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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전인 1994년 11월 중순경 이맘때쯤입니다 제가 10여일간 비디오테이프를 20개를 빌려서 봤습니다 그 비디오테이프는 대만
에서 제작한 대만무협드라마시리즈물로 저는 당시 집인 ㅂ동 3층 양옥집 근처에 있는 ㅂ비디오대여점보다 조금 더 부산광역시
ㄷ구 ㅁ동쪽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ㅈ비디오대여점에서 빌려서 봤습니다 ㅈ비디오대여점은 ㅂ비디오대여점보다 약 2배쯤 더 크
며, 가정집도 하나 있습니다 ㅈ비디오대여점이 본점이라고 하면 ㅂ비디오대여점은 분점입니다 그러니까, 조금 오래된 비디오테
이프가 ㅂ비디오대여점에 없다고 하면 ㅈ비디오대여점에서 빌려서 보면 됩니다 5개의 시리즈를 봤으며, 1번째로는 자객열전 형
가편을 보았습니다 초류향으로 유명한 정소추 아저씨가 이 드라마 주인공인 자객 형가역을 맡았습니다 형가는 위나라에서 태어
났으며, 자라난 곳은 연나라였습니다 당시 진나라는 진왕 정이 천하통일을 하려고 6국을 정벌하려고 정했으며, 이 중에서 삼진
(한, 위, 조)이 멸망당한 상태였으며, 연나라 태자 단은 진왕이 연나라를 멸망시킬지도 모른다고 여겨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진
왕 정을 죽이려고 전광이 태자 단에게 형가를 천거하고 나서 전광은 자살해버립니다 형가는 진왕 정을 도모하려고 직접 만나려
가려고 하면 비수와 연나라 곡창지방인 독하지방의 지도와 진나라에서 투항해온 번오기의 목을 직접 가져가야 된다고 여겨서 연
나라 태자 단이 이를 허락하죠 형가는 진왕 정을 죽이려 가려고 사신로 위장한 자객이 되었으며, 사신의 정사는 형가가 되었고, 사
신의 부사로 개섭이 있어야 진왕 정을 시해하는데 성공했다고 말하는데요 무사인 개섭이 없는데다가 연나라 태자 단의 재촉으로
인해서 칼을 너무 잘쓰는 진무양을 할 수 없이 부사로 데려갑니다 진무양은 겁이 있어서 진왕 정을 직접 찌르지 못하자 형가가 진
왕 정에게 다가가서 진왕 정을 찔렀습니다만 형가가 진왕 정의 팔을 잡아야 됩니다만 형가가 진왕 정의 옷소매를 잡고 진왕 정을
찌르려고 해서 진왕 정의 옷소매가 찢어졌습니다 형가는 진왕 정을 죽이려고 하며, 진왕 정은 이에 도망가다가 진나라 어의 하무
저가 형가에게 약주머니를 던져서 형가가 잠시 머뭇렸을때에 진왕 정이 장검을 꺼내어서 형가를 여덟번이나 찔려서 형가를 죽입
니다 형가가 죽어가는 것과 동시에 이 자객드라마 형가의 시리즈는 막을 내립니다 이 대만무협드라마시리즈 형가는 비디오테이
프 5개로 대만무협드라마시리즈에서 자객열전 오프닝 멜로디와 노래가 드라마를 할때에 그 배경음악으로 깔리는게 조금 듣기가
좋았습니다 2번째는 대만무협드라마시리즈로 자객열전 예양편입니다 예양역을 초류향과 강호풍운록 3부작으로 유명한 건륭제
역을 맡은 정소추 아저씨가 맡았습니다 진(晉)나라에서는 여섯가문이 너무 유명했으며, 지가문의 수장인 지백이 한, 위, 조 세가
문을 멸하려고 했습니다만 오히려 이 세 가문에게 지백이 죽죠 지백의 두개골이 옻칠과 금칠이 되어서 조씨의 수장인 조양자의
술잔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에 예양은 이에 크게 분노해서 조양자를 살해하기로 마음을 먹죠 예양은 죄인으로 가장해 변소의 벽을
칠하는 일을 하며 조양자를 암살할 기회를 노렸으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조양자가 예양을 수색하자 곧 붙잡히고 말았으며, 조
양자는 그 충성심에 감탄하며 주위 가신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예양을 풀어줬습니다 풀려난 예양은 포기하지 않고 숯을 먹어 목
