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3:14
우리 모두 다음 세대 선생입니다.
벤자카이란 랍비 이야기를 들려 드린 적이 있습니다. ‘야부네 거리를 사수하여 이 곳 회당에서 어린이들을 양육하여 다시 나라를 일으키자.’라고 생각한 한분 선생님의 민족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 결국 열매를 맺어 나라를 잃고 디아스포라가 되었지만 2천년 만에 다시 돌아와 나라를 다시 세우는데 초석을 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분 선생님의 비전과 희생이 당장에는 여러 사람에게 욕을 먹었지만 결론적으로는 나라를 다시 회복할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는 교훈을 준 사례입니다. 이처럼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과 비전을 가진 선생 한 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도 선생님의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했고 심지어 선생으로서 알아야 될 것을 알지 못했을 때 니고데모 같은 당대 존경받던 선생을 꾸짖기도 하셨습니다.
스승의 주일은 지났지만 우리가 부흥회로 인하여 바꿔서 드리는 예배이니만큼 오늘은 스승에 대한 말씀을 드리면서 어떤 스승으로 준비되는 것이 다음 세대들에게 더 좋은 나라와 환경과 신앙을 물려 줄 수 있는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령께서 여러분과 저의 마음을 만져 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내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고 하셨습니다.(요13:14)
이게 예수님이 공생애를 마치고,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보여준 모습입니다. 그리고 다락방 강화 첫 말씀이란 측면에서 얼마나 의미심장한 의미를 부여하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 때 마귀는 벌써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판 생각을 넣어주고 있을 때입니다.(요13:2) 예수님은 자신이 죽음으로 향해 가는 첫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가룟 유다를 색출하여 혼쭐을 내 주는 게 아니라,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모습을 통해 반드시 제자와 성도가 해야 할 사명과 교훈을 각인시켜 주고 싶어 하신 것입니다.
한 다락방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차적인 모습과 생각을 한번 들여다보겠습니다. 한 사람 가룟유다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예수를 어떻게 팔까!’ 궁리합니다. 그런데 한 분 예수님은 ‘어떻게 하면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도록 할까, 좋은 선생이 되어서 다음세대들을 더 올바르게 지도하여 나라와 민족 그리고 교회와 가정을 바르게 세우도록 할까!’ 고민합니다.
두 사람의 고민이 교차적으로 나오는 이 모습 중 어느 모습이 나라와 교회와 가정 그리고 자신을 바르게 세운다고 보십니까?
물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제자들의 발을 내놓으라고 하고 수건을 두른 후 발을 씻겨주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이 일을 하시기 위해서 미리 대야도 준비하셨을 것이고, 물을 충분히 확보해 놓으셨을 겁니다.
그것을 준비할 때 돕는 사람들도 차마 주님이 이렇게까지 할 것이라고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마음은 비장했을 것입니다. 선생이라면 적어도 대접받고 근엄하며 혼이나 내고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섬기고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되는데 어떤 장면을 연출해야 가장 극적이고 효과가 있을까! 를 생각하다가 종이 상전과 자신의 집에 찾아오는 손님을 씻겨 드리는 이 장면을 연출하셨을 것입니다.
발은 더러움을 상징합니다. 그 발을 가지고는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식사를 해야 할 자리에 들어올 수 없기에 씻겨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손이 없을까요? 자신이 씻어도 되는 것 아닙니까? 여기에 권위라는 것이 부여됩니다. 즉 주인과 손님은 자신이 씻지 않고 종이나 하인이 씻겨 줍니다. 대접받는 것이지요.
사람은 은근히 어느 장소 어느 모임에 가서 자신이 대접받는다는 느낌을 받기를 원합니다. 얼마나 인간이 자기 우선주의인지 그 작은 모임에 가서도 자신의 자랑, 존재감을 들어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모임에 가서 자신의 장점, 좋은 점을 이야기하려고 하지 자신을 깎아 내리려거나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사람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게 교회 안까지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곁에서까지 대 놓고 높아지려고 했고, 야고보와 요한은 어머니까지 동원해서 예수님 우편과 좌편에 앉혀달라고 부탁하는 지경까지 왔습니다.
이때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아마도 베드로 것입니다. 그는 누가 뭐라고 해도 주님이 가장 인정한 수제자였거든요. 그래서 요21:21절에서 자신이 원치 않는 곳으로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 죽을 것을 암시 받을 때도 “저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하고 혼자서만 못 죽겠다는 식으로 요한을 끌고 들어가는 상한 감정을 표현하게 됩니다.
이러한 제자들에게서 앞으로 어떠한 후배와 제자, 성도들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십니까?
