 알아보니 춘천 화천간 국도에는 제설작업이 이루어 졌을 거라는 주인 아주머니의 대답을 듣고서 그냥 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춘천을 지나자 화천가는 국도는 북한강변을 끼고 돌아서 높은 산을 깎아서 닦은 고개들이 많아 화천까지 내차는 엉금엉금 기어서 갔다. 아들은 민통선내에 있는 부대에서 기다리다가 이미 화천읍내까지 나와서 버스 터미날에서 기다린다고 연락이 왔다. 가족들을 만나기 위하여 아들은 며칠전 부터 외출외박을 학수고대하였을 것으로 짐작이 되고 지금도 우리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으리.
거의 열두시가 되어서 드디어 화천에 도착하였다. 북한강의 꽁꽁 얼어버린 강물위에도 화천을 병풍같이 감싸고 있는 북부 강원도의 높은 산자락 들도 온통 흰천으로 덮혀져 있다. 화천공용버스터미날에 도착하니 두달만에 만나보는 아들은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늠름하게 '단결'하면서 우리 내외와 외조부모께 인사를 한다. 잠시 못보았는데 갑자기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목이 메였으나, 반가운 마음에 포옹만을 하였다.
아들은 먹고 싶은 것 부터 이야기를 한다. 짜장면, 탕수육, 소갈비 등등 뭐가 그리 많은지, 입대한지 두달밖에 안되는데 다른 세상에서 살다가 별천지에 온 것 마냥.... 아들은 이미 선임들로 부터 어느 중국집이 맛있게 하는지까지를 알아두었으므로 우리 다섯식구는 우선 중국집으로 갔다. 자장면 곱배기 1, 보통 4, 탕수육을 시켰다. 아들 녀석은 며칠을 굶은 것 마냥 정신없이 먹었다. .....중략....
일주일 전에 예약해둔 화천읍 중리 소재 민박집(수달집)에 도착하여 친절한 주인집 아주머니의 안내를 받아 여장을 풀고,...논산 육군훈련소 훈련으로 단련되고, 화천의 제설작업으로 거칠고 차가워진 아들의 손을 꼭 잡아 보았다. 자장면 먹은 지 얼마안되었는데 아들녀석은 단번에 초코파이를 7개를 먹어치우더니 이젠 목욕을 같이 가잔다. 사춘기 이후로는 나와 목욕탕에 가지않으려 하더니만.... , 목욕시간도 아깝다 하기에 아들의 몸에 붙은 때를 밀고 또 밀어주었다. 논산훈련소의 먼지인지 화천의 먼지인지 때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내가 늙으면 이녀석이 내 몸을 씻겨주겠지 하는 기대감을 잠시해 본다. 다시 아들은 PC방에서 두시간을 보낸후 민박집에서 제 엄마가 정성을 다해 준비하여간 성찬의 식사를 함께 하면서.... 벌써 귀대 시간이 24시간 밖에 안남았다고...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고 투덜대면서 오늘 밤은 잠도 안자겠다고 한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면서 영상통화까지....인터넷을 통해 그간 접하지 못했던 세상의 소식들을 알아도 보고, 평소에 즐겼던 게임도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밤을 세워 밀린 이야기를 하였고 나는 잠시 눈을 붙였으나 이내 잠을 깼다. 바깥 화천읍내는 곧 시작될 산천어 축제를 위하여 수를 놓은 전등 불빛은 은하수 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난 아들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다가 거친 손을 따듯이 잡고서 혹한속에서도 밤을 새워 일선을 지키는 이름 모를 병사 들의 노고를 함께 걱정하면서 다시 잠을 청했다. 아들 녀석이 내가 제 손을 잡은 것을 알았을까? 난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깊은 산속의 화천읍은 태양이 늦게 떠 오른다 하여도 어김없이 1.3. 아침은 차츰 여명에서 밝아 지고 있다. 밖깥은 아직도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기는 하였으나 바람 한 점 없이 큰 도회지와는 달리 자동차 소리도 별로 들리지 아니하는 아침은 밤 같이 조용하다. 만산이 온통 흰눈으로 덮어져 있는 풍경을 바라다 본 아들 녀석은 제설작업 때문에 시달린다고 하소연을,,,, 몇겹의 옷을 껴 입었지만, 워낙 매서운 날씨라 춥다고 한다. 하기야 아파트내에서도 겨울날씨가 춥다고 이불뒤집어 쓰고 제방에서 잘 나오지 않던 녀석이.......
