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다섯 달 전 1 스읏! 바람인가 연기인가? 하나의 인영이 그곳에 나타났다. 그는 이미 싸늘하게 변한 시신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인영은 침상 한 자 위에서 구름처럼 둥둥 떠 있었다. "이미 늦었군." 그의 음성은 소탈하고 초췌하기까지 했다. 평범한 노인네의 음성이었으나 왠지 모르게 스산하게 만드는 위엄이 있었다. 이곳에서 이런 음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흑룡 임위충뿐이었다. 그는 의미 모를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누구인가? 두기봉인가 뇌격주인가? 아니면....... 십칠 호를 추천한 흑표 상운기인가?" 의문이었다. 장유도의 죽음은 그로 하여금 많은 의심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그로서는 인정은 해야 했다. 이미 죽은 목숨을 가지고 뭐라 따질 수는 없었지만 진상 규명 차원에서 본다면 모든 것이 오리무중이었다. 도저히 밝혀지지 않을 것 같은 수수께끼처럼 미묘했다. 임위충은 숨이 끊어진 원인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검이로군.......' 그런데 어떤 형태의 검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교묘히 상세를 위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늑골이 잘려 나가고 동맥을 정확하게 끊어 놓았군.' 이런 솜씨라면 상대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대단한 고수임을 알 수는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그가 더 눈치챈 것은, '십칠 호를 잘 아는 사람이야.' 임위충은 다시 한 번 시신을 살피다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침상 위에 덮여 있는 천이 웬일인지 한 곳으로 치우쳐 있는 듯했다. 마치 고의적으로 누군가 구겨짐을 펴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침상 위라....... 여자가 관련되어 있는가?' 그러나 그는 그 의심을 배제했다. 십칠 호에게는 여자가 없다. 이곳에서는 모든 교제가 자유로우나 비밀이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여자를 사귈지도 모르나 언젠가는 누구나 알게 되고 상관에게 보고 되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숨기면서 여자를 만나는 사람도 없고 모두들 그렇게 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여인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집 안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게 되어 있다. 만약 그랬다간 엄한 책벌을 받는다. 이미 그에 대해서는 측간까지 가는 시간도 보고 받았다. '누구인지 이곳을 아는 사람은 세 사람이다.' 그의 신형은 서서히 사라졌다. 팟! 2 꽝! 탁자는 어이없이 부서져 놀란 듯 잔재가 어지러이 나뒹굴었다. 자신도 주체 못하는 파괴였다. 놀란 탁자의 분노는 어떠할까? 그보다 더한 파괴자의 심경과 변화는 무엇일까?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은 엄청난 노화가 내포되어 있었다. 포화상태,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붉은 얼굴이 검붉게 변해 갔다. 적호 뇌격주의 표정이었다. 그의 거처에는 여섯 사람이 다시 모였다. 상석에 임위충, 좌측에 두기봉, 우측에 뇌격주. 두기봉 옆에는 흑표 상운기가 앉아 있었고, 뇌격주 옆으로 살표 나운종과 갈표 삼엄사가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뇌격주의 격한 음성이 결국 튀어나왔다. "십칠 호 장유도를 죽이다니! 그에 대한 이름이 거론된 지 고작 하루도 채 되지 않아서 이런 불상사가 생기다니 어이가 없구나." 그의 분노는 대단했다. 임위충은 그를 지그시 보며 고소를 금치 못했다. '연기라면 가증스러울 정도로군.......' 그는 짐짓 태연하게 물었다. "뇌 각주는 그곳을 조사해 보았소?" "철저하게 지시를 내려놓았습니다." "각주의 의견은 어떠하오?" 그의 질문은 오묘한 뜻이 담겨 있었다. 뇌격주는 두 눈을 치떴다. "원주께서 그렇게 묻는 의도는 무엇이오?" "허허....... 너무 넘치는 질문이었소?" 임위충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넘겨짚었다. 뇌격주는 원래부터 다혈질의 성격이며 직선적이다. 그의 음성이 터졌다. "원주의 말뜻은 혹시...... 내가 그랬다는 뜻입니까?" 눈빛에 가공스런 기운이 은밀히 배어 있었다. 임위충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성급한 건 여전하오. 내가 말한 뜻은 상처의 경중과 어떤 무공인지 알겠느냐는 뜻이오." 그의 누그러뜨린 말투에 뇌격주는 다소 진정하는 기미가 보였다. 