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二章 그는 돌아오지 못했다 1 닷새 후, 마황전(魔皇殿)은 눈발에 뒤덮이고 있었다. 천겁만마전(千劫萬魔殿)의 중심지, 이 곳은 세워진 이래 처음이라 할 정도로 가공할 포위망에 뒤덮여 있었다. 꾸역꾸역 모여드는 마도무사들, 이들은 구천십지(九天十地) 도처에 흩어져 악마의 이빨을 세우고 있던 지하 마도인들이다. 이들은 천겁만마전의 총단으로 모여든 이유는 오직 하나, 수년에 걸쳐 마도 요인을 암살한 바 있는 창궁비연이 마황전으로 가고 있다는 소문이 강호도처에 퍼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 놈을 죽여야 한다. 놈은 전 마도를 우롱하고 있다. - 놈은 능지처참 되어야 마땅한 자이다. 그 놈을 죽여 사지를 토막내야 하며, 그 놈 같은 자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것을 백도인들의 가슴에 아로새겨야만 한다. - 창궁비연은 오는 즉시 도륙난다! - 내가 놈을 죽이리라! 마도는 격동하고 있었다. 창궁비연은 피의 전설을 이룩한 장본인, 그는 마도인들에게 죽음의 대명사라 할 수 있었다. 하나 그가 단신으로 마황전에 온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제까지 그를 두려워했던 마도인들은 그를 협공하여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대거 모여든 것이다. 마뇌제갈 동천류는 초췌해 보였다. 그는 창궁비연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나서 이제까지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하고 있었다. "어이해 그런 바보 짓을……." 동천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는 창궁비연 자신보다 그를 더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는 창궁비연의 행적을 낱낱이 알고 있었다. 또한 그의 살인 수법이 어떠한지, 은잠하고 피신하는 습성이 어떠한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숨어 들어오며 제거 대상자들을 제거하고 나서 유유히 사라져 간다." 동천류는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봤다. "그가 나를 제거하기 위해 오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안배를 해 두었다. 한데… 그가 정면으로 나타날 줄이야?" 동천류는 언덕 위에 석옥을 짓고 있었다. 창을 통해 내려다보면 일대가 환히 내려다보인다. 그는 수천 무사들이 운집해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마도인들은 창궁비연을 제압할 욕심을 갖고 한 곳에 모인 것이다. 천겁만마전 일대엔 완벽한 천라지망이 펼쳐져 있다. 누구든 그 곳에 갇히면 빠져 나갈 수 없다.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그는 천재이다. 그는 한 번도 실수하지 않았다. 한데 그가 백치 같은 일을 저지르다니……!" 동천류의 손에는 쪽지가 쥐어져 있다. 매시진마다 쪽지가 한 장씩 전해진다. 쪽지는 순찰에 의해 작성이 되는 바, 쪽지에는 창궁비연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것이 기록되어 있었다. <창궁비연으로 보이는 자가 진령(秦嶺)에 나타남. 그는 극히 빠른 속도로 마황전을 향해 다가서고 있음. 그의 추종자는 없는 것으로 사려됨. 그는 완전히 단신(單身)임.> 또 하나의 밀지, 그것은 창궁비연으로 보이는 자가 한 시진 사이에 사백 리를 달렸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경공으로 미루어 보아 나타난 자는 분명 의맹 제일고수 창궁비연일 것이라는 의견이 기록되어 있었다. <분명 창궁비연임. 그는 어두워질 무렵 천겁만마전의 영내로 접어들 것임.> 동천류는 노을이 타오르는 것을 보고 있었다. 오늘은 십오 일이다. 그렇다. 눈만 내리지 않는다면 오늘밤 만월(滿月)이 뜨리라. <만월이 뜰 때 너를 죽인다!