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만원권 도안을 바탕으로 제작한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왼쪽),
김기창이 그린 세종대왕 초상화를 바탕으로 도안한 1만원권 지폐(가운데),
세종대왕 초상화를 그린 운보 김기창 화백(오른쪽)
이순신 장군 동상과 함께 대한민국의 한복판인 광화문 광장을 지키고 있는 세종대왕 동상. 2009년 세워진 뒤 우리 국민은 물론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장소의 하나로 떠오르면서 서울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쌍꺼풀이 없는 눈에 코가 두툼하며 얼굴 윤곽도 둥글어 후덕한 인상을 준다.
동상을 조각한 김영원 작가는 세종대왕이 54세에 세상을 떠난 점을 고려해 열정적으로 일하던 40대 후반의 모습을 담았다고 했다. 우리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풍기는 이 동상을 보면서 실제 세종대왕과 얼마나 닮았는지 궁금해 한다.
조선시대에는 자신의 초상화를 갖는 데 대해 매우 영광스럽게 여겼다. 공신들에게 주어지는 여러 가지 특전 중 초상화 제작이 가장 으뜸이었다. 임금의 초상화인 어진도 다수 그려졌다. 어진이 가장 많았던 왕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로 기록에 의하면 무려 26점에 달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1935년 일제 통감부의 어진 수리 과정을 적은 '영정 수개 등록'은 태조, 세조, 원종(인조의 생부), 숙종, 영조, 연잉군(영조의 왕자시절), 정조, 순조, 익종(효명세자·헌종의 생부), 헌종, 철종, 고종, 순종 등 12명의 임금 어진 46점만 표시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전소됐으며 이후에도 대궐에는 화재가 잦았다. 이로 인해 숙종 이전의 어진은 이 당시에도 없었다. 태조, 세조, 원종 어진은 봉안처가 궁궐 밖이어서 예외였다. 세종대왕 어진도 애초 다수 존재했지만 전란 등으로 불에 탔을 것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세종대왕 얼굴을 알 길은 없다.
동상의 작가는 운보 김기창 화백이 그린 세종대왕 초상화와 태조 이성계, 영조 대왕, 고종의 어진, 그리고 TV에 나온 왕손 이석 씨('비둘기집'의 가수)를 종합적으로 참고해 만들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운보의 세종대왕 초상화를 바탕으로 디자인한 1만원권 지폐의 세종대왕과 같아도 너무 같다.
운보의 세종대왕은 공교롭게도 작가와 매우 닮았다. 이 때문에 초상화를 제작하면서 운보가 자기의 모습을 표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운보의 친일행각이 드러나면서 화폐도안을 다른 인물로 교체해야 한다는 견해가 나왔으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