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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2일 (목)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촬영
1903년 첫 한인 이민선이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에 도착했다.
120년 후
2022년 8월
대한민국 해군 '마라도'함이 같은 바다를 건너 진주만에 입항했다.
다만 이번엔 사탕수수 밭에서 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제 평화와 자유를 위해 항해했다.
전세계 26개국이 참가한 세계 최대 다국적 해상연합훈련 '림팩'을 성공리에 마친 우리 해군 함정 위에서
평화와 화합을 노래합니다.
상록수 / 김민기 작사 작곡, 김지환 편곡.
오늘날 하와이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약 7만명으로, 이들은 다른 이민자들과 더불어 조화로운 하와이를 만들어가고 있다.
1852년 첫 중국인 이민자들 하와이 도착
1878년 첫 포르투갈 이민자들 하와이 도착
1885년, 첫 일본인 이민자들 하와이 도착
1903년 첫 한국인 이민자들 하와이 도착.
1906년 첫 필리핀 이민자들 하와이 도착
일본계, 중국계 이민자 자녀들과 함께한 적십자 선생님들, 1918년.
주로 일본계와 한인계 어린이들이 함께 생활한 수산나 웨슬리 홈, 1910년 대.
알로하워크 축제에서 포즈를 취한 중국, 한국, 일본계 여인 1947년
사진이 나오는 동안 배경 음악으로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상록수란 음악이 흐른다.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거칠은 들판에 솔잎 되리라
1902년 12월 22일
가슴에 큰 뜻을 품은 한국인 백 스물 한명이 인천 제물포 항에 모였다.
그들은 긴 항해를 시작했다.
22일 후
호놀루루 항에 도착한 백 두명의 한국인으로 인해 미주 한인 디아스포라 역사가 시작되었다.
*디아스포라는 그리스어에서 온 것으로 "씨를 뿌린다"라는 의미이다. 민족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주민들이
고향을 자발적, 혹은 강제로 떠나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거주하는 것을 뜻한다. -역사용어사전-
1903년부터 1905년까지 하와이로 건너온 최초의 이민자 7,415명.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지금부터 우리는 그들이 남긴 사랑의 흔적을 찾아가 보려 한다.
하와이 연가 그들의 발자취
한국인의 미국 이민은 1903년 백여명의 한국인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로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농장에서 일본인, 포르투갈인 등 타국에서 온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뒤이어 1909년부터 사진만 보고 신랑감을 찾아 하와이로 건너간 '사진신부' 680명의 유입으로 가정이 이루어졌다.
이민이 시작된 1903년부터1945년 한국이 독립하기까지 하와이에 외따로 떨어져 산 한국인은 약 7,000명이었다.
오하후 노스 쇼어 세계적인 서핑 명소, 그리고
푸우이키 묘지.
구한 말 미지의 땅으로 떠난 선구자들에게 이 음악을 바칩니다.
이그네스 '이기' 장 / 프랑스 태생 미주 한인2세, 하와이 심포니 오케스트라 악장.
희망가 / 제레미 잉글스 작곡, 김지환 편곡
희망가가 바이올린 선율에 실려 나옵니다.
일제 강점기 3.1 만세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절망이 한반도를 뒤덮었을 때, 기댈 곳 없던 민중들 사이로 퍼져나간 노래
어떤 희망도 기대할 수 없었던 시절에도 우리 민족은 이 노래 제목을 '희망가'라 짓고 부르고 또 불렀다.
푸우이키 묘지.
인적 드문 묘지에는 과거 사탕수수 노동자로 일했던 한인 이민자 가족 36명의 영혼이 잠들어 있다.
이들은 사탕수수밭 하루 일당을 쪼개어 고국의 국권 회복을 위한 기금을 모았다
농장에서 어느 오후
파인애플 공장에서 일하는 한국인 여성들, 1915년 경.
