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章 대외살객(對外殺閣) 1 - 악마(惡魔)의 세력을 멸망시키는 데에 있어 방법을 따진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들을 붕괴시키기 위해서는 그들보다도 혹독해져야 할 뿐이다. 전(全) 백도(白道)가 나를 증오한다 하더라도 나로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취선주루(醉仙酒樓)는 늘 만원이다. 대륙의맹에 유일한 주루이기에 늘 만원인 것이다. 취선주루는 맹규가 엄격하기로 이름난 대륙의맹에서 유일한 쾌활림(快活林)으로, 강호의 처절한 혈투에 염증을 내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긴장을 푸는 장소이기도 했다. 취선주루는 대륙의맹으로 인해 만들어진 맹호진(猛虎鎭)이라는 시진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 그는 죽립으로 얼굴을 가린 채 취선주루의 후원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후원은 창굴(娼窟)이며, 백여 명의 기녀들이 은자(銀子) 십(十) 냥(兩)과 몸을 바꾸고 있었다. "단골기녀가 있으신지요?" 점소이의 말투는 사무적이었다. "십오랑(十五娘)!" 그는 무뚝뚝히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특징이 없다. 그와 더불어 오랫동안 이야기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떠나고 나면 그의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십오랑이오?" 점소이는 멍해지고 말았다. '빌어먹을! 십오랑에게도 단골이 있단 말인가? 얼굴을 보기만 하면 지난해 먹은 만두가 게워질 정도로 추악한 계집인데!' 점소이는 상대를 쓰윽 바라봤다.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죽립 아래로 보이는 입술 아래쪽 부위뿐이었다. 묘한 것은 어떠한 기도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취선주루를 찾는 사람은 대부분 의맹의 무객(武客)들. 제 얼굴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변복을 한 채로 드나드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 이 곳의 점소이들은 무사들의 특징을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찾아오건 대부분 짐작을 하곤 한다. 그런데 눈앞에 선 자는 어떤 종류의 자인지 점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따라오십시오. 십오랑의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점소이는 천천히 신형을 틀었다. '별 미친 놈이 다 있군. 남자라면 얼굴이 반반한 여자와 잠을 자고 싶어하는 법이거늘, 천하에서 가장 추악한 계집과 잠자리를 같이하고자 하다니… 하긴 십오랑의 얼굴이 추악하다고는 하나 몸매 하나는 일품이지. 저 자는 십오랑의 몸매에 홀딱 빠졌을지도 모른다!' 점소이는 회랑을 따라 걸었다. 그는 이름 모를 낭객을 후원의 방 앞까지 안내했다. 이어 그는 은자 한 냥을 받기 위해 손바닥을 내밀었으며, 사내는 묵묵히 은자 십 냥을 내주었다. "재미… 많이 보슈!" 점소이는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는 빠른 속도로 걸었으며, 열 걸음도 가기 전에 십오랑이라는 기녀를 찾아온 낭객에 대한 것은 말끔히 잊어버렸다. 하긴 최근에는 바쁜 일이 너무나도 많지 않은가. 2 어두운 방. 창은 두터운 휘장에 의해 감추어져 있다. 십 평 정도 되는 방 안에는 이인용 침상 하나가 있고, 침상 앞에는 팔선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십오랑은 비파를 가슴에 안은 채 방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이 뭉그러진 여인, 너무나도 추악하게 생겼는지라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하기에 십오랑은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기녀가 된 것인데, 오늘 한 남자가 그녀의 방 안으로 접어든 것이다. 십오랑은 비파의 줄에 손가락을 대며 말했다. "달(月)이 떴는지요?" 목소리는 너무 아름다웠다. 과객은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답을 했다. "바람은 사해(四海)를 가득 뒤덮고 있다." 