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민 요셉 신부
주님 부활 대축일 - 파스카 성야
가난한 이들에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알리신 주님!
오늘은 모든 주일의 기원이 되는 날로서, 전례적으로 가장 큰 축일인 주님 부활 대축일입니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교우 여러분들의 가정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가득하시길 빕니다.
오늘 복음(요한 20,1-10)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빈 무덤을 발견하고,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 그 소식을 전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주일 이른 아침, 예수님의 무덤을 방문한 마리아 막달레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곧바로 제자들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립니다.
다락방에 숨어있던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달려갔고, 빈 무덤 안으로 들어가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아마포가 놓여있는 것과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이 한 곳에 개켜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빈 무덤과 아마포, 얼굴 수건을 확인한 제자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마리아 막달레나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지던 골고타 십자가 형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빈 무덤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절망적인 순간에도 한결같이 주님 곁을 지켰고,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져버린 허망한 그 순간에도, 그녀는 주님을 향한 애절한 사랑으로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장면(요한 20,11-18)에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최초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을 목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리아야!”, “라뿌니!(스승님!)” 하느님께서는 끝까지 믿음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예수님을 열렬히 사랑하던 여인(공관복음에서는 여인들로 나옴)에게,
당신의 아들 예수님의 부활을 최초로 목격할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리는 최초의 복음선포자로 선택하십니다.
2000년 전 남존여비의 엄격한 율법주의 사회 속에서 살아가던 가난하고 소외된 여인
마리아 막달레나와 사회적 약자였던 여인들에게 예수님은, 부활의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셨습니다. 강생 때 베들레헴 목동들에게 그러하셨듯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할 교회의 사명을 일깨워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
교회와 사회가 복음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처럼, 평등을 열망하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불평등의 세상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애절한 모습을 봅니다. 절망과 죽음의 세력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어두움과 불의를 몰아내는 복음의 빛으로, 불평등이 만연한 이 세상 곳곳을 밝게 비추어주시길 빌며,
교우 여러분들 모두에게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대전교구 권선민 요셉 신부
2024년 3월 31일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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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철 요한세례자 주교
주님 부활 대축일 - 파스카 성야
“그분께서 너희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여라.”(루카 24,6 참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리스도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부활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복음이 전하는 부활의 사건을 떠올려 봅니다. 주간 첫날, 예수님을 지극히도 사랑했던 여인들은
예수님이 묻히신 무덤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들은 무덤이 비어있음을 발견합니다.
당황해 마지않던 그때, 천사는 그들에게 다가와 주님께서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루카 24,6)
죽음은 오로지 두려움이었기에 부활의 생명은 상상키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인들은 부활을 예고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냈습니다.
그리고는 부활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고백하며 제자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러 나섭니다. “살아나신 주님무덤 부활하신 주님영광, 목격자 천사들과 수의염포 난 보았네,
그리스도 나의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라고 부활 대축일 부속가에서 노래하듯
그들은 주님 부활의 기쁨을 외치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부활은 더없는 기쁨과 희망의 사건입니다. 부활은 죄와 죽음의 한계에서 인간을
구원한 사건이자, 주님께서 당신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 곧 새 생명의 길을 열어 보인 사건이기에
희망의 사건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654항 참조) 또한 그분께서는 죄의 권세를 누르시고
다시 살아나셨기에, 그리고 죄에서 죽은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셨기에,
우리를 영원한 생명과 구원으로 이끌어 주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더없는 기쁨의 사건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1코린 15,14)라는 사도 바오로의 고백처럼,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는 믿음과 삶의 의미를
찾고 궁극적인 선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주님 부활은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이며,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세상을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성경은 모든 이들이 즉시 부활을 깨달은 것은 아니라고 전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빈 무덤 앞에서 놀랐던 여인들의 모습(마르 16,4-5)에서 또,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자신들의 고향인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모습(루카 24,13-35)에서, 그리고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토마스 사도의 모습(요한 20,24-29)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직접, 그리고 천사들을 통해서 성경의 말씀을 설명해 주시면서
그들이 부활을 믿고 깨닫게 해주십니다.
주님 부활의 소식을 알리는 천사는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루카 24,5)며,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를
떠올려보라고 촉구합니다.
