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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직당시의 김진식선생님>
이 글은 은사이신 김진식선생님이 중동72회 홈커밍데이에서 하셨던 강의내용입니다
얼마 전에 만났뵜을 때 "만담 한 토막이니 웃으며 읽어보라" 건네주셨는데 다 같이 읽어봄 직 하기에...
당부하시기론 72회를 67회로 고쳐서 읽어보라하셨지만 원본의 감동을 살리기위해 그대로 옮겨봅니다
나는 1965년 8월부터 1984년 3월까지 영광스럽게도 중동에서 봉직하는 동안 조회, 종례를 짧게 했습니다.
이번 홈커밍 데이 행사 섭외 담당자가 아마도 이 강의를 간단히 끝내줄 거라 생각하고
나에게 강의 청탁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강의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머리에 넣어주는 명강, 저명 인사의 특강, 결강 시간 보충하는 보강, 후끈 달아 오르는 열강,
피를 토하는 듯한 혈강,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휴강, 오늘 휴강이다하면 다들 얼마나 좋아했습니까?
유감스럽게도 오늘은 여러분이 그 기쁨을 누릴 수가 없겠습니다.
중동 72회 여러분, 이게 어떤 만남입니까?
두 세기에 걸친 30년 세월이 지난 만남인데 잠시, 잠깐 얘기하고 끝낼 일입니까?
지금부터 길게 썰을 풀려고 하니 여러분, 편안한 자세로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중동 72회 여러분은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 질풍노도 (Sturm und Drang)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10대에는 유신체제하에서 교련사열 받느라 고생했습니다.
20대에는 박대통령 시해사건, 군부 독재 타도 데모, 6,10 민주화 항쟁 투쟁, 대통령 직선제 선거제도 쟁취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여러분은 386세대의 바로 위 기수로서 민주주의 회복운동의 선봉세대로 20대를 보냈습니다.
1997년 IMF라는 뜻밖의 환란을 맞아 어렵게 30대를 보냈고, 2008년 전 지구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힘들게 참으면서 40대에서 50대로 진입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어려움들을 사자 여러분은 슬기롭게 헤쳐 왔습니다.
이 슬기의 원천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잠시 과거로 돌아가 봅시다.
종로구 수송동 중동고등학교 후문 오른쪽에는 한국일보사가 있었고, 왼쪽에는 일본 대사관이 있었습니다.
일본 대사관을 똑바로 보는 중동의 별채처럼 나와 있는 건물은 화장실이었습니다.
계단 옆에 붙어 있던 그 구조물을 말합니다.
이 화장실 창문 밖으로 무엇이 보였나요?
대사관 건물위에 나붓기는 것은 일본 국기, 일장기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토하지 못했던 우리 조상의 울분을 여러분의 물대포 호스는 힘있게 일장기를 향해
분수를 뿜어댔습니다.
한반도를 다시 지배하려는 일본의 음모의 불길을 원천부터 끄트리려는 방화수를 여러분들은 뿌렸습니다.
여러분보다 더 신나게, 가치있게 애국심을 표출한 학생들이 또 있었겠습니까?
항일 운동에 앞장 서신 여러분의 선배님들 중 이승만 박사와 박정희 대통령에게 굳세게 저항한
통일당 양일동 당수님, 동국대학교 국문과 이병주 교수님, 육군사관학교 교수부장 이동희 장군님 등등
기라성같은 분들이 개교기념일이나, 학생의 날에 후배들을 위해 특별 강연을 했습니다.
그분들의 강연 주제는 하나같이 다른 학교 학생들 때려 주었다는 싸움 이야기였습니다.
당시에 나는 그렇지 않아도 주먹이 근질거려 참지를 못하는 싸움닭들에게 싸움 얘기를 하는 선배님들이
몹시 못마땅했습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오늘 나도 여러분에게 싸움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중동 72회 여러분이 입학하기 직전이나, 직후의 일입니다.