뇌격주는 침착하게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본 각주가 너무 격했나 봅니다." "이해하오. 어디 각주의 의견이나 들어봅시다." 임위충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 그렇게 넘겨 버렸다. 교묘한 위장술이 내포된 말솜씨였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서로간에 거리 간격을 적절히 조절하는 어투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그의 장점이었다. 겉으로 사람을 판단하다가는 죽음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임위충의 깊은 내면이 거기에 있었다. 적이 아니라면 누구에게라도 친절을 베풀며 다독거리지만 적으로 돌아선 상태라면 가차없었다. 그런 면을 가진 임위충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뇌격주로서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검에 의한 타상(他傷)인데...... 절묘한 솜씨였소이다." "누구인지 짐작도 못하게 검의 각도가 일정치 않았소. 게다가 뒤틀어 올리면서 동맥을 절단해 버렸소. 그게 바로 치명적으로 이어졌소. 그런데 묘하게도 끝 부분에서 뒤틀어 버린 걸 그대로 빼어냈소. 그게 이상하오." "그게 무슨......?" 임위충은 다시 한 번 뇌격주의 벌건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저것도 위장이라면?' 대단한 인내와 연기력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뇌격주의 질문에 대답해 줬다. "뒤틀어서 올린 게 직각으로 이어졌다면 그건 해남검법이 틀림없소. 헌데 그대로 빼어내면서 갈라 버린 것이오. 그렇다면 다섯 가지의 검법이 이에 해당하오." "고의적으로 그런 건 아닐까요?" "그건 힘드오. 몸에 배인 검법을 그 순간에, 그것도 고수를 죽이는데 위장하려면 자신의 목숨도 걸어야만 하오. 그러니 배인 그대로 행하는 게 숨통을 끊기에 아주 적당하지요." 그의 말은 도저히 의도적으로 검법을 바꾸기에는 힘들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의 다음 말은 예리했다. "만약에 그렇게 했다면 숨은 고수임에 틀림없소. 검법에 능한......." 공교롭게도 두기봉, 뇌격주, 상운기가 검법에 능통하다. 그것이 그의 말의 중점이었다. 두기봉의 삼재일원검법(三才一元劍法)은 무당의 태극혜검과 난파동검법(亂波動劍法)을 복합하여 만들어 낸 검법이다. 세 가지의 검초에 각 검초마다 세 가지의 초식이 곁들어져 묘한 조화를 이루어 내며 다시 그것이 한 가지의 절묘한 초식으로 이어진다. 이루어져 가는 변화는 무궁무진하여 상대가 그걸 파악하기도 전에 이미 끝장나고 있으리라. 일컬어 말하자면 3초식의 다변화된 4초식이라고 할까? 다시 말하면 세 가지 초식이 한꺼번에 펼쳐질 때 그건 하나가 되어 가공스런 위력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그래서 삼재일원검법이라고 불린다. 뇌격주는 독자적으로 자신의 무공을 발전시켜온 독불장군이다. 뇌격룡대팔식(雷擊龍大八式)이라 불리며 한번 펼쳐지면 진정 뇌룡이 노성을 터뜨리는 듯, 천지가 진동한다. 아직 30여 년 동안 6초식 이상을 펼쳐보지 못했다. 그만큼 강한 검법이었다. 흑표 상운기의 검법, 그건 아주 교묘하다. 그의 검법은 일종의 쾌검술이다. 다만, 보이지 않는 검이 느닷없이 튀어나와 상대를 꼼짝없이 죽이는데 괴이하게도 검 끝이 2개로 구부러져 아주 특이했다. 이름도 독특한 사이한성류(邪異寒星流)였다. 차가운 기이함이 흐르면 상대의 죽음은 이미 내 손에 담겨 있다. 매구와 역질이 이 검법에 의해 단 한 수만에 저승으로 향했다. 정수리에 2개의 구멍만 남기고서 이승을 하직한 것이었다. 세 사람은 입을 열지 않았다. 서로간에 힐끗 보더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두기봉의 표정이 싸늘했다. '원주의 의도는 무엇일까? 이미 알면서 모른 체하는 건가, 아니면 숨어 있는 뭔가를 끄집어 내기 위해 이러는 건가, 알 수가 없구나.......' 뇌격주의 얼굴은 노화가 짙은 색채로 얼룩져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입은 철문처럼 꼭 닫혀 있었다. '분명히 음해 하는 공작인데 누구를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가? 분명히 난 아니라고 장담하지만, 이쯤에서는 이제 바른 말을 이야기해도 믿어줄지조차 의문이로군.' 상운기의 표정은 괴이했다. 뭐랄까......?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과 아울러 철저한 배격심(背擊心)이 깔려 있는, 숨은 암살자 같은 표정이랄까....... '그를 추천한 건 나다. 허나 내가 왜 그를 죽이는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원주의 의도적인 어투는 모두를 범인으로 찍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한때는, 아니 지금도 궁설지를 사랑한다. 그래서 원주는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군.' 그들의 생각을 절묘하게 찌르며 임위충의 송곳 같은 발언이 터졌다. "십칠 호의 죽음은 여인과 연관이 있소." "그럴 수가!" 