곧,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루카 24,7)는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의 실현이자 구약의 약속의 실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652항 참조)
그러자 여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내어 부활을 깨닫고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 안에서 기억해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활을 직접 확인한 이들도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부활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기억’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성숙시켜 줍니다. 또한 신앙생활에서 잊지 않고 실천해야 하는,
자신의 삶안에서 작용하는 하느님의 뜻을 살피고자 나의 삶을 돌아보는 양심 성찰도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의 생활을 돌이켜 봄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찾아 새롭고도
다른 하루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재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시노드의 과정도 바로 우리 삶 안에서
함께 해주시는 하느님을 기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각자의 삶 안에서 자신을 이끌어 주신
하느님 체험을 기억하고 서로 나눔으로써, 그 모습은 다르지만, 같은 신앙 안에서의
친교를 체험하게 됩니다.
나아가 ‘기억’의 의미는 신앙생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삶에서도 ‘기억’의 의미를 되새길 때
우리는 변화된 현재로 미래를 희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이 시기에 10년 전 발생했던 가슴 아픈 사건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0년 전 4월 16일, 우리 모두의 희생양처럼 세상을 떠난 세월호의 어린 영혼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기억의 결핍에서 우리는 2022년 10월 29일, 또 다른 희생자들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또한, 우리 스스로가 공동의 집인 지구를 무분별하게 대했던 지난날의 과오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상 기후를 발생시키는 병든 공동의 집 지구를 바라보면서도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들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기억하지 못하기에 과오를 반복하며 공멸의 길로 향해 가고 있다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공동선을 실행해야 하는 정치공동체를 위해 각자가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이 시기에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사목헌장』 75항 참조)
주님의 말씀을 기억함으로써 주님께서 약속하신 바가 이루어진 부활을 깨달은 이들처럼,
우리도 늘 기억하는 삶 안에서 부활의 생명을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쁨이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영원으로부터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말씀과 성사로 기르시는 주님을 기억함으로
주님 부활의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닫는 신앙인으로 거듭나기를 기도합니다.
천주교 인천교구장 정신철 요한세례자 주교
2024년 3월 31일 부활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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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덕 프란치스코 신부
주님 부활 대축일 - 파스카 성야
“빈 마음”은 신앙생활의 출발점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모든 분에게 부활 대축일의 인사를 기쁘게 전합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부활을 떠올리면 ‘부활 달걀’ 을 나누는 정다운 모습이 그려집니다.
본당 사목을 할 때마다 교우들끼리만 부활 달걀을 나누는 게 아쉬워 관할 구역의 이웃 종교,
주민센터, 경찰서, 소방서 그리고 복지시설에도 ‘부활 달걀 선물 꾸러미’를 전달해서
기쁨을 나누도록 해왔습니다. 반응은 늘 좋아서 나눔 활동을 다녀온 분은 하나같이 고맙게 받는
모습에서 커다란 보람과 기쁨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부활 달걀을 전하는 작은 나눔으로도 신앙의 핵심인 부활의 진리를 선포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달걀이 스스로 깨지면 새 생명인 병아리가 태어나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강제로 깨지면
그저 계란 프라이가 될 뿐이다.” 라는 말을 기억합니다. 오늘 기념하는 부활 대축일은 이 말처럼
우리 자신의 잘못된 이기심을 스스로 깨뜨리기 위하여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를 성찰하게 합니다.
복음에서 베드로와 주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얘기를 전해 듣고
예수님의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무덤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빈 무덤” 을 보고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즉시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빈 무덤” 은 먼 여행길을 출발할 때 도움이 되는 이정표처럼
부활의 신비를 받아들여 하느님 나라를 향한 신앙의 여정을 떠나야 하는 제자들에게
귀한 표지판의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빈 무덤” 은 신앙생활이 언제나 “빈 마음” 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중요성을 새기게 합니다.
우리 안에 가득 들어차 있는 이기심과 집착, 시기심과 미움, 편견과 차별을 비워야
그 안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영광의 빛이 들어설 자리가 생깁니다.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라고 했는데,
이 역시 우리 생각을 세상의 온갖 잡념들로 채우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바라는 숭고한 희망으로
가득 채워 하느님의 뜻 안에서 훨씬 더 자유롭게 사랑하며 살라는 권고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가장 소중한 생명을 내어주심으로써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신앙의 신비를 기뻐하는 오늘, 우리 모두 각자가 비워야 할 게 무엇이며,
채워야 할 게 무엇인지 성찰해 봅시다.
그리고 채운 것을 아낌없이 나눌 때 느끼는 기쁨과 보람 안에서
부활의 은총을 충만히 누리기를 바랍니다.
춘천교구 최창덕 프란치스코 신부
2024년 3월 31일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