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다시 뜬 찬란한 태양 천마황이 무림을 평정하고 새해를 맞이하였다. 만리평엔 천마궁도 삼만여 명이 궁주에게 새해 하례인사를 올리기 위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마인이라는 강한 자부심을 지닌 인물들이었고, 강 자가 되기 위해 마공을 익히는데 전념한 티가 조금씩 묻어 나오고 있었다. 대부분 정도의 인물들과 조우하면 상대가 되지 않는 하수였지만 만 독강시보와 대전에서 살아남은 삼천여 마인들은 상승의 무공을 익힌 정도연합맹의 수뇌부와 거의 대등한 경지에 오른 마인들이었다. 전면에 그들이 마기를 뿌리며 시립해 있었고, 무공 고하에 따라 그 뒤를 줄지어 조용히 궁주의 현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궁주의 전각에서 미녀들이 두 줄로 줄지어 걸어 나왔고, 상의를 모 두 벗은 사내들은 외공을 익혔는지 울퉁불퉁한 근육을 자랑하며 태 사의의 다리를 번쩍 들고 뒤를 따랐다. 단상에 태사의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사내들이 뒤로 물러섰고, 비 스듬히 걸터앉은 천마황 담능백이 마인들을 바라보며 손을 들었다. 마인들이 일제히 오체복지를 취하였다. "만세 만세 만만세……! 천마황께 충성을……!" 천마황이 태사의에서 일어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토했다. "천하는 천마궁의 기치(旗幟)아래 무릎을 꿇었다. 천마궁은 자손만 대까지 영원히 군림할 것이니 궁도들은 맡은바 책무를 다해야 할 것 이다. 각자 힘을 키워야 세력 또한 커지는 것이다. 교두들은 아낌없 이 무공을 전수하라. 배움에 임하는 자세가 덜된 궁도들은 도태될 것이고 살아남는 자는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니 무공연마에 힘 쓰도록 하여라." 쥐 죽은 듯 사위는 고요하였고 사내들이 나서 태사의를 들고 지존각 으로 사라질 때까지 얼굴을 드는 인물이 없었다. 총사 만겁뇌자가 단상에 올라 그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십팔마관 (十八魔關)을 개관시키라고 명하였다. 궁도들의 무공수위를 가늠하기 위한 십팔마관은 누구나 통과해야 하 는 기관이었다. 아무 때나 들 수 있었으나 세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자는 목숨을 내 놓아야 했기에 본래 궁도였던 삼천여 명의 마인들이 차례대로 입관 한 후 입관을 원하는 마인들이 별로 없었다. 오관을 통과하면 향주(鄕主)급의 직위를 제수받았고, 십관을 통과하 는 자는 당주(堂主)급, 십오관을 통과하면 전주(殿主), 십팔관을 모 두 통과하면 영주(領主)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기에 도전하고픈 욕 심은 컸지만 이제 마공에 발 들여놓은 궁도들은 분수를 지켜야 했다 일관을 통과하려면 최소한 반 갑자의 내공이 있어야 했고, 이관을 통과하려면 그에 걸맞은 경공술을 시전해야 했으며, 삼관은 외공을 시험하는 곳이었다. 그곳을 목숨을 걸고 스스로 통과하지 못한다면 참수형에 처하라는 천마황의 엄명이 있었기에 무공이 약한 마인들은 입관할 엄두도 내 지 못하고 있었다. 삼관을 무사히 통과한 궁도들은 다음 관문을 통과하다 부상당해도 치유를 시켜주었고 입관하지 못한 마인들과 차별대우를 해주었기에 욕심 많은 마인들은 입관을 원하다가 참수형에 처해지곤 하였다. 물론 삼관을 무사히 통과하고 오관을 통과하여 향주급의 지위를 제 수 받은 궁도도 있었으나 그 숫자는 극히 미미하였다. 천마황은 마인들의 무공증진을 위해 십팔마관을 만들었고 성공적인 효과를 보았다. 궁도들은 엄동설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입관하기 위해 보다 열심히 무공을 익히는데 총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천마황은 넘볼 세력이 없어 지부를 다시 만들 생각을 하였다. 신흥문파를 비롯한 대소문파에서 예전보다 공물을 적게 진상하였기 때문이다. 모든 물자가 풍족하였지만 그들의 고삐를 죄지 않으면 주인을 물어 대는 미친개처럼 반기를 들 염려가 있었다. 궁도들이 무공이 증진되기를 기다리던 천마황은 춘삼월이 되자 당주 급와 향주급의 마인들에게 궁도들을 배분하고 지부를 건설하게 하였 다. 만리평엔 수뇌부와 최소 인원 이천여 궁도만 남겨 놓고 모두 방출한 것이다. 천마궁의 궁도들이 중원 대륙 곳곳에 퍼져 양민들을 강제로 동원하 여 지부를 다시 건설하였고, 전보다 훨씬 크고 화려한 전각을 세웠 다. 그들은 빈손으로 나왔고 전각을 채우기 위해 약탈을 일삼았다. 부호들의 재산을 송두리째 강탈하는 것은 약과였다. 이제 농번기가 시작 될 때라 배고픔을 참으며 겨우내 간직해둔 씨앗 까지 거두었으니 농민들의 한숨은 클 수밖에 없었고, 마필과 소들도 빼앗겼으니 맨몸으로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다. 민심이 그들에게서 멀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들이 지부를 세운 곳의 양민들은 가재도구를 챙겨 야반도주하는 일이 발생하였고, 도주를 막기 위해 천마궁의 궁도들이 야간에 순찰 을 돌았으나 어느 틈에 빠져나가는지 양민의 수효가 점점 줄어들었 다. 게다가 반반한 부녀자를 빼앗는 일이 빈번해지자 나이 찬 여식을 둔 양민은 모두 도주하여 젊은 여인이라고는 홍루(紅樓)나 청루(靑樓) 에 있는 창기(娼妓)뿐이었다. 그 어느 누구도 통제하지 못하는 마인들이 주색잡기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였다. 그들은 약탈한 재물로 기루(妓樓)를 드나들며 주색에 빠졌다. 만리평의 천마궁에선 지부로 파견된 마인들의 횡포를 눈감 아 주었다. 천하제일의 방파가 누릴 수 있는 권한을 마음껏 누리게 해주려는 의 도였다. 하지만 민심이 떠나가자 천마궁은 외톨이가 되었고, 허울만 좋은 천하제일의 방파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 * * 오월로 접어들자 햇살이 따가워지기 시작하였고 농사를 지을 논과 밭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났다. 이대로 좀더 시일이 지나 농사를 짓지 못하면 곡식이 모자라 대란이 일어나게 될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황궁에서도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고, 충신들이 매일 현황제인 인 종(仁宗)에게 팔십만금군(八十萬禁軍)을 풀어 백성을 도탄에 빠트리 고 있는 마의 무리를 쳐야 한다고 주청(奏請)하였다. 인종은 나약한 황제였고, 천마황의 마공이 고강하여 백만대군이 몰 려가도 눈 하나 깜짝 않은 위인이라는 소문을 접한지라 그를 건드려 자칫 명조가 무너질까 두려워하였다. 황제의 명이 떨어지지 않는 한 팔십만금군은 움직일 수 없었고, 인 종은 결코 윤허(允許)하지 않았다. 인종은 황궁과 무림은 별개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황실이 건들지 않는다면 무림에서 도발하지 않을 것이란 안이한 판단을 내렸던 것 이다. 