> 동천류는 묵월의 뼛가루와 함께 전달이 된 쪽지를 기억하고 흠칫 떨었다. "지금 그를 죽인다면 마도는 부흥할 것이다. 하나, 그를 제거하지 못한다면 천겁만마전은 종말을 맞이하리라!" 2 십오야(十五夜). 폭설로 인해 달은 보이지 않았다. 하여간 이 밤은 가장 밝은 십오 일의 밤이었다. 마황전에서 사십 리 떨어진 곳, 회색 그림자 하나가 눈보라를 뚫고 나타나고 있었다. "……!" 묵묵히 몸을 날리는 자, 그는 일정한 속도로 몸을 이동시켰다. 그는 은잠할 생각이 없는 듯, 인마(人馬)가 다니는 대로(大路)를 따라서 마황전을 향해 다가갔다. 차분한 호흡, 정서가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는 칙칙한 눈빛, 보이는 것은 단단해 보이는 아래턱뿐이었다. 그는 사흘 전부터 정체가 노출되었으며, 그가 여기까지 오는 가운데 적어도 사천 명이 그의 모습을 숨어서 확인했다. 하나, 그 동안 그를 가로막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만에 하나 그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경우, 그가 다른 길로 도망칠까 두려워한 천겁만마전 쪽의 배려에 따라 이제까지는 한 번의 저항도 없었던 것이다. 천겁만마전은 천라지망에 뒤덮여 있었다. 또한 마도의 마지막 무기라 불리우고 있는 십대마관(十大魔關)이 은밀히 구축되고 있었다. 십대마관은 천겁만마전의 최후 수비를 뜻한다. 그것이 붕괴된다면 천겁만마전도 붕괴가 된다. 한 사람을 막기 위해 십대마관이 펼쳐지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슷-! 회색 그림자는 마황전으로 가는 길을 쉬지 않고 움직여 갔다. 그는 대기 가득 퍼지고 있는 살기를 느끼고 있지 못한 듯, 입가에 미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모든 것이 예상대로 되어 가고 있다!' 철무정, 그가 단신으로 마황전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그의 활약은 은잠과 추적에 의한 제거였다. 하나, 지금 그는 자신의 정체를 공공연히 노출시켜 가면서 천겁만마전의 심장부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마지막 결전이리라!' 그가 서서히 마관의 초입으로 접어들었다. '이 싸움에서 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만에 하나 살아남게 된다면… 무사가 되지는 않으리라!' 철무정은 웃고 있었다. 그는 미치광이가 아니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여기 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는 수백 번에 걸쳐 치밀한 계획을 수립하였으며, 최선의 방법으로서 이러한 일을 선택한 것이다. '나는 의맹의 반역자! 내가 죽는다 해도 의맹에 부끄럽지는 않다. 후후… 이렇게 함으로 내가 의맹에 진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으리라!' 철무정은 습관적으로 손가락을 놀려 죽립 끈을 강하게 조였다. 폭설 가운데 그들은 히죽이며 앞을 보고 있었다. 묘한 자들이다. 상투 모양이 그러하며, 가슴에 폭이 좁은 예도(銳刀)를 안고 있는 자세 또한 그러하다. 일컬어 살혼마영수(煞魂魔影手). 숫자는 도합 여든하나이다. 그들은 동영신풍도(東瀛神風島) 출신이며, 천겁만마전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음지에 숨어 활동했는 바, 마황령(魔皇令)의 부름을 받고 실로 오랜만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들은 한 일자로 늘어서 있었다. 마치 인간의 장벽이 세워진 듯. 휘리리리링-! 살을 저미는 눈보라 속, 철무정은 빠른 속도로 능선 위로 다가가고 있었다. "저러한 진형은?" 철무정은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여든한 명의 도객(刀客)이 자신이 다가서는 것을 노려보고 있는 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군. 바로 일자마인벽(一字魔 壁)! 십대마관 가운데 첫번째이다.' 