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색혼사륜거의 출현 전소추는 은하전장의 충신들에게만 세 가지 절기를 적은 비급을 비 밀리에 전하게 하였다. 태양검법(太陽劍法)과 환영미리보(幻影迷離步), 그리고 지법의 일절 인 유성백리탄(流星百里彈)이었다. 그 비급을 전해 받은 은하전장의 충신들은 감격하였고 비밀리에 연공에 들어갔다. 자객문의 문도들은 단 하나도 자신의 임무에 실패하지 않았고, 모두 은하전장의 인물로 화해 총단으로 각자 연락을 취해왔다. 신산수재는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 진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일할 때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처소에 틀어박혀 꼼짝도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산수재의 처소를 날아들던 전서구가 일살의 손에 잡혀 전소추에게 인도되었다. 서찰의 내용을 읽은 전소추는 서찰을 다시 전서구에 매달고 허공에 띄웠고 전서구는 날개를 퍼덕여 신산수재의 처소로 날아들었다. 그 는 기다렸다는 듯 서찰을 펼쳤다. < 신산수재! 한달 후 거사를 시행하라는 사부의 명을 전한다. 음환요희 도연지> 짤막한 글을 읽은 그는 경멸이 가득 찬 눈빛을 보이더니 서찰을 태 워 없앴다. '더러운 계집! 증조모의 총애를 받지 못했다면 홍등가의 천한 창녀 로 썩을 것이 감히 내게 존칭도 생략하다니……! 무림이 세 분 사부 의 뜻대로 접수되면 네년의 목숨은 내가 친히 거둘 것이다.' 그는 그녀가 시기하여 모친이 죽게되었다는 소문을 접한 것은 그의 나이 십 세 때였고, 그때 나찰요화궁의 궁주가 자신의 외증조모라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자신이 태어났을 때 증조모에게 죽여 없애라고 간언한 음환요희 때 문에 모친은 자결을 하였고, 모친의 유언 덕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 할 수 있었다는 소문이었다. 나찰요화궁에 있는 사내들은 한마디로 가축과 다름없었고, 언제든지 그녀들이 필요하면 데려다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며 양기를 빼앗겨 야 했다. 그곳에 머물 땐 더러운 창기 같은 궁도들 때문에 오금을 펴지 못하 였던 그는 소문을 들은 후 공동사부인 천혈마제와 귀령사황에게 일 년씩 무공을 전수받았다. 무공을 익힌 후 은하전장에 들어와 살면서 그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음환요희를 죽이는 일이었다. 그렇게 여인을 증오하던 그에게 청초한 옥수불패 하운미는 여인의 고귀함을 일깨워준 고마운 존재였다. 허나 지금은 자신을 버리고 남 의 품에 날아든 그녀 역시 간살(奸殺)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천한 암컷일 뿐이었다. 그는 즉시 백지에 같은 글을 적기 시작하였다. 쌍십절(雙十節)을 기해 거사를 행할 것이니 모두 총단으로 모이라는 글이었고, 그 글은 각 지부와 총단을 오가는 마차에 실려 떠나갔다 한달 후를 상상하며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세 분 사부를 상대한 인물은 중원천하 어디에도 없다. 둘째 사형은 명을 이행하지 못하여 제거 될 것이니 난 대사형의 비 위만 맞추면 언젠가는 무림의 이인자가 될 것이다. 내 처지로 일인 지상 만인지하의 자리에 오른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 십방대산의 밀림 속 만독강시보의 보주 귀령사황은 천혈대제가 보내 온 서찰을 쥐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휴우……! 새해 원단에 거사를 시행하려면 독강시를 모두 출동을 시켜야 하는데 아직 독심수라녀석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였으 니 낭패로구나……! 반년만 늦출 수 있다면 절독혈살강시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인데 이 일을 어찌할꼬……?' 시기를 늦춘다면 천혈마제의 의심을 받게 될 것이 명확하였기에 그 이전에 절독혈살강시를 완성해야 했다. 그는 초혼요령 공야취와 독 두혈귀 염진두가 일하는 동혈로 친히 찾아갔다. 요즘 그들은 밤잠까지 설치며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온갖 독이 배합된 항아리 안에 잠겨진 강시들은 깨어 날 줄 몰랐다. 귀령사황이 방문하자 그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예를 취하였다. "보주님! 납시셨습니까?" 귀령사황은 항아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독두혈귀! 새해 원단 이전에 절독혈살강시를 만들 수 있겠는가? 이 제 시간이 없네. 그러니 항아리마다 다르게 독을 배합하여 한 구라 도 완성시키게. 일단 배합비율만 알아낸다면 차후에 양산해도 늦지 않을 것이야. 본좌는 원단에 맞춰 수하 전원과 오천 구의 독강시와 출정할 것이니 그 때까지 완성하지 못한다면 자네와 야취는 이곳에 남아 연구를 계속해야 하네." 독두혈귀와 초혼요령의 결의에 찬 안광이 반짝였다. "존명!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돌아선 귀령사황의 어깨는 매우 무겁게 느껴졌다. 절독혈살강시를 만들지 못한다면 마교가 존재하는 한 만독강시보의 무림독패는 영원히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탓이 었다. 마교는 뛰어남을 수 없는 거대한 강이었고, 지금 시점은 자신이 절 반도 못 건너 물에 빠질 상황이었다. 새해 원단까지는 피 말리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귀령사황의 명을 받은 천인자운(天刃慈雲)은 유령대제가 모습을 나 타냈던 은하전장의 지부를 자세히 살펴보았고, 곧장 총단을 향해 방 향을 잡았다. 그는 관현지부에서 남들이 전혀 느낄 수조차 없는 미약한 전소추의 특이한 체향을 찾아내었고, 그것을 빌미로 추적을 시작한 것이었다. 