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章 진정한 승자(勝者)는? 1 - 내가 승리(勝利)한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너보다 오래 살았고, 오랫동안 검(劍)을 닦았을 뿐이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다. 사천성(四川省)의 성도(城都). 여름이 깊어 가고 있다. 가을은 이미 뜨락 주변에 다가와 있었다. 절정무문(絶頂武門). 이미 그 이름은 서북무림계(西北武林界)를 압도하고 있었다. 다른 지역은 마군맹의 발호로 인해 뒤흔들리고 있으되, 절정무문이 관장하는 강호계는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일세의 풍류남아 표랑은 절세영웅으로 추앙되었으며, 사천성의 무림계 인사들은 절정무문의 기치가 나타날 경우 해검(解劍) 하마(下馬)의 격식을 갖추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쏴아아- 쏴아아-! 세우(細雨)이다. 비는 미세한 소리를 내며 흘러내렸다. 그 소리는 사랑을 잃어버린 여인의 흐느낌 소리를 방불시켰다. 한데 절정무문의 후원에서 은색의 빛줄기가 뿜어지고 있지 아니한가? 츠팟-! 누에실같이 가느다란 빛줄기, 그것은 비가 퍼부어지는 하늘 위로 치솟아 올랐다. 직선으로 뻗어 나가던 검기는 하나의 원호를 이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대막에 불어닥친다는 용권풍(龍捲風) 마냥 원추형으로 뭉치어지기 시작하였으며. 고오오-! 싸을한 바람 소리가 일어나는 가운데 빛더미가 하나의 무지개로 뭉쳐졌다. 그 직후, 환각이었을까? 은광(銀光)은 허공에서 하나의 거대한 별로 뭉쳐졌으며, 그것은 수천 개의 성편(星片)으로 분해되어 버리지 않는가? 콰아아- 콰아아-! 힘(力)이 뿜어진다. 높은 벽돌담에 가로막혀 있는 후원 한가운데에서 은색 빛줄기의 축제가 베풀어지고 있었다. 한 인물, 그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암울한 눈빛을 갖고 있다. 다리를 넓게 벌린 자세. 그의 손에는 검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그의 검은 호면을 향해 검극을 돌리고 있었다. 완전한 정지 자세. "……." 숨소리, 심지어 심장의 박동 소리마저 멈추어졌다. 가히 완벽한 정검(正劍). 그리고 한순간, 예검의 끝에서 미세한 진기가 뿌리어지기 시작했다. 우우웅-! 검파가 뿜어지는 가운데 호면이 일렁거렸다. 그리고 연화가 가득히 떠 있는 꽤 너른 호수가 쩌억 갈라지고 있었다. 물은 극유(極柔)한 물체, 강철을 가를 수는 있어도 물을 가를 수는 없다. 한데 냉막한 인상의 미남 청년의 검에서부터 뿜어지는 예리한 검세는 호수를 반으로 갈라 버린 것이다. "이제… 성공이다!" 냉막하게 굳어졌던 표정이 묘하게 뒤틀렸다. '너무나도 처절한 사투였다. 나의 검을 절대쾌검(絶對快劍)으로 연마하기 위해… 나는 세 개의 계절을 흘러 보냈다.' 그는 천천히 검을 쳐들었다. 그의 얼굴이 매끄러운 검신에 투영이 된다. 뭇여인들이 사랑에 빠져들 정도로 남성의 관능(官能)을 가진 매력적인 얼굴이다. 아래턱에 수염이 텁수룩한 것이 남성적인 체취를 한결 돋보이게 한다. "ㅋㅋ… 누가 나의 검을 막겠는가?" 그는 잔혹히 웃으며 신형을 천천히 돌렸다. 그는 등나무 아래에 놓인 탁자 쪽으로 다가갔다. 그 위에는 비급이 십여 권 쌓여 있었다. 그는 십삼(十三) 책(冊) 쾌검마경(快劍魔經)과 더불어 반년 이상을 흘러 보냈던 것이다. "나의 초식은 완전무결하다. 강호인 가운데 나의 쾌검을 막아 낼 사람은 아마도 없으리라. 그 누구도……!" 그는 검을 슬쩍 그어 대었으며. 파팟- 팟-! 검파가 일어나는 가운데 비급은 한 줌의 흰 가루로 화했다. "프핫핫……!" 그의 웃음소리가 담을 넘어간다. 그 밤, 절정무문 깊은 곳에서는 회오리바람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극히 화려한 취의청 내부. 호피(虎皮)를 덮은 태사의가 있으며, 그 위에 옷차림이 화려한 청년 하나가 머물러 있었다. 