일자마인벽이란 공격 위주의 검진(劍陣)이다. 여든한 자루 도가 혼연일체로 움직이며, 마지막 한 사람이 쓰러지는 순간까지 진세가 거두어지지 않는다. 완벽한 차륜진. 거기 걸려들면 누구든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하기에 동영무림계 무사들은 일자마인벽이라는 이름 앞에 필살(必殺)이라는 형용사를 붙이기 주저하지 않았다. "ㅋㅋ… 바로……." "저 자인가?" "어리석은 중원무사(中原武士)! 스스로 무덤을 파는군." "카카카… 저 자의 용맹에 찬사를 보낼 뿐이다. 하나, 사람의 목숨은 오직 하나 뿐이지. 죽음은 한 번뿐……." 쓰으으- 쓰으으-! 여든한 명의 동영무사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 일자를 긋고 있던 진형이 휘어지기 시작한다. 그들은 철무정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원형진을 구축하였으며, 한 일자의 진세가 원형으로 굽혀지는 데에는 찰나의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진세가 완성되면서 진풍이 강하게 일어났다. 잔설이 설마로 화해 음험한 발톱을 곤두세우며 일대를 빙설 천지로 만들어 버렸다. 평지라면 먼지 바람이 일어 앞을 가렸을 것이고, 숲이라면 가랑잎이 날려 시야를 차단했을 것이다. '대단하군. 그러나 아직 멀었다.' 철무정의 눈빛이 빛난다. 동영무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빗발치듯 날리는 설화(雪花) 속에 모습을 감춘 지 오래이다. 휘이이잉-! 바람에 옷자락이 찢어질 듯 펄럭였으며, 한순간 철무정의 눈빛이 섬광을 토해 냈다. 일순. 삐이이익-! 우두머리 무사가 호각을 불었고, 순간, 여든한 자루의 장도(長刀)가 일제히 허공으로 떨쳐졌다. 치리리리릿- 팟-! 여든한 자루 도가 허공을 난도질하기 시작한다. 어디를 봐도 도벽(刀壁)이다. 거기 걸려들면 난도질당할 수밖에 없다. 치리리릿-! 현란히 피어 오르는 칼 꽃송이들, 수천 줄기의 도광이 눈부신 원호를 그리며 벼락이 되어 떨어진다. 피할 수 없다. 여든한 개의 칼 그림자를 피하려면 적어도 팔다리 하나쯤은 희생해야 한다. 도기(刀氣)가 난입해 들어올 때, 철무정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철무정의 입가에는 웃음이 피어났다. "섬개구리들!" 그는 중얼거렸으며 슬쩍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는 무게가 없는 깃털이 바람을 타고 떠오르는 듯 가볍게 떠올랐다. 그가 다가가는 방위는 도극(刀極)이 모여드는 바로 그 지점이었다. 그는 구태여 생로(生路)를 포기하고 사로(死路)로 돌입하는 것이다. 팔십일 살혼마영수들은 철무정이 사로로 파고들자, 도리어 멍청해지고 말았다. "죽기를 자처하는가?" "대체… 모를 자로다." "소문이 듣기에 중원제일의 승부사라 들었거늘……." 팔십일 살혼마영수들이 멈칫하는 찰나의 순간, 철무정은 한순간의 허점을 틈타 도극의 장벽을 뚫고 눈보라치는 하늘 위로 치솟아 올랐다. 그의 경공은 상상을 불허한다. 그가 지니고 있는 모든 무공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이 경신술이다. 그가 까마득히 높이 떠오르자. "빌어먹을!" "우리들을 속였군. 하나, 그 따위 눈속임은 한 번만 통할 뿐이다." "카아아… 떠올라라!" 여든한 명의 도객은 철무정을 따라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살풍(煞風)이 사위에 가득하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여든한 명의 인자(忍者)들. 그들은 마음이 하나로 통하고 있는 양 흐트러짐 없이 움직였다. 절대절명의 상황! 철무정은 허공에서 몸을 멈칫하며 손을 쳐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철구(鐵구)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히죽-! 그는 악마적인 웃음을 흘리며 철구를 힘껏 내던졌다. 철구는 빠르게 진세 속으로 날아들었으며, 여든한 자루의 장도 가운데 다섯 자루가 철구를 한꺼번에 덮쳤다. 이 순간까지만 하더라도 창궁비연은 백치로 여겨졌다. 도가 철구를 벨 때까지……. 