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혼례식 호남성(湖南省) 형양현(衡陽縣) 남단에 위치한 수구산(水口山)중턱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치며 산중을 헤매는 인물이 있었다. 두 줄기 강줄기가 합해지는 곳에 위치한 수구산은 험하기로 소문나 있었고, 산짐승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었다. '틀림없이 이 근방에 있다고 들었는데 자객문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이지……?' 그는 어딘가를 찾는 듯한 모습이었고, 그 곳이 초행인지 이곳 저곳 을 살피며 다녔다. 우우우우―! 집에서 기우는 개의 곱절 크기의 흑랑(黑狼)떼가 그의 주변으로 모 여들며 울부짖었다. 흑랑을 발견한 인물은 청색의 수실이 손잡이에 달려 있는 검을 뽑아 들고 제자리에 섰다. 그가 검을 들고 있는 모양새가 제법 배운 자세였고, 검의 날은 얼마 나 날카롭게 세웠는지 별빛을 반사시키고 있었다. 흑랑 몇 마리가 그의 주변을 스치고 맴돌자 그의 날카로운 검이 한 바퀴 돌았다. 휘이이익―! 커엉컹―! 두 마리의 흑랑이 발목이 잘려나가 쓰러져 발버둥을 치고 있자 동료 의 피 냄새를 맡은 다른 흑랑들이 일제히 울부짖었다. 우우우우우―! 그것이 신호였는지 점점 많은 수효의 흑랑들이 모습을 드러내 그를 향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고, 그들의 시퍼런 안광은 그의 전신에 꽂히고 있었다. 검을 들고 있는 인물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했다. '빨리 흉측한 저 놈들을 해치우지 못한다면 잘못 하다간 봉변을 당 하겠다.' 판단과 행동은 동시에 이루어졌다. 지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몸을 띄 운 인물은 검을 휘두르며 흑랑들을 공격했다. 피할 사이도 없이 흑랑 몇 마리가 그의 공격에 피 분수를 뿜으며 고 통스런 모습으로 지면에 나뒹굴었다. 검을 휘두르는 기세에 밀려 그를 공격하지 못하였던 흑랑들은 동료 들이 검에 베여 울부짖자 눈에 뵈는 게 없는지 일제히 그를 향해 달 려들었다. 수천 번을 베고 또 베어도 끝없이 달려드는 흑랑떼에 인물은 점차 지쳐 가는 자신의 상태를 알아채곤 일 검을 긋는 동시에 근처에 있 던 아름드리 나무의 높은 나뭇가지 위로 뛰어 올랐다. '헉헉헉……! 네놈들이 아무리 용맹하다해도 나무를 기어오르지 못 하니 감히 나를 해칠 수 없다.' 사내는 굵은 나뭇가지 위에 몸을 기대고 편히 앉아 운기행공을 하여 기운을 차렸다. 그 와중에도 나무밑동에선 흑랑떼가 날카로운 발톱 으로 줄기를 긁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발톱 밑에 가시만 꽂히자 흑랑들은 제자리에 엎드려 그가 내 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천 마리의 흑랑들이 죽거나 상처를 입어 혈향(血香)을 풍기고 있 었고, 그 냄새를 맡았는지 호랑이 십여 마리가 나타나 수구산이 울 리도록 포효하였다. 크아아앙―! 호랑이가 나타나자 경미한 부상을 입은 흑랑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였고, 나머지는 이를 드러내며 맞서려 하였다. 하지만 만수의 제왕이라는 호랑이에겐 흑랑떼가 그저 먹이로 보였는 지 심한 부상을 입어 바닥에 누워 있는 흑랑들을 커다란 입으로 물 고 뒤흔들었다. 심한 부상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던 흑랑 몇 마리가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채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호랑이들은 얼굴을 피로 물들이며 흑랑을 뜯어먹었고, 그 모습을 본 흑랑떼는 전의를 상실했는지 순식간에 다리를 놀려 자리를 피해 사 라졌다. 호랑이들은 나무를 잘 탄다는 소문을 들은 사내가 검을 들고 긴장하 는 동안 호랑이들은 그를 흘낏 쳐다보더니 바닥에 죽어 있는 흑랑들 을 먹고 있었다. 손쉽게 차지한 먹이를 두고 위험을 자처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는지 배불리 먹은 호랑이들은 물을 먹기 위해 천천히 산 아래로 모습을 감추었다. 사내는 자신의 무공으로 십여 마리의 호랑이쯤은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었으나 힘을 비축해야 했다.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이루려고 나무 꼭대기로 오른 사내는 사방 을 두리번거렸으나 워낙 어두워 자세히 살필 수 없었다. '분명 이 근처이니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야겠군.' 사내는 위에서 내려와 나무 줄기를 얼기설기 엮더니 그 위에 누워 잠을 청했다. 뾰로롱―! 산새의 청아한 지저귐에 잠을 깬 사내는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위로 쓸어 올렸는데 그는 바로 은하전장의 신산수재(神算秀才) 역랑기(力 郞麒)였다. 나무 꼭대기로 오른 그는 사방을 둘러보다가 일 리 정도 떨어진 서 남쪽 방향에 석비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더니 나무에서 내려와 그쪽 을 향해 신형을 움직였다. 워낙 산세가 험하고 밀림이 울창해 이 장 높이의 석비가 있는 곳에 도착하니 그의 화려한 의복은 모두 아침이슬과 땀에 흠뻑 젖어 있었 다. 석비에는 자객비(刺客碑)란 세 글자만 세 치 깊이로 음각되어 있었 고, 오래 전엔 붉은 물감으로 채색을 하였는지 검붉은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역랑기는 품안에 넣고 다니기엔 다소 커다란 상자와 서찰을 꺼내 석 비 앞 편편한 바위에 내려놓고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이제 머지않아 은하전장이 내 손아귀에 들어오겠지? 천천히 내 할 일이나 하며 시간을 때운다면 누구도 나를 의심하지 못할 것이다.' 역량기는 자신이 이곳에 왔다는 증거를 남기기 않기 위해 경신술을 펼쳐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그는 사부의 명으로 지부를 방문하는 중이었고 어제 오후에 형양현 을 떠났으니 될 수 있으면 빨리 소양현(邵陽縣)에 도착하여 이곳에 서 허비한 시간을 벌어야 했던 것이다. 산 아래로 내려간 역량기는 자신이 타고 왔던 소선을 이용해 강을 건넜고, 그곳부터는 말을 이용해 전력으로 달려갔다. 