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에서 벗어나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수햏을 하는 도중에
타이타닉에 관한게 있어서 퍼왔습니다.^^; 저도 이번에 타이타닉 도전합니다. 그럼, 즐프~~
웅장한 기술문명이 영원한 자연에 삼켜지는 광경을 대형화면에서 보고나 서도, 우리는 이 영화가 한 작은 사랑의 이야기였음을 알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실제 타아타닉호의 기록을 돌이켜보면,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도 인간의 멜로드라마였음을 알게된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눈앞에 선언되었는데도 믿을수 없을만큼 자존심으로 밖에 표명될수 없는 자태를 유지한 명사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나는 과연 비겁하게 굴지 안았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 [단서를 안고 사라진 장본인]
타이타닉 침몰 몇개월전만 하더라도 뉴욕의 상류층은 당시 "억만장자들 의 선장"으로 알려진 스미스 선장에게 경의를 표하는 만찬을 개최하 였다. 그는 당시 대서양 회단항로에 있어서 가장 경험이 많고 인간 관계에 재치가 있는 선장으로 손꼽혔다. 그런데 왜 이러한 스미스 선장이 한밤에 거대한 타이타닉호를 빙하더미의 바다사이로 고속질 주시켰을까?
스미스는 1850년에 영국 '스테포드쉬어'에서 태어나, 어릴적부터 형이 조정하는 배로 세계일주를 하곤 하였다. 1880년에는 타이타닉의 제조사인 '화이트 스타 라인'에 입사한후, 타이타닉의 자매선인 '올림픽'을 포함한 많은 신규선박의 처녀운항을 관담해온 경력을 지니고 있다.
항해기록에의하면, '올림픽'호의 처녀 운항을 출범할 당시 신비롭게도 배가 무언가에 부딛혀 근교 벨파스트 항구에서 프로펠러의 수리를 한 적이있다.
목격자들에 의하면 스미스 선장은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조종실에서 유유히 배와 함께 가라앉지는 안은 것으로 추종된다. 배가 침목하 기 직전에 바다에 뛰어 들어, 주위에 헤엄치는 생존자들을 구명보트 로 인도하였으나, 자신은 보트에 올라타지 안았다는 시나리오가 가 장 가능성이 많다.
당시 부인사이에 딸하나를 두고있던 스미스는 타이타닉 항해이후 곧바로 은퇴할 예정이었다. 이때문에 한 친척은 "어떻게 생각하면 차라리, 역사적인 배와 함께 가라앉은 것이 더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 고 언급하였다.
프레데릭 플리트 선원 [빙하를 처음으로 목격한 사나이]
선원 플리트는 1912년 4월 14일 저녁에, 타이타닉호 선상 15미터위에 위치한 전망타워에서 항해 망을 보고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망원경은 출발항인 사우스햄톤에서 실리지안은 상태였다.
자신의 교대시간의마지막 한시간을 남겨두고, 선체 500미터 정면에 대형 빙하를 목격하였다. 곧바로 조정실에 알린결과 선박은 급턴을 하여 작은 진동과 함께 소량의 얼음이 갑판위에 흩어질뿐, 큰 고비를 면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는 2시간 이후에 플리스 선원은 구명보트를 지으며 여성들을 구조하여야만 했다. 플리트는 참변이후 1936년까지 배를 탔으며, 마지막 순간까지는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신문배달을, 저녁에 는 맥주를 마시며 보냈다.
무척 외로운 성격으로 1965년에 부인이 사망하자, 얼마안되어 마당 빨래줄에 목매달아 자살하였다.
벤자민 구겐하임 [멋지게 간 억만장자]
스위스에서 이민온 철강사업의 억만장자 메여 그겐하임의 7남중 6번째 인 벤자민은 최신 현지처인 프랑스 가수 레오틴 오바와 쉐르브르그에서 타이타닉호에 탑승하였다.
구겐하임은 타이타닉호의 운명이 확인되자, 하인과 자기방으로 향한뒤 턱시도로 갈아입는다. "뉴욕의 부인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전해달 라"며 선원에게 구명조끼를 거부한 구겐하임은 그 자리에서 현지처와 하인이 무사히 구명보트에 탄것을 확인한뒤, "우리는 가장 어울리는 예복을 입고, 신사답게 갈것이다"라고 선언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시가와 브랜디를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구겐하임 부인은 남편없이 몇개월씩 보내는데에 익숙해져 있었으며, 호화생활도중에 투자실패로 거액을 날린것으로 알려진다. 구겐하임의 명예로운 죽음은 일가에게 도움도 됐겠지만, 3자녀에게 소액의 재산만을 남기어, 나중에 딸이 불평할 정도였다고한다.
