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혼세삼천마의 실체 광서성(廣西省) 남단 남황(南荒)과 인접한 십방대산(十方大山)의 거 대한 산맥의 깊은 골짜기에 전서구가 날고 있었다. 전서구는 곧장 울창한 밀림으로 파고들었는데 이런 곳에 어떻게 저 런 고루거각(高樓巨閣)을 지었는지 방대한 규모의 전각들이 빼곡이 차 있었다. 가장 커다란 고루거각으로 힘차게 날개를 젓던 전서구가 창문으로 날아들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북실북실한 검은 털이 나 있는 두툼한 손이 뻗어 나와 전서구를 잡더니 다리에 묶여 있는 서찰을 풀어 펼쳤다. 그 서찰은 독심수라 당무룡이 보낸 것이었다. 서찰을 구겨 버린 인물의 두 눈에 노기가 일어났다. '이런, 쓸모 없는 놈……! 선대가 당한 백년지한(百年之限)을 풀 시 기를 늦추다니……!' 그의 손에 구겨져 있던 서찰에 불이 붙더니 재로 변해 바닥에 떨어 졌다. 그 손의 임자는 육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돼지와도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비대한 인물이었다. 노기로 인해 얼굴을 실룩거리는 듯 보였는데 얼굴에 늘어진 살들이 위 아래로 흔들리고 있었다. 두 눈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축 처진 살에 의해 가려져 있었고 , 입은 하마 입처럼 커다랗게 쭉 찢어져 있었다. 전신이 온통 검은 털로 뒤덮여 있었고, 피부조차 중원인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었다. 그는 백여 년 전에 멸문한 만독강시보(萬毒彊屍堡)의 후예였고, 선 대의 한을 풀기 위해 절치부심(切齒腐心)하고 있는 자였다. 백여 년 간 십방대산의 험지에서 재기를 꿈꾼 그는 이제 선대보다 더 중원을 짓밟을 준비를 차곡차곡 마치고 있었다. 선대들은 강시(彊屍)와 독(毒)으로 무림을 제패하려 하였으나 구파 일방을 구심점으로 똘똘 뭉친 중원의 힘에 무릎을 꿇었다. 똑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빠진 두 개 의 세력과 힘을 합한 지 벌써 삼십 년이 훌쩍 넘었다. 그는 중원을 재 침공한다면 반듯이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의 수급을 자르고 봉문(封門)시키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정도의 명숙들도 모두 염라부로 보내 선조들을 만나 죄를 빌게 할 생각이었다. 헌데 그에게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사천당가의 화기였다. 아무리 강력한 강시와 독을 지니고 있어도 화기 앞에선 무용지물이 었고, 당가의 천뢰탄(天雷彈)과 벽뢰탄(霹雷彈), 광천뢰(廣天雷)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물건이었다. 하기에 지난 십 년 동안 독심수 라 당무룡에게 정성을 다해 무공을 가르쳤고 그를 사천성으로 보냈 던 것이다. 그런 제자가 시킨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판국에 유령대제라는 놈 이 나타나 방해를 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뼈를 갈아먹어도 시원치 않을 유령대제라는 놈을 하루라도 빨리 없 애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가 손짓을 하자 자색(紫色) 안개가 그에게 몰려왔다. "천인자운(天刃慈雲)! 중원으로 나가 유령대제란 놈을 잡아와라! 그 놈의 간덩이가 얼마만한지 본좌의 두 눈으로 봐야겠다." 자색 안개 속에서 듣기에 거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크크크……! 보주! 다녀오겠습니다." 자색 안개는 창문을 통해 실내를 빠져나갔다. 비대한 인물이 천천히 창문을 닫으며 입을 열었다. '선조께 맹세합니다! 나 귀령사황(鬼靈邪皇) 공시태(孔是颱)가 한을 풀어드리겠소이다. 세 째 제자가 자금만 확보된다면 무림제패는 손 바닥 뒤집기 보다 쉬울 것이외다.' 그의 표정은 잘 알아 볼 수 없었으나 굵은 목소리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독강시(毒彊屍) 일만여 구를 이미 만들어 놓았고, 중원전역을 공포에 빠트릴 수천 종의 엄청난 양의 독들을 저장해 놓고 있었기에 자만심이 대단하였다. 오늘도 만독강시보에선 더 강한 강시를 만드는 시험을 하고 있었고, 그 일은 그의 자식 초혼요령(招魂妖玲) 공야취(孔若翠)와 보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대장로 독두혈귀(禿頭血鬼) 염진두(廉陳斗)가 심 혈을 기울이고 있었던 탓이었다. 선대에서 한 구 밖에 만들지 못하였다는 절독혈살강시(絶毒血殺彊屍 )를 만드는 일은 번번이 실패하였으나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재도전 하여 거의 성공단계에 와 있었다. 실제 절독혈살강시를 완성한 적이 있어 그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였 으나 강시가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쇠처럼 단단하게 굳어 버려 그를 실망시켰다. 굳어 버린 원인이 독의 배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독두혈귀의 주 장은 일리가 있었고 초혼요령도 그와 뜻을 같이하였다. 참고문헌엔 단순히 천여 종의 절독의 종류만 나와 있었지 그 양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던 탓이었다. 초혼요령 공야취와 독두혈귀 염진두는 자신들의 행동을 낱낱이 기록 하였기에 실패한 배합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 일 년 안에 확실히 만들 수 있다는 보고를 받았기에 귀령사황은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만독강시보가 독자적으로 지금 당장 중원을 침공하더라도 충분히 승 산이 있다고 믿는 그가 절독혈살강시를 만들려고 한 이유는 오직 한 가지였다. 