그는 지금 상당히 흥분하고 있었다. "그가 왔다고……?" "그렇습니다. 그의 경공으로 미루어 보아 한 시진 안에 여기에 당도할 것입니다." "한 시진!" "그렇습니다." "으음, 그를 막는다면……?" "모름지기 낙안호(落雁湖) 근처가 적당할 것입니다." "낙안호라!" 질끈 입술을 깨어무는 청년, 그는 일세의 웅주(雄主)로 발돋움을 하고 있는 표랑이었다. 숙야장청의 둘째 제자, 일검서생 표랑. 그는 철저한 이기주의자이며 실리주의자이다. 강호가 피비에 젖는 동안 수수방관하며 세력 균형의 추이를 관망해 오던 자. "그를… 막아야 한다!" 표랑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아무도 막지 못할 자. 역시 그는 불사조(不死鳥)처럼 살아났다. 나의 세력에서 그를 꺾는다면 천하가 나의 절정무문을 강호제일 방파로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강남 이하 지역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다.' 그는 입술을 질겅 씹으며 말했다. "류홍은?" "지금도 연검하시고 계실 것입니다." "좋아, 그를 불러라." "예엣!" "그러면 능히 그 자를 벨 수 있으리라. 훗훗… 창궁비연은 상처 입은 늙은 늑대이고, 초류홍은 자라나는 어린 호랑이! 과거에는 늑대가 새끼 호랑이를 이겼으되 이제는 다르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내어디뎠다. 2 낙안호(落雁湖). 갈대숲에 뒤덮여 있는 호수이다. 호숫가에 겨울이 닥친다면 무수한 기러기가 날아 내리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 지금은 기러기 떼 대신에 흰 갈대꽃이 무성하다. 그리고 야우(夜雨). 쏴아아- 쏴아아아-! 잔잔히 흘러내리는 밤비 속으로 한 사람이 걷고 있었다. 그는 낚싯대 하나를 어깨에 둘러멘 채 호숫가의 갈대숲 길을 걷고 있었다. 실로 유유자적한 걸음걸이. "저 언덕만 넘으면 그 곳이다." 그는 아스라한 안개 속으로 웅장히 버티어 있는 청송령(靑松嶺)을 바라다봤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한데 구태여 언덕을 넘을 필요도 없겠군. 훗훗… 누군가 마중 나와 주기를 기다리며 모습을 보이며 온 결과겠지." 씨익 웃는 사람은 철무정. 그는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며 절정무문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삼 리 전부터 은밀히 포위되었으며, 지금은 적어도 칠백 명의 무사가 그를 향해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슷- 슷-! 철무정은 이슬 묻은 풀잎을 밟으며 걸었다. 놀라운 것은 몸이 풀잎에 실린다 하더라도 풀잎이 눕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상비행공(草上飛行功). 그는 풀잎을 사뿐사뿐 밟아가며 나아가는 것이다. "가히… 정예들이다!" 그는 히죽 웃었다. "마음에 드는 무사들이다. 훗훗……!" 따르는 자들은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대오를 갖춘 채 철무정이 이동하는 속도와 맞추어 몸을 날리고 있었다. 옷자락이 바람을 스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호흡 소리는 바람 소리에 파묻혀 버렸다. 하나, 의당 울어야 할 풀벌레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이 머물러 있다는 결정적 증거일 것이다. "후후… 이미 나를 알아보았음에 틀림이 없다. 그렇기에 뒤쫓기만 할 뿐 감히 나서지는 못하는 것이다." 철무정은 여유 있게 웃었다. 그는 보다 대범한 인물로 화해 가고 있었다. 그의 기세는 가히 군림자(君臨者)의 그것이었다. 저벅- 저벅-! 그는 큰 걸음으로 걸었다. '표랑, 그는 뛰어난 인물. 하나, 통이 너무 좁다. 훗훗… 그리고 작은 것을 얻고자 큰 것을 잃고 있다!' 