정도연합맹의 수뇌부들은 천마궁의 무리를 현시점에서 그대로 방치 할 경우 영원히 그들의 그늘 아래에 숨어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지 배적이었다. 만리평에 있는 천마궁을 치기에는 아직 힘이 미약하였지만 정예가 포함된 맹도들이 출동하여 지부를 괴멸시키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할 정도로 무공을 증진시켰다. 자객문은 정도연합맹을 도운 공로를 인정받아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고, 그들의 힘을 빌리기 위해 태허신승이 직접 작성한 장문(長 文)의 서찰이 자객가주 초혼신수에게 전해졌다. 여식이 사랑하는 사위를 죽인 천마황이 이끄는 천마궁과는 같은 하 늘에서 공존하지 못할 관계였는지라 초혼신수는 자객문도 전원을 태 허신승이 보낸 서찰의 내용대로 파견시켰다. 정도연합맹도들은 합류한 자객문도들과 천마궁의 지부를 습격하기 시작하였고, 아직 마공을 완전히 익히지 못한 궁도들은 그들의 적수 가 되지 못하였다. 하늘을 나는 새도 피해간다는 천마궁이 세운 지부들이 하나 둘씩 사 라지기 시작하였고 창고에 있던 물품들은 그곳의 양민들에게 골고루 분배하였다. 중원전역에 깔려 있던 지부가 삼 분의 일쯤 사라지자 더 이상 궁도 수가 줄어드는 것을 원치 않은 천마황이 급전을 보내 지부로 파견 나갔던 궁도들을 총단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언제 어느 때 정도연합맹의 습격을 당할 지 몰라 지부를 관장하던 당주, 향주를 비롯한 마인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빈 몸으로 도망치 듯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매복하던 정도연합맹도들에 게 목숨을 바쳐야 했다. 곡식을 배급받은 양민들은 파종기가 늦었지만 서둘러 씨앗을 뿌렸고 , 감량은 되겠지만 추수 때는 풍족하게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 기에 배고픔을 참았다. 아이들은 배가 고파 징징 울었고 어린 자식을 둔 부모들은 나무뿌리 와 냇가나 도랑에서 잡은 적은 양의 물고기를 함께 끓여 배고픔을 달래주었다. 너도나도 궁핍하여 끼니때만 되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쏘다니다가 허탕을 치고 어깨를 늘어트려야 했다. 황제가 구제하지 못한 양민들에게 어느 날부터인가 적은 양이나마 식량이 배급되었다. 은하전장주 현천천검이 지하보고에 있던 재물을 풀어 은하전장에 소 속된 인물들에게 나눠주어 서장(西藏), 신강(新疆), 남황(南荒)등 인접국가로 내보내 곡식을 사들이게 하였고, 아낌없이 양민들을 위 해 풀었던 것이다. 은하전장에서 선행을 베푸니 석가장의 금적산 석대숭도 이에 질세라 재물을 풀었다. 양민들이 배가 불러야 더 많은 재물을 모을 수 잇다는 철저한 계산 에서 나온 일이었지만 그들의 선행은 황제의 귀에도 아니 들릴 수 없었다. 그들의 선행은 명조의 쓰러져 가는 국운을 일으켜 세우기에 충분하 였고, 황제의 명으로 자금성의 식량창고에 보관된 곡식과 고관대작 들이 보관하고 있던 곡식을 해를 넘길 만큼만 남기고 양민들에게 풀 게 하였다. 민심이 떠난 천마궁이 있는 방향에 침을 뱉거나 손가락질하는 사람 들이 늘어나는 반면에 천마궁에 고개를 숙였던 신흥방파들은 모두 정도연합맹으로 돌아섰다. 정도연합맹은 점차 거대한 세력으로 세를 늘려갔고 천마궁의 마인들 은 만리평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천마황이 장로들과 직접 출궁하여 정도연합맹을 치려하면 맹도들은 멀리 도주하였고, 전주 정도의 직급을 지닌 인물들이 마인들을 이끌 고 나오면 사정없이 공격하여 사지에 몰아넣었다. 정도연합맹도들은 벌떼처럼 공격을 감행하였고, 치고 빠지는 작전으 로 인명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였다. 정도연합맹의 수뇌부는 만리평에서 백오십 리 남서쪽에 있는 여주현 (汝州縣)에 진영을 꾸몄다. 그곳은 작은 야산만 있을 뿐 평야지대였고, 천마궁의 총공격을 받는 다면 쉽게 도주할 수 있는 지형이라 선택하였던 것이다. 태허신승을 비롯한 구파일방의 장문인들과 정도명숙들이 커다란 막 사에 모여 언제까지 지금과 같은 위위구조책(危魏求趙策)을 쓸것인 지 상의하였다. 태허신승은 불교의 성지 소림사근처에서 마의 총본산이 있다는 것을 그냥 놔두고 볼 수 없었다. "아미타불……! 노납은 더 늦기 전에 정도연합맹과 천마궁의 전면전 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오. 양민들도 그들이 사라져야 마음놓고 생 업에 종사할 것이오." 총사 대라현자는 태허신승의 의견을 반박하였다. "아직 때가 이릅니다. 천마황의 마공은 구파일방의 장문인들께서 모 두 합공하신다해도 꺾을 수 없음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전면 전을 벌려 수뇌부가 천마황에게 생포되거나 돌아가신다면 그들의 수 하를 견제하실 분들이 아니 계십니다. 지금처럼 그들의 숨통을 조이 고 있으면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만리평에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 정도연합맹의 승리로 이끌려면 그때를 기다려 조호이산지계(調虎 離山之計)로 천마황과 그의 수하를 떼어놓아야 승산을 오 할로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좀더 지켜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무당파의 장문인 백운진인이 대라현자의 뜻에 동조하였다. "무량수불……! 빈도의 생각도 총사와 같소이다. 지금 당장 악의 씨 앗을 제거하는 것이 응당 옳은 일이나 천마궁의 무시하지 못할 정예 들이 남아 있어 정도연합맹이 승리하려면 천마황의 손과 발을 자청 하는 무리들을 줄여야 할 것이외다." 아미파의 장문인 금정신니가 염주를 돌리던 것을 멈추더니 벌떡 일 어섰다. "아미타불……! 빈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런 상태로 그들 을 견제만 하고 있으면 그들이 악행을 저지르는 일은 막을 수 있으 나 언제 상황이 종료되어 성지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맹주의 말씀대로 그들과 결판을 내야 할 때가 되었어요." 개방의 방주 표풍신개가 콧구멍을 후비다가 표정을 굳히며 그녀의 말을 잘랐다. "흠……! 금정신니께선 현 상태를 아시면서 성지로 돌아가 자신의 수양만 쌓으면 된다고 생각하시오? 그럼 신니께서 천마황과 상대해 보시겠소? 성지로 돌아가 마음 편히 수행하시려면 천마궁의 마인들 을 모두 잠재우지 못한다면 영원히 요원한 꿈이라는 것을 어찌 잊고 계시오. 정도에선 마의 무리들에게 엄청난 타격과 인명피해를 입었 소. 맹도들이 더 인명피해를 입는다면 승리로 이끈다고 하더라도 정 도무림의 앞날은 희미하게 될 것이오. 세월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총사의 책략대로 하는 것이 정도를 위해선 합당하다고 생각하오." 그들의 의견은 상반되었는데 대부분 장문인들과 정도명숙들도 드러 내놓고 말은 하지 않았으나 내심 총사의 의견에 동조하는 눈치였다. 