자신을 향해 살심을 품은 인물이 찾아온다는 것을 모르는 전소추는 손바닥 위에 놓여 있는 신산수재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그의 이런 행동은 무척 자연스러웠기에 신산수재는 전혀 눈 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도 하루종일 그를 지켜본 전소추는 일살에게 임무를 맡기고 유 운각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주안상을 보아온 네 명의 처와 술을 마시 기 시작하였다. 옥수불패가 술을 따르면 다정선자가 안주를 입에 넣어주었고, 잔이 비면 날수인요가 술을 따랐으며 백수호접이 안주를 먹여주기에 사내 로서 진시황 부러울 것이 없는 호강을 누리고있었다. "호호호……! 가가! 제 술잔도 받으세요." 백수호접이 술을 따르는 동안 전소추는 피부가 벨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을 받았고, 그 순간 그는 환광검을 꺼내들며 외쳤다. "모두 내 뒤로 피하시오." 여인들은 무림의 여인답게 즉각적으로 사태를 파악한 듯 전소추의 등뒤로 피하며 숨소리를 죽였다. 바늘이라도 떨어지면 천둥소리처럼 커다랗게 들릴 정도의 고요한 유 운각의 열려진 창문에 자색의 안개가 스며들었고, 그 속에서 쇳소리 처럼 듣기 거북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킬킬킬……! 네 놈이 유령대제의 행세를 했던 놈이었군? 애송이에 게 속은 독심수라가 참으로 한심하구나……! 보주께서 너의 목을 원 하시니 이제 떼 줘야겠다." 자색안개가 얼마나 짙은지 몸을 숨긴 사내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던 전소추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후후후……! 내 목은 질겨서 당신 같은 하수는 떼어갈 자격이 없으 니 보주가 누구인지 몰라도 직접오라고 전하시오." 자색 안개에서 음성이 새어 나왔다. "킬킬킬……! 네 놈의 목은 나 천인자운의 몫……! 닭 잡는데는 소 잡는 칼이 필요 없는 법이다 애송아!" 자색 안개에서 예기가 뻗어 전소추의 목을 향했다. 전소추가 가볍게 환광검을 치켜들었다. 챙―! 경쾌한 금속성과 함께 얇은 유엽비도(柳葉飛刀) 한 자루가 천장에 박혀 부르르 떨고 있었다. "흥……! 제법이군." 안개 속에서 벼락 같이 수십여 개의 예기가 동시에 뻗어 전소추의 전신을 향했다. 이를 본 전소추의 우수에 잡힌 환광검이 한바퀴 도 는가 싶더니 엄밀한 검막을 형성해 그의 전신을 보호하였다. 채채채채챙―! 수십 자루의 유엽비도가 환광검과 부딪쳐 퉁겼다가 이내 전소추의 전면에 일부러 해 놓은 것처럼 가지런히 쌓였다. 그 광경은 무림의 일류고수라도 흉내 낼 수 없는 신기였다. "꽤 쓸만한 유엽비도 같은데……? 선물치고는 괜찮군." 전소추가 빈정거리자 자색안개가 천천히 사라지며 자색장포를 입은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한 체구에 두 줄기 자색안광은 소름끼치도록 날카로웠다. 자색장포의 표면엔 유엽비도가 마치 어린(魚鱗)처럼 뒤덮고 있어 어 린갑의(魚鱗甲衣)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의 공격을 너무도 손쉽게 막아내는 전소추에게 최후의 일 격을 가할 생각으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전신에 살기를 짙게 드러낸 그가 입을 열었다. "잔재주를 믿고 유령대제의 흉내를 내었었군. 받아라!" 천인자운의 자색장포의 표면에 있던 유엽비도들이 일시에 모두 일어 나서 예광과 함께 전소추를 행해 날아갔다. 유엽비도는 전광의 속도로 뿜어져 나왔고, 이제까지의 공격과는 달 리 시차를 두고 전신을 파고들었다. 태만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입가에 미소를 머금 은 그의 몸에서는 태양과 같은 후광이 일어나 순간적으로 천인자운의 눈을 감게 만들 었고, 축융화극신공을 주입한 환광검은 거대한 화검(火劍)으로 변해 전소추의 주위를 감싸며 그를 보호하였다. 채채채채채채챙―! 수천 자루의 유엽비도는 전소추의 일장 거리 밖에서 오던 곳으로 되 돌아갔다. 자신의 혼신공력으로 유엽비도를 발(發)한 천인자운의 안색이 하얗 게 변하였고, 처음 속도보다 배가 빠르게 되돌아오는 유엽비도를 막 을 생각도 못하고 바라보고 있었다. 전소추의 검에 튕겨진 유엽비도는 만천화우(滿天花雨)의 수법으로 변환되어 천인자운을 덮친 것이었고, 그는 자신을 향해 꽃잎이 날아 든다는 착각에 빠졌던 것이다. 파파파파팟―! "아아아아악……!" 천인자운의 자색장포엔 수천 자루의 유엽비도가 빽빽하게 꽂혀 마치 고슴도치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날아간 유엽비도 가 그의 미간 사이에 박혀 부르르 떨자 두 눈을 부릅뜬 채 뒤로 넘 어갔다. 쿵―! 전소추가 호신강기를 거두며 한숨을 몰아쉬었다. '휴우……! 내공이 부족했다면 저자의 수법에 깨끗이 당할 뻔했군. 저자가 말한 보주는 대체 누구기에 나의 목숨을 원했지……?' 유엽비도의 끝에 부시독이 발려졌었는지 전소추와 대적한 천인자운 의 전신이 금새 부식되며 썩는 냄새를 피어 올렸다. "우웨엑……!" 전소추의 뒤쪽으로 피해 있던 여인들이 구역질을 하며 유운각 밖으 로 튀어 나갔고, 전소추는 자신을 공격한 자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 해 다가갔다. 하지만 부시독이 아니었는지 살뿐만 아니라 뼈까지도 녹아 내리고 있었고 심지어 그가 걸쳤던 의복까지 모두 녹이고 있었 다. 이는 그 인물이 독인(毒人)이었고, 절명하자 몸에 축적되었던 독기 가 부시독과 합친 결과였다. 결국 신원을 파악하는데 실패한 전소추 는 실내의 창과 문을 모두 열어 환기시키며 생각했다. '저자는 내가 유령대제 흉내를 낸 것을 알고 찾아왔다. 독심수라를 골려줄 때를 제외하고는 그로 변장한 적이 없었으니 독심수라가 의 심되지만 그를 보주라고 부르는 인물이 없으니 그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때 월살이 뛰어들며 떠들었다. "주군!