제 몸에 붙은 뒤룩뒤룩한 살점처럼 욕심 많은 그는 연합한 세력에게 중원을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 * * 전소추와 냉예향, 연교매가 낙양에 모습을 보인 것은 중양절 하루 전이었다. 축제 분위기에 들뜬 아이들은 벌써 산꼭대기에 올라 수유화(茱萸花) 가지를 꺾어 머리에 꽂고 다니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의 노는 모습이 너무도 천진난만하였기에 그런 아이들을 주시하던 전소추는 부모님이 생각나서 눈시울을 적셨다. 사갈서시 당빙옥이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지금 종복의 신세라 하 더라도 부모님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에 깊이 빠져 든 그의 옷깃을 연교매가 흔들었다. "가가! 어렸을 때가 그리우시죠……? 저도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옛 생각이 절로 나네요." 전소추가 고개를 돌려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빨리 총단으로 들어갑시다." 전소추는 변체환용술을 시전하여 모습을 바꾼 후 총단에 들어서 냉 예향과 연교매는 유운각으로 보내고 곧장 현천천검의 처소를 찾았다 현천천검과 마주한 전소추는 강기막을 둘러 소리를 차단하고 규염 신장이 작성한 생명부를 품에서 꺼내어 건넸다. "할아버님! 이 책자를 살펴보십시오." 현천천검이 책자를 넘기며 물었다. "여기 적힌 자들은 모두 은하전장의 충신들이 아니냐?" 전소추가 고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광현지부의 규염신장과 수하들이 목숨을 걸고 작성한 책자입니다. 전부 읽으신다면 잘못된 점을 발견하실 수 있으실 겁니 다." 현천천검이 책자를 읽는 동안 전소추는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마지막 장을 넘긴 현천천검이 두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책자에 생명부라 적혀 있는데 어째서 절반 이상이 빠졌느냐?" 전소추가 현천천검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 "휴우……! 할아버님! 나머지 인물들은 신산수재를 따르는 자들이며 , 그는 누군가의 밀명을 받아 은하전장을 삼키려고 그들을 준동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의 말을 들은 현천천검이 크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헉……! 무엇이라 말했느냐……? 신산수재는 내가 아끼는 제자이거 늘 무엇이 부족하여 남의 명을 따른단 말이냐?" 전소추는 원래 작성되어 있던 지하보고의 설계도를 꺼내 그에게 잘 못된 부분을 설명하여 주었고, 신산수재가 전서구를 이용하여 누군 가와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신산수재가 자신의 제자가 되기 전에 이미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 지 않았으나 세 사람의 공동전인이었다는 말을 들은 현천천검이 대 노하여 즉시 그를 불려들여 내막을 밝히려 했으나 전소추가 이를 만 류하였다. "할아버님! 진정하십시오. 소손이 자객문에 청부를 하여 지금쯤 반 역을 꾀하는 무리들이 아무도 모르게 제거되고 있을 겁니다. 그들로 하여금 당분간 죽은 놈들로 행세를 하라고 하였으니 지금 신산수재 를 잡아 처리를 하실 수는 있겠지만 그리 행하신다면 그를 조정한 배후의 인물은 숨어 버릴 겁니다. 그들이 이런 계획을 세웠다면 은 하전장만을 노리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타초경사(打草驚蛇)의 누 를 범하지 마십시오." 그의 말을 들은 현천천검이 더욱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 자객문이라 말했느냐? 그들은 무림의 공적이 아니더냐? 그들은 믿을 수 없는 집단인데 경솔한 행동을 하였구나." 전소추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할아버님! 소손이 외유(外遊)를 한 이유는 그들과 혈연으로 맺어졌 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엔 저도 몰랐으나 향매와 매매는 그곳 출신 이고 향매는 자객문주의 금지옥엽이니 이젠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 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절대 은하전장에 손해를 입히는 일이 없 도록 조치하겠습니다. 과거에 자객문에서 저지른 온갖 악행을 용서 하시기 힘드시겠지만 앞으로 선행을 베풀고 무림을 구하는데 선봉에 선다면 무림 전체가 그들을 용서하여야 할 것입니다. 소손이 미력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행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그의 말을 들은 현천천검은 입을 열지 못하였다. 다만 이번에 그가 꾸민 일로 은하전장에 폐해(弊害)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침묵을 지켰다. 전소추는 현천천검에게 당분간 신산수재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내색 을 하지 말라는 부탁을 하였고, 그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 덕였다. 전소추가 그의 처소에서 나와 유운각으로 향했는데, 화화공자 당혁 린이 그의 앞을 막았다. "매제! 할 말이 있네." 전소추를 자신의 처소로 안내한 당혁린은 자리를 권하였고 그가 앉 자 두 손을 마주쳤다. "짝짝……!" 