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집마다 부모자식간의 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많이 다른 듯하다.
우리엄마는 아들을 사이비종교 교주를 모시듯 했고, 그 많은 딸들에게도 애틋하다못해 아릴만큼 애정표현이 과했다. 자식들이 가난한 시골집에 올때면 며칠전부터 싸줄 것과 먹을 것을 가려서 조목조목 준비한다고 정신이 없었고, 당일에는 버선발이 아닌 맨발로 마당에 쫓아나가 안고, 얼굴을 비비고 난리가 난다. 어떤 날은 30분을 걸어서 기차역까지 마중을 가기도 했다. 우리 엄마는 그랬다.
2.우리 시댁은 좀 달랐다. 남편이 어릴때 강원도 영월 산골마을에서 이사를 왔다. 시부모님은 예순나이에 부부가 합동으로 당뇨진단을 받았다. 결혼 전에도 남편은 “노인네들 또 입원했다”는 얘기를 조금 귀찮은 듯 했다. 어머님은 본인도 물론이거니와 남편을 위해서 당뇨예방 식이요법이나 운동을 계획하지 않았다. 흰쌀밥 세끼를 바꾸지 않았고, 병원 처방약이 고작이었다. 아버님은 입퇴원을 10여년 반복하다 돌아가시고, 어머님은 당뇨합병증으로 투석이 되는 요양병원에 계신다.
4.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시부모님과 애틋한 관계를 기대했던 나는 부모자식간의 정을 가늠할때 기준은 우리 엄마였다. 남편은 그런 나에게 결혼전 시부모님 소개하는 날을 많이 미뤘다. 시댁식구들과 첫 식사를 하는 날 나는 남편의 주저했던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았다.
5.아버님은 여느 할아버지와 비슷했지만, 내 어깨보다 작은 키에 윗니, 아랫니 하나씩만 있는 어머님은 첫 만남에 늘어질때로 늘어진 몸빼와 낡은 잠바 입고 나왔다. 멀쩡한 자식들이 저렇게 많은데 어느 누가 신경을 쓴 흔적이 없는 차림이었다. 시댁 식구들은 머쓱한건지 부끄러운건지 모르는 어색함으로 식사를 이어갔고, 어머님은 후식으로 나온 수박 중 가장 큰 조각하나를 젓가락으로 쿡 찍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당황하여 덥썩 받긴 했지만, 놀람보다는 실망감이 컸다.
6.시댁식구들은 모두 재미없는 순둥이다. 매사에 끊고 맺음이 확실한 나로서는 답답할때가 많았지만, 남편은 그때마다 강원도 사람들이 ‘속정이 많다’는 말로 둘러댔다. 위로 아주버님, 시누이 아래로는 미혼 시동생, 시누이 5형제끼리 정있게 인사 한적을 못보았다. 색깔로 치면 무채색이고, 온도로 치면 뜨뜨미지근하게 식어빠진 숭늉이다
7.아버님이 돌아가시는 슬픈 일이 닥쳐도 그랬고, 어머님이 이전 요양병원에서 병실 할머니들과 다툼으로 적응을 못해 다른 병원으로 옮길 때도 그랬고, 치매로 간호사들을 괴롭히는 지금도 그렇다. 애절하거나 간절하거나 급하지도 않다. 무덤덤하게 병원비 각출을 하는 정도로 반응할 뿐이다. 신혼에는 그런 시댁 분위기를 비꼬아 얘기해서 남편이 자주 벌컥하기도 했었다.
8.어머님은 입원하기 전에도 손주들 나이나 이름을 정확히 잘 몰랐다. 그저 귀하다는 눈빛으로 잠시 쳐다보다가 본인이 받은 용돈 봉투에서 지폐를 꺼내 손주들에게 주기 바빴다. 그것이 손주에 대한 최고의 사랑 표현이었다. 용돈을 주고 나면, 자식들 생일은 기억도 못하면서 갑자기 40년 전 옛날얘기가 매번 토시하나 틀리지 않고 시작된다. 부모님 재산을 자식 하나 없는 손윗동서가 한마지기도 안나눠주고 모조리 가로챈 얘기와 욕심 없고 무능한데 마음만 좋았다는 아버님 욕이 핵심이다. 그 레퍼토리 시작 낌새가 보이면 모두 흩어지고 나만 앉아 있다. 결혼생활 20년, 중증 치매인가 싶을 정도로 반복되는 노인네의 타령을 들어주는 여유도 생겼고, 미세바람 통하는 듯한 시댁식구들의 간격도 적응되어 가는 중이다.
10.한달에 두 번 자식들이 돌아가며 면회를 하던 중 요양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어머님이 치료와 식사거부에 투석까지 거부하시며, 치매가 심해졌다고 했다. 결정장애가 있으신 아주버님은 남편에게 의사면담을 미뤘다. 의사는 어머님의 기분전환을 위해 가끔의 외출을 권했다. 손위 시누이는 영상으로 면회를 한 후 단독 간병인이 돌보도록 1인실로 옮기자고 했다. 절절하지 않았지만,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대안이다.
11.친정식구들이었으면 과연 불쌍한 엄마를 서로 모셔간다고 난리였을까?. 어려움이 닥쳐도 애틋함을 항상 간직할 수 있을까? 가족이라면 당연히 친정집의 절절한 애정표현이 맞다고 주장해 온 나였지만, 남편이 어머님의 외출신청을 먼저 하지 않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나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