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월살은 자신의 상의를 벗어 바닥에 고인 시커먼 물을 닦으려고 다가 갔다. "월살! 네 손을 녹이고 싶지 않다면 만지지 마라!" 월살이 깜짝 놀라 몸을 빼자 전소추가 직접 이불보로 바닥에 고인 독수(毒水)를 닦으며 말했다. "이것은 부시독과 백여 종의 독과 합쳐진 독수다. 그러니 최소 천독 불침의 신체를 지니지 못하면 중독되어 이 꼴이 될 것이야." 이불보를 밖에 가지고 나온 전소추는 불을 놓아 태워 버렸고, 근처 에 아무도 다가서지 못하게 하였다. 재가 남자 유엽비도를 모두 거둬와 일장 깊이의 구덩이를 파서 함께 묻고 나서야 손을 깨끗이 씻고 유운각에 들었다. 그의 처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피신을 갔기에 조용하였다. 자신을 공격했던 인물이 천인자운(天刃慈雲)이라 밝혔지만 그런 외 호를 쓰는 인물은 월살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자가 말했던 보주는 적어도 사천당가의 독심수라와 관계가 있는 인물일 것이라고 짐작만 될 뿐 더 이상 감을 잡을 수는 없었다. 하 긴 천인자운이 독인이었다는 것만으로 일백여 년 전 멸문(滅門)하여 없어진 만독강시보를 상상해낸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골치가 아파 오자 만사를 털어 버리고 운기행공에 들었고, 곧 삼매 경에 빠졌다. 십이대주천을 마쳤으나 이런 저런 잡념 때문에 잠이 오지 않자 그 동안 익혔던 무공을 떠올리며 긴긴밤을 지새웠다. 날 이 새자 은하전장에 급보(急報)가 날아들었다. 십 년만에 색혼사륜거가 무림에 다시 등장했다는 소식이었다. 절강성에서 백여 대의 색혼사륜거가 나타나 중원에 흩어진다는 소식 이었다. 전소추는 그 당시 무후사의 암동에서 무공을 익히고 있었기에 색혼 사륜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다. 현천천검이 부랴부랴 각 지부에 색혼사륜거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 라는 명을 내려보내자 궁금하여 물었다. "할아버님! 색혼사륜거가 무엇이기에 그런 명을 내리십니까?" 현천천검은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자네는 듣지 못했는가……?" 전소추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그가 말을 이었다. "색혼사륜거가 무림에 처음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십 년 전이었고 그 때는 한 대만 있었네. 마차엔 아름답고 현숙하게 보이는 여인들이 타고 있었지! 소문엔 그 여인이 서시(西施)와 버금갈 정도로 아름답 다고 하였었네. 그 여인의 미색에 반한 중원의 젊은이들이 그 뒤를 따라 강호를 유람하였네. 처음엔 몇 명되지 않았으나 나중엔 수백 명이 그 뒤를 따라다녔네. 그런데 처음에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느 날 갑자기 마차가 사라져 버렸는데 기이하게도 그 뒤를 따르 던 젊은이들도 함께 사라졌네. 개방의 방도들조차 찾지 못하였으니 오리무중의 사건이었지." 전소추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여인의 미색에 반해 은거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현천천검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쯧쯧쯧……! 자네는 여인 몇 명이 수백 명의 사내를 상대할 수 있 다고 믿는 겐가……? 이후 십 년 주기로 당시에 나타났던 마차와 비 슷한 마차가 무림에 등장했고,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네. 마차에 몸 을 실은 여인들은 아름답다고 소문이 났고, 그 여인들의 사랑을 얻 기 위해 젊은이들이 그 뒤를 따랐지……! 헌데 색혼사륜거가 등장할 때마다 마차의 수효가 늘었고, 그 때 사라진 사람들은 다시는 무림 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네……." 전소추가 다시 물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수효의 젊은이들이 사라졌습니까?" 현천천검이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대략 일만오천여 명의 젊은 인재들이 사라졌다고 알려졌네. 하지만 십 년 전에는 젊은이만 따른 것이 아니고 나이가 든 인물들도 상당 히 사라졌다고 알려졌네." 전소추는 호기심이 발해 현천천검에게 말했다. "제가 나서서 진상을 알아보겠습니다." 현천천검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마차를 본 인물들은 예외 없이 사라졌네. 그러니 자네는 나서지 말 게. 자네가 사라지면 미아는 어찌하라는 겐가?" 전소추가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할아버님! 걱정 마십시오. 신산수재가 일을 벌이기 전 에 돌아오겠습니다. 만일 그때까지 돌아오지 못한다하더라도 자객가 주에게 일을 설명하였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환광검을 맡겨놓고 다녀오겠습니다." 전소추는 현천천검이 말릴 사이도 없이 신형을 띄워 사라졌다. 현천천검은 전서추가 건네준 환광검을 바라보더니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쯧쯧쯧……! 으이구……! 영웅은 호색이라더니 저 녀석이 그 모양 이니 이를 어쩔꼬……!" 달리는 말보다 빠른 것이 소문이었다. 절강성(浙江省)에서 흩어진 색혼사륜거는 강소성(江蘇省), 안휘성( 安徽省), 강서성(江西省), 복건성(福建省)에만 진출해 있었다. 이미 은하전장에서 소식을 들은 전소추는 쉬지 않고 달려 안휘성 합 비현(合肥縣)에 도착하여 소문이 무성한 색혼사륜거를 먼발치에서 볼 수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 아무리 말려도 젊은이들은 색혼사륜거 주변 에 몰려들고 있었다. 