오랜 숙의 끝에 총사 대라현자의 책략을 수용하기로 하였다. 맹도들이 만리평 앞에 알짱거리며 그들을 천마궁 밖으로 유인하기 위해 나섰다. 곤륜파의 장문인 곤륜철협 사우인이 경신술에 능한 맹도와 자객문도 들을 선별하여 오십 명을 이끌고 만리평에 나타났고, 그들이 설치한 진 밖에서 천마궁의 정문을 향해 광천뢰 하나를 선사하였다. 번쩍―! 콰콰쾅―! 십 장 높이로 만든 거대한 정문이 날아가는 것은 당연지사였고 정문 주위의 견고하게 만든 성벽이 힘없이 허물어졌다. 그곳을 지키던 마인들은 광천뢰의 위력에 절명하여 신체가 상한 상 태에서 정문이 무거운 철문으로 만든 탓에 깔려 버렸고, 게다가 성 벽이 허물어지며 바위덩이에 눌려 압사한 모습이었다. "하하하……! 흉악한 마도 놈들아! 본 장문인이 너희들을 상대하기 위해 나섰으니 목을 내밀고 나오너라." 곤륜철협이 검을 높이 빼들고 고래고래 악을 써대었다. 근방에서 굉음소리와 함께 정문이 날아가는 것을 목격한 천마궁도들 이 우르르 몰려나와 바위덩이를 치웠지만 목숨이 붙어 있는 동료들 이 하나도 없어 원수를 갚기 위해 악다구니를 해대는 맹도들이 있는 곳으로 쏟아져 나왔다. 맹도는 오십 명뿐인데 천마궁도들은 삼백여 명이 병장기를 빼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곤륜철협을 비롯한 맹도들은 선공을 가해 선두에서 달려오던 마인들 의 수급을 떼어내고 맹공을 가하였으나 적의 수효가 너무 많아 점차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게다가 천마궁의 장로 셋이 변장을 하여 그 틈에 끼어 있었으니 계 획을 세운 것과 달리 발을 빼기가 힘들었다. 뒤로 밀리던 맹도들은 마인들의 공세에 부상을 당하거나 목숨을 부 지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였고 곤륜철협이 신형을 띄워 올리며 후퇴명령을 내렸으나 이미 십여 명은 마인들에 의해 생을 마감해야 했다. 맹도들이 신형을 뽑아 올려 도주하기 시작하자 마인들은 그들을 잡 기 위해 경신술을 시전하였다. 다행히 경신술에 능한 맹도들이라 그들과 거리를 벌리며 도주하였고 십 리 떨어진 구릉사이로 도주할 수 있었다. 마인들이 흉악한 안광을 드러내며 구릉에 도착하자 매복하고 있던 정도연합맹도들이 그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후방에서 공격을 감행하 였는데 마인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마인들이 멈춰선 곳으로 화살들이 비오듯 쏟아졌고 그들은 날아오는 화살을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곤륜철협과 달아나던 맹도들이 매복하고 있던 맹도들과 합세하여 공 격하였다. 양측면 구릉에도 수많은 맹도들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마 인들을 향해 뛰어내려오고 있었다. 사면초가에 쌓인 마인들은 우왕좌왕하였고, 맹도들은 함성을 지르며 그들에게 그 동안 쌓인 울분을 토하였다. 곤륜철협은 그들 중 가장 강한 마공을 지닌 듯한 장로를 공격하였다 "곤륜참마연환검법(崑崙斬魔連還劍法)!" 곤륜철협 사우인은 전소추가 전수하였던 유령무흔비(幽靈無痕飛)의 경공술을 극성으로 익힌 상태였고 장로를 겨냥해 전소추가 곤륜파에 되돌려준 절기를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그의 검세를 본 천마궁의 장로는 경악하여 자신의 애도로 막으려 하 였는데 어찌나 변화가 심한지 그의 도에 닿기 전에 그의 인후혈을 향해 찔러오고 있었다. "으헉……! 곤륜파에서 이런 검법을 시전하는 놈이 있다니……?" 장로의 인후혈을 사정없이 관통한 곤륜철협의 애검은 벌써 다음 상 대를 찾고 있었다. 사부를 강제로 우화등선시킨 마인들을 향해 그의 분노가 폭발하였던 것이다. 삼십육 개의 분영을 만든 그의 맹활약으로 장로 둘이 목숨을 잃자 마인들의 사기가 저하되었고, 그 틈에 맹도들이 자신들이 새로 익힌 절학으로 맹공을 가했다. 자객문의 직전제자 소리장도 마벽규가 괴이한 미소를 짓고 마인들의 사이를 누비며 수급을 떼어내며 외쳤다. "둘, 셋, 넷, 다섯, 으흐흐……! 이거 싱거워서 검을 쓰기가 아까울 정도구나! 옛다, 이거나 처먹어라." 그는 주먹을 말아 쥐고 마인들의 안면에 철권을 꽂았다. 퍽―! "으이구… 싱거운 놈! 한방에 나가 떨어질건 뭐람……?" 종남파의 신임 장문인 종남일미 궁서월이 마지막 장로와 접전을 벌 이고 있었다. 그녀는 부친을 돌아가시게 만든 마인을 증오하였고, 그녀의 증오는 상대를 향해 쏟아졌다. 전소추가 십팔 초로 된 조양검법(朝陽劍法)의 절전된 후반 삼식을 전하였기에 그녀는 원수를 갚기 위해 극성으로 익혔다. 그녀의 조양검법을 받아내는 천마궁의 장로는 초반에는 여유있는 모 습으로 달아날 궁리를 하고 있었으나 초식이 거듭될수록 예리하고 심하게 변화하자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그녀와 장로가 대결을 벌이는 동안 천마궁도 삼백여 명은 다시는 돌 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맹도들을 종남파의 장문인과 장로와의 대결을 관전하며 그녀를 응원하였다. 후반 삼식이 시전될 때 수세에 몰리던 장로는 마지막 초식에 상의가 찢겨졌고, 연환식으로 검법이 첫 초식부터 다시 시전되자 점차 안 정을 되찾고 백전노장답게 그녀에게 마공을 쏟아내고 있었다. "흥……! 어린년이 감히 본장로를 놀라게 해?" 숨죽이며 관전하던 소리장도 마벽규는 그녀가 내공이 부족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낭패를 볼 것이라 판단하고 상의를 열었다. 그의 상의 안에는 얇은 비도가 양쪽에 열 개씩 꽂혀 있었고, 그의 예상은 적중하였다. 막상막하의 대결을 벌이던 종남일미는 수세에 빠졌고 발을 잘못짚어 넘어지고 말았다. 워낙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아무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위기의 순간 소리장도 마벽규가 급히 손을 놀렸다. 종남일미에게 마지막 공격을 가하려던 장로는 목 뒤 부분이 섬뜩함 을 느끼고 돌아서며 검을 휘둘러 막았고, 그 틈에 종남일미가 장로 의 등에 검을 박았다. 푹―! "으윽……! 새파란 애송이년에게 당하다니……!" 소리장도가 날린 비도들이 장로의 몸에 꽂히기 시작했는데 그 중 하 나가 종남일미의 미간을 향해 날아갔다. 파파파팍―! "악……!" 그녀는 적을 해치웠다는 안도감에 빠져 있다가 미간 사이로 날아드 는 비도를 보고 비명을 지르면 두 눈을 감았다. 그녀뿐 아니라 맹도들도 그 광경을 보고 모두 눈을 감았다. 그녀는 그 짧은 시간에 자신이 비록 도움을 받았으나 천마궁의 장로 를 제거하였으니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자신이 곧 죽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종남일미는 미간에 통증을 느끼 지 못하자 살짝 눈을 떴다. 소리장도 마벽규가 그녀에게 다가서며 포권을 취하였다. "장문인을 놀라게 해드려 죄송하오." 소리장도는 위급한 상황에서 침착하게 비도 끝을 묶은 천잠사를 당 겨 멈추게 하였던 것이다. "휴우……!"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는데 종남일미가 일어서며 그에게 포권을 취하였다. "도움주신 것에 감사드려요.