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나찰요화궁의 궤멸 전소추는 단애에 오른 즉시 그 곳의 지형을 살펴보았고, 백여 장 밑 안개에 뒤덮인 나찰요화궁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오 주야 사이에 천팔백여 명의 중원의 사내들이 정혈이 고갈되어 죽 음을 맞이한 곳이기에 그들의 원귀가 원수를 갚아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의 뇌리에 전에 보았던 중원전도가 떠올랐고 그는 그곳이 괄창산 정상에서 가까운 단애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단 단애를 따라 한바퀴 돌아본 전소추는 자신이 타고 온 마차가 들어온 곳을 찾아 헤맸다. 마차가 출입하는 바위 문을 어렵사리 찾아낸 전소추는 그곳의 지형 을 익히고 하산하여 일단 은하전장으로 향했다. 자신이 칠 갑자의 내공을 지닌 절세 고수라고 해도 최소 일 갑자의 내공을 지닌 수천 명의 요녀들을 홀로 상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은하전장에 머물고 있는 장인 비폭장신에게 부탁하여 광천뢰를 얻기로 마음먹었다. 내공이 늘어 빨리 다녀온다면 일 주야가 채 지나기 전에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고, 변괴가 일어날 염려는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은하전장으로 향하며 색혼사륜거들이 괄창산을 향해 전력질주 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요녀들이 모두 모여든다면 한번에 처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그는 색 혼사륜거를 무시하고 낙양을 향해 허공을 갈랐다. 거의 십 주야만에 그가 은하전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제일 반가워 한 사람들은 그의 여인들이었다. 즉시 유운각으로 데려가려 했으나 그 는 처리할 일이 있다며 비폭장신을 먼저 찾았다. 비폭장신은 광천뢰를 제작하다가 그를 맞이하였는데 매우 지쳐 보였 다. "장인어르신!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소생 부탁이 있어 왔습니다" 비폭장신이 말했다. "장주가 보살펴 주는 덕에 잘 지내고 있었네. 자네가 원하는 것이 무언가? 자네가 어떠한 부탁을 해도 들어주겠네……." 전소추는 광천뢰를 제작하는 일이 고도의 정신력과 장인의 정신이 없다면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미안한 기색을 하며 말했 다. "장인어르신! 광천뢰 다섯 개를 이유는 묻지 마시고 주실 수 있습니 까?" 이유를 묻지 말라는 전소추의 말이 신경에 거슬렸으나 그는 쾌히 승 낙했다. "좋네! 더 필요하면 말하게나." 비폭장신은 오리알 보다 약간 크게 보이는 검은 구슬을 각기 솜으로 감싸 서로 부딪치지 않게 만들어 가지고 왔다. "여기 있네. 조심히 다루지 않으면 자네가 상할 수도 있으니 보관을 잘해야 하네." 전소추가 광천뢰를 건네 받으며 입을 열었다. "급히 다녀올 곳이 있으니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그는 현천천검에게 찾아가 간략하게 이야기를 한 후 환광검을 회수 하고 나섰다. 전소추는 문전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인들에게 상황설명도 않고 신형 을 띄웠다. "며칠 내로 돌아올 것이니 그때 이야기합시다." 쓔아앙―! 나타난 지 이 각이 되기도 전에 훌쩍 떠나가는 전소추를 멍하니 바 라보던 하운미가 토라진 목소리로 다른 여인들에게 말했다. "흥……! 가가께선 무슨 급한 용무가 있는지 몰라도 우리를 계속 기 다리게 하지? 가가께 제일 먼저 기쁜 소식을 전하려 했는데 동생들 에게 먼저 해야겠군. 지난달 달거리를 하지 않아 이상했는데 이번 달에도 그냥 지나친 것을 보니 아이를 가진 것 같아." 여인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축하하였다. "호호호……! 언니! 축하해요. 언니의 아이는 우리의 아이도 되니 오늘부터 몸조심하셔야해요. 시키실 것 있으면 얼마든지 시키시고 먹고싶은 음식이 있으면 말씀만 하세요. 중원이 아닌 다른 세상의 음식이라도 대령하겠어요." 하운미를 둘러싼 당초혜와 냉예향, 연교매는 그녀의 배를 만지며 즐 거워하였다. 전소추가 괄창산으로 향하고 있는 동안 사천당가를 떠나온 독심수라 당무룡이 문도들을 이끌고 낙양에 모습을 드러냈다. 은하전장에서는 옥수불패 하운미의 회임(懷妊)한 사실이 알려졌고 자축연이 벌어졌다. 가장 기뻐한 사람은 현천천검 하해청이었다. 비폭장신 당무천은 그 소식을 듣고 지난밤을 꼬박 지새우며 황금 귀 걸이를 만들었고, 녹색의 비취와 반짝이는 금강석으로 치장하여 세 상에 오직 한 쌍뿐인 귀걸이를 하운미에게 선물하였다. 하운미는 받자마자 귀에 걸었고 그녀의 옥용과 아름다운 귀걸이는 서로 조화를 이루는 듯 보였다. "가주님! 감사해요. 이처럼 아름다운 귀걸이를 몸소 제작하여 주시 니 정말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비폭장신은 빙그레 미소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소추의 나머지 처들은 몹시 부러워하였고 자신들도 빨리 회임을 하여 남들에게 축하를 받고 싶어했다. 그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자리를 비우고 있었기에 당가의 문도들과 은하전장의 식솔들이 모두 모여 술과 새벽부터 부산을 떨며 만든 산 해진미를 들며 축원해주고 있었다. 