상당히 먼 거리에 있었지만 전소추는 여인의 체향과 흡사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백리총 여섯 마리가 끄는 마차는 금을 입혔는지 호화로웠고, 각종 보석을 꿴 주렴(珠簾)이 쳐 있어 내부가 보일 듯 하였다. 천안통(天眼通)을 시전하여 살펴보니 속이 비칠 것 같은 얇은 의복 을 걸친 여인들이 안에서 다리를 꼰 채 앉아 있었다. 그녀들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었는데 전소추가 듣기에 는 왠지 요사스러웠다. 여인들이 완전히 나신으로 있었다면 추해 보였겠지만 살짝 가리고 있으니 젊은이들이 따를 만도 하였다. 얇은 면사를 가리고 있었으나 그녀들의 얼굴은 비쳐 보였고, 자신의 부인들과 비교하면 약간 처지지만 그래도 몹시 아름다운 것은 인정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자석에 앉은 여인은 홍의경장차림이었는데, 허벅지 쪽을 갈라놓은 탓에 하얗고 탐스런 허벅지가 드러나 있었다. 백의를 입고 검을 든 젊은이가 마차에 다가가서 물었다. "낭자들은 어디서 오신 것이오?" 꾀꼬리처럼 아름다운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호호호……! 그것을 알아 무엇을 하시게요? 저희들은 낭군을 찾으 러 강호를 유람하는 것이에요. 무공이 강한 사내를 찾고 있지요. 물 론 잘생기신 당신과 같은 사람이면 더 좋고요. 호호호……!" 낭군을 찾으러 강호를 유람한다는 직설적인 말에 사내는 얼굴을 붉 히며 물러섰다. 같은 질문에 똑같은 답을 이미 수십 차례 하였기에 여인들은 막힘이 없었다. 마차가 잠시 머무르는 동안 소문을 들은 합비현의 젊은이들이 점차 모여들고 있었다. 마차 주위엔 구름처럼 몰린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는데, 나중엔 나이가 좀 든 사내들도 모이고 있었다. 그 중에는 기혼자도 상당수 끼어 있는 듯 보였다. 아직 마차에 오른 사내는 아무도 없었고, 그녀들의 마음에 든 사내 는 없는 듯 보였다. 전소추가 뒷짐을 진 채 천천히 마차로 다가갔다. 그의 준미한 용모는 그곳에서 군계일학으로 돋보였다. 반안(盤顔)과 같은 절세미남자는 아니었지만 그는 외모와 체격이 묘 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근처에 다른 여인들의 모습은 눈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기에 그는 바람을 등지고 자신의 체향을 약간 풍기며 다가갔다. 어자석에 앉아 있던 여인이 전소추를 발견하고 미성을 토했다. "언니들! 괜찮은 사내가 나타났어……!" 마차 안 여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전소추에게 꽂혔다. 모르는 척 다가간 전소추가 입을 열었다. "책만 읽다가 산책을 나왔더니 뜻밖에 선녀처럼 아름다운 낭자들을 만나다니 모처럼 개안(開眼)을 하였소이다." 전소추는 은연중 미염공(迷艶功)을 펼쳤다. 어자석에 앉아 있던 여인이 그의 모습에 반했는지 얼굴을 붉히며 한 쪽으로 옮겨 앉더니 입을 열었다. "호호호……! 이곳이라도 오르시겠어요?" 마차 안에서 있던 여인 하나가 교수를 주렴 밖까지 내밀며 손짓했다 "저희와 마음이 맞는 서생인 듯 보이는데 어자석에 앉힐 수야 없지 요. 안으로 드세요." 색혼사륜거가 무림에 등장한 이래로 안으로 들어섰던 젊은이가 없었 기에 모여든 사내들은 질투의 눈길로 전소추를 쏘아보고 있는 동안, 그는 천천히 주렴을 걷고 안으로 들어갔다. 파사국의 폭신폭신한 융단(絨緞)이 깔려 있었고, 내부의 모습 또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는데, 흠이라면 밖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에 낯뜨거운 춘화도(春畵圖)가 걸려 있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정교하게 그렸는지 실제 남녀가 운우지락을 즐기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현된 춘화도였다. 전소추가 그림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짓자 여인 하나가 주렴 안을 막는 기관을 작동시켰다. 스르릉―! 철판이 아래로 내려와 창문을 막았고, 시끄럽던 외부의 소리가 차단 된 것으로 보아 철저한 방음장치가 되어 있는 듯 보였다. 실내 천장에 야광주가 박힌 탓에 어둡지는 않았다. 여인들의 반짝거리는 눈빛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전소추의 눈과 마주쳤다. 그녀들은 섭혼술(攝魂術)을 시전하였고, 전소추의 동공은 풀어져 혼 이 빠져나간 모습을 하더니 이내 축 늘어져 버렸다. 그 모습을 보던 여인 하나가 전소추의 하의에 손을 집어넣더니 환호 성을 질렀다. "우와……! 보기와는 달리 끝내주는 물건을 지니고 있다니……?" 사내들을 꼬이는데 싫증난 여인들은 마차의 천장을 두 번 두들겼다. 마차는 관도를 따라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하였고, 그 뒤를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사내들이 따르고 있었다. 따그닥―! 따그닥―! 전소추의 의복은 순식간에 모두 제거되었고, 그의 양물을 바라보던 여인들은 저마다 환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축 늘어져 있던 전소 추에게 여인 하나가 작은 소리를 발하였다. "깨어나라……!" 전소추는 몽롱한 표정을 지은 채 눈을 반개(半開)하였다. 순간적으로 전소추의 체향이 실내를 가득 채웠다. 그의 기이한 체향 을 깊이 들이쉰 여인들이 몸을 비비꼬며 전소추에게 덮쳤다. "아아아……! 내 몸이 왜 이렇게 달아오르지?" 그녀들은 전소추의 전신에 몸을 비비며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를 쓰 고 있었다. 일단 전소추의 하물이 성을 내야 교합을 할 것인데 그의 하물은 일 어설줄 몰랐고, 그의 체향을 더욱 많이 마시게 되자 자신들의 나신 을 쓰다듬으며 비음을 흘리고 있었다. 여인에게 있어 그의 체향은 무림에서 제일 약효가 강한 최음제보다 도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아흐흥……! 