역량기가 상자와 서찰을 가져다 놓은 석비 근처에서 흑의를 입은 인 물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석비로 다가갔다. 복면을 하였기에 그의 용모 또한 감춰져 있었고 손에도 검은 장갑을 끼어 나이조차 짐작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다만 키와 몸매로 보아서 사내인 것만은 분명했다. 상자를 열어본 사내의 눈에 휘황찬란한 보광이 이글거렸다. 상자 속에는 주먹만한 칠채묘안주(七彩猫眼珠)을 비롯하여 금강석, 피수주(避水珠), 피화주(避火珠)등 값비싼 보물들이 가득 들어 있었 다. 금전으로 환전하면 족히 황금 십만 냥에 해당하는 엄청난 청부 금이었다. 사내가 뚜껑을 덮고 서찰을 펼쳤다. < 자객가주(刺客門主)께 청부할 대상은 다정공자(多情公子) 전소추(全昭秋)이며 나이는 이십 대 초반이고 사문과 사부가 철저히 비밀에 쌓여 있음. 지금 거주지 는 은하전장 총단이며 팔월 팔일에 옥수불패와 혼례식을 거행할 것 임. 자객문에서 혼례식날 그자의 목숨을 취해주면 지금 가져다 놓은 청부금의 세 배를 더 주겠소.> 복면의 사내가 대소를 터트렸다. '우하하하……! 미친 놈! 무명소졸 한 명을 해치우는데 황금 사십만 냥을 내 놓겠다니 어리석기 짝이 없는 놈이구나. 청부금이 높으니 청부를 접수하였음을 가주께 아뢰고 네 놈의 소원을 풀어주지……!' 복면의 사내는 수구산 정상 쪽으로 신형을 날리다가 단애가 있는 곳 으로 뛰어들었다. 이십여 장을 떨어져 내린 복면의 사내는 자신의 한쪽 발로 남은 발 등을 차서 속력을 줄이고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동혈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세인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수구산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 는 곳에 있는 동혈을 개조하여 자객문을 세운지 벌써 이십 년의 세 월이 흘렀다. 초혼신수(招魂神手) 냉나후(冷羅侯)는 지난 이십 년간 청부받은 모 든 인물을 제거하고 대금으로 받은 재물을 이용해 세력을 키워갔다. 자객문이 처음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린 이십 년 전에는 불과 열 명 의 자객으로 시작하였지만 지금은 특급살수 일백 명에 일급살수 이 천 명을 거느린 중원제일의 자객집단이 되었다. 딸린 식솔과 종복까지 합하면 자객문에 거주하는 자는 육천 명에 이 르렀으나 청부금만으로도 의식주 모두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 다. 본래 천연동굴엔 일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광 장이 있었다. 갈수록 인원이 늘어나자 전각을 증축하는 일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 으나 이미 일 년 전부터는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워낙 많은 전각이 이미 세워졌기 때문이었다. 자객문에선 최소 황금 오천 냥의 청부금이 없으면 청부를 받지 아니 했는데 어쩌다 들어오는 청부 덕택에 자객이 놀고 있는 형편이었다. 확고한 지위와 풍족한 생활에 만족하던 초혼신수 냉나후는 요즘 들 어 근심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자신의 나이 사십이 될 때까지 여러 명의 처첩과 잠자리를 같이 하 였지만 자식을 보지 못하였던 그의 세 번째 첩 소면독심(笑面毒心) 현유림(玄惟琳)이 낳은 유일한 핏줄인 날수인요 냉예향(冷藝香)의 기행(奇行) 때문이었다. 친우인 백수호접 연교매와 중원을 유람한다고 나갔던 냉예향이 소복 을 입은 채 돌아와 자객문을 해체하고 선행을 행하라며 졸라대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초혼신수는 그리 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돈 받고 사람 죽이는 일을 지시하는 자신도 식솔과 수하들을 위해 이 젠 돌이킬 수 없는 악행을 자행해왔기 때문이었다. 자객문은 정사마를 가리지 않고 청부 맡은 일을 수행하였으며 심지 어는 황궁의 인물도 예외 없이 죽였기에 사실 무림의 공적으로 간주 된 단체였다. 중원에서 별호도 없어 무명소졸이나 다름없는 전소추라는 사내가 죽 어서까지 자신들을 지옥에서 구해주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한 냉예 향이 요즘 들어 식음을 전폐하고 그에게 가야한다고 속을 태우고 있 었다. '어휴……! 애지중지 키운 딸년이 저 모양이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 인가? 중원을 구경한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들어주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괜한 허락을 하여 이지경이 되었으니……!' 그가 고민을 하고 있는데 복면을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오체 투지의 예를 갖추며 입을 열었다. "사부님! 황금 사십만 냥이 걸린 청부가 접수되었습니다." 초혼신수 냉나후가 고민을 떨쳐 버리고 말했다. "그래? 청부한 자와 청부받은 자가 누구냐?" 복면을 한 사내는 초혼신수가 아끼는 제자 소리장도(笑裏藏刀) 마벽 규(馬碧奎)로 냉나후의 진전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자였다. 특급살수로 키워진 그 역시 한번의 실수도 없이 부여받은 임무를 성 실히 수행하였다. 잔인한 성격이 흠이었지만 심지가 곧았으며 초혼 신수에게만은 충성을 다하는 자였다. 소리장도 마벽규가 지니고 온 상자의 뚜껑을 열고 서찰을 꺼내자 초 혼신수가 손을 뻗었다. 서찰은 냉나후의 손으로 빨리 듯 날아가 그 의 주름진 손에 얹어졌다. 서찰을 펼쳐든 냉나후의 두 눈에서 시퍼런 안광이 서리서리 뿜어져 나왔다. "청부받은 자가 전소추란 이름을 쓰고 있단 말이지……?" 냉나후는 전소추란 자에게 속아 식음을 전폐하고 있는 여식을 생각 하고 이를 갈았다. 뿌드드득―! "마벽규! 청부를 접수하였다. 이번 청부는 본좌가 직접 나설 것이니 너도 특급살수 네 명을 추려 즉시 대기하라." 냉나후의 얼굴 근육이 실룩거리자 마벽규는 고개를 숙였다. "존명……! 지금 당장 준비시키겠습니다." 냉나후는 즉시 서찰을 들고 여식인 냉예향의 규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규방은 불을 밝히지 않아 어두웠기에 냉나후는 등잔에 불을 밝히며 말했다. "향아야! 