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차시 과제] 아빠 (수정 후)
남아있는 기억 중 첫번째 기억은 아빠다. 7살쯤일까. 초저녁인지 새벽인지 깨서 거실로 나가보니 거실 바닥에는 빼곡하게 유리 조각과 반찬이 널브러져 있었다. 평소와 다른 풍경에 잠시 넋을 놓고 있었던 것 같다. 아빠는 "들어가서 자라."고 했다. 그날 밤 집에는 아빠랑 나뿐이었다. 엄마랑 동생은 어디 간 걸까.
다음 날. 같은 골목 도보 30초 거리에 있는 호선이네 가서 호선이 아줌마한테 어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얘기했다. 담 하나 넘어가면 이모도 살고 옆집에는 영국이 아줌마도 살지만, 호선이 아줌마를 제일 좋아했다. "아줌마! 어제 우리 아빠가! 술 먹고 와서! 집에 있는 거 부쉈어!" 반응 좋은 호선이 아줌마는 "어머 정말?! 선선이 놀랐겠다!" 했다. 신나게 떠들다 보면 유리 조각 하나 남지 않은 마음이 되었다. 방문 선생님과 한글 공부하는 호선이 옆에 눈치없이 껴서 공부했다. 공부 끝나면 호선이랑 서로 남편, 아내 역을 번갈아가며 화목하게 소꿉놀이했다.
1년 뒤 호선이 아줌마가 없는 주공아파트로 이사 갔다. 낯선 동네에서 얕은 잠을 자다 엄마, 아빠는 신문 배달 가고 없는 고요한 집에서 잠에 깼다. 나도 신문 영업소 데려가지! 주춤주춤 거실로 나와 보일러실을 들여다보니 보일러 아래 작은 불이 어른거린다. 혹시 불이 나려나 싶어 자는 동생을 깨워 경비실로 걸어갔다. "아저씨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그때 나는 나를 안심 시켜줄 어른이 필요했다. 아저씨는 한 손에는 내 손, 다른 손에는 동생 손을 잡고 집에 데려다주고 보일러실을 확인해줬다. 괜찮다고 했다. 그날의 불안이 어린 나에게 인상 깊었는지 그 뒤로 잠들기 전까지 "하느님 집에 불 안 나고 도둑 안 들어오고 아빠 술 안 먹게 해주세요." 기도를 외며 잠들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 기도를 했던 것 같다. 하느님은 마지막 기도는 자주 까먹었다.
아빠는 신문 영업소를 운영했다. 아빠, 엄마, 미쓰리 언니, 미쓰리 언니의 친오빠 넷이 신문 배달을 했다. 나는 신문 영업소에 놀러 가는 걸 좋아했다. 시큼한 잉크 냄새, 건조하고 까슬한 새 신문의 질감, 집 외에 다른 놀이터가 있는 게 좋았다. 미쓰리 언니는 가지런히 쌓인 신문 앞에 서서 신문 사이에 광고지를 기계처럼 넣었다. 옆에서 미쓰리 언니를 따라서 느릿느릿 신문 사이에 광고지를 넣으면 "선선 잘하네!" 예쁜 미쓰 리 언니가 칭찬해주는 게 좋았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다 다투면 "나 언니 부른다!" 협박하는 애가 있었다. 그럼 언니 없는 내가 늘 졌다. 8살인 내게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건 든든한 믿을 구석이 생기는 일이었다.
아침 7시쯤 엄마는 캡모자를 눌러쓰고 땀 냄새를 풍기며 집에 온다. 나를 깨워 학교 갈 준비를 시키고 그것도 시간이 모자라면 엄마는 씻지도 못하고 오토바이로 나를학교까지 데려다줬다. 엄마 등을 꽉 안고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 가는 게 좋을 때도 있고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좋을 때는 얼굴을 들어 시원한 바람을 맞았고 부끄러울 때는 엄마 등에 얼굴을 박고 학교까지 갔다. 등에서 엄마 냄새가 났고 그 냄새를 킁킁거리면 마음이 점점 편해졌다.