흐으응……!" 이미 이성을 상실한 그녀들은 둘씩 껴안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때 전소추의 풀어진 동공이 제자리를 찾더니 녹색으로 물들기 시 작했고, 그녀들을 향해 환상몽몽섭혼술(幻想夢夢攝魂術)이 펼쳐졌다 그러자 여인들의 동공 역시 녹색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점차 풀려갔 다. 전소추는 혜광심어(慧光心語)로 그녀들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흐흐흐……! 너희들의 주인으로 명한다. 지금 나와 운우지락을 나 누고 있으니 마음껏 즐겨라. 이제와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쾌락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녀들은 마주 안은 상대가 전소추라고 생각하고 물샐틈없이 밀착된 하체를 비벼대며 쾌락에 젖은 비음을 토하고 있었다. 그녀들의 옥문에 감로수가 비치더니 서로의 옥문 주위를 적시고 있 었다. 그 모습을 본 전소추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여인들의 용모 못지 않게 나신도 아름다웠지만 추한 행동으로 인해 그녀들의 아름다움은 퇴색되었던 것이다. 여인들이 쾌락에 겨워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비음을 계속 토해 놓았 지만 전소추의 안광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한 시진 정도의 시 간이 지나자 여인들은 기운이 다했는지 늘어져 버렸으나 몽롱한 눈 빛엔 환희의 여운이 남아 있는 듯 보였다. 그것도 잠시, 여인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전소추가 한 여인을 흔들어 깨워 환상몽몽섭혼술을 시전해 눈을 직 시하며 물었다. '주인으로서 묻는다. 너의 소속과 신분, 색혼사륜거가 무림에 나온 이유에 대해 말하라……!' 여인은 지체없이 답했다. "주인께 고합니다. 소녀는 나찰요화궁의 향주(香主) 색정흡녀(色情 吸女) 음수월(陰水月)이옵고, 중원의 사내들을 나찰요화궁으로 데리 고 가기 위해 출궁을 했나이다." 전소추는 나찰요화궁이라는 세력은 들어보지 못하여 미심쩍은 표정 을 지으며 물었다. '색정흡녀! 나찰요화궁은 어느 곳에 위치하였고 누가 궁주직을 맡고 있느냐?' 색정흡녀가 천근만근 내리누르는 눈까풀을 간신히 위로 올리며 답했 다. "절강성 괄창산의 계곡에 위치하였고, 궁주는 홍상마화 교진취이지 요." 전소추가 다시 물었다. '지금까지 데리고 간 사내들은 어떻게 되었느냐?' 색정흡녀가 입맛을 다시며 답했다. "호호호……! 그야 우리 일만 궁도의 무공증진을 위해 양기와 내공 을 전해주고 생을 마감하였지요. 그들은 궁도들을 안는 영광을 얻었 으며 쾌락에 겨워 몸부림치다가 죽었으니 행복한 삶을 살았을 거예 요." 전소추가 여인의 기억을 지우고 그녀들의 완맥(腕脈)을 일일이 잡아 내공을 측정한 후 생각했다. '홍상마화라면 백이십 년 전 사내들의 정혈과 내공을 흡취하여 무림 의 공적이 된 마녀가 아닌가……? 그런 마녀가 세운 집단에 일만 명 의 요녀(妖女)가 들끓고 있다니 누가 이일을 믿을 것인가? 더구나 요녀들은 최소 일 갑자의 내공을 지니고 있으니 쏟아져 나온다면 현 무림에서 막을 수 있는 방파는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 막지 못한 다면 언젠가 이 요녀들 때문에 무림에 커다란 환란(患亂)이 일어나 게 될 것이다.' 따그닥―! 따그닥―! 전소추가 탄 마차는 관도 위를 천천히 구르고 있었고, 그 뒤를 사내 들이 침을 흘리며 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암중에 약속이라도 한 듯 마차에 오르려는 인물은 없었으며 모두 자신들이 마차에 탄 여인들과 짝을 맺으려는 생각만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어자석에 앉아 있던 여인이 약간 상기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흥……! 언니들은 자신들만 재미를 보고 난 이게 뭐야……? 그 잘 생긴 서생은 지금쯤 뼈가 흐물흐물 녹아 있을 텐데 저렇게 많은 사 내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어떻게 처리를 한담……?' 그녀는 마차 안에 탄 서생이 지금쯤 정혈이 고갈되어 목내이로 전락 하였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전소추는 환상몽몽섭혼술을 거두고 색정흡녀의 푹신한 허벅지에 머 리를 괴고 잠든 채 하였다. 여인들이 머리를 흔들며 깨어나 기지개를 폈다. "아함……!" 그녀들은 자신들이 꿈속에서 가진 정사에서 여태껏 자신들이 경험하 지 못하였던 극한의 쾌락을 맛보았기에 모두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 었다. 그런 상태였으니 사내와의 교합에서 양기를 얻지 못한 것을 간과하였던 것이다. 색정흡녀는 자신의 허벅지 위에 머리를 기댄 전소추를 바라보며 깜 짝 놀랐다. 자신들과 운우지락을 즐긴 사내들은 예외 없이 정혈이 고갈 되어 뼈 만 앙상하게 남은 목내이로 화했는데 사내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탓이었다. "호호호……! 이자는 상상을 초월하는 정력을 지녔나보네……?" 나머지 여인들도 자신들을 즐겁게 해준 사내의 나신을 쓰다듬으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향주님! 당분간 이자를 우리들의 노리개로 쓰면 어떻겠어요?" 색정흡녀가 흡족하게 웃으며 답했다. "호호호……! 이런 자가 우리에게 걸려들다니……? 형전주(刑殿主) 운라요희께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빼앗길 것이니 말조심을 해야 할 것이다." 색정흡녀는 여인 한 명을 지목하며 말했다. "네가 나가서 막내와 교대를 하거라." 여인은 목함(木函)에서 홍의경장을 꺼내 걸치고 마차 위의 여인과 교대를 하였는데 원래 있던 여인보다 아름다워 뒤를 따르는 사내들 의 눈이 둥그래졌다. 