그때 정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꽝꽝꽝―! "문을 여시오……!" 수문장이 밖이 소란하자 문 앞에서 물었다. "뉘시오?" 밖에서 커다란 음성이 들려왔다. "사천당가의 가주께서 방문하셨으니 문을 여시오." 수문장이 손짓을 하여 수하에게 보고를 하라고 한 후 차분한 목소리 로 말했다. "먼길을 찾아오셨는데 죄송하오. 오늘은 장주님의 금지옥엽 이 회임 을 한 탓에 이곳의 식솔들이 모여 조촐한 연회를 하고 있는 이유로 문을 열지 않으니 내일 다시 찾아오시오." 수하의 보고를 받은 장주는 피신해 있던 당가의 문도들을 지하보고 에 대피시키고 그들이 머물던 전각의 물건 또한 지하보고로 옮기게 하였다. 물론 갇혀 있던 독심수라의 자식들도 그곳으로 데려갔다. 모두 일사 불란하게 움직였고 삽시간에 그들의 흔적은 모두 지워졌다. 그사이 정문에선 수문장과 사천당가의 총관간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은하전장은 당가가 무시할 수 없는 단체였고, 무력을 써서 들어갔다 가 자신들이 잘못 찾아왔다면 망신을 당할 것은 뻔하였기에 사정을 하고 있었다. 사천당가의 문도 전원과 독심수라는 정문에서 진을 치고 있었고 물 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반 시진이 흐른 후 현천천검 하해청이 정문을 열고 나섰다. "허허허……! 가주! 오랜만이오. 무슨 일로 또 방문하시었소?" 독심수라 당무룡이 포권을 취하며 답했다. "장주께 여쭤볼 말이 있어 찾아왔소이다. 들어가도 되겠소?" 현천천검이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향하자 독심수라가 뒤를 따랐고 , 당가의 문도들 또한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수문장은 당가의 문도들이 모두 안으로 들어서면 연회를 파 해야 한다며 그들의 출입을 막았고 총관과 십여 명의 문도만 통과시 켰다. 독심수라 당무룡과 그 일행은 연회장을 보고 자신들을 쫓아 버리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독심수라에게 자리를 권하고 술잔에 술을 따르며 현천천검이 물었다. "가주! 이제 말씀해보시오." 독심수라가 잔을 높이 들고 말했다. "먼저 장주께 증손주가 생긴 것에 축하를 드리오." 둘은 술잔을 비웠고 술잔을 내려놓은 독심수라가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소이다. 당가에서 탈옥한 죄인들을 어디에 숨 겼소?" 현천천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에엥……? 대체 무슨 말이오……? 누가 그런 모함을 하였소? 당가 의 죄인들이 본장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들을 숨겼다고 주장하는 지 전혀 모르겠소이다." 독심수라가 눈초리를 올리며 답했다. "흥……! 시치미 떼도 소용이 없소. 당신의 손서가 죄인들을 데리고 떠났다고 은하전장 광현지부의 수하에게 직접 들었소이다." 현천천검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허참……! 그런 허무 맹랑한 소리를 믿고 이곳에 방문하셨단 말이 오? 그런데 이걸 어쩐다……? 손서가 자리를 비워 대면을 시켜드리 지 못하니 낭패로군……!" 독심수라가 의심쩍은 눈초리로 현천천검을 바라보며 말했다. "틀림없이 다정공자가 수십 대의 마차를 사서 이곳으로 향했다는 말 을 들었소. 장주의 말대로 당가의 죄인이 이곳에 없다면 수색을 해 봐도 되겠소?" 현천천검이 노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지금 뭐라고 했소? 이곳을 수색을 한다고 했소……? 가주! 당가에 남이 와서 엉뚱한 핑계를 대고 수색을 한다고 하면 허락을 하시겠소 ?"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 현천천검의 연기력은 뛰어났고, 독심수라는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하 지 못한다면 돌아갈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장주! 당가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니 허락을 해주시오." 현천천검은 분노한 표정을 풀지 않고 소리쳤다. "이보시오! 만일 가주가 이곳을 수색하여 그들을 찾지 못한다면 어 찌하시겠소?" 독심수라의 표정은 굳어졌고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만일 죄인들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본인의 우수를 이곳에 남겨 놓고 사죄 드리겠소."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승낙을 하지 않으면 의심을 더 받을 것이라 판 단한 현천천검이 독심수라의 우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좋소! 당신이 한 말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들었으니 지켜야 하오. 연회를 파하라!" 연회장에 있던 은하전장의 식솔들이 모두 물러나자 현천천검이 독심 수라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한 시진의 말미를 주겠소. 만일 가주가 찾는 사람들이 이 곳에 없다면 소란을 피운 죄의 대가가 매우 크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 독심수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에 고소를 지으며 답했다. "흐흐흐……! 