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고 싶다는 딸아이의 한마디로 시작된 '미국 문학여행', 3년 전 여름 '남부 문학여행'부터 시작해 이듬해는 '중부 문학여행', 그리고 올해는 '서부 문학여행'을 다녀왔다. 해가 갈수록 여행 일정이나 방법도 진화되어 올해는 더더욱 알차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하나하나 상세히 기록하고 싶었지만 너무나도 바쁜 여름을 보내다 보니 시간이 허락하지 않고,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우선 경로를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에서 샌디에고로 들어가,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로스앤젤레스로 들어와서는 남 캘리포니아대학으로 알려진 USC의 웅장한 도서관 도헤니 Doheny Library부터 방문했다.
역시
규모가 대단했고 딸아이가 무척 좋아하는 작품 '프랑켄슈타인'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은 딸아이가 기대를 많이 했는데, 영어 선생님인 칼리지 카운슬러와의 미팅에서 "하이스쿨 여름 방학을 어떻게 보냈느냐?"라는 질문에 문학여행 이야기를 하자 아주 좋다며 다녀와서 이야기 들려달라며 큰 관심을 보이셨기 때문이었다.
더 브로드
뮤지엄과 프랭크 게리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길을 건너니 오렌지빛의 미니 전차 '엔젤스 플라이트'가 있었다. 걸어내려오는 게 빠를 것 같은 전차의 종점인 그랜드 마켓으로 들어가 잠시 구경했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 LA 퍼블릭 라이브러리로 들어갔다. 1986에 있었던 도서관 대화재를 다룬 베스트셀러, 수잔 올린의 [The Library Book] 을 발견하고 기뻤다. 우리 동네 도서관에도 가장 잘 보이는 코너에 진열되어 있던 책인데 책 내용의 현장인 도서관에서 만나니 더더욱 반가웠다.
조지
오웰의 [1984] 출간 70주년을 기념하는 공간이 마련되어있고, 'Big Brother is STILL Watching You'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도서관이라 기프트숍을 운영하고 있는 점이 특이했다. 프리다 칼로의 토트는 아주 독특하고 예쁘다.
넓은
카페도 마련되어있었는데 도서관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벽의 대형 사진들이 참 좋았다.
LA
퍼블릭 도서관은 도서관 건물 자체 구경도 좋지만 바로 건너편 언덕은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가파른 듯하지만 금세 오를 수 있는 신기한 계단이다. 다 올라와 뒤를 내려다보니 작은 성취감에 뿌듯했다. 아담한 분수며 돌벤치, 조각품 등 아기자기 신경써저 잘 꾸며두었다.
입구의
램프가 아름다운 LA 카운티 뮤지엄으로 갔다. 멋진 작품들을 하나하나 감상했다.
마티스,
고흐, 모딜리아니, 자코메티 등 대가들의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갤러리 작품들은 정말 대단했다.
인근에서
가장 맛있다는 한식집을 찾아보니 'GENWA'라는 곳이 나왔다. '젠와' '겐와' 뭐가 정확한 발음인지는 모르겠지만 분위기도 깔끔하고 반찬 가짓수가 어마어마해 감동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헌팅턴 라이브러리로 출발했다. 굉장히 넓은 곳임을 알았기에 오전 시간을 오롯이 보낼 작정으로 왔지만, 예상외로 볼 것들이 너무 많아 점심시간을 훨씬 넘겨서까지 머물렀다.
특히
도서관은 분야별로 나누어져 있고 놀라운 희귀도서들이 많았다.
아트
뮤지엄을 구경하는 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고, 이런 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니 무척 행복하고 감사했다.
야외
뮤지엄도 멋지다.
차분하고
평온한 느낌의 야외 가든도 좋았다.
기프트숍
규모도 역시 대단하다. 시간이 허락할 때 하나하나 상세히 소개하고 싶은 곳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를 하며 설레었던 여행지 오하이 Ojai 로 들어갔다. 이번엔 꼭 밝은 대낮에 들어가리라 야무지게 계획을 하고 갔다. 맨 먼저 들른 '바츠 북스' 아이들과 함께 했던 미국 대륙횡단 길, 너무 늦어 꽁꽁 닫힌 서점 밖에서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굴렀던 그 서점을 이제서야 다시 찾아올 수 있었다.
오래전
그 기억이 새롭다.