당가의 문도들은 까마귀 둥지같이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사갈서시를 끌고 들어와 면전에 무릎을 꿇리고 조용히 나갔다. 어떠한 고문을 가했는지 몰라도 그녀의 전신엔 찰과상이 있었고, 상 처는 곪아 고름이 흐르고 있었다. 손톱들은 모두 빠져 시커먼 피가 엉겨 있었고, 손가락은 구부릴 수 없게 굵은 대침이 박혀 있었다. 그녀는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두리번거렸는데, 뇌호혈(腦戶穴)과 풍 부혈(風府穴)에 장침이 꽂힌 탓이었다. 그런 모습을 본 전소추는 아 무리 불구대천의 원수지만 안쓰러워 애써 외면하려 하였다. 그때 당 혁린의 음성이 들려왔다. "매제! 저렇게 혹독한 고문을 가한 까닭은 자네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가주와 당가를 농락한 숙부가 어째서 그런 행 동을 하였는지도 캐내고 싶어서였네……." "……!" 너무도 참혹한 모습에 전소추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떠한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기에 결국 실혼인으로 만들고서야 이 유를 알게 되었는데, 숙부에게 지령을 내린 제삼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그들은 비밀에 쌓인 집단의 수뇌들이며, 자신들의 이 익을 위해 연합세력을 결성한 것으로 드러났네. 그 이상은 너무 어 렸을 때의 일이라 상세히 기억하지 못하니 이 일을 어찌 하면 좋겠 는가?" 그때 문득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만일 신산수재를 조종하는 인물과 독심수라 당무룡을 조종하는 인물 이 동일인이라면 당가를 접수하려는 의도를 확실하게 파악해야 했다 . 그러기 위해선 지금 시점에 당가를 재탈환하려는 것을 지연시켜야 된다고 판단하였다. 침묵을 지키던 그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장인어른을 뵈어야겠네." 당혁린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부친께 안내했다. 비폭장신은 자신을 궁지에 빠트린 독심수라에게 복수하기 위해 광천 뢰 제조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아버님! 매제가 드릴 말씀이 있답니다." 그가 소매로 땀방울을 닦으며 전소추를 반겼다. "허허허……! 잘 돌아왔네. 이미 당가으로 돌아갈 만반의 준비가 끝 났는데 자네가 돌아오지 않아 떠나질 못하였네. 그래서 이 광천뢰는 은하전장주께 그 동안 우리를 보살펴준 대가로 선물하기 위해 만들 고 있었네." 전소추는 비폭장신의 표정에서 빨리 사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느낌 을 받았다. "장인어르신! 독심수라가 장인께 무엇을 요구하였습니까?" 비폭장신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답했다. "휴우……! 그 가증스러운 놈은 가주에게만 전승하여야 할 천뢰탄과 광천뢰의 제조법을 요구하였네." 전소추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독심수라가 누군가의 명을 받고 장인어르신께 무례를 범했다고 처 남에게서 들었습니다. 사실 은하전장주의 제자 신산수재도 누군가의 밀명을 받고 이곳에 몸을 담고 있으며 이곳의 재력에 눈독을 들이 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조종하는 세력이 다르다면 문제될 것이 없으 나 만일 같다면 사태가 심각합니다. 장인께서도 엄청난 재물과 당가 의 화기를 갖춘다면 무림제패에 욕심이 생기실 겁니다. 아직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한 까닭입니다. 그들이 굳이 천뢰탄과 광천뢰를 원한다면 그 화기 에 대한 공포도 지니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그들이 동일 인인지 확인 될 때까지 이곳에 머무르시면서 더 많은 화기를 제조하 여 만반의 태세를 갖추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비폭장신은 이곳에 머물면서 시종여일 하루라도 빨리 독심수라를 응 징할 생각만 하였는데 전소추의 말을 듣고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으음……! 알겠네. 자네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은하전장을 떠나지 않겠네……!" 당혁린도 전소추의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은하전장의 재력은 황궁과 석가장 다음이지만 세인의 상상을 초월하 는 엄청난 재물을 보관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은하전장의 재물을 이용해 각 문파의 제자들을 유혹한다면 무 림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될 것이 눈에 선하였다. 만일 숙부에게 화기 제조법을 가르쳐 주었다면 불에 기름을 붓는 격 이 뻔하였다는 생각에 미치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아버님! 잘 생각하셨습니다. 소자도 아버님을 도와 화기를 만드는 일에 동참하겠습니다." 전소추는 그곳을 나와 유운각으로 향했다. 일살이 만면에 미소를 짓고 그를 영접하였다. "헤헤……! 가끔 주군께서 자리를 비우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 야 제가 호강을 하지요." 월살이 일살을 걷어차며 말했다. 퍽―! "우욱……!" "저걸 형이라고 대접을 해야 하나……? 주군! 보고 드립니다. 자리 를 비우신 동안 신산수재는 가끔 유운각을 질투의 눈빛으로 바라보 았을 뿐 특이할 만한 행동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의 전각에 전서구가 두 번 날아들었는데 들킬 우려가 있어 제지하지 못했습니 다." 