문대양 전 하와이 대법원장의 조부, 문정헌 씨가 운영하던 양장점. 1930년대
독립운동가 정월라와 딸, 1915년
한인기숙학교 졸업반, 1911년
한인기독학원 농구팀, 1923년
감리교 성직자들의 모임, 1907년
독립운동단체, 대한인국민회 하와이 지방총회 1915년 경
하와이 한인들의 태극기 행진, 1915년 경
하와이 주 의사당
사면이 물로 둘러싸인 주청사 건물은 바다로 둘러싸인 하와이를 상징하며, 또한 다문화 다민족 사회 하와이를 상징한다.
1945년 광복 이후 1965년까지 한국인의 하와이 이민은 주로 국제결혼여성, 입양아, 유학생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어 1965년, 미국 이민법이 개정되면서 '아메리칸드림'을 가슴에 품은 3만여명의 한국인이 하와이와 미국 본토로 떠나갔다.
새 이민자들은 1세대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불굴의 의지와 근면성으로 새 삶을 개척해나갔다.
그들은 언어적 정벽과 문화 차이로 주류사회 편입이 어려웠지만
자녀들은 여러 분야 리더로 성장하며 다문화사회 하와이의 당당한 일원이 되었다.
자녀를 위해 헌신한 이 땅의 모든 아버지 어머니들을 위해 이 곡을 연주합니다.
이정림 씨와 브라이언 수나하라 씨의 결혼식날, 1975년
애영 히구치 씨와 딸, 1946년 정월라 씨와 손녀, 1946년
장영희 씨와 가족 1973년
엘사와 모나 자매, 그리고 애견 '파키' 1952년
딸과 함께한 이훈 씨, 1983년
뭉우리돌은, 순우리말로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뜻하는데, '백범일지'에서 독립운동 정신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지난 2017년 시작된 김동우 작가의 <뭉우리돌을 찾아서> 프로젝트는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
의 흔적과 더불어 국외독립운동 사적지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연작이다.
망각과 기억의 줄다리기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역사적 실체는 이 연작을 통해 명징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실체는 우리가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를 또렷하게 만든다.
김동우 작가는
여행 중 우연히 인도 레드 포트(RED Fort)가 한국광복군 훈련지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독립운동가들의 삶에 사로잡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의 흔적을 찾아 사진과 글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현재 11개국에서 작업을 이어왔다.
박부찬 교수 作 / 하와이 오아후 푸우이키, 2022, 09
辛세계의 상(狀)
매일 같이 하와이에 남겨진 한인 묘지를 찾아 다녔다.
그리고 거기서 지워지고 있는 얼굴을 수 없이 마주했다.
그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우리 곁에 있던
어디선가 본 듯한 그런 사람들이었다.
정확히 120년 전, 제물포에서 하와이로 간 사람들,
그들은 모두 왔으나, 가지 못한 운명이었다.
다행히 그 역사는 기억되고 있다.
불행히 그들의 얼굴은 잊혀졌다.
여기 이들의 상(狀)이 있다.
하와이 디아스포라 120주년,
남겨진 120명의 얼굴,
역사로 가는 120개 길이 됐으면.
