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기연과 더불어 되찾은 내공 천마황이 귀궁해서 제일 먼저 취한 행동은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마 인들의 식솔에게 마공을 전수하는 일이었다. 삼천여 명의 인원으로 중원을 지배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웃을 일 이었기에 시급히 궁도의 수효를 늘려야 했다. 그는 빼앗은 장문령부나 신물을 이용하여 자신들에게 고개 숙인 방 파의 인물들 중 절반을 강제로 천마궁에 소속시켰다. 천마궁의 궁도가 된 그들은 처음엔 반감이 있었으나 막강한 마공을 아낌없이 전수해주자 수뇌부에 충성을 바쳤다. 그들이 하라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변화하는 자신 들이 우습기도 하였으나 영달을 위해선 감수하였고, 강자존의 무림 에선 무인들이 보다 강한 무공을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천마궁의 궁도들은 급속하게 확충되었고, 이제 삼만으로 늘었지만 예전의 위엄을 되찾으려면 몇십 년이 걸릴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 였다. 그들에게 무공을 전수하는데 모든 총력을 기울였으므로 지부를 다시 재건하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천마황은 민심을 붙잡기 위해 강남으로 수하를 보내어 독인들이 만 든 독진과 독지로 변해 버린 곳을 평소의 모습대로 바꾸기 위해 서 둘러 공사를 착공시켰다. 마인들은 궁주의 뜻을 확실하게 전달받았는지 되도록 민폐(民弊)끼 치지 않고 열심히 공사를 하여 최단기간에 복구시켰다. 마인들은 사냥한 짐승을 주식으로 삼았고, 그들이 공사하는 지역은 짐승의 씨가 마른다는 원성이 들리기도 하였다. 강남을 등졌던 양민들은 그 소식을 듣고 정든 고향으로 귀향 길에 올랐고, 고향에 도착해서 소문대로 복구되어 있자 진심으로 천마궁 에 감사했다. 꽤 오랜 시일이 지나 민심이 수습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중 원은 점차 안정되고 있었다. * * * 정도연합맹도들은 다시 운남성 첨고산 서편에 집결하여 무공연마에 들어갔다. 식량과 물자가 풍족하지 못해 궁핍한 생활의 연속이었으나, 누구하 나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인물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이었고, 보다못한 개방의 옥면유개 육천혜가 도움을 받기 위해 은하전장을 방문하였다. 발길이 끊긴지 오래되어 폐가로 보이는 은하전장의 총단에는 밤이 되면 가끔 귀곡성이 울렸고,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나서 양민들은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옥면유개가 비렁뱅이 차림으로 그곳에 도착하여 텅 비어 있는 전각 에 들어가 여장을 풀고 잠복한지 오 주야가 지난 후 지하보고를 나 선 일월쌍협과 조우하였다. 일월쌍협이 주변을 둘러보고 그곳을 벗어나려는데 옥면유개가 그들 을 가로막았다. "하하하……! 일월쌍협께서 이 곳에 아니 계시면 어쩌나하고 노심초 사하였소이다. 장주님을 뵈러 왔는데 어디 계십니까?" 일월쌍협은 자신들이 방심하여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불 쾌한 표정을 지었는데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옥면유개가 그들의 표정을 살피더니 두말 않고 전각에 들어가 자신 의 봇짐을 지고 나왔다. "미안하오. 비렁뱅이라고 너무 괄시를 하는구려." 그가 그대로 떠나려고 하자 일협이 그를 붙잡았다. "옥면유개께선 용무가 있으셔서 오신 것이 아니오? 어찌 그냥 떠나 시려 하는 거요?" 옥면유개가 표정을 굳히며 답했다. "정도연합맹을 대표하여 구걸 좀 하려고 왔는데 문전박대하니 가봐 야 되겠소이다." 일협이 그를 잠깐 세워두고 월협과 상의한 후 물었다. "사부님께선 이곳에 계시니 만나실 수 있소이다. 그런데 잠시 눈을 가려도 되겠소?" 옥면유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월협이 천으로 그의 눈을 가린 후 그를 부축하여 지하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걸음을 옮기며 일월쌍협은 자신들이 부주의한 탓에 적에게 들킬 뻔 했다며 투덜거렸고, 옥면유개는 자신이 오해했음을 알고 굳어졌던 마음을 풀어 버렸다. 긴 통로를 지나 한참동안 걸어 들어간 옥면유개는 일협이 가린 천을 벗겨주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과 천장, 바닥까지 철판으로 둘러 쌓여 있는 텅 빈 곳이었고 태 사의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현천천검이 들어와 태사의에 앉자 옥면유개가 예를 취하였다. "장주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현천천검이 답례를 하며 물었다. "옥면유개는 신수가 여전하군. 어쩐 일이신가?" 옥면유개는 정도연합맹이 처한 어려움을 하소연하였고, 도움 받기를 원한다고 부탁드렸다. 현천천검은 일협에게 전음을 전하였고,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일 협은 커다란 상자를 가지고 돌아왔다. 일협이 상자의 뚜껑을 열자 오색찬란한 보광이 실내를 밝혔다. 상자 안에는 주먹만한 묘안주(猫眼珠), 흑진주(黑眞珠), 야명주(夜 明珠), 곤옥주(崑玉珠), 금강석(金剛石), 비취(翡翠), 피수주(避水 珠), 피화주(避火珠), 피독주(避毒珠) 등이 가득 차 있었다. 하나만 가지고도 한가족이 저택과 평생 호화호식을 즐기며 살아도 남을 만치의 가치를 지닌 명품들이었다. 옥면유개가 입을 다물지 못하자 현천천검이 웃었다. "허허허……! 일단 저것부터 가져가게. 다음에 올 때는 혼자 오지 말고 제자들을 데리고 와서 더 많이 가져가게나." 옥면유개는 정도연합맹에 이 같은 보물을 아낌없이 선사하는 현천천 검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였다. 그때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응애……! 응애……!" 옥면유개가 의아한 표정으로 현천천검을 바라보자 미소를 짓고 있던 현천천검이 일어나며 옥면유개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허허허……! 손자녀석이 울고 있으니 가서 달래주어야겠구먼. 이만 가보게나." 옥면유개의 눈은 다시 천으로 가려졌고, 다정공자의 후예가 있다는 사실을 입밖에 내지 말라는 일월쌍협의 부탁을 들으며 지하보고를 벗어났다. 천을 풀자 햇살에 눈이 부신 옥면유개는 한 손으로 눈을 가렸고 남 은 손으로 품속에서 밀납으로 쌓인 환약 네 개와 책자를 꺼내 일월 쌍협에게 전했다. "하하하……! 조카님들이 넷이나 있다는데 그냥 갈 수는 없지 않겠 소? 이 비급은 개방의 절기를 수록한 것이오. 보잘것없는 내용이지 만 조카들이 성장하며 수련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오. 내 입은 무거 우니 비밀이 새어 나갈 염려 일랑 붙잡아 매두시오." 