세 사람 모두 놀랐다. 동시에 한마디로 마음을 집약했다. 그리고 그 다음 말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알고 있었어?> 그런데 임위충은 왜 이렇게 말끝을 돌릴까? 그의 진정한, 진실 된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그는 직접 본 듯한 음색으로 꼬집어 냈다. "무엇을 보고?" "향장(香粧) 때문이겠지." 뇌격주와 상운기가 연달아 말하고 있었지만 임위충의 표정은 그게 아니란 듯 무표정했다. 그의 눈길은 두기봉을 향하고 있었다. 두기봉도 임위충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가까이서 죽일 수 있었던 것도 여자이니까 가능했을 것이오. 그러니까 늑골과 동맥만 끊어졌지, 만약에 남자라면 폐까지 절단되어 즉사했을 것이오. 그런데 내가 본 십칠 호의 눈빛은 어느 정도의 의문이 가신 듯한 빛이 들어 있었소." "맞소. 그건 한 마디든 두 마디든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증거가 되오. 세밀한, 이주 세밀한 관찰력이 아니면 밝힐 수 없는 것이었소. 왜냐하면 겉으로는 전혀 드러난 게 없었으니까요." 이들의 예측은 너무나 예리했다. 두기봉은 역시 서열 2위의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렇다고 임위충은 그를 의심하는 눈빛이 없었다. 당연히 의심스러워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담담했다. 그의 입이 열렸다. "조금만 관찰력을 가지면 그건 발견할 수가 있소. 팔호(八號)!" 임위충은 말을 끝내자마자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서서히 허공에서 그 누군가가 몸을 드러냈다. 검은 장삼에 복면까지 한 장한이었다. 두기봉의 눈빛이 반짝였다. '흑룡 팔 호.' "네가 말해 보아라!" 흑룡 8호는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공손스럽게 말했다. 머리는 감히 들지도 못했다. "여자, 그것도 이십 중반의 여인입니다. 체취가 없어졌지만 싱싱함이 절정에 다다른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렇게 추측이 됩니다. 여인들은 각자의 체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에 따라 각기 다른...... 그것은 아무리 변장과 분장을 하더라도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임위충이 손짓을 하자 그대로 사라졌다. 그때서야 그곳에 있는 모두의 얼굴에서 의문이 사라지고 있었다. 뇌격주와 상운기는 자신들의 철저하지 못함을 탓했다. 임위충은 이미 8호의 의견을 듣고 난 뒤 절충하여 말했던 것이다. 잠시 고요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러나 무거웠다. 1다경이 흐른 뒤 두기봉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 "원주, 아무래도 혈사와 죽사, 아사를 보낸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지 않소이다." 느닷없는 그의 말에 뇌격주와 상운기는 흠칫했다. 저 말의 의도는 무엇일까? 임위충이 빙그레 웃었다. "누구도 그들을 막지 않는다면 성공할 것이오." 두기봉은 의외로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그의 음성은 나직했으나 아주 무거웠다. "궁설지에 대해서 얼마나 파악했소이까?" "......?" 임위층은 잠시 흠칫했다. 뇌격주와 상운기, 나운종과 삼엄사도 대경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임위충은 역시 서열 1위다웠다. 그의 연륜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그는 이미 본색을 회복한 뒤 나직이 물었다. "두 각주, 무슨 뜻이오?" "그녀의 무공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소이까, 원주?" "......." 임위충은 순간,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는 곤혹스러워하는 눈빛으로 잠시 침통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오래 가지는 않았다. "각주의 생각은?" "십칠 호를 죽인 그 검법....... 다섯 가지나 있다고 했소이까?" 임위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소." "무엇이지요?" 임위충은 잠시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동영의 흑월일도류(黑月一刀流), 할복할 때도 가끔 쓰이지요. 그리고 산동(山東)의 월강일천검(月剛一穿劍)과 절강(浙江) 모용세가의 독특한 검법인 절양인음검법(絶陽引陰劍法)이 있소. 그 다음에는 천산파의 탈혼마개검법(脫魂魔開劍法)과 전설의 봉래도(蓬萊島)의 을밀검법(乙密劍法)이 있지 요. 헌데 왜 묻소?" 임위충은 무언가 물어보려 하다가 순간, 눈빛이 번쩍였다. 순간의 광채를 보는 사람마다 모두 오싹했다. 두기봉은 그때서야 그가 알아차린 것을 알았다. "언젠가 원주께서 자랑하셨소." "그랬소. 내가 그랬어....... 