시간은 흘러 오후가 되고 아들녀석이 귀대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아들 녀석은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이 꿈만 같다고 한다. 왜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르는지 모르겠다고... 그러나 부대내에서는 시간이 더디게 간다고 하겠지... 입대하기 전엔 부자간에 대화도 별로 없었는데... 어제, 오늘 동안 아들과 나눈 대화는 평소 1년간의 대화보다 많았다. 아들이 더욱 어른스러워진 것 같기도 하고,..
저녁 6시경 이젠 헤어질 시간이라 자동차는 화천읍내를 지나 북쪽으로 한참을 달려 아들을 부대근처까지 태워다 주고 선임병한데 인계를 하면서, 아쉬운 마음으로 아들과 포옹을 하였다.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지만, 애써 참으며 "대대장님 말씀 잘 듣고, 선임병을 잘 따를 것이며, 육체적으로 힘들더라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인내심을 기르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빠, 엄마가 항상 너를 지켜보고, 염려하고,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고 당부를 하였다.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 없기에 돌아오는 길에 춘천까지 차를 몰고 오면서 눈가장자리는 촉촉히 젖어 있는 것 같았다. 차안이 어두웠으므로 아내도 눈치채지 못하였으리... 그러나 아내도 장인 장모님도 그러 하였으리,... 춘천까지 별 이야기 없이 차만 몰았다. 다행이 더 이상 눈은 오지 아니하였고 이틀간에 대부분의 제설작업이 이루어져서 자동차는 제 속도를 낼 수 있었고, 춘천 서울간 고속도로 또한 지체되지 아니하였다. 내일 아침 부산사무실로 출근하려면 집에 일찍 도착하여야 하였기에 참으로 다행스럽다.
나는 76년도 8.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이 일어나기 열흘전에 논산훈련소에 입대하여 군의학교를 거쳐 백마부대 사단 의무대에서 근무하였다. 그땐, 일과시간보다 내무생활이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월남참전부대라서 그리하였는지 사단의무대는 내무반 군기가 빡쎄기로 유명하였다. 연일 얼차려, 고참들 시중으로... 신참시절엔 정신없이 겨울을 보낸 기억이 나고, 멀리 문산에 가서 내무반 월동용 연탄(분탄) 작업 사역이라도 나가는 경우 새까맣게 얼굴이 먹칠이 되었지만 밖깥 세상 구경할 수 있는 기회라서 신나기 까지 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선임병사들이 후임병들에 친형처럼 대한다 하였다. 얼차려도 거의 없고, 구타는 물론 없다고 하더라. 지금은 계시지 아니하지만, 사십이 훌쩍 넘어서 낳은 막내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머님 마음도 지금의 내마음 같았을까, 아마 더 속앓이를 하였으리. 난 입대후 11개월만에 첫 휴가를 나왔고 그때 서야 어머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때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문밖으로 달려나와 휴가나온 내손을 꼭 잡으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그립고 그 때를 생각하니 지금도 눈물이 핑돈다. 지금은 일산신도시가 건설되어 도시가 되어버린 경기도 고양시 풍동 소재 9사단 사령부 48초소에서 야간 경계 시간에 나는 휘영청 밝은 달 빛아래서도 늘 어머님을 그리곤 하였다.
그러나 지금 아들은 입대한 지 불과 두달만에 제 부모를 만난 것이다. 나보다는 훨씬 운이 좋은 녀석이다. 그러나 입대전엔 내가 국내외 출장 등으로 한달간이나 만나지 못해도 찾지 않던 녀석이 부대에서 이젠 가족생각만 난다고 그런다. 2010. 1.4. 시무식이 아침 10시에 시작되기에 나는 부산행 KTX를 타려고 평소보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섰다. 도로에는 제법 눈이 쌓여서 택시가 엉금엉금 한다. 택시 기사의 곡예운전으로 나는 광명역에서 겨우 차를 탈 수 있었으며, 부산에 도착한 후 방송을 보니 많은 눈이 내려서 서울 주면의 도시들은 온통 난장판이 되었다고 한다. 1.4. 저녁에 아들로 부터 전화가 왔다. 잘 도착하였습니까? 하고, 나는 외할아버지, 할머니께도 전화드리려고 당부를 했다. 아들도 헤어질 때, 눈물이 흐를 뻔 하였는데 선임병 들이 있어서 꾹 참았다고 그런다.