옥면유개가 상자를 지고 떠나자 일살은 비급의 겉장에 취팔선과천( 醉八仙跨天)이라 써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방주만 익힐 수 있다는 신법이었던 것이다. 밀납에서 잘 익은 술 냄새가 나는 것으로 보아 개방 최고의 영약인 취구환(醉求丸)이 틀림없었다. 일월쌍협은 멀어져 가는 옥면유개에게 손을 흔들더니 지하보고로 스 며들었다. 현천천검에게 보고를 마친 그들은 환약과 비급을 들고 주 모들이 기거하는 밀실로 찾아갔다. 소주들에게 빨리 환약을 바치기 위해서였는데 환약을 받은 주모들의 표정이 이상했다. "일월쌍협! 아이들이 이것을 먹고 취하면 어쩌려고 지금 먹이라는 거예요?" 하운미의 말에 찔끔한 그들은 서둘러 빠져나갔고 여인들은 깔깔대고 웃으며 밀납을 제거하고 아이들의 입에 넣어주었다. 술 잘 마시는 부친을 닮아서인지 아이들은 커다란 환약을 사탕 빨 듯 맛있게 먹었고 잠시 후 볼이 붉그스레 변하더니 코를 쌕쌕 골며 잠에 빠졌다. 아이들을 침상에 눕힌 여인들이 연무관으로 달려가 오랜만에 마음놓 고 전소추가 전수하였던 무공을 연마하였다. 당초혜는 무공입문이 늦었지만 내공이 높은 탓에 지금은 전소추가 전수한 무공을 전부 대성한 상태였다. 나머지 부인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녀들은 짝을 이뤄 상대방과 수련하 며 실전에 어떤 무공을 시전하는 것이 효율적인가를 연구하였다. 장 차 아이들이 자라면 전부 가르쳐 주어야 했기에 그녀들은 오늘도 고 된 수련을 인내하고 있었다. * * * 숭명도에서 생활을 시작한 전소추는 하루일과 대부분을 도주와 함께 보내고 있었다. 그의 무궁무진한 지식은 도주를 놀라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고, 도주 는 그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고 있었다. 전소추는 숭명도에 있는 가옥과 전각들이 모두 낡고 초라한 것을 보 고 틈틈이 도면을 작성하여 도주에게 전하였다. "도주님! 미천한 솜씨지만 이런 모양으로 전각을 새로 지으면 어떻 겠습니까? 도민들이 기거하는 곳도 이런 식으로 바꾸면 보다 안락하 게 지낼 것입니다." 해풍을 견디기 위한 건축물의 도면을 받아들고 살펴본 창해어옹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허허허……! 낚시인생 팔십 년만에 자네 같은 기인을 낚아 올린 것 이야말로 가장 큰 대물을 건진 셈이네." 창해어옹은 즉시 총관을 불러 도면을 전하고 시행하게 하였다. 숭명도에선 대대적인 토목공사와 건축공사가 벌어졌고 전소추는 일 하는 사람들을 지휘감독하며 시간을 보냈다. 새벽엔 일출을 보기 위해 숭명도 동쪽 끝으로 나가 바위에 좌정하여 망망대해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기를 보충시켰다. 오늘도 새벽잠을 깬 전소추는 바위를 찾았고, 창해어옹도 그를 따라 일출을 맞이하였다. 운기행공을 마친 전소추는 호법을 자청하여 곁 에 서있던 창해어옹에게 물었다. "도주님! 이곳이 낙원이라 바깥출입을 할 필요성은 없으나 이렇게 단절된 삶을 지속하다간 중원대륙에 비해 뒤쳐진 삶을 영위하게 될 것입니다. 일년에 한번씩이라도 도민들 중 일부를 대륙으로 내보내 풍물을 익히게 하심이 옳지 않겠습니까?" 창해어옹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자네의 말이 모두 옳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하겠네. 언제부터 이곳 에 조상이 정착하였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대대로 이곳에서 살아온 조상들은 전설을 풀지 못하면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유시를 남겼네. 하지만 선대의 도주들은 가끔 강호유랑을 하였는데, 주원장이 건국 할 때 도주이셨던 해룡신(海龍神)께서도 호승심이 강해 유시를 어기 고 나가 중원을 유람하다가 우연히 주원장과 결의형제를 맺고 그를 도왔다고 하네. 일등공신이 되어 이곳에 다시 오셨을 때는 두 다리 가 잘려 없는 상태였고, 남은 여생을 술만 마시다가 주독(酒毒)이 올라 돌아가실 때 비밀을 풀기 전엔 어느 누구도 다시는 중원에 발 을 들여놓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고 돌아가셨네. 이후 숭명도의 도민 은 대륙과 동떨어진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지. 답답한 것은 전설의 내용이 무엇인지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일세. 그러니 그 이야기 는 이만 접어두기로 하세……." 전설의 내용을 모르는데 비밀을 풀기 전에는 나갈 수 없다는 창해어 옹의 말에 전소추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선조의 유시를 따르겠다는 도주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이 서로 말을 꺼내지 못하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때 등뒤로 창해어옹의 손녀 창궁해연(蒼穹海燕) 여소정(呂 晶)이 수줍은 목소 리를 토했다. "조부님! 조반준비가 되었어요. 전소협과 함께 돌아가시지요." 전소추는 여소정의 용모가 자신의 처인 하운미와 당초혜를 합쳐 놓 은 모습을 하고 있어 친근감을 느끼고 있었다. 전소추가 자신의 손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창해어옹이 먼저 신 형을 날렸다. "허허허……! 먼저 가 있을 테니 천천히 돌아오려무나." 그녀를 처음 만나던 날에 전소추는 자신이 중원에 부인을 넷이나 두 고 있는 유부남이라는 것을 밝혔기에 창궁해연은 마음속으로 끙끙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전소추보다 한 살 많은 여소정은 혼기가 지난 처녀였고 조부의 소개 로 그를 만나던 날 준수한 용모를 지닌 그에게 흠뻑 빠지고 말았다. 틈만 나면 그와 같이 지내고 싶어 조반 핑계를 대고 찾아왔지만 심 중을 드러낸 것이 부끄러워 입을 열지 않았고, 전소추는 그녀와 해 변을 걸으며 대륙의 풍물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여소정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가끔 질문을 하였고 전소 추는 성의 있게 답변을 해 주었다. 멀리서 보면 청춘남녀가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광경이었는데 먼저 떠난 창해어옹은 나무 뒤에 숨어 그 광경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 었다. '허허! 녀석… 부모를 잃고 지난 십 년간 웃음을 잃어 나를 애태우 더니 마음에 드는 사내가 나타났다고 저리 좋아하다니……!' 그는 십 년 전 해경(海鯨)을 잡으려고 출어(出漁)한 자식과 며느리 를 떠올리고 안타까워하였다. '저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그 아이들도 행복해 하였을 터인데 아쉽 게도 상처 입은 해경이 난폭한 탓에 선박을 침몰시켜 수장돼 버렸으 니……!' 