청부가 들어왔다. 이 청부서를 보면 너의 마음이 달라질 것이니 읽어보렴……." 냉예향은 침상에 누워 있었는데 곡기를 끊은 지 벌써 칠 주야가 지 나 안색은 몹시 창백하였고, 입술을 갈라졌으며 아름답던 용모 또한 많이 망가져 있었다. 그녀는 부친의 말에 대꾸도 없이 돌아 누워 버렸고, 냉나후는 서찰 을 펼쳐 그녀의 면전에 들이대며 화를 내었다. "흥……! 못난 자식 같으니라고……! 네가 죽었다고 하는 놈을 누군 가 죽여달라고 청부하였다. 지옥에서 너를 구원해 주었다는 그놈의 혼례식이 내달 팔 일에 있는데 그날 죽여달라는 청부다." "뭐라구요……? 어디봐요!" 눈을 감고 있던 냉예향이 서찰을 빼앗다시피 잡아채더니 급하게 내 용을 읽었다. 처음엔 몹시 격분한 듯 숨을 몰아쉬더니 고개를 갸웃 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버님! 은하전장의 옥수불패와 혼례식을 올리는 사람과 동명이인 일 거예요. 저희들이 그 분을 죽일 당시 비취장미 석운교와 동행을 하고 있었거든요." 냉예향은 그가 이미 이승을 떠난 사람이라고 단정짓고 있었기에 그 렇게 믿고 싶었던 것이다. 냉나후가 노기 때문에 검미를 치켜올리며 말했다. "이번 청부는 아비가 맡을 것이다. 네가 동행을 하여 그 자가 맞는 지 확인을 해라. 만일 그자가 네가 말한 자라면 너를 농락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냉나후의 엄명으로 냉예향과 백수호접 연교매는 먹기 싫은 영약을 억지로 먹어야 했다. 그녀들의 원기가 회복될 때까지 며칠을 기다린 냉나후가 제자인 소 리장도 마벽규를 포함한 특급살수 다섯을 데리고 수구산을 떠났다. 초혼신수 냉나후는 분개한 상태였지만 냉예향과 연교매는 은하전장 의 손녀사위가 자신들이 만난 사람과 동일인이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잊으려하면 할수록 더욱 그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혼례식 전날 여명이 밝아오자 은하전장의 정문에 모습을 드러낸 장 주와 전소추, 하운미가 찾아오는 축하객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인사 를 나누고 있었다. 소림사 장문인 태허신승(太虛神僧)이 제자 각공선사(覺空禪師)와 십 팔나한(十八羅漢)을 거느리고 찾아왔다. 방명록에 서명을 한 태허신승이 은하전장주 하해청에게 다가와 합장 을 하며 말했다. "아미타불……! 손녀의 혼례를 경하드리오." 현천천검도 합장을 하며 입을 열었다. "허허! 장문인, 먼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장문인께선 별고 없으시지요?" 태허신승이 미소지으며 답했다. "허허허……! 장주께서 매년 시주를 많이 해 주시는 덕분에 잘 지내 고 있소이다." 태허신승이 다소곳이 서 있는 하운미와 전소추를 바라보더니 장주에 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미타불……!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외다." 현천천검이 태허신승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장문인께서 그렇게 보아주시니 고맙습니다." 태허신승의 일행이 접객당주의 안내로 내원으로 들어가는 동안 정문 에 허름한 마의 걸친 칠십이 훨씬 넘어보이는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 다. 방명록에 서명을 한 노인이 전소추를 기이한 눈초리로 바라보더니 현천천검에게 다가왔다. 누구인지 몰라 말문을 열지 못하였는데 노 인이 먼저 말을 건넸다. "후후후……! 소요곡(消遙谷)의 곡주 사의(死醫) 설비홍(薛飛弘)이 외다." 노인은 현천천검에게 자신의 소개를 하자 장주가 예를 취하며 말했 다. "처음 뵈어 곡주를 몰라 본 것을 용서하시오. 곡주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는데 요즘도 인체에 대한 연구를 하신다고 들었소이다." 사의 설비홍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허허허……! 연구를 한답시고 여러 사람의 목숨을 거두었지요." 소요곡주는 현천천검 옆에 서 있던 전소추를 자세히 주시하며 나직 이 입을 열었다. "기이한 신체를 지녔군. 충분히 연구해볼 가치가 있겠어……!" 현천천검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쯧……! 사의께선 너무 심한 농담을 하십니다." 현천천검의 비꼬는 말에 신경 쓰지 않고 소요곡주가 계속 빤히 쳐다 보자 전소추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생의 신체가 이상하게 보이십니까……? 소생은 의술을 전혀 익히 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면 곡주님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소요곡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내자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채 일각이 지나지 않아 화산파의 장문인 복호참마(伏虎斬魔) 악자량( 岳滋亮)이 제자 무적천검(無敵天劍) 나웅천(羅雄擅)을 앞세우고 은 하전장을 방문했다. 그들과 인사를 나눈 전소추는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무적천검이 매우 심지가 곧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현천천검은 손녀사위가 될 전소추가 약간 건방지게 보였다. 정도 명문세가의 가주들이 후기지수와 제자들을 데리고 방문하였고 그때마다 전소추는 허리만 조금 굽히는 예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후쯤 백의장삼을 입은 팔십은 돼 보이는 선풍도골의 노인 이 오십이 가까운 초로의 호리호리한 체구를 지닌 인물과 이십 대 초반의 진정 아름다운 여인이 방문하여 자신과 인사를 나누게되자 전소추는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최대한 공경한 자세를 취하여 현천 천검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제갈세가의 가주 만상만박(萬狀萬博) 제갈천우(諸葛天宇)와 그의 독자 대라현자(大羅賢子) 제갈형률(諸葛亨律) 그리고 손녀 천 혜옥녀(天慧玉女) 제갈윤지(諸葛潤芝)였다. 이상하게도 그들에게 공경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전혀 꾸밈이 없는 행동으로 보였다. 