지금쯤 영하 20도의 날씨에 쌓인 눈 치우느라 아들은 짧은 면박시간을 아쉬어할 새도 없이 연신 땀흘리고 있겠지? 입대전 부모말을 귀 담아 듣지 아니하고 제 고집만 피울 땐 밉기도 하였지만, 피붙이라 천륜은 어쩔 수가 없는가 보다. 벌써 다음의 면회와 아들의 휴가가 기다려 진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들 녀석이 막 군대생활을 시작할 이 무렵에 혹한과 폭설로 인내를 시험하시는지... 오늘도 화천의 날씨가 어떤지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다. 철원과 화천의 기온이 영하 25도 이하로 떨어지고 체감온도는 영하 30도를 넘겠다고 한다. 그러나 나의 가이없는 마음과 염원을 모아서 엄동설한속에 있는 화천날씨를 훈훈하게 데워주고 싶다. 아들녀석이 제대할 때까지 내 마음속에는 온통 화천생각으로 가득찰 것만 같다.
칠성부대 장병 부모님들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우리의 아들들이 건강하고 훌륭하게 군생활을 마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4박 5일 휴가>
2010년 4월 3일
서울동서울 터미날에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킨 후 터미널에 도착하여 연신 시계를 처다 보았다. 화천을 출발하여 터미널에 도착한 버스에서 동호가 곧 내리겠지.... 차번호가 강원 0000인 버스를 찾아서 나는 차에서 내리는 군인들을 훑기 시작하였다. 일병, 상병, 하사, 소위 그리고 동호는 같은 계급장을 달고 있는 이등병도 보였다. 한참을 두리번 거리다가 칠성부대의 사단마크를 달고 있는 군인들이 보이면, 혹시나 동호가 함께 있을 까 해서 달려가 보았으나 동호는 보이지 않았다.
동호는 며칠전 제 엄마한테 전화를 하면서 4월 4일 4박5일 휴가를 가겠다고 말해놓고 나한테는 제 엄마 생일이 4월 3일이므로 일찍 도착하여 꽃다발 사들고 수리중학교를 방문하여 엄마를 깜짝 놀래켜 주겠다고 하면서 오늘 휴가차 나온다는 사실을 엄마한테 이야기 하지 말라고 나에게 신신당부 하였고, 나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면서 서울시내 볼일이 있다는 핑계로 동호 외할아버지 승용차 빌려가지고서 동호와 약속한 10시 30분까지 동서울시외버스터미날에 도착하여 지난 1월 2일 화천으로 가족면회차 외박나왔다가 부대로 복귀한 후 4박 5일 휴가날짜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을 아들을 만나기 위해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얼룩무늬 군인들이 버스에서 내릴 때 마다 동호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견장에 별일곱게를 단 한무리의 군인들이 지나가길래, 출발지를 물어 보았더니 아침 8시경에 화천읍 산양리 버스터미널을 출발하였다 하는데... 동호도 같은 버스를 탓더라면 지금쯤 서울에 도착하였을 터인데... 혹시 급박한 상황이 발생하여 동호가 휴가출발을 못하였는지? 아니 도착하였다면 전화라도 할 것인데... 하면서 연신 휴대폰을 벨이 울리지 않는 휴대폰만을 만지작 거렸다. 한참을 기다리다 못해 나는 버스회사 사무실로 가서 배차담당 직원들에게 화천발 버스 도착시간을 물어 보니 오전중에 산양리를 출발한 버스는 모두 도착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녀석은 휴가를 나온 것인가 아닌가 답답하기 그지 없다.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제 엄마는 오전만 근무하는데.. 지금 만나서 학교에 간다하더라도 두시가 넘을 것인데.. 학교방문을 어렵게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천안함 사건으로 휴가가 취소되었는지? 다른 일이 있어 휴가를 나올수 없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걱정이 되어 제 엄마한테 동호가 오늘 휴가나온다는 사실을 전화로 알려주면서 도착시간이 넘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12시 반쯤 되었을까 드디어 동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버스도착시간 등을 확인하기 위하여 회사 사무실로 간사이에 이미 터미널에 도착하여 2층 대합실에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릴 것을... 2층으로 올라갔더니 일병 한명과 제동기인 이등병 한명이 내게는 어색한 모션으로 거수 인사를 한다.