창해어옹이 주름진 눈가의 눈물을 닦아내더니 처소로 향했고, 그가 도착한지 일각이 지났을 때 전소추와 여소정이 돌아왔다. 조반을 마친 전소추는 곧장 공사현장으로 나가 석양이 짙게 드리울 때까지 도민들이 일하는 것을 거들었다. 수욕을 마치고 침소에 돌아온 그는 밤마다 천마황의 무시무시한 마 공에 복부가 관통되는 악몽을 꾸는 일이 되풀이되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자신이 아는 무공 중에서 천마황의 가공할 마공을 막을 수 있는 무공을 찾기 위해 갖은 애를 써보았지만 상승의 무공 이라도 막을 방도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지금 그의 몸엔 이 갑자의 내공만 남아 있었고, 상승의 무공 을 시전하지도 못할 형편이었다. 중원이 마로 물들지 않기를 바라는 그는 대륙으로 돌아가도 뾰족한 수가 없기에 암울한 밤을 지내야 했다.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운기행공에 몰입한 그는 이상함을 느꼈고, 신 체의 음양조화가 깨졌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소요곡에서 본 의서를 떠올린 그는 음양조화가 깨져 양기가 음기보 다 강하게 되면 보름달이 뜰 때 음기를 보충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 게 색마로 변한다는 내용을 떠올렸다. 놀란 그는 지난 팔 개월간의 기억을 떠올리려다가 생각이 나지 않자 포기하고 자신의 소지(小指)에 꽂혀 있는 은으로 만든 쌍가락지를 살펴보았다. 그저 평범한 은가락지였는데 분명 만리평에서 천마황과 대결할 당시 에는 자신이 지니지 않았던 물건이었고, 소지에 끼여 있는 것으로 보아 여인이 지녔던 물건으로 추정되었다. 혹시 자신이 음욕을 풀기 위해 색마로 돌변해 여인들을 강제로 취하 고 빼앗은 물건일 지도 모르기에 그는 급하게 소지에서 가락지를 뺐 다. 버리려다가 우연히 안쪽에 작은 글씨가 음각되어 있는 것을 본 전소 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미향(嚴美香) 강복(江福)> 서툰 솜씨로 새겨 놓은 것으로 보아 누군가 급하게 새겨 놓은 글씨 체였고, 여인과 사내의 이름은 확실한데 도대체 생각이 나지 않으니 답답했다. 자신이 흉악무도한 일을 저지르고 다녔다면 책임을 져야 했기에 그 는 다시 소지에 쌍가락지를 끼웠고, 답답해진 마음을 풀기 위해 바 람을 쐬려고 침소를 나섰다. 해변으로 나온 전소추는 하늘에 떠있는 은하수(銀河水)를 바라보며 자신의 처들을 떠올렸다. '휴우……! 모두 만리평에서 내가 죽은 줄 알고 있을 터인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미매는 지금쯤 아비도 없이 아이를 키우고 있을 텐 데 혼자 힘들겠지? 심령술을 쓰면 의사를 전달할 수 있으나 지금 이 상태로는 내가 생존해 있다는 것을 밝힐 수 없구나……!' 그가 상념에 빠져 있을 때 곁에 창궁해연이 다가와 앉았다. "전소협! 무슨 생각을 하시느라 제가 온 것도 모르지요?" 그는 곁에 바짝 붙어 앉아 자신에게 활짝 미소짓는 창궁해연에게 사 실대로 말해주기가 민망하여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하하하……! 아름다운 여낭자를 생각하고 있었소이다. 헌데 여낭자 께서 어인 일로 이 밤중에 이곳으로 나오시었소?" 그가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에 얼굴을 붉힌 여소정은 기쁜 표 정을 지었다. "호호호……! 제 생각을 하시긴 하시는가봐요? 잠이 오질 않아 전소 협에게 세상사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찾아갔다가 아니 계셔서 나와 본 거예요." 고개를 끄덕인 전소추가 중원대륙의 무인과 평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자 여소정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새벽닭이 울 때까지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하루 일과를 알리는 태양은 어김없이 떠올랐고 날을 꼬박 지새운 그 들 남녀는 장엄한 일출광경을 보며 탄성을 터트렸다. "전소협! 사시사철 시시때때로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언제 보 아도 일출광경은 멋이 있지요? 호호호……! 중원의 천자도 이런 멋 진 일출광경을 보지 못하겠지요?" 전소추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하하하……! 중원 내륙에서는 이곳과 달리 동쪽의 산 위로 솟는 일 출을 볼 수 있소. 날이 밝기 전에 높은 산정에 오르면 운해(雲海) 위로 솟는 장관(壯觀)도 볼 수 있소." 창해어옹이 죽간을 메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녀석! 할아비도 깨우지 않고 먼저 나와 전소협과 무슨 이야기를 그 리 재미나게 하고 있었느냐?" 창궁해연과 전소추는 날밤을 지새웠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얼굴 을 붉혔고 창해어옹은 미소를 지으며 바위에 앉아 죽간을 드리웠다. 휘익―! 퍼드득―! 죽간을 드리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해어옹은 형형색색의 물고기를 잡아 올리기 시작하였고, 작은 물고기는 바늘에서 빼자마자 도로 놓아주었다. "허허……! 네놈은 아직 채 자라지 못하였으니 집에 돌아가거라." 반각이 지나기도 전에 독이 있는 물고기와 작은 물고기를 놓아주고 도 팔뚝만한 물고기가 세 마리 건져 올린 창해어옹은 죽간을 접더니 물고기를 전소추에게 들게 하였다. "이제 들어가세. 싱싱한 이놈들로 조찬을 때워야겠네." 자신이 흠모하는 전소추와 밤새 대화를 나눈 창궁해연은 그에게 더 욱 매료되었고 그날 이후 밤만 되면 그와 해변에 앉아 대화를 나누 었다. 물론 전소추도 그녀가 싫지 않았기 때문에 고되게 일을 하고 도 밤을 기다리곤 하였다. 전각을 세우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도민들 중에서 나이가 든 사람들은 배를 만든 경험이 풍부하였기에 전소추가 요구한 대로 숲에 들어가 나무를 베어와 목재를 쉽게 다듬 었다. 도주가 기거할 전각을 세우고 나면 자신들의 가옥도 개량한다고 하 니 모두 들떠서 열심히 일을 하였다. 전소추가 숭명도에 발을 들여놓은 지 이십오 주야만에 목조로된 고 루거각이 완성되었다. 아직 채색을 끝내지는 못하였으나, 오 층의 지붕 위에 마지막 기와를 얹은 것이다. 도민들이 천연염료를 구해 채색을 마치자 아름다운 전각이 제 모습 을 드러내었다. 가재도구와 집기, 물품을 옮긴 창해어옹이 기뻐한 것은 물론이었고, 도민들도 즐거워하였다. 건물이 완공된 것을 기념하여 연회가 벌어졌고 모두 전소추를 칭찬 하느라 침이 마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보름달이 이틀 뒤에 뜬다는 것을 안 전소추의 마음은 무거웠다. 이틀 동안 내색을 않고 도민들의 가옥 짓는 것을 돕던 전소추가 해 가 지기도 전에 창해어옹을 찾았다. "도주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제가 빠져 나오 지 못할 견고한 석실에 가두어 주십시오." 