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甲)은 A은행의 기존 여신거래처이다. 갑이 추가여신을 신청하자, 지점장은 추가여신을 취급하면 지점장 전결한도를 초과하게 되므로, 갑 명의의 여신은 영업점장 전결로는 취급할 수 없음을 밝히고, 다른 사람 명의로 대출받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갑은 자기 친구의 친척인 을(乙)에게 명의를 빌려 줄 것을 간청하고, 이를 승낙한 을이 은행 영업점에 나와 금전소비대차약정서 등 대출관련 서류를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이에 은행은 을 명의의 여신을 취급하였다. 그 밖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①A은행은 기표한 여신을 입금한 을 명의의 예금통장을 갑에게 교부하였으며, 갑은 이 통장에서 예금을 인출하여 사용하였다.
②A은행은 을 명의로 여신을 취급하면서, 을에 대하여는 신용조사를 실시하지 아니하고, 단지 여·수신 현황조회, 고객신용정보 조회표, 여신고객
등록표 등의 자료를 작성하였다.
③그 후, 위 대출에 대한 이자는 갑 명의 예금계정에서 자동이체 형식으로 입금되었다.
위와 같은 사실관계에서 취급된 여신이 연체상태에 빠지자, A은행은 을에게 대여금의 반환을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을은 자신은 단지 명의를 빌려주었을 뿐, 진정한 차주는 갑이므로, 대출금 상환에 응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A은행은 부득이 을을 상대로 대여금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이 경우 대여금을 반환하여야 할 채무자는 갑인지, 아니면 을이 채무자가 되는 것인지?
결론
명의대여자인 을은 갑이 내세운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허수아비의 행위의 효과는 그 허수아비에게 귀속한다. 왜냐하면 명의대여자가 여신계약을 통하여 대출이라는 법률효과를 의욕한 이상, 이는 진의와 표시가 일치하지 아니하는 비진의의사표시(非眞意意思表示) 또는 허위의사표시(虛僞意思表示)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령 그 대출금을 명의를 빌린 갑이 이용한다는 사실을 금융기관이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을과의 여신계약은 유효하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대출약정을 하면서, 금융기관과의 사이에 대출채무를 명의대여자가 부담하지 아니하고, 명의를 빌린 자가 부담하는 것으로 합의하였다면, 이는 명백한 허위 의사표시에 해당하므로, 그 대출약정은 무효이고 명의를 빌린 자가 채무를 부담하게 된다.
해설
■ 서설
최근 도하 각 일간지에, 명의를 대여하여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대출을 받도록 한 사람에게 대출채무를 이행하라는 판결이 내렸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이는 소위 명의대여여신의 경우에, 차주가 명의대여자인지 그 배후에서 대출금을 수령하여 이용한 자인지에 관한 다툼에서, 명의대여자에게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내렸음을 의미한다.
명의대여여신은 차주에 대하여 동일인한도(同一人限度)가 소진된 경우, 또는 동일 차주에 대한 여신전결한도(與信專決限度)가 소진된 경우에,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려 대출받는 경우에 문제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경우에, 법률적 문제의 핵심은 사실적·법률적으로 대출받을 수 없는 자에게 명의를 대여해 준 자에게, 채무부담의 의사가 있었는지 여부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위 사례에서, 을의 명의대여에 의한 차입행위가 민법상의 비진의의사표시(민법 제107조)에 해당하는지, 또는 A은행이 명의대여여신인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므로, 소위 통정한 허위의사표시(민법 제108조)에 해당하는 것인지가 문제의 핵심이다.
만일 을의 진의(眞意)가 채무부담의 의사가 없이 단지 명의만 빌려주겠다는 의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금전소비대차약정서에 서명·날인하여 은행에게 채무부담의 의사표시를 한 것이라면, 소위 민법상 비진의의사표시에 해당하여, 상대방인 A은행이 표의자(表意者)인 을에게 채무부담의 진의가 없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 그 차입행위는 무효가 된다(민법 제107조 ①).
따라서 이 경우에는 은행이 채무자 을의 진의를 알았는지 또는 알 수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게 된다.
한편 을의 차입행위가 위와 같이 진의와 표시가 일치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 불일치에 관하여 A은행과 을 사이에 합의가 있었다면, 이는 민법상 소위 통정한 허위의사표시가 되어, 그 차입행위는 무효가 된다(민법 제108조 ①).