본인도 뱉은 말에 책임을 질줄 아는 사내요." 독심수라는 장주의 양해를 얻은 후 정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문도 들을 모조리 이끌고 수색을 실시했다. 현천천검은 앞장을 서서 은하전장의 전각들의 문을 모조리 열어주었 고, 당가의 문도들은 사방으로 퍼져 달아난 죄인들을 찾기 위해 온 갖 수단방법을 동원하였다. 현천천검이 독심수라에게 자신의 처소와 장주의 연무관까지 보여주 었고, 지상보고의 문을 활짝 열어 살펴보게 하였다. 당가의 문도들은 엄청난 양의 금은보화가 있는 보고를 바라보고 입 을 다물지 못하였다. 은하전장의 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죄인들을 다루는 지하뇌옥까지 살펴본 독심수라는 시간이 갈수록 초 조해졌다. 그들은 이곳에 없었던 것이고 황금 만냥에 해당하는 적령수정(赤靈 水晶)을 주고 매수하여 간신히 알아낸 정보는 쓸모 없는 거짓정보인 것 같았다. 한 시진은 독심수라에게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대전 앞에 모인 당가의 문도들은 죄인들을 찾지 못한 탓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독심수라는 현천천검과 마주했다. "가주! 손녀가 회임을 하여 자축연을 열고 있었는데 은하전장의 경 사를 망쳐 버렸으니 이제 속이 시원하오?" 독심수라가 자신의 검을 뽑아들며 입을 열었다. "장주께 뭐라 말씀을 올려야 할 지 모르겠소. 약속대로 우수를 바칠 것이니 너그럽게 용서해주시오." 현천천검이 만류하였다. "가주! 이번 일은 없었던 것으로 칩시다. 광현지부의 수하가 입을 잘못 놀맂 것은 모두 본인의 부덕의 소치이니 이만 돌아가시기 바라 오." 그때 독심수라가 자신의 애검을 높이 들고 아래로 내리쳤다. 챙―! 현천천검의 애병 현천신검(玄天神劍)이 독심수라의 검을 막아내었다 . 현천천검은 독심수라를 쏘아보며 외쳤다. "경사스런 날 은하전장에 피를 뿌리는 것은 용납 못하니 빨리 자리 를 뜨시오." 독심수라가 포권을 취한 후 돌아섰다. "장주! 다시 한 번 사죄 드리오." 독심수라와 문도들이 모두 정문을 통해 나갔고, 그들이 낙양 외곽에 빠져나갔다는 전갈을 받은 현천천검은 지하보고의 문을 열어 그 안 에 있던 당가의 식솔들은 불러내었다. 지하보고 안에서 이를 갈고 있던 비폭장신 당무천이 현천천검에게 말했다. "은하전장이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 숨어 있었지만 이곳을 나간다면 당가가 지닌 저력과 무서움을 그들에게 보여주겠소." 장주 현천천검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가주의 분노를 잠시 잊고 은하전장의 안위만 생각하였으니 심히 죄 송스럽소." 비폭장신은 현천천검의 손을 마주잡으며 말했다. "장주! 그게 무슨 말씀이오? 본인도 그렇게 행하였을 것이니 심려하 지 마시오. 조만간 그들에게 장주를 핍박한 대가를 받게 해주겠소." 무르익던 연회는 분위기 상 다시 열 수 없었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미 만든 음식들을 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독심수라 당무룡은 현천천검의 마음이 바뀔까 두려워 서둘러 문도들 을 이끌고 낙양성을 빠져나갔다. 전소추는 날이 새기 전에 나찰요화궁이 있는 괄창산의 단애에 모습 을 드러내었다. 먼길을 오느라 몹시 피로하여 나무등걸에 기대어 운기행공을 하였는 데 내공이 늘은 탓인지 전보다 빨리 대주천을 마칠 수 있었다. 전신이 날아갈 것만 같은 상쾌한 기분을 느끼며 일어선 그는 환광검 을 쥔 손에 힘을 가하고 단애 아래로 몸을 던졌다. 모든 물체는 허공에서 떨어지며 가속도가 붙기 마련인데 그는 일정 한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고, 운무지대를 지날 때쯤 전신을 비틀며 회전하여 더욱 속도를 줄이며 떨어져 내렸다. 바닥이 보이자 그는 절벽 쪽으로 신형을 붙이며 환광검을 꽂았고, 떨어지던 속도 때문에 환광검은 바위를 가르며 내려오며 속도를 줄 여주었고 이내 바위에 고정되었다. 지면에서 십여 장 위의 절벽에 전소추가 환광검에 의지한 채 매달려 있다가 검을 뽑으며 뛰어내렸고, 그가 양팔로 날개 짓을 하자 세찬 경풍이 일어나며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이곳을 벗어날 때는 미처 살펴보지 못하였는데 수십여 그루의 아름 드리 나무가 군집해 있었고 주렁주렁 매달린 과실에선 달콤한 과향( 果香)이 퍼지고 있었다. '으응? 서책에서 보던 주안과가 정말 있었구나! 여인들에겐 보물과 같은 것이 지천에 깔려 있는데 제 분수를 모르는 요녀들이 독차지하 고 있었다니 안 될 말이지. 그것도 모르고 광천뢰를 터트렸다면 세 상 모든 여인들의 지탄을 받게 되겠지……?' 그는 나찰요화궁의 요녀들이 모두 주안과 덕에 아름다운 모습을 유 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나무에 뛰어올라 주안과를 따서 깨물었는데 과육이 입안에서 살살 녹았고 달콤한 과즙이 아주 맛이 훌륭했다. 하나를 몽땅 먹어치운 전소추는 입맛을 다시더니 손에 닿는 주안과 들을 따서 양손에 한아름 들고 단애위로 다시 올라갔다. 그는 자신의 처들과 장모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것이다. 