성주님의......." 그는 기가 막힌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두기봉이 간단하게 말했다. "천하에서 상대가 없다고 한 그 검법." "유명다라십팔식(幽冥多羅十八式)!" 고금 최고의 검법으로 칭송 받는 초절한 대검식(大劍式)이었다. 무림에서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것으로 누구의 검법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무림천하에서는 구전으로 전해져 오고 있을 뿐이었다. 그건 바로 명왕성의 성주인 명왕 궁왕기의 검법이었다. 임위충은 봉래도의 을밀검법을 말하면서 눈치를 챘다. 을밀검법은 상처가 새을(乙)자 모양을 가슴에 새긴다고 해서 생긴 명칭이었다. 그런데 유명다라십팔식은 새 '을'자의 끝 부분을 더 치켜올린 듯한 검법이었다. 아랫배에서 그어 올리면 폐까지 잘릴 정도의 신랄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독특한 문양 때문에 상처만 봐도 모두 오금이 저려 도주하고 말았다고 전해졌다. 오줌까지 찔끔거리면서. 탕! 임위충이 의자의 팔걸이를 가볍게 치며 일어섰다. "그렇다면 궁 소저가 그 검법을 완성했단 말이오?" 두기봉은 즉각 대꾸했다. "우리는 너무 안일했소이다. 그녀를 너무 어린애 취급했지요?" 그의 말은 옳았다. 임위충의 표정이 그렇게 긍정했다. 그런데 누군가 아주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원주님, 대체 내밀원주란 분은 누구십니까?" 여태껏 한마디도 없던 살표 나운종이었다. 그의 얼굴은 진지했다. 그러나 흑표 상운기가 질책을 하려다가 임위충의 손짓에 그치고 말았다. 임위충은 잔잔한 어조로 그에 대해 말했다. "나 전주의 질문도 그것과 연관성이 있을 것이오. 유독 궁 아씨가 내밀원주의 보호를 받고 있으니 말이오." 내밀원주는 흑룡도 관여하지 못한다. 오히려 흑룡도 내밀원주를 상전으로 모셔야 한다. 그의 출현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를 모른다는 데 있었고 온통 베일에 가려서 모두가 두려워하며 궁금해하고 있었다. 신출귀몰(神出鬼沒)이란 말이 내밀원주에게는 딱 들어맞는다. 그러니 모두들 내밀원주의 출현을 겁내고 있다고 봐야 했다. 임위충의 음성이 이어졌다. "내밀원주는 아마도 성주님과 깊은 연관성이 있음이 틀림없소." 그의 말에 모두 동의했다. 그러니 궁설지를 그렇게 옹호하고 나서는 게 아니겠는가? "일단 혈사 등의 일의 결과를 듣고 난 뒤 다시 의논합시다." 그의 말을 끝으로 집회는 일단락 지어졌다. 3 스스......! 20여 명의 인영들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달빛에 반사된 모습은 처량하기만 했지만 그 분위기만은 살벌했다. 모두의 눈빛에서 살광(殺光)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특히 세 사람, 혈사와 죽사, 아사의 눈빛이 더욱 그랬다. 그들은 앞장 서 가는 인영, 치호 양직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미 6시진이 흘렀다. 겨우 찾아낸 곳인데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열두 군데의 미로를 모두 파헤치고 이곳을 찾았다. 한데 전각은 보이지도 않고 거대한 창고 같은 게 나타났다. 혈사는 어이가 없었다. "양직, 이곳이 맞느냐?" 양직은 움찔하더니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궁각이라 하여 전각을 연상하겠지만 일종의 창고와 비슷한 곳이지요. 궁 소저의 집회지역이라 하여 미화한 것입니다. 비밀리에 만나는데 화려하고 웅장한 전각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혈사는 그의 되물음에 할 말이 없었다. 따져보아도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고 이치가 합당했다. 밀약(密約)지역으로써는 오히려 이런 허름하고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 적합할 것이다. 혈사는 양직의 얼굴을 보면서 말을 뱉었다. "일단 기다려 보도록 하지." 양직은 자신이 혹시 착각하지 않았나 하는 노파심에 누구도 모르게 서둘러서 그곳을 빠져 나와 살펴보기 시작했다. 분명 이곳이 내궁각이란 곳이 틀림없다. 본단에서 흘러 나온 정보로도 이곳이 틀림없었다. 사전 재조사를 통해서 분명히 확인까지 한 곳이었다. 양직은 본단의 정보가 그렇게 엉성하지 않다는 판단 하에 다시 세심히 살펴보기로 했다. 일단 혈사에게는 생리현상 처리문제라 말을 해 놓았으니 적어도 1다경의 여유는 있었고 아직 적들도 나타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세밀히 재조사를 시작했다. 창고의 주변은 사람의 기척은 전혀 없는 듯했다. '흠....... 아직 나타나지 않았군.' 그는 안심이 되는 표정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요모조모 낱낱이 훑어보았지만 이곳이 틀림없었고 자신이 먼저 온 게 확실했다. 그는 창고를 한 바퀴 돌고 난 뒤 마지막으로 꺼림칙한 후문의 창으로 안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빛의 반사 때문에 손을 들어 이마 위를 가리며 들여다보았다. 