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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 김인숙 방 ♤ 우리 언니 김영숙의 회고
glara 추천 0 조회 324 11.02.06 23:08 댓글 3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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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2.07 08:05

    첫댓글 언니! 내가 이 글을 찾아서 얼마나 오랫동안 헤맷는데...
    이것이 미국언니에게 가 있었구나...
    고마워! 언니! 인쇄 돌아가던 기계도 멈출 판인데...
    아직 인쇄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오늘부터 인쇄하기로 했는데요...올 스톱! 시켰어요.
    너무 길어 표지 디자이너에게도 말했어요. 책이 열페이지 가량 늘어날 것같으니
    다시 작업해 달라고...언니! 다시 연락 할게요! 울언니 최고야! 이걸 찾아내다니...^^

  • 작성자 11.02.07 17:27

    늦지 않았다니 다행이다.
    옛날에 읽었을텐데도 다시 읽으며 언니의 사려깊은 관찰력에, 기억력에, 총명함에 놀라고있다.
    지금까지 아무에게서도 한마디 들어 본적도 없는 사건, 처음 듣는 증언에 놀라움과 동시에
    깊은 감동을 금할 수가 없구나.
    이런걸 소상히 기록해 놓은 우리 언니가 자랑스럽다.

  • 11.02.08 00:59

    홍관수 11.02.07. 15:13 난형난제입니다. 읽는동안 숨쉰 기억이 안나요. 눈 깜빡 거린 것도 기억 안나요.
    음악소리가 있었던 것같은데 읽는 동안 음악도 잊어버렸어요. 다 읽고나니 음악소리가 들리네요. 어머니 글도 올려 주시면 안되나요? 감사합니다.

    언니! 이 글은 이수인의 가곡사랑에 내가 이 글을 올렸더니 많은 사람들이 덧글을 써 줬는데...
    이 덧글 언니 함 읽어보라고 복사해 왔어.
    http://cafe.daum.net/sooin3588 이 주소로 들어가서 <자유게시판>에 들어가 보면 나와..
    회원가입 디기 쉬워. 하라는데로 하면 돼. 아니면 내 아이디로 들어가보면 되구...^^
    삼경이오빠 전화 받았어요?

  • 11.02.09 13:20

    옛날에 썼던 기억은 나는데 내가 이렇게 글을 잘썼나 싶기도 하고 나도 공부 좀 했으면 글 좀 쓰는 사람 될뻔 했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 작성자 11.02.10 15:17

    언니! 언니의 생생한 어린 시절의 기록... 나도 그 한 부분인...
    읽고 또 읽습니다. 혼자 참을 수없이 한참씩 웃다가 슬프다가, 놀라다가...
    아련한 안개속에 가린듯, 기억속에 뭍혀 몽롱하던, 해방당시 우리 가족이 겪었던 일들,...
    엄마도 그일에 대해 언급하신 적이 없어요.
    소상히 기록해준 언니에게 감사합니다.
    언니의 진솔한 글솜씨 따라 갈 사람이 없네요.
    <어린 시절의 추억> 그 후편이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언니, 사랑해요!!!

  • 11.03.12 10:05

    또 쓸게 생각 나서 사이에 끼어든다.
    옛날에 창한이 오빠 위중할때 내가 이거 너무 참혹 해서 안쓸려고 했었는데 엄마가 겪은 일이고
    지금 엄마 안계시니 잊기 전에 기록 해놔야지.
    오빠의 병이 한창 심할때 각혈을 하는데 놋대야 에 계속 피를 토하면 엄마가 너무 불상하여 머리를 잡고있으면
    엄마는 그때 누가 돌아가셨는지 상복을 입고 계셨어.
    하얀 치마에 새빨간 핏물이 튀어서 벌겋게 되었던 기억...
    어린 나이에도 그 장면이 너무 끔찍하여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창한이 오빠가 어떻게 우리집에 와서있게 되었는지
    집안의 궂으일 도맡으시는 우리 아버지가 자청해서 그리 된걸거라고 짐작해.

  • 11.03.12 10:07

    대구 대명동 과수원에 살 때 아버지는 동네 의사이셨다.
    누구든지 아프면 우리 집에 와서 주사 놔 주고 그 시절엔 돈 받는 법도 없고
    위생 관념은 대단 하셔서 주사기와 모든 집기는 다 끓이라고 명령하시면 한번 쓴 기구는 다시 쓰지 않고 꼭 끓여야 했다.
    연탄불도 까스도 없는 시절 보리 집불로 끓이는일 너무 힘든일이였다.
    그런일이 모두 맏딸인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었다.
    엄마가 늘 영숙이는 내열종이라고 그게 무슨 말인지 그 당시엔 몰랏지만 열 사람의 종이란 말인가 생각하니 너무 슬프다.

  • 11.03.09 11:32

    아버지께서는 농잠 학교 나오셧으니 간단한 의료 행위는 잘 하셨고 의료 사고도 한번도 없었으니 다행이지 요즏음 이라면 어림도 없지.