5월 어느 일요일, 오후, 옛 화신 백화점 근처,
지금의 중국어 어학원이 있는 곳에 중동 학생 2명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중동 학생과 시비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왠 불량배가 느닷없이 흉기로 한 학생의 목을 찌르고 달아났습니다.
다행히 흉기는 목의 가장자리를 스쳤습니다만 옆에 있던 친구는 훗날 피가 1m 이상 솟구쳤다고 말했습니다.
엉겁결에 손으로 목의 상처를 누르고 "중동, 중동 없냐?" 소리를 질렀더니
순식간에 20여명의 중동 학생들이 모이더라는 것이었습니다.
3학년 학생 하나가 피흘리는 학생을 외면하고 지나가는 택시 앞을 가로막아 부상자를 싣고
서울대 응급실로 갔습니다.
마침 졸업생 선배가 레지던트로 있어 일사천리로 응급처치를 하여 천행으로 목숨을 건졌던 것입니다.
사건을 목격했던 주변의 행상들은 순식간에 모였던 학생들을 보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꼭 약속이나 한 것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수 십명이 모이더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드러나는 중동의 끈끈한 의리를 나타내는 하나의 좋은 예라 하겠습니다.
나는 중동에서 봉직하는 동안 여러분이 대단히 좋아하는 학생부에만 있었습니다.
주로 강력범 검거와 수사하는 일 전문이었습니다.
자주 종로 경찰서에 갔습니다.
싸움하다가 붙들려 온 중동 사자를 구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신병 인수서에 싸인하고 나오려면 담당 경찰이 한 마디 했습니다.
"참 이상한 학교야. 애들이 싸울 수도 있어. 그런데 어째서 이 학교는 붙었다하면 집단 싸움인지 모르겠어."
이처럼 끈끈한 단결력은 선배, 동료, 후배와의 유대를 형성하여 특유의 중동의 전통과 문화를 이루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드세서 선생님들도 거세졌는지, 선생님들이 호전적이어서 학생들도 공격적으로 됐는지 모르겠으나,
중동 선생님들 역시 다른 학교 선생님들에게 지기 싫어했습니다.
76년 예비고사 감독 교사로 차출되어 선생님들은 경기고등학교로 갔습니다.
아침 7시 10분까지 집합해야 했는데 그날 아침 교통이 혼잡해서 한 선생님이 제 시간에 맞추어 오지 못했습니다.
출결 점호에 배석했던 경기고 교장이(후일 서울 교대 학장이 된 분) 경기고 교감과 교무주임을 불러 세우더니
"뭐 이런 것들이 있어. 중동 교장에게 전화해서 어찌 된 거냐고 물어 봐?."라며 반말지껄이로 온갖 불쾌한 말을
퍼붓더니 그 자리에 있는 분들의 정신이 나가도록 닦달을 했습니다.
중동에서는 못 보는 아주 위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중동의 한 선생님이 일어서서 따졌습니다.
"고사 시작 시간이 8시 10분이므로 아직 50여분의 여유가 있는데 외부에서 온 손님 선생님들에게 왜 불쾌감을
주느냐? 이런 강압적 분위기에서는 감독 못한다, 중동도 경기 못지 않는 명문인데 이렇게 사람을 무시한다면,
자존심 상해서 그만 두고 나가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교장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고 대신 교감이 싹싹 빌었습니다.
포두서찬(抱頭鼠竄)이라는 말이 있는데 직역하면 머리를 감싸고 쥐처럼 도망친다는 뜻입니다만
무서워서 몰골사납게 얼른 숨는다는 뜻입니다.
나는 포두서찬의 몰골을 그날 똑똑히 보았습니다.
우리 중동 선생님들은 못이기는 척하고 고사 감독을 했는데 한 조로 근무하는 경기고 파트너는 폭군 교장을
혼내주어 고맙다고 중동 선생님들을 칙사 대접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그 선생님이 누구신지 궁금하시죠?