특히 반나절동안 서서 손님을 맞이하며 별로 표정이 변하지 않았던 전소추의 얼굴은 그들이 입장한 후부터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전소추는 사부 천하제일뇌 제갈황의 후손을 만나자 마치 자신의 친 족을 만난 것같이 반가웠던 것이다. 오후 내내 미소를 잃지 안던 전소추가 정문을 들어서는 일단의 무리 들을 본 후 잠시 싸늘한 안광을 뿜었다. 가슴에 당(唐)자를 수놓은 의복을 입은 그들은 고향에서 보았던 사 람들이었고, 절대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사십오 세 정도로 보이는 중년의 인물이 멀리 떨어진 서탁 위의 방 명록에 참석자들의 신상명세를 기입하는 것을 보고 이를 갈았다. 뿌드드득―! 사천당가의 인물이 쓴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사천당가 가주 독심수라(毒心修羅) 당무룡(唐武龍)이 자식 생사천 수(生死千手) 당혁기(唐奕麒), 여식 사갈서시(蛇蝎西施) 당빙옥(唐 氷玉) 당가의 무사 이십 명과 참석하여 은하전장주의 손녀의 혼례를 경하드립니다.> 그들은 은하전장주에게만 가볍게 인사치레를 하고 거만하기 짝이 없 는 행동을 취하며 안으로 안내되었다. '어찌된 일인가……? 그 자리는 당혁린의 자리이거늘 저 자가 어떻 게 당가의 가주가 되었단 말인가? 그럼 혁린과 초혜는 저자에게 제 거되었다는 것인가……?' 그 이후 전소추는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는지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가 현천천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머리가 복잡하니 이제 좀 쉬어야겠습니다." 현천천검은 의아하였지만 손녀 하운미에게 그와 같이 들어가 쉬라고 말했고, 그들 남녀는 손님에게 결례가 된다는 것을 생각했는지 죄 송스럽다는 말을 하고 유운각으로 향하였다. 현천천검 홀로 정신 사납게 쏟아져 들어오는 축객(祝客)을 맞이하며 힘든 하루의 마무리를 짓고 있었다. 밤새도록 당혁린과 당초혜 남매의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전소 추가 날이 밝아올 무렵 잠시 눈을 붙였다 일어나 보니 침상에 누워 있어야 할 하운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월쌍살을 불러 물어보니 이미 혼례복을 입고 혼례식 준비를 하고 있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아……! 오늘이 바로 혼례식이 거행되는 날이지?' 당가 남매의 걱정을 잠시 접어둔 전소추의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아무리 철석간장(鐵石肝腸)을 지닌 사내라도 그날만큼은 안절부절 하기 마련이었다. 전소추도 자신이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알고 미소를 지었다. 일월쌍살은 소림사의 고수들이 방문하였다고 하자 변장을 하였고, 전소추는 그들에게 될 수 있으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지 말고 조심 하라고 당부했다. 그들의 신분이 발각(發覺)나면 혼례식장은 아수라 장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월살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핫……! 주공의 혼례식을 망칠 생각이 없으니 멀찌감치 떨어져 구경이나 하겠습니다. 대신 우리들은 노총각이니 짝을 찾아주십시 오." 일월쌍살의 말에 전소추가 파안대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 총각이라고? 하긴 살벌한 살기가 몸에 배어 있으니 어 떤 여인이 접근하려 하겠나……?" 일월쌍살이 그의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주공의 말씀대로 우리에게 올 처자가 없겠지요……?" 전소추는 낙심한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후후후……! 다음에 미매에게 부탁해볼 테니 기다려보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들의 얼굴에 기대가 된다는 표정이 역력했고 홍조를 띄운 채 사라지자 전소추는 유운각으로 들어가 운기행공을 하였다. 십이대주천을 마친 전소추는 상쾌한 기분을 느끼며 환광검을 감싼 봇짐을 침상 밑에 두고 혼례복을 걸쳤다. 병기를 지닌 채 혼례식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유운각을 나선 전소추가 혼례식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의 군계일학의 뛰어난 용모는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서도 단 연 돋보였다. 단상의 상석엔 구파일방의 장문인과 세가의 가주를 비롯한 정도명숙 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소림사 장문인 태허신승(太虛神僧) 무당파 장문인 백운진인(白雲眞人) 곤륜파 장문인 곤륜신검(崑崙神劍) 양덕화(楊德華) 아미파 장문인 금정신니(金頂神尼) 화산파 장문인 복호참마(伏虎斬魔) 악자량(岳滋亮) 종남파 장문인 무적교수(無敵巧手) 궁예철(宮銳鐵) 점장파 장문인 창천대협(蒼天大俠) 천운악(天雲嶽) 청성파 장문인 절정신협(絶頂神俠) 추련상(秋攣霜) 공동파 장문인 멸절참혼(滅絶斬魂) 용사린(龍奢璘) 개방 방주 표풍신개(飄風神 ) 진우평(秦雨 ) 제갈세가 가주 만상만박(萬狀萬博) 제갈천우(諸葛天宇) 단목세가 가주 철혈무존(鐵血武尊) 단목풍(段木風) 독고세가 가주 검령만리(劍靈萬里) 독고천(獨孤天) 사천당가 가주 독심수라(毒心修羅) 당무룡(唐武龍) 석가장 장주 금적산(金積山) 석대숭(石大崇) 소요곡주 사의(死醫) 설비홍(薛飛弘)등 정도 무림을 대표하는 모든 이들이 착석한 채 혼례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아래 그들의 수제자와 자식들이 시립하여 경사스런 혼례식을 빛 내고 있었다. 그 건너편에는 그들을 따라온 수행원들과 구경온 사람 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전소추는 의형인 곤륜철협 사우인과 그 옆에 다정스레 대화를 나누 고 있는 비취장미 석운교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활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들 남녀도 다정공자 전소추가 동명이인 인줄 알고 있었기에 이쪽 은 바라보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밀어를 나누다가 우연히 비취장미가 전소추와 얼굴이 마주쳤다. 