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 교의품 15장】 자부가 산 부처
대종사 봉래정사(蓬萊精舍)에 계실 때에 하루는 어떤 노인 부부가 지나가다 말하기를, 자기들의 자부(子婦)가 성질이 불순하여 불효가 막심하므로 실상사(實相寺) 부처님께 불공이나 올려 볼까 하고 가는 중이라고 하는지라, 대종사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어찌 등상불에게는 불공할 줄을 알면서 산 부처에게는 불공할 줄을 모르는가.] 그 부부 여쭙기를 [산 부처가 어디 계시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의 집에 있는 자부가 곧 산 부처이니, 그대들에게 효도하고 불효할 직접 권능이 그 사람에게 있는 연고라, 거기에 먼저 공을 드려 봄이 어떠하겠는가.] 그들이 다시 여쭙기를 [어떻게 공을 드리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불공할 비용으로 자부의 뜻에 맞을 물건도 사다 주며 자부를 오직 부처님 공경하듯 위해 주어 보라. 그리하면, 그대들의 정성을 따라 불공한 효과가 나타나리라.] 그들이 집에 돌아가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몇 달 안에 효부가 되는지라 그들이 다시 와서 무수히 감사를 올리거늘, 대종사 옆에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곧 죄복을 직접 당처에 비는 실지불공(實地佛供)이니라.]
핵심주제
【류성태】 자부가 산 부처
【한종만】 실지불공
【신도형】 실지불공 예
대의 강령
고부 갈등으로 실상사에 불공하러 가는 노부부를 만나자 “집에 있는 자부가 산 부처”라 하여 소태산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1) 그대들이 불공 비용으로 자부 뜻에 맞는 물건도 사주며 자부를 부처님 공경하듯 하라.
2) 그러면 그대들의 정성에 따라 불공한 효과가 나타난다.
3) 이것이 죄복을 직접 당처에 비는 실지불공이다.
용어 정의
봉래정사(蓬萊精舍) 원불교의 제법성지(制法聖地)로, 소태산 대종사가 교법제도를 제정한 집. 전북 부안군 산내면 봉래산 실상사 뒷편에 있었다. 소태산 대종사가 구인제자들과 함께 방언공사와 혈인기도를 끝낸 다음 1919년(원기 4) 10월경 부안 봉래산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월명암과 실상사에서 지내다가 1921년(원기 6)에 봉래정사(일명 석두암)를 지었다. 정사(精舍)란 정신을 수양하는 집, 또는 수행 정진하는 집이란 뜻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곳 봉래정사에서 보림(保任) 공부를 하면서 원불교의 교리와 제도를 구상·초안하고, 또한 교단의 창립 방향을 계획하면서 창립인연들을 만났다. 송규·송도성·오창건·송적벽·김남천·이청풍·김혜월 등의 제자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는데, 낮에는 산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밤에는 제자들에게 견성성불하는 법설을 설하였다. 이를 주작야선(晝作夜禪)의 생활이라 한다. 1923년(원기 8) 5월 봉래정사에서 서중안·서동풍 형제를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이듬해 2월에 봉래정사를 나와 전주·서울·익산을 거쳐 9월에 익산총부를 건설하게 되었다. 또한 소태산 대종사는 봉래정사와 실상사 월명암 등지에서 당시의 선승 백학명·한만허 등과 친교를 맺어 많은 대화와 선문답을 나누기도 했다. 봉래정사를 중심한 이곳 내변산 일대는 원불교의 제2성지 또는 제법성지로서 많은 교도들이 순례하고 있다. 그러나 봉래정사와 실상사는 6·25 한국전쟁 때 불타 버렸고, 월명암만 현재까지 남아있다. 봉래정사터만 겨우 보존되어 오다가 1980년(원기 65)에 와서 소태산 대종사의 제법을 기리는 「일원대도비(一圓大道碑)」를 세웠다.
