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시의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짧은 답사를 다녀왔다. 사진 중심으로 올리며 간단한 설명을 곁들인다. 이천은 지금까지 4번 정도 답사를 다녀왔기 때문에 알고 있는 불교문화재는 모두 최소 1차례 이상은 본 일이 있다. 그래도 다시 가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도 하고, 대상 자체나 주변이 달라진 것도 있으므로 이야깃거리가 없지는 않다.
[이천시립박물관 옥외]
먼저 모가면 소고리로 향했다. 모가면 소고리에는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선각마애불과 향토유적 8호인 소고리마애삼존석불이 있다. 이곳은 오늘이 세 번째인데, 먼저 마애삼존석불을 본다. 두 번째 왔을 때는 이 마애불 앞에서 굿을 하고 있더니, 오늘은 경기도 문화재돌봄사업단인가 하는 데서 6~7명의 사람이 와서 막 주변정리를 하려하고 있었다. 올 때마다 뭔가 이벤트가 있다. 이 마애불은 좋게 말해서 소박, 심하게 말하면 조악(粗惡)한 수준의 조각이다. 특히 팔을 보면 얼마나 솜씨가 떨어지는지 알 수 있다. 자료에는 고려중기 조성이라고 추정하고 있는데, 더 내려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입하면서 보면 먼저 보이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9호 소고리마애여래좌상은 높이 3.7m, 어깨 폭, 2.4m 무릎 폭 2.7m로 비교적 큰 마애불이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앙련좌(仰蓮座) 위에 결가부좌한 당당한 모습이다. 비록 선각이지만 선을 깊게 새겼기 때문인지 통일신라 말인 9세기경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됨에도 불구하고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다. 무엇보다 6겹에 이르는 동심원으로 표현한 두광이 눈길을 잡아챈다. 다만 바위 자체가 약간 뒤로 누워있고, 앞에 평지가 없어 감상하는데 조금은 아쉬움이 있다.
이 마애불들의 주소지는 모가면 소고리 640-7번지이다. 물론 내비가 안내를 잘 할 수도 있겠지만 제법 넓은 산 전체를 포괄하고 있고, 새로 생긴 골프코스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으므로 엉뚱한 곳으로 안내할 수도 있다. 따라서 표지판이 서 있는 주소지인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 117-21’를 입력하고 진입한 뒤 여기서 개울 건너 비포장 임도를 따라가면 된다. 표지판 근처에 주차하고 10분 정도 걸으면 닿을 수 있고, 조심조심 가면 차량으로 불상 앞까지 진입할 수 있다.
대포동석조여래입상(이천시 대포동 산123-5 / 이천시 향토유적 제11호)은 소고리마애불에서 5km 남짓한 곳에 있기 때문에 두 곳은 갈 때마다 이어서 가게 된다. 이 불상은 ‘산’번지이지만 대로변에 있으며, 2007년 방문 당시 하반신이 묻혀 있었으나 2014년 방문 시 전체가 드러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무엇인가 손을 댄 것 같다는 이야기는 이미 올린 적이 있다. 오늘 보는 느낌은 흑화가 무척 심해졌다는 것, 턱 부분의 손상이 무척이나 크다는 것, 오른쪽 어깨 등 시멘트로 보완한 부분이 많다는 것 등이었다. 석조문화재의 흑화문제는 많이 고민하고 좋은 해결책을 찾아야 할 문제일 것 같다.
두미리사지 석불입상(모가면 두미리 산 57-3) 역시 산번지이지만 해묵은 느티나무들이 어우러져 자라고 있는 마을 외곽의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 석불은 느티나무 숲 가운데에 마련된 자그마한 보호각 안에 서 있는데 전체 높이가 채 1m가 되지 못한다. 워낙 마모가 심해 상호나 의습을 파악하기 어려우며, 대략 허리 아래 부분이 매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고, 두부와 신체는 시멘트로 접합시켜 놓았다.
미륵불로 모셔지고 있는 이 석불입상은 그 자체보다는 아직도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는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더 대단하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5~6 그루의 나이든 느티나무들이 더 대단하고. 석불을 찾아가는 길은 마을길이건 미륵천을 따라 난 길이건 좁기 때문에 운전에 유의해야 한다.
