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章 소림(少林)은 살아 있다 1 대웅전(大雄殿) 앞. 혈의를 걸친 수백 명의 무사들이 저마다 병장기를 들고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혈의검대(血衣劍隊). 개개인이 일(一) 갑자(甲子) 이상의 공력을 지니고 있는 절정고수들의 검대이다. 이들은 제각기 십여 명 이상의 흑의무사들을 수족과도 같이 부릴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혈의검대야말로 사멸마전의 주력검대라 할 수 있다. 혈수마웅(血手魔雄) 궁달(弓達). 한 자루 검을 들고 기련산(祁連山) 일대를 지배하던 마웅이다. 쾌검술의 달인으로 그의 섬뢰마검식(閃雷魔劍式)은 마도계의 일절로 손꼽히는 것이었다. "아직도 그 자의 정체를 알아 내지 못했단 말인가?" "도무지 정체를 추측할 수 없는 자입니다." "바보 같은 것들! 겨우 한 놈 때문에 이 지경까지 이르렀단 말이냐?" 혈수마웅은 방금 전까지 애첩을 데리고 운우지락을 즐기고 있었다. 소림사의 무게에 눌려 여지껏 무감각하게 보내다 오늘따라 갑자기 흥이 오른 상태였었다. '죽일 놈! 모처럼의 기분을 잡치게 하다니… 내 단검에 황천으로 보내 주리라.' 혈수마웅은 끓는 속을 식히며 서서히 살기를 일으키고 있었다. "놈이 나타났다." 갑자기 무사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어느 틈에 사미승을 앞세운 철무정이 대웅전으로 향하는 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흐음……!" 혈수마웅은 안광을 강하게 일으키며 철무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어떠한 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단한 놈 같지는 않은데… 절정고수라면 마땅히 있어야 할 기세가 느껴지지 않는다.' 혈수마옹은 철무정의 신체에서 별다른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철무정에게서는 가공할 기세 대신 보통 사람들에게나 느낄 수 있는 아주 평범한 느낌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혈수마웅은 철무정이 내공의 기운을 승화시켜 가장 일반적인 상태로 돌아섰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철무정 정도의 고수들이나 알 수 있는 가장 가공하고도 미세한 기운인 것이다. "소화상, 자네는 이 곳에서 기다리고 있게." 철무정은 사미승의 안위를 염려하고 있었다. '이제야 진짜 주력의 고수들이 나타났군.' 철무정은 심안을 사용하여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으음……!" 철무정의 입술이 위로 약간 치켜 올라가며. '이상한 일이다. 그 많은 승려들은 도대체 볼 수가 없다니… 설마 현법이 모조리 면벽 수도를 시켰단 말인가? 그러나 거대한 힘이 느끼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철무정은 소림의 무저항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무림은 지금 파탄지경에 빠져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고한 강호인들이 마군맹이 일으킨 검화에 휘말려 목숨을 잃고 있다. 소림은 무림의 기둥, 이럴 때 제 살 길만 찾고자 몸을 감추는 것은 크나큰 죄악이라 할 수 있다. '좋다, 현법. 어디까지 꼬리를 숨기고 있는지 두고 보겠다.' 철무정은 서서히 내공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저벅- 저벅-! 그가 일정한 보폭으로 혈의검대 쪽으로 걸어가자 대열이 출렁거렸다. 그 순간. "크크크… 네가 우리들의 낮잠을 방해한 놈이로구나." "단숨에 황천길로 보내 주겠다." 