책방
안으로 발을 내디디니 감개무량했다. 역시 먼 길을 돌아돌아 찾아와 볼 만한 곳이었다. 구석구석 미로처럼 책장이 많아 각자 흩어져서 관심 있는 책들을 구경했다. 한 시간 정도 후 모여 테이블 위에 골라온 책들을 올려놓으니 나는 문학, 남편은 여행, 딸은 역사, 아들은 수학 책들이었다.
차에
탄 뒤 오하이 다운타운 방향으로 달리는 동안 종이 백에서 구입한 책을 꺼내 뒤적거리고 있는데 앞자리에 탄 아들이 "엄마가 좋아할 것 같은 게 있는데"라고 했다. 뭔가 하고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노란색의 무인 가판대였다. 남편이 차를 세우자마자 딸아이와 얼른 내렸다. 갓 딴 과일들을 판매하고 있었고, 12개에 $2이라고 적혀있었다. 딸아이와 하나 둘 헤아리며 담고 있는데 저기서 바구니 하나 가득 들고 환하게 웃는 모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방금 땄다며 거의
비어가는 광주리를 가득 채웠다. 밤에 호텔로 돌아가 테라스에 나와 먹었는데 꿀맛이었다.
오하이밸리에는
서부의 가장 유명한 보딩 스쿨 중 하나인 케이트 스쿨이 있다. 그곳도 잠시 들렀다.
오하이
다운타운에서의 저녁식사. 꽤 오래 기다려야 했지만 분위기도 맛도 최고였다.
다음날
아침, 다시 오하이로 들어갔다. 오하이에서는 하루만 보내고 떠날 계획이었지만 와 보니 이곳에서 하루만 보내고 간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밤 호텔을 잡은 뒤 다음날 아침 새로운 북스토어에 들렀다. 서점의 뒷마당에는 작은 기차 모양의 서점이 또 있다.
기차
모양 서점 뒤에 있는 작은 오두막도 서점이다. 책 구경을 마치고 계산을 하러 가니 우리가 고른 책들이 이 동네 사는 유명한 과학자의 서재에서 다 나온 책이라며 신기해했다. 그 과학자는 자신의 컬렉션들을 묶어서 판매하겠다고 해서 고민을 하다가 구입했는데 대단한 책들이라고 했다. 마침 그날 책방 앞에서는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고 딸아이는 강아지 그림이 그려진 동물보호단체 티셔츠를 구입하고 싶다고 했다. 가격은 $2, 딸아이가 돈을 내려고 하자 물건 주인은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고 뉴욕에서 왔다고 하자, 그럼 이 티셔츠를 자주 입으라며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 단체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털북숭이
강아지 두 마리가 우리를 반긴다. 우리가 그곳을 떠날 줄 모르고 좋아하자 서점 주인아주머니가 나오셔서 친절하게 두 마리 강아지의 출생 이야기부터 들려주셨다. 길 건너편에서 태어난 하얀 털북숭이 아이 이름은 '리드' 라고 했다. 책방을 지키는 강아지 이름이 '읽다'라는 의미의 'Read' 라니 참 기발하다. 다른 한 마리 이름은 '쓰다'라는 의미의 'Write' 인거 아닐까?라고 했는데 물어보니 그건 아니었다ㅎㅎ. 이렇게 신기한 서점들이라니. 이런 특별한
책방에서는 발길이 쉬이 떨어지질 않는다.
서점에서
나와 오하이 다운타운으로 다시 나갔다. 예정에 없던 하루가 늘어났으므로 여유 있게 돌아보기로 했다.
오하이
다운타운의 선물가게에서 만난 에머슨의 말. 마음에 담았다.
아트센터도
있고, 오하이의 중심인 리비 파크에서 한 시간 정도 잔디에 누워있다 가고 싶었다.
오하이
라이브러리, 그리고 그 옆의 라이브러리 북스토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곳곳에
오렌지 나무들이다. 이곳도 무인 가판대. $5를 넣어두고 오렌지 한 포대를 가져왔다.
오하이에서
마지막 일정은 크리슈나무르티 라이브러리였다. 첫날 일정에 넣어두었던 곳인데 급하게 돌아보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내가
가진 책 [크리슈나무르티와 함께한 1001번의 점심 식사]는 크리슈나무르티를 존경해 그의 요리사로 자청해 들어가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곁에서 먹거리를 준비해주고 말벗이 되어준 이가 쓴 책이다.
