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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편90:12)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명기10:1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 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세가12:3)(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
세였더라.:4)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이사야43:21)
가우스
1234+4321=5555
5+5+5=15
5*5*5=125
5*5*5*5=625
[5+5+5+5=20]
27+28=28+27=55, 28*27=750+6
55*55=3025
빛의 속도 30만Km/sec
삼공이오 54==>55
라인강의 기적 95+95=190 95*95=9025 103 통일
한강의 기적 1+2+3+4=10 1*2*3*4=24
태양지름1.392.000Km, 햇빛지구도달시간 8.19/sec
太陽定數: 지구의 1Cm2 面積에 太陽光線을 垂直으로 받을 때
1分간에 도달되는 太陽光線의 熱量 1.946 Cal 임
1908+55=1963, 12:12 Pole Star(北辰)
1948+55=2003, 12:1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고린도 전서13:2)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시편3:8)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更點)같을 뿐임이니라.(시편90:4)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디모데 후서3:16)(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17)
80211(4:27) 18265(4:27) 53595(4:28)
성경에서의 수(數)
기타 수론(數論)
<11> 혹은 <열하나>라는 수가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경우는 아래와 같다.
“야곱이 밤에 일어나서 <열 한> 아들을 데리고 얍복 나루터를 건넜다”(창 32:22)
“호렙산에서 가렙산 바네아까지 <열하루> 길 이었다” (신 1:2)
“성막을 덮은 둘째 휘장은 <열 한>폭 이었다” (출 26:7)
“시드기야는 <십 일>년을 통치하며 악을 행하였다” (대하 36:5)
<10> 수는 하나님의 완전한 질서를 상징하는데,
<11>은 거기에 무엇을 더하는 것이니 결국 그 질서의 파괴 훼손을 의미한다.
<11>은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상징하는 <12>에서 하나가 모자라는 숫자이다.
그래서 결국 <11>은 10+1이거나 혹은 12-1로서 '무질서(無秩序: disorder)'와
‘불완전(不完全: imperfection)', '부족(不足: insufficiency)',
미완성(未完成: in completion)'을 뜻한다.
<12> 혹은 <열 둘>이란 숫자가 구약성경에 나타난 것은 아래와 같다.
“이스라엘은 <열 두> 지파이다.” (창 49:28)
“엘림에는 샘물이 <열 두>개가 있었다.” (출 15:27)
“모세가 시내산 아래 쌓은 제단의 기둥은 <열 둘>이다” (출 24:4)
“솔로몬이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세운 관장(官長)이 <열 둘>이다” (왕상 4:7)
“엘리야가 여호와의 단을 쌓은 돌은 <열 둘>이다” (왕상 18:31)
“엘리사가 밭을 가는 소는 <열 두>겨리였다” (왕상 19:19)
“대제사장의 흉패(胸牌)에 붙인 보석은 <열 둘>이다” (출 28:21)
“<열 두>개의 떡덩이” (레 24:5)
“<열 두> 지팡이 (민 17:2,6),
“<열 두> 정탐꾼” (수 3:12, 4:2)
“요단강 가운데 세운 <열 두>돌” (수 4:9)
“예수님의 <열 두> 명의 제자” (마 10:2)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남은 빵조각과 물고기가 <열 두> 광주리에 가득 참” (막 6:43, 눅9:17, 마 14:20)
“예수님이 <열 두>살 되던 해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심” (눅 2:42)
“예수님이 베드로를 책망하시며, <열 두> 영도 넘는 천사를 보낼 수 있다하심” (마 26:53)
“해를 입은 한 여자는 머리에 <열 두>면류관을 씀” (계 12:1)
“새 예루살렘 성에 <열 두>대문, <열 두>기초 석,
<열 두>문” (계 21:12,14,21) 등 허다하다.
그리고 12수는 신성하고 완전한 하늘의 수 3과,
물질적이고 유기체적인 것을 상징하는 4의 곱(3×4)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은혜의 수 5와 영적 완전수인 7의 합으로 통치적 완전을 의미한다.
해와 달은 낮과 밤을 다스리고 지배(支配)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들은 황도대(黃道帶: zodiac)의 12 표시를 따라 통과하여
12개월 동안 다스려 1년을 완성한다.
따라서 <12>의 공통 뜻은 “완전한 통치(統治: perfection of government or governmental perfection)”, 혹은 “지배(支配: rule)'를 상징한다. 더불어 12지파, 12명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듯이, 12라는 수가 종족이라는 낱말과 함께 나타날 때는 ‘굳게 결속된’ 이란 뜻을 상징한다.