주안과를 수풀 속에 잘 숨겨두고 다시 내려온 전소추는 비무둔잠술( 飛霧遁潛術)로 전신을 숨긴 후 전각들이 모여 있는 근처로 다가갔다 전각이 모여 있는 곳에서 일백팔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품을 뒤진 전소추가 오리알 보다 약간 큰 검은 구슬을 꺼내더니 냅다 던졌다. 콰콰콰쾅―! 전소추조차 눈을 감아야 할 정도로 밝은 섬광과 함께 천둥소리가 나 찰요화궁을 뒤흔들었고,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대지를 뒤흔든 폭발력에 분진이 오십여 장 솟아올랐다가 떨어져 내 려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전각들은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였고, 나찰요화궁은 쏟아져 나온 궁 도들로 소란스러워졌다. 수많은 궁도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살아 남은 궁도들은 전각에 불을 끄기 위해 물동이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던 전소추가 다시 광천뢰를 던졌고, 모여서 불을 끄던 나찰요화궁의 궁도들은 사지가 갈가리 찢겨져 비산했다. 콰콰콰쾅―! "으아아악……! 아악……! 악……!" 일 갑자 이상의 내공을 지닌 요녀들이었지만 광천뢰의 폭발력에는 견딜 방법이 없었다. 아수라장으로 변한 나찰요화궁의 세 곳에 섬광 이 일어났으며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콰콰콰쾅―! 반경 백 장의 생명체를 몰살시키는 위력을 지녔다는 광천뢰는 사람 이 제작한 화기가 아니고 신이 만든 걸작품 같았다. 곳곳에 세워진 전각은 모두 불에 타고 있거나 폭발력에 무너져 내려 성한 전각은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광천뢰가 떨어진 곳은 깊이 십 여 장의 구덩이가 패어져 있었다. 사지가 멀쩡하게 보이는 궁도들은 얼마 없었고, 살려달라는 비명소 리가 난무하였다. 한군데 몰려 있었기에 무려 구천여 명의 요녀들이 광천뢰에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도 대부분 중경상을 입은 상태였다. 궁주가 피살되어 어수선했는데 갑자기 찾아온 변괴는 나찰요화궁의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그 와중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궁도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 며 넋을 놓고 있었다. 전소추는 살아남은 궁도들을 향해 환광검을 휘둘렀고, 검에서 뻗은 검강은 요녀들을 스쳐지나갔다. "아악……! 악……!" 비명과 함께 요행히 살아남은 요녀들은 숨을 거두었는데 요녀들의 악독한 행위를 목격한 전소추의 검은 자비심을 잃고 있었다. 그의 검은 초식을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휘둘려지고 있었는데 근처에 있던 요녀들은 검강에 사지가 자려나가 지면에 나뒹굴었다. "이히히힛……!" 한참 요녀들을 베어 넘기고 있는데 갑자기 귀곡성과 함께 산발한 여 인이 그의 면전에 뛰어들어 양수를 뻗어왔다. "죽어랏! 음강적혈수!(陰 赤血手)" 시뻘건 손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본 전소추는 호신강기로 전신을 보호하며 가슴으로 받아냈다. 우르르릉―! 빠지직―! "아아악……! 이럴 수가?" 그의 가슴 두 자 앞에서 시뻘겋게 변한 손목이 부셔지며 퉁겨나갔다 . 산발한 여인은 자신의 으스러진 손목을 바라보다가 표독스런 눈길 로 전소추를 바라보았다. "아니? 네 놈은……?" 그녀는 제 스스로 궁주직에 올랐던 운라요희 사라진이었고, 원한에 찬 시선을 그에게 던지고 있었다. 전소추가 검을 거두며 입을 열었다. "세인들은 중도(中道)와 중용(中庸)을 따르고 있소. 성현들이 과유 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을 남긴 까닭을 당신은 이해하시겠소? 여인들 은 여인의 길을 걸을 때 아름다운 것이지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르 게 되어 있소. 당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과오 때문이니 후세에 다시 태어난다면 부디 여인의 길을 걷기 바라오." 전소추의 환광검이 춤을 추었고 운라요희 사라진의 목은 허공으로 솟았다가 지면에 떨어졌다. 눈을 감지도 못하고 죽은 요녀의 시신은 채양보음술이 깨져 쭈글쭈 글하게 변하였다. 전소추는 살아남은 요녀들을 모두 영면에 들게 하 고 그곳을 뒤지고 다녔다. 지하뇌옥에서 사내들을 발견한 전소추는 자물쇠를 제거하고 그들을 풀어주었다. 백여 명의 사내들은 의복도 걸치지 못한 채 그곳에서 살아왔기에 바 깥으로 나오자 몹시 추워하였고, 태양 빛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 고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사내들은 밖의 전경을 바라보고 경악한 표 정을 지었다. 그들의 눈앞엔 지옥이 펼쳐 있었던 탓이다. 전소추는 그들을 목내이가 모여있는 지하실로 안내하였고, 시신의 의복을 벗겨내어 입은 사내들은 시신을 모두 꺼내어 화장(火葬)시켰 다. 전소추는 그 곳의 궁도들의 시신 또한 한 곳에 모아 화장시키며 극 락왕생하기를 빌었다.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지키던 궁도들은 자리를 비울 수 없어 계속 그곳을 지키다가 전소추와 그를 따르는 사내들을 바라보고 병장기를 꺼내 들었다. 채채챙―! 