교실 들어가기 전 때묻은 실내화를 꺼낼 때 딱지모양으로 접힌 편지가 툭 떨어졌다. 엄마가 쓴 편지였다. A4용지 2장짜리 편지였다. 잠깐 읽어보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다시 실내화 가방에 넣었다. 점심 먹기 전 주머니에 편지를 넣고 점심시간 친구들을 피해 그 편지를 읽었다. 8, 9살이었을 어린 나에게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을 길게 빼곡히 했다. 그 편지를 소중한 걸 모아두는 운동화 상자에 넣어뒀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편지는 사라졌고 내용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편지 덕에 찔찔 울고 엉덩이 털고 친구들과 아파트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았다.
아빠는 처음 기억하는 날부터 내가 30살을 넘길 때도 술을 마시고 집 오는 길을 까먹지 않고 집에 와서 주정을 하는 걸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걸해야 '아 오늘 하루도 참 보람 있었다.'는 마음이라도 드는걸까. 과감하게 누굴 때리거나 뭘 부수지 않는 날에도 저녁에 주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괴로운 일이었다. 발에 밟히는 유리 조각은 없었지만 얼음 조각에도 머리카락 한 올에도 발이 베는 것 같았다. 나는 오랫동안 아빠를 미워했고 미워하기로 했다. 아빠는 낮에는 내게 미안하다고도 했지만 그 미안함이 마르기 전에 술을 마셔서 미워하지 않았다가 미워하기를 반복하는 것보다 그냥 미워하는 게 속이 편했다. 집 안 가득한 뜨끈한 술냄새를 피해 집 밖으로 나와 차고 맑은 새벽공기에 더부룩한 마음을 식히고 새벽공기를 약 삼아 잠들었다.
어느 날 아빠는 내게 "나를 사람 취급 해준 적이 있냐."고 물었다. 오랜만에 본 아빠 얼굴은 물기 없는 땅처럼 퍼석하고 늙어있었다. 나는 "자신을 그런 식으로 그만 사랑하라고." 했다. 일하며 받은 스트레스도 겸사겸사 담아서 아빠에게 소리치며 말했다. 아빠는 늙었고 주정은 짧고 간단해졌지만 나는 작은 소리만 들려도 큰소리로 나를 망치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어떻게든 상처주기 위해. 상처 받은 아빠의 슬픔을 적막삼아 잠들기 위해.
-
6차시 과제-아빠 (수정 수정 후)
남아있는 기억 중 첫번째 기억은 아빠다. 7살쯤일까. 초저녁인지 새벽인지 깨서 거실로 나가보니 거실 바닥에는 빼곡하게 유리 조각과 반찬이 널브러져 있었다. 평소와 다른 풍경에 잠시 넋을 놓고 있었던 것 같다. 아빠는 "들어가서 자라."고 했다. 그 풍경을 보고 누가 숙면할 수 있겠어요. 아빠. 그날 밤 집에는 아빠랑 나뿐이었다. 엄마랑 동생은 어디 간 걸까.
다음 날. 같은 골목 도보 30초 거리에 있는 호선이네 가서 호선이 아줌마한테 어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얘기했다. 담 하나 넘어가면 이모도 살고 옆집에는 영국이 아줌마도 살지만, 호선이 아줌마를 제일 좋아했다. "아줌마! 어제 우리 아빠가! 술 먹고 와서! 집에 있는 거 부쉈어!" 반응 좋은 호선이 아줌마는 "어머 정말?! 선선이 놀랐겠다!" 했다. 신나게 떠들다 보면 유리 조각 하나 남지 않은 마음이 되었다. 방문 선생님과 한글 공부하는 호선이 옆에 눈치없이 껴서 공부했다. 공부 끝나면 호선이랑 서로 남편, 아내 역을 번갈아가며 화목하게 소꿉놀이했다.