하지만 막내라 불리운 여인은 마차에 들어오며 전소추의 모습을 보 고는 더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향, 향주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마차는 정지하였고, 색정흡녀가 글을 적고 있다가 미소를 지으며 답 했다. "우리가 횡재를 했나보다. 이 자를 궁주님께 진상하면 상을 받게 될 것이야." 그녀는 붓을 내려놓고 먹물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접더니 전서구에 매달아 날렸다. 실내를 가렸던 철판이 위로 올라가 주렴만 흔들거리자 사내들이 조 금이라도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어자석에 앉아 있던 여인이 외쳤다. "물러서세요……! 당신들은 이미 우리와 약조를 하고 따르는 것이 아닙니까? 만일 마차에 불상사가 일어난다면 여러분과의 약조는 없 었던 것으로 하고 다른 곳에서 우리들을 차지할 영웅을 찾겠어요." 사내들이 웅성거리더니 순식간에 마차에서 십 장 떨어진 곳으로 물 러났다. 여인이 면사를 거두며 미소를 지었는데, 대낮인데도 그녀의 옥용은 환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호호호! 고마워요." 그녀들이 탄 마차를 따르는 인원이 삼백여 명이 훌쩍 넘었고, 자신 들에게 할당된 인원이 이미 차서 더 이상 색혼사륜거를 끌고 다닐 필요가 없었기에 그녀들은 귀궁(歸宮)을 원하였다. 색정흡녀가 전서구를 띄운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고, 나찰요화궁에서 허락이 떨어지면 즉시 귀궁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날이 새시 전까지 마차의 창은 철판으로 세 번 가려졌고 그 때마다 전소추는 환상몽몽섭혼술을 펼쳐 여인들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아야 했다. "흐으응……! 아흐흥……!" 그녀들은 전소추와 운우지락을 나누는 환상에 빠져 쾌락에 겨워 비 맞은 참새처럼 전신을 오들오들 떨면서도 힘차게 둔부를 놀리고 있 었다. 그는 꾹 눌러주고 싶은 생각도 일었지만 자신의 처들에게 죄 를 짓는 것 같아 간신히 억누르고 있었다. 그 일이 반복되자 여인들은 전소추를 보물 다루듯 하였다. 시키지 않아도 그의 사지를 주물러주고 그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애 쓰고 있었다. 실제 정사는 하지 않았으나 그녀들이 환상몽몽섭혼술에서 깨어날 때 마다 편히 누운 전소추의 양손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그녀 들의 성감대를 교묘하게 자극하여 그녀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게 만 들었다. 새벽녘 아침 안개가 짖게 드리운 가운데 전서구가 날아들었다. 색정흡녀가 서찰을 펼쳐 읽더니 한숨을 쉬었다. "휴우……!" 그녀는 세상에서 정력이 가장 강한 남자를 만나 밤새도록 정신이 혼 미해 질 때가지 운우지락의 쾌락을 즐겼는데 귀궁하라는 전갈을 받 은 것이었다. "마차를 돌려라! 귀궁한다." 마부석에 앉은 여인이 백리총에 채찍질을 가해 말머리를 남서향으로 돌린 후 천천히 몰았다. 마차가 구르기 시작하자 노숙을 하던 사내 들이 잠에서 깨어나 허둥지둥 뒤를 따랐다. 지금은 그녀들의 약속대로 서로 겨뤄보지 못하였으나 그녀들이 머물 고 있다는 여인들의 천국에 도착하면 그들 중 가장 강한 사내가 다 섯 여인 모두를 독차지 할 수 있었기에 근처에서 자고 있던 사내들 을 깨우지 않고 마차의 꽁무니에 따라붙어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마차가 멀리 가물가물 보일 때쯤 잠에서 깬 사내하나가 소리를 질러 새벽 공기를 갈랐다. "마, 마차가 떠났다." 나머지 사내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차를 향해 머리카락이 휘 날리도록 뛰어오고 있었다. 마차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전소추가 혀를 찼다. "쯧쯧쯧……! 분명 내가 당신들의 낭군이 될 텐데 저들은 헛걸음을 하게 생겼군. 그렇지 않소……?" 여인들이 간드러진 웃음을 터트리며 답했다. "호호호……! 저희들도 당신을 계속 모시고 싶습니다. 하지만 궁에 는 저희보다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궁도들이 무수히 많아요. 당신 이 그 곳에 도착하면 저희들은 미련에 두지 않을 것 같은데요? 만일 당신이 뛰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다면 좋았을 것인데 아쉽군요. 저 희들을 차지하려면 무공을 지니고 있어야 하거든요." 색정흡녀는 자신이 정력이 강한 사내를 데리고 있다고 보고를 올린 것을 후회하였지만 이미 떠나간 화살이었다. 귀궁하면 면전에 있는 사내를 궁주에게 색노로 진상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는 눈앞에 있는 사내의 양기를 갈취할 수 없었고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한번만 더 전소추와 운우지락을 즐길까 생각하다가 노한 궁 주의 모습을 떠올리더니 그의 혈도를 점혈하였다. 전소추는 점혈당한 것처럼 축 늘어졌고, 색정흡녀는 그의 의복을 모 두 입혔다. 초경을 하기 전부터 방중술을 익혀온 그녀는 사내들을 발가락에 낀 때만도 못하게 여겼고 애완동물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서생은 여는 사내와는 다르게 그녀뿐만 아니라 나머 지 궁도까지 흡족하게 해주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았고, 대하면 대할 수록 마음에 드는 사내였다. 마음 같아선 사내와 멀리 도망쳐 오손도손 살고 싶었지만 궁을 배신 한 궁도들의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는 그녀는 형전주 운 라요희의 표독스런 얼굴을 떠올리며 내내 한숨만 짓고 있었다. "휴우……! 