전소추는 말없이 앞으로 나서며 그녀들에게 축융화극신공을 뿜어내 었고, 그의 극양지기는 요녀들을 불길에 쌓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살이 타는 노린내와 처참한 시신을 바라본 사내들은 외면하였고, 전 소추는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열어주며 입을 열었다. 끄르르릉―! "나가시오! 이곳을 잊으시오. 오늘 본 것은 죽을 때까지 입밖에 담 지 않기를 부탁드리겠소." 사내들이 우르르 빠져나가자 전소추는 바위 문을 다시 닫고 그곳의 기관을 다시는 작동하지 못하게 완전히 부셔 버린 후 통로를 통해 다시 올라갔다. 전소추는 자신이 무림제패를 꿈꾸던 세력의 일부를 제거한 사실을 몰랐고 사내들의 정혈을 갈취하는 요녀들의 집단을 영원히 사라지게 했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일만여 명의 요녀 중에서 아직 귀궁하지 않은 사십여 대의 색혼사륜 거에 탄 이백여 요녀들이 살아 있지만 다시는 이곳을 근거지로 삼기 힘들게 만들었기에 그곳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무려 구천팔백여 명의 요녀가 전소추에게 희생되었다. 단애 위로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며 다시 한 번 그녀들의 명복을 빈 전소추는 감춰 두었던 주안과를 찾아내 상의를 벗은 후 모두 담아 낙양으로 향했다. 하지만 살아남은 나찰요화궁의 음환요희와 환락선 자가 궁주였던 홍상마화의 직전제자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그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은하전장으로 향할 것이 아니라 바위 문 앞에서 기다리면서 나 머지 궁도들을 모조리 참해야 했다. 아마도 남은 여인들만으로도 무림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 넣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가 한순간 잘못 판단한 덕에 한동안 무림의 젊은 이들이 무수히 희생되어야 했다. 그 시각 음환요희와 환락선자는 급히 말을 몰고 회궁하고 있었다. 나찰요화궁주의 제자 셋 중에서 가장 약한 무공을 지닌 운라요희 사 라진이 궁주직을 이양 받았다는 소식은 청천벽력과 같았기에 내심 차기궁주를 꿈꾸던 그녀들에겐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들은 일단 귀궁하여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자신들을 따르는 궁도 들을 모두 불러들였고 서로 빨리 도착하기 위해 채찍을 급하게 휘두 르고 있었다. 짝―! "이럇……!" 따그닥―! 따그닥―! 새하얀 백리총의 등에 선혈이 배어 나올 정도로 그들은 서두르고 있 었다. 막내 제자인 환락선자 조옥령이 먼저 당도하였는데 이미 먼저 당도 한 궁도들이 바위 문 앞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환락선자의 물음에 궁도가 답했다. "의전전주(儀典殿主)님께 아룁니다.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문이 열 리지 않으니 이상합니다." 환락선자가 바위를 두드리며 외쳤다. 쿵쿵―! "아무도 없느냐? 나는 의전전주이니 어서 문을 열라." 그녀가 아무리 소리쳐도 안에선 전혀 개문(開門)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환락선자는 안을 장악하고 있던 운라요희가 수작을 부린다고 판단하 여 마차를 버리고 산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천장애에 당도한 환락선자는 궁도들에게 주위의 칡넝쿨을 모아오게 하여 백오십 장 길이로 연결하였다. 한쪽 끝을 나무에 묶고 단애 아래로 나머지를 던진 후 넝쿨을 붙잡 고 내려가며 외쳤다. "너무 많이 매달리면 넝쿨이 견디지 못할 테니 시차를 두고 따라 내 려오너라." 그녀는 십여 장씩 주르륵 내려가기 시작했고, 금새 바닥으로 내려 왔다. 단애 아래에는 코를 막아야 할 정도로 지독한 노린내가 진동하고 있 었고, 화약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자신 홀로 운라요희와 그녀를 따르는 궁도들과 대적할 수 없었기에 그녀는 자신을 따르던 오십여 명이 모두 내려올 때까지 대기해야 했 다. 마침내 마지막 궁도가 바닥에 내려서자 조심스럽게 전각이 있는 방향으로 전진했다. 잠시 후 그녀뿐만 아니라 나머지 궁도들이 눈을 비비며 참혹한 광경 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많은 전각들은 잿더미로 변해 무너져 있었고, 궁도들의 시신으로 보이는 유골들이 수북하게 쌓여 작은 동산처럼 보였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어제 기별을 받자마자 출발했는데 어떻게 하루만에 나찰요화궁이 멸망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부정을 하고 있었지만 눈앞의 광경은 현실이었다. 환락선자를 비롯한 궁도들이 생존자를 찾기 위해 사방팔방을 뒤지고 다녔지만 살아 있는 궁도는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암굴 을 따라 내려간 환락선자는 바위 문을 지키던 궁도가 새카맣게 그슬 린 채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군가 불에 태웠던가 아니면 조화지경에 이른 고수의 극양진기에 당한 모습이었다. 바위 문을 개폐하는 기관은 누군가 철저히 부셔서 다시는 작동을 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고 궁도 중 기관을 고칠만한 인물은 하나도 없 었다. '아……! 