전소추가 월살을 격려하였다. "월살! 일살은 호강을 하였으니 그대만 해시(亥時)가 시작 될 무렵 내게로 오라. 유령환위보(幽靈換位步)를 전수하여 노고를 치하하겠 다." 일살이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말했다. "주군! 섭섭합니다. 사실 유운각에 틀어박혀 있는 것도 고역입디다. 주군의 흉내를 내느라 아름다우신 주모님들과 하루 종일 지내는 것 이 사내로서 쉬운 일입니까?" 전소추는 피식 미소를 짓더니 일살에게 전음을 보냈다. '후후훗……! 그렇다면 자네에겐 소림사의 금강부동심공(金剛不動心 功)을 가르쳐 주면 되겠군……!' 일살이 토라진 표정으로 전음을 보냈다. '주군! 살수가 그런 것을 배우면 무얼 합니까? 좀 실속 있는 것을 전수해 주십시오.' 전소추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하며 입을 열었다. "일살! 소림사의 승려들이 사내로서 여색을 멀리할 수 있는 이유가 뭐라 생각하는가? 자네가 그것을 익힌다면 수양에 도움이 될 걸세… …! 그러니 잔말 말고 월살과 함께 오게." 전소추는 일살이 입을 열기 전에 등을 돌려 유운각으로 들어갔다. 하운미와 당초혜가 그를 반갑게 맞이하였고, 이내 냉예향과 연교매 가 준비한 주안상에 모여 앉아 술을 마시며 그간 있었던 일들을 서 로 이야기하였다. 냉예향과 연교매가 자객문에 소속되어 있다는 말을 들은 하운미와 당초혜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농을 건넸다. "호호호……! 이거 큰일났군. 가가의 사랑을 독차지할 생각을 했다 간 동생들에게 언제 당할지 모르겠는데……?" 냉예향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들의 말을 받았다. "호오……? 언니들이 정말 그런 생각을 하셨단 말이지요……? 매매 와 저는 남을 괴롭혀 주는 게 특기인데 언니들에게 써먹을 데가 있 을 것 같네요……!" 하운미가 방긋 웃으며 냉예향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해봐. 가가께 말씀드리면 아마 홍호 근방에서 당한 것보다 더 큰 곤욕을 치러야 할걸?" 전소추의 소변세례를 받던 기억이 난 냉예향과 연교매의 볼이 빨갛 게 물들자 그 내용을 모르는 당초혜가 물었다. "가가! 그곳에서 대체 동생들에게 무슨 짓을 하신 거예요?" 전소추가 대소를 터트리며 잔을 들었다. "하하핫……! 그 이야기는 그만 하고 술이나 듭시다." 그들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며 술병이 바닥이 날 때까지 술을 마셨고 오랫동안 편안히 쉬지 못하였던 전소추와 냉예향, 연교매는 각기 침상에 올라 잠에 빠졌다. 해시가 시작되기도 전에 일월쌍살이 문 앞을 서성거리며 그가 나오 길 기다렸다. 전소추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가르쳐 주기로 한 무공을 필사본을 만들어 놓고 해시가 되자 모습을 드러내었다. 일월쌍살에게 각기 한 권의 책자를 건네고 일살에게 금강부동심공을 자세히 풀이를 해주었다. 일살은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가 역시 구파일방을 대표하는 소림사의 무공이 현묘하다는 것을 느끼고 경청하였다. 월살에겐 유령환위보를 시전하기 위한 기본 보법과 실제 보법을 세 번 보여주고 그 내용을 자세히 풀이를 해주었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삼성 가량을 깨우쳤고, 자신들이 영재라도 되는 것처럼 기뻐 날뛰었다. 그 모습을 본 전소추가 엄한 표정을 지으며 일갈을 터트렸다. "그만……! 이제 틈틈이 연마하여 보름이 지나기 전에 내게 보여주 게. 만일 그때까지 대성하지 못했다면 벌을 줄 것이야……!" 일월쌍살은 순식간에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당분간 모습을 드러 내지 못할 것이었다. 전소추는 한동안 즐기지 못하였던 운우지락을 갖기 위해 유운각으로 들어섰고, 새벽녘까지 그의 네 부인은 차례대 로 비음을 흘려야 했다. 그가 돌아온 지 삼 주야가 지났을 때 신산수재가 전서구를 띄웠고, 창공을 향하던 전서구는 무엇에 이끌린 듯 은하전장을 벗어났다가 유운각의 창문에 내려앉았다. 전소추가 전서구의 발목에 묶인 서찰을 펼쳤다. <사부님! 어째서 계속 기다리란 명을 내리십니까? 다정공자라는 놈 이 무림고수들을 초빙하였는데 아무래도 그들이 당가의 무공을 연공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합지졸이며 이곳은 완벽하 게 준비가 끝났으니 빨리 시기를 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셋째 제자 역랑기> 전소추가 서찰을 가지고 서탁으로 가서 역랑기의 필체를 살피더니 백지에 글을 적었다. < 사부님! 시기만 정해주신다면 언제라도 이곳을 접수할 준비가 갖 춰져 있으니 이곳은 염려하시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셋째 제자 역랑기> 바뀐 서찰을 발에 맨 전서구가 하늘 높이 떠올랐다. '후후후……! 신산수재! 네 놈은 장주를 농락한 죄로 인해 뼈저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전소추는 당가의 문도들에게 한 차원 높은 무공을 전수하여 주며 당 분간 당가의 무공을 연공하지 말라고 부탁하였다. 그들은 전소추가 전수한 유성백리탄(流星百里彈)이란 지법을 배우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상상도 못할 빠르기와 파뢰력을 지닌 지공인지 라 배우기가 까다로웠지만 서로 이해한 것을 교환하여 익혔고, 이전 보다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감숙성(甘肅省) 북단 청해성(靑海省)과 인접한 아미금산은 우뚝 솟 은 고봉(高峰)이었기에 사냥꾼이나 심마니들조차 중턱까지만 오르내 릴 정도로 산세가 매우 험준하였다. 그 위쪽으로는 거의 전입미답(前入未踏)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험난한 오지였고, 정상은 만년설로 덮여 있어 그 근방의 사람들은 영산(靈山)으로 부르곤 하였다. 