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제 박인환 문학관 외부 전경 |
[문인의 흔적을 찾아서] 강원 인제 박인환 문학관 정책브리핑 이광이 작가 2020.11.12 낙엽 날리는 11월의 거리를 홀로 걷고 있을 것만 같은 시인 가을도 늦가을, 낙엽이 날리는 11월의 거리를 홀로 걷고 있을 것만 같은 시인 박인환.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했던 시인, 가을과 그처럼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남아 있어’, 이런 시들을 읽어보면 시가 노래 같다. 박인희가 노래 불러서 더 그렇겠지만 우리의 옛 가사(歌辭)처럼, 말이 음(音)을 타고 흐른다.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는 말은 박인환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쓴 몇몇 시들에 아주 적합한 말이다. 시를 읽으면 입 속에서 노래가 되고 그 노래가 서늘하게 들려오는, 약간 우울하면서도 서정과 낭만이 넘치는, 그는 모더니스트였으되, 우리는 그를 이렇게 기억한다. |
▲ 좌측에는 산촌민속박물관, 우측에는 박인환 문학관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
▲ 문학관 전방에 위치한 박인환 반신 동상은 안에 앉아서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우측 벤치에는 '목마와 숙녀' 시가 적혀 있어... |
박인환(1926~1956)은 강원도 인제군 인제면사무소 직원의 아들로 태어나 거기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서울로 왔다. 중학교 때 영화관을 출입한 것이 문제가 되어 경기중학교를 중퇴했다. 아버지의 강요로 평양의학전문학교를 다녔다. 해방이 되면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다시 서울 집으로 온다. 스물둘에 종로3가 낙원동 입구에 시인 오장환이 운영하던 것을 인수한 서점 ‘마리서사(茉莉書肆)’를 열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마리’는 일본의 현대시인 안자이 후유에(安西冬衛)의 시집 <군함마리(軍艦茉莉)>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고, 프랑스 시인 마리 로랑생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얘기도 있다. 마리서사는 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장 콕토 같은 외국 유명시인들의 시집과 ‘오르페온’, ‘판테온’, ‘신영토’ 같은 일본의 유명한 문학잡지들이 진열된 고급 서점이었다. 김광균, 김기림, 오장환, 정지용, 김광주, 김수영 등 여러 문인들이 자주 찾는 문학 명소가 되었고, 뒤에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의 발상지로 회자되기도 한다. |
▲ 시인 박인환의 대표작 '목마와 숙녀'에서 목마를 형상화해서 만들어 놓았는데 아이들의 작은 도서관으로 운영한다고 합니다. |
박인환은 1946년 시 <거리>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시작에 들어간다. 1949년 김경린, 임호권, 김수영, 양병식 시인과 함께 ‘신시론(新詩論)’ 동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출간하면서 모더니즘 시인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의 고향인 강원도 인제읍 ‘박인환문학관’에 가보면 1, 2층에 해방 전후의 문학공간들을 잘 꾸며놓아 옛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유명옥’도 그 중 하나다. 시인 김수영의 어머니가 충무로 4가에서 운영했던 빈대떡집 유명옥은 신시론의 산실이었다. 신시론은 서정성을 대표하는 ‘청록파’의 전통적 자연 예찬에 대한 반발과 좌우익의 정치적 대립에 따른 불안, 서구문화의 유입과 급격한 도시화를 비롯한 해방이후 특수한 상황 속에서 30년대 임화와 김기림을 이은 후기 모더니즘 운동이다. 박인환은 그해 경향신문에 입사하여 대구, 부산으로 피난하면서 종군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시를 쓰고, 영화평론을 쓰고, 신문사 사회부, 문화부 기자로 일했지만 생활은 여전히 어려운 가난한 시인이었다. |
▲ 문학관 입구 정면에 박인환 시비와 박인환 부조상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 | |
부산에서 박인환을 비롯해 김경린, 김규동, 이봉래, 조향, 김차영 등 6명이 동인 ‘후반기’를 결성, 모더니즘 운동을 이어간다. ‘6인이 한 패가 되어 당시의 기성 문단과 문화계에 반기를 드는 문학운동을 폈는데 주된 공격은 낡은 전통문학, 이른바 구태의연한 서정주의 시 내지는 감상주의에 대한 것이었고, 문단 및 문화계의 왜소한 권위주의에 대한 도전이었다’ ‘후반기’ 6인 중의 한 명인 시인 김규동이 ‘박인환론’에서 쓴 내용이다. 1953년 그는 서울로 돌아온다. 그 시절, 폐허가 된 명동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다방 ‘모나리자’, 예술인들의 보금자리 ‘동방싸롱’, 위스키 시음장으로 문을 연 술집 ‘포엠’ 등이 그들의 창작공간이자 무대였다. 훤칠한 키에 수려한 얼굴의 박인환은 당대 문인 중에서 최고의 멋쟁이, ‘댄디보이’였다. 서구 취향에 도시적 감성으로 무장한 그는 시에서도 누구보다 앞서간 날카로운 모더니스트였다. |