가히 동문서답. 달에 대해 묻는데 바람 이야기를 하다니……. 그의 대답 소리가 여운을 맺기 전, 십오랑은 현에서 손가락을 떼어 냈다. "대외살각(對外殺閣)의 총순찰(總巡察) 음소아(陰少娥), 각주를 이 개월 만에 뵙습니다." 대외살각이라니? 대륙의맹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단체 이름은 알지 못한다. 그러한 이름은 맹의 일급 비밀이며, 맹에서 서열 십 위 안에 드는 사람만이 그 이름에 접근할 수 있다. 신비에 쌓인 집단 대외살각. 십오랑은 대외살각의 총순찰이었으며, 그녀를 찾아온 손님은 대외살각의 각주였던 것이다. "오행신마(五行神魔)를 제거(除去)한 일로 인해 천겁만마전(千劫萬魔殿)에 동조하는 마도인들은 천겁만마전과 연락하기를 꺼려하며 은잠하였는지라, 천겁만마전에 동조하는 마도거마를 색출하기가 까다로워졌습니다." "흠……!" 그는 탁자 곁 의자에 걸터앉았다. 팔짱을 낀 인물, 그의 호홉 소리는 지극히 나직했다. 그는 강철로 만든 사람 마냥 일신에서 냉기(冷氣)를 흘렸다. 십오랑 음소아는 빠른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더욱이 대외살각은 정체를 외부에 노출시킬 수 없는지라, 대대적으로 활동할 수 없습니다." "……!" "더욱이 새로 맹주가 되실 매옥당(梅玉堂) 대협(大俠)은 인의를 숭상하시는 분이신지라, 피빚을 피로 갚는 방법에 대해 깊은 회의를 하고 계시기에 대외살각이 활약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계시며… 대외살각이 활동을 중지하기를 은근히 바라고 계실 정도입니다." 추악한 기녀 음소아! 그녀는 맹호진에 머물며 대외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대외살각은 맹주 직속의 비밀세력이며, 태상호법(太上護法)이라 하더라도 대외살각에 대한 것은 알지 못한다. 대외살각은 모두 칠(七) 인(人)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주 휘하 육(六) 인(人)은 서로서로의 신분을 알지 못하고 있다. 만에 하나 신분이 폭로된다면, 마도세력은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대외살각의 인원을 암살해 버릴 것이다. 지난 사 년 간 대외살각의 칠 인 무사는 마도거마 칠백 명을 제거했다. 그로 인하여 마도세력은 엄청난 타격을 입고 휘청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대외살각은 눈의 가시와 같으며, 남칠성(南七省)의 기반을 포기해서라도 대외살각을 붕괴시키고 싶어할 정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방 안은 고요하기만 하다. 음소아는 전음입밀로 말하는지라, 방문 바로 뒤에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방 안에 오고 가는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만에 하나 매옥당 대협이 맹주의 자리를 차지하신다면, 대외살각의 기반에 엄청난 타격이 있을 것입니다." "짐작하고 있다." 그의 어조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대외살각주, 그는 바로 창궁비연(蒼穹飛鳶)이 아니겠는가? 맹 내에서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삼(三) 인(人)이다. 병중에 있는 맹주 숙야장청(叔夜長靑). 숙야장청의 수제자이며, 일 년 안에 대륙의맹의 영도권을 장악하기로 내정되어 있는 소맹주 매옥당. 그리고 창궁비연에게 연락을 하기로 내정된 인물, 암호명 흑풍(黑風). 위의 세 사람만이 창궁비연의 진실된 면모를 알고 있을 뿐, 그 어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창궁비연의 진실된 모습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그는 살아 있는 전설이며, 천하에서 가장 신비로운 인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매옥당 대협이 맹주좌에 오른다면 창궁칠영(蒼穹七影)에게 살인 명령이 하달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피로 마도를 제거하는 것을 꺼리는 인물이기에……." "……." "하나 그 분이 맹주가 되기까지에는 일 년이라는 시간이 있으며, 우리들이 하고자 하는 일은 그 사이 거의 다 마무리지을 수 있다." 입술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조각(彫刻)처럼 창궁비연은 싸늘하고 강인한 면모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십오랑." "예, 각주." "나를 부른 이상, 이전에 내가 명한 두 가지 임무에 대해 성과가 있었을 텐데?" "그렇습니다." 