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후반 이 모씨, 은퇴 4년만에 ‘꼰대’ 탈출한 이야기
장보기 주도적으로 하고 손수 김치 담가, 직장인 아내는 행복 미소 지어
▲ 제2인생 성공사례로 남편이 저녁을 준비해 부부가 식사하는 장면. YTN 방송에서 녹화했다.
우리 사회에서 ‘꼰대’라는 이미지는 주로 부정적 의미를 지닌다. 얼마 전까지는 대화에서 “나 때(라테)는 말이야”, “내가 젊었을 때는”, “내가 왕년에….”등을 자주 쓰는 사람을 일컬었다. 요즘엔 ‘꼰대’의 의미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예컨대,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사람, 묻지도 않았는데 남을 가르치려는 사람, 오지랖이 넓은 사람, 대접을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 자기중심성이 강한 사람,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 귄위주의에 사로잡힌 사람, 시대의 흐름을 모르는 사람 등을 지칭한다.
부부 사이에선 주로 남편이 꼰대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기도내 교육계에서 39년만에 은퇴한 이 모씨. 현직에 있을 때도 그러했지만 혼자서 밥상을 차려 먹을 줄 모른다. 아내의 1인 3역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엄마, 직장인, 주부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맞벌이인데도 아내는 퇴근하기가 무섭게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남편은 식사 때 수저질만 한다. 설거지는 당연히 아내의 몫이다. 남편은 완전 조선시대 상전인 것이다.
▲ 필자의 오이부추 김치 담그는 모습(2000.2.22)
▲ 필자의 알타리쪽파 김치(2021.9.9)
이랬던 그가 어느 날 변했다. 기껏해야 마트에서 카트를 밀고 아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짐꾼이었던 그가 장보기를 혼자서 한다. 점심을 매식하던 그가 먹고 싶은 요리를 직접 해서 먹는다. 퇴근하는 아내를 맞아 함께 식사하려고 저녁을 준비한다. 김치담그기는 얼갈이김치, 총각김치, 알배기김치, 오이소박이, 오이부추김치, 겉절이, 파김치, 열무김치, 나박김치 등 메뉴를 바꾸어 가며 즐겁게 해낸다. 기록을 보니 김치 담그기 1년에 20여 차례 했다.
그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공무원연금지에 나온 ‘꼬막시금치 겉저리’ 도전 성공이 첫출발이 되었다. 누님과 아내의 조력을 받아 성공한 ‘꼬막시금치 비빔밥’이 최초 주방장 요리가 되었다. “아빠가 요리한 것 맛있네!”하는 아들의 칭찬은 상남자의 제2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또 그 첫 도전 사례가 ‘당신, 꼬막 다시 사와야겠네요?’라는 한 편의 수필로 지상에 공개되었으니 과거로 돌아갈 순 없다. 그는 자립의 성공 요인으로 가족의 인내와 조력, 칭찬을 꼽았다.
그의 과거는 생각하기조차 싫다. 아내가 퇴근이 늦을 때면 혼자 차려 먹을 생각은 아니하고 퇴근한 아내가 늦더라도 저녁을 차려 주길 기다렸다. 밤 10시, 배에서 ‘꼬르락 꼬르락’ 소리가 난다. 귀가한 아내에게 왜 늦었냐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 화부터 낸다. 아내의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부부 사이가 금이 가기 시작한다. 부부 냉전이 시작된다. 자식들 가정교육에도 좋지 않다.
▲ 필자가 담근 알배기 김치(2000.6.13)
아내는 남편의 변한 원인을 ’생존’에서 찾았다. 배고프면 알아서 차려 먹어야지 아내가 차려 줄 때를 기다리면 아니 된다. 끼니 거르거나 배고프면 누가 가장 손해인가? 부부 사이가 불편하니 정신건강도 해친다. 100세 시대라는데 자신의 건강은 본인이 알아서 챙겨야 한다. 죽을 때까지 국가에서 연금이 나오는데 부부 사이 멀어지면서 건강까지 해칠 필요가 있는가?
나도 생각을 바꾸었다. 직장 일도 힘든데 퇴근해서까지 남편 뒷바라지를 해선 아니 된다. 시간이 많은 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게 순리다. 아내로부터 요리 실력 칭찬받으니 자신감이 생긴다. 저절로 요리 실력이 향상된다. 미숙한 요리는 경험이 많은 아내가 도움을 준다. 이제 아내는 여유 있게 퇴근해 남편에게 웃으며 말을 건넨다. “여보, 오늘 저녁 반찬은 무엇인가요?” 꼰대 탈출 주인공은 바로 이 글을 쓴 시민기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