실상사(實相寺) 전북 부안군 산내면 중계리 내변산에 있던 절.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조선 세조 때 나라에서 중창. 소태산 대종사가 1919년(원기 4) 10월경 이 곳에 와서 보림공부 겸 원불교의 교리와 제도를 초안하며 잠시 머물렀다. 얼마 후 실상사 부근에 봉래정사를 세우게 되었고 이곳 실상사 부근이 원불교의 제법성지가 되었다. 6·25 때 불타버리고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실지불공(實地佛供) 우주 만유 전체의 진리성에 바탕하여 그 대상에 따라 직접 불공하는 것. 진리불공과 상대되는 말. 삼라만상이 모두 법신불의 응화신이므로 천지에게 당한 죄복은 천지에게, 부모에게 당한 죄복은 부모에게, 동포에게 당한 죄복은 동포에게, 법률에게 당한 죄복은 법률에게 직접 불공을 올리는 것이다. 천지에 대해서는 천지 팔도를 본받아 그대로 행하고, 부모에 대해서는 부모를 공경하고 잘 받들며, 동포에 대해서는 자리이타의 정신으로 감사 보은하고, 법률은에 대해서는 모든 법률을 잘 지켜서, 사실적이고 실제적인 불공, 곧 사사불공을 하는 것. 이와 같이 무시선 무처선의 수행,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생활이 곧 실지불공의 생활이 된다. 사사천 물물천(事事天 物物天)·사인여천(事人如天)·시불(侍佛)·활불의 생활이 곧 실지불공이 된다. 일상생활 속에서 항상 경건한 생활, 땀흘리는 생활, 성실한 생활, 기도하는 생활, 남을 속이지 않는 생활이 곧 실지불공이 된다. 당처불공(當處佛供).
주석 주해
【류성태】 양하운 대사모는 남자 못지않게 모든 일을 잘 처리하므로 시아버지(박성삼)는 자부를 친딸처럼 아껴 주었다. 이따금 법성포 장에 갈 경우, 자부에게 예쁜 고무신도 사다 주고 색동 옷감도 사다주는 것은 물론 논밭에 힘겨운 일은 인부를 시켜 하게 하면서 자부를 친히 거들어 주곤 하였다. 가끔 마을 사랑방에 다니러 가면 며느리의 칭찬도 잊지 않았다. 그리하여 며느리를 친히 불공하는 등 가정이 화목했는데 이것이 바로 실지불공의 한 예라 본다.
【박길진】 부처님 앞에 공양을 올리고 불공을 올리듯이 자부나 이웃을 생각해 보자. 상대방도 자연히 불공하는 마음으로 대해 줄 것이다. 가족이 화목하고 대우받고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는 비결은 자기가 먼저 그렇게 행하는데 있다. … 가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위해주면 다 좋아한다. 특히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도 마찬가지이다.
【한종만】 ‘정산종사법어’ 원리편 1장에 우주만유가 법신불 아님이 없다고 하였다. 우주만유가 바로 법신불이라는 것이다. 교의품 4장에서 천지만물 허공법게를 부처라 하였고, ‘회보’ 32호에서 천지만물 허공법계를 생불이라 하였고, 성리품 29장에서 산업부원이 부처라고 한 것을 여기에서는 자부가 산 부처라고 하였다.
【신도형】 1) 천지만물의 당처당처에 직접 불공하라. 천지에는 보은팔조를 실행하되 응용무념의 도가 주장(主張)이 되고, 부모에는 보은사조를 실행하되 무자력자 보호의 도가 주장이 되며, 동포에는 보은오조를 실행하되 자리이타의 도가 주장이 되고, 법률에는 보은오조를 실행하되 정의를 세우는 도가 주장이 된다.
2) 감나무에 불공하면 감나무가 감응하여 좋은 수확을 한다.