1년 뒤 호선이 아줌마가 없는 주공아파트로 이사 갔다. 낯선 동네에서 얕은 잠을 자다 엄마, 아빠는 신문 배달 가고 없는 고요한 집에서 잠에 깼다. 나도 신문 영업소 데려가지! 주춤주춤 거실로 나와 보일러실을 들여다보니 보일러 아래 작은 불이 어른거린다. 혹시 불이 나려나 싶어 자는 동생을 깨워 경비실로 걸어갔다. "아저씨 집에 불이 난 것 같아요." 그때 나는 나를 안심 시켜줄 어른이 필요했다. 아저씨는 한 손에는 내 손, 다른 손에는 동생 손을 잡고 집에 데려다주고 보일러실을 확인해줬다. 괜찮다고 했다. 그날의 불안이 어린 나에게 인상 깊었는지 그 뒤로 잠들기 전까지 "하느님 집에 불 안 나고 도둑 안 들어오고 아빠 술 안 먹게 해주세요." 기도를 외며 잠들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 기도를 했던 것 같다. 하느님은 마지막 기도는 자주 까먹었다.
아침 7시쯤 엄마는 캡모자를 눌러쓰고 땀 냄새를 풍기며 집에 왔다. 나를 깨워 학교 갈 준비를 시키고 그것도 시간이 모자라면 엄마는 씻지도 못하고 오토바이로 나를 학교까지 데려다줬다. 엄마 등을 꽉 안고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 가는 게 좋을 때도 있고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좋을 때는 얼굴을 들어 시원한 바람을 맞았고 부끄러울 때는 엄마 등에 얼굴을 박고 학교까지 갔다. 등에서 엄마 냄새가 났고 그 냄새를 킁킁거리면 마음이 점점 편해졌다.
교실 들어가기 전 때묻은 실내화를 꺼낼 때 딱지모양으로 접힌 편지가 툭 떨어졌다. 엄마가 쓴 편지였다. A4용지 2장짜리 편지였다. 잠깐 읽어보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다시 실내화 가방에 넣었다. 점심 먹기 전 주머니에 편지를 넣고 점심 먹고 친구들을 피해 그 편지를 읽었다. 8, 9살이었을 어린 나에게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을 길게 빼곡히 했다. 그 편지를 소중한 걸 모아두는 운동화 상자에 넣어뒀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편지는 사라졌고 내용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편지 덕에 찔찔 울고 엉덩이 털고 친구들과 아파트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았다.
아빠는 처음 기억하는 날부터 내가 30살을 넘길 때도 술을 마시고 집 오는 길을 까먹지 않고 집에 와서 주정을 하는 걸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걸해야 '아 오늘 하루도 참 보람 있었다.'는 마음이라도 드는걸까. 집에 왔을 때 아빠가 있어도 싫고 없어도 싫었다. 길에서 아빠랑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도 싫었다. 과감하게 누굴 때리거나 뭘 부수지 않는 날에도 저녁에 주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괴로운 일이었다. 발에 밟히는 유리 조각은 없었지만 얼음 조각에도 머리카락 한 올에도 발이 베는 것 같았다. 나는 오랫동안 아빠를 미워했고 미워하기로 했다. 아빠는 낮에는 내게 미안하다고도 했지만 그 미안함이 마르기 전에 술을 마셔서 미워하지 않았다가 미워하기를 반복하는 것보다 그냥 미워하는 게 속이 편했다. 집 안 가득한 뜨끈한 술냄새를 피해 집 밖으로 나와 차고 맑은 새벽공기에 더부룩한 마음을 식히고 새벽공기를 약 삼아 잠들었다.
어느 날 아빠는 내게 "나를 사람 취급 해준 적이 있냐."고 물었다. 같은 집에 살지만 오랜만에 본 아빠 얼굴은 물기 없는 땅처럼 퍼석하고 늙어있었다. 나는 "자신을 그런 식으로 그만 사랑하라고." 했다. 일하며 받은 스트레스도 겸사겸사 담아서 아빠에게 소리치며 말했다. 아빠는 늙었고 주정은 짧고 간단해졌지만 나는 작은 소리만 들려도 큰소리로 나를 망치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내가 했던 말을 내가 제일 크게 들었다. 어떻게든 상처주기 위해. 상처 받은 아빠의 슬픔을 적막삼아 잠들기 위해.