그는 막 살피려 초점을 맞추는 순간에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하얀 얼굴, 하얀 미소. 그건 귀신의 형상과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씨익 웃는 모습은 오싹 소름이 끼쳐 마음조차 얼어붙었다. 정체는 여인이었다. "흡!" 호흡을 들이킨 그는 대뜸 주먹을 날렸다. 쉭! 빠르고 정확한 그의 주먹은 그대로 창문을 박살내려 했다. 쑥! 그런데 이게 무엇인가? 하얀 손이 창문을 뚫고서 튀어나와 자신의 목줄을 틀어쥐는 게 아닌가? 게다가 창문은 깨어지지도 않고서 그냥 뚫고 나왔다. '무, 무영수도 아닌 게......?' 놀랄 만한 일이었다. 저런 것과 상통한 권법이 있다고는 들었다. 그 권법을 써먹기 위하여 펼치는 신법도 이야기는 들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구전으로만 듣던 것이었는데 직접 보니 간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동영의 인자들이나 모산파(茅山派)의 술법자들이 쓰는 괴이한 도술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데 이곳에서, 그것도 여자가 펼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신법도 보법도, 도술도 아니었다. 환상적인 손놀림[手法]이었다. 우둑! 뭔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양직의 동공이 하얗게 돌아갔다. 혀를 빼문 모습이 이제는 그가 귀신이 되어 버렸다. 동시에 여인의 모습이 형상을 드러냈다. 양직은 그녀의 모습을 보자 언뜻 누군가 연상이 되었다. '궁가년의 그 다섯 여인 중......?' 털썩! 그의 죽음은 아주 허무했다. 원래 배신자의 말로가 그렇다는 것을 정확히 보여 주는 것이다. 여인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장유도에 이어서 네가 두 번째로구나....... 그래도 백랑호리(白瑯狐狸)의 옥수(玉手)에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혈사는 이상했다. 왠지 전신이 섬뜩한 느낌이 들어 기다릴 수가 없었다. "죽사, 아사. 서둘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다 갑자기 흠칫했다. 죽사가 먼저 의혹의 눈길로 입을 열었다. "양직이 보이지 않소이다." "똥통에 빠져 죽었나?" 아사의 농담에 죽사는 빙긋거리다 혈사가 굳어 있자 입을 다물었다. 벌리다 다무는 그 순간은 아주 괴상했다. 웃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침묵을 지키는 것도 아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했다. 아사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혈사를 쳐다보았다. 혈사의 눈짓에 그가 직접 나섰다. 아사는 조심스레 창고의 뒤편으로 갔다. 반 각이 채 걸리지도 않았는데 아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혈사 형님, 이곳에 있습니다." 파팟! 혈사에 이어서 죽사의 신형이 귀신처럼 사라졌다. 스슷! 반대편에 내려서는 그들의 모습은 유령처럼 서서히 드러났다. 혈사의 전신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 이런......! 속았다." 동공이 하얗게 돌아간 양직의 숨통은 이미 끊어져 버렸다. 아사는 양직의 몸에 가까이 다가가서 냄새와 안력으로 판별해 나가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발견되리라는 기대감에 의해서 움직였다. 1다경,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일어서며 눈빛에 섬광이 일었다. '역시.......' 예상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그가 찾아낸 것은 분명 암살자가 바깥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창문은 모두 멀쩡했고 양직은 바깥에서 숨이 끊어졌다. 그렇다면 실내에서인데 이 창문은 이미 열고 닫는 작동은 중단된 상태에 있었다. 그렇다면 도저히 실내에서는 죽일 수가 없었다. 창문은 다시 밀고 열어도 전혀 움직일 마음이 없는 듯 요지부동이었다. 아사는 순간 뭔가 발견한 듯했다. 죽사도 뭔가 발견한 듯 그를 쳐다보았다. 죽사가 먼저 말했다. "유리를 깨트리지도 않고서?" "접영투수공(摺影透手功)?" 아사의 음성에 혈사가 나무랐다. "잘도 갖다 붙이는구나!" 아사는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혈사는 그의 행동에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를 나무랐지만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접영투수공은 이미 100년 전에 실전 되었고 그것은 전설의 신투(神偸), 무영신절영(無影神絶影)의 독문수법이었다. 어떠한 것이 가로막고 있더라도 무영신절영은 뚫고 들어가 모조리 훔쳐 내오는 것이었다. 그는 신화를 스스로 창조해 낸 인물이다. 