십오랑 음소아는 조용히 비파를 내밀었다. 비파는 가공할 암기이다. 열두 개의 줄 가운데 세 개는 암기를 발사하는 장치 노릇을 한다. 현을 하나씩 퉁길 때마다 금강불괴를 파괴시킬 정도의 강력한 암기들이 발사되어 나간다. 그것은 기관에 의해 발사되는지라 이제껏 단 한 번도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다. 비파는 가볍게 뒤집어졌으며, 소책자 한 권이 떨어져 내렸다. "두 달 간 조사한 모든 것입니다." "……." 창궁비연은 소책자를 손에 쥐었다. 소책자 안에는 두 가지 사항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은 이러한 것이었다. <천겁만마전(千劫萬魔殿)의 십대세력은 분열되어 가고 있으며, 마도종사는 십대세력을 마음대로 경영할 힘을 상실해 가고 있는 듯. 하나, 전대 마도의 절대자 헌원무기(軒轅無奇)의 친아들 자방(子房)이 나타난다면 사정이 달라질 것임. 헌원자방은 소마제(少魔帝)의 신분이며, 그가 나타날 경우 마도세력은 일대 부흥하게 될 것임. 소마제 헌원자방의 거처는 미궁이며, 현재 밝혀진 바에 의한다면 그는 죽은 사람으로 여겨짐.> 헌원자방(軒轅子房). 살아 있다면 그의 나이 이십오 세일 것이다. 그는 십 년 전 사라졌다. 마도인들은 그가 왜 사라졌는지 모르나, 대외살각 쪽에서는 그가 어떠한 이유로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알고 있다. 그가 사라진 이유는 그의 숙부(叔父) 때문이라는 것을……. 그렇다. 헌원자방은 마도의 후계자이되 나이가 어렸으며, 그러하기에 그의 숙부의 야심으로 인해 제거되어 버린 것이다. 현재의 마도종사는 마도맹주의 자리를 도적질한 자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백 년 동안 어둠 속에서 힘을 비축한 마도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 강성하다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백도와 정면으로 부딪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추악한 과거의 앙금이 아직 가셔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도의 비극, 그로 인해 강호가 평온을 유지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의 기록. 그것 또한 마도인들이 모르는 마도의 비밀을 적고 있었다. <천겁만마전 배후의 삼대세력에 대한 비밀이 수년의 치밀한 추적으로 인해 드러나게 되었음. 천겁만마전의 배후에는 삼대마정(三大魔井)이 있는 바, 그 이름은 아래와 같음. 묵정(墨井), 혈정(血井), 환희정(歡喜井). 묵정은 폐쇄된 상황이되, 가장 두려운 잠력을 지니고 있음. 그 곳의 후계자인 묵월(墨月)은 백도에 은잠한 상황이며, 마도는 위급시 묵월에게 명령을 내릴 것임. 묵월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음. 어쩌면 묵월조차 자신이 묵월이라는 것을 알지 못할 수도 있음. 혈정은 살수들을 기르고 있는 장소이며, 헌원자방의 명령에만 복종하기에 현재의 마도맹주는 그들을 부르지 못함. 환희정(歡喜井)은 오대살천(五大殺天)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천겁만마전의 중심 장소임. 환희정의 휘하에는 오대살천 이외의 양대조직이 있는 바, 비폭열사궁(飛瀑熱砂宮)과 사형마전(死刑魔殿)으로 밝혀졌음.> 창궁비연은 그 대목에 이르러 눈에서 한망(寒芒)을 일으켰다. "드디어… 알아 냈군." 그는 사형마전이라는 이름에 주위를 기울이는 듯했다. 그는 지극히 공적인 인물이며, 개인적인 정서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인물이다. 하나, 사형마전이라는 단체가 천겁만마전의 휘하세력이라는 글을 읽으며 기이할 정도로 흥분해 하고 있었다. <사형마전은 당세의 마도맹주 마황의 친위세력 가운데 으뜸 가는 세력임. 사형마전의 괴수는 사형마제(死刑魔帝). 그의 거처를 추적한 바, 그는 오대산(五臺山)에 칩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내게 되었음.> "사형마제, 드디어… 찾아 내었다." 창궁비연은 주먹을 꽈악 쥐었다. 그의 눈에서는 화광(火光)이 뿜어져 나왔다. 십오랑은 조심스럽게 그를 올려다봤다. 그녀의 눈빛에는 근심의 빛이 가득했다. "각주, 소맹주는 반년 간 대외살각의 활동을 중지하라 명하셨습니다. 한데, 활동을 개시하실 것이신지……?" "십오랑, 나는 맹주의 전인이다. 맹주는 내게 진원지기를 전수하셨으며, 내게 대외살각주의 임무를 내리셨다. 