이어 호법면의 동산리마애여래상을 찾아갔지만 도로공사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섰다. 아무런 안내판도 없이 도로를 막고 확·포장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전에 다녀온 일도 있었기에 다른 길을 찾아보지 않고 차를 돌렸다.
마장면의 경기도문화재자료 제70호 이평리석불입상(泥坪里石佛立像 마장면 이평리 267-22) 역시 대포동석불입상처럼 도로변에 있다. 2011년에 이어 두 번째인데 상호나 신체 모두 마멸이 더 진행된 것 같다. 주변정리는 다소 나아졌다. 현재 허리 아래 부분이 묻혀 있는데 자료에 따르면 무릎 밑이 절단되어 있다고 한다. 전에 가본 일이 있는 내원사삼층석탑(관리사지: 마장면 관리 산 17)은 좁은 길로 꽤 가야 하는 점을 고려하여 건너뛰었다.
오늘 답사길에서 유일하게 처음으로 가보는 서신일묘역(徐神逸墓域/ 이천서씨시조묘역/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19/ 향토유적 제17호)에 닿는다. 효양산 자락에 있는데 좁은 마을길을 거쳐 산길로 조금 더 오르면 찾을 수 있다. 서신일은 이천서씨의 시조로 신라의 아간대부를 지냈으며 사슴으로 변한 신인의 아들을 구한 일로 80세의 나이에 아들 서필(徐弼)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 서필의 아들이 바로 고려전기의 인물로 거란과의 외교담판을 이끈 서희선생이다. 묘역은 모두 새로 만든 석물이 배치되어 있으며, 3기의 묘비 중 맨 좌측의 비석 1기만 조금 오래된 것이다.
바로 옆 묘역에 요란한 현대석물들이 많아서 한번 들러보았다. 한양조씨 묘역인데 국가유공자 조성동(趙性東)이란 분과 집안의 묘소들이었다.
한번 가 본 곳을 다시 가게 되면 찾아가는 방법확인을 아무래도 소홀하게 되는데, 갈산동석불입상은 그것 때문에 상당한 애를 먹었다. 갈산동석불입상(葛山洞石佛立像 이천시 향토유적 제7호)의 주소지는 이천시 갈산동 76-2번지가 맞다. 하지만 이 지번이 좀 넓고 도로(골목길)에 맞닿은 쪽에는 정작 석불로 가는 길이 없고, 오히려 대로 옆에서 접근해야 한다. 현재 미리내만두가 입점해 있는 건물의 측면으로 진입하면 되는데 아래 사진의 왼쪽 끝 주차된 승용차 뒤에 석불 일부가 보인다.
이 석불은 높이 414cm의 빼빼 마른 불상으로 고려중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보다시피 조각의 솜씨는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이 불상 역시 흑화가 심하게 진행되어 2011년 당시의 모습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석불 앞에 배례석처럼 놓여 있는 석재가 석탑의 탑신석이라는 것은 이번에야 비로소 알았다. 4면 모두에 양우주가 뚜렷하다.
본격 시내로 들어간다. 지방 소도시도 중심가는 복잡하기는 대도시나 마찬가지여서 교통정체도 심하고 주차하기도 쉽지 않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6호 이천중리삼층석탑(中里)은 이천시 중리동 187번지, 지금은 이천시종합복지타운으로 변모한 옛 시청 청사 앞 화단에 자리한다. 상륜부는 사라지고, 갑석 등 파손된 부재가 있지만 그래도 이천시 관내에서는 가장 멀쩡하게 보존되고 있는 탑이며(물론 2, 3층 옥신석은 복원된 것이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중후한 느낌을 준다.
탑은 3장으로 구성된 지대석 위에 4매의 판석을 엇물림 방식으로 짜 중석을 세웠고, 부연이 조식된 한 장의 판석으로 갑석을 삼았다. 옥개석은 밑면은 곧고 윗면은 전각부에서 반전하고 있으며, 물매는 약한 편이다. 층급받침은 1층 5단, 2층과 3층은 4단으로 변화가 있다. 이 탑을 보면서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갑석 윗면에 조식된 탑신괴임이었다. 갑석과 같은 돌로 만든 괴임은 모두 3단인데 2단과 3단 사이를 깊게 파서 굽을 두른 것처럼 조식했다. 쉬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이어서 이천시립박물관, 관고리오층석탑, 영월암 순으로 답사했는데 일방통행을 고려하면 진행순서를 역순으로 해야 하는데 그새 잊었나 보다. 이천시립박물관(이천시 관고동 418-3)은 설봉공원 남서쪽 치우친 곳에 있다. 전에도 내부는 잠깐 보고 말았지만 오늘은 아예 내부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이곳에는 2011년 방문 당시 2기의 석탑이 있었는데 그 사이 1기가 늘어났다.