일순. 콰르르르릉- 쾅-! 대폭발! 시꺼먼 기둥이 치솟아 올랐으머, 광풍이 사방을 휘말아 올렸다. "케에에엑……!" "크아아악……!"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매캐한 초연이 사방을 휘어감았다. 너덜너덜해진 팔과 다리가 이 곳 저 곳으로 튀어오른다. 태양파천황뢰(太陽破天荒雷). 한 발의 태양파천황뢰로 인해 십대마관의 첫번째인 팔십일 살혼일자마인벽은 처참히 붕괴되어 버린 것이다. "미안하네, 동영 친구들.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네!" 철무정은 허공에서 몸을 꺽으며 마황전 쪽으로 이동해 갔다. 3 우르르르릉- 쾅-! 먼 하늘이 뇌성에 흔들리곤 한다. 동천류는 아득해 하고 있었다. 그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이렇게 소리쳤다. "낭패다! 그 자는… 가히 천재다!" 동천류는 전율하기 시작했다. 그는 십대마관이 펼쳐진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또한 십대마관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마관은 한 번 펼쳐질 경우 적이 쓰러질 때까지 거두어지지 않는다. 으으, 창궁비연은 바로 그것을 노린 것이다. 그 자는 단신으로 오는 것으로 우리들을 방심시켰으며, 가공할 화탄으로 우리들을 동시에 섬멸하고자 하는 것이다!" 휘청-! 동천류는 현기증을 느꼈다. "대체 그 자는 누구이기에… 퇴로를 생각하지 않고 천겁마전에 저돌적으로 덤벼든단 말인가?" 공포! 문득 떠오른 단어는 바로 그것이었다. 4 일백팔(一百八) 금강혈불진(金剛血佛陣)이 무너졌다. 그리고 오백(五百) 편복비천군( 飛天軍) 또한 태양파천황뢰에 의해 파멸될 수밖에 없었다. 철무정은 야음과 폭설을 이용하여 몸을 감춘 채 천겁만마전 깊숙이 접어들었으며, 십대마관은 그에 의해 차례차례 붕괴되고 있었다. 십대마관은 마도 최후의 포위진형이다. 또한 그것들은 완벽하게 연계되어 있기에, 관문이 발동된 이상 흐트러뜨릴 수 없는 것이다. 적을 제압하기 위한 필살의 진. 그러나 그 관문을 설치한 자 역시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너덜너덜한 옷자락, 팔뚝에는 화상(火傷) 흔적이 역력하다. 또한 가슴에 열 군데도 넘는 검흔(劍痕)이 새겨졌으며, 옷자락은 피에 물들고 있었다. 금강불괴지신을 이룩하지 못했다면 그는 시체로 불렸을 것이다. "아프군. 구천(九千) 강시마군( 屍魔軍)을 폭사시키며 상처를 심하게 입었다." 철무정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마황전에서 일 마장 떨어진 곳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오는 가운데 그는 천사백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십대마관의 주축은 태양파천황뢰에 의해 꺾이어진 상태였다. 그는 열 번째의 화탄으로 십대마관의 마지막 관문인 구천강시마군을 격파하고 나서 마황전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사방은 혼돈에 빠져든 지 오래였다. 이리저리 날뛰는 자들, 산사태를 도망치기 위해 도망치는 자들. 마치 십만(十萬) 대군(大軍)에 의해 공격을 당한 듯, 천겁만마전의 지휘 체계는 완전히 붕괴되어 버린 것이다. 철무정은 심하게 다쳤으되 인상조차 찡그리지 않고 치달렸다. "적을 베기 위해 온 이상, 내가 베어졌다 하여 아까울 것은 없지." 철무정은 우선 마황을 제거할 작정이었다. 그 다음, 그는 동천류는 베야 한다. 그 이후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 때까지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미지수이기에……. 눈보라가 심해졌다.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눈이 어깨 위에 세 치 가량 내려앉았을 것이다. "천겁만마전은 십 년 전으로 퇴조할 것이다." 철무정은 마황전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다가섰다. 근처는 텅 빈 듯했다. 철무정이 외곽지역에서 일으킨 열 번의 폭발로 인해 수비세력이 모조리 이동해 버린 것일까? 