철무정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내게 귀중한 녀석을 데리고 갔다. 나는 그를 찾아와야 한다.' 그는 안개 속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내가 가장 아꼈던 녀석!' 그는 풀잎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그의 입술 사이에서 씹히는 것은 꽃이 매달린 갈대 줄기였다. 그는 먹이에 굶주린 야수의 눈빛을 흘리고 있었다. "천하의 위선자(僞善者), 너를 베겠다. 과거에는 실력이 부족하였으되, 지금은 너를 벨 힘과 속도가 있다." 기껏해야 나이 이십 세, 아직 풋내가 가시지 않은 녀석이다. 하나, 그의 눈빛은 밤하늘의 어떠한 별보다도 강렬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자신의 야욕을 위해 피흘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자!" 그는 길을 보고 있었다. 헌칠한 키를 가진 사람이 길을 돌아 나오고 있었다. 낚싯대가 흔들거렸으며, 바람이 불 때마다 텅 빈 옷소매가 춤추듯 펄렁거렸다. '나는 저 인물을 베기 위해 나의 청춘을 걸었다.' 초류홍(楚流虹). 그이 숨소리는 점점 희미해졌다. 상대는 창궁비연 철무정, 다른 사람은 모르되 초유홍은 그의 진면목을 알고 있다. '나를 지배해 왔던 자. 저 자를 꺾지 못한다면, 나는 늘 패자의 기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으리라!' 초류홍은 나무 등걸에 등을 기댄 채 기다렸다. 저벅- 저벅-! 철무정은 보다 가까이 다가섰다. 그는 자신이 다가서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초류홍을 힐끗 보았으며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녀석… 여전하군!" "……." 초류홍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그리고 그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오랫동안… 기다렸소!" 초류홍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는 어느 틈엔가 검자루를 손에 쥐고 있었다. "녀석, 그 사이 완전한 어른이 되었군." 철무정은 여유를 부린다. "풋……!" 초류홍은 철무정의 모습이 역겹다는 듯 가래침을 뱉었다. 이어 그는 검을 비스듬히 쳐들며 싸늘히 외쳤다. "베겠소. 할 말은 그뿐이오." "녀석, 너는 아직 나의 적이 아니야." "길고 짧은 것은 대 봐야 아는 것!" "후후… 류홍, 너는 아직도 많은 것을 내게 배워야 한다. 자, 나를 따라와라. 할 일이 많다." "어리석은 소리! 내 앞에서 피를 흘린 다음에 말하시오!" 초류홍은 철무정의 입가에 웃음을 없애고 싶은 듯, 사납게 소리치며 검을 쳐들었다. 슷-! 검집이 이동하며 허공에 검은 그물이 펼치어지는 듯한 환각이 일어났다. 순간. "좋아, 더 정교해졌다. 하나, 그 정도로는 안 돼!" 철무정은 가슴을 활짝 연 채 다가섰다. 초류홍의 검집은 그의 가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철무정의 가슴은 활짝 열려 있었다. 베어 나가는 속도대로 한다면 능히 철무정의 가슴을 벨 수 있다. 하나. "으으……!" 초류홍은 숨이 막히는 듯한 기세를 느끼며 자세를 멈추고 말았다. '빌어먹을! 나도 모르게 검세를 흩트리다니… 저 자가 무엇이기에?' 그는 철무정을 또다시 쏘아봤다. 철무정은 느물거리는 웃음과 더불어 다가섰다. "류홍, 너는 나를 베지 못한다. 나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다… 닥치시오!" 초류홍은 치를 떨며 손을 쳐들었다. 스르르릉-! 이번에는 검신이 검집을 벗어났다. 추상검(秋霜劍). 무서리처럼 흰 날이 달빛을 가른다. 추상검은 호신강기를 마음대로 베어 버리는 전율스러운 보검이었다. 추상검의 검극에서 신령스런 검강(劍 )이 흘러 나왔다. 