소리를 바꿨으며, 얼굴엔 옻칠을 하여 얼굴을 변형시켰고, 이러한 차림으로 구걸하는 그를 아내조차 알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조의 수도 한단에 새롭게 지어지는 다리를 조양자가 첫번째로 지나가게 되어 있었으며, 이를 안 예양은 시체로 분장하고 다
리 밑에 숨어 조양자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조양자가 탄 말이 살기를 느끼자 다리를 지나가지 않고 멈추어 섰습
니다 이에 의아함을 느낀 조양자가 새로 지어진 다리 밑에 시체가 있는 것을 보고는 이상한 낌새를 느껴 병사들을 보내 다리 밑을
수색하였으며, 결국 예양의 두번째 암살시도는 실패합니다 예양은 조양자에게 그의 겉옷이라도 벨 수 있기를 청해고나서 조양자
가 이를 승락하자 예양은 세번뛰어 조양자의 겉옷을 베었으며, "내가 비로소 지하에 계신 지백께 보답할 수 있게 되었노라!"란 말
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칼에 엎어져 목숨을 끊었습니다 대만무협드라마 자객열전 예양편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죠 이 대만무협드
라마시리즈 예양은 비디오테이프 5개로 대만무협드라마시리즈에서 자객열전 오프닝 멜로디와 노래가 드라마를 할때에 그 배경
음악으로 깔리는게 듣기가 조금 좋았습니다 3번째로는 대만무협드라마시리즈로 자객열전 섭정편입니다 섭정역을 초류향으로 유
명한 정소추 아저씨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섭정은 위(魏)나라 사람으로 사람을 죽인후 원수를 피해서 어머니, 누이와 함께 제나라
로 들어가 백정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한(韓)나라에 엄중자(嚴仲子)는 한나라 군주를 섬기고 있었는데 한나라 재상인 협루(俠
累)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엄중자는 재상 협루에게 죽임을 당할까봐 국외로 도망을 나와 협루에게 원수를 갚아줄 사람을 구
했습니다 엄중자는 제나라의 섭정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여 그를 찾아가 술과 음식을 후하게 대접하고 푸짐한 선물까지 안겼으며,
이상하게 여긴 섭정은 선물을 사양하고, 그 까닭을 캐물었습니다 엄중자는 처단해야 할 원수가 있으며 섭정의 의기가 높다는 소
문을 듣고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의미라고 말하며, 섭정이 엄마를 봉양하도록 선물을 드리는 것이라고 하자 섭정은 끝내 사양하
고 헤어졌습니다 섭정의 엄마는 그 이후에 돌아가셨습니다 섭정은 엄중자에게 원수를 갚을자가 누구인지, 이제 그 일을 하려한다
며 자신의 의지를 밝히자 엄중자는 그자가 바로 한나라의 재상이자, 한나라 군주의 막내 숙부인 협루임을 밝히며 필요한 지원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섭정은 모든 지원을 사양하고 홀로 길을 떠난다 삼엄한 경계를 뚫고 섭정은 협루를 찔러 죽이니 부하들은
혼란에 빠졌고 섭정은 수십명을 해치웠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지 못할 것을 알고 있던 섭정은 스스로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겨내고
코를 베고 두눈을 도려내며,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 마침내 죽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건이 일어 났지만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훼
손된 시신만 있을뿐 범인의 정체와 배후는 도저히 알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한나라에서는 섭정의 시체를 큰길에 걸어 놓고 많은