따라서 이 경우에는 은행이 채무자 을과 통정한 것이 인정된다면, 을은 대출금을 상환할 의무가 없는 것으로 된다.
그러나 을의 행위가 비진의의사표시나 통정한 허위의사표시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은행과 을 사이의 여신약정은 완전히 유효하며, 을은 대여금채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 명의대여여신에 관한 판례의 입장
● 명의대여자의 책임을 인정한 사례
1) 대법원 1980년 7월 8일 판결 80다 639
사립학교법상 학교법인이 차입행위를 할 때에는 행정청의 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다. S학교법인은 행정청의 허가를 받을 수 없자, 교사들(이하 ‘갑 등’이라고 한다)을 차주로 내세워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았으며, 이때 ‘A 등’이 연대보증을 했다.
그 후 은행이 ‘A 등’에게 보증채무의 이행을 청구하자, ‘A 등’은 주채무자인 교사들과 은행 사이에 체결한 여신계약은, 교사들이 채무부담의 의사 없이 단지 명의만 빌려 준 것에 불과하고, 은행도 그러한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으므로, 민법상 비진의의사표시로서 무효이며, 주채무가 무효로 성립하지 아니하는 이상, 자신들의 보증책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사안에서 대법원은 『…설사…돈을 위 학교법인이 사용하였다고 하더라도, …위 (‘갑 등’)이 사립학교법상의 위 제한규정 때문에, 그들 임의로 위 대여에 필요한 각종 서류를 작성하여 피고(은행)에게 제출하였다는 것이니, 그렇다면 위 (‘갑 등’)의 의사는, 위 대여에 관하여 그들이 주채무자로서 채무를 부담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함이 상당하다고 할 것으로서, 이를 진의 아닌 의사표시로 볼 수 없는 것이고 …』라고 하여, 명의대여자(‘갑 등’)와의 소비대차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하였으며,
따라서 ‘A 등’도 보증채무를 이행하여야 한다고 판시했다.
2) 대법원 1996년 9월 10일 판결 96다 18182
동일인 한도가 소진된 K를 위하여 S가 자신의 명의로 대출받도록 여신거래약정서를 작성하고, K로 하여금 이를 상호신용금고에 제출하게 하여 대출금을 이용하도록 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S는 대리인인 K를 통하여 이 사건 대출금채무를 주채무자로서 부담한다는 표시행위를 위 상호신용금고들에게 하였음이 명백하므로, 그 표시행위에 나타난 대로의 법률효과가 발생하지 않기 위하여는, 적어도 그 표시행위에 대응하는 내심의 효과의사, 즉 주채무자로서 채무를 부담한다는 의사가 피고들에게 존재하지 않았어야만 할 것인데,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장애로 자기 명의로 대출받을 수 없는 자를 위하여 대출금채무자로서의 명의를 빌려준 자에게, 그와 같은 채무부담의 의사가 없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어서, 피고들의 의사표시를 비진의표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설령 피고들의 의사표시가 비진의표시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그 의사표시의 상대방인 위 상호신용금고들로서는 피고들이 전혀 채무를 부담할 의사없이 진의에 반한 의사표시를 하였다는 것까지 알았다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없으며, 그 밖에 이 사건 대출약정의 법률효과가 피고들에게는 발생하지 않고, 오로지 (K)에게만 발생한다는 합의가 피고들과 위 상호신용금고들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볼 만한 자료도 전혀 없으므로, 결국 이 사건에서 피고들은 그들의 표시행위에 나타난 대로 이 사건 대출금채무를 부담한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여, 명의대여자의 채무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3) 대법원 1997년 7월 25일 판결 97다 8403
A와 B는 부동산을 공동으로 구입하였다. A는 그 구입대금에 해당하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상호신용금고에 대출을 신청하자, 신용금고측은 A가 동일인 대출한도(貸出限度)에 묶여 있으므로, A명의로는 대출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다만 제3자 명의로 대출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조언을 했다.
이에 B는 A에게 자신의 명의를 이용하여 대출받는 것을 허락하고, B명의로 대출관련 서류를 작성하여 상호신용금고에 제출했다.
