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걷지 않고 달린다. 아이가 밟을 인생의 길을 평탄하게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 진 힐
무엇이 현실인가?
광고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현대인들은 광고에 포위되어 있다.
고객의 직접적인 구매 연결은 물론 잠재적 구매자를 확보하기 위한 광고도 적잖다.
오래 전 코커콜라가 갈증을 유발하기 위해 텔레비전 CF의 필름 프레임 사이에 뜨겁게 달아오른
쇳덩이의 이미지를 넣었던것도 무의식을 지배하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 브라더스나, 앤디 워쇼스키 와 래리 워쇼스키 감독의
《매트릭스》 같은 영화에 등장하는 세계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셉션>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언가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빅 브라더스에 의해 인간 삶이 구속되고 감시되는 암울한 사회를 그린 게 《1984》라면,
<매트릭스>는 디지털과 연관된 가상 세계를 파고들고, <인셉션>은 자신과 타인의 꿈속으로 파고드는
새로운 가상 세계를 펼쳐 보인다. 물론 그곳에는 자신이 설정한 꿈이 자기를 지배하는 또 다른 국면이 펼쳐진다.
영화 <인셉션>에서 주인공 코브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훔치는 것도 모자라 특정한 생각을 심어 놓는
'인셉션'이라는 작전을 수행한다. 그래서 이 영화 대사는 다른 사람의 머릿속 생각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말한다.
꿈속의 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나, 다른 사람의 잠재의식에 침투해 나의 생각을 뿌리내리려는 시도는
상품을 팔려는 광고주의 몸부림과 별반 다르지 않다.
현실에선 수많은 위인전이 어린 아이들의 의식과 무의식에 파고들며 미래에 대단히 큰 좌표로 작용하고,
자기 계발서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자기 암시 장치들은 수많은 직장인들의 의식을 묶어 둔다.
책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접하는 영화, 공연, 각종 미디어, 전시회, 소문 따위도 나의 의식(무의식)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내 머릿속의 생각들을 책이나, 각종 매체, 멘토 등을 통해 '인셉션' 하되 보다 맑고 긍정적이며
활기찬 발전을 꾀하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만약 매너리즘에라도 빠져 있다면 진취적인 생각을 인셉션 하는 것도 축복일 것이다.
타인의 생각을 읽고, 거기에 반추 · 반영된 나의 생각의 크기가 커져 간다면,
그것은 인셉션과 익스트랙션(추출)이 상호 작용하는 것일 게다.
추출되는 것은 이전의 잘못됐거나 부정확한 정보 또는 사고방식일 수 있고, 투입되는 것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하고 실행코자 하는 다른 방식의 사고와 행동 패턴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타사의 상품에
노출된 인지를 삭제하고 자사 상품의 이미지를 집어넣으려는 광고주의 목표도 인셉션 마케팅이라 부를 만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현실인가? 영화 속에는 '토템'이라 불리는 것이 나온다.
주인공 코브에게는 자신의 토템인 팽이가 쓰러지지 않고 게속 돌면 꿈이고 쓰러지면 현실이라는 식으로
꿈과 현실을 분간해 내는 장치가 있다. 아무리 타인에 의해, 혹은 자신의 무의식에 의해 영향받는 세계일지라도
현실과 가상을 구분해 낼 수 있는 장치는 있기 마련이다.
마치 우리가 꿈을 꾸며, 이게 꿈일 수 있다는 유보된 생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듯 말이다.
그나저나, 넘치는 광고물, 식료품과 공산품을 사들일 때 묻어 들어온 엄청난 양의 포장지 따위를 치우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을 해 봤다. 내가 사들인 상품 가격 중 쓰레기 가격은 얼마나 될까?
내가 힘들게 일해서 쓰레기나 모으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문 말이다.
이럴 때면 뭐가 현실인지 코브처럼 '토템'을 돌려보는 건 어떨까?
즉흥적으로 사들이거나, 가치에 대한 개념 없이 구매한 물건들이 얼마나 효용성 있게, 지금도 지속적으로 쓰이고 있는지,
진정한 만족을 가져다주는지 꼼꼼히 따져 보는 것 말이다.
전경일 님 / 인문경영연구소장. 《초영역 인재》저자
길은 떠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길을 만들기 이전에는
모든 공간이 길이었다.
인간은 길을 만들고 자신들이 만든 길에
길들여져 왔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들이 만든 길이 아니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인간은 하나의 길이다.
하나의 사물도 하나의 길이다.
선사들은 묻는다.
어디로 가십니까,
어디서 오십니까.
그러나 대답할 수 있는 자들은 흔치 않다.
때로 인간은 자신이 실종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길을 간다.
인간은 대개 길을 가면서
동반자가 있기를 소망한다.
어떤 인간은 동반자의 짐을
자신이 짊어져야만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어떤 인간은 자신의 짐을
동반자가 짊어져야만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길을 가는 데 가장 불편한 장애물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장애물이다.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버리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평탄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전자는 갈수록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후자는 갈수록 마음이 옹졸해진다.
지혜로운 자의 길은 마음 안에 있고,
어리석은 자의 길은 마음 밖에 있다.
아무리 길이 많아도 종착지는 하나다.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중에서)
첫댓글 길은 떠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가야 할 길 위로 평온이 함께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