꼭 3개월만에 다시 동호를 만났다. 유별났던 금년 겨울의 추위를 견디고, 연신 치워도 그칠줄 모르는 폭설을 치우느라 손은 많이 거칠어진 것 같았으나 얼굴은 벌써 군대살이 붙어 통통하게 보였다. 자식!!! 집에 있을 땐 다이어트한다고 매일 체중계에 오르내리면서 식사량을 조절하더니 군대서 맨날 먹기만 하였는지? 점심때가 되었기에 밥을 사주려 하였으나 집에 가서 먹겠다 고 한다. 같이 온 선임병 일병은 고향인 천안으로 가기위해 다시 버스를 타야한다면서 가버리고 동기인 이등병은 안산에 집이 있다기에 산본역까지 데려다 주려고 함께 타고 산본으로 출발하였다.
차가 외곽고속도로로 접어 들어가자 동호는 5개월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감회가 새로운 듯 차안에서 휴대폰을 달라더니 여기저기 제 친구한테 휴가나온 사실을 알리고 만날 약속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친구 대부분이 군대에 갔다고 그러더니 아직도 연락할 친구가 남았는가 보다. 전화통을 붓잡고 한참 시끄럽더니 이제는 겨울내내 동장군과 씨름한 이야기,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다던 제설작업 이야기, 동계훈련 등 그간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속사포처럼 읊어댄다. 입대전엔 애비한테 말을 거의 안하던 녀석이....
그러더니 내가 제 엄마한테 오늘 휴가를 나온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하니 허탈해 한다. 그러나 약속한 10시 30분까지 만나지 못하여 걱정되어서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고, 그리고 토요일에는 오전 수업만 있으므로 지금시간에는 학교로 갈 의미가 없다고 하였더니... 그래도 깜짝 쑈를 못한 점이 아쉬운 모양이다. 드디어 산본역 도착하자 몇푼이나 되는 월급으로 엄마 생신 케익을 사러가야한다기에 동기생 이등병과 함께 산본역 앞에서 내려주고 나는 혼자 집으로 왔다.
한참이 지나자 엘리베이터 멈추는 소리가 들리더니 동호가 한손에 케익을 사들고서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제 엄마는 반가워 아들을 얼싸안았고, 입대전까지 제 누나와 말도 잘하지 않던 녀석이 “잘 있었어”어 하고 인사를 하자 고은이도 “고생많았지”하고 화답을 한다.
입대일 이후부터 계속방치하였던 아들녀석의 방을 제 엄마는 며칠전부터 침대보와 베개를 세탁하는 등 말끔히 치워놓았으며 동호는 감개가 무량한 듯 제방에 들어 가더니 입고온 군복은 당장 벗어 버리고 사복으로 갈아입고서는 컴퓨터 게임부터 하는 것 같았다. 한 두어시간이 지나도록 나올 기미기 없더니 이젠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휑하니 나가 버린다. 우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두었다. 열두시가 넘어서도 집에 올 기미가 없기에 일찍들어오라는 연락조차 아니한 채, 한참 잠을 자다가 인기척이 나서 깨어보니 녀석은 새벽녘에 집에 들어온 것 같았다.
4월 4일
4월 3일은 동호 엄마 생일이고 장인어른 생신은 며칠 남았으나 동호가 휴가나온 참에 가족모두 함께 식사하기로 이미 약속한터라 장인 장모님, 처남 및 처제 가족들과 함께 시내 중국집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다. 식사중에 시골 형님께 안부전화를 시켠 후, 자장면을 게눈 감추듯이 삼키더니 친구 만나러 간단다. 오즉하리 입대전에 친구들과 휘 젖고 다니던 산본시내에 5개월만에 왔으니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 보다가는 친구들과 같이 쏘다니고 싶겠지....
4월 5일 월요일 이른 아침에 잠에 골아 떨어진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부산행 KTX를 타기 위하여 집을 나섰다.
4월 7일
오늘은 동호 귀대일.....
이등병이라 동호는 휴가기간 내내 3~4 시간마다 부대에 위치보고를 하였고 오늘 귀대시에도 내가 부대까지 승용차로 태워주기로 하였기에 휴가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하루 휴가를 얻어 부산역에서 아침 7시 반에 광명행 KTX로 산본집에 도착하니 열한시쯤 되었다.