약초뿐만 아니라 기화요초(琪花瑤草)가 흔하여 심마니들의 주머니를 채워주었는데, 욕심을 내 중턱 위로 올라간 사람들은 예외 없이 빠 져 나오지 못하였다. 심마니뿐 아니라 짐승의 발자취를 따라 오르내리는 사냥꾼들도 가끔 실종되었기에 해마다 봄을 맞이할 때 산제(山祭)를 지냈고, 자라나 는 어린아이에게 오르지 말라고 교육을 시켜야 했다. 그런 험난한 아미금산의 정상 아래쪽 깊은 계곡에 악마의 입처럼 벌 어진 시커먼 동혈이 자리잡고 있었다. 사람의 발자취라고는 찾을 수 없는 이 동혈의 깊숙한 곳의 천장에는 야광주가 일렬로 박혀 있어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동혈 입구에서 일백여 장 들어간 곳에 거대한 지하호수가 자리잡고 있었고, 중앙에 있는 섬에는 고루거각들이 세워져 있었다. 주변은 그곳이 호수인지 육지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온통 시커 먼 운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전각엔 불빛이 전혀 새어 나오지 않아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 는데 돌연 대소가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핫……! 이제 중원을 굴복시킬 때가 도래하였도다." 갑자기 모든 전각에 불이 밝혀졌고,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어둡 던 지하광장은 생기가 가득 찬 모습이 되었다. 이만여 명이 됨직한 사람들의 눈에선 차가운 한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소리가 난 전각을 향해 구 배를 올리기 시작하는 그들의 눈빛은 결연한 빛이 가득하였다. "마황현신(魔皇現身) 만마앙복(萬魔仰僕)!" 군중들의 눈빛은 경건하였고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듯하였다. 전각 안에서 황금수실로 짠 곤룡포를 걸친 두 인물이 나왔다. 한 명은 건장한 체구를 지닌 칠순의 노인이었고, 다른 사람은 팔 척 의 거대한 체구를 지닌 중년의 인물이었다. 노인의 각진 얼굴은 강인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곁에선 인물 은 노인을 닮은 듯 보였다. 노인과 그가 나타나자 모두 오체복지의 예를 취하였고, 사위는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음에도 고요하여 적막감마저 일었다. 노인이 엄청난 마기가 흘러나오는 안광을 뿜으며 외쳤다. "크하하핫……! 본제의 대에 천마의 마공이 재현되는 것을 보았으니 기쁘기 한량없도다. 이제 중원을 발 아래에 두는 일만 남았으니 명 을 내리면 언제라도 출진할 수 있게 준비하라……!" 노인은 천혈마제(天血魔帝) 담태우(潭太宇)였고, 오백 년 전 자중지 란이 일어났을 때 정도연합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알려진 마교의 후 예였다. 멸망할 당시 마교의 교주인 천마(天魔)는 천하무적의 마공을 익히고 있었고, 중원을 정복하려고 수없이 많은 정도인들을 무참하게 죽이 며 평화롭던 대륙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중원의 절반 이상을 휩쓸었을 때 섬서성(陜西省)과 산서성(山西省) 을 가르는 황하(黃河)를 사이로 마교와 구파일방을 주축(主軸)으로 결성한 정도연합은 대치했었다. 정도연합이 천마를 따르는 마교의 마인들과 대치하였을 때 수하들이 자중지란을 일으켰고, 천마는 그들과 대적하며 내공의 팔 할을 잃 은 채 정도연합을 상대하여야 했다. 반란을 도모한 그의 수하들은 정도에서 암암리에 파견한 절정이십팔 숙(絶頂二十八叔)이었고, 천마와 대결을 벌려 모두 목숨을 잃고 말 았다. 그런 상태로도 정도연합의 수뇌부와 동귀어진을 하였으니 천마의 무 공은 감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마공이었다. 그의 눈빛에 청성파의 장문인이 목숨을 잃었고, 화산파의 장문인은 그의 천마도(天魔刀)를 막지 못하여 두 팔을 잃어야 했으며 나머지 장문인들도 그의 마공으로 인해 중상을 입거나 무공을 상실하였다.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을 상대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던 천마는 시 간이 지나 내공이 완전히 소진되자 스스로 애도(愛刀)를 가슴에 꽂 으며 외쳤다. "크하하핫……! 수하를 잘못 얻은 죄로 자결을 하지만 언젠가 나의 후손이 너희 정도를 쓸어 버리게 될 것이다." 그가 없는 마교는 이빨 빠진 늑대무리와 다름없었고, 정도연합은 그 들을 모두 황천으로 보내 버렸다. 하지만 정도연합도 돌이킬 수 없 는 피해를 입어 당시에 많은 무공이 절전되었다. 그 와중에도 천마의 후인은 마인들로 하여금 뒤로 빼돌려졌으며 지 금껏 맥을 이어오면서 재기의 칼날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마황성(魔皇星)의 정기를 받지 못하면 천마의 무공을 연성할 수 없 었기에 이후 오백 년간을 오지인 이곳 아미금산에 숨어 지내야 했다 . 사십이 년 전 천혈마제의 독자가 태어났고, 마황성이 이곳에 엄청난 마기를 뿌려대었고, 마기는 갓 태어난 그의 아이의 전신에 스며들 었다. 천혈마제의 곁에 선 인물이 그 때 마기를 받은 아이였고, 그의 전신 엔 근접하지 못할 무시무시한 마기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벌모세수를 거쳤고, 임독양맥이 막히지 않아 마 교의 고수들이 행한 격체전공(隔體傳功)으로 내공을 조금씩 늘려나 갔고 십 세가 되었을 땐 이미 천혈마제의 모든 무공을 십이 성까지 대성하였다. 이후 천마의 무공을 익히느라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연공실에 틀어박 혔다가 오늘에야 출관한 것이었다. 