한마디로 입지적인 인물이라고 해도 누구 하나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 상상 속의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황궁에서 무엇을 훔치다 1여 년의 동창의 추적에 의해서 잡혀 사형을 당하고 말았다. 동창의 추적은 그들의 전력을 모두 쏟아 부어 찾아낸 결실이었다. 그런 막강한 실력자들도 무려 1년이나 걸려서야 겨우 찾아내었다. 동원된 인력만도 10만에 이르렀고 금력만 해도 황금 200만 냥을 웃돌았다고 전해진다. 그 이후로 무영신절영에 대한 모든 것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아사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잠시 섬뜩했던 것이다. 그 당시의 처절한 추적과 도주의 상황은 구구절절 애절하게 전해 내려오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그때의 상황하에서는 어느 누구도 입을 벙긋하지 못했다. 동창의 위력은 하늘도 무너뜨릴 시대였다. 그러나 무영신절영의 신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그가 마음먹으면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찍으면, 그건 무조건 그의 것이었다. 게다가 접영투수공은 소림칩실이절예의 비첨주벽법(飛 走壁法)과 동일한 양상의 수법이었다. 한때는 무영신절영이 소림의 파계승이 아닌가 하는 소문도 나 돌았다. 하나 모든 건 오리무중으로 빠져들었다. 혈사의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지다 어느 순간, 멈췄다. '내, 내밀원주의 귀영수(鬼影手)?' 내밀원주의 다른 별호가 오수사령(五手死令)이었다. 그는 손으로 쓰는 무공에는 달통한 사람이었다. 귀영수를 비롯하여 인혼수(引魂手), 소혼수(燒魂手), 거령수(巨靈手), 섬전수(閃電手)가 있었다. 각각의 특성이 뛰어나 무적을 자랑했다. 누구도 내밀원주의 손에 걸려서 살아난 배신자는 없었다. 흑룡 임위충조차 내밀원주의 오수사령에는 거리감을 두고 있었다. 임위충의 독문절기는 단양도법(丹陽刀法)이었다. 그 정도에서 혈사 갈빈은 자신의 생각을 끝내며 마치 누가 듣기라도 하는 양 주위를 연신 살폈다. 죽사가 그 모습을 보자 의아해했다. "형님, 왜 그러시오?" "아, 아니다." 그는 당황한 듯 황급히 수하들에게 지시하고는 그곳을 먼저 벗어나고 있었다. 죽사와 아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수하들을 이끌고 그의 뒤를 따랐다. 혈사의 표정은 두려움이 엷게 배어 있었다. '내밀원주는 유령 같은 사람이야.......' 어디선가 그의 생각을 파악하여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듯 서둘러 빠져 나가는 것이었다. 그만큼 내밀원주를 모두 두려워했다. 4 면사의 여인, 마잠천휼사의 주인은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궁설지, 그녀가 보고 있는 사람은 바로 백랑호리라 스스로 칭한 윤미랑이었다. 윤미랑의 보고를 들은 그녀는 흐뭇했다. 이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고 자신은 그 역할의 핵심에 서서 지휘만 하면 된다. 모든 게 순조롭다. 너무 순조로워 이상하게도 근심이 앞선다. 수월하게 일이 성립되는 날에는 반드시 그에 대응한 불안이 따랐다. 궁설지는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리기 위하여 고개를 힘차게 흔들었다. '그럴 수는 없어!' 윤미랑은 자신의 보고에도 그녀가 아무 말이 없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씨, 왜 그러세요?" "으응?"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윤미랑을 보았다. 그때서야 그녀는 빙그레 웃었다.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윤미랑은 그녀의 미소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 됐다. 이제 물러가거라." "예, 아씨." 그녀가 물러가자 궁설지는 어제 말한 유사 과한성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다. <지금 무림에서 떠오르는 그들, 무림칠기를 불러들입시다. 그들을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아마도 소저의 일이 한결 수월해 질지도 모릅니다. 성주님의 그 수련을 막아야만 합니다. 만약에 막지 못한다면 천하는 도탄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그가 흠칫 몸을 떨 때 그녀 역시 부르르 떨었다. 끔찍하다. 명유신공, 그렇게 듣기도 공포스럽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막강함까지 느끼는 단계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빈약한 어감이 든다. 단지 조금 사이하구나, 하는 느낌은 받을 것이다. 하나, 그건 절대적으로 모르는 소리였다. '명유신공을 익히면 그야말로 염라대왕과 동등한 능력을 가지는, 인간염왕(人間閻王)이 된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고 생각하는 대로 따라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녀의 아버지는 간단하게 무림을 손아귀에 쥐고 나아가 관외나 그 밖의 지역까지 정복하려 할 것이다. 