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어요." 소리장도 마벽규는 너무도 아름다운 그녀가 옥음을 흘리자 멍한 표 정을 지었고, 맹도들은 그 모습을 보고 대소를 터트렸다. "우하하하……! 자객문에 저렇게 순진한 자객이 있었나……?" 맹도들이 놀려대자 소리장도 마벽규의 얼굴이 홍색으로 물들었고, 종남일미의 옥용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십여 명의 맹도들이 희생되었지만 그들이 세운 작전은 성공을 거 두었다. 다음날 아침 맹도들이 다시 만리평에 모습을 드러내고 마인들을 유 인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써보았으나 한번 당한 그들은 정문이 서 있던 근처엔 얼씬도 않았다. 장로 셋이 희생되었다는 보고를 들은 천마황은 마인들의 무공이 약 해 당한 것이라 판단하고 정도 놈들을 상대하지 말고 힘을 키우라고 명했기 때문이었다. 정도연합맹의 수뇌부가 다시 모였고 맹주 태허신승은 유월 초 하루 에 전면전을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태허신승의 지장이 찍힌 첩지가 전령사자에 의해 천마궁 정문 앞에 전달되었고, 그것을 펼쳐든 천마황은 고민거리가 해소된 표정을 지 었다. "크하하핫……! 놈들이 스스로 무덤을 파는구나……!" 마인들이 결전을 위해 준비하는 동안 중원 무림에서 정도연합맹과 뜻을 같이 하는 무림인들이 모여들었다. * * * 폐관수련을 하던 전소추가 연무관을 나왔다. 그가 무엇을 얼마나 얻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들어갈 때보다 조금 수척하긴 하였으나 그의 전신에선 정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창해어옹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배가 조금 불룩하게 솟은 창궁 해연 여소정의 손을 잡고 작은 배에 올랐다. 그의 손에서 강기가 뿜어지자 배는 쾌속선처럼 빠르게 숭명도를 떠 나 광활한 대륙으로 향했다. 육지에 도착한 전소추는 여소정을 번쩍 안고 허공에 신형을 날렸고 바람 가르는 소리를 남기며 낙양으로 향했다. 그는 사랑하는 처들과 만나기 위해 전력을 다하였고, 품에 안긴 여 소정은 너무 빨라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었다. "가가! 좀 천천히 가세요. 뱃속의 아이가 놀라겠어요." 전소추는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속도를 줄였고, 안휘성(安徽省)의 작은 고을에서 간단히 요기한 후 다시 출발하였다. 저녁 무렵 붉은 노을이 한창 하늘을 태우고 있을 때 낙양 외곽에 도 착한 전소추는 여소정을 내려놓았다. "이곳부터는 걸어갑시다. 죽은 줄 알았던 내가 회임한 당신과 같이 모습을 드러내면 날 죽이려들 거요. 그녀들이 당신을 곱게 받아주었 으면 좋겠으나 심하게 대하더라도 당신이 참아주시오." "알았어요." 잡초가 무성한 은하전장으로 들어선 전소추는 육합전성술(六合傳聲 術)을 시전하였다. '미매! 내가 돌아왔소.' 지하보고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던 하운미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랑 하는 전소추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침을 꿀꺽 삼킨 그녀가 당초혜와, 냉예향, 연교매를 바라보자 모두 놀란 모습이었다. 그녀들은 얼마나 급했는지 버선발로 뛰쳐나가 지하보고를 빠져 나왔 고 죽은 줄 알았던 그가 자신들의 눈앞에 두 팔을 벌린 채 서 있자 눈물을 쏟아내며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흐흐흑……! 가가! 살아 계셨군요. 우매한 저희들은 가가께서 돌아 가신 줄 알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몰라요." 전소추는 소복차림인 그녀들을 사랑스런 눈길로 바라보았다. "후후후……! 당신들은 소복을 입어도 아름답구려. 소개해줄 사람이 있소. 이 사람은 숭명도주의 여식 창궁해연 여소정이라 하오. 내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위안을 준 여인이오. 당신들에겐 미안하지만 처로 맞이하였소. 그러니 동생으로 받아주시구려." 그녀들은 전소추가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크나큰 기쁨을 얻었기에 그가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녔다고 하더라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창궁해연 여소정은 자신에 비해 그녀들의 용모가 선녀처럼 아름다운 것을 보고 초라해짐을 느꼈지만 용기를 내었다. "언니들 잘 부탁드려요." 하운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하였다. "가가를 돌봐 주었다니 고맙다는 인사부터 해야 되겠지? 여기서 이 럴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때요? 아이들이 아버지를 무척 보고 싶어할 거예요." 전소추가 그녀들에게 떠말려 들어가며 물었다. "아이들이라니? 미매 말고 누가 아이를 낳았소?" 연교매가 그의 생환을 알리려 뛰어들어갔고 하운미가 박 속 같은 하 얀 치아를 드러내며 배시시 웃었다. "호호호……! 가보시면 알 거예요." 전소추는 현천천검에게 가서 대례를 올렸다. "할아버님! 걱정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현천천검이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무심한 사람! 살아 있었다면 연락이라도 줄 것이지……!" 전소추는 자신이 절벽에서 추락한 후 자신이 어떻게 살아났는지, 무 엇을 하였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며 자신도 모르게 동해에 있는 숭 명도에 발을 들여놓고 깨어나 보니 무려 팔 개월이 흘렀다고 설명하 였다. 그 동안 매월 보름만 되면 색마로 변하는 기이한 고질을 앓았 으나 그곳에 머물며 자신이 데려온 숭명도주 창해어옹의 여식 창궁 해연이 자신을 희생하여 연명할 수 있었고, 기연을 만나 내공을 되 찾은 사연도 들려주었다. 일월쌍협이 전소추에게 대례를 올렸다. "주공께서 생환하심을 축하드립니다. 주공이 아니 계시는 동안 소주 님들을 돌보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습니다. 나중에 한턱 내셔야 한 다는 걸 꼭 기억해 주십시오." 현천천검이 그제야 생각난다는 듯 머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이런? 노부의 정신 좀 보게. 이제 늙었다고 망령이 난 모양일세. 자네가 아이들을 보고 싶을 텐데 빨리 가보게……." 전소추가 벌떡 일어나더니 일월쌍협이 안내한 곳으로 달려가 문을 벌컥 열더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 예쁜 아이들이 각기 모친들에게 안겨 그에게 방글방글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입이 찢어져라 대소를 터트렸다. "우하하하……! 