무형에서 유형화된 검강, 그것은 초류홍의 경지가 절정에 이르렀음을 말하는 것이리라. 초류홍의 눈에서 뇌전이 폭사되어 나왔다. "그대를… 베겠소. 나를 증명하기 위해! 이제는 그대의 수하(手下)가 아님을 역사에 남기기 위하여!" 초류홍은 검식을 서서히 변화시켰다. 그는 절정패검식(絶頂覇劍式)의 자세로 돌입해 들었다. '대단한 성취.' 철무정은 싸늘한 기세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초류홍은 전에 비할 수 없는 강자가 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는 과거 철무정의 경지를 능가했을지 모른다. 또한 그는 절정무문주인 표랑을 능가하는 고수일지도. "검을 뽑기 바라오." "류홍, 너는 나를 베지 못해." "어서 검을 뽑으시오!" 초류홍은 사납게 외쳤으며. 저벅- 저벅-! 철무정은 점점 더 그를 향해 다가갔다. 그는 온통 허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공세를 취하고 있지 않고 있다. 한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초류홍은 감히 그를 향해 검를 뽑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빌… 빌어먹을!" 초류홍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철무정의 미소는 여전했다. 검극이 가슴을 겨누고 있다 하더라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류홍, 베려면 베어라!" 철무정은 웅장한 기도를 발휘하며 걸음을 내어디뎠다. 저벅- 저벅- 저벅-! 산이 움직이는 듯, 우주가 그의 걸음걸이에 의해 붕괴되어 버리는 듯하다. "으으… 으으……!" 초류홍은 술중독자처럼 몸을 떨었다. 그는 철무정의 기세에 압도당하고 만 것이다. "으으, 다… 다가서지 마시오!" 초류홍은 휘청휘청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묘한 공포에 휘어말려 들었다. 그의 검초가 얼마나 완숙되었는지를 판단하기 이전, 그는 정신력에서 철무정에게 압도당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봐라, 류홍!" 철무정의 눈이 무섭게 뜨여졌다. 가히 용의 눈망울. "으으… 으으으… 으으아아……!" 초류홍은 영혼이 뇌전에 데이는 듯한 전율감을 느끼며 돌연 검을 힘껏 쳐냈다. 츠팟-! 추상검은 허공을 일자로 그어 나갔다. 극에 달한 속도, 일체의 변식을 배제했기에 검이 나아가는 속도는 섬전보다 빨랐다. 손목이 틀리는 찰나 검극은 이미 철무정의 미간에 닿아 있었다. 한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철무정은 눈을 부릅뜬 채 여전히 초류홍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으으… 으으……!" 초유홍은 비칠비칠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는 추상검이 쥐어져 있고, 추상검은 철무정의 얼굴에 닿아 있었다. 한데, 추상검과 철무정의 얼굴 사이에 은선 하나가 그려져 있지 아니한가? 그것은 청죽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던 은사(銀絲). 그렇다. 철무정은 미세히 가는 은사로써 초류홍의 검을 막아 버린 것이다. "내가 이긴 것은 아니야. 다만 내가 너보다 더 오래 살았고, 오랫동안 검을 닦아 왔을 뿐이야." "우욱!" 초류홍은 극한의 인내 가운데 익힌 모든 것이 꺾이게 되자, 광기에 사로잡히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위로 떠올랐다. 스팟-! 한 마리 매가 날아오르듯, 그는 성도성 쪽을 향해 빠르게 사라져 갔다. 철무정은 그를 쫓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피식 웃으며 이렇게 외칠 뿐이었다. "많이 마시지 마라. 내일 새벽에 떠나야 하니까!" 