두 개의 그림자가 허공에서 떨어져 내린다. "우리 옥문쌍살(玉門雙煞)께서 네 목을 갖고 가겠다." 체구가 거대한 두 명의 혈의인들이 철무정을 노려본다. 옥문쌍살은 옥문(玉門) 일대를 주름잡던 인물로 성질이 과격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자들이었다. "차앗-!" 옥문쌍살이 동시에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몸을 틀면서 철무정에게 떨어지며 쌍장을 휘둘렀다. 콰르르릉-! 장강의 노도와 같은 강풍이 뻗어 나오며 철무정을 에워싼다. "어이쿠! 너무하시오, 나으리들." 철무정은 짐짓 놀라는 척하며 뒤로 비틀거렸다. 옥문쌍살이 더욱 빠른 속도로 떨어지며 철무정의 전신을 가루로 만들겠다는 듯 쌍장을 휘둘렀다. 후르르륵-! 옥문쌍살의 절기인 천살풍(天煞風)은 쌍장으로 태산을 무너뜨릴 만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옥문쌍살의 쌍장이 철무정의 전신을 압도할 순간. 스슷-! 철무정의 한 손이 허공으로 비껴 올라간다. 일순 섬전 같은 광채가 허공을 찢으며 쌍살이 무엇에 퉁기듯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다. 십여 장 허공으로 올라간 쌍살이 허리가 뒤로 꺾이면서 다시 땅으로 떨어진다. 퍼퍽-! 핏물이 튀어오르며 쌍살이 피곤죽이 되어 버린다. "항마일심강(降魔一心 )-!" 혈수마웅의 눈길이 떨리고 있다. '저 놈이 전개한 수법은 분명 소림 칠십이 종 절기 중 가장 살기가 짙다는 항마일심강이었다.' 혈수마웅은 철무정의 절기를 알아보고는 공포스로운 표정이 된다. '저 자는… 그러면 소림에서 은밀히 뽑은 고수란 말인가?' 혈수마웅이 반 의혹의 눈빛이 될 때. 휘르릉- 우르릉-! 대웅전 앞뜰에서 일진광풍이 휘몰아치며 하늘을 가리운다. "무슨 일이냐?" 혈수마웅조차 영문을 몰라 당황해 한다. 먼지 바람이 더욱 거대해지더니 굉음이 천지를 진동한다. 하늘은 흙먼지에 가려 저녁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두워진다. 구름처럼 일어나는 운진(雲塵), 모든 것이 그 안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철무정의 검미가 잔뜩 찌푸려진다. '누군가 고의적으로 이목을 차단하기 위해 절진을 발동하였다.' 철무정의 시야도 흙먼지로 완전히 차단이 되어 버렸다. 은은한 뇌성으로 인해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완벽하게 주변과 격리되어 버린 것이다. '심안으로 알아 내리라.' 철무정은 아예 두 눈을 감고 마음의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스슷-! 미세한 파공성이 느끼어진다. 누군가 철무정의 뒤로 다가서고 있었다. '등 뒤로 다가서고 있다. 누구인지 모르나 대단한 무공의 소유자이다.' 철무정은 상대의 무공을 짐작하며 그가 완전히 다가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척-! "누구시오?" 철무정은 상대가 등 뒤로 가까이 다가서자 신형을 튼다. "시주, 적은 아니니 안심하시오." "후후… 당신이 내게 살기를 품었다면, 이 곳에 내려서기도 전에 내 손에 당했을 것이오, 현법." "아미타불… 빈승을 알고 계시는구려." 나타난 자는 소림방장 현법이었다. "복마천강대진(伏魔天 大陣)을 이렇듯 쉽사리 펼칠 수 있는 사람이 소림방장 말고 누가 있겠소?" '진법을 알고 있다니… 진정 소림제자인가?' 현법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너무 놀라지 마시오. 나는 소림방장보다 더욱 소림의 무예에 정통한 사람이니까." "어떻게?" 현법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보이자. "그것은 잠시 후에 알려 주겠소. 그 전에 현법방장에게 따질 일이 있소." "무엇을……?" "그대는 너무 오랫동안 소림을 잠재우고 있었소. 