박춘하 / 하와이 빅아일랜드 힐로, 2022, 09
이루지 못한 꿈
고향은 열병 같은 거
화톳불처럼 열이 오르고 오한이 드는
끙끙거려 본들 쉬 도망갈 수 없는
아득하기만 한 기억 저편의 그림자가
환영이 돼 돌아온다
머리끝까지 이불을 올려
어둠에 든다
태곳적 엄마 품이 그랬던가
꿈속을 달려 달큼한 꽃향기 진동하는 동산에 올라
그대 손을 잡고 내달린다
멀리 처마 밑
고드름 익어가는 소리 귓가를 울린다
마치 그 소리 있던 것 마냥
꼬드득 꼬드득
고향은 열병 같은 거, 고향은 낫지 않는 거
리도일지묘 / 알라에 공동묘지에서 찾은 인천 출신 한인, 하와이 빅아일랜드 힐로, 2022, 09
편도(片道)
1902년 12월 22일 제물포
한 증기선이 서서히 항구를 밀어 낸다
이내 눈배웅을 거두고 돌아서 등을 져야 했던 순간
잠시의 이별이라 옹송그려 본들
삭풍은 담묵색 바다를 더욱 야단스럽게 할 뿐이었다
1903년 1월 13일 포와(布哇)
서쪽에서 온 이들을 맞은 건 생경한 새소리와 흐드러진 꽃들이었다
섬은 곧 무망한 전옥이 돼버린다
혼곤함에 눈을 감아보지만,
노란 어둠 속에 밟히는 건 체념과 상념 뿐
세민굴 같은 숙소에서 선잠에 든다
쪽빛 바다 짙은 담묵색으로 변할 때쯤
연완한 달뜬 얼굴 어렴풋하다
격조한 고향은 무심한 것인가, 몽매한 것인가
머나먼, 다시갈 수 없던 편도(片道) 한민족 공식 이민 120주년을 맞아 사진가 김동우
혼종성 #2 / 호놀룰루의 조계종 사찰, 하와이 오아후 호놀룰루, 2022, 09
혼종성 #2 / 호놀룰루의 조계종 사찰, 하와이 오아후 호놀룰루, 2022, 09
한인기독교회 / 이승만이 1918년 하와이에 설립한 교회.하와이 오아후 호놀룰루, 2022, 09
한국 松 / 빅아일랜드 이승만 가옥 앞 한국 소나무, 하와이 빅아일랜드, 2022, 09
합성협회 터 / 1907년 한인 통합 단체가 있던 자리, 하와이 오아후 호놀룰루, 2022, 09
폐선로 / 와이파후에 남은 사탕수수 농장의 흔적, 하와이 오아후 와이파후, 2022, 09
독립운동가 이인섭의 딸 스베틀라나 슬로보치코바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2018, 04
인정
독립운동가 이인섭의 딸 스베틀라나 여사와 나눈 이야기 중 일부이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나라 찾는 데 독립운동 노선이 무슨 소용이냐, 이제 나라를 찾았으니
그걸로 됐다'라고, 하지만 나라가 두 개로 쪼개진 사실에 대해서는 무척 가슴아파하셨죠, 사실 아버지가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여서 한국에 알려진 지도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그렇다고 북한에서 대우해준 것도 아니고요,"
좌우 어느 쪽에서도 제대로 평가바디 못한 그 긴 시간을 누가 어찌 보상한다는 말인가.
(좌) 이민자 #1 김성태(61), 1982년 이민, 하와이 빅아일랜드 힐로, 2022, 09
(우) 이민자 # 2 민금순(95), 한국전쟁 직후 이민
독립운동가 정원명 정월라의 손녀 엘사 리 / 하와이 오아후 호놀룰루, 2022, 09
정신
엘사 리는 하와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문또라, 정월라, 정원명의 후손이다.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는 일본인과 결혼을 했다. 그녀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 했다.
"증조할머니(문또라), 할머니(정월라) 모두 한국의 독립을위해 싸운 투사인데, 어머니가 일본인과 결혼을
한다고 하니 반대가 얼마나 심했겠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결혼 뒤 아이를 낳기까지 2년 간 할머니는 엄마를 만나지 않았다고 해요."
독립운동가 안창호의 손자 밥 안 / 하와이 오아후 카이, 2022, 09
사명
"아버지의 독립운동은 한국인으로서 그 시대 사명이었습니다. 가족들은 그 사명 때문에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죠.
하지만 난 자라면서 내 가족이 아버지에 대해 불평, 불만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가족 모두 독립운동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인 거죠." 이 이야기는 지난 2022년 2월 작고한 안창호의 막내 아들
랄프 안이 내게 해준 내용이다. 밥 안은 삼촌이 한 이야기를 내게 똑같이 했다.