그녀의 놀란 모습도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전소추가 눈짓을 하 자 그녀는 옆에 있는 곤륜철협의 옆구리를 찌르며 전소추를 가리켰 다. 전소추는 곤륜철협과 얼굴이 마주치자 전음을 보냈다. '의형! 오랜만이오. 형수님이 되실 석소저와 잘 지내고 있는 걸 보 니 보기에 좋소이다.' 곤륜철협은 반가움에 입이 귀밑까지 길게 찢으며 그에게 전음을 전 했다. '아, 아우! 살아 있었군… 우형은 자네가 익사한 줄 알고 그 동안 얼마나 상심했는지 아는가?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 주어서 정말 고 맙네.' 전소추가 미소를 지으며 전음을 보냈다. '후후! 의형, 그때 우리를 해치려던 흉수를 잡기 위해 속여서 죄송 합니다. 흉수를 잡긴 잡았는데 잔뜩 골탕을 먹이고 놓아주었는데 시 간이 지체되어 의형과 길이 어긋났지요.' 곤륜철협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전소추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런데 자네가 어떻게 이곳에서 혼례를 올리는가?' 전소추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전음으로 답했다. '의형을 따르려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의형이 석소저에게 연정을 품 고 있어 제가 방해가 될까봐 따로 석가장으로 가려다가 그만 일이 이렇게 꼬였습니다. 어……? 혼례식이 시작되려하니 끝나고 회포를 풉시다.' 진행을 맡은 총관 철수무정랑(鐵手無情郞) 서극(徐克)이 큰소리로 외쳤다. "신부 입장" 혼례복을 입고 곱게 화장을 한 옥수불패 하운미가 시녀들과 같이 나 타나 전소추에게 다가왔다. 전소추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눈을 의심했다. '미매가 너무도 아름답구나…' 전소추가 다가오는 하운미를 바라보고 넋이 빠져 있는 동안 하객들 이 술렁거렸다. "은하도루의 옥수불패가 은하전장주의 손녀였단 말인가?" 그들이 술렁거리고 있을 때 하객들 틈엔 자객가주 초혼신수 냉나후 와 소리장도 마벽규가 살수 넷과 같이 서 있었다. 그 곁에 소복을 입은 날수인요 냉예향과 백수호접 연교매가 전소추 를 주시하며 전신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초혼신수 냉나후가 냉예향에게 전음을 보냈다. '흥……! 너희들의 모습을 보니 저 자식이 분명 틀림이 없구나. 내 저 자식의 가랑이를 찢어 처참히 죽이리라.' 그는 제자인 소리장도 마벽규와 살수들에게 지령을 내렸다. '저 자식을 지금 당장 제거 할 것이니 본좌를 호위하라.' 초혼신수와 자객들이 하객들 틈을 파고들며 전소추와 거리를 좁혀갔 다. 전소초는 하운미가 마주보고 혼례식을 시작하려는데 피부를 찢을 듯 다가오는 살기가 감지되자 황급히 하운미를 밀쳐냈다. 그 순간 초혼신수 냉나후와 소리장도 마벽규, 자객 넷이 검을 빼들 고 전소추에게 일 검을 그었다. 쐐에에엑―! 쉬이익-!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시퍼렇게 날을 세운 여섯 개의 검이 전소 추의 전신에 몰렸고, 찰나의 순간 그는 삼십육 방위 중에서 건(乾) 의 방위로 몸을 솟구치며 쌍장을 퍼부었다. 고고고고공―! 까가가가강―! "으헉……!" 다섯 개의 검을 퉁겨낸 그였지만 초혼신수의 검은 피하지 못하고 가 슴에 상처를 입었다. 물론 그가 경황중이라 호신강기로 전신을 보호하지 않은 까닭이었고 초혼신수가 사용하는 검이 금강불괴도 가를 수 있는 신병이기였던 모양이다. 만일 호신강기를 둘렀다면 상처를 입지 않음은 물론 초혼신수는 물 론 그의 수하들 모두가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전소추의 혼례복 위로 서서히 붉은 선혈이 배어 나오자 마음약한 여 인들의 입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전소추는 침착하게 자 신을 벤 사람이 누군지를 살피고 있었다. 난생 처음 대하는 칠 척의 키에 건장한 체구를 지닌 육십 세 전후의 노인이 검을 겨누고 있었다. 그는 무표정한 모습이었지만 얼굴근육 을 실룩이는 것으로 보아 몹시 격분한 모양이었다. 그의 검이 다시 전소추의 전신을 파고들 때 다른 자들의 병장기도 일제히 그를 향해 쇄도함과 동시에 일제히 비수를 꺼내 그에게 던졌 다. 쉬이익! 쐐에에엑……! 전소추는 황급히 신형을 뒤집으며 유령환위보(幽靈換位步)와 마영무 흔(魔影無痕)의 경공술로 그들의 공격을 피하려 했다. 쐐에에엑―! 찌이익―! 열 개의 비수는 모두 피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초혼신수 냉나후의 검은 또다시 그가 입은 혼례복을 찢으며 스쳤다. 그의 등에 또다시 한 치 깊이의 상처가 생겼고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전소추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에게 노 화가 치솟아 막 공력을 끌어올려 장력을 날리려는 찰라 소복을 입은 여인 둘이 그를 가로막으며 울며 애원했다. "흐흐흑……! 안돼요! 제발 그를 살려주세요." 그 사이 일월쌍살과 곤륜신협이 병기를 빼들고 전소추를 보호하려 달려나왔고 은하전장의 호위무사들과 정도 명숙들도 그들을 에워싸 며 외쳤다. "살겁을 일으키는 저들을 잡아라……!" 초혼신수는 일 검만 더 그으면 전소추의 가랑이를 벨 수 있다고 생 각했는데 여식이 가로막자 일을 그르쳤다고 생각했는지 품속에서 주 먹만한 구슬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펑―! 순식간에 시커먼 운무가 그 곳을 뒤덮었고, 다가들던 사람들은 우왕 좌왕했다. 섣불리 병기를 휘둘렀다간 하객들끼리 서로 부상당하게 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흑연(黑煙)이 걷히자 전소추를 공격하였던 자객들과 소복을 입은 여인들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지라 모두들 두 눈을 뻔히 뜨고서도 아무도 제 지를 할 수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곤륜철협이 피를 흘리고 있는 전소추를 끌어안으며 사의를 향해 황 급히 소리쳤다. 그의 혼례복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곡주께선 방관만 하실 요량이십니까? 시급히 환자를 치료해 주십시 오." 