그는 초류홍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힐끗 보다가 눈길을 앞쪽으로 돌렸다. 수많은 무사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들은 표랑의 정예무사들. 일대를 주름잡고 있는 강자들이나 감히 철무정을 향해 덤벼드는 사람은 없었다. "비켜 주겠는가?" 철무정은 당당히 말하며 걸음을 내어디뎠다. 그는 성큼성큼 걸었으며, 그를 에워쌌던 인간의 장벽은 여지없이 반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무사들은 철무정의 기세에 압도당한 듯했다. 그 누구도 감히 철무정을 가로막으려 하지 못했다. 천하제일인으로 인정받는 창궁비연, 누가 감히 그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단 말인가? 무사들은 썰물 빠지듯이 물러났다. 철무정은 큰 걸음걸이로 절정무문을 향해 이동할 뿐이었다. 두둑한 배짱을 지닌 승부사. 대체 그를 쓰러뜨릴 방법은 무엇인지……! 3 <제일관(第一關) 칠리유사진(七里流砂陣)을 유유히 통과하였음. 비조도 가라앉고 마는 침사지대(沈沙地帶)를 경공으로 가볍게 넘었음. 그의 경공은 가히 어풍비행의 경지임. 제일관 천이백 무사, 창궁비연을 막을 수 없음을 보고드림.> <제이관 만겁열화통진(萬劫熱火筒陣) 괘멸됨. 창궁비연, 죽간(竹竿)을 흔들어 마화탄을 모조리 퉁기어 버림. 사상자는 하나도 없음. 창궁비연과 맞닥뜨리는 자는 모조리 점혈당해 의식을 잃고 쓰러질 뿐, 죽거나 부상당하지는 않음!> <제삼관, 붕석대진(崩石大陣)을 발동시켰으나 창궁비연의 그림자도 발견치 못함.> <제사관 사십구 폭풍무영진(暴風無影陣)이 깨어졌음. 그것도 단 일 초에.> <제오관 사사멸혼관(死邪滅魂關)…….> 절정무문은 열두 개의 관문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그것은 표랑에게 있어 긍지라 아니할 수 없는 관문들이었다. 한데 철무정은 단신으로 절정무문 안으로 접어들었으며, 열두 개의 관문을 차례차례 통과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히 경동천하. 절정무문의 기반이 창궁비연 한 사람으로 인해 완전히 뒤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새벽이 타오를 때, 밤 사이 짙은 번뇌에 휘어말린 표랑의 입술은 까맣게 말라 붙었다. "녀석의 무공은 그 사이 무서울 정도로 늘었다. 훗훗… 어쩌면 그 놈 하나의 가치는 강남 전체를 합한 것보다 클지도 모른다." 표랑은 태사의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안면 근육이 푸들푸들 떨리고 있을 때였다. 피이이잉-! 무존지존관(武尊至尊關)의 허공으로 요란한 휘파람 소리가 흘렸다. 급박함을 알리는 향전(響箭) 소리. 그 소리는 십이 개 관문 가운데 마지막 관문이 붕괴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신호성이었다. "결국… 여기까지 들어오는군." 표랑의 볼이 실룩거렸다. '어리석은 녀석! 결국 나로 하여금… 너를 죽이게 하는구나.' 표랑은 팔짱을 낀 채 문 쪽을 바라봤다. 대전 외부에는 청석판이 깔린 연무장이 펼쳐져 있다. 연무장 한가운데에는 백석으로 이룩된 담장이 서 있으며, 담장 사이의 문으로 한 사람이 성큼성큼 접어들고 있었다. 구깃구깃한 장포 자락, 그리고 어깨에 힘없이 기대어져 있는 푸른 빛깔의 죽간, 허리에는 헝겊으로 둘둘 만 철검 한 자루를 차고 있다. 그는 표랑이 머물러 있는 곳을 향해 직선을 그으며 접어들었다. '거만한 놈! 늘 오만하고 거만한 놈!' 표랑은 철무정이 다가서는 것을 쏘아봤다. 철무정은 강철로 만든 신상처럼 강해 보였다. 팔 하나가 떨어져 나간 모습이 그의 모습을 보다 강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표랑의 두 손이 의자 모서리에 닿았다. 일순, 그의 입술이 미미하게 벌어졌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고 철무정의 귓속으로만 파고드는 전음입밀 소리가 흘러 나왔다. "오지 마라! 