소림이 깨어 있어야 할 시기에……." 현법은 잠시 말없이 묵묵히 철무정을 보고만 있다. '강호상에 이런 인물이 있었다니… 단 한눈에 소림의 무저항계를 알아차리다니…….' "후후… 현법,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마시오." "아미타불… 시주는 누구시오?" "나는 여러 가지의 신분을 갖고 있소. 그 중 하나가 소림과 밀접한 연관이 있소." "소림과?" "아마 내가 신분을 밝히면 현법은 제자리에 서 있지 못할 것이오." "무엇 때문에……?" 현법은 의아한 눈빛이 된다. "바로 이것 때문이오." 철무정의 손에 어느 새 녹옥불장이 들려 있다. "녹오불장(綠玉佛杖), 조사지령(祖師之令)!" 현법의 두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진다. 잠시 믿을 수 없다는 듯 불신의 표정이 스치고 지나간다. "아, 녹옥불장을 살아 생전에 보게 되다니……." 현법은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으며 서서히 무릎을 꿇고 오체투지를 했다. 이마를 땅에 대고 몸을 쫘악 대는 배례, 그것은 인간이 표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복종의 자세이다. "삼가 사십구대 제자 현법이 녹옥불장을 뵈옵니다." 소림의 최고의 권위를 상징하는 녹옥불장이 나타난 이상 소림방장의 의미는 적어진 것이다. 불장이 바로 소림의 권위가 아니겠는가! 철무정의 표정이 엄숙하게 변한다. "녹옥불장의 주인으로 현법에게 명한다." "……." "즉시 무저항계를 풀고 소림을 점거한 사멸마전의 악마들을 제거하라." "살겁을 일으키란 말씀이십니까?" 현법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대의를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살겁이오. 이제부터는 세존의 탕마법(蕩魔法)을 시행할 때요." "그러나……." 현법은 망설인다. 소림이 굴욕을 당한 것은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피를 흘리기를 염려하였기에, 사문을 내어주는 수모를 자청한 것이다. 현법의 눈빛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흔들린다. '이 분이 바로 내가 기다리던 천기의 주인공인가? 아니면…….' 현법은 잠시 주저하다 이윽고 결심을 했다. '내 스스로 지옥에 들어가지 않으면 누가 지옥에 들어가랴?' 현법은 비장한 각오를 했다. "삼가 사십구대 제자 현법, 불장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현법은 다시 곤손히 절을 한 후 몸을 일으킨다. "이제 깨어나라. 탕마의 법을 실행하라." 현법의 사자후(獅子吼)가 절진을 뚫고 허공으로 메아리친다. "깨어나라!" 우르르르릉-! 사자후는 메아리치며 소림사를 휘감아 돈다. 그 순간, 외진 곳 허름한 암자의 벽이 갈라지며 무수한 고승들이 계도를 뚫고 물밀듯이 빠져 나오고……. 쩌억-! 마른 땅이 한 일자로 갈라지며 수백의 고승들이 빠른 속도로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다. 그리고 화덕을 지피던 화구승이 허리를 피면서 몸을 날리고, 선방에선 선을 하던 승려들이 일제히 몸을 세운다. 여기저기 어느 순간, 일천여 소림의 무승들이 소림 전역을 빈틈없이 에워싸고 있었다. "역시 소림은 소림이었다. 누가 그들의 불사혼(不死魂)을 잠재울 수 있단 말인가?" 철무정은 소림 승려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느끼며 감탄을 했다. 묵묵히 염불을 외우던 현법이 서서히 손을 움직이며 목탁을 쳤다. 딱- 딱- 딱- 딱- 딱-! 목탁 소리가 허공에 흩어지며 하늘을 휘감았던 흙먼지가 차츰 사그러들었다. 딱- 딱- 딱-! 목탁 소리가 계속 이어지며 사방을 에워싼 흙먼지는 이제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럴 수가?" 