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1910∼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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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소설가. 본명은 김해경(金海卿). 서울 출생. 1935년대의 전후에 세계적으로 유행된 자의식 문학 시대에 있어 이 땅의 대표적인 자의식의 작가이며 초현실주의의 시인이다. 우리 근대 문학사에서 모더니스트적인 특질을 가장 많이 보여 준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과 건축>에 발표된 그의 초기 시편들은 주로 일본어로 쓰여졌는데 내용이나 형식이 실험적이고 이색적이어서 당시의 문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그의 문학세계는 전통에 대한 철저한 단절감으로부터 시작하며 기하학적인 시의 형태는 정서적 반응에 시를 의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서구의 모더니즘 즉 주지주의(主知主義)의 특징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지거나 비인간화를 지향하는 언어파괴에 있다고 할 때 이상의 문학세계는 철저하게 서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적 도시의 한 특징이 기하학적 건축이나 인공구조물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 모더니즘이 건축을 전공한 이상에게서 한 영역을 개척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니다.
1934년 단편 소설 '날개'를 발표함으로써 시에서 시도했던 자의식의 문제를 소설로 승화시켰다. 그의 소설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자기의 개인적 사정을 내면화한 것('12월 12일'), 둘째는 자기 주변의 이야기를 희화화(戱畵化)한 것('휴업과 사정', '지도의 암실', '지주회사' 등), 이 유형의 소설은 소설이 지녀야할 현실적 삶이 빠져 있어 기호놀이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셋째는 둘째 유형에서 벗어나 좀더 현실적 리얼리티에 가까워진 상태로 '날개'로 대표된다. 넷째는 기호놀이에 한층 더 깊숙히 침잠(沈潛)하여 내면 속의 대칭적 이야기,패러독스 등으로 일관하고 있는 '종생기', '단발' 등이다.(김윤식, '한국모더니즘문학연구(1)-이상 소설의 네 가지 유형분석)
대표작으로 시 '오감도', '이상한 가역 반응', '거울', '꽃나무' 등과 소설 '날개', '지주회시', '봉별기(逢別記)', '종생기(終生記)', 실낙원 '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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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김해경(金海卿). 서울 출생. 보성고보(普成高普)를 거쳐 경성고공(京城高工) 건축과를 나온 후 총독부의 건축기수가 되었다. 1931년 처녀작으로 시 〈이상한 가역반응(可逆反應)〉 〈파편의 경치〉를 《조선과 건축》지에 발표하고, 1932년 동지에 시 〈건축무한 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를 처음으로 ‘이상(李箱)’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 1933년 3월 객혈로 건축기수직을 사임하고 배천온천(白川溫泉)에 들어가 요양을 했다. 이때부터 그는 폐병에서 오는 절망을 이기기 위해 본격적으로 문학을 시작했다. 이상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것은 공사장 인부들이 그의 이름을 잘 모르고 ‘리상(李씨)’이라고 부르니까 그대로 ‘이상’이라고 했다지만 학교 때의 별명이라는 설도 있다.
요양지에서 알게 된 기생 금홍과 함께 귀경한 그는 1934년 시 〈오감도(烏瞰圖)〉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난해하다는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로 중단했다. 1936년 《조광(朝光)》지에 《날개》를 발표하여 큰 화제를 일으켰고 같은 해에 《동해(童骸)》《봉별기(逢別記)》 등을 발표하고 폐결핵과 싸우다가 갱생(更生)할 뜻으로 도쿄행[東京行]을 결행하였으나, 불온사상 혐의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 도쿄대학 부속병원에서 병사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전기 외에 소설 《지주회시(⊙呪會豕)》 《환시기(幻視記)》 《실화(失花)》 등이 있고, 시에는 〈이런 시(詩)〉 〈거울〉 〈지비(紙碑)〉 〈정식(正式)〉 〈명경(明鏡)〉, 수필에는 〈산촌여정(山村餘情)〉 〈조춘점묘(早春點描)〉 〈권태(倦怠)〉 등이 있다. 1957년 80여 편의 전 작품을 수록한 《이상전집(李箱全業)》 3권이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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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김해경(金海卿). 