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화진의 옛터 ●
양화진의 옛터는 조선시대 국방의요 요충지였다. 영조 30년(1754)에는 한강수로의 정비를 통해 수도를 방아하기 위해 이곳에 군진이 설치되어 상비군이 주둔하였다.이 곳을 양화진공원으로 조성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군진 옛터 의 일부를 장대석으로 구획해놓았다.
●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
양화진은 조선시대 교통과 국방의 요충지였기에 영조 30년(1754년) 군진이 설치되었다. 조선 조정은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이 양화진까지 들어오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로 이곳에서 천주교인들을 처형했으며, 그로 인해 절두산 이름도 갖게 되었다.
복음이 선교사에 앞서 전해진 한반도에는 조선의 문호가 개방되고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들어온 1885년 이래 서양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입국하였다. 1890년 7월 미국인 의료선교사 헤론이 새망하자 미 공사관은 조영통상수호조약에 의거하여 조선 조정에 묘지를 요구하였으며, 조선 조정은 몇 차례의 담판 끝에 한양에서 멀지 않은 양화진 인근의 땅을 제공하였다. 이를 계기로 양화진에는 외국인 묘지가 조성되었고, 해방 이후 주한 미군의 묘지로도 쓰였다.
양화진에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복음화 근대화를 위해 진력한 선교사와 그 가족의 묘소가 있는데, 이들은 복음전파와 성경번역, 교육과 의료사업, 그리고 당시 조선의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했다. 재단법인 한국기독교 100주년기념재단은 1985년 경성구미인묘지회로부터 양화진외국인묘지 소유권을 증여받았다. 재단은 양화진을 개신교 성지로 가꾸기로 결정하고, 1986년 한국 교회 성도들과 재계 인사들의 헌금으로 선교기념관을 건립했으며, 당시 선교사들이 출석하던 서울유니온교회로 하여금 묘지를 관리하면서 선교기념관에서 예배하도록 했다.
한국기독교 100주년기념재단은 정부와 서울시에 명실상부한 개신교 성지공원으로 조성해 줄 것을 거듭 청원하였다. 그 결과 2003년 서울시와 마포구는 개신교의 양화진외국인묘지와 천주교의 절두산 성지를 아율러 '양화진 성지'로 명명하고, 두 성지 사이에 양화진성지공원을 조성했다. 재단은 2005년 7월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회'를 설립하여 양화진외국인묘지와 경기도 용인의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보존하여 명실공히 개신교 성지로 가꾸는 일을 전담토록 했다. 재단과 100 주년기념교회는 마포구청과 협의하여 이 묘원의 명칭을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으로 정했으며, 관련 규정을 정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ㅡ참고ㅡ
■ 양화진의 옛터와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대한 내용은 각각의 안내판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