어디를 보아도 눈보라뿐이다. '악마의 성전.' 철무정은 입술을 질겅 씹었다. '과거… 저 곳에서 나의 장원을 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철무정은 자신이 천 년을 산다 하더라도 잊지 못할 그 날의 일을 기억했다. 가족이 몰살하고, 아내 추능향이 자신 앞에서 능욕당하던 그 날을……. '피빚은 피로 갚을 뿐이다.' 철무정은 호흡을 멈추며 마황전의 담을 넘었다. 거대한 대리석전, 아름드리 기둥이 천장을 떠받치고 있다. 마도의 하늘로 군림하는 곳. 누구도 감히 조롱하지 못했던 악마의 성전, 마황전. 철무정은 은잠술을 써서 마황전 깊숙이 접어들었다. 그는 대리석전에 도달할 때까지 사람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마황 헌원사령. 그는 마도의 거목이며, 마도의 부활을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이다. 마황전은 그의 거처이다. 철무정은 호흡, 맥박을 끊고 마황전 깊이 접어들었다. 언제부터일까? 띠이이이잉- 띵-! 고막 속으로 야릇한 쇳소리가 파고들었다. '이 소리는……?' 지금 들려 오는 소리는 악기 소리가 아니었다. 악기 소리는 어떠한 것이든 아름답기 마련이다. 하나, 지금 들리는 소리는 차갑고 싸늘할 뿐이었다. '그렇다. 검이 퉁기어지는 소리야.' 철무정은 입술을 질겅 씹었다. 드넓은 백색의 궁전 앞, 화려한 전포를 걸친 노인 하나가 거만한 자태로 앉아 있었다. 그는 포단을 깔고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는 바, 그의 무릎 위에는 사령마혼검(邪靈魔魂劍)이라 불리워지는 오(五) 척(尺) 거검(巨劍)이 놓여져 있었다. 주름진 손가락이 검극을 퉁길 때마다 악마의 흐느낌 소리가 흘러 나왔다. 마황 헌원사령, 그는 산처럼 머물러 있었다. 그는 한 시진 전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의 호위무사들은 모조리 도망쳤으며, 장로호법들 또한 만에 하나 창궁비연이 자신을 공격할까 겁을 낸 나머지 외곽지역으로 물러났다. 헌원사령은 고독자답게 혼자 남아 있었다. 펄펄 날리는 눈발이 천장에 의해 차단되기에, 대전 내부는 눈에 뒤덮이지 않았다. 그러나 벽이 세워지지 않은 대전이기에, 궁정(宮庭)을 뒤덮는 눈보라가 안으로 파고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띠이- 딩-! 눈을 지그시 감고 검을 퉁기던 헌원사령, 그는 문득 싸늘한 기운이 앞쪽으로 다가섬을 느끼며 눈길을 스르르 쳐들었다. 눈보라를 뚫고 다가서고 있는 청년이 하나 있었다. 그는 헌원사령을 향해 직선을 그으며 다가서고 있었다. 일순 헌원사령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전설은 헛된 것이 아니었도다. 여기까지 오기 전에 죽으리라 생각하였는데… 결국 왔군." 생각보다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눈보라 속에서 불쑥 나타난 청년은 고검을 가슴에 안은 채 헌원사령 바로 앞으로 날아 내렸다. "귀하가… 마황이오?" "그렇네. 마치 자네가 창궁비연임에 틀림이 없듯." 나타난 청년은 철무정이었다. 그는 인생을 걸고 대도박을 시작하였으며, 열 개의 태양파천황뢰를 이용하여 무사히 십대마관을 격파한 것이다. "나는… 귀하를 죽이고자 하오." 철무정은 얼굴을 석고처럼 경직시키고 있었다. "누구든 한 번은 죽지. 본좌는 죽음 따위를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헌원사령은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그는 천겁만마전이 창궁비연을 하나로 인해 붕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었다. "과거 한 명의 노영웅(老英雄)을 존경한 바 있지. 그리고… 그를 꺾기 위해 일생을 걸었지." "……." "그는 숙야장청(叔夜長靑). 아마도 자네는 숙야장청 노영웅의 의발전인일 걸세." "그렇소." "헛헛… 그의 무공은 당세제일이지. 그러하기에 본좌는 그를 정신적인 우상으로 삼은 바 있지." 헌원사령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대단한 거물(巨物)이다.' 