넷째야 말을 천천히 몰아라!" 잠시라도 전소추와 더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그녀가 지금 행할 수 있는 것은 마차가 될 수 있으면 천천히 구르게 하는 것뿐이었다. 천천히 구를수록 뒤따르는 사내들의 수효가 늘어나기에 천천히 도착 을 하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궁도는 없을 것이다. 뒤따르는 사내들 중에서 정파에서 파견을 나온 사내도 있었다. 무림의 정보통이라는 개방의 방도였고, 홍면유개(紅面儒 ) 표지상( 彪志祥)이란 자였다. 그는 색혼사륜거의 비밀을 파헤치라는 밀명을 받았지만 여인들의 미 색에 조금씩 동요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일은 수행하고 있었다 . 마차를 따르며 개방의 궁도들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남기고 있 었던 것이다. 평시에 얼굴에 붉은 기운이 돌았고, 반반하게 생긴 용모 탓에 홍면 유개라는 별호를 얻었지만 선비처럼 보이는 그는 여색을 탐하는 것 을 낙으로 삼을 만치 유난스런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여인의 미적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점수를 매기는 일이었다. 마차 안에 있는 여인들뿐 아니라 어자석에 앉아 있는 여인까지 그 는 최고 점수를 아끼지 않았다. 다시 말해 여인들은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웠던 것이었다. 개방의 방도로서 재물이 넉넉한 편이 아니었던 그는 홍루의 나이든 기녀들만 상대하였으니 마차에 있는 여인들은 선녀처럼 어여쁘게 보 였다. 처음엔 제법 광망을 띄우던 눈빛이 마차를 따르며 점점 게슴츠레 변 하였고 오 리마다 남겨 놓던 표식이 십 리, 이십 리 떨어져서야 남 겨 놓고 있었다. 마차는 사내들이 지칠 때쯤 멈추어 그들에게 휴식 시간을 주었고, 허기를 느낄 때쯤이면 멈춰선 곳에서 가장 화려하고 깨끗한 객잔으 로 말머리를 돌렸다. 객잔 앞에 마차가 서면 여인들이 몸매가 드러나는 홍의경장을 입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면사를 가리웠다고 하지만 반투명한 면사 사이로 그녀들의 용모가 드러나 보였고, 사내들은 그녀들의 눈에 띄기 위해 앞으로 몰려들었 다. 하지만 약속대로 십 장거리 이내로 달려드는 자는 없었다. 그들 중 무공이 강한 사내들이 자신의 여인들이라 느꼈는지 근접하 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차가 멈춘 객잔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거리기 마련이었고, 그 곳의 장방은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했다. 손님마다 후한 식대를 내 놓았고, 자리가 없어 서서 식사를 하는 사 람들도 불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항상 반 시진이 되기 전에 마차에 올랐고, 그녀들의 손엔 먹을 것이 들려 있었다. 그녀들은 전소추를 위해 음식을 가지고 나 온 것이었고, 그의 혈도를 해혈하고 식사를 하게 하였다. 최고급의 요리들만 준비한 그녀들은 술도 잊지를 않았는데 그는 미 녀들 틈에서 가져다 준 음식을 맛있게 비우곤 하였다. 색정흡녀는 고뇌에 찬 시선을 던지곤 하다가 그가 식사를 마치면 점 혈하여 잠들게 하였다. 그날 오후 나찰요화궁으로 향하던 마차에서 밖을 살피던 색정흡녀가 홍면유개가 표식을 남기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홍면유개를 유심히 관찰하였고, 이십 리 떨어진 곳에서 다시 표식을 남기는 것을 확인하였다. '흥……! 제명대로 못살 놈이군.' 그녀가 막내에게 전음을 전하였다. '막내야! 밖에 백색유삼을 입을 얼굴이 불그스레한 자가 보이지? 저 자를 마차에 오르게 하여라.' 향주의 명을 받은 여인은 마차 밖으로 가녀린 소수(素手)를 꺼내고 손짓을 하였다. 홍면유개가 있던 방향의 사내들 중 하나가 입이 길 게 찢어지며 미소를 지었다. "껄껄껄……! 소저께서 나를 부르는 것이오?" 마차의 소수는 좌우로 저었고 사내는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거리며 물러섰다. 여러 명의 사내들이 거부의 손짓을 받은 후에야 홍면유개 는 자신을 향한 손짓이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가 머뭇거리자 빈정거리는 소리가 들였다. "으이구……! 누구는 좋겠소. 소저가 부르는데 냉큼 달려가지 않고 무엇을 하는 게요?" 홍면유개가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마차로 접근하였다. 어자석에 앉아 있던 여인이 예쁜 입을 놀렸다. "호호호……! 선비께서는 마차에 오르세요." 마차에 오른 홍면유개는 여인들이 풍기는 방향에 정신을 차리지 못 하였고, 시선 둘 곳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벽면의 춘 화도를 보고 입을 벌렸다. "아, 아니……?" 색정흡녀가 기관을 작동하여 철판으로 창문을 가리며 대소를 터트렸 다. "호호호……! 선비께선 춘화도를 처음 보시나 보죠?" 시선을 내리깐 홍면유개의 안색은 처음 마차에 오를 때보다 더욱 상 기하여 잘 익은 능금처럼 붉게 변하였다. 홍면유개는 마차에서 내리 고 싶었지만 그것은 그의 마음뿐이었기에 몸은 실행에 옮기지 못하 였다. 여인 하나가 홍면유개의 손에 자신의 보드라운 섬섬옥수를 겹치자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깜짝 놀라며 손을 뺐다. "호호호……! 누가 잡아먹기라도 할까봐 그러세요……?" 홍면유개가 고개를 들자 순간을 놓치지 않고 색정흡녀가 섭혼술을 펼쳤다. 불시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홍면유개는 섭혼술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 고 이내 몽롱한 표정을 지으며 늘어졌다. 