여러분 앞에 서있는 바로 이 사람입니다.
그 날 조금 늦으신 선생님도 밝히겠습니다.
나중에 동국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가신 한문의 대가 소석 이종찬 선생님입니다.
그 분의 따님도 그 날 고사를 치러야 했기 때문에 따님을 고사장에 데려다준 후 오시느라 10분 정도 늦은 것
가지고 그 소동을 벌였던 것입니다.
중동 사자 여러분은 사람을 놀래키는 재주를 가졌습니다.
공자의 말씀이 틀렸음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공자는 군자는 세 가지 조심할 것, 즉 삼계(戒)가 있다고 했습니다.
청소년 때는 혈기가 영글기 전이니 색(色), 즉 sex를 조심하고,
장년 때는 혈기가 강하니, 싸움을 조심하고,
노년이 되면 혈기가 쇠해지니 욕심, 특히 물욕을 조심하라 했습니다.
내가 중동 사자들에 대해 탄복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여러분들이 색 때문에 말썽을 부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시다싶이 꽃밭에 둘러싸여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니 화약고 옆에서 공부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숙명, 안국동 로타리의 풍문, 그 뒤의 덕성, 한 블록 지나 창덕, 청와대 입구의 진명,
조금 더 가면 산 중턱의 배화, 광화문 네거리 근처의 경기여고, 조금 더 가면 이화, 명동의 계성, 남산의 숭의...
여러분, 정말 꿋꿋하게 지조를 지키고 학업에만 전념한 그 집념, 진짜 가상합니다.
나는 여러분의 부인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내가 학생부에서 근무하는 동안에 "이 아기 아빠를 찾아 주세요"하고 찾아온 미혼모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말을 여러분 오늘 집에 가면 꼭 전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색을 조심하는 단계는 애초에 뛰어 넘어 청소년 시절에 장년이 조심해야할 싸움에 관심이 있었으므로
공자의 말씀이 틀렸다고 말한 것입니다.
학창 시절의 여러분은 영화관 출입하다가 적발되어 처벌 받은 친구는 있어도, 광화문 황태자 제과점 출입하다가
적발된 친구는 없었습니다.
하물며 이성교제 건으로 걸려 학생부에서 취조받은 친구는 절대로 없습니다.
당시의 중동의 교칙은 이성교제를 한 자는 무기정학 내지 퇴학에 처한다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전통의 명문 고등학교에서 이런 엄한 교육을 받은 여러분이기에 나는 중동 동문이 바람이라던가,
내연의 관계라던가, 한 눈 팔았다하는 문제로 결혼 생활이 삐걱거렸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중동 사자 여러분이 싸움을 많이 했다고들 하는데 내가 보건데 싸움을 먼저 건 것이 아니라 어찌하다가 뜻과는
다르게 휘말렸던가, 아니면 친구나 후배가 억울하게 당했으면 그때 나서서 응징하는 차원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학생들이었으니까 요즈음 가정에서 부인에게 주먹을 휘두르지 않으며, 자녀들에게도 수시로 알밤을 먹이는
사자들은 없다고 나는 확신하는 것입니다.
여기 앉아 계시는 중동여고 여러분, 여러분은 확실히 낭군을 잘 고르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동의한다는 표시로 힘찬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중동 사자 여러분, 이 박수 소리를 듣고 정말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친구만 박수를 쳐주십시오.
좋습니다.
여러분은 진정한 중동인들입니다.
중동이 일원동으로 이사 온 후로 영동고등학교, 개포고등학교와 말썽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내 친구가 주관하는 강남 어머니회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 어머니가 중동 깡패...어쩌고 하길래 내가 말을 끊고 끼어들었습니다.
"혹시 따님이 있으십니까?"
"왜 그러십니까?"