도서관에는
한국 번역판 [크리슈나무르티의 마지막 일기] 도 있다.
한국
번역본들이 상당히 많다.
차와
강냉이, 땅콩, 과자를 맘껏 들고 가라고 했다. 도네이션만 하고 밖으로 나왔다.
야외
정원. 이곳에서 가꾼 식재료들로 밥을 하고, 치료를 위한 약재도 재배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 모두 오하이가 참 좋았다. 오하이 일정을 늘려 하루를 더 묵을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그렇게 되면 또 많은 곳을 포기해야 하기에 산타바바라로 넘어갔다.
싼타바바라의
아침, 무료로 제공되는 호텔 식사를 포기하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빵 종류도 다양하고 맛있고, 더불어 분위기도 좋은 브런치 집이 있다고 했다. 가는 길이 아주 멋지다.
금세
알아볼듯한 예술가들의 그림들이 걸려있다. 뜻밖의 행운이다.
헬레나
베이커리에 도착해 꽤나 긴 줄을 서야 했지만 마냥 좋았다.
각자
주문한 음식들이 모두 맛있었다. 다음 싼타바바라 여행길에 꼭 다시 들르고 싶은 곳으로 기억해둔다. 헬레나 베이커리.
호텔로
돌아가기 전 해변을 좀 거닐기로 했다. 이것저것 구경거리가 많다. "분명 아빠도 노랑머리 아가씨처럼 저렇게 이야기할 거야, 그치?" 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키다리
야자수, 정말 길고 높다.
산타바바라에는
좋은 호텔들이 많았다. 바닷가 앞 호텔 캘리포니아도 최고였다.
덴마크
마을 솔뱅으로 들어갔다.
빨간
풍차가 돌아가고 벽에는 예쁜 그림과 글씨들이 있고, 달콤하고 향긋한 빵과 초콜릿, 사탕가게가 즐비한 곳, 동화 속 나라에 온 것 마냥 들뜨는 동네이다.
안데르센
동상도 있고, 안데르센 뮤지엄도 있다.
예전에
들러서 많은 책을 구입했던 북로프트에서도 한 시간가량 책 구경을 했다. 이곳에서 구입한 D.H. 로렌스의 [아들과 연인] 책은 고이 간직하고 있다.
이름도
긴 센 루이스 오비스포 San Luis Obispo에서는 이곳의 명소로 알려진 '마돈나인'으로 갔다. 마돈나와 관련이 있는 곳인가 했더니 그건 아니었다. 외관이 독특하다.
핑크
빚으로 단장한 이곳에서는 달콤한 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을 먹어봐야 한다고 했다.
레스토랑만
있는 곳이 아니라 숙소를 같이 운영하고 있는데 모든 룸이 다른 디자인과 색상으로 꾸며져있다.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으로 구경할 것이 많다. 자체 기념품들도 아주 다양하다.
다음날
아침 센 루이스 오비스포 다운타운 구경에 나섰다. 여기도 시애틀처럼 큰 규모는 아니지만 껌벽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와서 구경을 했다. 갤러리도 많고 학구적인 분위기였다.
이곳에
캘리포니아 스테이트 폴리테크닉 유니버시티, 칼 폴리 Cal Poly가 있다.
서부
여행에서 놓치면 안 된다는 허스트 캐슬 라이브러리 투어에 참가한 날은 안개가 엄청났다. 안개 때문에 경치가 안 보이겠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더더욱 멋진 풍경을 감상하게 되었다.
허스트
캐슬은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여러 종류의 투어로 나누어 진행이 되는데 우리는 라이브러리 투어를 선택했다. 게티 센터처럼 안내소에서 지정된 시간 입장료를 받고 대형버스를 타고 캐슬까지 올라가게 된다. 안내센터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메인 하우스인 캐슬 투어에 참가하고 라이브러리 투어에 가는 사람은 우리 가족밖에 없었다.
가이드가
아주 설명도 잘 하고 다정해 투어가 즐거웠다.