모두 나의 아이들이란 말이오……?" 그의 웃음소리가 너무나 컷기에 아이들이 놀라 일제히 울음을 터트 렸다. "응애―! 응애―!, 앙앙앙―!" 아이들이 모두 울자 전소추는 어쩔 줄 몰라하였고 그의 처들이 아이 를 품에 안고 어르며 그를 노려보았다. "어쩜 아비가 되어 처음 만난 자식들을 놀라게 하는 거죠?" 전소추가 기가 죽어 벙끗도 못하자 그녀들이 까르르 웃으며 아이들 을 그의 품에 안겼다. 하운미가 아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가께서 아니 계셔서 아직 제대로 작명(作名)하지 못하였으니 이 름부터 지어주셔요. 그 동안 태어난 순서대로 춘, 하, 추, 동이라 불렀으나 제 아이만 빼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았으니 어울 리지 않는 이름이에요." 전소추는 자신과 처들의 얼굴을 반반 씩 닮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싱 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매우 신기해하였다. 갑자기 아이들의 이름을 작명하려하니 쉽지 않았다. 그가 아이들을 보고 있는 동안 그의 처들은 창궁해연의 곁에 빙 둘 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전소추는 하운미와의 사이에서 난 아이를 번쩍 들었다. "하하하! 이제부터 네 이름은 천룡(天龍)이다. 앞으로 전씨 가문을 빛낼 장자(長子)이니 아우들을 잘 돌봐야 한다." 전소추는 당초혜의 아이에게는 천문(天文)이라고 지어주었고, 냉예 향의 아이는 소연(素蓮), 연교매의 아이는 천웅(天雄)이란 이름을 각기 지어주었다. 그의 처들은 각자 아이들을 품에 안고 그가 작명한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즐거워하였다. "호호호……! 아이들도 마음에 드는가 봐요. 여기 좀 보세요. 이름 을 불러주니 방끗 미소를 짓고 있어요." 아이들을 재워 침상에 눕히고 석식 준비를 하는 여인들은 미소를 멈 추지 못하였고 창궁해연 여소정도 그 틈에 끼어 한 몫 거들었다. 그 사이 전소추는 현천천검과 무영도객, 일월쌍협과 무림정세에 대해 듣고 있었다. 칠 주야만 지나면 유월 초하루였고, 맹주 태허신승의 부탁을 받아 천마궁이라 개명한 마교의 무리와 대전을 벌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전소추는 만리평이 낙양과 가까운 탓에 좀더 이 곳에 머물러도 되자 그들에게 자신이 창안한 무고 몇 가지를 전수하 였다. 그들이 연무관에서 심오한 무공을 터득하기 위해 땀을 흘리는 동안 전소추는 태평스럽게도 그의 처들과 일 년 이상 갖지 못한 사랑을 나누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며 지냈다. 오월의 마지막날 오후 전소추는 따라나서려는 처들을 간신히 떼어놓 고 현천천검, 무영도객, 일월쌍협과 만리평으로 향했다. 여인들은 그들이 떠나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가가! 저희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꼭 돌아오셔야 해요.' 하운미가 심령술로 전하자 전소추가 답했다. '후후후……! 천마황을 이길 자신이 있으니 걱정 말고 아이들이나 잘 돌보고 계시구려. 곧 돌아오겠소.' 만리평 앞에는 정도연합맹이 며칠 전부터 진영을 세웠지만 천마황은 자신의 적수가 없음을 알고 있는지라 무시하였다. 어차피 유월 초하루면 정도연합맹의 나부랭이들이 자신의 발아래 엎 드려 목숨을 구걸하게 될 터인데 미리 나서서 그들을 건드린다면 또 다시 잠적하여 골칫덩이가 될 것이라 방관하고 있었고, 궁도들을 철 저히 단속하여 나서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여인들의 안마를 받으며 편히 쉬는 쪽을 택하였고, 교두들은 결전을 앞두고 궁도들에게 마공을 전수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정도연합맹에선 수뇌부들이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은 천마황과 동귀어진을 하더라도 그를 묶어두 지 않으면 인명피해가 많으리란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단목세가의 가주 철혈무존 단목풍과 독고세가의 가주 검령만리 독고 천이 구파일방의 고수를 거느리고 천마궁의 장로를 상대하고, 자객 문의 초혼신수가 문도들과 영주와 전주, 당주를 상대하면 사천당가 의 문도들이 천뢰탄과 광천뢰를 지고 전장에 뛰어들어 마인들과 함 께 폭사하여 무림을 구하겠다며 벼르고 있었다. 맹도들은 모두 자신의 생명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다고 굳은 결 의를 하고 있었다. 오월 마지막날 수뇌부가 다시 한번 자신들이 결정한 것을 신중히 검 토하기 위해 모였다. 그들은 한 명의 고수라도 더 필요한 시기에 봉착해 있었고, 은하전 장의 장주 현천천검이 무영도객과 제자 일월쌍협을 데리고 도착했다 는 소식을 전해 듣고 안으로 모시게 하였다. 현천천검이 일행들을 이끌고 그들이 회의를 진행하는 막사에 들어왔 는데 결전을 앞둔 무인답지 않게 활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현천천검은 맹주 태허신승에게 예를 갖추었다. "허허허……! 오랜만에 뵙습니다. 맹주께선 별고 없으셨습니까?" 태허신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미타불……! 잘 오시었소. 이런 시기에 웃을 수 있다니 하시주께 선 넉살도 좋으시오." 현천천검이 대소를 터트리며 답했다. "허허헛……! 신승께서도 기뻐할 소식을 가지고 왔더니 표정 관리가 되지 않습니다." 모두 궁금하여 현천천검을 바라보자 너털웃음을 터트린 현천천검이 커다란 초립(草笠)을 눌러쓴 전소추에게 말했다. "껄껄껄……! 이제 그만 초립을 벗게." 전소추가 초립을 벗자 모두 놀란 표정을 짓고 말문을 열지 못하였는 데, 자객가주 초혼신수와 사천당가의 가주 비폭장신이 벌떡 일어나 달려와 동시에 그를 부둥켜안았다. "으하하핫……! 사위! 자네가 살아 있구먼." 소요곡주 사의 설비홍은 전소추가 건강한 모습을 보이자 대소를 터 트렸다. "핫핫핫……! 그럼 그렇지. 본곡주가 모든 걸 포기하고 심혈을 기울 여 고쳐놓았는데 괜한 걱정을 했었구먼……! 자네 몸은 어떤가?" 전소추가 사의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자 사의가 섭섭하다는 표정 을 짓더니 보퉁이에서 전소추의 부러진 환광검을 꺼내 흔들며 목청 을 높였다. "이놈아! 복부에 구멍이 뻥 뚫린 상태를 표조까지 죽여가며 기껏 원 상복구 해주었는데 고맙다는 인사치레도 하지 않아……?" 전소추는 그제야 사의께서 사경을 헤매던 자신을 치료해준 것을 알 고 허리를 숙였다. "사의어르신께서 소생을 환생시키셨군요. 감사합니다. 소생은 부상 당한 이후 팔 개월 동안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먼저 감사 올리지 못한 일을 용서해 주십시오." 사의가 전소추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엥……? 