꿩 대신 닭이라고 그녀들은 홍면유개의 양기와 내공을 빼앗기 위해 모두 달려들어 그의 의복을 전부 벗겼다. 겉보기와는 달리 그는 잘 발달된 근육질의 몸매를 지니고 있었는데 개방의 방도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휴……! 냄새가 지독하네! 개방의 방도인가 보군. 대체 언제 목 욕을 했기에 이 모양이지……?" 그녀들은 웬만하면 그만두려고 하였으나 홍면유개의 반 갑자 내공이 탐이나 목함에서 꺼낸 작은 병의 붉은 액체를 그의 입을 벌리고 몇 방울 떨궜다. 쾌락춘음액(快樂春陰液)은 묘강(苗疆)에 서식한다는 전갈(全 )을 잘 말려 가루로 만든 후 중원의 최음제로 쓰이는 몇 가지 약제와 혼 합하여 약탕기(藥湯器)에 약한 불을 다스려 열두 시진 이상 고아 만 든 액체였다. 하오밀문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쾌락춘음액은 한 방울만으로 거대한 코끼리를 발정하게 한다고 알려진 최음제였다. 그런 최음제를 여러 방울 마신 홍면유개는 약 기운이 발효되자 두 눈이 짐승의 눈처럼 붉게 충혈되어 다짜고짜 그는 한 여인을 눕히고 올라탔다. 곧 그들이 질러대는 비음과 비릿한 냄새가 실내에 가득 찼다. "아흐흐흥……!" "헉헉헉……!" 홍면유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놀리고 있었고, 여인은 교수 로 그의 목을 감은 채 둔부를 놀려 그가 빨리 파정하게 하기 위해 유도하였다. 그의 하체가 급격하게 진퇴를 하더니 외마디를 터트렸다. "헉……!" 여인은 그의 용암이 흘러들자 가늘고 긴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으며 둔부를 경련시켰다. 홍면유개는 여러 번의 경험이 있었지만 이처럼 극도의 쾌락에 빠져 본 일이 없었고, 여인의 밀궁 안이 꿈틀거리며 이미 용암을 분출한 자신의 철주를 진동시키자 견디지 못하고 재차 용암을 분출시켰다. 자신의 모든 양기가 빨려드는 가운데 그는 상상을 초월한 쾌락에 치 를 떨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쾌락춘음액에 취해 자신을 제어할 뇌 는 정상적으로 작동을 못하고 있었다. 그의 철주는 힘을 잃지 않고 끄덕이고 있었고, 다른 여인이 팔을 벌 리자 그녀에게 옮겨갔다. 그는 여인 둘을 더 만족시켰고, 마지막으 로 기대가 된다는 듯 방실거리는 색정흡녀를 안았다. 엄청난 쾌락을 즐긴 대가는 참담하였다. 그의 근육질 몸매는 여인을 상대할 때마다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고, 색정흡녀를 만족시킬 때는 몹시 말라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색정흡녀는 마지막 정혈이 모두 빠질 때까지 그를 놓아두지 않았기에 파정을 거듭하며 양기와 내공을 고스란히 바쳐야 했다. 그 는 결국 양기와 내공을 남김없이 빼앗기고 목숨을 잃었는데 절명하 는 순간 목내이가 되는 처참한 신세에 빠졌다. "호호홋……! 감히 본궁의 일을 방해하려 하다니……!" 색정흡녀는 마차의 아래 부분을 열었는데, 이미 두 구의 목내이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전소추는 그 일을 목격하고 마차에 탄 요녀들을 모두 죽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지만 그녀들이 말한 나찰요화궁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인내심을 발휘하여야 했다. '후우우……! 지금 참지 못하면 일을 그르치게 된다. 이번 기회에 나찰요화궁의 비밀을 캐내어 만천하에 알리지 못한다면 다시 십 년 을 기다려야 할 것이니 참아야 한다.' 전소추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동안 마차는 절강성에 접어들고 있 었다. 이름난 명기(名妓)들이 많다고 알려졌고, 주객들의 천국이라는 항주 (杭州)의 대로를 전소추가 타고 있는 마차가 빠른 속도로 지나고 있 었다. 소문대로 항주에는 대로변에 기루가 줄지어져 세워져 있었고, 아름 다운 기녀들이 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지나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붙 잡고 있었다. 마차는 항주를 벗어나 관도를 달리고 있었고, 뒤를 따르던 사내들 중 일부분은 항주에서 발길을 멈추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내들이 마 차의 뒤를 쫓고 있었다. 색정흡녀가 얼굴을 찡그리며 밖에선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 로 투덜거렸다. "저년들이 우리의 공을 줄어들게 하다니 나찰요화궁이 세상에 드러 나는 날 저년들부터 요절을 내고야 말겠어." 하루 밤낮을 더 달리고 나서야 마차는 괄창산에 도착하였다. 괄창산의 산로에 접어들자 백리총은 땀을 흘리며 마차를 끌고 오르 기 시작했다. 중턱까지 이어진 산로의 끝은 바위로 막힌 협곡이었다. 어자석에서 내린 여인이 바위를 세 번 두드렸다. 웬일인지 바위 속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평성세!(太平聖世)" 바위에 대고 여인이 답했다. "여인천하!(女人天下)" 끄르르릉―! 거대한 바위가 좌우로 갈라지며 통로가 나타났다. 병기를 든 여인들이 나타나 마차를 확인하더니 좌우로 비켜서자 마 차는 지체없이 어두운 암로(暗路)로 사라졌고, 사내들은 길게 열을 지은 채 따라들어 갔다. 사내들은 병기를 들고 있는 여인들의 미모 또한 아름답다는 것을 느 끼며 군말 없이 따라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모두 들어간 것을 확인한 여인들이 산로의 한참 아래까지 내 려와 마차바퀴자국과 발자국을 지우며 안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굉 음과 함께 바위는 닫혀졌다. 끄르르릉―! 전소추는 자신의 의지로 용담호혈로 뛰어든 것이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재미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