왈레스 하틀리 [마지막 바이올린의 연주가]
어느 기록을 보더라도 타이타닉호의 마지막 순간까지 바이올리니스트 하틀리가 이끄는 8인조밴드의 음악이 같이했음은 확실하다. 배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에 그들이 과연 무슨곡을 연주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안으나, 당시 선호곡은 이브닝풍의 왈츠와 교회힘이었으며, 평상시 하틀리는 "만약에 우리가 탄 배가 가라앉는다면 '신 그대 가까이' 혹은 '지난시절의 구세주인 신이여'를 연주할 것"이라고 자랑하곤 하였다.
하틀리는 1878년 영국 콜른에서 보험판매원인 아버지곁에 태어나, 학교에서 바올린을 전공한 뒤, 무려 70개 호화선박의 항해에서 음악을 맡아왔다. 당시 보스톤 스파의 마리아 로빈손과의 약혼으로 그녀곁을 따나지안으려 했지만, 역사적인 선박의 항해에 마지막으로 가담해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진정한 에드워디안 전통마냥 개인 이전에 임무를 우선으로한, 타이타닉이 낳은 영웅이다.
고향인 콜른에는 3미터 높이의 동상이 세워졌으며, 장례식에는 4만명의 인파가 몰려왔다.
존 제이콥 & 마델렌 아스토 [타이타닉 최고의 부자]
이동하는 부자촌이었던 타이타닉호 내에서도'죤 제이콥 아스토-4세'는 어느 누구보다도 부자였다. 아스토 부부는 하인단과 함께 '쉐르브르그'에서 선상하였다. 이들이 탄 특실은 당시 4천불 [현재 7만불] 로 화롯가를 비롯하여 실제 호화주택같이 마련되었다. 아스토는 부동산과 가족이 이어온 모피사업으로 번 8,700만불의 재산 외에, 터바인 엔진과 자전거 브레이키등 하버드 대학 졸업이후 등록한 각가지 발명, 그리고 토성과 목성에서의 인간의 생활을 그린 공상과학물의 수입이 쏟아져 들어왔다. 심지어 스페인/미전쟁때 자신 고유의 대대에 자금지원을 하기도 했다.
그는 필라델피아의 아바 윌링과 10년 이어진 첫결혼에서 2명의 아이를 나았다. 하지만 그가 46세에 달하던 1911년에 18살난 마델렌 포스 와의 결혼은 스캔달을 나았다. 살피는 눈을 피하기위하여 둘은 유럽과 이집트 여행으로 떠났었다. 그리고 이때 5개월 임신중이었던 마델렌은 아기를 미국에서 낳기위하여 타이타닉호에 승선한 것이다.
참사직후에 구명보트에 대피시, 아스토는 이 특별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담당선원에게 구명보트에 태워줄 것을 부탁하였으나, 거절당하자 노숙히 시가를 피웠다고. 아스토 부인은 1912년 8월14일에 태어난 아기에게 '죤 제이콥 아스토-5세'의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그후 2번 결혼하고 1940년에 사망하였다
제이 블루스 이즈메이 [참사의 장본인]
타이타닉호 소유회사 이사인 이즈메이가 실제 영화에서 디너 테이블의 내프킨에 항해의 첫 지시계획을 그린것 처럼, 과연 진짜로 홍보효과를 위해 배를 전속시키도록 명령했는지는 알수가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49세의 그가 배에 가득찬 승객과 하인과 비서와 그의 명예를 놔둔체, 마지막 구명보트로 탈출했다는 사실이다.
"갑판위에 남은 사람이 더이상 없었다"고 변명한 그는, 구명선 '카파시아'호의 남은 항해에서 계속 고립되어 있었다. 차후 범죄혐의는 벗어났지만, 언론에서는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안았고, 당시의 상류층 남성들이 가입해있던 존엄한 런던회에서도 심한 비판을 받았다고한다
1913년에는 아버지에게서 상속받은 '화이트 스타 라인'의 회장직을 내논후, 미국부인 쥴리아 프로렌스와 함께 아일랜드 서부에서 요양하다 1937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시도&스트라우스 [같이 가기로 선택한 부부]
유명한 자선가이자 뉴욕 맨하탄 한복판의 메이시 백화점을 소유한 스트라우스 부인은 구명보트에 탈 권유를 두번이나 뿌리치고 남편과 마지막 순간을 같이하였다.