이 사안에서 대법원은 『…제3자(B)가 채무자(A)로 하여금, 제3자(B)를 대리하여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도록 하여, 그 대출금을 채무자가 부동산의 매수자금으로 사용하는 것을 승낙하였을 뿐이라고 볼 수 있는 경우, 제3자(B)의 의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출에 따른 경제적인 효과는 채무자에게 귀속시킬지라도, 법률상의 효과는 자신에게 귀속시킴으로써, 대출금채무에 대한 주채무자로서의 책임을 지겠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제3자가 대출을 받음에 있어서 한 표시행위의 의미가 제3자의 진의와는 다르다고 할 수 없고, 가사 제3자의 내심의 의사가 대출에 따른 법률상의 효과마저도 채무자에게 귀속시키고 자신은 책임을 지지 않을 의사였다고 하여도, 상대방인 금융기관이 제3자의 이와 같은 의사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라야 비로소 그 의사표시는 무효로 되는 것인데, 채무자의 금융기관에 대한 개인대출한도가 초과되어 채무자 명의로는 대출이 되지 않아, 금융기관의 감사의 권유로 제3자의 명의로 대출신청을 하고 그 대출금은 제3자가 아니라 채무자가 사용하기로 하였다고 하여도 금융기관이 제3자의 내심의 의사마저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하여, 비진의의사표시라는 주장을 배척하고, 명의대여자(B)의 책임을 인정했다.
● 명의대여자의 책임을 부정한 사례
1) 대법원 1999년 3월 12일 판결 98다 48989
상호신용금고법상의 동일인 대출한도를 초과한 갑이 그 적용을 회피하기 위하여 을을 차주로 내세워 대출을 받았다.
이 사안에서 대법원은 『…동일인에 대한 대출액 한도를 제한한 구 상호신용금고법의 적용을 회피하기 위하여, 실질적인 주채무자가 실제 대출받고자 하는 채무액에 대하여, 제3자를 형식상의 주채무자로 내세우고, 상호신용금고도 이를 양해하여 제3자에 대하여는 채무자로서의 책임을 지우지 않을 의도하에 제3자 명의로 대출관계서류를 작성받은 경우, 제3자는 형식상의 명의만을 빌려준 자에 불과하고 그 대출계약의 실질적인 당사자는 상호신용금고와 실질적 주채무자이므로, 제3자 명의로 되어 있는 대출약정은 상호신용금고의 양해하에 그에 따른 채무부담의 의사 없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여 통정허위표시에 해당하는 무효의 법률행위이다』라고 판시했다.
2) 대법원 1996년 8월 23일 판결 96다 18076
상호신용금고가 Hco.에 금 10억 원을 대출했다. 다만 동일인에 대한 대출액 한도를 제한한 상호신용금고법 규정의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H co. 명의로 5억 원, 형식상의 차주인 갑 명의로 5억 원을 각각 대출했다.
이 사안에서 대법원은 『…(상호신용금고)도 이러한 사정을 양해하고, (갑)에 대하여는 채무자로서의 책임을 지우지 않을 의도하에, (갑) 명의로 대출관계 서류 및 이 사건 약속어음을 작성받았음을 충분히 추단할 수 있으므로, (갑)은 형식상의 명의만을 빌려준 자에 불과하고, 그 대출계약의 실질적인 당사자는 (상호신용금고와 Hco.)라 할 것이어서, (갑)이 공동 발행인으로 되어 있는 이 사건 약속어음 중 (갑) 명의의 부분은, (상호신용금고)의 양해하에, 그에 따른 채무 부담 의사없이 형식적으로 기재·작성된 것에 불과하고, 따라서 (갑)의 위 약속어음 공동 발행행위는 통정허위표시에 해당하는 무효의 법률행위…』라고 판단했다.
■ 명의대여여신의 법적 성격
● 명의대여행위의 특성
명의대여란 타인에게 자기의 명의를 사용하여 거래할 것을 승인하는 행위를 말한다.
명의대여가 행해지는 것은, 통상적으로 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장애로 인하여 일정한 거래행위를 할 수 없는 자가, 허수아비를 내세워 거래행위를 하고, 허수아비인 명의대여자는 자신의 이름으로 행위를 하지만, 그 행위의 이익과 계산은 배후에 있는 실질적인 행위주체에게 귀속한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그리하여 허수아비의 행위가 대출과 같은 채무부담행위인 경우에, 실질적 차주인 배후조정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게 되면, 명의대여자는 자신이 채무부담의 의사없이 단지 명의를 빌려준 자에 불과하므로, 그 여신거래약정은 무효라고 주장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 명의대여의 법적 성격
1) 비진의의사표시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①진의(의사)와 표시가 불일치하고 ②표의자 자신이 그 불일치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민법 제107조). 또한 통정한 허위의사표시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비진의의사표시의 요건(①과 ②)에 더하여 ③의사표시의 상대방과 통정이 있어야 한다(민법 제108조).