3) 사람의 길흉화복이 오직 전생차생(前生此生)에 불공 잘하고 못하는데 있는 것이다. 고로 자타의 진불(眞佛)에게 불공을 잘하라. 산 부처님께 불공을 잘하라.
상황법문 : 노부부의 실지불공
변산 근방에 박주사라고 불리우는 노인이 살았다. 하루는 박주사 양주가 실상사에 불공하러 가는데 대종사가 이를 알아보고 물었다.
“노인장께선 어딜 가십니까?”
“우리 며느리가 어찌나 불순하게 하는지 실상사 절로 며느리 화해 불공하러 갑니다.”
노인 양주의 넋두리를 묵묵히 듣고 난 뒤 이윽고 대종사 물었다.
“그래 꼭 실상사 부처만 부처로 알고 불공을 가면서 자기가 가장 가깝게 하고 있는 며느리 생부처님은 모르는가요?”
노부부는 무슨 뜻인지 몰라 되물었다.
“생불이 어디 있소?”
“데리고 있는 며느리가 생불이지요. 그러니 그 불공 비용을 가지고 며느리에게 해봐요.”
“아니, 우리 며느리가 부처님이오?”
“부처지요.”
“그러면 이것으로 불공하라는 거요?”
“오늘 이것 가지고 가면 쌀 씻어 맷밥 지어 부처님 밥 지어 놓고 나물 좀 하고 떡도 좀 만들어 오늘 저녁 하루 불공하고 갈 것이지요?”
“그렇죠.”
“그러지 말고 내 시키는대로 하는데 그 쌀 팔아 돈 장만하여 그 돈으로 한 달만 불공해요. 꼭 나 시키는대로 하시오.”
“예, 해보죠. 그럼 우리 며느리가 이 시부모에게 잘 하겠소?”
“잘 하다마다요. 며느리가 무엇을 제일 좋아하던가요?”
“인조 옷 한 벌 해 달라고 했는데 못해줬더니 화가 났습니다.”
그 당시 인조 옷감이 번쩍번쩍 유행할 때라 누구나 갖고 싶어 하였다.
“예, 그러면 부처님께 불공한 폭 잡고 요 돈으로 인조 옷 한 벌 떠다가 몰래 농 속에 넣어놔요. 그리고 1주일만에 나에게 와서 감정을 얻는데, 대신 나 하라는 대로만 해야지 절대 잔소리해선 안돼요. 밥이 질면 질어서 좋다, 되면 고실고실 좋고, 옷이 길면 길쭉해 점잖아 좋다, 짧으면 말둑해서 활발해 좋다 하지 하여튼 잔소리는 일체 하지 마시오. 그리고 손자놈 업어주고 코도 닦아주고 이쁘다고 해주며, 그리고 그 무거운 나락다발, 보리다발도 좀 날러 주고 말이요.”
그래 노인 부부는 대종사 시키는 대로 비단 저고리를 떠다가 며느리 모르게 딱 넣어 놓았더니 며느리가 보고는,
“흥, 내일은 서쪽에서 해가 뜨겠구만, 무슨 맘 먹고 그러지?”
좋아하지도 않고 벤둥벤둥하고 두런두런하자 그래도 내버려두고 대종사 하라는 대로 하고 1주일이 지나 대종사에게 감정받으러 왔다. 경과 이야기를 다 듣고 대종사 물었다.
“아직 돈 남았지요?”
“예.”
“그 다음에는 며느리가 뭘 좋아하나요?”
“미투리 하나 사 달라고 했는데 못 사줬습니다.”
“아, 저런! 자, 이 돈 부처님께 불공하려면 다 들어갈 돈이니까 며느리가 신 벗고 방에 들어가거든 지푸라기 갖고 가 재 가지고 미투리 하나 꼭 사다놔요. 그리고 잔소리는 안 했는가요?”
“예, 안했습니다.”
“손자 예뻐했는가요?”
“예, 예뻐했습니다.”
“아, 방아도 좀 찧어 주지요?”