현상금을 걸어 협루를 죽인자를 아는 사람을 찾았지만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섭정의 누나 섭영(聶榮)은 나라에서 벌어진 사건의
소문을 듣고 그 범인이 바로 동생 섭정임을 직감하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엄중자가 내 동생을 알아 주었구나" 시장거리로 나가
동생을 한눈에 알아본 섭영은 시체위에 업드려 슬피 울며 자신의 동생임을 밝히며 말했습니다 "섭정이 오욕을 무릎쓰고 저자거리
에 몸을 던진 것은 노모가 다행히 병이 없고 제가 시집을 가지 않았기 때문이요. 이제 어머니는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나셨고 저
는 이미 시집을 갔습니다. 엄중자는 천한 동생과 교류하였고 은택이 두터우니 어찌 하겠습니까? 지금 내가 살아 있으니 자신의 몸
을 훼손해 그 종적을 없앴으니, 어찌 형벌이 두려워 어진 동생의 이름을 영원히 사라지게 할수 있겠습니까!" 섭영은 하늘을 향해
소리치며 흐느껴 울면서 슬퍼하다가 마침내 섭정의 곁에서 자결하였다고 합니다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 대한 의리를 지킨 섭정
도 대단한 인물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의기로운 동생의 이름을 헛되지 않도록 세상에 드러내며 자결한 그의 누나 섭영 역시 대단
한 여성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사람, 그런 사람을 알아보고 미래를 도모한 엄중자 역시 말이 필요없는 인물임이 틀림없습니다
이 대만무협드라마시리즈 섭정은 비디오테이프가 5개로 대만무협드라마시리즈 자객열전의 오프닝의 멜로디와 음악이 이 드라마
를 할때에 배경음악에 넣어졌을때에 조금 듣기가 좋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4번째는 대만무협드라마시리즈로 자객열전 전제
편입니다 전제역은 초류향으로 유명한 정소추 아저씨가 주연으로 맡았습니다 이 드라마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자서는
공자 광이 오왕 요를 제거하고 자신이 왕에 오르고 싶어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공자 광에게 눈여겨 보아온 전제를 추천합니다 공
자 광의 아버지는 오왕 제번(諸樊)이라고 합니다 제번에게는 아우가 셋이 있었으며,여제, 이매, 계자찰 순입니다. 제번은 똑똑하
고 현명한 막내동생인 계자찰에게 왕권을 주고 싶었으나 형제들 간의 갈등을 피하고 동생순으로 왕위를 물려주면 결국 계자찰이
나라를 다스리게 될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제번이 죽고 둘째동생 여제가, 여제가 죽고 셋째 이매가, 이매가 죽고 계자찰 차
례가 되었는데, 계자찰은 왕위를 거부하고 도망가버렸습니다 이에 오나라에서는 이매의 아들 요를 왕으로 세웠는데, 이에 큰아들
제번의 아들인 공자 광은 불만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제간 왕위상속은 계자찰이 되어야 하지만 아들이 왕위를 이어야 한다면
큰아들 제번의 아들인 자신 공자 광이 적법한 계승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공자 광은 남몰래 힘을 기르
면서 왕위에 오르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며, 전제를 소개받고 극진하게 대우를 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얼마후 초나라 평왕