모든 걸 쥘 수 있는 능력이 닿으면 쥐려고 할 게 뻔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그라고 한들 마다할 리가 있겠는가? 지옥의 아수라장이 따로 없을 것이다. 수천 장 밑의 지옥이 지상으로 올라와 펼치지는 것이다. 어떻게 하든 그 명유신공의 완성을 막아야 한다. 한 가지 방법은 궁왕기가 앞으로 다섯 달 후면 한 번 지상으로 올라온다. 환우삼제와의 세기적인 대결 때문이다. 그때,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불가능하겠지만 가능케 해야 한다. '무림칠기를!' 어쩌면 그들을 불러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들과 합쳐서 궁왕기를 막아야만 할 것이다. 그녀는 문득, 그 생각에 골몰하다가 우연히 목격한 하도와 낙서를 생각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설명도 있었고 그녀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한데 그녀는 한 가지 궁왕기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었다. '그 막대처럼 보였던 것은 무엇을 상징할까......?' 그녀는 분명히 보았다. 길이 6치에 이르는 기이한 형태의 막대 모양이었다. 그건 안쪽으로 깊숙이 박혀 있었지만 드러나 보이던 바닥을 그녀는 살필 수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지름이 한 치 남짓 될까?' 아무튼 그녀는 그것이 갑자기 생각이 나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님을 익히 알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은 순서에 입각해서 궁왕기와 환우삼제와의 대결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무림칠기의 초청 문제는 아직 시기상조임을 느꼈다. 자신들의 계획이 완벽한 수준에 이르러서야 다른 사람을 영입하여 철저하게 마무리지을 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자신이 스스로 내뱉은 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과 당주, 내가 한번 환우삼제를 만나보겠어요. 그분들이 전해 오는 만큼 고지식하지만 않다면 내 말을 이해할 거예요. 아버지와 그 수하들의 무서움을 반드시 알려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대 혼란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과한성은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섰지만 그녀는 막무가내였다. 과한성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그들에게 잡히지 않는다는 보장이라도 있는가? 그러나 그것은 과민반응이라고 그녀는 일축했다. 천하의 환우삼제가 일개 여인을 인질로 삼는다. 말만 들어도 절로 웃음이 솟구칠 판국이었다. 그녀의 미소에 과한성도 어색한지 어깨를 으쓱하더니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리고 잠자코 그녀의 말만 듣고 있었다. 그는 지금 체제정비와 인원점검에 나섰다. 조만간 대대적인 격돌이 예상되고 있어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유비무환하여 해로울 건 전혀 없었다. 그들은 숫자면에서 월등히 불리하다. 게다가 능력면에서도 차이가 너무 나고 있었다. 이것을 극복하려면 전략적인 용병술과 기관진식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이미 그녀는 22개의 진식을 설치해 전면전에 대비했다. 뚫고 들어오는 동안 적들은 지칠 것이다. 그리고 산개적인 전투로 적들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다. 지치고 혼란스러운 적들을 단번에 칠 고수들은 대략 40여 명. 이들의 활약이 승리의 관건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각개전으로?'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단면도 무시하지 않았다. 단번에 진식과 산개전투를 약화시키고 각개 전투적인, 1대1의 무공으로 승부를 가리려 할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그만한 능력들이 충분히 있었다. 이미 그녀가 그들의 도발을 부추기고 있었고 궁왕기가 나오기 전에 모든 걸 마무리짓고 싶었다. 그래야 궁왕기도 자신의 야망 달성을 어느 정도는 미룰지도 모른다. 아무리 독선적인 그라 할지라도 혼자서 모든 걸 이루기는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본인이 잘 아는 사실이었다. 다시 인원을 소집하고 훈련시키며 금력을 동원하는 등 모든 준비에 있어서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그 세월동안 완벽하게 준비한다면 궁왕기가 다시 재건하더라도 무너뜨릴 자신이 있었다. 