그러하기에 나는 지난 오 년 간 살업에 앞장 선 것이다. 나는 맹주의 명에만 따른다. 그것이 나의 할 바이다. 매옥당 대협은 현재 소맹주일 뿐이다. 그가 맹주가 아닌 이상 나는 그의 명에 따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창궁비연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가공할 살기가 배어 있었다. 그는 십오랑의 얼굴을 힐끗 보며 말했다. "사형마제는 맹주를 협공한 백팔(百八) 자객(刺客)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죽어 마땅한 인물이다. 그의 거처를 알아 내게 된 이상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그것은… 그를 가차없이 죽여 버리는 일이다." "아……!" 십오랑은 입술을 가볍게 벌렸다. '여전하시군요, 각주.' 십오랑의 눈에 습막이 맺혔다. 그녀는 창궁비연을 가장 잘 안다. 창궁비연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되, 그녀는 창궁비연의 면모에 대해 천하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가슴에는 창궁비연에 대한 연모의 정이 불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차가우신 분. 당신을 흠모하고 있습니다. 비록 한 번도 당신의 가슴에 안기지 못할 추녀라 할지라도, 내 가슴의 문은 늘 당신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십오랑은 애써 호흡을 진정시켰다. "그럼 친히……?" "그렇다. 사형마제는 내 손에 죽어야 한다." "……." "매옥당은 강호의 깊은 부분을 알지 못한다. 그는 내가 피를 흘리는 것을 증오하며 나를 야수라 멸시하고 있다. 진짜 강호를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왜 야수처럼 광폭히 굴어야 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물론 나는 단 한 사람도 나를 이해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늘 강하십니다." 십오랑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창궁비연은 언제나 강한 인물이었다. 그는 마도거마를 척살하는 가운데 스물다섯 번 심각하게 다쳤으되, 단 한 번도 좌절하지 않았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사람. 보통의 경우, 가까운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나, 창궁비연은 측근 인물들에게 깊은 존경을 받고 있었다. "운학(雲鶴)에게 거조(巨鳥)를 마련해 두라 일러라." "언제 떠나실는지?" "자시(子時)." "명대로 하겠습니다." "좋아." 창궁비연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소매섶을 흔들었다. 봉투 하나가 탁자 위에 떨어져 내렸다. "각 인에게 주는 밀명서이다. 각자 읽고 적은 대로 행하기 바란다." "예." "십오랑, 나는 늘 너의 도움에 감사해 하고 있었다." "과찬이십니다." 십오랑의 볼이 약간 붉어졌다.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가 쳐들었을 때, 창궁비연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그는 거의 찰나적으로 은잠술을 써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언제나… 먼 곳에 계신 분. 가깝고도… 먼 분." 십오랑은 장탄식을 토해 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서는 두 줄기 이슬이 굴러 떨어지기 시작했다. 축시경. 앙천각의 서기 철무정은 지하(地下) 석실(石室)로 접어들었다. 아마도 그는 그 곳에서 사흘 간 폐관하게 될 것이다. 철무정은 그 곳에서 서적들을 정리하며 미처 해독하지 못한 고서들의 뜻을 플이할 것이다. 그가 폐관을 한다고 해서 앙천각의 일이 달라질 것은 없다. 그는 자주 폐관을 해 왔기에 그의 얼굴이 며칠 간 보이지 않는다 해서 이상하게 여길 사람 또한 없는 것이다. 그의 생활은 그렇듯 고독한 것이었다. 자야(子夜), 가장 깊은 밤이다. 대륙의맹의 허공으로 중양절의 달이 떠올랐다. 의맹의 구석진 곳, 죽림(竹林)이 상당한 면적에 걸쳐 펼쳐져 있는 곳이 있다. 그 곳은 의림(醫林)이며, 대륙의맹의 무사들 가운데 내상(內傷)을 입은 사람이 있을 때에는 의림에 가서 치료를 받게 된다. 의림주는 방운학(方雲鶴). 