통정은 단지 표의자가 진의 아닌 표시를 하는 것을 상대방이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에 대하여 상대방과의 사이에 합의가 있어야 한다.
2) 그러나 명의대여는 위와 같은 비진의의사표시나 통정한 허위의사표시의 어느 하나에도 해당하지 아니한다.
명의대여로 인한 법률행위는 두 가지 단계를 거치게 된다. 즉 명의대여자와 명의차용자 사이에 명의를 대차하는 합의가 우선 선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명의대여자와 제3자 사이에 법률행위가 행하여지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
그런데 이들 두 단계의 행위는 모두 진의와 표시가 일치한다. 왜냐하면, 법률효과의 발생이 진정으로 의욕되었기 때문이다.
즉 명의를 대차하는 합의에 있어서 명의대여자는 명의대여에 대한 진정한 의사가 있었으며, 제3자와의 법률행위에 있어서는 명의대여자와 제3자 사이에 일정한 법률효과를 목적으로 하는 진정한 합의가 있는 것이다. 예컨대 명의대여여신의 경우에, 명의대여자와 금융기관 사이에 이루어진 여신계약에 있어서, 명의대여자에게는 자신의 명의로 여신을 일으키는 것에 대하여 진정한 의사가 있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그 대출금을 명의차용자(실질적 차주 또는 배후 조정자)가 이용하는 것인지 여부는, 여신계약의 유효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러한 점에서, 명의대여행위는 기본적으로 민법상의 비진의의사표시나 통정한 허위의사표시일 수가 없다.
만일 이를 비진의의사표시 또는 통정한 허위의사표시라고 하여 무효로 한다면, 당사자에 의하여 의욕된 경제적인 목적(대출)은 달성할 수 없거나, 법률상 유효한 방법으로는 달성할 수 없게 될 것이다.
3) 이러한 논리는 사해행위(詐害行爲)의 경우를 보면 분명해진다. 예컨대 채권자의 강제집행을 면하기 위하여 채무자가 그 소유 재산을 다른 사람에게 증여한 경우에, 이를 통정한 허위의사표시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채무자에 의하여 의욕된 목적(소유권 이전)은 그 행위(증여행위)가 유효하여야만 달성될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그 증여행위는 진정하게 의욕된 행위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에 따른 도덕적 비난은 불가피하며, 채권자취소권(민법 제406조)에 의하여 그 비난이 관철되는 것이지만, 이것과 사해행위가 통정한 허위의사표시일 수 없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 명의대여자의 법적 지위
명의대여자의 행위는 소위 허수아비행위(Strohmanngeschaeft)에 해당한다.
허수아비란 법률행위를 함에 있어서 사실적 또는 법적 장애로 인하여 직접 행위를 할 수 없거나, 또는 직접 행위를 하고 싶지 않은 자에 의하여 표면에 내세워진 자를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허수아비와 제3자 사이에 행하여진 법률행위를 허수아비행위라고 한다.
예컨대 증권거래법상의 내부자거래의 제한을 회피하기 위하여, 남편이 부인으로 하여금 주식을 매매하도록 하는 것이 허수아비행위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허수아비행위는 그 자신이 그 법률행위의 효과의 발생을 의욕하였다는 점에서 허위의사표시가 아니며, 허수아비 자신의 유효한 법률행위가 된다. 그리하여 허수아비행위의 법률적 효과는 그 허수아비에게 귀속되어, 허수아비가 권리를 취득하고 의무를 부담한다.
이러한 점에서, 허수아비의 행위는 그 상대방이 허수아비임을 인식한 경우에도, 비진의의사표시나 허위의사표시로 되지 아니한다.
이와 같이 허수아비의 행위는 허위의사표시가 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허수아비가 제3자와 법률행위를 함에 있어서, 양 당사자가 그 행위의 법률효과가 처음부터 그 배후조정자에게 미치고, 허수아비에게는 미치지 않는 것으로 합의한 경우에는 명백히 통정한 허위의사표시가 된다.
이 경우에 허수아비인 명의대여자는 행위 당사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배후조정자의 직접대리인(直接代理人)의 지위에 서게 된다.