동호는 집에 있었고 휴가기간이 짧아 마냥 아쉬운 듯 귀대가 반갑지는 않은 모양이다. 귀대준비를 하라고 일러놓고 처가댁에 가서 승용차 빌려서 장인 장모님과 함께 동호를 태우고서 제 엄마에게 귀대 인사하려 수리중학교에 들러서 교정에서 기념사진 두어장 찍고나니 한시쯤이 되었다. 제 엄마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같이 휴가나온 동료 이등병을 태우러 전철역 근처에 도착하였고, 동호는 아침을 늦게 먹은 탓에 점심 생각도 없는지 제 외할머니가 점심을 준다고 하였지만 생각이 없단다. 귀대 시간은 저녁 일곱시이므로 두시경에 산본을 출발하여 춘천과 화천을 지나서 산양리까지 넉넉잡에 3~4시간이면 족하므로 저녁은 화천시내에 도착하여서 사먹을 샘치고 일찌감치 출발하기로 하였다. 동호와 함께 휴가나와 안산집을 떠나 이미 산본역에 도착하여 피시방에 기다리고 있는 동료 이등병을 태워서 나는 화천으로 차를 몰았다.
동호는 귀대하는 것이 마냥 아쉽고, 부대 복귀하는 다음날 야간훈련, 4월말 일주일간의 유격훈련 등이 있다면서 마음이 편치 아니한 모양이다.
4월 3일날 녀석을 집으로 태우고 올때는 반가웠으나, 오늘 부대에 데려주려니까 마음이 왠지 찡하다. 서울 춘천간 고속도로에 접어 들자 지난 1월 1일 눈발이 날렸던 도로 주변은 샛노란 개나리 등이 만발하여 봄 기운이 가득하다. 춘천시내를 통과할 무렵 잠시 쉬어가잔다. 이유인 즉 화천시내는 외국산 담배가 없으므로 춘천에서 외제 담배를 사야 한다나... 선임들에게는 담배 한 보루 정도는 사 줄 모양이다. 휴가나올 때 바로 위 선임이 없는 돈 모아서 9천원을 받아온 것이 고맙기도 하고 그냥 가려니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그러자 나도 잠시 쉬어갈 겸 추천시내 어느 편의점앞에 차를 세웠는데.. 녀석들은 안보이는데서 담배한대 피우고 싶은 모양이다... 담배 많이 피우지 말라고 당부를 하였는데... 군대라는 특수상황에서는 제게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둘 수 밖에...
다시 차를 달려 화천으로 달렸다. 여기가 전방이라는 것이 실감나도록 도로를 스치는 차량은 민간인 차량보다는 군용 ?B차며 트럭들이 더욱 많아진다. 군용차량을 보더니 동호는 영 기분이 좋지는 않은가 보다. 4시경에 화천시내에 도착하자 동호는 화천이 싫은 양 차가 너무빨리 도착하였다고 투덜덴다. 내 마음이야 부대에 빨리 데려주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나 녀석들은 일곱시를 채워서 부대에 들어갈 모양이다. 부대 행정반과 중대장 등에게 화천도착보고를 하더니 부대에서는 귀대시 먹을 것 등은 절대로 사오지 말라고 당부를 한다. 나는 병사들 간식거리라도 사서 보낼 요량이었는데 동호는 아무 것도 사서갈 필요없다고 그러더니 한잠 자고 싶다고 그런다. 옛날에 휴가귀대시에는 떡이랑, 고량주, 담배 등을 사가지 않으면 고참들한테 혼나기도 하였는데... 화천시내 주택가 한가한 길 모퉁이에 차를 세워놓고 한 30여분을 재웠다.
화천에서 부대까지 가려면 북쪽으로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다섯시가 지나가자 4월의 화창한 봄 햇살도 기운을 잃어가고 있었다. 녀석들을 깨웠다. 7사단 사령부를 지나 사방거리까지 가는 주변엔 온통 산으로 둘러 쌓여 있고 그 골짜기 마다 군부대 막사 뿐이다. 금년엔 유난히도 많은 내린 폭설과 영하 30도를 넘나들던 수은주하에서 이 골짜기에서 겨울을 이겨내느라고 고생하였음을 짐작하면서...
사방거리에 도착하자 군인백화점에 가더니 녀석들은 위장페인트, 신발깔창 등 필요한 것을 사온 후 중국집에서 자짱면이 먹고 싶다 한다. 난 보통을 시켰지만 녀석들은 자짱면 곱베기을 시켰고 부족할까봐 탕수육을 시켰더니 짜장면은 금새 비우더니 탕수육은 대부분 남겼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6시 30분이 되었다 부대까지는 한 20분쯤 북쪽으로 올라가야 한다.