그는 삼십사 세 되는 의원으로, 입가에 늘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두 다리가 잘려진 채 윤거(輪車) 위에서 생활하는 인물. 그는 불구자였으며, 서른네 살이 되는 지금까지 독신으로 지내고 있었다. 죽림 깊은 곳, 방운학은 죽립인(竹笠人)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었다. 방운학의 입가에 늘 머금어지고 있던 미소가 지금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는 상대를 향해 장읍을 취하고 있었다. "준비하시라 한 모든 것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좋아." "매옥당 소맹주의 눈을 피해 가며 준비하느라 힘들었습니다. 매옥당 소맹주는 대외살각의 일을 정면으로 방해하시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각주와 소맹주는 사형제간(師兄弟間)으로 알거늘……." 방운학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살각의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밀이지. 그러니 내부 사정에 대해 깊이 알고자 하지 말게." 창궁비연, 그는 꽤나 무뚝뚝히 말했다. 그는 대외살각을 책임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휘하에는 여섯 명의 무사가 있으되, 그들이 하는 일은 십오만 백도협사들이 하고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명심하겠습니다." 방운학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곤륜(崑崙) 출신이다. 그는 의원이며 암살자였다. 그의 가문이 마도에 의해 붕괴되지 않았더라면, 그가 대외살각의 암살자가 되기를 자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면구 제작이며 화기 제작에 조예가 있는 엽상(葉霜)이라는 인물과 더불어 대의살각주의 좌우비위(左右臂衛) 노릇을 하고 있었다. 하나, 그는 아직까지 창궁비연의 얼굴을 보지 못한 처지였다. 지금도 창궁비연은 그에게 얼굴을 보여 주지 않고 있었다. "맹주님의 병세는?" "점점 깊어져 가고 있습니다." "으음……!" "그 분은 각주를 뵙고자 하십니다. 비록 말씀은 하지 못하시되,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고 계십니다." "……." 창궁비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얼마 후, 그는 간단한 행낭을 지닌 채 죽림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풍곡(風谷)이라 일컬어지는 곳, 늘 돌개바람이 죽엽을 말아 올리고 있는 지역에 한 마리 거응(巨鷹)이 나래를 접고 머물러 있었다. 창궁비연은 새등에 올라탔으며, 새는 울음소리도 내지 않은 채 빠른 속도로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으며 찰나지간에 하나의 점(點)으로 화했다. 3 삼 일 후, 오대산(五臺山). 다섯 개의 거대한 봉우리가 다섯 개의 누대마냥 버티고 있기에 오대산이라고 불리우는 거산이다. 그 중의 북대(北臺). 울울한 산림이 늘 푸른빛이다. 계절에 따라 붉게 물들고 누렇게 조락해 가는 나무가 아니라, 늘 푸른 송백(松柏)에 뒤덮여 있기에 북대의 빛은 늘 푸르기만 한 것이다. 오대산 북방의 거산, 그러하기에 다른 곳에 비해 겨울이 빨리 찾아온다. 북대의 정봉(頂峯)은 벌써 희끗희끗한 눈발에 뒤덮여 있었다. 그 곳에는 한 채의 궁관(宮觀)이 세워져 있다. 이름하여 무량보전(無量寶殿). 지금 무량보전의 지붕은 눈에 하얗게 덮이고 있다. 한데 무량보전의 화원에는 짙붉은 백일홍(百日虹)이 가득 뒤덮여 있지 아니한가? 눈이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꽃이 만발해 있는 광경이 기이해 보인다. 우르르르릉-! 뇌정일까? 무량보전 깊은 곳에서 우레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깊디깊은 암실, 상당히 너른 장방형의 석실은 혈무(血霧)에 잠기고 있었다. 매끄러운 대리석 바닥 위로 핏빛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 오르고 있으며. "하아아… 하아아……!" 언제부터인가 가쁜 숨소리가 교차되고 있었다. 하나의 옥단(玉壇)이 마련되어 있으며, 옥단 위에는 해괴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전라(全裸)의 미녀 네 명이 사지를 바둥거리고 있으며, 도사 옷차림의 중년인 하나가 미녀들 가운데 결가부좌를 한 채 기이한 운기행공(運氣行功)을 하고 있었다. 