“예, 찧어 주었습니다.”
그 뒤에 신을 딱 사다 놓으니 며느리가 그때는 두런두런 하는 것이 아니라 입이 빵긋한다.
“참, 우리 시부모님이 돌아가시려나보다.”
며칠 뒤 시아버지만 실상사 초당에 왔다.
“박주사, 시키는대로 했소?”
“예, 했습니다.”
“그 다음엔 며느리가 뭘 좋아하던가요?”
“은비녀를 원했는데 못 사줬습니다.”
“돈 남았지요?”
“예, 아직 남았습니다.”
나중에 은비녀를 사다 주니 며느리가 입이 함지박 만큼 벌어졌다. 손자 이뻐하고, 집 잘 봐주고, 좋은 것을 다 사다 주니 세상에 우리 시부모님 같은 사람이 천하에 없다 싶었다.
내가 왜 그리 나빴던가. 시부모님 미워하고 죽기를 바랬던가. 참 내가 나쁜 년이다. 저런 시부모님 잘못 해 드렸다간 내가 죄 받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부터는 일이 거꾸로 되었다.
며느리가 시부모를 공경하는데 두루마기가 조금만 더러워도,
“아유, 아버님, 두루마기 벗어요. 다른 집 사랑방에 가면 흉보겠어요.”
“거, 뭐 시커멓다고 해. 아, 괜찮다.”
“아니어요, 아버님.”
하며 옥같이 빨아서 다듬이질 한다. 또 전에는 보리쌀에다 쌀 한 줌 꼭 묻어 갖고 제 새끼들만 퍼주고 시부모는 보리쌀만 주더니 이제는 어찌나 좋았던지 쌀밥만 시부모 상에 올렸다.
“얘야, 애들이나 줘라.”
“아니어요. 재들은 한참 크니 아버님이 드셔야 해요.”
아파도 약 한 첩 안다려 주고, 미음 한 그릇 안 쑤어 주던 사람이 시부모가 아프다 하면 밑에 쌀 깔고 위에 보리놓아 누른누른 주걱으로 문대어서 해 주는데 어찌나 잘 하던지 시부모가 녹초가 될 지경이었다.
“세상에 저런 며느리를 내가 왜 미워했던가?”
또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어찌든지
“시부모님 오래오래 사세요.” 하고,
시부모는 시부모대로
“세상에 저 며느리 없으면 내가 죽은 뒤 누가 제사하며, 저 며느리 없으면 누가 이쁜 손자를 낳아주겠는가? 딸 것은 다 출가외인인데…….”
그리하여 며느리는 시부모님 없으면 못 살고, 시부모는 며느리 없으면 못 살고 날이면 날마다 웃음꽃 피우며 잘 살았다.
과연 몇 달 안에 효부가 되는지라 노부부가 찾아와 무수히 감사를 올리거늘 대종사 옆에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곧 죄복을 직접 당처에 비는 실지 불공이니라.” 하시었다.
관련 법문
【한울안 한이치에 제1편 법문과 일화 2. 심은대로 거둠 42절】 한 사람이 이정은(李正恩)에게 섭섭함이 있어서 없는 허물을 짐짓 말하고 다닐 때 정은이 조실에 들어오니 말씀하셨다.
"어쨌든지 미운 생각 갖지 말고 작은 선물이라도 챙기고 해서 따뜻하게 불공을 드려라."
"그런 억울한 말을 듣고 참기도 힘드는데 어떻게 불공까지 하겠습니까?"
"바늘 구멍으로 황소 바람 들어온다고 하지 않더냐. 작았을 때 그 씨앗을 없애 버려야 한다. 명심하고 꼭 실천하여라."
정은이 이 말씀을 받들어 불공을 잘 하였더니 상극이 상생으로 돌아서 서로 심복 동지가 되었다.