독립운동가 조지 새넌 맥쿤의 손자 블레어 맥쿤 / 하와이 빅아일랜드 와이메와 2022, 09
양심
105인 사건 연루자이자 선교사였던 조지 새넌 맥쿤은 항일 정신으로 무장한 푸른 눈의 조선인이었다.
그는 3.1운동 직전 학생지도자 김원벽을 만나 용기를 북돋아 주며 한국의 독립을 적극 지지한다.
특히 1928년 평양 숭실전문학교와 숭실학교 교장직을 겸임할 때 "양심적으로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학생들에게
시킬 수 없다"며 신사참배를 적극 반대하고 나선다. 사진 속 인물은 그의 손자 블레어 맥쿤이다.
여기서 반투명한 인물은 지워지면 안되는, 또렷해야할 역사를 말한다.
독립운동가 이윤상의 딸 레오느르 이박 / 쿠바 까르데나스, 2018, 02
실존
레오노르 이 박은 쿠바에서 독립운동을 한 이윤상의 딸이다. 그녀는 자발적 의지로 한복을 촬영의상으로 선택했다.
실존의 의미는 삶에 대한 태도의 변화에서 생기는데, 그 변화는 그저 사는 것이 아닌 존재의 이유를
묻는 자세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실존은 삶의 진정성과 밀접히 연결되고,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는 길이 된다.
그렇다면 최근에서야 아버지의 독립운동 사실을 알게 된 뒤 그녀는 어떤 실존적 경험을 하게 되었을까.
여기서의 한복은 그녀를 그녀답게 완성시키는 매개가 된다.
멕시코의 한인 후손 제니 찬 송 / 멕시코 메리다, 2018, 02
기억
멕시코 메리다 한인이민사 박물관장 제니 찬 송은 사진 속에서 흐릿한 유령적 환영으로 재현돼 있다.
반면 그녀 뒤에 걸린 안창호는 이미지 안에 갇혀 시간의 흐름을 초월한 존재로 살아간다,
이 사진은 인화지 위에서 죽음을 유예 받은 한 독립운동가와 살아 있지만 죽음으로 재현된 한 한인 후손이
각기 다르게 소멸의 공식을 비틀어 버린다.
이는 기억의 주체와 망각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상징한다.
(좌) 단지동맹비 / 안중근과 동지 11명의 단지를 기념하며, 러시아 크라스키노, 2018, 11
(중) 영웅의 마지막 흔적 / 윤동주가 생체실험 끝에 사망한 형무소 자리, 일본 후쿠오카, 2019, 06
(우) 신흥중학교 터 / 1913년 신흥강습소가 삼원보에서 옮겨 온 자리, 중국 통화현 합니하, 2019, 09
살리나크루즈 / 1905년 멕시코에 한인들이 첫발을 내디딘 항구, 멕시코 살리나크루즈, 2018, 01
태극기동굴 / 1910년대 독립군의 흔적, 중국 왕청현 나자구, 2019, 09
마나티 / 1921년 쿠바에 한인들이 첫발을 내디딘 항구, 쿠바 마나티, 2018, 02
영웅의 마지막 흔적 #2 / 윤봉길이 순둑한 사형장 자리, 일본 가나자와, 2019, 12
공군의 시작 / 캘리포니아 한인비행사양성소 교육장, 미국 캘리포니아 우ㅣㄹ로우스, 2018, 03
영웅의 마지막 흔적 #3 / 최재형이 일본군에 체포된 가옥, 러시아 우수리스크, 2018, 11
장군의 무덤 / 봉환 전까지 홍범도가 묻혀 있던 묘소,,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2018, 06
별이 된 사람들 / 1세대 고려인 무덤,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201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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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낯선 타국에서 지옥같은 생활을 하시면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조상님에게 오늘의 한국은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인천은
우리나라 최초로 이민을 떠난 곳...
가슴 아픈 영화의 장면들을 보는 기분이네요.
월미도 갈 때
이민사박물관에도
함 들려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