제일 안쪽에 있는 이천갈산동오층석탑은 단층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인데 2층 옥신석부터는 모두 하층 옥개석과 1석으로 조성했다. 층급받침은 전층 3단이며, 옥신석에는 우주가 조식되지 않았다. 이 탑은 이천시 안흥동에 아파트단지가 조성될 때 실시한 유적발굴조사에서 출토된 부재를 조립한 것이다. 설명문에 따르면 1~4층 외에 나머지는 새로 조성한 부재라고 하는데 기단갑석은 자세히 살펴봐도 원 부재처럼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옥외전시장에 있는 안흥사오층석탑도 이 탑과 같은 곳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중앙에는 삼층석탑이 한 기 서 있는데 2011년 답사 당시까지 관고동 이천향교 인근의 양정여자중고등학교에 있던 석탑이다. 현재 3층만 남아있지만 원래 5층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아직까지 반환운동을 펼치고 있는 이천오층석탑과 마주 보고 있던 탑이라고 한다. 일본에 가 있는 이천오층석탑 환수운동의 일환으로 이 삼층석탑도 이건하는 것이 좋겠다는 여론이 일었고, 양정학원의 양해로 2013년 4월 이 탑을 박물관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이 탑의 이건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지대석은 우주를 조식해놓기는 했지만 어설프고, 전체적으로 약간은 사다리꼴이어서 원 부재가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각층 옥신석에는 우주가 정연하다. 옥개석은 평박한 편이며 낙수면 윗면은 전각부에서 반전되었고, 위에는 1단의 받침을 두었다. 층급받침은 4-4-2단으로 조금 이상하다. 층급받침 수가 줄어들더라도 대개 하나씩 줄어드는데 갑자기 2개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탑의 3층 옥신과 옥개는 특이하게 구성되어 있다. 바로 옥개석 하단에 옥신 일부를 조성하여 연결하였기 때문이다. 2단의 층급받침 아래 부분의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이 분명하게 새겨져 있어 옥신의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옥개석은 2층에 비해 급격히 줄어들어 3층은 결실되었고, 현재 3층부재는 원래 4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2층 옥개석 윗면 괴임과 3층 옥신석 크기가 맞아떨어진다.
진입 기준으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석탑은 이천후안리오층석탑이다. 호법면 후안리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하며, 복원된 탑의 높이는 약 3m 정도이다. 지대석은 당연히 신재이고 기단중석도 갑석의 내곡된 부연이 드러날 여유가 없고, 우주가 없는 것으로 보아 새로 조성하여 보충한 것으로 생각된다. 갑석 윗면에는 약간의 물매와 우동이 조식된 것으로 보이며, 중앙에는 각호각 3단괴임이 있다. 옥신석은 1층 옥개석과 1석으로 조성된 2층 옥신석을 뺀 전체가 새로 만들어 넣은 것이며, 옥개석은 전각부 반전이 무척 심하다.
차를 그대로 박물관 주차장에 두고 관고리오층석탑(이천시 관고동 401-2/ 이천시 향토유적 제5호)까지 걸어갔다. 약 200m 정도의 거리인 것 같다. 높이 4.3m의 제법 큰 이 석탑은 지금 서있는 곳 인근 밭에 쓰러져 각 부재가 흩어져 있던 것을 1978년에 수습, 옛 절터 앞에 복원하였다. 현재의 상태는 단층기단 위에 1층 옥신이 놓여 있고, 그 위에 5개의 옥개석이 쌓여 있는데 이 부재들이 모두 동일 석탑의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층급받침은 1층만 4단이고, 나머지는 모두 3단이다. 옥개석들은 앞서 본 관고리삼층석탑과도 비슷한 미감이다.