● 허수아비이론과 명의대여여신
허수아비이론을 금융기관의 명의대여여신에 적용하여 보면, 허수아비인 명의대여자가 당사자가 되어 여신계약을 체결한 경우에, 명의대여자가 대출을 의욕하고 있는 이상, 그 대출계약을 비진의의사표시(또는 허위의사표시)에 의한 계약체결이라고 할 수 없다.
가령 은행이 그 명의대여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비진의의사표시나 허위의사표시로서 무효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명의대여 그 자체만으로 명의대여자에게 채무부담의 의사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오히려 채무부담의 의사가 있다고 보는 것이 마땅할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여신약정시에 은행과 명의대여자 사이에 그 대출계약의 효력이 명의대여자에게 미치지 않는 것으로 합의한 경우에는, 명백히 허위의사표시에 해당한다. 다만 그 합의는 반드시 명시적일 필요는 없다.
■ 결론
(1) 대법원 판례의 입장도 명의대여여신에 관하여 허수아비 이론에 입각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①『대여에 관하여 그들이 주채무자로서 채무를 부담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함이 상당하다고 할 것』(대법원 1980. 7. 8. 판결 80다639)
②『법률상 또는 사실상의 장애로 자기 명의로 대출받을 수 없는 자를 위하여 대출금채무자로서의 명의를 빌려준 자에게, 그와 같은 채무부담의 의사가 없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어서, 피고들의 의사표시를 비진의표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대법원 1996. 9. 10. 판결 96다18182).
③『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대출에 따른 경제적인 효과는 채무자에게 귀속시킬지라도, 법률상의 효과는 자신에게 귀속시킴으로써, 대출금채무에 대한 주채무자로서의 책임을 지겠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진의와는 다르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1997. 7. 25. 판결 97다8403)라고 하여, 명의대여여신이 비진의의사표시나 허위의사표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함을 밝히면서도,
④『상호신용금고도 이를 양해하여 제3자에 대하여는 채무자로서의 책임을 지우지 않을 의도하에 제3자 명의로 대출관계서류를 작성받은 경우…통정허위표시에 해당하는 무효의 법률행위이다』(대법원 1999. 3. 12. 판결 98다48989).
⑤『(상호신용금고)도 이러한 사정을 양해하고, (명의대여자)에 대하여는 채무자로서의 책임을 지우지 않을 의도하에, …(상호신용금고)의 양해하에, 그에 따른 채무부담 의사없이 형식적으로 기재·작성된 것에 불과하고, …통정허위표시에 해당하는 무효의 법률행위』(대법원 1996. 8. 23. 판결 96다18076)라고 하여 대여자인 금융기관과 명의대여자 사이에 채무를 부담시키지 않기로 합의한 경우에는, 허위의사표시가 되어 그 계약이 무효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2) 그리하여 사례에 대하여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있다.
『…통정허위표시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의사표시의 진의와 표시가 일치하지 아니하고, 그 불일치에 관하여 상대방과의 사이에 합의가 있어야 하는 바, …(을)은 원고 은행…을 직접 방문하여, 금전소비대차 약정서에 주채무자로서 서명·날인하였다는 것이므로, (을)은 자신이 이 사건 소비대차계약의 주채무자임을 원고 은행에 대하여 표시한 셈이고, …(을)이 원고 은행이 정한 동일인에 대한 여신한도 제한을 회피하여, (갑)으로 하여금 (을) 명의로 대출을 받아 이를 사용하도록 할 의도가 있었다거나, 그 원리금을 (갑)의 부담으로 상환하기로 하였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는 이 사건 소비대차계약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갑)에게 귀속시키려는 의사에 불과할 뿐, 그 법률상의 효과까지도 (갑)에게 귀속시키려는 의사로 볼 수는 없으므로, (을)의 진의와 표시에 불일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대법원 1998. 9. 4. 판결 98다17909)고 하여, 을의 대출채무를 인정했다.
결국 사례에서 대출금통장을 갑에게 교부한 사실이나 갑 명의의 예금계정에서 대출금 이자가 자동이체된 사실만으로는, 은행과 명의대여자인 을 사이에 을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의사의 합의가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판례의 논지는 타당하다.
그러나 은행이 차주로 삼고자 했던 을에 대하여, 신용조사를 실시하지 아니한 것이, 을을 차주로 삼지 않으려는 의사의 표시가 아닌가 라는 주장에 대하여, 은행이 여수신현황조회, 고객신용정보 조회표, 여신고객 등록표를 작성한 것을 신용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은 실무와 맞지 않는 판단이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