창해어옹은 영문을 몰라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전소추는 급하게 음양조화가 깨져 보름달이 뜨면 색마로 돌변할 지 모른다고 설명하였고, 누가 희생당할지 모르니 빨리 자신을 가둬줄 것을 요청하였다. 창해어옹은 그의 말이 믿기지 않았으나 일단 그의 요청을 수락하였 고, 선대에 만들어진 지하 동부로 그를 안내하여 석실에 벽에 있는 횃불에 불을 밝히더니 그를 남겨두고 문을 잠갔다. 털커덕―! "도주님! 어떤 일이 발생해도 문을 열어선 안됩니다." 그는 창해어옹에게 거듭 강조하였다. 창해어옹이 혀를 차며 지하동부를 빠져나갔다. "쯧쯧쯧……! 자네의 말을 따르긴 하지만 가두고 나가려니 찜찜하구 먼." 석실에 홀로 남은 전소추는 과연 자신이 의서의 내용으로 색마로 변 한다면 음기를 보충하지 못해 이곳에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진 그는 색마로 변해 만행을 저지른다면 대 륙에 남겨 놓은 처들과 자식에게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할 것이기에 차라리 죽어 버려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해시 무렵 전소추의 처소를 찾은 창궁해연은 그가 없다 해안가로 나 갔는데 거기에서도 그의 모습을 찾지 못하자 조부에게 달려갔다. "할아버님! 혹시 전소협이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창해어옹이 고개를 젓더니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창궁해연이 경악한 표정을 짓더니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할아버님! 제가 전소협에게 가볼 테니 지하동부를 여는 열쇠와 석 실의 열쇠를 주세요. 자칫 잘못하다간 전소협이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창해어옹은 그녀의 부탁에도 열쇠를 내주지 않았고 창궁해연이 소도 를 뽑아 자신의 목에 대고 자결하겠다고 협박하자 마지못해 열쇠를 내주었다. "정아(晶兒)야! 네가 그를 진심으로 따른다는 것을 할아비는 오래 전에 눈치챘다. 하지만 그가 말하길 고칠 수 없는 병과 같다고 하였 고, 일 개월에 한번씩 색마로 돌변한다는 그에게 너를 선뜻 맡기기 엔 심기가 편치 않구나. 그가 다행히 그러한 증세를 보이지 않는다 면 이 할아비는 유부남인 그에게 네가 첩으로 들어가도 말리지 않았 을 것이다. 세월이 유수라 하더니 벌써 네 인생을 책임질 나이가 되 었구나. 후회하지 않겠다면 가보거라." 실랑이를 벌이느라 시각이 지체되어 벌써 자시가 시작되었고, 창궁 해연은 열쇠를 쥐고 지하동부의 입구로 달려가 자물쇠를 열고 전소 추가 갇힌 석실로 다가갔다. "아아악……!" 전소추의 비명소리가 지하동부를 울리고 있었다. 석실로 달려간 창궁해연은 창살로 내부를 살폈고 전소추가 의복을 모두 찢어 버린 채 나신으로 바닥에 뒹구는 것을 보았다. "으으윽……!" 전소추의 전신혈맥은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상태여서 전신이 붉게 보 였고, 두 눈은 마치 토끼 눈처럼 충혈되어 있었다. 그대로 방치한다면 혈맥이 터져 죽게될 거란 생각이 들자 창궁해연 은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열쇠를 구멍에 넣고 돌렸다. 철커덕―! 안으로 들어간 창궁해연은 문을 잠근 후 열쇠를 밖으로 던져 버렸다 쨍그랑―! "전소협! 정신 좀 차리세요." 그녀가 바닥을 뒹굴며 신음을 토하는 전소추를 흔들자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를 안아 버렸다. 그는 그녀의 의복을 찢기 시작하였고 너무 급작스레 그런 일을 당한 창궁해연은 기겁하여 자신이 이곳에 왜 왔는지를 잊은 채 뒷걸음질 쳤다. "전소협! 왜 이러시는 거예요?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창궁해연의 입김이 그의 얼굴에 닿자 그는 더욱 난폭하게 그녀의 의 복을 제거하였고, 곧 석실엔 완전한 나신의 청춘남녀가 실랑이를 벌 였다. 하지만 사내의 완력을 여인이 감당하기는 어려웠고 전소추는 음기를 보충하기 위해 자신의 성난 상징으로 그녀의 옥문에 거칠게 진입시 켰다. "아아악……! 사, 살려주세요." 그녀는 운우지락을 즐길 준비된 상태가 덜된 상태였기에 파과의 고 통은 극심하였다. 그녀는 화도(火刀)가 하복부를 파고드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혼절하 였는데 색마로 변한 전소추는 색욕을 풀기 위해 빠른 속도로 허리를 놀렸다. 석실 바닥이 차가워 혼절에서 깨어난 그녀는 옥주 사이의 통증에 얼 굴을 찌푸렸고, 자신을 짓누른 전소추가 거친 숨을 내뿜으며 하체를 놀리자 통증을 주는 그의 움직임을 멈추기 위해 그를 껴안았는데 그녀의 얼굴이 그의 가슴에 박혔다. 전소추의 가슴에서 나는 향을 흠뻑 마신 그녀는 자신의 몸이 달아오 르자 자신도 모르게 그의 움직임에 반응하기 시작하였다. 하체에서 솟은 쾌감이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오자 그녀는 어쩔 줄 몰 라하였다. 가뭄에 말라붙은 우물처럼 메말랐던 그녀의 비역에서 감로수가 흐르 기 시작하였고, 그녀는 고통이 줄어들고 쾌감이 샘솟자 비음을 토하 였다. "아아학……! 사랑해요. 아아아……!" 전소추는 혼이 빠진 상태였기에 그녀의 반응에는 관심도 없었고 그 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그가 밀려올 때마다 여소정은 움찔거리면서 열락의 신음을 내뱉었고 , 전신은 비에 젖은 어린 참새 마냥 부르르 떨며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처음엔 찰랑이던 물결같이 밀려들던 쾌감은 어느덧 파도처럼 밀려왔 고, 해일이 되어 지속적으로 그녀를 덮쳤다. 그녀는 자신의 비역에서 무언가 쏟아지려는 듯한 느낌에 참으려했지 만 그것은 참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고, 감로수를 폭포처럼 흘려 내고 말았다. 그녀는 비음을 토하며 환희에 젖어들었고 쾌감의 극점을 유영하였다 그녀의 앙증맞은 발가락은 안으로 휠 대로 휘어 부러질 것 같았고 작살 맞은 능어처럼 부르르 떨다가 축 늘어졌다. 하지만 전소추는 아직 멀었다는 듯이 밀어 부쳤고, 점차 속도를 높여갔다. 그녀는 망아(忘我)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계속 밀려드는 쾌감에 도 저히 빠져 나올 자신이 없었다. 무려 두 시진이 지나 그녀가 극점에 열대여섯 번 도달한 뒤 전소추 의 몸놀림이 눈부시게 빨라졌다. 여소정은 그의 움직임에 도저히 따 라갈 수 없었고, 강한 쾌감에 넋이 나간 상태였다. 전소추의 상징물이 더욱 커진다고 느낀 순간 용암이 분출되기 시작 하였고 그녀의 비역 깊숙한 곳을 두들겨 대었다. "허억……!" 그의 축포의 격랑(激浪)에 그녀의 눈은 검은자위가 사라지고 흰자위 만 남았고 그녀의 손톱은 전소추의 등판에 박혔다. 그녀는 쾌감을 이기기 위해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었는데 그녀의 부 드러운 머리결이 구름처럼 바닥을 뒤덮었다. 그녀의 봉긋한 상체에 욕심을 채운 전소추가 엎드려 있었는데 터질 듯 부풀어올랐던 혈관이 자리를 잡자 뽀얀 피부색을 띄었고 충혈되 었던 눈도 예전의 맑은 색으로 돌아왔다. 