그 곳에서 물러나라!" 표랑의 입술이 창백해졌다. 그의 볼이 파르르 떨린다. 철무정은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입술을 벌리지 않는다. 하나, 표랑은 그의 목소리를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혜광심어(慧光心語)라는 불가의 전성술법을 발휘하여 비공으로 음파를 토하고 있는 것이다. "갈 것이외다. 나를 막지 못할 것이외다!" 청아하고 맑으며, 또한 무뚝뚝하기 이를 데 없는 목소리였다. 표랑은 의자 모서리를 더욱 바짝 쥐었다. "너를 죽이고 싶지 않다!" 그의 눈빛에는 번뇌가 가라앉고 있었다. 기실 그는 헌원자방과 더불어 비밀 협약을 맺은 바 있다. 그가 철무정을 죽인다면 강남지역의 패권은 표랑에게 장악이 되리라. "멍청한 녀석, 돌아가라! 너는 지금……." 표랑의 안면 근육이 굳어졌다. 그는 점점 더 다가서고 있는 철무정을 쓸어 보며 싸늘히 이어 말했다. "십만(十萬) 관(貫) 화약(火藥)을 밟고 있다. 그리고 내 손에는 화약을 터뜨리는 기관장치의 손잡이가 쥐어져 있다!" 실로 무서운 기관이었다. '천멸열화폭관(天滅熱火爆關).' 철무정은 문득 하나의 관문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것은 기관학에 정통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사멸의 관문이었다. 표랑이 기관장치를 건드린다면 연무장은 대폭발에 말려들 것이다. 연무장 안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이 머물러 있었다. 절정무문의 영걸들은 청석로 좌우에 늘어서서 철무정이 대전 쪽으로 다가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지하에 화약이 묻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역시… 이사형이다.' 철무정은 약간 머뭇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뿐, 그는 보다 큰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사형은 기관장치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외다!" "어리석은 소리. 너의 목숨 가치는 나의 수하 삼천팔백보다 크다. 삼천팔백 무사를 희생해서라도 너를 죽이겠다." "이사형은 그렇게 못할 분이외다!" "천만에, 나는 철저한 실리주의자이다!" "훗훗… 하여간 못할 것이외다." 철무정은 여유 있는 표정 가운데 표랑 쪽으로 다가갔다. '바보 자식, 도망가라고 하는 데도…….' 표랑은 철무정이 끝없이 다가서자 입술로 질겅 씹었다. 그의 전신이 땀에 흠뻑 젖었다. 기관장치의 손잡이는 손아귀에 거머쥐어져 있다. 그것은 만에 하나의 경우 대비하여 이룩한 사멸의 관문. 그것이 폭발한다면 일대는 잿더미로 화해 버릴 것이다. 뚜벅- 뚜벅-! 철무정은 관문 한가운데로 접어들었다. 일대의 무사들 가운데 지하에 화약이 묻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단 두 사람에 불과했다. 표랑과 철무정. 한데 철무정은 모르는 척 연무장 가운데로 접어들었다. "도망가라, 철무정!" "그쪽으로 갈 것이오!" "빌어먹을!" 표랑은 손을 꽈악 쥐고자 했다. 그의 망막 가득히 연무장의 전경이 들어온다. 전후 사정을 알지 못한 채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는 무사들. 그들은 표랑이 철무정을 어떻게 처단할 것인지 염려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또한 젊은 무사들은 철무정에게서 표랑을 보호하기 위해 계단 아래쪽에 생사일자검진(生死一字劍陣)을 펼친 채 장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표랑의 계획을 알지 못하고 있다. 표랑이 원할 경우 그들은 창궁비연과 맞바꾸어질 것이다. 저벅- 저벅-! 