나찰요화궁은 철저히 당했다. 칡넝쿨을 매어 놓지 않았다 면 이곳을 빠져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궁주께서 돌아가셨 다고 하더라도 대체 어떤 세력이 습격했단 말인가……? 적들의 시신 은 한 구도 발견되지 않았으니 단서를 찾지 못하는 것이 원통하구나 ……!' 환락선자는 다시 암로를 질주해 전각이 있던 곳으로 올라가 궁도 하 나에게 명했다. "너는 지금 당장 바위 문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도착하는 궁도들에 게 이곳에 벌어진 참상을 전하고 천장애를 통해 내려오라고 기별해 라." 궁도가 단애 쪽으로 사라지자 커다랗게 파여진 구덩이에 뛰어들어 살폈다. 아직도 화약 냄새가 가시지 않은 구덩이에 시커멓게 그슬린 육편(肉片)들이 흩어져 있었다. 어떤 세력이 상상도 하지 못할 위력을 지닌 화기를 가지고 와서 이 곳을 초토화시킨 것이 분명하였다. 소문으로나마 사천당가의 광천뢰가 이와 흡사한 위력을 지녔다는 것 을 들었지만 자신들과 연합한 만독강시보의 제자 독심수라가 현재 사천당가의 가주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그녀는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지난 수십 년간 강시의 재료로 쓸 목내이를 제공해 왔는데 무림제패 를 목전에 두고 철저히 배신을 당한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이 만나본 바에 의하면 만독강시보주 귀령 사황 공시태는 계산이 밝아 무림제패를 하기도 전에 자중지란(自中 之亂)을 일으킬 위인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가가 아니라면 중원 어느 곳에서도 이런 위력을 지닌 화기 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녀가 머리를 붙잡고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동안 궁도들이 속속 도 착하고 있었다. 음환요희는 절강성에서 멀리 떨어진 귀주성(貴州省)에서 소식을 받 았기에 그날 밤늦게 도착하였다. 그녀 역시 지옥과 같은 참혹한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먼저 도착한 환락선자가 음환요희에게 보고를 올린 후 자신이 생각 한 바를 말했다. 음환요희는 그 동안 대제자로 행세하며 만독강시보를 수도 없이 드 나들었는데 그녀 역시 환락선자와 같은 의견이었다. 만독강시보는 지금 배반할 처지가 아니었기에 당가의 가주 독심수라 가 문도를 이끌고 이곳을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만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궁도들과 힘을 합해 백골들은 구덩이에 밀어 넣고 거대한 봉분을 만 들고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그곳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천장애에 매어 놓은 넝쿨을 누군가 베어낸다면 이곳에서 늙지는 않 겠지만 수명이 다하여 죽을 때를 기다려야 했으며 더군다나 지옥으 로 변해 버린 이곳에 한시도 더 머물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기 때문 이었다. 환락선자는 욕심을 접고 음환요희에게 궁주직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 였고, 음환요희는 환락선자를 비롯한 궁도들의 뜻에 따라 궁주의 지 위에 올랐다. 일단 전원이 천장애 위로 올랐고, 칡넝쿨을 베어 버렸다. 외인이 이곳을 출입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였고 궁도들을 다시 뽑 아 세력을 키울 때 주안과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다시 찾아와 가져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산수재가 일을 잘 처리하여 자금만 확보된다면 중원의 요지에 나 찰요화궁을 재건(再建)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었다. 나찰요화궁과 연합세력인 마교와 만독강시보에 궁주의 죽음과 궁도 대부분이 몰사한 것을 알리기 위해 전서구를 띄웠다. 음환요희가 신임궁주가 되었으며 남은 궁도들을 이끌어 앞으로도 계 속 공조할 것임을 알리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문제는 궁주의 죽음을 신산수재에게 알릴 것인가에 있었다. 자신을 증오하는 신산수재에게 증조모의 죽음을 알린다면 일을 그르 칠 것이 우려되어 감춰야 할지 알려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증조모의 죽음을 알리지 않는다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야기 될 것이라는 환락선자의 주장에 결국 은하전장에도 전서구를 띄워 야 했다. 음환요희의 명으로 그녀들은 추녀로 변장하였고, 제일 가까운 마을 에 들려 홍의 경장으로 통일된 의복을 걸쳤다. 신임궁주의 명으로 어떤 세력이 나찰요화궁을 습격하였는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궁도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일 개월 후 동정호변에서 집결하기로 한 궁도들은 원통함을 이기지 못하여 두 눈에 혈루(血淚)를 흘리고 있었다. 