<13> 곧 <열 셋>이란 수사가 나타나는 곳은 아래와 같다.
“7왕들이 12년 동안 그돌라오멜(chedorlaomer)을 섬기다가
제<13>년에 배반했다. (창 14:4)
“이스마엘이 <13>세에 할례를 받았다.” (창 17:25)
“솔로몬이 자기 궁궐을 <13>년 동안 건축했다. (왕상 7:1)
이상과 같이 <13> 혹은 <13>의 배수는 배반(背反), 반란(反亂), 모반(謀反),
‘반역(反逆: rebellion), 배교(背敎: apostasy), 분열(分裂),
'나쁜 전조(前兆: ill omen)'등의 개념과 연관이 있다.
<14> 수는 7의 2배수(7×2=14) 이다
“거룩한 완전(完全) 양적(量的)인 것”이 강조된다. (창 31:41, 46:22, 민 29:13, 왕상 8:65, 마 1:17)
<15>수는 3의 5배수 (3×5=15) 이다.
“거룩한 완전(完全), 질적(質的)인 것”이 강조되어 있다.
즉 질적인 완성에 은총을 곱한 것으로 3의 5배이다. (레 23:34, 왕 하 20:6. 사 38:5)
<17>수는 두 완전 수(7+10=17)의 합이다. 이 숫자는 “영적인 완전(spiritual perfection)' 혹은 ”영적 질서의 완전(perfection of spiritual order)을 뜻한다. “에라토스테네스의 체”의 소수(素數)와 같이 성경의 숫자<17>은 어떤 수의 합이 아니고 나눌 수 없는 불가분의 수(數) 즉 기본 소수(素數)이다. 7개의 기본수는 1, 3, 5, 7. 11. 13, 17이다.
<40>수는 4의 10배수(4×10=40) 이다.
“노아 홍수 때 비가 <40>일간 내렸다” (창 7:4,17)
“노아 홍수 시 산들의 봉우리가 보이고 <40>일이 지나 까마귀를 내보냄” (창 8:6)
“모세는 왕궁에서 <40>년간 애 굽의 학술을 배우고 (행 7:23), 미디안 땅에서 <40>년을 나그네로 보낸 후 (행 7:30), 이스라엘 민족을 <40>년간 이끌다가 120세에 죽음 (신 34:7)”
“갈렙이 정탐꾼으로 보내어졌을 때 나이 <40>세 였음.” (수 14:7)
“12명의 정탐꾼이 <40>일간 가나안 땅을 정탐함.” (민 13:25)
“이스라엘 백성은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함” (출 16:35, 민 14:33-34, 수 5:6, 행 7:36,42)
“모세가 시내산 에서 <40>일을 지낸 후 십계명을 받음 (출 34:28, 신 9:9,11)
“태형도 <40>을 넘기지 못하게 하심” (신 25:3)
“제사장 엘리가 목이 부러져 죽을 때 사사 된지 <40> 년이었음” (삼상 4:18)
“골리앗이 <40>일을 조석으로 나와 조롱함” (삼상 17:16)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이 <40>년” (대상 29:27)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이 <40>년” (열상 11:42)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해 <40>일간 여행함” (왕상 19:8)
“요나가 니느웨를 향하여 <40>일이 지나면 성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였다.” (욘 3:4)
“에스겔이 우편으로 <40>일간 누워서 유다 족속들의 죄를 담당했다” (겔 4:4-6)
“예수님의 <40>일간 금식” (마 4:2)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간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말씀하셨다.” (행 1:3)
이상과 같이 <40> 수는 ‘시련(試鍊 : trial and testing)' ’견습(見習 : apprenticeship)'
준비(準備 : preparation)의 뜻이 있다.
그리고 <40>의 배수(倍數)로는
<400>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라”(창 15:13)
<4,000>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여 죽임을 당한 자가
<4,000>명가량이라” (삼상 4:2)
<40,000> “(수 4:13, 삿 5:8, 삼하 10:18, 왕상 4:26, 대상 12:26) 등이 있다.”
<42>는 영원한 평화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교회에 대한 암시라고 본다. 중세의 성경주석 학자들은 42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 굽을 떠나 시나이로 가면서 머물렀던 마흔 두 처소를 연결시킨다.