1910년 9월 14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신명학교를 졸업하고 동광학교에 입학했으며 1922년 보성고보에 편입했다.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후,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관방회계과 영선계 기수로 근무하였다. 1929년 12월 조선건축회지 <<조선과 건축>> 표지 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1934년 김기림, 이태준, 정지용 등이 중심이 된 ‘구인회’에 가담하였다. 1936년 도일, 1937년 일경에 검거되어 구금되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나 동경대학 부속병원에 입원했으나 4월 17일 사망했다. 1930년 <<조선>>에 처녀 장편 <12월 12일>을 연재했다. 1931년 <<조선>>에 소설 <휴직과 사정>을 발표하고, <<조선과 건축>>에 일본어로 쓴 시 <이상한 가역반응>, <오감도(烏瞰圖)> 등을 발표했다. 같은 해 폐결핵 진단을 받았으며, 각혈이 심해져 1933년 총독부 기사직을 그만두고, 이태준, 박태원, 김기림, 정인택, 조용만 등과 교유했다.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오감도>를 연재하다가 독자들의 비난으로 중단했다. 1936년 구본웅이 경영하는 창문사에서 구인회 동인지 <<시와소설>>을 편집하였고, 시 <지비(紙碑)>, <가외가전>, <위독>, 소설 <지주회시>, <날개>, <봉별기>, <동해> 등을 발표했다. 1936년 11월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에서 사후 발표작인 소설 <종생기>, 수필 <권태> 등을 썼다. 그는 시, 소설, 수필에 걸쳐 두루 작품활동을 한 일제 식민지 시대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특히 그의 시와 소설은 1930년대 모더니즘의 특성을 첨예하게 드러내준다. 시의 경우 그가 보여주는 것은 현대인의 황량한 내면풍경이며, <오감도 시 제1호>처럼 반리얼리즘의 기법에 의해 불안과 공포라는 주제를 보여주는 것으로 요약된다. 또한 그의 소설은 전통적인 소설 양식의 해체를 통한 현대인의 삶의 조건을 보여주는데, <날개>의 경우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을 통해 어떤 일상적 현실과도 관계를 맺을 수 없는, 파편화되고 물화된 현대인의 소외를 드러내고 있다.
<대표 작품>
날개
1936년 9월 <<조광>>에 발표된 이상의 단편소설. 한국 근대소설사에서 가장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상 문학 중에서도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작품의 화자인 '나'는 도시의 병리를 대표하는 매춘부인 아내와 기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무런 희망도 비판적 자각도 없는 무기력한 주인공의, 좁은 방으로 표상되는 비정상적인 삶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이 이 소설의 주제를 형성하고 있다. 주인공은 외적 현실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아내에게 기생하여 살아간다. 아내가 수상한 외출을 하거나 방에 외간 남자를 불러들여도 분노할 줄 모르며, 오히려 착한 어린이나 순한 동물처럼 '아무 소리 없이 잘 논다.' 이같은 비정상적인 현실에 대한 적응은 자신의 존재를 비하시키고 자아에 대한 모독과 부정을 일삼는 병리적 쾌락으로 전화되어 나타난다. 주인공은 자기 자신을 동물적 존재로 비하하거나 아내가 아스피린이라고 속이며 건네 주는 수면제를 먹고 무자각의 상태에 빠짐으로써 무의미한 삶을 지탱하고 있다. 이 작품이 이상의 여타 소설과 다른 한 가지 특징은, 이러한 무의미한 삶과 자의식의 세계로부터 탈출하려는 강렬한 의지를 표출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소설의 서두에서 주인공의 무기력한 삶이 '박제'로 상징되었다면, 결말 부분에서 표출되는 탈출에의 의지는 '날개'로서 상징된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라는 절규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 탈출에의 의지는 미래로의 적극적인 투기라기보다는 결코 행동화될 수 없는, 자의식 속에서만 메아리치는 간절한 내적 원망의 표백에 더 가까운 것이다. <날개>는 자의식 세계에 대한 뛰어난 묘사로 한국 소설사에서 심리주의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발표당시에는 '리얼리즘의 심화'라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동해(童骸)