장주의 명으로 정주현의 은하도루의 만승도신에게 서찰을 전하고 온 신산수재는 사형 독심수라가 방문하였다가 되돌아간 사연을 들었다 자신이 분명 당가의 죄인들로 보이는 인물들이 있다고 보고하였는데 찾아오지 않더니 이제야 찾아온 그가 왜 그냥 발걸음을 돌렸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사부에게 보고를 올린 후 자신이 유심히 살펴본 바에 의하면 그들은 당가를 탈출한 문도들이 분명하였기 때문이었다. 신산수재는 급히 은하전장을 나섰다. 독심수라가 사라졌다는 방향을 향해 신형을 날린 그는 무작정 달리 고 또 달렸다. 구월의 마지막 날이라 아직 쌍십절이 되려면 십 주야의 시간이 남았 고 사형과는 경쟁상대였지만 그 전에 당가의 잔당들을 처리하고 싶 었다. 숨이 턱에 닿을 듯 가쁜 숨을 몰아쉬던 그는 섬서성의 서안현(西安 縣)에서 사형을 만날 수 있었다. "사형! 오랜만에 뵙습니다." 독심수라는 의기소침해 있었고 그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아 별로 반가워하지도 않았다. "막내 네가 웬일이냐?" 턱에 굵은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신산수재가 말했다. "사형께선 제가 그리도 싫습니까? 사형께 도움을 드리러 왔습니다. 셋째 사부님께 연락을 드렸는데 어째서 이제야 오셨으며 왜 그냥 돌 아가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독심수라는 그의 말이 이상하여 반문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사형은 아무 연락도 받지 못하였다." 신산수재는 총단에 당가의 죄인들이 있음을 소상히 아뢰었고, 그들 이 가주라 칭하는 인물의 인상착의를 설명하였다. 그의 말을 들은 독심수라가 이를 갈았다. "뿌드득……! 늙은이의 속임수에 넘어가다니 당장 낙양으로 돌아가 서 세 치 혓바닥을 뽑아 버려야겠다." 신산수재를 앞세운 독심수라가 분개하여 문도들을 이끌고 말머리를 돌렸다. 당가의 죄인들을 처단하는 것은 물론 자신을 희롱한 은하전장주에게 몇 곱절의 수모를 줄 생각이었다. 하마터면 늙은이에게 속아 자신의 한쪽 팔을 내줄 뻔했던 일을 떠올 린 그는 분에 못 이겨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신산수재는 사형에게 은하전장을 건드리지 말고 죄인들만 데리고 떠 나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은하전장은 세 분 사부님의 자금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누누이 강 조하였고, 독심수라는 사부들에게 피해를 줄만큼 어리석은 인물은 아니었다. 말을 몰면서도 은하전장에 숨어 있는 이복형과 그를 추종하는 무리 들을 밖으로 유인할 방법에 골몰하고 있었다. 신산수재가 흘깃흘깃 눈치를 보다가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치 며 입을 떼었다. "사형! 그들을 밖으로 내모는 일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좋은 계책이 떠올랐으니 심려하시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러니 사형께선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공을 세우십시오." 뇌옥을 탈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그들은 아직 내공을 찾지 못 했을 것이고 설사 완전하게 찾았더라도 자신과 대적하기엔 상대가 되질 못하였으니 걱정될 것이 없었다. "크하하핫……! 사제! 자네만 믿겠네. 이번 일을 마치면 자네에게 신세진 일을 잊지 않겠네." 그는 이번에 이복형을 만난다면 자신의 영화를 위해 형제지연을 완 전히 끊고 천뢰탄과 광천뢰의 제조법을 알아날 생각이었고, 여의치 않을 경우 죽여 버릴 심산이었다. 자신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한다면 부귀영화는 보장될 것이 분명하였 고 남은 여생을 편안히 지낼 수 있을 것이었다. 전소추는 은하전장에 돌아온 즉시 장모와 처들에게 주안과를 선물하 였고, 현천천검과 비폭장신, 벗 화화공자 당혁린과 총관 추혼철갑에 게도 선물하였다. 자신의 그간 행적을 말하지도 않고 주안과를 내밀었지만 모두 기뻐 하는 눈치였다. "호호호……! 사위를 잘 본 덕에 호강을 하네……!" "호호……! 가가! 고마워요." 장모를 비롯한 여인들은 너무 좋아하였는데 현천천검과 비폭장신, 추혼철갑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나중에 필요할 때 쓰라며 그에 게 다시 건넸다. "우리야 이미 늙었는데 육신이 젊어 보인다고 어디다 쓰겠는가? 앞 으로 사용할 데가 생기면 쓰게나……." 여인들은 누가 빼앗아 먹기라도 할 듯이 그 자리에서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고 모두 운기행공에 빠져들었다. 젊고 아름다운 전소추의 처들은 주안과를 먹은 효능이 별로 나타나 지 않았지만 당가의 가모 이화접수 한우림은 달랐다. 나이가 들어 잔주름이 생겼던 그녀의 얼굴이 팽팽하게 펴졌고, 젊은 시절의 미모를 되찾고 있었다. "허허허……! 이 나이에 신혼의 기분을 다시 느끼려나?" 비폭장신 당무천이 부인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운기행공을 마친 이화접수는 동경을 들여다보며 옛 미모를 되찾은 기쁨을 만끽하였고 가슴이 벅차 올라 눈물까지 흘렸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여인의 미모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처들 역시 운기행공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는데 당초혜가 모친을 바라 보며 놀라워했다. "호호호……! 