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리제이션(Pillarisation)
네덜란드는 헌법이 있는 군주국가이다. 네덜란드는 합의(consensus)를 도출하여 사회갈등을 해결하는 정치로 유명하다. 네덜란드 정치를 민주주의국가 톱10에 들어간다고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평가했다. 헌법에 왕은 국가의 최고의 수장이고, 법률이 정한 권한이 있다. 실질적으로는 형식뿐이다. 그러나 국왕의 개인적인 친분이나 관계를 통하여 내각과 국회를 통해 정치를 한다.
상원과 하원이 있다. 상원은 75명이고, 하원이 150명이다. 상원은 인구비례가 아니고 각 지방의회에서 간접선거로 뽑힌다. 상원은 법안을 부결시킬 수는 있어도 법안을 제출하거나 법안을 수정할 수는 없다. 상원보다 하원이 힘을 가진다. 하원은 정당명부식으로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2017년 총선은 28개 정당에서 선거명부에 1117명의 후보자를 냈다. 네덜란드 정당명부식 선거는 각 정당이 국회의원 후보자를 내고 전 국민이 정당에 속하는 후보자 한명에게 투표한다. 소위 개방형 정당명부제이다. VVD자유민주당 21.3% 33석, PVV자유당 13.1% 20석, CDA기독민주당 12.4% 19석, D66민주66당 12.2% 19석, GL녹색당 9.1% 14석, SP사회당 9.1% 14석, PvdA노동당 5.7% 9석, CU기독교연합 3.4% 5석, PvdD동물당 3.2% 5석, 50+노인당 3.1% 4석, SGP개혁당 2.1% 3석, DENK네덜란드당 2.1% 3석, FvD민주포럼 1.8% 2석이다. 정당의 득표 비율에 따라 의석이 배정된다. 극우성향의 자유당이 원내 2당으로 성장했고 항상 상위권에 있던 노동당이 9석으로 내려앉았다. 호남에서는 민주당이 공천하면 100% 당선되고, 영남에서 자유당이 공천하면 100% 당선되는 폐해는 없다. 국회의원 선출은 당과 인물 중심이다. 전국 단위로 선거를 하므로 지역 정치 감정이 적고, 승자독식으로 1등만 당선되고 나머지는 사표가 되는 폐해는 없다. 지역에는 지방정부가 있고, 지방의회에서 간접선거로 상원을 뽑는다. 내각책임제이고 다수당의 당수가 내각의 총리가 된다. 이번 선거에는 다수당이 없어 오랫동안 정부가 없이 지내다가 자유민주당(33석)의 당수 마크 루트는 기독민주당(19석), 민주66(19석), 기독교연합(5석)이 합하여 보수성향의 정당이 연정을 하여 정권을 잡았다.
18세기 네덜란드 개혁종교, 칼빈파 기독교가 국교가 되었다. 가톨릭교와 침례교, 루터교 같은 다른 개신교도와 유대교는 허용되었지만 차별을 받았다. 19세기에 들어와서 이와 같은 종교의 차별과 허용이 분파주의(system of pillarisation) 제도를 만들어냈다. 분파주의 제도가 있는 나라는 네덜란드와 벨기에뿐이다. 종교간 이데올로기 간 갈등은 극에 달했다. 각파의 종교단체는 그 정체성이 대단하다. 교파마다 신문사와 방송국이 있고, 노동조합, 농업협동조합, 은행, 학교, 병원, 대학, 스포츠클럽, 기업이 따로 있다. 심지어는 고용을 할 때도 같은 이데올로기를 가진 자만을 채용했다. 사회생활은 같은 교단끼리 했고, 다른 종교와는 사귀고 말하는 것조차 꺼려했다. 역사적으로도 그랬고 지금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정당의 기초가 필라에 있다.
크게 3개의 필라가 있다. 개신교, 가톨릭교, 사회민주주의 3개의 축이다. 개신교와 가톨릭교도의 사회는 보수적이고, 자유를 기치로 존중하고 있다. 한편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평등을 주장하는 자들이고 진보주의자, 공산주의자, 노동조합원들이다. 사회주의가 생겨난 것은 산업혁명 후 노동계급이 탄생하면서부터이다. 평등, 복지, 환경에 가치를 둔다. 한편 종교적 배경을 업소 있는 필라는 옛날 지주, 기업인 교회 성직자가 배경이다. 자유, 성장, 기업에 가치를 두는 보수당에 속한다.
사회적 합의과정이 특이하다. 법률을 입안하기 전에 노사정위원회의 협의를 거친다. 노사정위원회는 사회경제협의 안에서 수시로 만나서 협의를 한다. 입법 전에 사회적 대합의를 거친다. 네덜란드는 사회적 합의에는 오랜 전통이 있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소선거구 제도를 하지 않고, 다양한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하여 28개 정당이 있다. 정당명부제 선거제도를 택한 이유이다. 지역 간 이데올로기 간의 특성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전라도와 경상도가 정치색이 다르다. 한국의 지역감정은 네덜란드 수준에서 보면 참을 만하다. 다른 나라에서는 범죄로 여기는 마약, 성매매, 동성연애, 안락사, 낙태 같은 용납되지 않는 문제를 합법화시켰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이다.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국가가 되었다. 종교나 신념에 기초한 조직이나 제도는 반사회적 표현이라도 허용해야 한다는 정치철학이 바탕에 놓여있다. 논어의 자로편에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는 말이 있다. 다르지만 조화롭게 지낼 수 있어야 군자의 길이다. 현대사회는 개성을 존중해야 하는 사회이다. 개인의 주장이 다르고 집단의 이익이 다르다. 사회를 유지하고 더 큰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화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 프랑스의 개인주의, 독일의 국가주의, 네덜란드는 중간을 택하고 있다. 국가를 위하여 집단의 이익을 내려놓고 집단의 신념을 위해 국가가 권한을 제한하는 배려가 네덜란드 정치이념이다.
2018년 6월 14일 목요일 大邱내일신문 朴贊石(전 慶北大 총장⋅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