"앞으로 사위를 보실려면 무조건 중동 출신을 고르십시오. 배우자에게 잘 해주고, 장인 장모에게 충성을 다하고,
처가 식구들에게 봉사 잘 합니다. 그 사자들은 발가벗겨 길거리에 내쫓아도 제 힘으로 살아 날 수 있는 능력과
깡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동문들이 어려운 동문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
입니다."
그 어머니는 내 이야기를 듣고 더 이상 중동 어쩌고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을 조금만 달리 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 같아서 그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 나름 (一切唯心造)이라든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말,
'세상에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은 없다. 생각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There is nothing good or bad in the world. Only thinking makes it so)
는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가 자녀 훈화에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여러분에게 전수하는 바입니다.
전수라는 말을 쓰는 나는 지금 부끄럽습니다.
여러분은 현재 학계와 교육계, 의약계, 법조계, 군대, 관청, 언론계, 문화계, 금융계, 산업계, 기업계, 자영업, 기타
여러 직종에서 중견급 내지 최상위급에 포진하여 맡은 바 소임을 완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는 속설이 옳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분에게 무엇을 더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농담 한번 하겠습니다.
어느 큰 절의 주지 스님이 산속 바위 굴에 들어가서 10년 동안 수도를 한 후 하산했습니다.
그 절의 스님들, 신도들이 스님 앞에 모여 귀한 삶의 가르침을 받고자 했습니다.
스님이 입을 열고 "심조불산이니라"했습니다.
무리들이 알아듣지 못하자 스님은 "뒤로 돌아보아라" 했습니다.
건너편 산에 산불조심이라는 팻말이 서있었습니다.
어린 상좌중이 장난이 하고 싶었습니다.
"스님, 현월신목이라는 게 뭔가요?"하니
스님이 모른다고 하면서 "그게 무언고?" 하자
상좌는 "예, 현대 백화점은 월요일에 쉬고 신세계 백화점은 목요일에 쉰다는 뜻입니다"라고 했다는 겁니다.
10년 수도한 고승도 어린 상좌에게 못 당하는데 내가 여러분을 당할 수 있겠습니까?
나 같은 아날로그 세대는 여러분과 같은 디지털 세대의 모든 점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강의를 섭외한 친구의 주문은 삶의 교훈을 말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공자 말씀을 인용하여 이 어려운 주문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제자들이 한 마디 말로써 일생의 행동지침을 삼을 덕목을 가르쳐 달라고 하자
(子貢 問曰 有一言 而可以終身行之者乎)
공자는 그것은 바로 서(其恕乎)라고 했습니다.
(子曰 其恕乎 己所不慾 勿施於人)
이 경우의 서는 용서가 아니라 베푼다,
즉 Give라는 뜻입니다.
공자는 남이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 즉 기소불욕 물시어인 (己所不欲 勿施於人) 이라 했습니다.
마태복음 7장 12절에는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행복해지고 싶으면 가정에서부터 우리에게 이익을 주는 이 잠언,
즉 황금률,
Golden Rule을 실천 하십시오.
그 날부터 당장 여러분의 부인으로 부터 어제와 다른 서비스가 돌아 올 것입니다.
이 덕목을 영원히 머리 속에 입력시킵시다.
그러기 위해,
자, 여러분, 우리 구호를 외쳐봅시다.
내가 "서"하고 선창하면 여러분은 주먹을 힘껏 올리면서 "서"하고 복창합니다.
절대로 음란서생처럼 저속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거시기 힘주어 세우자는 게 아닙니다.
베풀자, Give하자! 입니다.
중동!
원기부족!
다시 한번!
중동!
구호준비!
"서!"
"서!"
여러분 건강하십시오.
여러분은 이제 50줄에 들어섰습니다.
무엇보다 건강에 유의하십시오.
그래서 40주년, 50주년 홈커밍 데이에 건강한 모습으로 서로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여러분의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藪人 金珍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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