1937년 2월 <<조광>>에 발표된 이상의 단편소설. 촉각(觸角), 패배 시작, 걸인 반대(乞人反對), 명시(明示), TEXT, 전질(顚跌) 등의 소단락으로 구분되어 서술되어 있다. 화자인 '나'는 '임'이라는 여자와 결혼했다. 소설 속의 임은 작가 이상이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던 변동림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임이의 자유분방한 남성편력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임과 '윤'의 관계, 즉 임의 부정이 그로 하여금 복수, 자살을 생각하게 할 만큼 심각하게 그의 자의식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패러독스에 의한 복수에 착수'한다. 임과 윤 둘만 영화를 보러 가게 하고, 자기는 'T'를 만나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보며 죽음을 기다린다. 이 작품에서 작자는 실제의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일과 화자의 내면에 대한 묘사를 번갈아 사용하는, 자신의 독특한 기법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화자의 내면은 특히 '자살'과 관계되어 있다. T와 마주 앉은 자리에서도 그는 시시각각으로 자살을 꿈꾼다. 그는 '피고는 일조에 인생을 낭비하였느니라. 하루 피고의 생명이 연장되는 것은 이 건곤의 경상비를 구태여 등귀시키는 것이어늘'이라는 자결 판결문까지 마련해 놓고 있다. 인생을 낭비하였다는 한탄은 이 작품에 곧이어 발표된 <종생기>에서 보다 뼈저린 자학으로 나타난다. '임재는 자객입니까요?'라는 서두 부분의 농담이,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자살의식과 관련되어 있음이 결말부분에서 밝혀 진다. T가 손에 쥐어 준 칼을 두고 주인공은 윤을 찔러야 하나 임을 찔러야 하나 망설이다가, '아하 그럼 자살을 권하는 모양이로군'이라고 깨닫는다. 그가 기다리는 자객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으며, 인생을 낭비해 버린 그에게는 자살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종생기
1937년 5월 <<조광>>에 발표된 이상의 단편소설. 이상 소설의 대부분에서 화자인 '나'는 작자 자신이며, 그밖의 등장인물들도 대개 이상 주변의 실제인물들이었음은 이미 밝혀져 있다. 그 중에서도 이 작품에서는 화자인 '나'가 이상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굳이 작자 자신의 이름을 주인공 화자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종생기'라는 이 작품의 제목과 더불어, 따져볼 필요가 있는 문제이다. 이 작품은 동경에서 죽음을 넉 달 앞 둔 시점에 쓰여진, 이상문학의 결산에 해당한다. 삶의 막바지에 도달한 작자 이상이 인생과 죽음에 대한 태도를 정리하려는 의도가 주인공의 이름과 소설 제목에 반영되어 나타난 것이다. 작품의 서두에서 화자는 당나라 시인 최국보의 <소년행>이라는 오언 절구를 인용하고 있다. '나'가 인생을 탕진해 버렸다는 사실은 이 서두에서부터 드러나며, '만 26세와 3개월을 맞이하는 이상 선생님이여 ! 허수아비여 ! 자네는 노옹일세'라는 결미에서 다시 보이는 것처럼, 짧은 기간에 인생의 전부를 탕진해 버린 자신의 삶에 대한 자학과 냉소가 작품의 전체에 흐르고 있다. 특히 이 소설 마지막 부분에서 화자가 자기의 인생과 죽음에 대하여 보이는 태도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자학과 그 극심한 자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냉소의 극치를 보여준다. 끊임없이 자신의 부정을 감추는 정희의 부정한 행실이 탄로되는 과정에서 자가 당착에 빠져버린 것이다. 이상 스스로 거부하려 했던 19세기의 도덕 관념에 얽매여 충격받고 괴로워하는 모순이 철저하게 해부되고 있다. 소설 속의 사건은 나만을 사랑한다는 정희의 편지를 받고 속는 일인 줄 알면서도 약속장소에 나갔다가 혼절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중심은 화자의 직접진술로 제시되는, 자신의 삶에 대한 회억과 반성, 그리고 인생, 죽음, 문학, 예술에 대한 에피그람적인 단상들에 놓여 있다. 소설의 앞부분에 유서다운 유서, 위풍당당한 명문을 남기기 위해 열세번째의 유서를 쓰는 주인공의 모습이 제시되어 있거니와, 바로 이 소설 <종생기>는 '종생'을 맞는 작자 이상이 심혈을 기울여 쓴 유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박제된 천재, 이상(李箱,1910-1937)-------------------------------------------------------
1934년 여름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으로 재직하던 이태준은 이상의 작품에 홀딱 반한 박태원과 상의하여 이상의 시를 연재하기로 결정했다. 이 연재가 일으킬 소동을 각오한 이태준은 사직원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넘긴 이상의 시제는 <오감도>. 그러나, 물의는 먼저 신문사 내에서 일어났다.