적의 정보망이나 간세의 활약을 잘 차단했다. 이제 제대로 된 실력을 보이는 것만 남았다. '길어야 칠 일 정도야.' 그녀는 태사의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검은 경장은 그녀의 하얀 피부와 아주 잘 어울렸다. 면사는 고요히 정적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휘황하게 빛이 나면서 희망을 품고 있었다. 5 황산(黃山). 오악(五岳)인 태산(泰山), 화산(華山), 형산(衡山), 항산(恒山), 숭산(嵩山)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그 멋 때문에 보통의 산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사대 명산인 황산에서 돌아온 사람은 그 오악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명대(明代)의 저명한 지리학자였고 여행가였던 서하객(徐霞客)의 30년 여행 결산에서 말한 것이다. 또 한 가지는 황산에는 기송(奇松), 기암(奇岩), 운해(雲海), 온천(溫泉)의 사절(四絶), 사기(四奇)라고도 하는 것이 있었다. 이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 받는 산이 바로 황산이다. 황산은 안휘성과 강소성의 경계지역에 있다. 황산의 어느 산자락에서 강소성이 바라보이는 곳에 제법 듬직한 주루가 자리잡고 있었다. 활빈루(活賓樓). 이름만 들어도 흐뭇한 곳이었다. 살아 있는 귀빈을 모시는 곳이 어련할까? 아래층은 모두 꽉 들어차 있어 눈길은 2층으로 쏠린다. 그곳의 명당자리인 창가에는 7명의 남녀가 앉아 있었다. 20대 초반부터 30대 후반까지 다양했다. 각각의 특색이 특출하고 기이한 기운이 서려 있는 듯해서 그들 주위는 아무도 없었다. 2층으로 올라온 사람들도 그들 주위에 앉았다가 기이한 기운을 접하자마자 그대로 일어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일반인이든 무림인이든 그런 반응은 모두에게 똑같이 일어났다. 비어 있다고 모두의 자리는 아니었다. 일반인들은 아예 3장도 접근하지 못하고 물러간 반면에 무림인들은 2층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내려가 버렸다. 그래도 무림인이라 7명의 인물에 대해서 느낌으로 알아차리고는 일찌감치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주루의 주인장도 탓하지 않고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먹고 있는 술과 안주를 값으로 따지자면 1층 전체가 먹고 있는 것보다 두 배는 비싼 가격이었다. 그래서 주인은 입을 꾹 다물고 오히려 점원들에게 더욱 신경 쓰라고 압력을 넣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모두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간과한다기 보다는 처음부터 그런 것까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사라져버려서 몰랐던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자리의 배치였다. 당연히 나이 많은 장한이 상석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20대 중반의 어린 청년이, 그것도 오연하게 앉아 있었다. 평범한 얼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준수하다거나 뛰어난 미남자는 아니었다. 보통의 일반적인 청년이었다. 오히려 누가 보더라도 업신여길 만한, 순진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뛰어나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리석어 보이지도 않았다. 다만 특색 있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여섯은 보이지 않게 그 청년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여섯의 기질도 보통이 아닌 듯한데 이상했다. 그러나 청년은 전혀 상관할 바 아니라는 듯 무표정했다. 그는 가슴에 하나의 검을 품고 있었다. 검집의 손잡이는 그다지 뛰어난 재질은 아니지만 3마리의 용이 서로의 몸을 감으며 승천하고 있는 모습이 각인 되어 있었다. 쉽게 볼 수 있는 재질이나 그 조각 솜씨만큼은 신의 걸작품 같았다. 날아오르는 듯한 힘찬 모습은 금방이라도 살아서 꿈틀댈 것만 같았다. 잡지 않으면 놓칠 것 같은 생동감이 넘쳐 흘렀다. 청년은 그 검을 안고서 한시도 몸에서 떼어 놓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생명처럼 아끼는 듯했다. 그를 바라보고 있던 20대 후반의 청년이 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대형(李大兄)! 삼성당으로 바로 갈 것입니까?" 그러자 누군가 말했다. "강서성의 남창(南昌)에서 마지막 일거리를 마친 뒤 가야 하지 않겠나, 방 아우?" 되물은 사람은 유수겸 낙교였다. |
첫댓글 잼 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