정신을 차린 전소추는 그녀의 상체에서 벌떡 일어났는데 바닥에 앵 혈자국이 남아 있자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아……! 어쩌자고 이런 일을 벌어졌지? 도주께 아무도 들이지 말라 고 그토록 당부하였거늘 여낭자가 왜 이곳에 와 내게 순결을 바치며 희생하였단 말인가……?' 여소정이 정신을 차린 것은 일각이 지나서였고 하체에 통증이 극심 하여 일어나지도 못하였다. "으으윽……! 전소협! 이제 정신이 드셨군요?" 의복이 워낙 넝마처럼 변해 있어 그녀의 중요한 부분만 가려준 전소 추는 그녀가 깨어나자 미안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였다. "여낭자! 소생이 죽을죄를 저지르고야 말았소이다. 어떻게 용서를 빌어야 할지 모르겠소." 창궁해연이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옥음을 토했다. "전소협이 무사하시니 소녀는 괜찮아요. 하지만 아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전소추가 할말을 잃고 머리를 긁적이자 여소정이 그의 눈을 바라보 며 말했다. "소녀를 다섯 번째 처로 받아주시겠어요?" 전소추는 지금 상황에서 승낙을 아니 할 수 없었다. "여낭자와 도주님만 용서해 주신다면 그렇게 하리다." 여소정이 통증을 참고 일어나 그의 품에 안겼다. 기이한 향이 그녀의 코로 스며들었고 그녀는 또다시 몸이 달아오름 을 느끼고 깜짝 놀랐다. 자신의 하체에 아직도 통증이 남아 있어 일 을 벌렸다가는 낭패를 볼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력한 최음제와 다름없는 체향을 맡는 그녀의 신체는 반응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비음을 토하였다. "으흐흥……! 기분이 이상해요." 전소추는 그녀를 달래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자 그녀의 입술을 덮쳤 다. "우읍……!" 그녀의 작은 입술을 점령한 전소추는 설육으로 그녀의 고른 치열을 열었고 설육으로 그녀의 설육을 감아 자신의 입 속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양손이 그녀의 가슴에 봉긋이 솟은 눈처럼 하얀 설봉을 감싸더 니 정상에 있는 유실을 조심스럽게 다뤘다. 한동안 서로의 타액을 교환한 전소추의 얼굴이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와 유실을 베어 물었고, 여소정은 간지럽기도 하였지만 부끄러 워 몸을 움츠렸다. 그의 손은 잠시도 쉬지 않고 그녀의 전신을 누비고 다녔다. 그녀가 한껏 달아오르자 전소추는 다시 합궁을 시도하였고, 그들 남 녀의 열락에 빠져들었다. 한차례의 경험에 이미 그녀는 전소추에게 완전히 길들여져 있는 상 태였고 운우지락을 즐기는 여인으로 변해 있었다. 그들은 새벽까지 서로를 탐하였고 완전히 지쳐 서로를 부둥켜안고 잠들었다. 밤새 한잠도 못 이룬 창해어옹이 지하동부에 들었다가 그들 남녀가 편안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안을 살핀 다음 밖으로 나 갔다가 돌아왔는데, 그의 손엔 그들이 입을 의복이 들려 있었다. 문 앞에 내려놓은 그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열쇠를 주워 창살에 올 려놓고 조용히 빠져나갔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때 잠을 깬 전소추와 여소정은 창살에 걸린 열쇠를 발견하였고, 문을 열어보니 의복이 준비되어 있자 도주가 다 녀간 사실을 알았다. 서둘러 의복을 걸친 그들은 창해어옹에게 달려갔고 전소추가 그의 면전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죄를 사하여 달라는 부탁과 함께 여소정 을 처로 맞이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그의 말을 듣던 창해어옹이 굳은 표정을 풀고 말했다. "허허허……! 기인을 낚은 줄 알았더니 노부가 제일 아끼는 보물을 훔친 도둑을 낚았군. 사내라면 응당 자신이 벌인 일을 책임져야 하 니 허락하겠네." 즉시 숭명도의 공사가 중단되었고 전소추와 창궁해연의 혼례식이 도 민들의 축하 속에 거행되었다. 신혼 초야를 치러야 하겠지만 지난 밤 워낙 시달린 탓에 전소추가 혼례복을 벗기려고 다가서자 여소정은 겁이 났다. "가가……! 오늘밤은 술을 드시고 주무세요. 소녀는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 같아요." 전소추도 여인 홀로 자신을 감당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 고, 지난 밤 충분히 즐겨 이견을 내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그의 술잔이 비울 때마다 채워야 했고 안주를 입에 넣 어 줘야 했다. 그날 밤 전소추는 자신의 신상내력과 천마황과의 대결이후 기억을 상실하여 무슨 일을 벌이고 다녔는지 모른다고 밝혔고, 은하전장에 남겨둔 처들의 이야기를 해주며 자신도 보지 못한 어린아이가 자라 고 있을 거란 이야기도 덧붙였다. 숭명도에 공사가 재개되었고 삼 개월 후 전소추가 애쓴 보람이 결실 을 맺었다. 숭명도 전역의 가옥들은 새로 단장되었고 폭풍우와 비바람을 능히 견딜 수 있는 튼튼한 가옥들이 구옥(舊屋)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던 것이다. 물론 그 삼 개월간 전소추는 한 달에 한 번씩 지하동부의 석실을 찾 아 여소정을 혹사하였고, 그를 사랑하는 여소정은 괴롭지만 그를 위 해 인내하였다. 전소추는 틈만 나면 내공을 되찾기 위해 운기행공하였는데 도무지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전소추는 그곳의 어부들을 따라 고기를 잡는 일도 돕기 시작하 였는데 숭명도를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수십 개의 와류(渦流) 사이를 통과해야 했다. 선원들은 능숙하게 노를 저어 그곳을 지나곤 하였는데 보통 와류는 원심력에 의해 중심부분이 얕은 것이 당연하였다. 수십 번을 드나든 전소추는 와류 중 유독 하나만 중심부분이 불룩하 게 나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선원들에게 물어보니 다른 와류는 안으로 빨려드는데 반해 그 와류 는 밖으로 밀어내는 와류라는 설명을 들었다. 다음 번 바다에 나올 때 전소추는 나무작대기를 여러 개 준비하여 승선하였고 와류를 통과할 때마다 작대기를 던져보았다. 선원들의 말대로 전소추가 발견한 와류는 작대기를 삼키지 않고 바 깥쪽으로 밀어내었고 다른 와류로 흘러들게 하였다. 작대기를 모두 던져보았지만 항상 같은 결과를 보였다. 자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결과를 본 전소추는 혹시 숭명도의 전설이 숨겨진 장소가 그곳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 시작했 고 확인해 봐야겠다고 작정하였다. 선원들에게 물어보니 아무리 헤엄을 잘 치는 어부라도 와류에 걸려 들면 수심이 워낙 깊어 살아날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고 망설였다. 