문선과정에서 사전에도 없는 <오감도(烏瞰圖)> 대신 <조감도(鳥瞰島)>로 채자하여 올려 보내자 교정부에서는 <烏>로 바로 잡고 문선부에서는 다시 <鳥>로 뽑았다.
이런 소란을 겪으며 겨우 활자화한 <오감도>의 <시제1호>는 장난꾼 같은 무의미하게 보이는 동어반복의 연속-
십삼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제일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시제2호>는
나의아버지가나의곁에서조을적에나는나의아버지가되고또나는나의아버지의아버지가되고...
였고, <시제4호>는 거꾸로 쓴 숫자의 배열이었으며, 5호에는 선의 도형이 들어가는 등 도저히 시로 봐줄 수 없는 것들의 계속이었다. 드디어 완전히 조롱당한다는 굴욕감을 느낀 독자들로부터 '미친 놈의 잠꼬대냐', '무슨 개수작이냐', '도대체 어쩌자는 거냐'의 분노의 욕설과 항의가 편지로 전화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 엄청난 비난 때문에 30회 예정의 <오감도>는 15회로 끝내고야 말았다. 신문에도 실어주지 않는 '나의 변'이란 글은 통해 이상은 '2000점에서 30점을 골라내는 데' 땀을 흘렸다고 술회하면서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우리는 남보다 수십 년씩 떨어져도 마음놓고 지낼 작정이냐. 모르는 것은 내 재주도 모자랐겠지만 게을러 빠지게 놀고만 지내던 일도 좀 뉘우쳐 보아야 아니하느냐
고 오히려 몰이해한 독자들을 탓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의 문학뿐만이 아니었다. '박제된 천재(<날개>의 서두)'의 생애 자체가 초현실의 연속이었다.
1910년 김병복의 장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경성고공을 졸업, 내무국 기수로 재직 중 인부가 잘못 부른 '리상(李氏)'에서 김해경이란 본명을 버린 이상은 건축전문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 도안에 응모, 1, 3등을 차지하고, 선전에 <자화상>으로 입선한 건축 미술학도였다. 22살부터 일본글로 <이상한 가역반응> 등 기발한 시를 발표해 온 이상은 결핵 때문에 직장을 버리고 백천온천에 요양갔다가 문제의 여인 금홍이를 술집에서 만났다.
금홍이를 데리고 서울로 돌아온 이상은, 그녀를 마담으로 내세운 다방 '베비, 카페 '쓰루', '69'를 핑크빛으로 쓴 간판을 건 다방을 개업, 벌여놓은 사업이 모조리 망하는 동안 단정하던 그의 복장은 엉망으로 바뀌고, 며칠째 세수도 않은 얼굴에는 수염만 자라는 게으름의 극치로 생활한다. 낮에는 골방에서 자고 밤에는 금홍이와 한 사람은 술을 팔러 또 한 사람은 술을 마시러 서로 다른 술집으로 헤어지는 생활 속에서 구인회에 입회하고, <오감도> 등의 시와 <지주회시>, <날개>, <봉별기>, <동해> 등의 소설을 발표한다.
3년만에 금홍이와 헤어진 이상은 36년 여름, 친구 동생이며 이화여전 문과 출신의 변동주와 결혼, 그해 가을 마침내 서울을 탈출하여 동경으로 건너갔다. 결핵과 굶주림, 괴상한 몰골로 동경 바닥을 헤매던 그는 이유없이 불령선인으로 구속되어 경찰서에서 병고에 시달리다 겨우 석방되었을 때는 한 달의 생명유예밖에 없었다. 반년 동안의 동경 시절에 남긴 유고 <종생기>에서 그는 4월 17일 레몬 향기를 그리며 숨을 거둔 자신의 비명을 45일 앞서 미리 지어 놓았다.
묘지명이라. 일세의 귀재 이상은 그 통생(통생)의 대작 <종생기> 1편을 남기고 서력 기원후 1937년 정축 3월 3일 미시 여기 백일 아래서 그 파란만장의 생애를 끝막고 문득 졸하다. 향년 만 25세와 11개월 - 김병익, 한국문단사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