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일 지 개야 논설위원이 올린 수필입니다.1950-60년대의 아련한 아프지만 그래도 해맑았던 추억을 잠시 되살리게 하는 것 같아 공감하고자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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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빵도 한 번 실컷 못 먹던 나무장사 인생을 다시 들춰내 뭣하나?
배고프면 밥 처먹고, 졸리면 자고, 죽는 날까지 잔 고장 없이 살아라.!
내 임시 거처인 부산 다대포항에는 벚꽃 가로수 봄노래가 한창이다. 또 다른 내가 “지개야 중놈아, 자동차 핸들을 잡아끌고 ‘내 고향 안동 갈라산 막장마을 덧티골’에 가자”고 졸라댄다. 뭐 할라꼬?
“참꽃(진달래) 구경 가자. 구름처럼 물처럼 떠도는 내가 가진 것은 시간뿐인데 못 갈 일도 없지 않은가? 일단 가자. 가는 길에 내 고향 임하댐과 안동댐 물, 낙동강 굽이굽이 휘돌아 5백리 길을 달려가자. 을숙도나 잠시 들렸다 가자.”
부산 사하구는 몰라도,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을숙도’ 생태공원 주차장에 잠시 주차했다. 차창을 조금 내리고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누웠다.
내 자동차 앞으로 긴 날개를 펼치고 나는 황새! 안동 산골짜기에서 3km나 떨어진 원림초등학교 등하교할 때 논에서 자주 보던 그 황새가 아닌가.
학교 가는 길은 소달구지도 못 다니는 좁고 꼬부라진 길이었다. 겨울이면 내복 하나에 홑바지저고리에 살을 에는 북서풍을 껴안고 학교로 갔다. 디젤 기관차가 터널을 들어갈 때 깨~엑~기적소리를 내지르듯이 우리도 그렇게 소리를 내지르며 달렸다. 검정 고무신에 구멍 난 양말을 신고서.
꽁보리밥도 없어 굶는데, 혼식(混食)을 하라는 박정희 대통령! 난 그때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했다. 우리 학교에서는 도시락에 이밥만 싸 오는 학생은 전교에 한 명도 없었다. 부잣집 복순이 도시락에도 이밥 몇 알 섞였고, 나머지 대다수 학생은 꽁보리밥 도시락이었다.
겨울 점심시간에 따뜻한 밥을 먹으려 장작 난로 위에 겹겹이 도시락을 쌓았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면 복순이 도시락에 멸치 반찬 익는 냄새로 반 아이 모두가 침을 삼켰던 가난.
그렇게 추운 겨울을 네 번이나 넘긴 5학년이 되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누런 양은 그릇에 담긴 꽁보리밥을 바람결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웠다. 몇 숟가락만 더 먹었으면 하는 아쉬움에 빨던 빈 숟가락을 내려놓고 소꼴(소 먹일 풀) 하러 간다. 덧티골 또래들은 소꼴보다 먼저 연분홍 참꽃에 누런 콧물을 섞어가며 허전한 배를 채웠다. 입술과 혀가 퍼렇게 물들고도 한참을 더 따 먹는다. “이제 고만 따 먹고 소꼴 하러 가자”고 재촉하던 우리 두목 윤OO야! 지금은 어디에 사는지? 연분홍 참꽃 물이 퍼렇게 물었던 이빨은 어떻게 되었을까?
젊은이는 내일에 희망에 사는데, 늙은 지개야 중놈은 추억에 사는 꼰대, 꼰대다. 100세에도 내일의 희망에 살면 청년, 20대 청년도 내일 없는 어제에 살면 꼰대다.
이 생각 저 생각 오만가지 생각에 스르르 잠이 들어 꿈을 꿨다. 산허리 휘감은 지게 목발 장단에 울려 퍼지는 나무꾼 노랫가락, 얼씨구 좋아라. 국화빵도 한 번 실컷 못 먹던 나무장사 인생을 다시 들춰내 뭣하나? 배고프면 밥 처먹고, 졸리면 자고, 죽는 날까지 잔 고장 없이 살아라.! 어깨를 내리치는 죽비에 깨어나니, 갈대숲 사이 저 멀리 석양빛에 걸린 밀레의 ‘만종’ 같은 풍경에 두 손을 모았다.
출처 : 최보식 의 언론(https://www.bosik.kr)
흐르는 가락은 "비내리는 고모령 - 이생강 대금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