그는 천마의 마공을 팔 성 가량 익혔고, 그것만으로도 중원정벌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천마황(天魔皇) 담등백(潭騰伯)이었고, 전신에서 뿜는 마기만 제거된다면 그가 마인이라고 판단하기 힘들 정도로 빼어난 용모를 지녔다. 그의 모친 만겁마후(萬劫魔后) 섭려화(葉麗花)는 출산을 할 때 지독 한 마기로 인해 산고에 시달리다가 그를 몸 밖에 꺼내놓자마자 목숨 을 잃은 비운의 여인이었다. 모친의 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그는 편 협된 성격의 소유자였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행하는 절대 권력을 휘둘렀다. 지금 그의 내공수위는 팔 갑자에 근접하였고, 중원천하에 그의 내공 을 받을 무인은 눈 씻고 찾아봐야 찾을 수 없을 것이었다. 천혈마제는 천마의 무공을 재현한 천마황을 자식이 아닌 상전의 눈 길로 바라보더니 선조이신 천마의 원한을 풀어 줄 마교의 교주를 그 에게 이양한다는 선포를 하고 그마저 단상 아래로 내려와 오체복지 를 취하였다. "우우우……!" 천마황 담등백의 천마후(天魔吼)에 동혈이 무너질 듯 흔들렸고, 언 제 생성되었는지 모를 굵은 석순(石筍)이 모조리 부러져 나갔다. "크하하핫……! 때가 도래하였노라. 본황을 믿고 따르는 자는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나 배반을 하는 놈들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고통에 시달리며 죽게될 것이다. 본황(本皇)을 따르겠는가?" 바닥에 엎드린 마인들의 입에서는 단 두 글자만 튀어나왔다. "존명……!" 천마황 담등백이 자신의 처소로 발걸음을 옮기자 천혈마제가 얼른 그의 뒤를 따랐다. 전각의 내실에 탁자에 마주앉은 그들 부자는 중 원전도를 바라보며 괴소를 짓고 있었다. 천혈마제가 입을 열었다. "천마황! 네가 차지할 중원이다. 선조이신 천마의 원한을 잊지 말고 정도 놈들에게 갚아주어야 할 것이다." 천마황 담등백이 대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핫……! 아버님! 걱정 마십시오. 소자가 그들의 피로 중원전역 을 물들게 하겠나이다. 헌데 어째서 지금 출진하지 못하게 막으시는 것입니까?" 천혈마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의 사제들이 일을 완벽히 수행하지 못하여 지금 나설 수가 없는 것이다. 은하전장의 금력은 언제든지 쥘 수 있지만 아직 은하전장을 장악하지 못하였고, 당가의 화기제조법은 아직 너의 사제인 독심수 라가 얻지 못하였다." 천마황이 두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아버님! 그런 것 없이 지금 당장 출진해도 우리를 막을 수 있는 집 단이 없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천혈마제가 고소를 지으며 답했다. "너는 충분히 강하다. 허나 거대한 중원은 이만여 마인들만으로는 정복을 성사시키기 어렵다. 설사 중원정복을 성사시키더라도 수많은 사상자가 나올 것이 분명하니 어떻게 중원을 지배할 수 있겠느냐? 그 때문에 아비는 그들과 연합을 한 것이다." 천마황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후후후……! 나찰요화궁(羅刹妖花宮)과 만독강시보(萬毒彊屍堡)는 너무 커다란 욕심을 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계셨습니까? 그까짓 썩은 집단은 하루아침에 변절할 것이 분명합니다. 더욱이 소자는 그 들과 손잡는 것 자체가 혐오스럽습니다." 천혈마제가 괴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켈켈켈……! 그들의 피로 중원정복을 이룩한 다음에 모두 제거하면 될 것이니 그때까지 참아야 한다. 천마의 무공은 천하무적이지만 대성을 이루지 못한다면 깨질 수 있음을 명심하고 더욱 무공을 증진 시켜라." 중원전도를 바라보는 천마황의 얼굴에 조소가 걸리자 그의 두 눈이 혈색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삽시간에 재가되었다. "아버님! 지금 정도 구파일방의 장문인이라 할지라도 소자의 일초를 받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기다리지요." 아미금산의 동혈 속에서 천마의 후예가 맥을 잇고 있다는 사실을 정 도에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마공을 연성하였고, 작금에 이르러서는 거의 예전 의 수준까지 도달하였다. 마교의 마인들이 일시에 동혈 밖으로 나오 면 중원은 피바다를 이룰 것이 분명하였다. 천마황이 연공실로 다시 들어가자 천혈마제가 두 개의 서찰을 전서 구 다리에 매달더니 날려보냈다. '크크크……! 감히 마교와 동등한 대우를 받기를 원하는 너희들의 욕심 덕분에 제명대로 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절강성(浙江省) 괄창산(括蒼山) 깊숙한 계곡에 항상 운무에 덮여 있 는 단애가 있었다. 천장애(千丈崖)로 불리는 그곳은 한번도 바닥을 보이는 일이 없어서 실제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세인들은 알 수 없었다. 그곳에 한 마리 전서구가 운무를 뚫고 내리꽂혔다. 운무 아래쪽은 잘 꾸며진 정원이 있었고, 선계에서나 볼 수 있다던 주안과(朱顔果)가 주렁주렁 매달린 과수(果樹)가 수십여 그루 심어 져 있었다. 그곳에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전각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었는데 그사이로 많은 인영들이 오가고 있었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사내 의 모습은 하나도 없었고 모두 여인들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제일 화려한 전각의 망루에 전서구가 내려앉아 날개를 손질하고 있 자 잠시 후 여인이 새하얀 교수를 뻗어 전서구를 잡았다. 서찰을 푼 여인이 모습을 감췄고 이내 대전에 나타나 무릎을 꿇더니 휘장으로 가린 단상 위를 향해 말했다. "사부님! 