혈수마웅은 흙먼지가 사라지자 주위를 살피다 기겁을 했다. 보라! 혈의검대는 어느 새 오백 대나한진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여태껏 깨어져 본 일이 없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대나한진. 혈의검대는 독 안에 든 생쥐 꼴이 되어 있었다. "검을 버리고 항복하는 자들은 살아남을 수 있다. 그 밖의 자들은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이 자리에서 운명을 달리할 것이다." 현법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항복을 권했다. "어림없는 소리! 항복이란 있을 수 없는 소리다." 혈수마웅이 발악을 하며 현법을 향해 덤볐다. 츠츠츠-! 혈수마웅의 장검이 수많은 환영을 그리며 수백 개의 번갯불을 토해 냈다. 파파팟-! "세존지로(世尊之路)-!" 순간, 나한진이 발동을 하며 일진광풍이 일어났다. 츠츳-! 혈수마웅은 눈앞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쳐진 듯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로 떨어졌다. 위잉-! 나한진이 움직이자 거대한 압력을 지닌 소용돌이가 일면서 혈의검대를 압박해 들어갔다. "허헉… 헉……!" 혈의검대 무사들은 거대한 진공벽에 갇혀 호흡의 곤란을 받았다. "항복하는 자만이 살 수 있다!" 현법의 사자후가 전의를 상실한 혈의검대 무사들의 뇌리에 파고들었다. 콰콰- 콰아아-! 거력(巨力)이 사위를 담장처럼 에워쌌을 때, 허공에 수천 개의 금불살(金佛像)이 떠오르면서 마도인들은 마공이 허물어짐을 느껴야 했다. 나한진의 위력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더욱이 진세의 위력은 마공을 저절로 파해시키는지라, 마공을 익힌 자는 저도 모르게 무공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혈수마웅 궁달, 그는 바보가 된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히… 하늘(天)이로다!" 혈수마웅은 멍한 상태에서 중얼거리며 정신을 잃어버렸다. 하나둘 쓰러지는 거마들, 소림사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하여 십 리 안이 진세에 휘어감기는 가운데 군마가 속속 나뒹굴었다. 소림사는 역시 위대했다. 소림사의 저력이 깨어나고 나서 반시진도 되지 않아 소림사 대웅전 일대의 거마들은 모조리 제압당하고 만 것이다. 2 "호호호… 소림사의 땡추들의 꾀에 깜빡 속아넘어가고 말았군." 한 여인, 타오르는 장밋빛의 경장을 걸친 여인이며 그녀의 피부는 빙기옥골(氷肌玉骨)이라 할 정도로 희었다. 그녀는 달마암(達磨庵) 쪽에서 소림사 쪽을 바라보며 까르르 웃고 있었다. "호호… 너희들에게 속은 것이 오히려 너희들을 몰살시킬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해 줄 것이다. 소림사는 깨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혈잠화, 악마의 꽃으로 불리우는 여인. 그녀는 허리띠를 질끈 조이고 있었다. 개미 허리처럼 잘룩한 허리가 더욱 요염하게 조여졌다. 터질 듯 팽만한 가슴과 길게 뻗어 내린 허벅지의 선이 아름답다. 혈잠화는 눈을 부시게 하는 황홀한 관능의 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가 생긋 웃고 있을 때. 스팟-! 달마암 쪽으로 무사 하나가 날아들었다. 그는 곤두박질치듯 떨어져 내리며 이렇게 말했다. "철마신(鐵魔神)마저 당하셨다 합니다." "그마저?" "상대는… 이 곳으로 오고 있습니다." "으음, 거만한 자로군." "그는 단신으로 오고 있는 바, 이미 삼백 무사를 쓰러뜨렸습니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모름지기… 그인 듯합니다." "그라면?" "창궁비연!" 