느릿느릿 걷는 철무정, 그의 손아귀에도 땀이 흠뻑 배어들고 있었다. '부디 내가 이사형을 죽이게 되지 않기를…….' 그는 맑은 눈빛을 던지며 걸어갔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으으… 으으으으… 악마 같은 놈!" 표랑의 얼굴은 구슬 같은 땀방울에 휘어감겼다. 그의 눈빛은 차츰차츰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그는 다가서는 철무정을 보았으며,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무수한 절정고수들을 바라보았다. 만에 하나 그가 꺾인다면 그가 청춘을 바쳐 이룩한 모든 명예는 물거품으로 화해 버릴 것이다. 창궁비연을 죽일 수 있다면, 그는 가히 천하제일인으로 부각되리라. 그는 운명의 기로에 머물러 있다 할 수 있었다. 절대절명의 순간. "프핫핫……!" 갑자기 표랑이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그는 비지땀을 뻘뻘 흘리다 말고 몸을 벌떡 일으키고 있었다. 무사들이 어리둥절해 할 때. "좋아, 창궁비연! 네놈에게 졌다!" "으으… 지다니……?" "문주시여! 어이해 항복을 하십니까?" 무사들이 흥분해 소리칠 때. "절정무문의 모든 것을 네게 맡기겠다. 빌어먹을 놈! 대신… 한시 빨리 내 눈 밖에서 멀어져 가라!" 표랑은 소리쳐 외치며 수도를 내리쳤다. 비파금수(琵琶金手)가 발휘되는 찰나 의자의 한쪽 모서리가 산산이 바수어졌다. 사람들은 그가 분노한 나머지 의자를 부수었다 여기나, 사정은 다르다. 그는 기관장치의 중심 부분을 제 손으로 파괴해 버린 것이다. "으핫핫… 무정, 네놈은 정말 엄청난 놈이다. 천하의 표랑마저 꺾어 버리다니… 으핫핫……!" 표랑의 웃음소리는 탈속하기까지 했다. 그 때, 철무정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는 실망하는 무사들 틈 사이로 접어들었다. 그는 표랑 바로 앞에 이르렀으며, 갑자기 손을 세워 미간에 갖다 댔다. 직후, 일대의 모든 무사들은 철무정의 목소리를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진정한 승자는 표랑 문주외다. 소생, 절정무문 같은 영웅의 방파에 오게 된 것을 무상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이외다!" "내… 내가 승자라고?" 표랑의 얼굴이 실룩거렸다. "그렇소이다. 그대가 이겼소이다." 창궁비연 철무정은 씨익 웃고 있었다. 그 미소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표랑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은 영문이 어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천하의 승부사, 철무정이 제 입으로 패배를 자처하다니? 그렇다면 절정무문은 일시에 천하에 혁혁한 이름을 날리게 될 것이다. "네놈이… 나를 멋쩍게 하는군!" 표랑은 표정을 환히 풀었다. 그는 철저한 실리주의자였는 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사심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사실 그가 기관을 폭발시켰더라면 그의 수하들만 다치게 되었을 것이다. 철무정의 경공은 폭발을 뚫고 나갈 정도로 빠른 것이기에… 4 작은 주루. 이름하여 밀다원(蜜茶苑)이라 한다. 새벽녘, 젊은 무사 하나가 취해 누워 있었다. 그의 발 아래에는 빈 술병이 무수히 뒹굴고 있었다. "ㅋㅋ… ㅋㅋ……!" 그는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흐릿한 눈빛을 던졌다. 아침이 환하게 깨어 오는 시각, 헌칠한 키의 청년 하나가 주루로 들어섰다. 그는 어깨에 낚싯대 하나를 메고 있었다. 그는 구석진 자리에 머물러 있는 청년무사 쪽으로 다가서며 입술을 떼었다. "가자, 류홍." "어…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이오? 