또한 42는 부정적으로 심판의 수라고도 본다.
이 세상의 심판자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으로부터 42대째 태어났고,
선지자 엘리사는 자신을 놀리던 아이들 중 42명을 암곰에 의해 죽게 만들었다 (왕 하 2:24). 고대 이집트의 ‘사자(死者)의 서’에는 망자들을 처리하는 심판관 42명이 나온다.
<49>는 성스러운 수 7의 제곱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이후 제자들에게 성령이 강림하기까지의 기간과 관련이 있다.
<50>수는 5의 10 배수(5×10)이다. 50은 구원 수이며 성경에는 거의 300회가 나온다.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소돔 성에 의인 <50>인이 있다면 멸하시겠냐고 간청함” (창 19:24)
<70>수는 7의 10 배수(7×10=70) 이다. 70의 공통 뜻은 보편성을 상징한다.
“대홍수 후 셈과 함과 야벳의 자손들이 <70>인이었다.” (창 10장)
“야곱이 그 후손 <70>인을 데리고 애 굽으로 내려갔다.” (창 46:27, 출 15:27)
“유대인이 <70>년 간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였다.” (렘 25:11, 29:10)
“모세는 무리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70>인의 장로들을 택하였다.”(민 11:16)
“<70>인이 기뻐 돌아와 예수님께 귀신도 항복함을 보고함” (눅 10:17)
따라서 <70>수는 ‘보편(普遍)’ 수이며 ‘구원(救援)’의 수이다.
신앙의 수학자들
역사적으로 볼 때 유명한 과학자들과 수학자들 중에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수학이나 과학에서 기독교에로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러나 수학자, 과학자의 인격 속에서는 기독교 신앙과 수학적 진리가 모순 없이 공존한다. 따라서 본인은 그 공존 속에서 살아간 신앙의 수학자들을 간략하게 소개함으로서 기독교와 수학에 한 걸음 더 접근 시키고자 한다. (신앙인의 측면에서 신부도 포함되어 있다.)
● 로저 베이콘 (Roger Bacon, 1214~1292 AD)
프란시스코파의 신부이며,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 물리학과 화학을 연구, 자연 철학서 저술, “자연과학은 주의 깊은 관찰과 실험적 기초가 필요하며 천문학과 물리학은 수학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하였다.
●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 (Nicolaes Copernicus, 1473~1543 AD)
폴란드의 천문학자→신학자→철학자→수학자→의사, 후에 태양계의 변화에 대한 연구에 전생을 바쳤다. 마침내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저서를 통해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발표했다. 그러나 ‘천동설’을 믿고 있던 당시의 종교계와 과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그로 말미암아 박해를 받았다. 그 후에 갈릴레이와 케플러에 의해 빛을 보게 되었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avinci, 1452~1519 AD)
이탈리아 플로렌스와 피사라는 도시의 중간쯤 되는 곳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집안사정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조부모 손에서 자랐으며, 7세 때에 교회학교에 입학하여 경건한 신앙의 소유자가 되었다. 천재적 물리학자→해부학자→미술가→건축가→수학자로 역학연구에 전념하였으며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등 수많은 걸작을 남김으로 르네상스 문화를 이룩하기 위하여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고 하였으며, “오오 학자들이여 수학을 배워라, 그리고 기초 없이 건설하지 말라” “수학자가 아닌 자는 나의 원리를 읽을 수 없다” 등의 명언을 남겼다.
● 요하네스 케플러 (Johannes Kepler, 1571~1630 AD)
뛰어난 수학자요 천문학자였고 현대 천문학의 기초를 닦은 요한네스 케플러는 독일 베일 지방의 아주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며 한 때 개신교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면서 천체와 별들의 운행에 관한 공부에도 몰두한 특별한 사람이었다.
1600년 케플러는 덴마크의 유명한 크리스천 천문학자였던 티코 브라헤(1546~1601)와 만나면서 본격적인 천문학자가 되었다. 브라헤가 임종하면서 30세 된 청년 과학자에게 자신의 천문학적 자료를 모두 인계하고 자신이 연구해 온 일들을 완성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임종했으며, 그리고 그가 맡았던 국왕 루돌프 황제의 수학담당관으로 임명되어 연구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드디어 케플러는 유명한 “케플러의 법칙”을 발견하여, 최초로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을 수학적으로 밝혔으며,
아이작 뉴턴은 그의 유명한 만유인력의 법칙을 케플러의 제3법칙으로부터 이끌어 낸 것이다.