기억하지 못한다고? 노부의 연구를 망치고 남은 여생을 위 해 쓰려던 것을 모두 소비해가며 고쳐주었다니 기억이 없다……? 노 부가 진맥해 봐야겠다." 사의가 전소추에게 다가가 부러진 환광검을 전하더니 그의 손목을 잡고 진맥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얼굴이 기괴하게 변하였다. "엉……? 이건 또 뭐야? 어떻게 맥이 전혀 잡히지 않지……?" 전소추가 손을 빼며 답했다. "죄송스럽게도 사의께서 진맥하실 수 없는 신체를 지니게 됐습니다. 나중에 차차 말씀드릴 터이니 회의나 진행하시지요?" 그들을 위해 총사 대라현자가 맡은 임무에 대해 설명하였고, 모두 들은 전소추가 고개를 저었다. "총사께선 계획을 수정하셔야겠습니다. 천마황은 소생 혼자 충분히 막을 수 있고, 사천당가의 문도들이 화기를 지니고 뛰어든다면 아군 의 피해도 발생할 것이니 그 계획은 취소하십시오." 그들 수뇌부는 전소추의 무위를 아는지라 홀로 천마황과 대적한다면 지난번처럼 사경을 헤매게 될 것이라고 만류하였고, 특히 사의 설 비홍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말렸다. "이놈아! 다시 그런 지경에 빠지면 대라신선이 온다해도 네놈을 구 해주지 못한다. 여기 있는 늙은이들은 천수를 거의 누렸으니 정도무 림을 위해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천마황은 늙은이들에 게 맡겨두고 천마궁의 장로들이나 상대하거라." 전소추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후후……! 모두 밖으로 나가시지요.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모두 밖으로 나서자 전소추가 이십 장 앞의 바위를 가리키며 태허신 승에게 부탁하였다. "맹주님! 제가 신호하면 저 바위를 향해 탄지신통을 시전해 주십시 오." 태허신승이 탄지신통을 시전할 준비를 마치자 곁에 서 있던 전소추 가 신호를 보냈다. "탄지신통!(彈指神通)" 태허신승의 검지에서 지강이 빛살처럼 뻗어나갔다. 헌데 빛살 보다 더 빠른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전소추의 신형이 었다. 탄지신통이 시전되어 바위에 지강(指 )이 닿는 찰나의 순간에 전소 추는 이미 바위 앞에 신형을 드러내었고, 지강이 닿는 순간 몸을 피 했던 것이다. "보셨습니까? 천마황의 검환을 피할 경공술을 얻었으니 예전처럼 호 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저를 믿으시고 계획을 수정 하십시오." 정도연합맹의 수뇌부들은 그 광경을 목격하고도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계획은 수정되었고, 밤사이 맹도들에게 전해졌다. 날이 밝자 정도연합맹도들은 북을 울리며 만리평으로 향하였고 천마 궁에서 설치한 절진을 화기로 모두 날려 버린 후 부서진 정문으로 들어섰다. 천마궁도들은 천마황의 명령을 받아 정도연합맹도들이 모두 만리평 에 들어설 때까지 공격을 하지 않았다. 횡렬로 늘어선 정도연합맹도들이 서서히 거리를 좁혀갔다. 천마황이 마신후를 내질렀다. "크크크크크……!" 정도연합맹도들은 귀를 막으며 괴로워했는데 전소추의 창룡후가 울 려 퍼지자 그것을 기점으로 전방의 마인들을 향해 신형을 분분히 날 렸다. "우우우우우우우……!." 천마황은 자신이 내지르는 마신후가 적이 내지른 창룡후에 잦아들자 분노하여 만인혈을 빼들며 외쳤다. "궁도들이여! 정도 놈들을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죽여라." 만리평에선 무림사에 영원히 남을 공전절후의 정과 마의 대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전소추는 부러진 환광검을 붙잡고 천마황이 있는 곳으로 신형을 띄 웠고, 정도연합맹의 수뇌부와 맹도들은 마음놓고 계획대로 자신들이 상대할 마인들을 상대하기 시작하였다. 정도연합맹도들과 천마궁도들은 맞붙었고 만리평은 피아를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아비규환의 격전장으로 화하였다. 천마황은 자신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오는 인물을 확인하고 기절초풍 하였다. 이미 자신이 죽였던 다정공자 전소추가 유령처럼 다가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다시 회생하였다 하더라도 자신의 적수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 천마황의 귀에 전소추의 전음이 들렸다. '하하하……! 다시 만나게 되었구나. 일전에 대결을 벌렸던 곳으로 가자!' 전소추가 멈추지 않고 그의 곁을 스치며 숭산 정상 쪽으로 향하였고 천마황이 그의 뒤를 바짝 따라 붙었다. 먼저 도착한 전소추가 뒷짐을 진 채 천마황이 도착하기를 기다렸고, 그가 도착하자 환광검을 내보이며 입을 열었다. "후후후……! 일전의 빚을 갚으려고 왔소." 천마황은 그를 얕잡아 보았고, 그저 자신을 격전장에서 유인하기 위 해 술수를 부리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크하하핫……! 가소로운 놈! 네 놈이 본황을 유인한다는 것을 알고 도 따라왔다. 이제 할 일을 마쳤으면 죽어줘야 되겠다." 천마황은 다짜고짜 신형을 띄워 올리며 그에게 선공을 가했다. "천마파천섬!(天魔破天閃)" 만인혈에서 십오 장 정도의 검강이 뻗어 그의 전신을 감싸더니 삼백 육십 방위를 마치 뇌전이 이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강한 붉은 빛 과 함께 퍼져나갔다. 번쩍―! 전소추는 신공을 끌어올려 자신의 육신을 공기처럼 가볍게 만들며 그의 검강을 호신강기로 막아내었다. 천마황의 자신이 발한 검강이 전소추를 도륙하리라고 자신하였지만 강기와 충돌한 전소추는 무려 삼십 장이나 물러났다가 물러날 때보 다 더욱 빠른 속도로 다가들고 있었다. 의복까지 멀쩡한 전소추를 바라본 천마황이 경악하여 천마 최강의 무공을 시전하였다. "천마파천무(天魔破天舞)!" 고고고공―! 그의 만인혈의 검극에서 검환이 맺히더니 전소추를 향해 연속적으로 발사되었고, 그 순간 전소추는 무영섬뢰비를 시전하여 검환을 피했 다. 우르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그의 신형은 천마황의 주위를 돌기 시작하였고 백 팔 개의 분영(分影)을 만들며 어느 것이 분영이고, 실체인지 분간하 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방천지에서 전소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지황홀(天地恍惚)!" 백팔 개의 분영이 부러진 환광검에서 뻗은 이십 여장의 검강으로 중 앙에 서 있는 천마황을 내리치고 있었다. "으악! 사, 사술이다!" 천마황은 경악하여 만인혈로 전신을 보호하였다. "천마탄강(天魔彈 )!" 만인혈의 붉은 검강이 그의 주변을 빈틈없이 겹겹이 보호막을 만들 더니 백팔 개의 분영을 만든 전소추에게 뻗어나갔다. 번쩍―! 콰콰콰콰쾅―! 숭산 정상에서 마침내 전소추의 환광검에서 뻗은 검강과 천마황의 만인혈에서 뻗은 검강이 충돌하며 태양이 폭발하며 내는 듯한 밝은 빛과 광천뢰가 터진 듯한 굉음을 울려대었다. 