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찬 물소리에 더위 잊는다 | |
‘강물은 두 산 사이에서 흘러 나와 돌에 부딪혀, 싸우는 듯 뒤틀린다. 그 성난 물결, 노한 물줄기, 구슬픈 듯 굼실거리는 물갈래와 굽이쳐 돌며 뒤말리며 부르짖으며 고함치는, 원망(怨望)하는 듯한 여울은, 노상 장성(長城)을 뒤흔들어 쳐부술 기세(氣勢)가 있다. 전차(戰車) 만 승(萬乘)과 전기(戰騎) 만 대(萬隊), 전포(戰砲) 만 가(萬架)와 전고(戰鼓) 만 좌(萬座)로써도 그 퉁탕거리며 무너져 쓰러지는 소리를 충분히 형용(形容)할 수 없을 것이다. 모래 위엔 엄청난 큰 돌이 우뚝 솟아 있고, 강 언덕엔 버드나무가 어둡고 컴컴한 가운데 서 있어서, 마치 물귀신과 하수(河水)의 귀신(鬼神)들이 서로 다투어 사람을 엄포하는 듯한데, 좌우의 이무기들이 솜씨를 시험(試驗)하여 사람을 붙들고 할퀴려고 애를 쓰는 듯하다.’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소설가인 박지원의 《연암집》에 실린 수필 <물>의 일부분이다.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삼부연폭포를 찾아가는 길은 연암의 이 글을 절로 떠오르게 한다. 멀리서부터 희미하게 들리던 물소리는 폭포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커지며, 지척에 이르러서는 산을 흔들어대는 듯한 엄청난 굉음에 도대체 어떤 물줄기이길래 이토록 요란한 물소리를 내는 것일까, 자못 궁금해진다. ‘나는 옛날에, 문을 닫고 누운 채 그 소리들을 구분해본 적이 있었다. 깊은 소나무에서 나오는 바람 같은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청아한 까닭이며, 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흥분한 까닭이며, 뭇 개구리들이 다투어 우는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교만한 까닭이며, 수많은 축(筑)의 격한 가락인 듯한 소리, 이것은 듣는 사람이 노한 까닭이다. 그리고 우르르 쾅쾅 하는 천둥과 벼락같은 소리는 듣는 사람이 놀란 까닭이고, 찻물이 보글보글 끓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운치 있는 성격인 까닭이고, 거문고가 궁우(宮羽)에 맞는 듯한 소리는 듣는 사람이 슬픈 까닭이고, 종이창에 바람이 우는 듯한 소리는 사람이 의심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모든 소리는, 올바른 소리가 아니라 다만 자기 흉중(胸中)에 품고 있는 뜻대로 귀에 들리는 소리를 받아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연암의 문장을 떠올리며 골짜기로 접어들면 이윽고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삼부연폭포. 골짜기 초입서부터 심상치 않게 들려오던 그 물소리는 과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모습이다. 꿈틀대는 거대한 물줄기가 장쾌하게 아래로 내리꽂히며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모양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암벽을 타고 3단으로 떨어지는 큰 물줄기는 10여m에 이르는데, 그 물줄기가 바로 아래의 푸른 소(沼)에 쏟아져 내리며 온 계곡을 쩌렁쩌렁 흔들어 놓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절로 실감난다. ‘삼부연’(三釜淵)이란 폭포 이름은 층암으로 된 바위벽을 3번쯤 걸쳐 내려올 때마다 물이 고이는 못이 마치 가마솥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특이한 점은 대부분의 폭포가 산중 깊이 자리잡고 있는 데 반해 삼부연폭포는 길가에 위치해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게 산을 올라가야 하는 노력 없이도 길가에 차를 세우고 이 멋진 물줄기를 감상할 수 있다. 가뭄에도 수량이 풍부한 것도 삼부연폭포의 자랑이다. 그 까닭은 계곡 안쪽에 8만여평에 이르는 저수지가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 곳 용화저수지는 한 때 잉어가 잘 잡히는 낚시터로 유명했으나 지금은 낚시와 취사가 금지됐다. 암벽을 뚫은 오룡굴을 지나면 용화저수지의 넓은 수면이 모습을 보인다. 인적 드문 호젓한 숲길이 산책로로 더없이 좋다. *가는 요령 서울 북쪽으로 의정부~동두천~연천을 잇는 국도 3번을 탄다. 혹은 서대문 방향에서 불광동~구파발~송추를 거쳐 의정부로 이어지는 국도 39번을 탄다. 의정부에서 포천~운천을 지나 신철원으로 이어지는 국도 43번을 달려 북상하다가 신철원 4거리에서 우회전해 2.3km 들어가면 왼쪽으로 삼부연폭포가 보인다.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