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는 어떤 모습을 가지는가?
흰손? 꾀죄죄하거나 후줄근한 옷차림에 면도하지 않은 얼굴이나 감지 않아 헝크러진 머리?
백수는 어떤 생활모습을 보이는가?
늦잠, 게으름,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은 자유로움, 시간에 구애받지 않은 여유로움
세상에 무심한 방관자....
난 백수다.
무슨 일을 해도 내가 정하고, 한 일에 대해 나 스스로 만족하고 후회한다.
내 모습과 생활습관에 신경쓰지 않고 하고 싶은 일만 하고
하기 싫은 일은 안해도 되는 그런 백수?
모를 일이다.
세상살이에 백수라고 예외로 생활의 고민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먹고사는 일,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는 일, 그간의 얽히고 설킨 인연에서
자유로워지는 일?
그리고 감히 누구에게서도 간섭받지 않을 자유???
범재등 농막이든 원두막이든 진척이 없다.
여름 습기를 잡고 생활의 편이를 위한 집수리도 진척이 없다.
오전에 집안에서 빈둥대며 가닥없이 책을 읽거나 멋대로 글씨를 쓰다가
오후엔 가까운 산에 가곤 한다.
자주오는 애경사 소식도 뻔뻔하게 돈 몇푼으로 해결하고
직접 조문하거나 축하하지 않는다.
친구도 먼저 연락하지 않고, 제자라고 할 수도 없는 옛인연의 아이들 소식도
조금은 궁금하지만 연락하지 않는다.
어른도 찾아뵙지 않고 친척도 찾지 않는다.
그래도 처형네 혼사에는 참여해야 한다.
부산의 호텔을 잡아두고 연락을 해 온다.
바보도 금요일 오후 근무를 안하고 얼른 온댄다
그 동안 2주 남짓 길러온 입주변에 검고 흰놈이 반쯤 섞인 수염이 문제다.
바보는 깎지 않아도 상관없다지만 손질도 아한 수염에 양복을 입고 가기는
나 스스로 용납이 안된다.
미장원에 가면 면도를 해 주지 않는다.
집에서 면도기로 수염을 깎는다.
여러번 4중날 면도기를 들이대도 털이 남는다.
고약하다.
10시가 넘어 차를 끌고 공공도서관에 들러 책 세권을 빌린다.
황현산 선생의 잘 표현된 불행은 꽤 두껍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도 그렇다.
이성복의 극지의 시는 보이지 않아 이성부의 지리산을 빌린다.
세 책을 2주간 정도에 다 읽지 못할 것이다.
대충 넘기다 아마 반납시간에 맞춰 조금 더 읽다가 보낼 것이다.
도서관의 책 중 내 책은 어떤 것일까?
도서관 앞 미용실엔 사람이 앉아 있다.
지난번 바보가 머리모양이 별로 마음메 들지 않는다고 했다.
더 둘러 본다. 문이 잠겨 잇다.
오늘 벌교 장날 아닌가?
파출소 앞 정류장 장터 입구로 가 보아도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다.
벌교장도 벌써 끝났구나, 모르지 내가 한 구석만 보았으니.
모퉁이의 묘목상 앞에 가 구경하고 값을 물어본다.'대부분 만원을 넘는다.
오랜만에 이발관 문을 밀어본다.
한 중노인이 의자에 앉아 있고 여성이 의자를 뒤로 젖겨 면도를 하고 있다.
이발사가 보이지 않아 이발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가 일어나며 앉으랜다.
그가 이발사다. 전기기계를 들지 않고 가위 몇 개를 바꿔가며 이발을 한다.
면도를 않겠다고 한다. 요새는 그런 사람 많다고 한다.
샴푸하자기에 그도 안하겠다고 한다.
오만원 짜리를 내미니 만원만 받겠다고 4만원을 한참 동안 세어 내어준다.
요금표에는 이발 15,000원이라고 써 있다.
바보가 2시가지 조성으로 오라고 했다.
11시 40분이니 이른 점심을 먹고 덕촌에 들어갔다 가면 되겠다.
점심을 먹을 만한 곳을 생각하다 누군가 빵집이 유명하다는 말을 한 것이 생각나
정류장에서 물어본다.
신협옆 사거리에서 쭉 돌아가라는데 상호를 물어보니 외국이름이라 모르겠단다.
신협 도사관 4거리에서 금융조합 쪽으로 쭉 걸어가니 오른쪽에 모리씨 빵가게다.
여성 여행자 4,5명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난 문을 열고 들어간다.
빵을 내오고 진열된 것들도 비닐에 김이 서려 있다.
난 빵냄새를 모르니 값을 보고 찰빵 3,000원짜리와 납짝방 2,000원 짜리를 골라 오천원을 준다.
봉투를 사양하고 들고 나오는데 카운터의 여성이 식히지 말고 따뜻할 때 먹으랜다.
차로 돌아와 시동을 걸어 덕촌으로 가려다 한시간 남짓 놀고 가도 되겠다.
차에서 찰빵 하날 벗긴다. 너무 달다.
빵을 바꿔 먹고는 벌교여중 담장 가의 용연사 돌비석을 보고 그리 가기로 한다.
월간 송광사에서 용연사 주지를 소개한 걸 보았는데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
조용한 월곡마을으르 지나는데 길을 반쯤 막고 공사중인데
점심을 먹으러 갔다.
동네 끝으로 가파르게 올라가니 이정표가 나타나며 M!고지와 용연사 갈림길이 숲속에 나타난다.
한참동안 시멘트 비탈을 올라 입구에서 물 마른 연못이 보이는데 그게 용연인가 보다.
못 가운데 거북 모양의 돌이 보이고 가에도 돌을 세운 정지허의
어디만큼 왔니
당당 멀었다 라고 쓴 것도 보인다.
조규하의 공적비가 먼저 나타나고 좁은 골짜기에 조그마한 전각들이
여기저기 서 있ㅎ다.
빨간 단풍나무 한그루가 서쪽 언덕에 서 있다.
유자와 비파 나무가 마당에 있고 살림채를 보며 살짜기 관음전으로 간다.
마루에 앉아 볕을 죄고 싶은데 시간 여유가 그리 많지 않다.
칠성각 대웅전을 지나 찻길을 도니 숲으로 들어서는 길이 보인다.
리기다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고 햇볕을 받아 길이 빛난다.
부용산 정상을 두고 쉼터쪽으로 걸어 월곡마을 큰집 뒤로 돌아 나온다.
이화도리 그림을 보고 나오니 일꾼들이 점심을 먹고 앉아서 날 구경한다.
골목으로 들어가 윤동주의 서시를 보고 웰컴투 월곡골 그림이 붙어 있는 찻집을
지나 조선생의 문학공원에 오니, 한 떼의 떠거머리 남녀 학생들이 모여 해설사의 큰 목소리를
듣고 있다.
들어가 있는 조선생의 얼굴상을 보고 옆으로 서 있는 4부의 태백산맥 줄거리 4개를 읽어보고
벌교여중 담장을 지나 차로 온다.
벌교와 순천을 오가며 근무하면서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방학 때는 파업현장의 노동자를 찾아 위문하는 신선식 선생 친구를 잠깐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