이사실은 알게된 6명의 자녀와 친지들도 이 선택에 대해 놀라지는 안았다. 둘은 서로 생일잔치도 항상 같이 치루는가 하면, 헤어져있을 때에도 매일 편지를 교환할 정도였기에. 타이타닉이 가라앉기 시작할때 선원들이 구명보트에 탈 것을 권유하자, 이다는 대신 하인을 태우고는, "이제 이것도 필요없을 것 이라며 입고있던 모피코트마저 건네주었다고한다
마지막으로 두번째 보트에 강제로 태워진후 남편이 물러서자, 이또한 뿌리치고 나와 67세의 남편과 마지막으로 포옹하는 장면을 보았다는 목격자의 증언. 뉴욕 브론크스 묘지의 돌담에는 "물은 사랑을 채울수없는 반면, 사랑을 죽이지도 못한다"는 문구가 세겨져있다.
그외의 역사의 인물들
영화의 상부갑판에서 유일하게 잭의 편이 되어주는 콜로라도 백만장자 의 부인 마가렛 몰리 브라운 그녀역시 귀부인층으로 부터 미중부의 천진낭만한 성격과, 하루아침에 때돈을 번 새내기로서 따돌림을 받곤 했다.
말 그대로 남편이 서부에서 금덩어리를 발견하였기 때문. 그 외에도 타이타닉에는 당시 미국 자유의 종이 울려퍼지는 필라델피아의 상류층 인파가 대거 타고 있었다. 하지만 이중, 운항계획을 마지막 순간에 바꾸어 승선하지 안은 억만장자가 있었는데, 바로 대서양 최고의 호화 운항선을 꿈꾼 유명한 미국인 사업가 '제이 피어포인트 모겐'. 우연케도 타이타닉의 모회사인 '화이트 스타 라인'사의 주주였으며, 영화에서는 마침, 이 사람의 특실에 로즈, 루스, 칼이 투숙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랑의 타이타닉
그럼, 88년전에 과연 잭과 로즈가 존재했을까? 영국 워세스터에서 결혼하여 상점을 운영하는 39세 새뮤얼 몰리와 19살난 그의 종업원 케이트 필립스는 마샬부부라는 가명으로 타이타닉에 승선한다
둘은 선상에서 사랑의 보금자리를 찾고, 신대륙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약속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로즈의 경우와 같이, 필립스는 배와 함께 가라앉은 몰리의 추억과 그가 선물한 다이아 목거리만 손에 쥔채 이 참사에서 살아남는다.
그리고 9개월후 탄생한 딸은 왠지, 자신이 선상에서 첫 생명을 얻었다는 느낌이 든다고했다.
필라델피아의 18살난 승객 엘로이즈 스미스는24살의 남편 루시엔 을 참사에서 잃지만 구명선 카파시아호에서 만나게된 동료 생존자 27세의 로버트 대니엘과 2년후에 결혼하였다는 스토리도 있는가 하면...
신혼중이었던 대니엘 마빈과 메리 마가렛 모두 18세, 는 신혼여행에서 돌아가는 마지막 길을 바다위에서 보내러 타이타닉호 표를 샀다. 그리고 배가 가라안던 순간 마빈은 당시 임신중인것도 몰랐던 메리를 구명보트에 태우며 "괜찮아, 먼저 가있어" 라고 유유히 말했다고전해진다
확실히 기억은 안나지만, 어떤 작가가 '타이탄' 이란 제목으로 소설을 썼는데 이게 타이타닉호와 내용이 섬뜩하리만치 비슷하다고 합니다. 소설이 출판된것이 제 기억으로는 약 10년전이라고 하는것 같았습니다. 작가 말로는 꿈에서 본것을 바탕으로 소설을 썻다고 하던데......
첫댓글 좋은 정보감사..^^
좋은 정보였다니 다행입니다.^^
확실히 기억은 안나지만, 어떤 작가가 '타이탄' 이란 제목으로 소설을 썼는데 이게 타이타닉호와 내용이 섬뜩하리만치 비슷하다고 합니다. 소설이 출판된것이 제 기억으로는 약 10년전이라고 하는것 같았습니다. 작가 말로는 꿈에서 본것을 바탕으로 소설을 썻다고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