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
자정이 훌쩍 넘었습니다. 너는 하품하는 이모티콘으로 내게 잘자라고 했어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 들렸을까요? 요즘 나는 내가 알던 많은 너를 잃었고 꼭 그만큼의 모르는 너를 봐요. 겁도 없고 전보다 강해졌고 성숙해졌다는 너. 어쩌면 전보다 더 부드러워질 것도 같아요. 코스모스가 저를 활짝 펼치고도 흔들흔들 바람을 이겨내는 것처럼요. 너는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거나 가로수 사이로 휘적휘적 걸어가곤 했어요. 각설이 같다며 웃기도 했던, 시공을 훌쩍 뛰어넘어 먼 길로 가는 이의 뒷모습이 그럴 거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네가 사라진 곳에서 나는 시를 쓰죠. 늦은 오후의 금빛 햇살이 창으로 스밀 때마다 너는 배경으로 섰어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소가 부드러웠어요. 때로는 그런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말을 이젠 믿기로 합니다. 언어가 되지 못한 말과 풍경들이, 혹은 이모티콘 하나로. 저 눈부신 시간을 볼 수 있도록. 빛이 꺼질 먼 훗날에 나는 얼마나 환하게 울게 될까요.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밤, 나는 사랑의 통속적인 속성을 적어봐요. 서로의 혀를 핥던 기억 저편에서 이편으로 넘어오는 네가 보여요. 사랑은 이렇게 자정을 지나 돌아가는 거였구나. 잘 자, 너도.
언젠가 했던 말 기억할지 모르겠다
한 문장만 읽어도 도지는 병
나는 오랫동안 그랬다
숨바꼭질 속 술래가 되어 이 말 저 말을 찾아다녔다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다니던 나는
어딜 가나 한 사람이 따라왔고
그때마다 허공의 너에게 말했다
멜랑꼴리한 각본은 그렇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등을 떠미는 바람으로 걸어가는 말
거식증이 명치를 누르고
한 움큼 도진 병이 사방에 흩어진 거리
버려도 버려도 주머니는 가득해서
언젠가 네가 했던 말을 찾아다녔다
가야 할 길과 지나온 길을 되짚다가
남겨진 사진을 확대했다
조각상 그리팅 맨, 인사하는 사람들
가장 겸손한 인사는 15도로 숙인다고 했다
그러니 너도 인사 좀 해봐
뭐 어때? 보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머리를 조아려 너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두고 온 말들이 그제야 떠오르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는 거라고
너도 기억할지 모르겠다
파주 헤이리 마을에 숨겨둔 그리팅 맨
꽁꽁 숨어 찾을 수 없어도 우리는 그렇게
늙어갈 수도 있겠다 인사하면서,
최형만_2024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23년 천강문학상 시 대상.
《2024 다층 여름호》
첫댓글 빛이 꺼질 먼 훗날에 나는 얼마나 환하게 울게 될까요,ㅡ
오늘 내게 던진 메시지 같아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