그 와류는 육지에서도 보이는 곳에 위치하였는데 수십 차례 살펴보 아도 항상 해수면보다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 날 이후 전소추는 차가운 바닷물에 뛰어들어 수룡잠영술을 시전 하여 얼마까지 견딜 수 있는가를 시험하였다. 수룡잠영술을 시전하며 숨을 멈춘 상태에서 이 각 정도를 보내면 폐 에 있던 공기를 다 소모하여 견디기 힘들었고, 해저 이십 장 아래에 내려가면 수압이 엄청나 호신강기를 내보내도 다시 위로 올라오기 가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칠 갑자의 내공을 유지했다면 그곳에서 이십 장 더 깊은 곳까지 내 려가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잠영술을 시전하는 것을 본 창궁해연은 호두 알만한 피수주를 선사하였다. 피수주를 지닌 전소추는 좀더 오랜 시간을 견디었고, 십여 장 더 깊 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전소추는 그녀에게 자신이 와류로 뛰어들어가 살펴보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여소정은 그를 말렸다. 그와 잦은 정사를 즐긴 탓에 벌써 그의 아이를 잉태하였고, 그 사실 은 그가 행하려는 일을 말리는 가장 커다란 이유였다. 자신이 낳을 아이가 유복자가 되길 원하는 여인은 없었고, 창궁해연 또한 마찬가지였다. 십 중 십 그가 와류로 뛰어들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창 해어옹을 동원하여 전했지만 전소추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바닷물을 뿜어 올릴 정도라면 천근추(千斤錘)의 신법 정도로는 어림 없을 것이고 부피는 작고 무거운 물체를 준비해야 했다. 숭명도에는 지금을 사용하지 않는 선대에 조선(造船)한 철갑으로 만 든 해경선(海鯨船)이 한 척 있었고, 육중한 닻이 매달려 있었다. 선체가 워낙 커서 와류사이를 지나도 끌려 들어가지 않았고, 와류사 이를 유유히 지날 수 있는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철갑선이었다 전소추는 창해어옹을 설득하여 철갑선을 바다에 띄웠고 바람이 덜 불어 잔잔해지기를 기다렸다. 철갑선을 띄운 지 십 주야가 지난날 바다는 동경면(銅鏡面)처럼 잔 잔하였다. 창해어옹이 직접 따라나섰고 선원들이 구령에 맞춰 노를 젓기 시작 하자 천천히 와류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가 그토록 말려도 강행하자 토라진 창궁해연은 혹시 그를 다시는 보지 못할까봐 방에 틀어박혀 울음을 터트렸다. 자신이 목표한 와류 근처에 철갑선이 다가서자 꿈쩍도 않던 철갑선 이 흔들렸다. 선원들이 노를 저어 안정시키자 입에 피수주를 문 전소추가 닻에 자 신을 밧줄로 연결한 후 신호를 보냈다. 그의 신호를 받은 선원들이 닻을 연결한 것을 풀었고 와류에 자유낙 하하며 물보라를 피워 올렸다. 풍덩―! 철로 주조된 닻은 만근에 달하는 무게를 지녔고, 해저로 급속하게 가라앉았다. 십 장, 이십 장, 삼십 장까지 전소추가 상상도 못할 빠르기로 가라 앉았는데 전소추는 견디기 힘들자 밧줄을 풀려고 했는데 마음이 급 하니 뜻대로 되지 않았고 점점 깊은 곳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쿵―! 오십 장 깊이의 해저면에 닻이 내려앉았고, 전소추는 밧줄을 풀고 눈을 의심해야 했다. 자신이 있는 곳은 거대한 해경의 머리부분이었고, 까만 비늘이 촘촘 히 박힌 모습이었다. 닻은 해경의 머리가 굴곡면으로 되어 있어 미 끄러지듯 아래로 가라앉았다. 수압 때문에 견디기도 힘들었지만 위로 올라가는 일은 불가능한 것 같았다. 그때 전소추의 눈에 희한한 것이 잡혔다. 머리 아래 부분 해경의 숨구멍이 있는 곳에 뚜껑 같은 것이 달려 있 었던 것이다. 전소추가 수룡잠영술로 그곳에 가서 뚜껑 부분을 들어올렸는데 수압 때문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제 숨이 가빠오기 시작하였고 지체한다면 정신을 잃고 물고기 밥 이 된다고 생각한 전소추는 수압을 줄이기 위해 피수주를 뚜껑 위에 얹어놓고 잠력까지 혼신내공을 끌어올렸다. "끙……!" 스르릉―! 그가 간신히 뚜껑을 열고 가슴까지 올렸는데 짓누르던 수압 때문에 바닷물과 함께 자신의 발이 구멍 속으로 딸려가자 급히 머리 위로 뚜껑을 올렸다. 꽝―! "아앗……!" 순식간에 그의 모습은 사라졌고 뚜껑은 수압 때문에 저절로 닫혀졌 다. 자신이 몸이 한없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느끼며 전 소추는 기겁하였다. 풍덩―! 오십여 장을 떨어져 내린 전소추는 수면에 떨어졌고 가라앉았다가 서서히 떠올랐다. 작은 동작으로 손을 저어 물가에 다다른 전소추는 가슴을 붙잡았다. '으으윽……!. 늑골이 부러진 것 같구나.' 물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오십 장 높이에 주먹만한 야명주들이 수천 개 박혀 주변을 대낮처럼 밝히고 있었고, 둥근 모양을 하고 있 었다. 잠시 안정을 취한 전소추는 탈골된 뼈를 맞추다가 극심한 통 증에 의식을 잃었다. 철갑선에 타고 있던 창해어옹은 이 각이 흘러도 전소추가 떠오르지 않자 닻을 끌어올리라고 명하였고 닻이 수면위로 떠오르자 전소추의 모습이 없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닻에 밧줄은 예리한 것에 끊어진 것이 아니고 매듭을 푼 모양으로 딸려왔다. '허어……! 정아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전소추가 없어진 것을 발견한 선원들도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숭명 도로 돌아가기 위해 노를 저었다. 그 소식을 들은 창궁해연 여소정은 혼절하였고, 정신을 차린 뒤 전 소추를 원망하였다. "흐흐흑……! 소녀를 남겨놓고 혼자 떠나다니 이제 저는 어떻게 해 야 하나요?" 숭명도에서 전소추의 장례식이 벌어지는 동안 그는 인위적으로 해경 모습으로 만든 곳을 살피고 있었다. '누군가 이곳을 만들었다면 이곳 광장을 벗어나는 통로를 반드시 만 들었을 터인데……! 나라면 어디에 만들었을까?' 그는 몇 바퀴를 돌고도 통로를 찾지 못하자 자신이 떨어진 중앙에 있는 커다란 연못으로 되돌아갔다. 동서남북을 분간하지 못할 원형으로 된 광장의 중앙엔 연못이 있고 벽면에 이끼가 끼어 모두 제거하지 않으면 통로를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정좌한 채 운기행공하여 기운을 차린 그는 발길이 닿는 벽면으로 가 서 이끼를 제거하기 시작하였다. 융단처럼 푹신푹신한 이끼는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두께가 다섯 치 정도 되었고,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으로 보아 독이끼는 아닌 것 같 았다. 자신의 지식으로 약초나 독초 중에서 이렇게 자라는 것은 없었다. 이끼류가 두껍게 자라나려면 표면만 살아 있고 속은 죽어야 했는데 자신이 뜯어낸 이끼는 속이 표면보다 더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끼를 뜯어내는 작업을 하다가 허기가 진 전소추는 이끼를 베어 물 었다. 