무사가 말하는 순간 혈잠화의 낯색이 밀랍처럼 희어졌다. 창궁비연은 한동안 종적을 감춘 바 있다. 그가 절정무문을 접수했다는 소문은 아직 퍼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가… 나타났단 말이냐?" 혈잠화의 눈빛이 새파래졌다. 그녀는 최근 들어 최후 마공이라 불리는 악마대법을 익히고 있었다. 그것이 완성된다면 헌원자방마저 그녀를 꺾지 못할 것이다. "그라면 더욱 잘된 일이다. 호호호……!" 죽립을 앞으로 내리고 그는 달마암 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그는 철마신 휘하 마도고수들을 소림절기로 제압해 버린 다음 달마암 경내로 유유히 접어들었다. 그렇게 몇 걸음 갔을까? 일순, 그녀는 한 줄기 마기가 골수 속으로 스미어듬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그녀다!' 철무정의 눈길이 한 곳에 모두어졌다. 요염한 자세로 나타나는 홍의미녀 하나가 있었다. 바로 혈잠화, 그녀의 아름다움은 사악할 정도였다. "호호… 네가 창궁비연이냐?" "……!" 철무정은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혈잠화, 나를 몰라보는군. 하긴… 죽립을 쓰고 있으니……!' 철무정은 만감이 교차되는 표정을 지었다. 군림선에 올랐을 때, 그에게 간곡한 어조로 말하던 아름다운 여인. 누구에게도 냉정했지만, 오직 그 한 사람에게만은 호감을 보이는 얼음의 여인 혈잠화. 혈잠화는 그가 바로 철 농부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정체를 알았더라면 이렇듯 사악한 얼굴로 그를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사악하고 또한 아름다운 웃음 가운데 천천히 손을 쳐들었다. "너를 단 일 장에 피떡으로 만들어 주겠다!" 혈잠화의 두 손이 하나로 합쳐졌다. 그녀는 천수마공(千手魔功)을 끌어올렸으며, 철무정은 그녀의 몸이 부웅 떠오르는 데도 불구하고 수비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그가 멈칫할 때. "하하하앗-!" 혈잠화는 몸을 뒤집으려 철무정을 가슴에 쌍장을 가했다. 콰르르릉-! 마염(魔焰), 무시무시한 광염이 철무정의 가슴에 부딪쳤다. 철무정은 유가층층기공(瑜伽層層 功)을 발휘하고 있을 뿐, 천수마공을 퉁겨 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펑-! 폭음이 일어나는 찰나, 철무정의 몸이 주룩 미끄러졌다. 그는 칠 보 물러난 다음에 신형을 바로잡았다. 반면 혈잠화는 이 장 퉁겼다가 몸의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녀의 얼굴은 더욱 새하얘졌다. '이럴 수가… 호신강기로 나의 천수마공을 그대로 퉁기어 내다니……!' 그녀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철무정은 일신의 강기만으로 그녀의 마공을 차단해 버린 것이다. "혈잠화, 항복하라! 살려 주겠다!" 철무정은 목소리를 바꿔 말했다. "미친 소리 마라! 빠드득!" 혈잠화는 마성이 폭발하여 견딜 수 없는 듯 또다시 쌍장을 쳐들었다. 이번에는 청살환마염(靑煞幻魔焰). 휘류류륭- 쿠쿠쿠-! 무시무시한 열폭류가 철무정의 가슴으로 밀어닥쳤다. 절대절명의 순간, 철무정의 왼손이 허공을 비스듬히 그어 나갔다. 그의 손은 기이한 곡선을 이룩했다. 허공결(虛空訣), 점(點)이 선(線)으로 이어지고… 선이 뭉쳐져 하나의 원(圓)으로 이룩한다. 원형은 하나의 우주(宇宙)라 할 수 있다. 우우웅-! 허공결이 일어나는 찰나, 혈점화가 일으킨 청살마환영은 허공에서 방향을 틀며 혈잠화의 가슴을 향해 사납게 부딪쳐 갔다. 콰광-! "크윽!" 혈잠화는 찰나적으로 내공이 흐트러짐을 느꼈다. 