충돌의 여파로 인해 전소추의 의복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천마황은 만인혈의 손잡이만 잡은 채 허리까지 지면 속에 박혀 두 눈을 부릅 뜬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전소추가 돌아서자 천마황의 육체가 모래성 부서지듯 허물어졌고, 때 마침 강한 바람이 불자 전소추가 떨어졌던 절벽 아래로 우수수 날렸다. 전소추가 창룡후를 터트렸다. "우우우우우……!" 정도연합맹도들은 천마황의 죽음을 기뻐하며 마인들을 도륙하였고, 그토록 강한 천마황 담능백의 죽음은 마인들의 사기를 떨어트리는데 한 몫 하기에 충분하였다. 전소추가 전장에 합세하자 마인들은 도망치기에 급급하였는데 그들 은 만리평을 벗어나지 못하고 뼈를 묻어야 했다. 전소추는 오늘만큼은 악귀나찰이 되기로 작심하였고 그의 반검(半劍 )에 마인들은 속절없이 베어진 탓에 그의 의복은 마인들의 피로 물 들어 본래의 색을 잊어야 했다. 오후가 되자 정도연합맹은 저항하던 마인들을 모두 제거할 수 있었 으나 수많은 정도인들이 살신성인의 희생으로 선혈을 흘려야 했다. 석양이 질 무렵 전장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그런데 가장 큰공을 세운 전소추의 모습은 언제 사라졌는지 그곳에 서 찾을 수가 없었다. 맹주 태허신승은 맹도들의 시신을 수습하게 한 후 정도연합맹의 해 체를 선포하였다. 구중천의 황제 영종은 천마궁을 몰아낸 공적을 기리기 위해 정도연 합맹에 포상을 내렸고, 은하전장과 석가장에 엄청난 양의 재물을 하 사하였으며 다정공자 전소추를 무림천황(武林天皇)으로 봉한다는 교 지(敎旨)를 내렸다. 하지만 이미 정도연합맹은 해체되어 뿔뿔이 흩어졌고, 전소추는 자 신의 처자식을 데리고 행방불명된 상태였다. 전장에서 떠난 전소추는 곧장 은하전장에 들려 처자식을 데리고 숭 명도로 향하는 도중에 다시는 검을 잡지 않겠다며 장강의 강심에 부러진 환광검을 던져 버렸던 것이다. 오 년 후 숭명도 해안(海岸) 바위에 초립을 눌러쓴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가 망망대해를 향해 죽간을 드리우고 있었고, 여섯 살쯤 되 보 이는 사내아이 셋과 계집아이, 그리고 다섯 살 난 사내아이가 막대 기를 들고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 돗자리를 펴고 앉은 아름다운 여섯 여인들이 어린 아이들을 품에 안고 한 사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제수씨들 날씨가 청명하여 회임한 천혜옥녀와 옥서시, 홍예미안도 같이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군요." 산처럼 부푼 배를 잡고 앉아 있던 여인이 말했다. "흥……! 당신이 나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저도 침상에 누워 편히 쉬 고 있었을 거예요." 그들이 말씨름을 하는 동안 제일 덩치가 커다란 아이가 재미가 없는 듯 작대기를 휙 집어던지며 낚시를 하고 있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한 마리도 잡지 못하면서 매일 일출 때면 이곳에 나오시는 이유가 뭐지요?" 사내가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천룡아! 고기를 잡으려고 나온 것이 아니란다. 찬란한 태양은 언제 나 이 아비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준단다." 천룡이라 불린 아이가 사내를 졸랐다. "아버지! 천마황 담능백이란 마인이 그토록 무서웠어요? 숙부와 숙 모가 말하길 그가 있었다면 저희들이 이렇게 마음놓고 뛰어 놀 수가 없다고 하던데 사실이에요?" 사내가 초립을 올리며 아이에게 답했다. "후후……! 숙부와 숙모가 너를 놀린 모양이구나! 이곳처럼 평화스 러운 곳에서 자라는데 어찌 맘놓고 놀지 못하겠느냐? 가서 동생들과 놀려무나." 아이가 그의 곁에 바짝 앉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아버지가 한 마리 잡는 것을 보고 싶어요." 천룡에게 미소를 지은 사내가 죽간을 바로잡았다. "그래? 그럼 오늘은 한 마리만 잡는 거다? 이크! 왔구나……!" 사내아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초립을 쓴 사내가 죽간을 들어올렸고 팔뚝만한 커다란 고기가 매달려 딸려 나왔다. 천룡이 박수를 치며 좋아하다가 동생들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들 와봐! 아버지가 드디어 고기를 낚으셨다." 사내가 고기를 떼어 천룡에게 전해주자 아가미를 붙잡고 낑낑 매며 멀찌감치 떨어져 대화를 나누고 있는 어머니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 니 나머지 아이들도 그 뒤를 따라갔다. 사내는 아예 바늘도 달리지 않은 죽간을 한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에 드리우며 전음을 보냈다. '의형! 아이들에게 다시 무림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형수님을 차지 하려고 소제를 물 속에서 건져 주지 않은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주 겠소.' 멀리 떨어져 앉아 있던 사내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가 다시 안색을 되찾고 낚시를 하는 사내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의제! 해볼 테면 해봐. 나는 그 틈을 이용해 두 부인을 챙긴 바람 둥이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 해줄 것이니 마음대로 하셔.' 전소추는 고개를 젓더니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이날 숭명도로 떠나는 배를 탈 수 있는 하문에서는 수십 척의 배가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배에는 선원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아이 딸린 여인들만 승선하 고 있었다. 그녀들을 배웅하는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양민들이었다. "잘 가거라! 부디 그를 찾기 바란다." 여인들은 옷자락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찍으며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었고, 그녀들의 손을 잡고 있는 아이들은 모두들 무언가 들떠 있 는 모습이었다. 그중 한 아이가 제 어미에게 물었다. "어머니! 정말 이 배를 타고 가면 한번도 뵙지 못한 아버님을 뵐 수 있는 건가요?" 아이는 이제 네 살 가량 되어 보였다. 눈이 똘망똘망하고 총기가 도 는 아이는 그 아이 하나뿐이 아니었다. 배 안에 타고 있는 백여 명의 아이들 모두가 고만고만하였던 것이고 , 어떤 면에서는 조금씩 닮은 듯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호호! 물론이란다. 