아귀다툼과 교만, 상한 감정을 가진 제자들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가장 큰 아픔은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십자가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죽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저런 철부지 제자들에게 어떻게 다음 세대 아이들을 맡길 것인가?’ 에 대한 혼란스럽고 고통스런 문제일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나를 왕으로 삼으려고 한단 말이지, 그렇다면 왕이 진짜 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봐라!’ 하고 왕으로서 선생으로서 발을 내밀게 한 후 발을 씻겨주는 것입니다. “제자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충격이었을까요?”
‘왕이 되고, 선생이 되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대접받을 줄 알았고, 섬김 받을 알았던 자들이었기에 상당한 충격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심지어 십자가에서 온갖 피를 흘리신 것은 우리가 몸과 마음으로 지은 모든 죄를 씻어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죽어줌으로서 까지 섬기는 것, 그게 예수님의 사랑이고, 십자가의 참의미입니다. 선생은 그것을 보여줘야 되는 것이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되는 줄 믿습니다.
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 저와 여러분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착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섬김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를 보고 아이들 입장에서 어떤 신앙의 정체성들이 만들어져 가고 있다고 보십니까?
교회가야 돼!
기도해야 돼!,
섬겨야 돼!
순종해야 돼!
이러한 마인드가 아이들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문제가 생기면 교회로 달려가는 사람, 그리고 축복받고 잘되면 ‘섬겨야 돼’, ‘전도와 선교를 해야 돼’ 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돈 모으면 여행가야 돼’, ‘좋은 집 사야 돼’ 하는 세상 사람들이 꿈꾸는 꿈에 사로잡혀 있다면 내가 가정과 교회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 줬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사실 이러한 것들은 불신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달라야 되는 거 거든요.
물론 “집 사야 됩니다.” “여행 가야지요.” “문제는 무엇을 먼저 하는 사람이 되느냐의?” 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가치관이라고 하고, 이 신앙의 가치관이 바로 되어 있을 때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복음이 증거 되고, 더 많은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데 지성, 물질, 축복이 쓰임 받게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가지고 있고 먼저 교회를 다닌 저와 여러분은 우리 뒤에 믿고 따라오는 모든 성도들과 아이들의 선생이요, 스승의 표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선생 이야기가 나와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이 씻는 문제로 두 사람이 비교가 되서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베드로이고 하나는 유다에요.
베드로는 씻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예수님 보고 온 몸을 다 씻겨달라고 합니다. 그 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것이 없다 하세요. 한번 구원받은 자는 그 날 그 날 짓는 죄를 회개하면 된다는 것이죠. 베드로가 구원받은 자라는 겁니다. 그리므로 이제는 그 날, 그 날 짓는 자 범죄를 회개하면서 거룩하고 성령 충만 자로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늘 주님 곁에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만 온전히 씻음을 받지 못한 자입니다. 그야말로 예수님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단지 자신의 축복의 통로로만 생각했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세상 냄새나는 자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이 예수님을 죽이고 제자들에 대한 많은 정보를 유출시킴으로서 제자와 교회에게 막대한 타격을 가져다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잘못된 오판이 세상을 망치고 교회를 힘들게 한다는 차원에서 우리는 교회는 섬김의 장소, 상대를 세워주고 높이는 장소, 궁극적으로는 구원받고 천국가야 하는 곳으로 바르게 깨닫게 해 주는 역할을 해야 될 줄 믿습니다.
참 선생은 구원이 먼저이고, 섬기는 것을 본을 보여 주는 자여야 할 줄 믿습니다.
신 영균 이란 유명했던 영화배우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는 “내 관에 성경책 한권만 넣어주라.”고 유언을 남길 만큼 신앙이 돈독했던 분인데요. 평생 모은 돈 중 500억을 영화발전기금, 나머지 100억 원은 모교 서울대에 기부하고 떠났습니다.
명보극장 명보제과 뉴욕제과 태극 당 풍년 제과의 주인이었으나 아흔의 나이에 남는 것은 다 베풀고 내 관에는 성경 한권이면 족하다고 떠나셨습니다.
그가 유일하게 즐겼던 성경구절은 고전15:10절인데요. 나의 나 된 것은 주의 은혜라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주의 은혜란 구절을 읊조리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 분을 잘 모르기에 칭찬도 조심스럽습니다. 만 그가 남긴 일, 나만 위하다 간 게 아니라 누군가를 위하다. 다른 이를 섬기다가 가는 그 자세가 바로 신앙인의 열매가 아닌가? 할 때 우리 중에도 이렇게 남기다 가는 사람, 영향을 끼치다 가는 누군가에게는 본을 보이는 선생, 스승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신앙의 아름다운 말 행동의 스승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처럼 가장 좋은 복음을 주고, 섬기다 가는 자가 되게 하여 주소서. 기도합니다.
첫댓글 아멘 🙏 🙏 🙏
감사합니다.
어멘.
감사 감사합니다.
필리핀을 생각하면 걱정이 되면서도
희망울 품어봅니다.
필리핀에도 이러한 참 선생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성도들이 늘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선교사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