그녀가 내보낸 마공보다 세 배 강한 힘이 그녀를 후려친 것이다. "너… 너는 무신(武神)이라도 되느냐?" 혈잠화의 눈이 멍해졌다. 철무정이 고개를 숙인 채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나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혈잠화!" "빠드득! 역시 강하군, 창궁비연. 그러나 마의 하늘을 위해 죽기로 맹세한 혈잠화다. 이대로 물러나진 않는다." 일순, 그녀는 무엇인가를 입에 털어 넣었다. 모든 것은 눈 깜빡할 사이에 벌어졌다. 그리고 그 직후부터 그녀의 몸에 기이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보라! 삼단같이 검던 머리카락이 청발(靑髮)로 물들며 깊어졌고, 희고 매끄럽던 피부가 새파랗게 물들며 얼굴 근육이 부풀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우두둑- 우둑-! "크크… 크으으……!" 혈잠화의 목소리마저 전과 달라졌다. 질그릇이 깨어지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모공에서 푸른 김이 피어 올랐다. 순간, 철무정은 가공스러운 마세가 다가섬을 느낄 수 있었다. "어리석은 여인. 청살광령단(靑煞狂靈丹)을 복용했군." 청살광령단. 백 가지 독으로 만들며, 복용하고 나면 한 시진 동안 본래의 내공보다 삼 배 강한 내공을 발휘하는 마약이다. 우둑- 우둑-! 혈잠화의 몸뚱이가 본래보다 두 배 크기로 부풀어올랐다. 어디 그뿐이랴? 시퍼런 안개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가운데, 건물이 썩고 나무가 고엽(古葉)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콰아아- 콰아아-! 숨막힐 듯한 마세가 뻗어 나간다. 그리고 일대에 모여 있던 마군맹 무사들은 두 손으로 목젖 부위를 휘어감으며 하나둘 쓰러졌다. "크으윽……!" "케엑! 저주의 마공이다. 피…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피를 줄줄 흘리며 나ㄱ구는 자들, 사지를 뒤틀며 버둥거리는 사람들, 일대는 일순간에 아수라장으로 화하고 말았다. "혈잠화! 정녕…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었구나!" 철무정의 눈에 물기가 번졌다. 그는 청살여마로 화해 날아드는 혈잠화를 바라봤다. 그가 무슨 구결인가를 외우기 시작하는 찰나. 우두둑- 우둑-! 보라! 이번에는 철무정의 몸뚱이가 변화되기 시작하지 않는가? 그의 몸뚱이는 강철로 만든 양 시꺼멓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 둘레로 검게 물들인 누에실 같은 기류가 일어나 몸을 칭칭 휘어감았다. 묵철거령수(墨鐵巨靈手). 십대마종 고불의 최후 절학이다. 우르르르릉- 꽝-! 철무정은 혈잠화 쪽으로 몸을 날렸다. "너를 위해… 너를 벨 수밖에 없단 말이냐?" 청살여마로 화한 혈잠화와 묵철거인으로 화한 철무정의 몸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한순간. 콰르르르릉- 쾅-! 뇌성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일대의 건물이 하나도 남김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지진이 일어나는 듯 지반이 뒤흔들린다. 아름드리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날아오르고, 거석이 쪼개어져 돌모래가 되어 흩날렸다. 만 근 화약이 터진 듯한 폭발 가운데. "크으으윽……!" 허공에서 하나의 왜소한 몸뚱이가 힘없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혈잠화, 그녀의 모습은 정상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녀가 시전한 최후 마공은 십대마종의 최후 절학에 철저히 파괴당하고 만 것이다. 