케플러는 그의 저서 “우주의 신비”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나와 함께 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을 우연히 내가 발견하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그 이유는 만일 코페르니쿠스가 말한 것이 참이라면 내가 그것을 입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했기 때문이 다” 라고 고백했다. 그는 또 은사인 마에스트린 교수에게 위대한 발견을 한 후 이렇게 편지를 쓰기도 하였다. “자연이라는 책 속에서 인정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위해 저는 제가 발견한 이 사실을 발표하고자 합니다. 저는 한때 신학자가 되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천문학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시 19:1)” 이 말씀은 케플러의 천문학연구에 있어 일생의 중심 사상이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연대 상의 문제에도 노력을 기울여 라틴 달력에 오류가 있음을 밝혀내고 예수님께서 실제로 기원전 4년에 탄생하였음을 주장하여 누가복음의 기록이 정확함을 변호하였다.
1618년 “우주의 조화”라는 논문을 완성하였을 때 이것을 그는 “신성한 설교요 창조주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찬송”이라고 고백했다.
케플러는 참으로 위대한 과학자였을 뿐 아니라, 누구보다도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이다.
● 파스칼 (Blaise Pascal, 1623~1662 AD)
프랑스 남부 오베르뷰의 클레몽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유명한 수학자이며, 과학의 천재였으며, 뛰어난 문학적 조예를 겸비한 문학가이기도 하였다.
12세 때 기하학에 관심을 갖고 독자적으로 공부하여
「유클리드의 제1권 제32명제」를 증명하였고
16세 때 평면기하학의 “파스칼의 정리”를 발표하였으며,
30세에 “유체역학에서 파스칼의 원리”등 그 외 많은 발명품도 내 놓았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도 가장 가냘픈 한 줄기의 갈대와도 같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도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한 유명한 명구(名句)를 담은 ‘팡세’의 저자라는 것은 잘 알면서, 과학사에서 누구보다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파스칼과 동일인이라는 것은 너무도 쉽게 관과 해 버린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촉망받는 수학자로 주목받기 시작한 파스칼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에 관한 믿음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내가 연구하는 일들이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이 일들을 계속 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이다. 그분이 주시는 능력만큼만 밀고 나가면 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신앙 고백인가!
파스칼은 “자연은 창조주 하나님의 뛰어난 솜씨”라고 믿었으며
그는 양피에 자기 신앙 체험 서를 써서 외투 안쪽에 꿰매어 늘 입고 다녔다
그가 죽은 다음에야 발견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불!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의 하나님이 아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확신, 감격, 기쁨, 평안함.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곧 당신의 하나님. -중략-
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은 당신을 알지 못하였어도 나는 당신을 알았네. -중략-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나는 떠나 있었네.
나는 그분을 떠나 있었고, 부인하였네.
그리고는 십자가에 그를 못 박았네, 이제는 결코 떠나지 않으리라.
나는 당신을 잊지 아니 하리이다.
아멘.
“인간에게는 두 부류만이 존재한다. 하나는 자기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의로운 사람이며, 다른 하나는 자기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죄인이다.
(파스칼의 「팡세」중에서)
● 뉴턴 (Issac Newton, 1642~1724 AD)
1642년 유럽에서는 위대한 과학자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같은 해 성탄절에 다른 과학자 하나가 태어났다. 세상을 떠난 과학자는 망원경을 발명한 갈릴레이였으며, 태어난 과학자는 아이작 뉴턴이었다.
경건한 청교도이며 칼빈주의 자로 하나님의 주권을 확신한 신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요, 미분 적분학의 창시자인 수학자이면서, 그는 생전에 과학보다도 신학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고 한다.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우주의 경이를 수학적으로 표현했으며,
「만류인력의 법칙」「빛의 스펙트럼 발견」「다니엘서」「요한계시록 주해」를 남겼으며, 당시에 영국 천문학자인 할레이가 기독교를 비난한다는 소식을 듣고 뉴턴은 그에게
할레이, 자네가 천문학과 수학을 말할 때는 내가 들어 주지.
그러나 자네가 기독교를 말할 때는 안 듣겠네.
자네는 그것을 시험도 안 해보고 그러지만 나는 시험을 해 본 결과 참인 것을 알고 있네. (그의 깊은 신앙 체험이기도 하다).”
● 코시 (Cauchy, 1789~1857 AD)
신자로서 프랑스의 대수학자이며 극한 개념에 도전하여 성공하였다.