【대종경 교의품 16장】 김영신(金永信)이 여쭙기를 [사은 당처에 실지 불공하는 외에 다른 불공법은 없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불공하는 법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사은 당처에 직접 올리는 실지 불공이요, 둘은 형상 없는 허공 법계를 통하여 법신불께 올리는 진리 불공이라, 그대들은 이 두 가지 불공을 때와 곳과 일을 따라 적당히 활용하되 그 원하는 일이 성공되도록까지 정성을 계속하면 시일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루지 못 할 일은 없으리라.] 또 여쭙기를 [진리 불공은 어떻게 올리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몸과 마음을 재계(齋戒)하고 법신불을 향하여 각기 소원을 세운 후 일체 사념을 제거하고, 선정(禪定)에 들든지 또는 염불과 송경을 하든지 혹은 주문 등을 외어 일심으로 정성을 올리면 결국 소원을 이루는 동시에 큰 위력이 나타나 악도 중생을 제도할 능력과 백천 사마라도 귀순시킬 능력까지 있을 것이니, 이렇게 하기로 하면 일백 골절이 다 힘이 쓰이고 일천 정성이 다 사무쳐야 되나니라.]
【대종경 선외록 8. 일심적공장 15절】 대종사 말씀하시었다. "불공을 하는 데에는 천지 만물 산 부처님에게 실지 불공을 하는 법도 있고 또는 허공 법계 진리 부처님에게 진리 불공을 하는 법도 있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불공의 효력이 빠르고 더디기는 각자의 정성과 적공 여하에 있는 것이다."
【대종경 교의품 4장】 또 여쭙기를 [일원상의 신앙은 어떻게 하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그 진리를 믿어 복락을 구하나니, 일원상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사은이요, 사은의 내역을 말하자면 곧 우주 만유로서 천지 만물 허공 법계가 다 부처 아님이 없나니, 우리는 어느 때 어느 곳이든지 항상 경외심을 놓지 말고 존엄하신 부처님을 대하는 청정한 마음과 경건한 태도로 천만 사물에 응할 것이며, 천만 사물의 당처에 직접 불공하기를 힘써서 현실적으로 복락을 장만할지니, 이를 몰아 말하자면 편협한 신앙을 돌려 원만한 신앙을 만들며, 미신적 신앙을 돌려 사실적 신앙을 하게 한 것이니라.]
【대종경 인도품 10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누구나 자기를 좋게 하려는 한 생각이 없지 아니하나, 구하는 데에 있어서는 혹은 순리로, 혹은 역리로, 혹은 사실로, 혹은 허망하게 각각 그 지견과 역량을 따라 구하므로 드디어 성공과 실패의 차를 내게 되나니라. 순리로 구하는 사람은 남을 좋게 하면서 자기가 좋아지는 도를 행하므로 한없는 낙원을 개척하게 되고, 역리로 구하는 사람은 자기만 좋고자 하여 남을 해하므로 한없는 죄고에 빠지게 되는 것이며, 사실로 구하는 사람은 모든 복락을 이치에 따라 당처에 구하므로 그 성과를 얻게 되고, 허망으로 구하는 사람은 모든 복락을 알 수 없는 미신처에 구하므로 필경 아무 성과를 얻지 못하나니라. 그런데, 세상에 순리와 사실로 구하는 사람은 적고 역리와 허망하게 구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아직도 정법이 널리 미치지 못한 연고요, 일체 인류의 정신이 고루 깨치지 못한 까닭이라. 만일 순리로 구하는 도와 사실로 구하는 도가 밝아질 때에는 곧 태양의 광명이 중천(中天)에 오름과 같아서 자타와 피차가 다 화(化)함을 얻으리라.]
위 내용은 【서문성(1996), 마음을 보는 지혜-대종경 상황법문, 71~76】, 【류성태(2008), 대종경 풀이 上, 125~127】, 【신도형(1974), 교전공부, 564】, 【원불교 용어사전】, 【원불교 경전법문집】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