극음빙청태(極陰氷靑苔)를 먹고도 살아난 기억이 있었기에 그는 마 음놓고 이끼를 입에 넣은 것이다. 향긋한 냄새와는 달리 그 곳의 이끼는 너무 쓴맛이 강하였다. '퇘퇫……! 어휴 이렇게 쓴 것을 어찌 먹는담.' 전소추는 물로 허기를 달래려고 연못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못 안은 해수가 아닌 민물이 가득 차 있었고, 자신이 떨어질 때 함께 들어온 바닷물이 섞여 약간 짠맛이 섞였지만 그런 대로 식수로 사용하기엔 적합하였다. 물 속을 들여다본 전소추는 실처럼 가느다란 작은 물고기들이 꽤 많 이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하였지만 잡을 도리가 없었고, 그 것으로 허기를 때우려면 한나절이 걸려 잡더라도 한끼를 채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물을 양껏 마신 후 이끼를 제거하였다. 항상 야명주가 빛을 발하는 조도(照度)에서 작업을 한 전소추는 시 간개념이 사라졌고, 물로 배를 채운 지 삼 주야가 지나자 허기가 져 서 그는 결국 쓰디쓴 이끼를 뜯어 먹어야 했다. '으으윽……! 여기서 생존하려면 이보다 더 역겨운 것이라도 섭취해 야 연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전소추는 억지로 이끼를 우적우적 씹어 삼켰고, 오랜만에 포만감을 느꼈다. 연못의 물로 입안의 쓴맛을 가시게 한 그는 자신에 작업한 곳을 바 라보았는데, 그토록 열심히 일을 했건만 이끼를 제거한 부분은 전체 면적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휴우……! 언제 저걸 다 뜯어내고 이곳을 벗어 날 수 있을까……?' 전소추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이끼를 뜯어내는 작업을 다시 시작했 고 허기가 지면 뜯어낸 이끼를 먹으며 작업에 매달렸다. 그는 지금부터 십 주야 안에 출구를 찾지 못한다면 자신이 음기를 보충하지 못해 혈맥이 터져 죽는 다는 것을 알았기에 잠시도 쉬지 않고 일에 매달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던 그가 지쳐 낙심을 하다가 이 끼가 다른 곳보다 두껍게 자라고 있는 곳을 발견하였다. 다른 곳은 다섯 치 정도였는데 그곳에 자라는 이끼는 뿌리도 성할뿐 더러 천잠사처럼 질겼다. 마치 벽면을 가득 메운 이끼가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퍼진 형상이었 다. 너무 질겨 뜯어내기가 힘들었지만 전소추는 작업을 멈출 수 없 었다. 반나절 동안 겨우 여섯 치를 뜯어냈지만 어느 정도 두께인지 가늠하 기 힘들었다. 축융화극신공을 끌어올려 이끼를 태우며 제거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 른 전소추는 잠시 운기행공을 하여 기운을 차리고 빙하태음신공을 끌어올렸다. "이얍……!" 그의 장심에서 새하얀 기류가 뻗어 나와 이끼를 덮쳤고, 주변이 얼 음으로 화하였다. 꽁꽁 얼어붙자 전소추는 그곳을 향해 수도에 진기를 주입시키고 태 양도법의 마지막 초식인 태양폭(太陽爆)을 시전하였다. 쐐에에엑―! 콰콰쾅―! 번쩍―! 얼음으로 변했던 세 자 두께의 이끼가 깨져나가며 눈부신 광채를 뻗 어냈다. 너무 밝아 눈이 멀 정도로 강한 광선을 쬔 그는 손으로 급히 눈을 가리고 뒤로 물러났다. 그가 파손한 부위는 반경 다섯 자 정도였는데 광선이 뻗으며 찰나간 에 반경 십 장의 이끼가 시들어 버렸다. 손가락 사이로 그 광경을 본 전소추는 빛을 발하는 백색의 커다란 구슬을 볼 수 있었다. 거의 서 있는 사람의 키와 비슷한 크기를 지닌 반구형의 구슬이 지 면에 박혀 있었는데 전소추의 변형된 도법으로 인해 금이 갔고 강한 빛을 내는 우유 빛의 하얀 액체를 흘리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괴이지(怪異誌)의 내용을 떠올렸다. 심해에 사는 흑린만년해경(黑鱗萬年海鯨)이란 동물은 온갖 영수들을 잡아먹는데 죽을 때가 되면 얕은 곳으로 올라와 생을 마감하며, 내 단의 크기가 무려 사람 키의 두 배가 될 정도로 크고 무궁무진한 효 능을 지닌 우유 빛 액체가 가득 채워져 있다는 내용이었고, 액체에 몸을 담그면 신의 경지에 올라 승천한다는 전설이 떠올랐던 것이다. 전소추는 더 생각할 틈 없이 내단으로 돌진하여 깨진 부분으로 머리 부터 전신을 집어넣었다. 우유 빛 액체가 입안으로 들어와 숨이 막혀 혼절한 전소추는 익사한 사람처럼 늘어졌으나 잠시 후 마치 태아의 모습처럼 그 안에서 편 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전신모공이 활짝 열리자 우유 빛 액체는 스며들기 시작하였고 그의 몸이 부풀기 시작했다. 돼지 방광에 숨을 불어넣으면 커지는 것처럼 무한정 부풀어오르던 전소추의 전신은 팽창하여 터질 듯 보였는데, 시커먼 액체와 함께 모공에서 액체가 분수처럼 뿜어내며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모공에 다시 액체가 스며들기 시작하자 그의 전신은 또 다시 팽창하였고 극한에 이르면 검은 액체와 함께 쏟아져 나왔다. 두 시진에 한번씩 같은 현상이 일어났고 일 개월 지나 내단의 우유 빛 액체가 본래의 색을 잃어버리고 짙은 회색이 되자 둥둥 떠올랐다 그의 전신에 걸쳤던 의복은 팽창과 수축이 반복되는 동안 찢어져 바 닥에 가라앉아 있었고, 그가 처음 본 광선처럼 밝은 빛이 그의 전신 에서 발광(發光)하고 있었다. 그가 떠오른 지 일각쯤 지났을 때, 그의 눈이 활짝 떠졌는데 마치 백색의 번개가 뻗는 듯한 안광이 그곳을 밝혔다. '으음……! 잘 잤다.' 그는 흑린만년해경의 내단에서 빠져 나와 기지개를 펴며 전신에 진 기가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충만하자 상쾌함을 느꼈다. 바닥에 결가부좌를 취한 그는 태극혼원신공을 운공하였고 삼매경에 빠지자 그의 전신에선 광휘로운 서기가 야명주의 빛을 누르고 뻗어 나가 실내를 밝혔다. 그의 신형이 바닥에서 떠오르기 시작하였고 한 자, 두 자 떠오르던 그가 이십 장 상공에서 멈추고 마치 대자연의 기운을 모조리 흡수하 는 듯 보였다. 대주천을 마칠 때쯤 그의 신형이 바닥에 내려앉았고, 다시 대주천을 시작하자 떠올랐다. 십이대주천을 마친 전소추는 두 눈을 반개(半開)하였는데 부처님의 자애로운 미소를 닮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내공이 회복됨과 더불어 얼마나 더 늘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자신을 시험해 보기 위해 무영섬뢰비를 시전한 전소추는 예전보다 세 배 이상 빨라진 것을 확인하고 신기해하였다. 우르르릉―! 뇌전이 공기를 가르며 내지르는 천둥소리를 내며 제자리에 돌아온 그는 무림사에 길이 남을 신기원의 경지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가 흥분하여 자신이 해저 백 장에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전신공력을 끌 어올려 벽을 향해 양장을 뻗었다. "태극혼원신장!(太極混元神掌)" 콰콰콰쾅―! 그가 뻗어낸 장력은 여지없이 벽면을 뚫어 버렸고, 수압에 의해 파 손된 구멍으로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콸콸콸콸―! '이런……?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겠구나!' 