그녀의 몸은 독즙에 의해 빠른 속도로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희고 매끄럽던 피부에 푸른 반점이 번지기 시작했다. 한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그녀의 눈빛은 고통이 아니라 행복에 가득 차는 것이 아닌가? 그녀의 입술이 가볍게 나풀거렸다. "바로… 그랬군요?" "바보 같은 여인." 철무정은 떨어져 내리는 혈잠화의 몸뚱이를 사뿐히 받아 들었다. 혈잠화는 이제서야 철무정을 알아본 듯했다. "아아, 그대가 바로 창궁비연이었군요?" 혈잠화는 철 농부를 보고 있었다. 그를 꺾은 사람은 창궁비연이고, 죽어 가는 그녀를 안고 있는 사람은 그녀의 첫사랑 철 농부인 것이다. "그대를 보았으니… 이제… 죽어도 좋아요." 혈잠화는 사랑에 맹목적이었다. "어이해… 내 손에 죽어야 하는지……!" 철무정은 입술에 피가 맺히도록 질겅 깨물었다. "한 가지 소원이 있어요." "무엇이든……." "죽어도… 눈을 감기지 말아요." "어이해?" "영원히 그대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요. 죽기 전 본 마지막 영상이 영원히 망막에 남는다고 하니……!" 혈잠화는 피를 주룩 흘리며 숨을 거뒀다. 그녀는 눈을 감지 못하고 죽었다. 놀라운 것은 그녀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맴돌고 있다는 것이다. "그대는 나를 무자비한 자로 만들어 버렸군. 어리석은 여인." 철무정의 입가에 슬픈 미소가 머금어졌다. 혈잠화, 가장 아름다웠던 한 송이 마화(魔花). 그녀는 가장 화려했던 순간에 떨어져 버렸다 할 수 있었다. 데에에엥-! 은은한 종 소리가 숭산 하늘에 메아리친다. 그리고 가사를 걸친 승려들이 대웅보전 앞을 빙빙 돌고 있었다. 검은 연기가 치솟아 오르고, 나뭇더미가 불붙어 타오르고 있었다. 다비(茶毘)의 의식, 인간의 육체가 한 줌의 재로 화하는 화장 의식을 불교 용어로 다비라 한다. 혈잠화의 시신은 철무정의 배려에 따라 소림사의 방장이 직접 주도하는 다비식에 따라 한 줌 재로 화하는 것이다. 철무정은 만감이 교차되는 표정을 지으며 연기가 하늘로 풀리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시는 너 같은 불행한 여인이 없어야 한다.' 그는 입술을 질끈 씹는다. '그래, 다시는… 너같이 불행한 한 떨기 꽃이 없어야만 한다.' 그는 참담한 시선을 던졌다. 이어 그는 신형을 천천히 돌려 한 채의 고옥 쪽으로 다가갔다. 그 곳은 소림사의 약왕전(藥王殿). 약왕전의 처마 위에는 머리가 붉은 단정학(丹頂鶴) 무리가 너울너울 춤추며 날아다니고 있다. 철무정은 약왕전 안으로 접어들었다. 약왕전주이자 현자배 고승인 현묵선사(玄默禪師)가 기다리고 있다가 그를 보고 합장을 했다. "태상조(太上祖), 이제 드십니까?" "제게 예를 취하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아미타불… 그래도 배분은 중요한 것이지요." 현묵선사는 빙그레 웃었다. 소림사는 원상을 회복하고 있었다. 소림은 역시 저력이 있는 방파였다. 마도세력에 무수히 유린당하면서도 소림사의 전통이 유지되는 것은 소림사의 신공절학 때문이 아니다. 소림사의 끈끈한 전통이 소림사를 유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는?" "회복 중입니다." "흐음……!" "너무나도 심하게 다쳤는지라 치료를 하는 데 대환단(大還丹)을 세 알이나 썼습니다." 현묵선사는 철무정을 약왕전 안으로 안내했다. 약왕전 깊은 곳, 무석정이라 불리우는 곳이었다. 새 울음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달빛만이 흘러든다는 유적한 곳. 뜨락에 한 사람이 의자를 놓고 머물러 있었다. 그의 얼굴 반면은 붕대에 칭칭 휘감기어져 있었다. 그는 몹시 건조한 시선을 허공에 던지고 있었다. 죽어 버린 시선, 그는 삶의 의미를 모조리 잃어버린 사람으로 보였다. 