철무정은 헌원사령에게서 인간미를 느꼈다. 마도의 절대자에게서 따뜻한 인정을 느끼게 될 줄이야? 철무정의 가슴을 빙굴로 만들고 있던 복수심이 헌원사령의 인간적 풍모로 인해 약간 흐려질 정도였다. 헌원사령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자네가 육십 세까지 살게 된다면… 아마도 중원무림계가 배출한 어떤 인물조다 뛰어난 업적을 이룩하게 될 걸세. 기실 마공(魔功)이란 얻기는 쉬워도, 그것으로 인해 영세제일인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하네. 반면 신공(神功)은 얻기 힘들어도, 세월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게 되지." "마황, 나는 귀하를 죽이러 온 사람이오. 설교할 필요는 없소!" 철무정은 애써 살기를 짙게 피워 올렸다. "창궁비연, 자네는 강자(强者)야. 그러나 인생 경험이 풍부한 것 같지는 않네." "……?" "사실 자네 하나로 인해 전 마도가 몸살을 앓고 있기는 하되, 마맥(魔脈)이 완전 섬멸될 수는 없네." "으음……!" "더욱이 자네는 본좌의 세력을 격파함으로… 본좌의 마맥을 능가하는 악마지맥(惡魔之脈)을 암중에 돕는 바보 짓을 하게 될 걸세." "악마지맥이라면?" "본좌가 겁내는 진정한 악마의 세력이 있지. 본좌보다 백 배 무자비한 자들. 그들은 세력을 기르고 있으며… 언제고 모습을 드러낼 걸세. 훗훗… 본좌는 그들이 나타나기를 늘 겁내고 있었는 바, 자네 하나로 인해 본좌가 계획했던 일이 모조리 수포로 돌아갔네." "그 말은?" "천겁만마전의 힘이 강하다 하나, 의맹과 악마지맥을 동시에 격파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말이지." "……." "모름지기 진짜 악마들은… 자네가 천겁만마전을 격파하는 것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걸세!" 헌원사령은 검을 바로세웠다. 철무정의 얼굴은 검게 물들고 있었다. "악마지맥이 나타난다면… 또 누군가 그 자들을 격파할 것이오." "글쎄? 누가 그들을 막을 수 있을는지……." "사필귀정(事必歸正), 악마의 무사는 정의의 무사를 이길 수 없소!"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지." "천만에!" "창궁비연, 자네는 뛰어난 무사이며 총명한 천재이네. 본좌에게 자네 같은 제자가 있다면 죽더라도 눈을 편히 감을 수 있을 걸세. 다만 자네 같은 인물이 마도의 천적(天敵)인 이상, 자네 같은 무사는 한시빨리 사라져 버려야 하네." 헌원사령은 고개를 들어 철무정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상한 것은 그의 눈빛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회의가 가득 차 있지 아니한가? '창궁비연은 백 년에 날까 말까 한 천재이다. 아아, 저 정도의 근골이라면 군마검도(群魔劍道)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천 년 간 아무도 얻지 못했던 마도제일의 절기를…….' 헌원사령은 철무정의 근골이 백 년에 하나 날까 말까 할 정도로 뛰어난 것임을 문득 알게 되었다. '악마황자(惡魔皇子) 헌원자방(軒轅子方)의 근골을 능가하는 근골이다. 아아, 애석한 것은… 저 자가 마도의 적이라는 것! 그리고지금 죽어야 한다는 것!' 헌원사령은 철무정이 검을 쳐드는 것을 바라봤다. 문득 그의 입술이 벌어졌다. "자네, 이름을 알고 싶군. 진짜 이름을……." "무옥(武玉)." "좋은 이름이군. 한데, 왜 마도를 격파하기 위해 목숨을 걸지? 어떤 원한이 있기에?" "나의 아내의 복수를 위함이고, 나의 아들이 의로운 세상에서 살게 하기 위해! 그 녀석은 무사가 될 필요가 없게 하기 위해서!" 철무정은 천천히 다가갔다. 헌원사령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본좌는 비무림인(非武林人)을 치게 한 바 없는데……?" "그럴 리가? 나의 가문 철가(鐵家)는 귀하의 명령에 의해 붕괴되었소." 철무정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철가? 그렇다면 유림(儒林)의 철가로군?" "그렇소." "그 일은 본좌 휘하무사가 한 일 가운데 가장 어리석은 일이었지. 