사의 설비홍이 다가와 상처를 살피고 전소추의 맥을 집어보더니 고 개를 저었다. "으음……! 상처는 깊지 않으나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소생하기 힘들 겠소이다. 빨리 안으로 옮기시오." 하운미가 울음을 터트렸다. "흑흑흑……! 가가! 제발 죽지 마세요." 사우인이 그를 안자 하운미가 길을 안내해 내원의 유운각으로 향했 다. 전소추는 의식을 완전히 놓아 버린 상태로 사우인의 품안에서 축 늘어져 있었다. 침상에 전소추를 내려놓은 사우인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제 간신히 다시 상봉했는데 그를 돕지 못하였으니 이러고도 내가 그의 의형이라 할 수 있겠는가?" 사의 설비홍은 유운각에 들어온 하운미까지 모두 물리치고 전소추의 의복을 벗기고 상처에 고약한 냄새가 나는 약을 바르며 미소를 지 었다. 전소추의 상처가 아물며 메스꺼운 냄새를 피워 내었다. 사의가 눈을 가늘게 뜨며 전음을 보냈다. '흐흐흐……! 자네의 신체는 정말 괴이하다니까……? 연극은 그만 두고 이제 일어 나는 것이 어떤가……?' 그러자 죽은 듯 미동도 않던 전소추가 한쪽 눈을 떴다. '후후! 곡주의 영약 덕분에 흉터가 크게 남지 않겠지요?' 사의가 괴이한 미소를 지으며 역시 전음으로 답했다. '흐흐흐! 노부는 자네의 상처에 부시독을 발랐는데 영약이라니 듣기 가 좋군. 상처가 저절로 아물고 있어 심심하였거든……!' 전소추는 황급히 일어나 사의가 바른 부시독을 닦아내며 투덜거렸다 '후후……! 사의어르신 장난이 지나치셨습니다. 좋은 약들 다 놔두 고 하필 부시독을 바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의가 답하지 않자 전소추는 다시 침상에 누워 버렸고 사의가 그의 옆구리를 비틀며 답했다. '노부가 보기에 자네가 만독불침지체 같아 시험해본 것을 가지고 투 덜거리긴… 자네의 사문은 어디인가?' 전소추는 옆구리가 아파 얼굴을 찡그리며 답했다. '아이구……! 환자에게 이러셔도 됩니까? 좀 놓고 말씀하십시오. 죄 송하지만 제 사문은 밝힐 수 없습니다. 제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비 밀로 하기로 했거든요. 다만 마도(魔道)나 사도(邪道)가 아니라는 점은 밝힐 수 있습니다.' 사의는 그의 맥을 다시 집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금강불괴지신에 만독불침지체, 천향지극색염체를 동시에 지니고 있 다니 자네를 키운 곳이 어디인지 정말 궁금하지만 밝힐 수 없다니 그냥 넘어가지… 헌데 노부에게 의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나? 혼례식 이 끝나면 시간 되는대로 소요곡에 한번 들리게나.' 사의는 전소추 가슴에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부위를 툭툭 치 더니 밖으로 나갔다. 그때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인물들이 사의가 모습을 보이자 달려들며 아우성 대었다. "사의! 손서의 목숨이 아직 붙어 있소?" "사의어르신! 저의 상공을 살려주세요." "곡주님! 아우의 상세가 어떻습니까?" "사의! 만일 주공의 목숨이 끊어졌다면 우리 형제의 검이 가만히 있 지 않을 것이오." 사의 설비홍은 귀찮다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다정공자의 신체가 튼튼해 목숨을 건졌으니 걱정 마시오. 일각쯤 흐르면 제 발로 걸어나오게 조치를 취하였으니 잠시 동안 안정을 취 하게 한 후 혼례식을 마칩시다. 술값은 했으니 이제 마시는 일만 남 았구려!" 사의는 공치사를 한 후 자신을 위협한 일월쌍살에게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금방 너희들이 뭐라고 지껄였느냐? 이것들을 아예 시체로 만들어 연구에 써먹을까?" 사의의 위세에 일월쌍살이 바닥에 웅크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주공을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조금 전 사의께 실언한 것을 너 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전소추는 사의가 말하는 것을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후후후……! 정말 괴팍한 노인네로군. 일각 후 걸어 나가지 말고 귀식대법(龜息大法)을 써서 아예 숨을 멈춰볼까?' 장난기가 동한 전소추는 그리 해보고 싶었지만 자신을 염려하는 많 은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 운기행공을 마치고 밖으로 나섰다 . 그가 말짱한 모습으로 걸어 나오자 하운미가 눈물을 흘리며 그의 품에 뛰어들었다. "흐흐흑……! 가가께서 돌아가시는 줄 알고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알아요? 흐흐흑……!." 전소추는 그녀를 꽉 끌어안으며 말했다. "후후후……! 당신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두고 이승을 떠날 수는 없 지 않겠소……?" 사우인이 그에게 다가와 그의 등을 치며 입을 열었다. "아우를 만난 후 십년 감수를 두 번씩이나 경험했더니 우형은 폭삭 늙어 버린 것 같네……!" 전소추는 엄살을 피며 말했다. "아이쿠……! 의형!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았단 말입니다." 사우인이 놀라 그를 부축하려하자 한쪽 눈을 찡긋 감고 미소를 피워 내었다. "후후훗……! 의형! 놀라셨소?" 사우인은 전소추의 치기 어린 행동에 그의 등을 두드리며 대소를 터 트렸다. "하하하……! 아우는 남의 간장을 녹이는데 일가견이 있군. 어째든 펄펄 기운이 넘치는 자네를 다시 만나니 기분이 좋군. 어서 혼례식 을 마치고 술이나 한 잔 하세." 전소추는 장주에게 물었다. "소손을 공격한 그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은하전장주가 고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들은 모두 도주하였고, 그들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이 이곳에 없 으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네." 전소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혼례식을 마저 치러야겠습니다." 