이 죽었으며, 오왕 요는 초나라의 국상을 틈타 초나라를 공격하였는데, 오왕 요의 심복들이 모두 그의 곁을 떠나 전장으로 나가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초나라에서도 군사를 내어 대치하게 되니 오나라에서는 군사들을 물릴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런 상황을 공자 광은 놓칠 수 없었습니다 공자 광은 전제에게 지금이 절호의 기회임을 설명하자 거사를 실행할 것을 결심하였습
니다 드디어 공자 광은 지하실에 무장한 병사들을 숨겨놓고 오왕 요를 초대하였습니다 경호경비가 삼엄하여 가까이 접근하기조
차 어려운 상황이므로 오왕을 해하기란 불가능해 보입니다 공자 광이 발이 아프다며 자리를 피해 지하실로 들어가 전제에게 구운
생선을 올리게 하였습니다 전제가 올린 생선의 뱃속에는 비수가 숨겨져 있었는데 바로 어장검(魚腸劍)입니다 춘추시대 오나라와
월나라는 제련술이 발달하였는데 간장, 막야 등은 오나라 출신이고 구야자는 월나라 출신으로 명검을 만든 명장들입니다 간장과
막야는 부부인데, 오나라 왕 합려(공자 광이 왕위에 오르는데 그가 바로 합려)의 주문으로 자신의 이름을 따서 자웅쌍검인 간장
(干將), 막야(寞耶)라는 보검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간장을 웅검(雄劍), 막야를 자검(雌劍)을 뜻하는 이유라고 합니다 월나라 구야
자(歐冶子)는 월나라 왕 윤상(允常, 월왕 구천의 아버지)을 위해 거궐(巨闕), 담로(湛盧), 승사(勝邪), 어장(魚腸), 순구(純鉤) 등 5개
의 명검을 만들었는데 전제가 오왕 요를 죽일때 사용했던 검이 어장검입니다 구야자는 후에 간장과 함께 초소왕을 위해 용연(龍
淵), 태아(泰阿), 공포(工布) 등을 만들었습니다 구운 생선을 들고 왕의 면전까지 다가간 전제는 생선의 배를 가르며, 그 속에 숨겨
져 있던 비수 어장검을 꺼내어 단숨에 오왕 료를 찔러 절명시켰고, 주변 오왕의 호위 무사들은 전제를 그자리에서 죽여버렸습니
다 이 혼란을 틈탄 공자 광은 지하실에 매복시켜 놓은 군사들을 움직여 오왕 요를 따르는 무리들을 공격하여 죽여버렸습니다 공
자 광은 스스로 오왕의 자리에 오르니 그가 바로 춘추오패 중의 한사람인 합려(闔閭)이라고 하며, 합려의 아들이 부차(夫差)로 부
차를 춘추오패로 꼽기도 합니다 합려는 전제의 아들에게 봉지를 내리고 상경(上卿)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외에도 사마천의 자객
열전에서 언급한 5명 중에 조말이라는 자객을 이 대만무협드라마 자객열전에서는 언급하지 않아서 너무 아쉽습니다 슬프지는 않
습니다 이 대만무협드라마 전제는 비디오테이프 5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만무협드라마시리즈 자객열전에서 자객열전의 멜로
디와 음악이 이 대만무협드라마시리즈 자객열전이 진행되면서 삽입되었을때에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이 오나라 자객 전제는
정비석 소설가님의 손자병법에서 3개의 차트(장)을 할애해서 언급한듯 합니다 마지막 다섯번째는 소오강호로 홍콩무협영화입니
다 홍콩무협드라마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비디오테이프가 (상), (하) 이렇게 2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10여일간 비디
오테이프 22개를 당시 집인 ㅂ동 3층 양옥집에서 보면서 싸구려수제버거인 ㅇ버거에서 새우버거 또는 쇠고기와 계란이 들어간
불고기버거를 먹으면서 옆에 칠성사이다 또는 코카콜라 캔 1개 이상을 먹으면서 봤습니다 저는 쇠고기를 먹지못하는 종교를 믿
는 사람이 아니며, 쇠고기를 먹으면 몸에 부작용이 없으니까 이 쇠고기계란버거를 먹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당시 집인 ㅂ동 3
층 양옥집에서 조금가면 나오는 ㅅ상가에 있는 ㅁㅁ토스트에 들어가서 계란토스트 및 야채토스트 및 불갈비토스트를 샀습니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있는 ㅇㅇ슈퍼에서 생과일쥬스를 샀으며, 포도쥬스가 담겨진 유리병쥬스를 선호했습니다 불갈비토스트는 쇠