이 배는 네 아버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는 배가 틀림없어. 그러니 조금만 참도록 하여라. 알겠느냐?" "예! 어머니……." 아이는 나이답지 않게 제법 의젓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들 모 자의 대화가 끝나자 배 안 이곳저곳에서 같은 질문이 쏟아져 나왔고 모든 여인들의 입에서 같은 대답이 나왔다. "호호호! 맞단다. 이 배는 천하제일 영웅이신 네 아버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는 배란다. 호호호! 그분은……." 여인들은 무림을 겁난에서 구한 다정공자 전소추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녀들 모두는 장강변에 살던 평범한 양민의 여식들이었다. 보름달 이 뜬 어느 날 곤한 잠에 취해 있다 준수한 청년에게 겁탈 아닌 겁 탈을 당한 뒤 회임을 하게 되었고, 그 날 밤 겪었던 너무도 황홀한 경험을 잊지 못하여 다른 자들과 혼례를 올리지 않았던 여인들이었 다. 세월이 흘러 출산을 한 여인들의 귀에 천하를 겁난으로부터 구한 천 하제일 영웅 다정공자 전소추에 대한 소문이 들리게 되었고, 그녀들 은 즉시 그가 아이의 부친임을 알게되었던 것이다. 천하에는 영원한 비밀이 없는 법! 숭명도의 식솔 중 하나가 대륙을 밟았다가 우연히 그가 보름달이 뜨 는 날이면 색마로 돌변하였었다는 이야기를 재미로 한 것이 퍼지고 퍼진 것이었다. 일단 아이의 부친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 여인들은 제 각기 행장을 꾸려 숭명도로 향하였고 우연히 이곳에서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따 라서 현재 이 배 안에 있는 모든 여인들은 모두가 전소추에게 당했 던 여인들이라는 곳을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아이들 모두가 그때 그 일의 결과로 생긴 아이들임을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잠시 후 뱃고동 소리를 길게 낸 범선은 천천히 숭명도를 향하여 먼 길을 떠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배의 뒤에는 같은 크기의 범선이 한 대 더 있었다. 그 배에도 하나 가득 여인들이 타고 있었고 그 수효만큼 아이들도 있었다. 제아무리 기억을 잃었다지만 이것을 본다면 아마 전소추는 놀라 기절을 하거나 거품을 물을 것이다. 그것은 색마(色魔)의 말로였다! 천하에 불어닥친 엄청난 혈겁을 막아내고 천하제일인, 천하제일지라 는 영예를 얻었지만 겁난이 끝난 후 수백에 달하는 많은 여인들과 아이들에게 일평생 시달리다 살아야만 한 다정공자(多情公子) 전소 추! 그는 강호에서 사라졌지만 고금제일색마인 그가 천하를 혈세(血洗) 하는 바람에 천하에 평화가 돌아왔다! 이것이 후일 천하인들이 자손들에게 전(傳)하는 말이었다. <大尾> ▣ 筆者의 辯 천지사방이 고요한 이때 또 한 작품의 탈고를 끝내고 모처럼 기분 좋은 나른함에 젖어본다. 이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얼마나 밤을 새웠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순간 필자는 그 모든 기억을 애써 뇌리에서 지우는 중이다. 수많은 밤을 지새며 지루하다 할 수 있는 작업을 하였지만 이 순간 이 되면 늘 그렇듯 대부분의 것들이 잊혀진다. 마치 갓 태어난 아이 를 보며 출산의 고통을 잊는 산모들처럼! 그러나 누가 "창작의 고통"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유효적절한 표현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고통스러운 순간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고통의 흔적인지 지금까지 쓴 여덟 작품 곳곳에 미숙함이 그대로 남아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작품을 쓸 수 있을지 모르나 차츰 완성도가 더 높은 작품으로 독자제현들을 찾을 것임을 감히 약속드리는 바이다. 무협에 입문한 이래 특별히 필자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몇몇 독자의 편지에 늦으나마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그들의 깊은 관심으로 필자는 가일층 발전할 수 있었고, 용기백배하여 용맹정진할 수 있 었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의 작품을 읽어준 모든 독자제현들에게도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무림말학인 무명소졸의 작품을 읽고 한때나마 시간 의 흐름을 잊을 수 있었다면 더욱 큰 감사를 드린다. 어떤 독자가 필자에게 보낸 편지의 말미를 보면 "제자는 좋은 스승 을 만나기 어렵고, 독자는 좋은 글을 만나기 어렵다"라는 표현이 있 었다. 처음 이 글귀가 필자에게 준 충격은 대단하였다. 그저 저 좋아서 쓴 글이 운 좋게 출판되는 행운을 얻은 것이 시작이 었지만, 일단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보낼 때에는 그것을 읽을 독자 들을 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던 것이다. 이에 필자는 더 재미있는 구성과 이야기로 잠시나마 독자제현들로 하여금 시간의 흐름을 잊고 지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 임을 약속드린다. 요즘 들어 무협시장이 너무 위축되어 작가들이 설자리가 점차 줄어 들고 있는 이 마당에 필자는 독자제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무협에 좀더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 달라는 것이다 불과 이십 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일천한 역사로 이만큼 성장한 것 도 따지고 보면 모두 독자들의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 러므로 조금만 더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 준다면 시장이 나아질 것이 고 더욱 발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척박한 풍토에서 고군분투하시는 서울창작의 모든 식구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특별히 책이 출간되도록 애써주시는 편집부 여러분 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등마루 우거에서 諸葛天 拜上 |
첫댓글 고맙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그동안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감사.
잼나게 읽었습니다 감사 합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