으음, 그 일로 인해 천겁만마전이 붕괴되다니… 사실 본좌는 언제고 철가의 후예를 찾아 속죄하려 하였지." 헌원사령의 눈빛에 미안하다는 빛이 떠올랐다. 철무정은 이를 악물며 보다 가깝게 다가갔다. "마황, 이제… 죽이겠소." "창궁비연, 아니 무옥이라는 청년! 나는 자네가 죽이지 않아도곧 죽는다네." "그 말은?" "나는 마독(魔毒)으로 인해 죽을 운명이지. 마황전 내분 당시 얻은 상처가 도진 것이지. 후후… 사실 자네를 한 번 만나기 위해 지금까지 버텨 온 것이네." "으으, 그럼……?" 철무정은 주춤거렸다. "그렇네. 이 곳은 마지막 함정이네. 자네를 제거하기 위한, 그리고 마도인들이 백도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게 하는 사건을 만들기 위한, 그리고 진정한 마도의 충신을 가려 내기 위한 하나의 거대한 무대라 할 수 있는 것이네." 마황, 그야말로 진정한 마도인이라 할 수 있다. 십대마관의 설치를 명한 사람은 그였다. 만약 창궁비연이 마관으로 인해 중도에 멈춰진다면 다행이고, 마황전까지 온다면 그와 함께 죽을 동귀어진계를 세워 둔 바 있다. 보라! 마황의 눈빛이 득의의 빛으로 타오르는 것을. 헌원사령은 천천히 검을 쳐들었다. 그리고 그는 웃기 시작했다. "자네는 백도를 위해 죽을 수 있는 백도영웅(白道英雄)이고, 본좌는 마도를 위해 죽고자 하는 마도의 충신인 것이네. 푸핫핫… 자네와 더불어 죽는다면 아까울 것이 없을 걸세." 그의 웃음소리가 고조될 때. 피이이잉- 핑-! 하늘 위로 철전(鐵箭)이 수없이 떠올랐다. 철전은 포물선을 끌며 마황전 쪽으로 날아들었다. 철전의 숫자는 일천(一千) 발(發). 피이이이잉- 핑-! 철전은 비가 퍼부어지는 듯 마황전으로 떨어져 내렸으며, 뜨락 도처에서 불기둥이 치솟아 오르며 능선이 붕괴되기 시작한다. 쩌억-! 지반이 갈라지며 마황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불기둥이 쉴새없이 솟구쳐 올랐으며 매캐한 화약 내음이 코를 찔렀다. 검붉은 연기 기둥이 치솟이 오른다. 뜨락에는 십만 관의 화약이 묻혀 있었으며, 천 발의 철전에 매달린 천 개의 화탄으로 인해 화약이 폭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콰르르르릉- 쾅-! 천지개벽(天地開闢).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무너지는 듯하다. 산사태가 일어나며 작은 규모나마 지진이 일어났다. 5 폭발은 이각(二刻)에 걸쳐 계속되었다. 그리고 불길이 여섯 시진 내내 치솟아 올랐으며, 사흘에 걸쳐 산사태가 계속된 후에야 경천동지할 사건은 마무리지어졌다. 모든 것이 불타고 붕괴되었다. 이 날로 인해 천겁만마전의 현판은 떼어지고 만 것이다. 마도천하를 위해 일어난 천겁만마전이 백도의 고독한 살성 하나와 함께 역사의 장에서 사라지고 만 것이다. 눈이 쉬지않고 내렸으며 모든 폐허는 눈에 파묻혀 버렸다. 마황전 안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는 그 곳에서 떨어진 두 개의 거성(巨星)만이 알 뿐이다. 마황 헌원사령, 창궁비연. 이제 그들은 과거의 전설일 뿐이다. 강호에는 그들이 싸우다가 동귀어진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나갔으며, 수많은 백도인들은 창궁비연을 위해 상복을 입고 사흘 간 음식을 금했다. 창궁비연. 그는 이미 백도의 우상이다. 물론 과격한 살행에 몸서리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젊은 무사들, 마도인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들은 그를 신처럼 추앙하지 않았던가?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백도는 침묵하기 시작했다. 마도인은 마도인대로 복수의 칼을 갈기 시작하며 은닉하기 시작하였으며, 폭풍이 지난 후 같은 폐허의 겨울은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
첫댓글 쟐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잼 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