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수감사절의 유래에 대하여 " (Thanks Feasts:Feast of weeks and Feast of harvest)
가을추수를 마친 후 드리는 예배로 초막절 혹은 수장절에서 계승된 절기이며 (레23:33-44) 신약시대까지 내려온 큰 절기이다(요7:2참조) 맥추절이 가나안 땅에 입성하여 거둔 첫 수확에 대한 감사 절기라면 초막절(수장절)은 최종 수확의 아름다운 열매들을 거두게 하신 은혜에 대한 감사 절기이다. (레23:40.출20:16.출34:22 참조) 그러므로 그와 같은 초막절의 의의를 계승하여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성도들은 영혼과 육체를 통하여 한해동안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동시에 앞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 땅에 행해질 하나님의 심판의 추수때에 알곡으로 들어갈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마13:24-30참조) ◎유래는(여러 문헌을 참조하였음) 종교개혁으로 영국의 메리 여왕은 잔학하고 혹독한 방법으로 개혁운동을 하는 신교도들을 죽이고 핍박했다 고난 속에서 지내던 영국의 신교도들은 1602년에 신앙의 자유와 참 믿음을 위해 모이기 시작했고 1607년에는 법적으로 신교도들을 핍박하기 시작했다. 처형과 추방을 했으므로 신교도들은 폴란드 등 인접국으로 망명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고난을 겪으며 세월이 흐른 뒤 1620년 9월 6일 브르웨이트라는 지도자를 따라서 그들은(청교도[Puritan]일행) 두 척의 배(스피드월리.메이풀라워)에 나누어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신천 신지의 대륙을 향하여 출발 하면서부터 시작 되었다. 출발하면서부터 거센 풍랑과 싸워야했고 험란한 여정이 계속 되면서 문제가 생겨 스피드 월리호는 도중에 돌아갔고 메이풀라워호(180톤짜리작은배)는 102명(남78명여24명)을 태우고 76일 3,400마일의 먼 뱃길을 항해하게 되었다.
선상에 청교도 일행은 서로 붙잡고 울어야 했고 밤낮 하나님께 뜨거운 기도를 올려야 했다. 1620년 11월20일 꿈에도 그리던 미국 동부해안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에 대하여 손에 손을 마주잡고 다음과 같은 협약을 하게 됐다. 이것이 퓨리탄의 유명한 51명의 명의로 된 선상협약 (Promouth Statement)이다. ①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장래의 생활목적을 설정한다. ②우리는 나라를 세울 때 국민들의 계약에 의한 민주정치를 구현한다. 그들은 다음날 곧1620년 11월21일 메사추세츠 플리머스(Freemouth)에 도착하였는데 102명중 한 사람은 항해 도중에 죽고 한 사람이 태어나서 102명이 상륙하게 되어 숫자에는 변함이 없었다.(혹자는126명이라함(남78명여48명) 태어난 아기의 이름은“오나아스”(태양)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들이 미 대륙에 상륙하여 모질고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했고 토인들의 습격을 받으면서도 제일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릴 교회를 지었다. 양식의 부족으로 급기야 옥수수 낱알 5개로 하루를 보내면서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로 위로하며 격려하며 살아야 했다. 풍토병과 토인들의 습격으로 형제가 죽어갈 때 그들은 집앞에 형제의 시신을 묻으며 형제여! “먼저 가거라 하나님 나라에서 만날 때 우리가 어떻게 어려움을 이기고 성공한 것을 말해 주리라”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47명의 사랑하는 형제를 그곳에 잠재우면서 그들은 정착하게 되었다.
◎역사가가 말하길 “만약 그들이 교회가 아닌 자기들의 집을 먼저 지었다면 오늘의 세계를 이끄는 미국이 없었을 것이요. 굶주림과 풍토병 토인들의 습격 견디기 힘든 어려움을 이겨낸 원동력은 교회를 통하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지나간 날에 결실이 오늘의 미국이다.
◎악전고투하여 겨울을 지낸 1621년 3월 하순경 사모셀드라는 추장과 스구완도라는 토인이 방문을 했다 (아마 전에 토인들에게 포로가 되었던 한 영국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됨) 그들의 도움으로 토인들과 화친을 맺고 그들로부터 씨앗을 얻어 농사짓는 법을 배웠고 이들은 옥수수를 심고 고기를 잡으며 열심히 일을 해 1621년 10월에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되었다. 이 축복을 감사하기 위해 토인들을 초청하고 자기들이 수확한 과일과 곡식을 가져다 놓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며 3일간 축제를 벌였다. 모든 형제와 토인들이 즐거운 축제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앞서간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그들과 음식을 나누면서 같이 즐기며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 것이 감사절의 시작이었다. 그때에 지사(행정관)는 윌리암 브랏포드(Bradford)였다 그후1623년 매사추세츠주에서는 추수감사절을 공식 절기로 선포하였으며, 1789년에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톤이 이를 전국적으로 지킬 것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은 추수감사절이 왕의 관습이라는 이유로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중단하였다. 그 뒤로 추수감사절은 일부 주에서만 비 공식적으로 지켜지게 되었고 기념일도 주마다 달랐다. 이렇게 폐지되었던 추수감사절이 다시 지켜지기 시작한 것은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 국회에 동의를 얻어 십일월 넷째 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일로 개정하였다. 이는 Godey's Lady's Book의 편저자였던 사라 요세파 헤일 여사의 추수 감사절은 미국의 건립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졌음을 기념하는 연례적인 절기로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 들여진 결과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남북 전쟁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감사절 하루 동안은 전쟁이 중지되기도 했다. 그후 32대 대통령인 루즈벨트가 1939년 크리스마스에 상점이 너무 바쁘므로 셋째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개정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관습 때문에 지금도 셋째주 목요일로 지키는 곳이 많이 있다. 한편 미국의 카톨릭에는 추수감사절 주일이 따로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개신교와 똑같이 추수감사절을 지키고 있으며 성공회 역시 감사주일을 따로 정하지는 않았지만 기도서에는 이날 행사에 대한 기도가 들어 있다.
◎우리 장로교회에서는 1908년 독노회 제2회 독노회에서 미국의 감사절을 그대로 받아들여 감사절을 지킬 것을 결의했다. 1914년 교파 선교부의 회의 결과에 따라 미국 선교사가 조선에 입국한 것을 기념하는 뜻에서 십일월 셋째주 수요일로 변경을 합의하여 1914년 제3회 총회에서 십일월 셋째주 수요일로 개정하여 지켰으며 1921년 9월 10일 평양에서 모인 제 10회 총회에서 십일월 둘째주일로 변경했다가 다시 십일월 셋째주일로 변경하여 오늘날까지 지켜오고 있다. 한편 교계에서는 추수감사절을 우리의 실정에 맞게 추석(중추절)으로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고 일부 교회와 교파에서는 이미 이를 시행하고 있다. (근래는교회 실정에 맞추어 추석과 십일월 첫주 혹은 셋째주일에 자유롭게 드리고 있다) 감사 합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복된날이 되기를 소원하면서 두손을 모아봅니다 건강과 가정에 행복을 기원하면서 주안에서... 샬롬 ! 추수감사절아침 취영루/ 박한규목사 朴漢圭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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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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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하나님 영광위해 세운 미국...우리나라도 하나님 영광위해 날마다 성장하길 기도합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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