어머님께서 제가 어렸을 때 뵙던 옛 모습을 찾으시니 감회가 서려요." 나머지 처들도 이화접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님께서 저희랑 다니시면 언니 동생인줄 알겠는데요……?" 그녀들의 농담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 하하하!.. 호호호……! 후후후……!" 당초혜가 화화공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왜 안 드시는 거죠?" 화화공자 당혁린은 손에 쥔 주안과를 한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이다음에 처를 맞이하게 되면 선물로 주고 싶구나!" 전소추가 입을 막으며 키득키득 웃었다. "이보게 화화공자란 별호가 있는데 늙고 추해지면 어찌하려나? 지금 그것을 들면 자네에게 하나 더 주겠네." 전소추가 주안과를 하나 더 건네자 그는 양손을 저었다. "나를 염치없는 사람으로 만들 셈인가? 이것 하나로도 족하니 자네 나 먹게." 전소추가 자신의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난 이미 먹었다네. 자네가 그것을 먹지 않겠다면 도로 토해놔야겠 는걸? 이다음 자네는 늙고 나는 젊게 보이면 친구로 지내기가 어색 할 테니 말일세." 전소추가 토해낸다고 하자 그의 처들이 모두 당혁린을 쏘아보며 외 쳤다. "빨리 드세요. 우린 가가께서 늙는 것을 원치 않아요." 여인들의 눈매는 매서웠고 분위기가 먹지 않는다면 봉변이라도 당할 것 같아 주안과를 베어먹으며 투덜거렸다. "제수(弟嫂)들이 강짜를 부리니 할 수 없군. 주안과를 먹은 탓에 나 중에 혼례를 올려 자식이 태어나 세월이 흐른다면 나보다 더 늙게 보일 것이니 이일을 어쩐다……?" 당혁린이 모두 먹고 운기행공에 들자 장차 자신들에게 닥칠 일이었 기에 전소추의 처들은 매우 걱정이 되었다. 처들이 발을 동동 구르자 전소추는 느긋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 다. "걱정 마시오. 주안과 나무가 자생하는 곳을 알고 있으니 후에 우리 의 자식이 태어나 장성하면 가르쳐주면 될 것이 아니오?" 현천천검이 전소추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자네에게 경사가 겹쳤구먼." 전소추가 무슨 뜻인지 몰라 처들을 바라보았는데 유독 옥수불패 하 운미가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현천천검이 말을 이었다. "첫 번째 경사는 자네의 처들이 더 이상 나이와 상관없이 미모를 간 직하게 된 것이고, 두 번째 경사는 자네가 더 기뻐할 일이지. 미아( 美兒)가 자네의 아이를 회임하였네……!" 전소추는 눈이 동그랗게 뜨며 반문했다. "마, 말씀하신 것이 정말입니까?" 현천천검이 고개를 끄덕이자 전소추는 만면에 미소를 지은 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모두 다가와 축하의 말을 전하였다. 전소추는 너무 기뻐 환호성이라도 터트리고 싶었지만 남들이 비웃을 까봐 싱글벙글 미소만 지었다. 운기행공을 마친 당혁린이 장차 아버지가 될 장본인이 돌아왔으니 다시 자축연을 열 것을 제의하였고, 연회가 준비되는 동안 전소추는 그들에게 그간의 일을 소상히 이야기했다. 물론 나찰요화궁주 홍상마화와 동침한 사실은 숨겼다. 장인이 전해준 광천뢰의 위력이 상상 이상이었으며 색혼사륜거의 비 밀을 파헤치다가 나찰요화궁의 실체를 발견하였고, 요녀들을 황천으 로 보내 버렸다는 이야기였다. 흥미진진한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던 사람들은 그가 이야기를 마치 자 정도무림에 절대영웅이 탄생하였다며 칭찬하였다. 그들의 칭찬에 얼굴이 벌개진 전소추는 그들에게 주었던 주안과 나 무가 수십여 그루 자라고 있어 언제든지 가져 올 수 있다는 말을 덧 붙이며 아직 먹지 않은 현천천검과 비폭장신, 추혼철갑에게도 먹도 록 권유하였다. 결국 그들도 주안과를 먹고 몇십 년은 젊어 보이게 변하였다. 가장 연배인 현천천검의 피부에 있던 검버섯이 모조리 사라졌고 주 름살이 사라져 중년의 모습으로 보였고 비폭장신과 추혼철갑은 더 젊게 보였다. 그들이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은하전장의 식솔들과 당가 문도들 은 그들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단상에 자리잡은 그들이 주안과를 먹어 젊어졌다는 소식을 전하자 모두 축하를 해주었다. 밤늦게까지 연회는 이어졌고, 사람들이 권한 술잔을 모두 들이킨 전 소추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대취하였다. 전소추의 처들이 그를 부축하여 자리를 뜨자 연회는 파하였는데 비 폭장신과 이화접수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다정스레 마주 바라보며 옛날을 그리워하였다. 이화접수 한우림은 만화원주로 지냈던 시절을 떠올리며 즐거워하였 고, 비폭장신은 느닷없이 청혼한 탓에 그녀가 당황해 옥용을 붉히던 기억을 떠올리며 실소를 지었다. 그들은 장성한 자식을 두었음에도 아직 사랑이 식지 않은 부부였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즐감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