가장
인기가 많은 수영장도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빅서
Big Sur로 넘어오면서 들른 헨리 밀러 라이브러리, 헨리 밀러의 친구가 그를 위해 집을 개조해 만든 도서관이다. 지난번 빅서를 방문했을 때도 문이 닫혀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이다. 지나가는 여행객이 짧은 오픈 시간을 맞추는 것이 참 쉽지가 않다. 헨리 밀러의 대표작 [북회귀선]에 보면 이 도서관의 사진이 실려있기에 내부는 어떤 모양인지 알 수 있지만 그래도 직접 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이번 여름 파리 여행길에 책에 나오는 파리 거리거리를 걸어보려고 들고
갔던 책이다.
그렇게
해안 도로를 따라 카멜 바이 더 씨로 가는 길은 예전과 하나도 변함이 없었다.
캘리포니아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카멜 바이 더 씨'로 들어가서는 미션 렌치 Mission Ranch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경영한다는데 이름 그대로 평화로운 곳이었다. 자리가 금방 없다고 해서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양복을
멋지게 갖춰 입은 할아버지의 피아노 라이브 연주가 이어지는 실내도 좋지만, 우리는 야외로 나갔다.
아.
하늘도 바람도 좋았다. 샴페인과 로제 와인을 주문했다.
하나씩
음식들이 나오고,
해지는
모습을 좋아했던 어린 왕자처럼 아무 생각 없이 벤치에 오래도록 앉아 해지는 모습을 기다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밖으로 나왔다.
조금
걸어 양떼 목장과 랜치 숙소 구경을 했다.
카멜
바이 더 씨에서 보낸 다음날 아침 브런치 먹을 곳들이 많았다.
카멜의
공립 도서관, 해리슨 미모리얼 라이브러리
도서관
앞 길에는 리틀 라이브러리도 있다.
카멜은
걸어 다니기만 해도 즐겁다.
반가운
닥터 수스 그림들,
기프트숍에
들러 토트도 사고 딸아이 옷도 샀다. 기온이 내려가 긴 바지가 필요했다.
바닷가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몬터레이가 나온다. 존 스타인 백의 [캐너리 로] 배경이 된 곳이다.
119회
US 오픈이 몬터레이 페블비치에 있어서 호텔 룸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몬터레이 하얏트 리젠시는 바다와 골프장을 끼고 있어 뷰가 아주 멋졌다. 다음날 아침 식사에는 골프장이 보이는 레스토랑 창가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가족들이 잠든 새벽에 혼자 나와 기다리며 커피를 여러 잔 마셨는데도 모두들 친절하게 대해주어 감사했다.
맛있는
빵들이 많아 탄수화물 과식을 했다.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몬터레이 시내로 나갔다. 올드 캐피털 북스를 방문하고 싶어서였다.
역시
몬터레이는 어딜 가나 존 스타인벡이다.
다음에
찾아간 곳은 존 스타인벡 라이브러리. 도서관 앞에는 스타인벡 동상이 서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가족들 사진들도 벽에 걸려있다.
존 스타인벡
룸이 따로 마련되어있다. 컬렉션이 방대하고 한국어 섹션도 따로 되어있었다.
도서관에서
연결된 북스토어도 잘 꾸며져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책을 읽고 로스쿨에 관심이 생긴 딸아이가 최근 읽었던 소토 마이어 책 [My Bloved World] 책이 있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뉴욕에서 태어나 힘든 유년시절을 보내고 미국 역사상 세번째 여성 대법관이자 소수민족으로서는 첫번째 대법관이 된 소냐 소토마이어, [길 위에서 하버드까지] 와도 비슷한 내용의 책인데 프린스턴과 하버드를 졸업하고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나온 이야기이다. 딸아이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책을 읽고나서는 로스쿨과 대법관의
꿈을 꾸었는데, 소냐 소토마이어 책을 읽고나서는 '아 이건 안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그 자리가 얼마나 엄청난 희생과 열정과 노력을 요하는지, 모든 방면에서 완벽해야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통제하고 절제해야만 가능한 자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래전에 읽은 책 내용이지만 고개가 끄덕여졌다. 최근 도서관과 서점에서 많이 보게 되는 [The Editor] 재클린 오나시스 케네디의 뉴욕 출판사 에디터 시절
이야기이다.
점심
식사는 인근의 존 스타인벡의 하우스에서 하기로 했다. 지난번 방문했을 때 역시 문을 닫아 밖에서만 보고 간 곳이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문을 닫기 30분 전이었는데 앞치마를 두른 자원봉사자분들이 열렬히 환영해주셨다. 식사 주문을 한 뒤 집안 곳곳에 걸려있는 스타인벡의 사진들 설명을 해주었다. 가족들과 찍은 셀카도 있었다.