또 다시 차를 달렸다. 골짜기로 이어진 아스팔트 길 양쪽엔 온통 군사시설 뿐인데.. 곧 민통선 위병소에 도착하니 초병은 민간인 차량출입을 할 수 없다고 그러길레, 이미 동호부대에서 차량번호와 탐승자 명단을 통보하였으며 지금 차량이 통과되지 아니하면 귀대시간 7시를 지킬수 없다고 말하고 한참을 옥신각신한 끝에 신분증과 출입증을 교환한 후 난생처음 민통선을 넘어서 동호 부대로 향하였다. 동호는 제 보다 선임병인 위병이 나한테 말을 공손히 하지 않는다고 중얼거린다. 대대본부를 지나 한참 더 올라가니 동호가 중대건물이 보였다. 시간은 정해진 귀대시간 7시가 되었고, 동호를 여기 남겨 두고 나만 돌아가야 한다니.... 부대 입구에서 초병들은 동호를 보면서 손을 흔들더니 내게는 단결하고 거수 경례를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으나 아들 녀석을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힘들겠지만 참고 잘 이겨내기를 바란다”고 아들의 등을 두드려 주고 동료 이등병에게도 건강하게 군생활 잘하라고 당부하면서 차를 돌렸다.
화천의 깊은 골짜기 이미 햇빛을 모두 삼킨 산 그림자는 길게 키를 키우고 있다. 지금 빨리 나가지 않으면, 곧 어두어질 것이다. 금새 차를 몰에 다시 위병소에서 차에 내려 차량출입증과 내 주민등록증을 교환하고 사방거리에 잠시차를 새우고서 제 엄마한테는 아들 부대 잘 복귀시키고 집으로 출발한다고 전화를 하고, 동호 중대장 및 선임하사에게 동호 잘 부탁한다는 전화를 한 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3시간 동안 차를 몰아 밤 10시쯤 집에 돌아왔고, 이튿날 다시 새벽 5시 45분 광명발 부산행 KTX에 몸을 싣고 다시 부산 사무실로 출근하였다.
그렇게 녀석을 부대까지 데려다 준 시간이 한참이나 흘렀다.
5월 10일 동호로부터 어버이날 선물이라는 쪽지와 함께 화천 화학산에서 농민이 재배한 토마토로 만들 쥬스 한박스와 비타민 두병을 넣은 소포가 왔다고 한다.
어버이날, 한번도 선물은 고사하고 감사하다는 말한마디 한 적 없던 녀석인데... 군에 가서 철이 들었다고 믿어도 될지 난 아직 자신이 없다.
5월20일
오늘 5월 20일 천안함 침몰원인에 대한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북한에서는 별별 소리를 다하고 있고, 간부들은 초파일 연휴기간동안 비상근무를 하도록 지시가 내려왔다.
천안함 사건 원인조사발표, 이어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 발표, 그에 따른 북한의 대남협박공세, 또 우리의 대응 등등....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내가 군에 있었던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당시는 데프콘 2 비상상황이었고 그때는 사격술만 교육받고 전방에 투입된다고 교관들이 으름장을 놓았는데... 그땐 김일성 한 인간때문에 수많은 젊은이의 황금같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었다고 원망을 하였던 것 같았는데, 지금도 그 당시 못지 않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세상이다.
5월 27일
오늘도 父情으로 화천의 하늘을 응시하면서 부산항의 푸른 물결을 말없이 내려다 본다.
온 인류가 수 천년 동안 갈망하였던 "태평성대"는 아직 몇 천년 후에나 이루어 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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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자간에 인상이 굿입니다
혀임의 그마음 진짜 ....
실컨 답글을 장문으로 썼는데 컴이 닫혀 버렸네요.웬지 두번이나 그런데 바이러스가 먹었는지! 힘이 빠져 버리네요.
이런 장문의 글에도 댓글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이카폐도 별 매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왔다가면 뭔가를 남기면 활성화가 될건데..저도 자주 와 지질안네요
서술해가는 글솜씨가 대단한 실력입니다..딸둘 엄마랑 그맘을 다 못헤아리지만 고1때 미국가는 딸보내고 돌아오는 공항버스안에서 한없이 울었던 생각나 가슴이 찡하네여. 늠름하고 잘생긴 아들둔 아부지 부럽습니다..세관 불시 검문가도 되지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