※ 그 외에 현대 수학의 개척자 오일러(1707~1783, 스위스)와
독일 수학자인 바일(Hermann Weyl, 1885~1955),
수학자이며 천문학자인 바로우(Issac Barrow),
수학자이며 근대 화학의 아버지 로버트 보일러(1627~1691),
미적분을 발견한 라이프니치(1646~1716), 등등 수없이 많이 있으며,
수학자 이외에 물리 화학 생물학자 중에도 신앙의 인물이 많이 있으나
여기서는 수학자만 소개하고 그 외에는 생략하고자 한다.
7. 결 론
지금까지 우리는 「성경과 수와 수학」을 연구함에 있어 성경말씀을 찾아보고
수학의 속성인 산술 성, 논리성, 추상성과 그 외에 고대인들의 수에 대한 신비적인 개념과 상징성을 들추어 내 보았다.
우리는 보통 「A와 B」라는 논제가 주어지면 「A와 B는」 부분 집합 관계가 아니면
사돈 관계인가? 아니면 형제간인가? 하고 추측을 하면서 도식적인 관계를 찾다보니
오류를 범할 때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성경과 그리고 창조와 수학」이란 논제는
필자가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기독교적 측면에서 수학을 논한다거나 수학의 측면에서
기독교를 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모든 것이 있는 성경말씀 그 자체가 논리의 바탕 위에 있고 정확무오 하기 때문에 수(數)와 수학(數學)이란 학문을 통하여 위대한 성경 말씀에 접근화 시키고 설명하기 위한 것이며, 그리고 성경의 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와 그냥 무심코 지나쳤던 진리를
찾아내는데 도움이 되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지으심은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으며,
그 지으신 만물의 조화와 질서에서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실 때 수학적인 언어를
사용하셨다는 흔적을 남겨 두셨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본 글의 제목을 「성경과 그리고 창조와 수학」이라 했다.
이러한 강의를 통하여 지금까지 여러분이 한쪽 면인 「수학의 산술성」이
수학의 전부인양 생각해온 오류를 버리고, 논리성 추상성 신비적 상징성 등
모든 면을 보는 참된 수(數)와 수학의 모습을 보면서, 성경에 나타난 숫(數)자를 볼 때
그 숫자를 기록한 기자의 신학적 의도, 문장의 문맥 전후 관계 및 성서 해석의
일반적 유추법(類推法), 그리고 수학적인 사색을 통하여 전체적으로 조명해 봄으로특히 구약 성경의 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수(數)는 만물의 근원이며, 자연 법칙이 수(數)의 질서이고 조화」라는 것을 알았던
피타고라스나,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 문 안에 들어오지 말아라」했던 플라톤이나, 「나의 자식들이 역사를 읽고 수학과 우주론을 공부해 주었으면 한다.
그것은 신에 따르는 일이며 인간의 사명이기도 하다」고 했던 크롬웰이나,
「수학의 수준은 그 나라의 국력에 비례한다」라고 했던 나폴레옹,
이 외에도 「약간이라도 시인이 아닌 수학자는 완전한 수학자라고 할 수 없다」라고 했던 독일의 스트라스(Strass, 1815~1897),「
수학은 과학의 여왕이다」라고 했던 독일의 가우스(Gauss, 1777~1855), 「
음악은 감각의 수학이고 수학은 이성의 음악이다」라고 했던 영국의 실베스터(Sylvester, 1814~1897)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수학은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수학은 우리의 사고나 생활 교육 등의 모든 영역에서 어떻게 그 바탕이 이루어져 있으며
필요하고 중요한가를 인생을 살고 간 그들이 남긴 말에서 알 수 있다.
본인은 이러한 이들이 남긴 말보다도 창 1:28「땅을 정복하라」, 빌 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믿음 위에 본 글을 다음의 성경 말씀으로 결론지으면서 끝내고자 한다.
○ 사 40: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Lift your eyes and look to the heavens: Who created all these? He who brings out the starry host one by one, and calls them each by name. Because of his great power and mighty strength, not one of thems missing.)」
○ 욥 38:4~6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 찌니라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Where were you when I laid the earth's foundation? Tell me, if you understand. Who marked off its dimensions? Surely you know! Who stretched a measuring line across it? On what were its footings set, or who laid its cornerstone)」
○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For from him and through him and to him are all things. To him be the glory forever!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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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올리시느라 수고하셨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