고기로 만들며, 저는 쇠고기를 먹지 못하는 종교를 믿는것은 아니고, 쇠고기를 먹으면 몸에 부작용이 있지도 않으니까 상관없습
니다 그렇게 저는 10여일간 비디오테이프 22개를 보면서 중국무협드라마 및 중국무협영화의 재미에 몰입한 것으로 기억되네요
1일에 비디오테이프 2개씩을 본것이지요 당시 집인 ㅂ동 3층 양옥집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가면 바로 나오는 ㅎ비디오대여점에 있
는 남송시대를 다룬 중국무협드라마시리즈물인 십이금패를 다 보고 난 이후에 이 대만무협드라마시리즈 자객열전과 홍콩무협영
화 소오강호를 본듯 합니다 중국무협드라마시리즈물인 십이금패는 비디오테이프가 15개로 되어있었으며, 이 십이금패를 다 보
는데에 8일이 지났습니다 저는 대만무협드라마시리즈인 자객열전과 홍콩무협영화인 소오강호를 다 보고나서 당시 집인 ㅂ동 3
층 양옥집에서 걸어서 약 10여분거리에 있는 ㅈ비디오대여점에 이 비디오테이프 22개를 갔다준것으로 기억됩니다 사실은 말입
니다 비디오테이프 15개를 먼저 빌려봐서 ㅈ비디오대여점에 갔다주고나서 그 다음에 비디오테이프 7개를 빌려서 다 보고나서 또
갔다준 것으로 기억되네요 당시 집인 ㅂ동 3층 양옥집에서 ㅅ골에 있는 ㅂ비디오대여점까지는 걸어서 약 5여분거리입니다 당시
21세인 20대 초반 저 나디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느정도 중국무협드라마시리즈물에서 관심이 식어갔을 시점에서
(중국무협드라마시리즈는 처음에는 너무 재미있습니다만 그 중국무협드라마시리즈를 8~9개쯤 보고나면 그때부터는 이 중국무
협드라마시리즈의 스토리가 다 파악이 되어서 재미가 현저하게 없어진다고 하는데요 저같은 경우에는 중국무협드라마시리즈를
하루에 비디오테이프 2~3개를 봄으로써 적당히 즐겨서 그런 것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 중국무협드라마시리즈가 스토
리가 많이 파악이 되어서 조금 그 스토리가 눈과 귀에 익어져서 조금 재미가 없어지기도 했었지요) 30대 중반으로 되어보이는 외
판원아저씨가 당시 집인 ㅂ동 3층 양옥집에 와서 중국어와 일본어를 비롯한 외국어교재를 소개했었습니다 이때, 저는 중국어를
선택했습니다 옆에 모친(엄마)께서는 중국어보다는 일본어가 더 좋다고 하는데요 모친(엄마)께는 중국어를 하겠다고 그렇게 말
씀을 드렸습니다 결국에는 모친(엄마) 말씀을 안 들었었던 것을 후회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제게는 중국어보다는 일본어가 더 좋
았으니까요 그 중국어교재는 한번에 오는게 아니라 학습지형태로 1주일에 1번씩 카세트테이프 1개와 학습지형태의 프린터물 1
개로 대봉투로 보내줬습니다 그때, 제가 외판원 아저씨하고 모친(엄마)의 도움으로 계약을 맺었는데요 며칠후에 외판원아저씨가
어떤 상자를 저한테 갔다주고나서 이 상자가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될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상자에는 36개 카세트테이프가 들어가
는 그런 홈이 파여져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그해인 1995년도에 카세트테이프 36개가 당시 집인 ㅂ동 3층 양옥집에 프린트물 형태
의 미니교재(?)와 같이 배달되었습니다 저는 이 중국어 카세트테이프와 프린트물 형태의 미니교제(?)를 6회까지는 열심히 봤다가
7회때부터는 잘보지 않게 되었으며, 14회때쯤 가니까 중국어열정이 제게도 식어졌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중국어 카세트테이프와
프린터물 형태의 미니교제(?)는 그렇게 장식물화(?) 되어갔으며, 나중에 당시 집인 ㅂ동 3층 양옥집에서 가까운 ㅈ온천랜드 본사