지금 그는 향로 하나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는 바, 향로 안에서 자욱한 핏빛 안개가 피어 오르며 그것이 꿈틀꿈틀 기어다니며 네 명의 미녀들의 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회음부를 통해 흘러 나와 도인의 장심(掌心)으로 빨려들기를 거듭하고 있었다. 태음(太陰), 태양(太陽), 소음(少陰), 소양(少陽)의 기운을 한데 모으는 사상마밀수(四象魔密手). 중년도인은 오랫동안 절전이 된 마도비전을 연마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보라! 석실 한 귀퉁이에 쌓여져 있는 백골산(白骨山)을. 적어도 삼백 명의 신체에서 발생한 해골이 을씨년스러운 정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쓰으으- 쓰으으-! 짙게 피어 오르는 혈무, 그 가운데 하나의 고검(古劍)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고검의 길이는 다섯 자, 홍옥을 깎아 만든 듯 검신(劍身)이 붉은빛으로 타오르고 있다. 놀라운 것은 검에서부터 은은한 미녀 영상이 어른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산발한 채 허공으로 떠오르는 나녀의 그림자. 오오, 그렇다면 고검은 바로 흡혈천사검(吸血天邪劍)이란 말인가? 삼백삼십구(三百三十九) 인(人)의 생혼(生魂)과 생혈(生血)을 먹고 악마지검(惡魔之劍)으로 화한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악마의 검. 검의 주인은 검의 영혼을 지배하며, 검은 검기(劍氣)만으로도 백 장 밖의 사물을 철저히 파멸시켜 버린다. 흡혈천사검은 그 제조 과정의 잔혹성 때문에 마도에서조차 금기로 여기는 마물인 것이다. 우르르르릉-! 흡혈천사검은 우레 소리를 내기 시작하였으며, 실뱀이 기어가듯 흘러다니던 혈무가 하나로 뭉치기 시작하며 아름드리 핏빛 기둥이 형성되었다. 꿈틀거리는 나녀들의 피부에서 고약한 내음이 풍기는 땀이 배어 나온다. 여인들은 동녀(童女)들로서 남자와 교접한 일이 전혀 없는 순음지체(純陰之體)들이다. 중년도인은 동녀 삼백삼십구 인의 생명을 희생해 가면서 흡혈천사검을 완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일의 완성을 위해 삼 년 전에 무량보전에 은거하였으며, 열두 가지 독액(毒液)을 복용하고 난 후 사상마밀대법의 운용에 돌입한 것이다. 콰아아- 콰아아-! 숨을 막히게 하는 마세(魔勢). 핏빛 안개 기둥은 중년노인의 몸뚱이를 축으로 하여 도는 수레 바퀴마냥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흐아아아……!" "으으… 으으……!" 교성인지 기성인지 벌거숭이 여인들은 사지를 버둥거리기 시작하였으며, 팔만사천(八萬四千) 모공(毛孔)에서부터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피는 안개로 화하며 안개 기둥 속으로 스미어 들어갔고, 흡혈천사검의 검신에서 번지는 혈광이 더욱 강렬해졌다. 우우우-! 유계에서 흘러 나오는 듯한 흐느낌 소리. 급기야 흡혈천사검은 마령(魔靈)을 흡수하여 울음소리를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순간, 굳어질 대로 굳어졌던 중년도인의 입가에 웃음꽃이 피어 올랐다. "성공… 했다!" 그는 눈을 희미하게 떴다. 한순간 무시무시한 자망(紫芒)이 번갯불처럼 토해져 나왔다. "아무도 얻지 못했던 흡혈천사검이 내 손에 쥐어지게 되었다. 크흣흣… 항차 나는 마도제일검(魔道第一劍)이 되리라." 그가 음침히 웃을 때, 흡혈천사검의 울음소리가 더욱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검은 살기에 운다. 그리고 명검일수록 그 강도가 강해지는 것이다. 중년도인의 웃음이 문득 멈추어졌다. "설마… 살기(煞氣)를 느꼈단 말인가?" 그는 흠칫 놀라며 손을 내밀었다. 그가 흡혈천사검의 검자루를 꽈악 거머쥐었을 때, 자욱한 핏빛 안개 속에서 하나의 회영(灰影)이 언뜻 나타나고 있었다. 헌칠한 키의 청년. 중년도인이 문득 느낀 인상은 그러한 것이었다. "너는……?" 중년도인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그대가 사형마제(死刑魔帝)인가?" 청년은 고독한 얼굴로 그렇게 되물었다. 나직하고 힘없는 목소리인 데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권위를 갖고 있었다. 중년도인은 저도 모르게 심중의 말을 토하고 말았다. "그… 그렇다. 내가 사형마제이다." "네가 사형마제라면… 내게 죽어야겠다." 청년은 천천히 다가섰다. 그는 허공을 디디며 다가서는데, 그가 걸어오고 있는 곳의 뒤쪽에는 동혈 하나가 뚫리어 있었다. 