초상집 분위기였던 혼례식장에 전소추가 모습을 드러내자 하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곧 다시 혼례식이 거행되었고, 바라보던 은하전장 주 현천천검은 남몰래 눈시울을 붉혔다. 자식인 은하소공(銀河小公) 하군명(河君明)과 하남성에서 어느 누구 와도 비교할 수 없을 고고함을 지녔던 며느리 하남일미(河南一美) 아비연(峨飛燕)에 대한 회상에 젖었던 것이다. '아……! 너희들이 살아서 미아의 행복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얼 마나 좋았겠느냐……?' 그가 회상에 젖어 있는 동안 신랑과 신부가 맞절을 하고 자신에게 절을 올리자 총관이 그들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하였다. 전소추와 하운미가 하객들을 향해 절을 올리며 수선스럽던 혼례식을 마쳤다. 황금 대전으로 몰려간 하객들을 모시고 연회가 시작되었다. 구파일방의 장문인을 비롯한 정도명숙들에게 일일이 예를 올렸고 그 들은 한마디씩 덕담을 건넸다. 전소추는 하운미와 의형 사우인에게 다가가 예를 올렸다. "의형! 일가 친척 하나 없는 제게 기댈 곳이 있는 의형이 있으니 얼 마나 마음이 든든한지 모르겠습니다." 전소추는 의형의 곁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비취장미에게 예를 갖추 며 말했다. "소저께선 언제 의형과 혼례식을 올릴 생각이십니까?" 비취장미가 웃으며 답했다. "호호호……! 다정공자께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곧 올려야지요. 사 실 사상공은 공자가 자신의 잘못으로 죽었다고 여기고 제 간청을 뿌 리쳤거든요. 저도 이제 한시름 덜었어요. 걸림돌이 사라졌으니 저분 이 거절할 명분 또한 사라졌지요." 곤륜철협이 헛기침을 하며 그녀의 말을 끊었다. "헛헛……! 석매(石妹)! 내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다해줄 터이니 이제 그만하시오." 곤륜철협의 말에 비취장미의 볼이 도화 빛으로 물들여졌고, 그녀의 옥용을 바라보던 그가 전소추를 이끌며 후기지수들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곤륜철협이 그들에게 전소추를 소개하였다. "하하하……! 다정공자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저와 의형제를 맺은 전소협은 능히 우리들과 어깨를 견줄 만할 정도로 무공이 뛰어납니 다." 전소추는 사우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의형께서 과장되게 제 소개를 하였습니다. 저는 출도한지 얼마 안 되어 아직 미숙한 점이 많으니 여러분의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리오. 후기지수들은 전소추의 헌앙한 기도에 호감이 갔는지 자신들의 탁자 중앙에 전소추 부부를 앉혔다. 그들 후기지수들은 차기에 정도무림 을 이끌어갈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소림사 각공선사(覺空禪師) 무당파 운중도장(雲中道長) 아미파 화화사태(花華師太) 화산파 무적천검(無敵天劍) 나웅천(羅雄擅) 곤륜파 곤륜철협(崑崙鐵俠) 사우인(史羽吝) 점창파 창천일응(蒼天一鷹) 천가형(天嘉亨) 종남파 종남일미(終南一美) 궁서월(宮瑞月) 청성파 청성일룡(靑城一龍) 추능풍(秋凌風) 공동파 단천일도(斷天一刀) 자천빈(慈天彬) 개 방 옥면유개(玉面逾 ) 육천혜(陸天慧) 제갈세가 대라현자(大羅賢子) 제갈형률(諸葛亨律) 단목세가 신룡객(神龍客) 단목우(段木宇) 옥서시(玉西施) 단목연(段木蓮) 독고세가 척마공자(剔魔公子) 독고빈(獨孤 ) 홍예미안(紅霓美顔) 독고영(獨孤英) 사천당가 생사천수(生死千手) 당혁기(唐奕麒) 사갈서시(蛇蝎西施) 당빙옥(唐氷玉) 석가장 비취장미(翡翠薔美) 석운교(石雲嬌)등이었다. 나이는 소림사의 각공선사와 아미파의 화화사태가 오십 대였고, 청 성파의 청성일룡과 제갈세가의 대라현자가 사십 대였다. 나머지는 대부분 이십 대였고 삼십을 갓 넘긴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막역한 사이였고, 일 년 반만에 만나 기분 좋게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전소추에게 모두 한 잔씩 권하였고, 그 또한 기쁜 마음으로 술잔을 비운 후 그들에게 술잔을 올렸다. 기쁜 날 기분 좋게 마시니 취하지 않았지만 그와 똑같은 양의 술을 연거푸 마신 옥수불패는 취기가 올라 옥용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전소추가 그녀를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며 전음을 보냈다. '미매! 피곤하면 먼저 들어가 쉬시오.' 전소추의 전음에 하운미는 고개를 저었다. '가가! 오늘 같은 특별한 날에 신부인 제가 자리를 비운다면 말들이 많을 거예요.' 옥면유개 육혜천이 신랑과 신부가 사랑의 눈길로 마주보고 있자 부 러운 듯 웃으며 한마디했다. "하하하……! 신혼초야가 무척 기대가 되는 모양이군. 거지꼴을 하 고 있다고 나를 좋아하는 여인이 없으니……! 나도 이제 장가를 가 야겠는데 어디 참신한 규수가 없수?" 그의 넉살에 전소추와 하운미는 얼굴을 붉혔고 후기지수들은 박장대 소를 했다. "하하하……!" 소림사의 각공선사가 옥면유개를 주시하며 말했다. "아미타불……! 육소협! 빈도가 생각하기엔 자네의 넉살을 받아줄 만한 규수가 없으니 불문에 귀의하는 것이 어떠한가?" 옥면유개가 정색을 하며 답했다. "아이고……! 선사께선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저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으니 다시는 그런 말씀은 삼가 주십시오." 그의 표정이 너무나 우스워 그 자리에 있던 여인들이 함박웃음을 터 트렸다. "호호호……!" 종남일미 궁서월이 옥면유개에게 미소를 지은 채 지극한 눈길로 주 시하며 옥음을 토했다. "호호호……! 제가 육소협을 연모하고 있었는데 저를 어찌 생각하고 계시나요?" 옥면유개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져 기쁨을 감추지 못하자 궁서월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놀렸다. "육소협! 그 거지 복장을 벗고 종남파에 들어오신다면 혼인해 드리 지요." 그제야 자신을 놀렸다는 것을 깨달은 옥면유개가 굳은 표정으로 화 를 내며 토라졌다. "아니 개방을 어찌 보고 그따위 망발을 하시오? 나는 절대 개방을 배반할 생각이 없으니 혼인을 하고 싶으면 나를 잊고 다른 사람에게 가서 알아보시구려……." 옥면유개는 자신을 조롱한 종남일미에게 한방 먹였다고 생각했는지 잔에 술을 채운 뒤 전소추에게 건네며 말했다. "흐흐흐……! 