철무정은 그의 앞으로 다가서기 전 죽립을 써서 얼굴을 가렸다. 그는 괴인 앞으로 다가서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대의 인내력에 감탄하오." "귀하는?" 죽어 버린 시선이 번뜩인다. 계명성(啓明星)처럼 찬연한 시선이다. 괴인의 눈빛에는 무한한 지혜가 담기어져 있었다. "후후… 귀하는 무수한 고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수하들을 마군맹에 팔아 넘기지 않았소." "으음……!" "마뇌제갈(魔腦諸葛) 동천류(董天流), 귀하는 가히 마도를 지탱할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소!" 붕대로 얼굴을 감고 있는 인물은 마뇌제갈 동천류였다. 그는 마황 헌원사령의 후예. 그는 헌원자방의 세력에 제일 먼저 제압당했으며, 이제까지 무수한 고문을 맏으며 목숨만 겨우 연명할 수 있었다. 혈잠화는 그를 고문하여 천겁만마전의 잔예세력을 마군맹 쪽에 흡수시키고자 한 바 있었다. 동천류는 마군맹을 마도의 이단자로 규정짓고, 그들이 손가락을 자르고 한쪽 눈을 판다 하더라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소림사 사람들이 왜 구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귀하가 소림사에서 어떠한 지위인지……?" 동천류가 의아해 할 때, 철무정은 미소를 지으며 싱겁게 대답했다.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오" "그리 속되 보이지 않는데……." "후후… 나에 대해 구태여 알려 하지 마시오. 우리는 친구니까." "친구?" "프핫핫…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귀하에게 많은 빚을 진 사람이 있소. 그는 나를 통해 귀하에게 빚을 갚게 하였소." "빚이라니?" "이것을 받으시오." 철무정은 두툼한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동천류가 봉투를 쥘 때. "소생은 바빠 이만 물러나겠소." 철무정은 뒤쪽으로 재빨리 돌아서 걸음을 내어디뎠다. 그가 열 걸음 정도 걸었을까? 찌익-! 동천류는 봉투를 개봉하고 내용물을 살펴봤다. 철무정의 모습이 막 송림에 감추어질 때. "으윽! 이것은 전표(錢票)! 오오, 액면이 천만(千萬) 냥(兩)이 아닌가?" 동천류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은자 일천만 냥짜리 전표, 그리고 한 장의 쪽지가 봉투 안에 들어 있었다. <이것으로 천겁만마전을 부활하기 바라오. 그리고 마도를 올바로 이끌기를…….> 서명과 날인이 없다. "은자 일천만 냥… 대체 그가 누구이기에……." 동천류의 눈빛이 흐트러졌다. '어디서 본 듯한 사람이었는데…….' 동천류의 입술이 바짝 타 들어갔다. 문득 그는 하나의 얼굴을 뇌리에 떠올릴 수 있었다. "설마… 그였단 말인가?" 문득 뇌리에 떠오른 인물, 그는 동천류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바 있는 인물이었다. '그렇다. 창궁비연이다.' 동천류는 자신을 찾아왔던 사람이 창궁비연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왜?" 동천류는 멍해지고 말았다. '무서운 인물. 그는… 마도마저 얻고 마는구나. 아아, 그는 젊되 가히 강호의 절대자 같은 존재이다.' 동천류는 철무정의 짙은 인간미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가 적일 경우 그는 가장 무서운 상대자이다. 하나 그가 친구라면 그는 자신을 가장 헌신적으로 돕는 친구인 것이다. '그는 백도 뿐아니라 마도의 맹주감이기도 하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창궁비연! 잼 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