그는 내공의 힘으로 벽을 쪼개고 난입해 든 것이다. 청년은 유성(流星)처럼 닥쳐들었고. "감히… 나를 암살코자 하다니……." 사형마제는 사악한 목소리로 외치며 흡혈천사검을 위로 쳐들었다. 우우웅-! 검이 울며 거대한 마녀영(魔女影)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삼백삼십구 인의 마령으로 탄생된 마녀, 내공이 절정에 이르지 못한 자라면 마녀영에서 뿜어지는 마기에 심령이 얼어붙는 공포를 느낄 것이다. 마검 흡혈천사! 검기는 찰나적으로 팔십일방(八十一方)을 휘어감으며, 십 장 반경을 검막(劍幕)으로 휘어감았다. 파파파팟-! 검세가 주위를 휩쓰는 찰나. "내가 이겼다!" 사형마제는 자신의 검법이 적을 베었다는 것을 확신하며 순간적으로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츳-! 무엇인가 그의 목을 향해 다가섰다. 칙칙한 빛깔의 검, 그것은 단선(單線)을 끌며 다가섰으며… 사형마제는 망막으로 접어드는 검의 모습에 놀라 입을 따악 벌렸다. "무영류(無影流)! 숙야장청의 전인이군?"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가운데, 상대의 검은 그의 목젖으로 파고들며 그의 목뼈를 깨끗이 끊어 버리고 있었다. 한 청년, 그의 가슴께는 흡혈천사검에 의해 베어졌으며 피가 진득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빠른 시간에 상대를 베기 위해 상대의 초식을 가슴으로 맞아 내며 상대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섰던 것이다. 그는 이미 일 년 전 금강불괴의 신체를 이룬 바 있다. 백련정강으로 만든 도끼로 내리친다 해도 그의 피부를 상하게 할 수 없다. 흡혈천사검이 아니었다면 그의 피부에 이렇듯 상처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고통에 익숙한 듯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으며, 손가락으로 혈도를 짚어 흐르는 피를 지혈시켰다. "사형마제, 마도 서열 이십칠 위 자. 또한 숙야 노조를 암습하는데 끼였던 인물이기도 하지." 그는 천천히 신형을 틀었다. 뚝- 뚝-! 그의 가슴에서 피가 떨어져 내린다. 상처는 상당히 큰 듯 피가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걸음을 내디뎠다. "사형마제는 천겁만마전이 비밀리에 기르는 전문 살수. 그가 제거된 이상, 마황(魔皇)은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느릿느릿 말하는 자, 그는 바로 창궁비연이었다. 그는 새를 타고 무량보전의 남쪽 숲으로 날아 내렸으며, 기오막측한 잠입술을 발휘하여 지하 연무관으로 잠입해 든 것이다. 창궁비연의 은잠술은 이미 절정에 올라 있다. 한 줄기 미풍을 타고 몸을 날리는 풍영류(風影流), 낙옆 뒤에 몸을 감출 수 있는 잠형둔행(潛形遁行), 검보다 빠르게 신형이 나아가는 비검신(飛劍身). 그가 수백 번의 살행을 하고서도 아직 천하에 그 정체를 밝히지 않은 것은 가공할 살인술을 터득하기 이전, 완벽한 신법을 터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악마는 죽어야 한다. 아마도 마도인에게 처절히 당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마도인을 무참히 제거하는 데 증오심을 나타낼 수도 있다. 하나, 나의 방법은 바뀌어지지 않는다. 내가 무사(武士)가 되리라 생각한 그 날 결심했던 것은, 내가 무림계를 떠나는 그 날까지 바뀌지 않으리라." 창궁비연은 단하를 뒹굴고 있는 네 구의 시체 곁으로 다가섰다. 그가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네 여인은 구했을지 모른다. 그는 시신 가운데 눈을 감지 못하고 죽은 시신을 보자, 측은한 시선을 던지며 손바닥으로 시신의 눈을 감겨 주었다. "과거 내게 중요한 한 여인이 이러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지. 그 날… 나는 전 마도를 괘멸하리라 맹세했었지." 그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상처가 쑤셔 오는 것인지, 그의 뒷모습이 약간 휘청거렸다. "벌써… 오(五) 년(年)이 지나갔군." 그는 중얼거리며 조용히 사라져 갔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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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 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