빌어먹을!" "훗훗… 네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수업을 하기 위해……." "강자가 되는 수업?" "검이란 실전 가운데에서 익혀야 강해진다. 네가 내게 진 이유는 너의 초식이 미비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너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진심이오?" "그렇다, 류홍." "ㅋㅋ… 그대는 멋진 사람이외다. 사실… 그대가 살아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소이다." 고개를 드는 청년은 초류홍이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와 철무정 사이는 각별한 사이다. 초류홍은 철무정에게 무공을 배웠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여길 경우 두 사람 사이는 사도지간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녀석." 철무정은 손을 내어밀었다. 그는 초류홍이 마시던 잔을 들었으며, 잔에 남기어진 술을 모조리 마셔 버렸다. 5 표랑은 호수에 서 있었다. 그는 철무정을 바라보고 있는데 상당히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철무정은 그를 사형으로 깍듯이 대접해 주고 있지 아니한가? '강남을 가지는 것보다 천하제일인을 사제로 두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표랑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너는 분명 그 곳에 갈 것이다." "그 곳이라면……." "황산(黃山)." "훗훗… 그렇소이다. 나는 가야만 하오. 가서… 한 사람을 죽여야만 하오." "매옥당을 죽일 작정이로군." "그렇소이다. 삼사형… 다른 사람은 용서할 수 있을지 모르되, 그만은 도저히 용서하지 못하오." 철무정의 눈에서 한기(寒氣)가 흘러 나왔다. 그것은 표랑이 감히 넘보지 못할 숭고한 빛이기도 했다. "매옥당은 천재였지. 한데 그렇게 몰락하다니… 하여간 나의 수하들을 황산에 전부 집결시키겠다." "많은 무사는 필요 없소이다. 정예만 필요할 뿐입니다. 이미 마검도 무사들과 대외살각 무사들이 거기 가 있으니까." "녀석, 나보다도 치밀하군." 표랑은 철무정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철무정의 눈빛은 두 가지 이질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다. 싸늘한 한기가 첫째의 느낌. 그 눈빛을 받는다면 모골이 얼어붙는 듯한 추위를 느끼리라. 또 하나의 느낌은 기이한 온기(溫氣), 그것 또한 맑은 눈빛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봄바람처럼 따사로운 기운. '어이해 이리도 다른 기운이 동시에 느끼어지는지… 절세적인 신공과 더불어 절세적인 마공을 익혀야 가능할 텐데. 그 사이에 마공을 익혔단 말인가?' 표랑은 마른침을 삼키다가 말했다. "무정, 자네는 지금 어디로 갈 예정인가?" "숭산(嵩山)." 철무정은 한 마디로 잘라 말했다. "숭산이라면… 소림사에 갈 작정인가?" "그렇소이다." "으음, 많은 수하들이 필요하겠군." "그럴 필요는 없소이다." "그럼… 몇이나 가는가?" "혼자 갈 것이외다." "미쳤군." "소림사는 썩은 거목이라 알려져 있소이다. 하나, 나는 소림사의 저력을 믿고 있소이다." "마치 소림사 제자처럼 말하는군." "어찌 여긴다면… 그럴 수도!" 철무정은 가슴 한 부분을 만졌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나타난다면 강호정세에 상당한 파란이 일어날 것이다. 달빛이 찬연할 때, 철무정은 비조를 타고 사천의 하늘로 떠올랐다. 팔월(八月)이 깊어 가는 하늘에 새 울음소리가 메아리쳐졌다. - 풍운아(風雲兒)! 철무정을 두고 더 이상 부를 말은 없을 것이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