▲ 박인환 문학관 전경 |
1956년 이른 봄. 명동 한 모퉁이에 자리한 막걸리집 ‘은성’. 탤런트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이 집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문학과 예술의 꽃을 피우던 사랑방이었다. 송지영, 김광주, 김규동 등의 문인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백치 아다다를 불러 유명한 가수 나애심도 함께 있었다. 술잔이 돌고 취기가 오르자 나애심에게 노래를 청하는데, 마땅한 노래가 없다고 거절했다. 그 때 박인환이 호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더니 즉석에서 시를 써내려가고, 완성된 시를 넘겨받은 이진섭이 단숨에 악보를 그려갔다. 나애심이 그 악보를 보고 노래를 불렀다. 나중에 온 테너 임만섭이 합류하여 그 악보를 보고 다시 노래를 불렀고, 주위에 있던 모든 손님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 시 <세월이 가면>이다. |
▲ 문학관 내부로 들어가면 1층 전시실 입구에 박인환 시인의 앉은 모습의 동상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
▲ 안쪽으로 들어가서 1950년대 명동거리를 재현한 상점들을 둘러 봅니다. |
▲ 2층으로 올라가서 내려다 본 1층 모습(사진 좌)과 대중가요 '세월이 가면'이 탄생한 선술집 ‘은성’(사진 좌) |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그의 눈동자 입술은 / 내 가슴에 있네. // 바람이 불고 / 비가 올 때도 / 나는 저 유리창 밖 /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네. // 사랑은 가고 / 과거는 남는 것 / 여름날의 호수가 / 가을의 공원 / 그 벤치 위에 / 나뭇잎은 떨어지고 / 나뭇잎은 흙이 되고 / 나뭇잎에 덮혀서 /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그의 눈동자 입술은 / 내 가슴에 있네 /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박인환은 1956년 3월20일 세상을 떠났다. <세월이 가면>을 쓴 지 일주일 뒤였고 시인 이상의 기일로부터 나흘 뒤였다. 이상을 유난히 좋아했던 그는 이상의 기일 3월 17일 오후부터 주위 사람들과 함께 추모하며 나흘간 통음을 한다.(이상의 죽음은 1937년 4월17일인데, 박인환의 착오이다) 그날 박인환은 옆자리에 있던 이진섭에게 ‘인생은 소모품, 그러나 끝까지 정신의 섭렵을 해야지’라고 메모한 것을 주었다고 한다. 향년 31세. |
▲ 2층 전시실 전경 |
이어지는 김규동의 ‘박인환론’. ‘(목마와 숙녀) 시를 읽으면 고심참담하게 생활의 둑을 헤쳐 가느라고 방황하던 그의 모습이 연상되며, 허무하게 바라보는 시대의 지평이 보이는 것만 같다. …그는 우리 주변의 누구보다도 시의 사회성이나 역사성 문제를 자각하는 시인이었다. …서민성 내지 민중성을 획득하지 못했을 뿐 부조리와 인간 모순에 대한 회의와 감성은 대단히 날카로웠다. 그러기에 그가 좀 더 살면서 시를 썼다면 그 특유의 소시민적 비애와 고독을 벗어나 새로운 민족시의 광야에 나서게 되었을 것이다. …1956년 3월 우리는 그를 망우리에 쓸쓸히 묻었다.’ |
▲ 2층 전시실을 둘러 본 모습 ▼ | |
인제 박인환 문학관·공립미술관 개관 뉴시스 2012-10-05 【인제=뉴시스】한윤식 기자 = 강원 인제 박인환 문학관과 내설악 예술인촌 공립미술관이 5일 개관식을 갖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박인환 시인의 문학적 열정과 업적을 기리는 박인환문학관은 총사업비 38억2100만원을 들여 지난 2009년12월9일 착공돼 이날 개관하게 됐다. 문학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건축면적 640㎡으로 주요공간으로는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다목적실로 구성됐다. 전시실에는 박인환 시인이 활동한 한국전쟁후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과 시인과 관련된 인물, 서점, 다방, 선술집 등의 역사적 명소를 현장감있게 재현해 박인환 시인의 문학적 세계를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또 지난해 마을미술프로젝트 공모사업으로 추진한 시인 박인화 거리 조성은 아치조형, 시가 열리는 나무, 책읽는 목마, 하늘이 비치는 시 벤”, 시인의 꿈 등 6개의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됐다. 이와 함께 지난 2009년12월9일 착공해 이날 개관된 내설악 예술인촌 공립미술관은 25억200만원을 들여 지하1층, 지상2층 건축면적 255.49㎡ 규모로 상설전시장, 기획전시실, 수장고, 세미나실로 구성됐다. 인제군 관계자는 "박인환 문학관과 공립미술관의 개관으로 지역의 다양한 문화예술분야에 살아있는 생명력과 숨결을 불어넣는 대표적인 공공문화 기반시설로 자리매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박인환 문학관 위치도 |
지도 상단 빨간선 시작점에 주차. 빨간선 끝 지점에 박인환 문학관이 위치. 소재지 : 강원 인제군 인제읍 인제로156번길 50 |
지도 하단의 A 화살표 지점에 박인환 문학관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상단의 인제군청을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