영월암에 오른다. 먼저 전각 뒤로 돌아 올라가 보물 제822호 영월암 마애여래입상(映月庵磨崖如來立像)을 바라본다. 높이 9.6m의 대형 마애불로 머리와 양 손은 얕은 돋을새김으로 표현하였고 옷주름 등은 선으로 조각되었다. 원만하고 둥근 얼굴에 이목구비가 크고 뚜렷하며 지그시 감은 듯한 눈과 굵직한 코, 두터운 입술 등에서 힘차고 후덕한 고승의 느낌을 갖게 한다.
내려오면서 복원한 삼층석탑을 본다. 이 탑은 옥개석 3장만 남았었는데 나머지 부분을 새로 만들어 복원했다. 기록이나 파편이 남아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머지 부분은 거의 창작일 것이다. 현재의 탑은 탑신부에 비해 기단부가 너무 높고, 게다가 넓어 균형을 잃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영월암도 이번이 세 번째인데 2007년에도, 2011년에도 대웅전과 아미타전 사이로 올라 마애불 가기 전 꽤 넓은 터 한쪽에 삼층석탑이, 다른 쪽에 석조광배 및 연화좌대(향토유적 제3호)가 있었다. 그런데 삼층석탑은 더 높은 언덕으로 옮겼고, 광배는 보이지 않았다. 제대로 살피지 않아 원래 탑과 광배가 놓여있던 자리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르겠고, 절집에 문의해보지 않아 상황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광배와 대좌를 볼 수는 없었다.
[2011년 당시 석탑과 광배 및 대좌. 그 뒤로 마애불이 보인다.]
집으로 가는 길이 관고동입상석불(官庫洞石佛立像 이천시 관고동 39-3) 인근을 지나가게 되어 길가에 주차하고 잠깐 들렀다. 이곳은 좁은 절집까지 차를 몰고 들어가기도 민망하고 인근에 주차도 쉽지 않다. 2011년 당시 대각사라는 표지석이 있었는데, 다음거리뷰를 보면 2016년 10월 현재 해심사로 바뀌어 있었다. 이번에 사진을 찍어두지 않아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절집 이름이 바뀐 것 같기도 하고, 묘하게 생긴 법당은 대웅전에서 법왕궁으로 바뀌어 있었다. 법당 뒤에 있는 불상은 ‘입상’이 먼저 나오는 명칭이 어색하며, 손이 무척이나 크게 표현되었다. 높이 4m에 이르는 큰 불상이지만 전체적으로 도식화된 느낌이 있으며, 손을 크게 표현한 것이 설령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미숙한 솜씨로 보인다. 이 불상 역시 흑화가 심해서 이천지역 석조문화재들에 대한 점검과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느꼈다.
[인용설명문 출처: 이천시청, 문화재청, 한국의 사지]
첫댓글 내년 수도권 답사지 이천 입니다.
그렇군요. 남녘에 사시는 분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궁금한 것을 많이 전해주시는 답사네요. 흑화의 정체는 정말 궁금합니다.
흑화에 대해서는 전에도 이 카페에서 이야기가 오갔는데 내용은 기억이 잘 안나네요.
카페 검색창에 흑화를 치면 맨 아랫글에 있습니다.
http://cafe.daum.net/moonhawje/6oxK/682
@달넘새 앗, 맨 아래에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항상 열심이신 모습이 너무 좋습니다
비교사진까지 주시구요
행복한 아침입니다.
막상 현장에서는 전에 갔을 때 모습이나 주변상황이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정리하면서 비교해보니 같이 올리는게 좋겠다 싶어 올려보았습니다.
항상 격려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천은 두어번 지나가다 동부지역 몇 군데 답사한 게 전부인 데,
꽤나 많은 문화재들이 있군요..
내년 답사를 기다려야겠네요
항상 감사합니다^^
기초지자체 기준으로 보면 불교문화재가 많거나 빼어난 편은 아니지만 소소한 즐거움은 있으실 겁니다~
가까운 고장인데 아직도 인연 짓지 못한 옛님이 수두룩하니...
시나브로님의 수고로 사진으로나마 갈증을 달래고 있습니다~ㅎ
어! 이천에 아직 뵙지 못한 님이 있습니까? 내년 카페 답사가 기대가 되시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쥔장님께 술 한 잔 사십시요~~
영월암.....
넵.
다음에는 나와있기를 바랍니다.
이 절집에서 제일 오래된 문화재인데요. 제가 못봤을 수도 있습니다만.
좋은 글 좋은 사진...
덕분에 정보도 얻고 공부 많이 했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
간단한 정보제공...
그 정도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