이자 부산사무실에 있는 무척 얼굴이 어여쁜 김미영(가명) 누나에게 갔습니다 제가 무상으로 줬습니다 제가 김미영(가명) 누나에
이것을 무상으로 주고나서야 그제서야 모친(엄마)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모친(엄마) 말씀대로 일본어를 선택할
것을요 그러나, 상황은 이미 다 끝난 이후입니다 이때, 저는 한국인이라면 꼭 해야 되는 국방의 의무를 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때
ㄱ구청에서 출퇴근하는 잡일담당이자 ㄱ구청 자재들을 나르는 자잘한 일 담당에다가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한 문서작업 담당인 출
근공익이었으니까요 그때, 제가 외판원아저씨에게 일본어를 선택했다고 하면 제가 일본어에 재미를 붙이게 되어서 나중에 ㅂ대
학교 ㅈ캠퍼스 앞으로 가서 일본어 중급과정을 비디오테이프와 카세트테이프로는 더빙하며, 거기에 해당되는 교제는 다 복사제
본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이미 다 끝난 일이었습니다 1994년도를 기점으로 해서 그로부터, 6년후에 사귀게된 김현미(가명)
양은 ㅅ대학교 ㄱ캠퍼스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데다가 ㅂ대학교 ㅈ캠퍼스 일어일문학과를 학사편입(검색을 해보면 알아요)해서
졸업까지 했습니다 거기다가 ㅂ대학교 ㅈ캠퍼스 일어일문학과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다 마쳐서 석사학위도 받아서 ㅂ대학교 ㅈ캠
퍼스 앞에 있는 ㅁㅁ외국어학원에서 일본어강사로 일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의 일본어공부의 한(?)과 아쉬움(?!!)을 여자친구 김현
미(가명)양이 이렇게나마 풀어준 것이지요 여자친구 김현미(가명)양이 알고보니까 제가 1년선배이기도 했네요 저는 ㅅ대학교 ㄱ
캠퍼스 사학과 1학년을 약간 다니다가 중간에 그만둔 중퇴생 출신이니까요 ㅅ대학교 ㄱ캠퍼스는 부산광역시 ㅅ구 ㄱ동에 있는
부산명문사립종합대학교입니다 이 ㅅ대학교 ㄱ캠퍼스를 마치지 않으며, 졸업하지 못해서 아쉬움은 없습니다 그때에는 몸이 너무
아파서 병치료에 전념하는게 더 소중했으니까요 저하고 친한 친구인 김용철(가명)군이 대학입시를 시험쳐서 ㅇ대학교 행정학과
에 입학해서 저하고 같이 1학년생으로 있다가 2달을 조금 넘겨서 그만뒀으며, 자퇴생을 내었을때에도 김용철(가명)군이 몸이 너
무 아파서 병치료가 더 우선이다고 그렇게 말한게 생각납니다 1994년도에 김용철(가명)군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때에는 웃고 넘
겼습니다만 3년후에 제가 그런 상황이 되니까 김용철(가명)군이 한 행동을 조금이라도 이해를 하겠더라고요 하기야 병치료가 더
우선이지 공부야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공부도 못하는 것이니까요 그때 당시 그런 상황이 왔다고 해도 저는 그런 선택을 했을듯
합니다 쌍둥이자매 김유진(가명)양과 김수진(가명)양과 하나뿐인 누나처럼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하고나서 학사편입(검색을 해보
면 압니다)를 해서 자기가 나온 대학교에 3학년생으로 다시 다니면서 2년이상을 공부하고 나서 4년제 대학교의 졸업장인 학사학
위를 취득하는게 저에게는 그야말로 하늘위에 뜬 구름위의 세상으로 딴나라세상입니다 제게는 병치료가 더 시급했었던 것이죠
저는 이런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병치료로 인해서 이렇게 되었으니까 아쉬움도 조금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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