소녀 음환요희(淫歡妖姬)이옵니다. 전서구 편에 누군가 밀 지를 보내왔어요." 음환요희라 밝힌 이십대 중반의 여인은 가히 우물(尤物)이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아름다운 용모를 지니고 있었고, 전신에선 색기(色 氣)가 유포되어 사내라면 품고싶은 욕망이 절로 나올 것 같은 요녀( 妖女)였다. 음환요희의 손에 들려 있던 서찰이 휘장 안으로 날아들었다. 이곳은 나찰요화궁(羅刹妖花宮)이란 여인들의 작은 왕궁이었고, 휘 장 안에선 여인의 비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흐으흥……!" 십여 명이 올라도 좁지 않은 커다란 침상에 중년미부가 속이 훤히 비치는 망사의를 걸친 채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고, 이십 대 초반의 준미한 사내 넷이 그녀의 전신에 향유를 바르고 있었다. 부지런히 손을 논리고 있는 사내들은 동공이 풀려 있는 것으로 보아 이지를 상실한 듯 보였다. 농염미가 넘치는 중년미부는 이곳 나찰요화궁의 주인인 홍상마화(紅 裳魔花) 교진취(嬌珍翠)였다.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보드 라운 손에 서찰이 나비처럼 사뿐히 내려앉았다. <궁주! 본제는 거사준비가 완료되었으니 새해 원단이 되면 중원징벌에 나설 것이오. 일 개월 후 셋째 제자에게 은하전장을 완전히 장악하게 하 여 군자금을 분배해 주시기 바라오. 천혈마제 담태우> 서찰을 펼친 홍상마화의 교수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호호홋……!. 드디어 나찰요화궁의 염원이 이루어지겠군. 냄새나는 사내놈들끼리 치고 싸워 양패구사한다면 본궁이 중원을 지배하게 될 것이야. 호호호홋!" 그녀는 휘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자에게 명을 내렸다. "음환요희! 은하전장의 신산수재에게 한달 후 쌍십절을 기해 거사를 시행하라는 전서구를 지금 당장 띄워라." 음환요희가 조용히 빠져나가자 홍상마화가 사내들을 귀여운 듯 바라 보며 요기(妖氣)가 흐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호호호……! 핥아라……!" 사내들은 즉시 그녀의 농염한 육체에 얼굴을 파묻고 설육(舌肉)으로 그녀를 달아오르게 하였고, 그녀는 매우 만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 다. 그 순간 홍상마화의 좌수 약지 손톱 밑에서 분홍색 분말이 뿜어져 나와 수밀도를 농락하는 사내의 콧속으로 빨리듯 들어갔다. 숨을 들이킨 사내의 두 눈은 순식간에 충혈되었고, 전신의 혈맥이 터질 듯이 부풀어올랐다. 축 늘어져 있던 사내의 양물이 철주로 변해 끄덕이자 사내는 괴로운 듯한 표정을 지었고, 홍상마화가 사내들의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자 신의 사타구니에 사내의 철주를 안내하자 사내는 하체에 힘을 주어 진입시켰다. 사내는 폭발적인 속도로 하체를 운동시켜 그녀의 욕화를 더욱 불질 렀다. "아흐흥……! 더 빨리……!" 실내엔 열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으헉……!" 반각이 지나지 않아 사내는 그녀의 밀궁에 파정을 하였고 그 순간 그녀의 둔부가 기이한 각도로 움직였다. 사내는 희열을 느끼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둔부는 엄청난 속도로 빙빙 돌고 있었고, 단 한번의 파정으로 그의 양기는 모조리 그녀의 몸에 빨려들고 있었다. 사내는 멈추고 싶은 표정이었으나 그리 될 수는 없었고, 정혈이 모 두 빨려나가 목내이(木乃伊 : 미이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나머지 사내들은 그녀의 전신을 핥고 있었다. 만족을 하지 못했는지 홍상마화의 약지가 다른 사내를 가리 켰고, 이내 먼저 목내이가 된 사내의 전철을 밟고 있었다. "흐으응……! 좋아……!" 한 시진 후 침상 아래엔 네 구의 목내이가 뒹굴고 있었고, 그녀는 동경을 바라보며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었다. '요즘 쓸모 없는 놈들만 상대하였더니 안색이 좋지 못한 걸? 새해에 중원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면 쓸만한 놈들이 생기겠지……!' 그녀는 중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주안과를 먹은 것과 채양 보음술(採陽補陰術)로 사내의 정혈을 빨아들여 젊음을 유지하고 있 는 세수 백오십 세의 마녀(魔女)였다. 수많은 사내를 상대한 덕에 공력은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늘어났고, 그녀 자신도 어느 정도 수위에 올랐는지 가늠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오십 년 전 천혈마제 담태우와 처음 대면한 때를 기억에 올 리며 이를 갈았다. 자신의 정조를 더럽힌 사내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 버린 후 우연히 채양보음술을 알게된 그녀는 자신에게 걸려든 사내들은 모두 목내이 로 만들었고, 천혈마제도 같은 사내라고 생각하여 접근하였다가 그 의 일수에 지면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때만 해도 분한 마음에 자결을 하려 했으나 천혈마제는 자결하지 못하게 점혈하더니 자신과 무림을 통치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었다 . 기회가 온다면 원수를 갚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 여 나찰요화궁을 세웠던 것이다. 이후 이십 년 동안 연락이 없던 천혈마제가 어느 날 광서성 십방대 산에서 재기를 노리는 만독강시보의 보주 귀령사황 공시태와 동행하 여 나찰요화궁을 방문하였다. 그 때 자신의 내공이 오 갑자에 달해 천혈마제를 능히 제압할 수 있 다고 판단한 그녀는 그에게 다시 도전하였다. 