테이블에
놓인 유리잔, 그릇 하나하나에 글씨가 새겨져있다.
점심이
늦은 바람에 마지막 손님이 되어 모든 분들이 우리 테이블로 오셔서 친절하게 이야기도 나누고 서빙을 해주셨다. 디저트를 고르는 과정에서 딸아이가 아이스크림과 케이크 중에 결정을 못 하며 어느 것이 칼로리가 낮으냐고 묻자 헬렌 미렌을 닮은 할머니는 다정한 눈으로 딸아이를 바라보며 어깨에 손을 얹으시더니 "얘야, 인생은 아름답고도 짧단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인생을 살아야 해. 먹고 싶은 거 원 없이 먹으렴. 자 뭐 먹고 싶니. 네가 결정해"라고 하셨다. 진심이
담긴, 그분의 인생이 느껴지는 그 몇 마디에 왠지 뭉클해져 눈물이 날 뻔했다.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기프트숍으로 내려왔다.
구경거리가
많았다. 일반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한정판들도 많다.
벽화가
걸린 내셔널 존 스타인벡 센터
예전에
왔을 때 못 보았던 새로운 것들도 있다.
기프트숍
규모가 커졌다. 스타인벡 센터도 꼭 가보라 하셨던 카운슬러 선생님에게 선물할 다이어리도 하나 골랐다.
오랫동안
가봐야 할 리스트에 들어있었던 케플러스 북스도 들렀다.
스탭추천
책으로 이번 서부 여행 동안 자주 보았던 책은 베트남계 미국 작가인 오션 부옹 Ocean Buong의 [On Earth We're Briefly Gorgeous]였다. 이 서점에서도 가장 많은 스탭이 추천한 책이다. 앞 몇 페이지를 읽어보다가 참 좋은 책이라는 생각에 구입을 했다. 한국에는 번역본이 나와있지 않은 것 같은데 읽어보고 학생들에게도 추천해줄 생각이다. 크리슈나무르티 책이 있고,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 도 있다.
오래전에
읽었던 이 책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여행 중이라면 더더욱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스탠퍼드로
들어와서는 예전에 묵었던 호텔을 다시 찾았다. 그때 한참 공사 중이었는데 재단장 후 모습이 궁금했다.
클럽
라운지에서 뷰도 좋았다.
저녁식사를
하러 피셔먼즈 와프로 가기 전 샌프란시스코를 한눈에 내려다본다는 장소로 갔는데 안개가 자욱했다.
피셔먼스
와프로 갔다. 날씨 때문인지 지난번과 달리 길거리에 주차 공간이 꽤 있었다.
가장
맛있는 게를 먹을 수 있다는 '프란시스칸 크랩 레스토랑 Franciscan Crab Restaurant'은 입구부터 독특했다.
벽에는
유명인 사진들이 빼곡히 붙어있었다. 우리가 앉은 자리에서 바라보는 뷰도 멋졌고, 저 멀리 알카트라즈도 눈에 들어왔다.
신기한
구경거리가 많았다.
각종
해산물을 주문했는데 그중에서도 크랩이 정말 일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깜깜해졌다.