거지꼴을 하고 있지만 내 용모가 잘생기긴 잘 생겼지. 그러니 종남일미가 날 연모하는 게 아니겠소? 하지만 무엇이든 강 요하는 여인들은 특별한 결점이 꼭 있다오." 전소추가 잔을 비우고 옥면유개에게 잔을 건네는 순간 종남일미가 흐느껴 울었다. "흐흐흑……! 연회에서 농담을 했다고 저리 면박을 주다니 정말 너 무해요." 옥면유개가 놀라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사과를 했다. "궁매!(宮妹) 미안하오. 내가 잘못 했으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오. 나도 농담을 한 것이라오."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던 종남일미가 고개를 드는데 눈물을 흘린 흔 적이 전혀 없었다. "까르르르……! 속았죠?" 옥면유개가 제자리로 돌아가 착석을 하며 투덜거렸다. "쳇……! 난 왜 여인의 눈물에 이리 약한지 모르겠네……!" 그녀의 거짓 행동으로 인해 분위기가 화기애애하였다. 대라현자 제갈형률이 전소추에게 물었다. "전소협! 홀로 무학을 익혔다던데 어떤 무공을 익혔소?" 전소추가 그에게 최대한 공경한 자세를 취하며 답했다. "기연을 만나 여러 가지의 잡학을 익혔지만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무공은 그저 호신할 정도는 익혔지요." 그가 잡학을 익혔다고 하자 비파(琵琶)를 병기로 들고 다니던 옥서 시 단목연이 그에게 비파를 건네며 말했다. "호호호……! 한 곡 들려주시겠어요?" 전소추는 그녀가 전해준 비파의 재질이 나무가 아닌 만년한철로 만 든 것임을 알았다. 무게가 엄청 나가는 비파를 종이처럼 가볍게 건네 받은 전소추가 자 세를 취하고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띠디딩―! 띠딩―! 그는 절전 된지 오백 년이나 지난 만상환희곡(萬狀歡喜哭)을 탄주하 기 시작했고 아름다운 음률이 대전을 메우자 대전 안에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그에게 꽂혔다. 희노애락(喜怒哀樂)에 생노병사(生老病死)가 가미된 만상환희곡의 음률에 빠져든 사람들의 표정이 수시로 변했다. 사랑을 갈구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모두 기쁨을 느꼈는지 감탄사 를 토하였고 곡이 바뀌자 분노를 느꼈는지 화를 내었다. 너무도 슬퍼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다가 즐거워 춤이라도 출 듯한 기 세였다. 띠디딩―! 전소추 자신도 두 눈을 감은 채 탄주하며 음률에 젖어들었을 정도였 으니 대전 안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불과 삼분의 일 정도만 자세를 유지하고 음률을 즐기는 것 같았다. 띠디딩―! 마침내 전소추가 비파에서 손을 떼자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대라현자 제갈형률이 박수를 치며 그들이 정신을 차리게 하 였다. "허허허……! 전소협의 만상환희곡을 잘 감상하였네. 가히 악성(樂 聖)의 경지에 도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네. 그런데 악기를 그리 잘 다루면서 잡학이라 칭하는 전소협의 겸손은 도가 지나친 것 이 아닌가?" 전소추는 대라현자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미숙한 솜씨로 연주하여 여러분의 귀를 더럽히지 않았다면 소생은 만족합니다." 그는 비파를 옥서시 단목연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훌륭한 악기를 빌려주셔서 감사하오." 단목연은 옥용을 붉게 물들인 채 말없이 비파를 건네 받았다. 훌륭한 악기를 무기로 사용하는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기 때문이었 다. 소림사의 장문인 태허신승도 그의 음률을 칭찬할 정도였으니 대전 안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그의 존재를 각인을 시킨 것 이었다. 제갈형률이 그의 곁으로 자리를 옮겨 앉으며 물었다. "홀로 그 경지에 이른 것을 보면 전소협은 천재인가 보오. 나도 음 률을 배웠지만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소." 전소추가 미소를 짓자 제갈형률이 잡학의 이것저것에 대해 질문하였 고, 전소추는 머뭇거림 없이 답을 올렸다. 기관지학, 천문학, 점성술, 진법, 둔갑술, 바둑, 장기, 도박술등 수 많은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하는 전소추를 바라보는 중인들은 놀라움 을 감추지 못하였다. 특히 대라현자의 놀라움은 극에 달했다. 현 무림에서 자신의 경지를 뛰어넘는 인재가 없다고 생각한 그였기 에 전소추의 지식에 혀를 내둘렀다. "허허……! 대라현자라는 별호는 자네에게 물려주고 공부를 더 해야 겠네." 후기지수들은 대라현자와 다정공자의 문답에 빠져 있다가 대라현자 가 손을 들자 탄성을 질렀다. "아……! 저 나이에 만박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 없었는데……!" 전소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의 비어 있는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 했다. "지나친 칭찬을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모두 잔을 비우자 곤륜철협 사우인이 말했다. "여러분! 다정공자와 옥수불패의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기원하 며 건배합시다." 그들은 첫날밤을 맞은 그들 신혼부부를 놓아주지 않고 밤늦게 까지 연회를 즐기며 무림에 새로 등장한 신성(新星)의 주위에 몰려들었다 전소추를 야릇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여인들이 있었으니 단목세가의 옥서시(玉西施) 단목연(段木蓮)과, 독고세가의 홍예미안(紅霓美顔) 독고영(獨孤英), 제갈세가의 천혜옥녀(天慧玉女) 제갈윤지(諸葛潤芝 )였다. 그녀들의 눈총을 받은 전소추는 내심 즐거우면서도 회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은 신혼초야이기 때문이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재미납니다.
즐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