사내들의 내공과 그들의 품에서 나온 비급의 무공을 익힌 그녀는 수 많은 무공으로 그와 대적하였고, 그를 자신의 발바닥을 핥게 하여 수모를 갚아주려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어떠한 무공으로 공격하여도 그의 옷깃조차 상하게 하지 못하였고 점차 지쳐갔다. 그의 내공도 증진되어 있었고, 더구나 천마의 마공을 계승한 그의 마공은 천외천의 마공이었기에 또다시 무릎을 꿇어야 했다. 천혈마제는 패한 그녀를 죽이지 않고 설득하였고, 결국 중원을 삼분 하기로 혈맹을 맺고 무림을 장악할 계획을 세웠다. 그녀는 자신의 내공증진을 위해 중원전역에서 납치한 사내들의 정혈 을 갈취하였으며 궁도들도 같은 방법으로 내공을 증진시키게 하였다 부산물로 나온 목내이들은 모두 만독강시보로 보내 독강시의 재료로 쓰이게 하였고, 세 집단은 삼십 년간을 공조하며 때를 기다려 왔던 것이다. 이제 오랜 기다림 속에 무림을 통치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기에 그녀 는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 또한 무림을 독식할 음흉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고, 유 일한 남자제자인 신산수재가 빼돌린 재물을 이용해 점차 많은 궁도 들을 키우고 있었다. 신산수재는 사랑했던 손녀가 스스로 자결하며 목숨을 구걸하여 살려 둔 그녀의 증손자였다. 실제 그녀의 손에서 살아난 사내는 부친과 천혈마제, 자신의 정조를 훔친 이름 모를 무림인과 신산수재뿐이었다. 그는 영악하여 시키지 않아도 나찰요화궁을 위해 충성을 다했기에 아직 그녀의 눈에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천혈마제와 귀령사황은 나찰요화궁의 궁도 수가 삼천이 정도라고 생 각하겠지만 이미 일만요녀색혼대(一萬妖女色魂隊)가 조직되어 있었 고, 그녀들의 나녀섭혼무진(裸女攝魂舞陣)은 사내라면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완벽한 진법이었다. 궁도의 대부분이 채양보음술로 인해 일 갑자 이상의 내공을 지니고 있었기에 중원의 어떠한 단체보다 강한 세력을 지니게 된 것은 물론 , 흑심(黑心)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수개월 전 회합하였을 때 서로의 무공을 가늠해보기 위해 단목세가 를 쓸어 버리자고 제안하였고, 그때 칠 갑자의 공력 중 불과 오 갑 자의 내공만 사용했었다. 세인들이 단목세가에 혈겁을 일으킨 혼세삼천마라고 생각한 사람들 은 바로 천혈마제와 귀령사황, 그리고 그녀 자신이었다. 당시 추측으로 귀령사황의 공력은 오 갑자였고, 천혈마제의 내공은 자신과 비교해 대등하다고 판단하였다. 일단 무림을 통치하기 시작하면 더 많은 사내들의 정혈을 고갈시켜 내공을 얻을 수 있었으므로 그녀는 그때까지 연합세력을 유지시켜야 했다. 헌데 요즘들어 이미 잡아 길러온 색노(色奴)들이 대부분 소 진되었다. 궁도들의 수효가 늘어남에 따라 색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었기 때 문이었다. 혈육의 정을 모두 끊은 여인들의 집단이라 여아가 태어나면 잘 길렀 지만 남아들은 지하 뇌옥에서 짐승처럼 먹으며 자라야 했다. 그들은 나이가 차면 색노로 명을 마감해야 했고, 십 년 주기로 무림에 궁 도를 내보내 어린 사내아이부터 오십 먹은 노인까지 하물이 성한 사 람은 무공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납치하여 궁도의 내공을 증진시키 는데 이용해 왔다. 수욕을 마친 그녀는 제자 셋을 모두 불러들였다. 음환요희 도연지( 萄燕芝), 운라요희(雲羅妖姬) 사라진(史羅珍), 환락선자(歡樂仙子) 조옥령(曹玉玲)이 곧 대전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부님! 찾으셨어요?" 홍상마화 교진취는 태사의에 등을 기대고 앉아 기다란 손톱을 다듬 으며 입을 열었다. "음환요희! 신산수재에게 전서구를 띄웠느냐?" 음환요희가 허리를 조아리며 답했다. "사부님 명을 받은 즉시 띄웠나이다." 홍상마화가 자세를 바로 세우며 명했다. "일백 대의 색혼사륜거(色魂四輪車)를 충동시켜라!" 제자 셋의 표정이 밝아지며 동시에 답했다. "존명……!" 그녀들이 빠져나간 대전에 홀로 남은 홍상마화의 안면에 무림에 다 시 한번 혈겁이 일 것을 예고하는 미소가 걸렸다. 홍상마화의 제자들은 색혼사륜거를 타고 나찰요화궁 밖으로 나갈 궁 도들을 선별하였고, 마차 한 대 당 색기가 넘쳐흐르는 궁도 다섯을 배정하였다. 대제자인 음환요희가 사십 대, 운라요희와 환락선자는 각각 삼십 대 를 지휘하여 광장에 집결시켰다. 마차마다 백리총(白 ) 여섯 마리가 매어져 있었고, 어자석엔 미 태가 철철 흘러 넘치는 궁도가 앉아 출도하기만 기다렸다. 음환요희가 탄 색혼사륜거가 횃불로 밝혀진 동혈로 진입하자 나머지 색혼사륜거가 따랐다. 끄르르릉―! 괄창산 아래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의 바위가 굉음과 함께 서서히 좌 우로 갈라졌고, 나찰요화궁에서 동혈로 들어갔던 색혼사륜거가 빠져 나와 울퉁불퉁한 산로를 따라 내려오다가 관도에 접어들자 뿔뿔이 흩어졌다. 맨 뒤를 따르는 마차에 탔던 환락선자 조옥령과 궁도들이 마차자국 을 지우며 따라내려 왔다가 관도에 이르자 마차에 올라 어디론가 사 라졌다. 그들 모두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출구를 지키는 궁도 들이 기관을 작동하여 출구를 막았다. 끄르르릉―! 거대한 바위 문은 닫혔고, 외부의 침입자를 막기 위해 밖에 문을 개 폐할 수 있는 기관장치는 그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
첫댓글 재미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했습니다.
잼 납니다
기대해봅니다
너무 재밌어요
하루에 2편은 너무 무리한 부탁 인가요
날씨도 안 좋은데 건강 조심하세요
즐독 ㄳ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