+
수정->수정수정 후 무엇이 바뀌었냐고요? 이제...저도 모르겠어요... 제일 수월한 분노의 글쓰기일 줄 알았는데...!
요즘 구체적으로 쓰는 방법을 요리조리 궁리하고 있어요. 제멋대로 막! 쓸 때는 재밌었는데 구체적으로 쓰는 일은 아직 낯설어서 글쓰기 재미는 조금 준 것 같은 기분도 들어요. 지금의 저보다 덜한 글도 쓸 수 없고 나은 글도 쓸 수 없는데! 글쓰기에 고민하는 시간은 점점 늘어나는 요즘이에요. 재밌고(?) 가감없는 리뷰 기다리겠습니다. ;)
첫댓글 더 큰소리로 나를 망치는 말들..ㅠㅠ 어떤 마음인지 알것같아요. 알콜중독자와 사는 삶을 저도 조금은 알죠. 애썼어요...
고마워요. 나작여 ;-)
저도 아빠에 대한 글을 썼지만 아빠와 술에 대한 것은 또 다른 세계라 애써 덮어두었거든요. 아빠에 대한 선선의 마음, 다듬어질 글도 기다려져요.
눈썹달 댓글에서 다정함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글 조금 다듬어서 올려두며 답글 남겨요. 고마워요. 눈썹달 🌙
어린 나이에 아빠를 폭력으로 기억하고 오랫동안 아빠의 주정에 시달렸을 선선이 안쓰럽고, 그런데도 단단하게 잘 자란 선선이 또 대견하네요. '상처 받는 아빠의 슬픔'이라는 표현에서 아빠에 대한 복잡한 마음이 느껴졌어요. 이제는 편히 잠들 수 있는 날들이 많아지길...
이제는 잘 자요. 요즘 잘 자서 전보다 성격도 좋아진 것 같아요(?) 고마워요 유주 ;-)
수정후 이야기가 좀 덧붙여 졌네요...ㅎㅎ.엄마가 잠시 등장하셨습니다.. 편지를 A4 두장 이나 써주셨는데.. 내용이 궁금해요. 물론 아버지가 글의 중심이었겟지만. 엄마 이야기는 안 나오는군요.. 미쓰리 언니도 캐릭터가 약해요.잠시 스치는 단역 같네요 ㅎㅎ.하긴 제가 뭘 알겠습니까...
저는 어렸을때 외삼촌이 오셔서 술주정을 많이 하셨어요. 정말 무서웠어요. 누나와 벌벌떨며 집 밖으로 도망간 기억이 나요.... " 어른이 되면..절대 나는 술 먹지 말아야지 " 다짐을 하긴 했었는데.. 언젠가 그 약속은 지킬지도 모르겠어요. 제 아들이 아부지 왜 술먹어 물었을때 " 너도 크면 알어. 알딸딸한 그 기분 때문에 먹는거야 " 라고 했어요. 좌우지간 술이 왼수예요.. 그래서 그걸 알고 싶어 노력중이예요. 내일 만나요~ 담담히 써내려간 글 잘 읽었어요... 선선 ^^
글 수정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바로 댓글이라니! 지금 팬과 실시간 댓글 소통 중인 듯합니다. 엄마/아빠를 나눠 쓰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오늘은 자고...내일...) 다시 수정! 갑니다! 고마워요. 팬 ;-)
저랑 비슷한 주제에서 발화된 글이였네요 뒤늦게 읽고 조용히 가려고 했다가 7~8살의 선선이 막 상상되면서 애잔한 마음에 잠겼다가 엄마와 편지 이야기에 잠시 안도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