낮이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베이커리는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새
밤 10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차를 타고 호텔로 한참 달리다 보니 바람소리가 심했다. 남편은 계속 뒷자리에 문이 열린 게 아니냐 물었다. 조금 있으니 아들이 뒷 유리창이 깨진 것 같다고 했다. 차를 세워 내려보니 정말 그랬다. 트렁크 공간의 작은 유리창을 깨고 가방들을 가져갔다. 다행히 우리는 호텔에 짐을 두고 왔기에 우리 셋의 가방은 무사했지만, 룸메이트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간 딸아이의 짐가방은 그대로 차에 두었는데 없어졌다. 작아서 밖에서는 잘 안
보였을 텐데 그제서야 트렁크에 쇼핑백을 두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쇼핑백이 가득 있었으니 뭔가 돈이 될만한 게 많을까 하고 차 유리를 깨고 들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쇼핑백은 모두 다 책이었고, 책들은 하나도 없어지지 않았다. 도둑이 책들을 가져가서 읽는다면 이런 짓을 하지 않고 멋진 인생을 살텐데 왜 책은 가져가지 않았을까 하고 우리는 허탈하게 웃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유진 오닐이 [밤으로의 긴 여로]를 쓴 타오 하우스 Tao House 투어가 예약되어있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국립공원으로 미리 뉴욕에서 날짜와 시간을 지정해 예약을 하고 왔었다. 샌프란시스코 중심에서는 꽤 떨어져 있는 곳이라 깨진 유리창을 하고 복잡한 출근 시간에 그곳까지 갈 수도 없었고, 해결해야 할 일들도 있고, 이래저래 심란해 도저히 갈 상황이 아니었다. 우버를 타고라도 다녀올까 밤새 고민을 했지만 결국 가지 못했다. 하루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우리가 뉴욕으로 돌아가야 할 날이었다. 하필 하루 전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호텔 앞 스탠퍼드 대학 투어는 그대로 참가하기로 했다.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스탠퍼드 캠퍼스로 온 딸아이를 만나니 더더욱 심란했다. 하룻밤 사이에 짐가방을 홀라당 잃어버렸으니.. 여행 중에 산 옷들도 아끼던 신발도 모두 사라졌다. 인 앤 아웃 버거 티셔츠도, 벼룩시장에서 얻은 강아지 그림 티셔츠도, 카멜 바이 더 씨에서 구입한 짐팬츠도 몽땅 없어진 것이다. 괜찮다고 하하 웃었지만 괜찮을 리가 없는데.. 파란 하늘의 캠퍼스를 신나게 걷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졌다.
예전과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다.
투어를
마치고 도서관 구경을 갔다.
스탠프도
아트 뮤지엄도 들렀다.
좋은
작품들이 많았다.
학교
인근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블루 보틀 커피점에서 커피도 한 잔 마시고, 팔로 알토 우체국으로 가서 그동안 사모은 책들을 미디어 메일로 모두 보냈다. 엘스워스 캘리 기념 우표가 나와있어서 구입했다.
공항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렀던 곳은 프레시디오 Presidio에 위치한 루카스 필름이었다. 깨진 유리창을 한 차가 들어오니 가드가 입구에서 막는다. 다행히 잘 들어왔고 요다 분수 바로 앞에 주차를 했다. 공항으로 가기 위해 모든 짐들을 차에 실은 상황, 누가 또 깨진 유리창 사이로 들어가는 건 아닐까 별생각이 다 들었다.
아이들이
좋아할 공간이었다.
책들도
많다.
시간이
될까 안될까 했는데 다행히 여유가 있어 차이나타운의 그린 애플 북스에 들렀다. 이곳 또한 대단한 서점이었다. 여행 중에 사모은 책들은 다 보냈기에 책을 더 살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본 책, 판매는 하지 않는다던 책 'Portrait of the Writer'는 꼭 사고 싶었다. 그 외 사고 싶은 책들이 많다고 걱정을 하자, 남편과 아이들이 각자 백팩에 공간을 만들어 몇 권씩 넣어주었다. 토트도 하나 사고, 무사히 뉴욕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커다란 노란 봉투 하나가 집으로 도착했다. 유진 오닐의 타오 하우스에서 온 것이다. 그날 급하게 예약을 취소하며 미안하다며 상황 설명을 했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유감이라는 메모와 함께 타오 하우스 안내지와 엽서들까지 꼼꼼히 챙겨 집으로 보내주었다. 감동이었다. 작년 봄 브루클린의 BAM에서 관람했던 제레미 아이언스 열연의 [밤으로의 긴 여로]의 감동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유진
오닐에 관한 많은 자료들을 보면서 "우리의 열두 번째 결혼기념일, 사랑하는 아내에게, 나의 눈물과 피로 쓴, 내 오래된 슬픔에 대한 이 극본을 당신에게 바치오.." 로 시작하는 그의 편지와 작품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의 오랜 슬픔과 삶을,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
문학여행에서 유진 오닐의 타오 하우스에 들르지 못한 것이 잃어버린 가방보다도 더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지금 심정으로는 당분간은 샌프란시스코에 다시 가고 싶지 않지만, 타오 하우스는 조만간 꼭 들를 것이다. 생각지 못한 작은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올해 미국 문학 여행도 잘 마쳤다. 미국 동부는 안가본 곳 없이 다녔고, 남부, 중부, 서부 문학 여행까지 마쳤으니 엄마 노릇을 조금은 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