수압에 의해 구멍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고, 순식간에 무릎까지 물 이 차 올랐다. 자신이 천력(天力)을 얻었다고 하지만 해저 백 장 깊이의 수압은 견 딜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꾸르릉―! 파손된 부위가 붕괴되어 집채만한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바닷물에 휩쓸린 전소추는 반대편까지 밀려갔다. '으윽……! 위로 올라 들어 왔던 곳으로 피해야 한다.' 그의 발이 수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뚜껑이 있는 오십 장 상공에 도착한 전소추는 잡을 곳을 발견하지 못하였고 임기응변으로 손을 뚜껑이 있는 곳에 박았다. 푸푹―! 그의 능력은 이제 만년한철로 된 철판도 뚫을 만치 늘어났기에 망정 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해일처럼 밀려드는 바닷물로 추락했을 것이 분명했다. 전소추는 매달린 상태였고, 발을 디딜 곳이 없어 뚜껑을 열 수 없 는 형편이었다. 바닷물은 점점 더 밀려들고 있었고 시간이 지나자 그의 발바닥이 있는 곳까지 차 올랐다. 헌데 공기의 압력 때문인지 더 이상 차 오르지 못하고 커다란 와류 를 형성하여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전소추는 기이한 현상에 목숨을 건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는 한쪽 손을 빼내어 뚜껑의 가장자리 부분에 타격을 가하기 시작 하였다. 힘을 좀처럼 쓰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는 침착하게 그 일을 반복하 였다. 그의 노력의 결과로 뚜껑의 자장자리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고 폭발하듯 위로 떠올랐다. 공기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뚜껑이 날아가듯 솟았고 전소추는 박 힌 손을 급히 빼고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하며 주변의 기포와 함께 급격한 속도로 솟아올랐다. 그의 호신강기는 오장 정도의 원형을 유지하였고 실내를 메웠던 공 기가 수면 위로 상승하면서 만든 기포 덕분에 수압을 거의 느끼지 못하며 떠올랐다. 수면에 도달한 전소추는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해연약파(海燕躍波)의 경신술을 시전하며 숭명도로 향하였다. 숭명도에 발을 디딘 전소추는 바다 쪽을 바라보여 해신(海神)께 감 사를 드렸다. 하늘엔 별이 총총하게 떠있었고, 숭명도에 불이 밝혀진 곳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축시(丑時)가 지난 모양이었다.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 전에 창궁해연과 신 방을 꾸민 곳으로 신형을 띄웠다. 쓔아아앙―! 창궁해연의 처소부근에 내려선 전소추는 방에 불이 켜져 있고 흐느 끼는 소리가 들리자 조심스레 다가갔다. "흐흐흑……! 차라리 소녀를 데리고 떠나실 일이지 어찌 혼자 사지( 死地)로 가셨어요?" 전소추는 바닥에서 한 자 이상 허공에 떠서 마치 유령처럼 그녀의 등뒤로 다가가더니 그녀의 눈을 가렸다. "후후후……! 누가 사지로 갔단 말이오?" 창궁해연은 전소추의 음성을 듣고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가가……? 정말 가가께서 돌아오신 것이에요?" 전소추가 그녀의 눈을 풀어주었다. 그녀는 그가 정말 살아서 자신의 눈앞에 번듯하게 서 있자 그의 품 으로 뛰어들었다. "흐흐흑……! 소녀는 가가께서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 전소추는 품에 안긴 그녀를 번쩍 안고 침상으로 향했다. "후후……! 아름다운 당신을 놔두고 저 세상으로 떠난다면 내가 억 울하지 않겠소?" 그녀가 입을 삐죽 내밀자 전소추가 고개 숙여 입술을 덮쳤다. "으으읍……!" 그는 그녀에게 감미로운 입맞춤을 하였고, 두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그녀의 의복을 차례대로 벗겼다. 눈부신 나신으로 화한 그녀와 그는 서로 상대를 탐하며 열락의 세계 를 여행하였고, 방안에 열기가 가득 차고 한차례 환희를 맞이한 그 녀는 그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무사히 귀환한 것을 축하하였다. 전소추는 사랑스런 그녀를 안고 오랜만에 숙면을 취하였다. 날이 새자 창궁해연에 의해 그가 귀환한 것이 알려졌고, 창해어옹은 무사히 살아온 것만 해도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전소추는 해가 중천에 뜰 때가지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창해어옹을 찾았다. "도주님! 기연을 만나 고질(苦疾)을 고쳤습니다. 흑린만년해경에 대 해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창해어옹은 먼 조상이 흑린만년해경에 올라타고 숭명도에 정착하였 다는 전설을 들려주었다. 전소추는 자신이 흑린만년해경의 내단을 발견하여 기연을 맞이한 사 실을 전하였다. "혹시 숭명도를 금제한 전설이 풀린 것이 아닙니까?" 전소추와 창해어옹은 바닷가로 달려가 와류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는 데, 어찌 된 일인지 와류가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금제가 풀렸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평범한 섬이 되었던 것이다. 창해어옹은 도민들에게 금제가 풀렸음을 알렸고, 도민 전체가 모여 흥에 겨워 연회를 열었다. 그들이 기뻐하는 것은 이곳을 떠나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자식들에 게 가르칠 책자를 가져 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소추는 연회가 끝나자 창해어옹을 찾았다. "도주님! 대륙에 식솔들에게 가봐야겠습니다. 정매를 데리고 떠나게 해주십시오." 전소추의 부탁을 들은 창해어옹은 애지중지 키어온 손녀가 이곳을 떠나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고민하였다. 전소추가 그의 마음을 간파하고 입을 열었다. "도주님! 중원의 일이 끝나면 식솔들과 이곳에서 살고 싶은데 어떻 게 생각하십니까?" 창해어옹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허허허……! 자네만 좋다면 언제 돌아오던 환영하겠네. 언제 떠날 것인가?" 전소추는 지금 당장 떠나고 싶었지만 천마황의 마공을 꺾을 무공을 창안한 뒤 떠나겠다고 말씀드렸고, 곧장 연무관으로 들어가 폐관수 련을 시작하였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즐독 ㄳ
잼 납니다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