  • 11.03.10 12:41

    요즘에 그일이 있었다면 돌팔이 의사로 낙인 찍혀 꼼짝 없이 잡혀 가지 무사 하겠어 옛날 생각하면서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나이가 이렇게 많아도 부모 생각 나며는 아이들이나 다를게 없다.

  • 11.03.10 18:59

    인숙아 !너의 긴글 잘 봤어.내가 너의 이름을 막 부르는걸 조심했었는데.안토니 엄마 라고 늘편지에 그랬거든 그런데 인숙아! 해보니
    더 정다운 느낌이야 앞으로는 여기서만 그렇게 부른다.혜자의 싹싹하고 나긋 나긋 한 성격 내가 제일 혜자덕을 보고있으면서 불평은
    제일 많이하고 스승의 말도 잘 안듣고 내가 많이 반성 해야되 내가 참 못됬지 앞으로는 조심할게.

  • 11.03.10 19:04

    이렇게 쪽지로 의사 전달을 얼마 든지 하니 너무 쉽다.

  • 11.03.10 19:13

    이상하게 한줄 더 썼는데 없어 지고 또 더 써야 듼다고 나오니 좀 어렵네 이사 소통은 된다고 하지만 우리 같은 초보는 너무 힘든다.

  • 11.03.12 11:04

    "영숙이는 내 열종이다!" 라는 말 나도 많이 들었거든...
    언니야! 그 말은 무슨 일이든지 맏딸인 언니를 시키면 입에 혀같이 마음에 들게 일을 하니...
    언제나 엄마 주위엔 언니가 있어 엄마가 얼마나 믿어워하고 좋아했는데...
    작은 언니는 옆에 없어 못 시키고..나는 너무 어려 못시키고...ㅋㅋ..

    집안의 귀하고도 귀한 병든 종손을 데려다 놓고 간호하는 엄마와 아부지의 애간장은 얼마였겠으며...그 고생은 얼마였겠어?
    언니의 증언으로 젊은 시절의 엄마의 모습을 알게 되었어. 언니! 고맙습니다.
    언니가 이렇게 쓰지 않으면 끝내 모를 번 했지...

  • 11.03.14 12:43

    너무 재미 있는 예기가 생각났어 그때 내가 열살이었어 육촌 언니가 아침에 와서 시집 가는데 가저갈 편지를 써 달라고 왔거든 엄마는 밥을 안처놓고
    나보고 불을 때라고 하고선 방에 들어가고 내가 불을때는데 밥이 풀풀 넘어야 다된거라고 풀풀 넘기를 아무리기다려도 넘지를 않고사람들이 난리가 났어 누가 이렇게 밥을 태우냐고 나중에 보니까 우리가 먹을밥이 완전히 다타 버린거야.완전히 숫덩이였어.아무리 내가 어렸지만 그렇게 바보 였는지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다.

  • 작성자 11.03.14 15:08

    언니, 이어지는 덧글들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한참 지난뒤에야 여기 들어와서 보게 되었네요.
    언니가 덧글을 쓰기 시작하신 이후 김인숙방이 얼마나 더 풍요롭고 정답고...사랑이 넘치는 아늑한 방이 되었는지..
    언니와 혜자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 동안 우리가 얼마나 대화에 굶주렸었는지.. 마주 앉아 대화하듯 정감이 넘칩니다.
    언니의 이어지는 예날 얘기들, 하나 하나 들을수록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고 아련한 추억에 잠깁니다.
    언니, 사랑해요!!! 언니의 목소리, 반갑고 기쁘고, 저의 일상의 하루 하루를 색다른 기쁨에 젖게합니다. 고마워요!!

  • 11.03.15 11:44

    둘이서 응원 해주니 힘이 솟는다. 나하고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 했거든 이렇게 의사 소통이 되니 자꾸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면 실력도 늘게
    되겠지.내가 얼마나 덜렁거리고 차분 하지 못하고 그러니까 우리 시어머니께서 나보고 던덜이 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겠어 던덜이는 돌아 가신 시어머님
    작품이란다.

  • 11.03.15 11:54

    별로 기분 나쁜 별명은 아니고 또 좋은 말도 아님을 잘안다.

  • 11.03.18 17:12

    과수원에 있을때 물맑고 깊은 샘물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지 하지만 나중에 어떻게 됬는지는 이무도 모를거야 어느 몹시 가물던해에 아랬동네 사람들 심지어
    엿쟁이 동네 사람들 까지 줄을 달아서 우리집에 물을 길르러 왔었거든 그렇게 물을 퍼내는데도 그물은 계속 새로 새로 고였거든 그러든 어느날 샘가에 사람들이
    죽 둘러서서 물을 푸니까 그지반이 조그씩 조금씩 약해진걸 아무도 몰랐던거지 어느날 그속에 돌로 벽을 둥글게 죽 쌓아 올려 있는 중에 하나가 풍덩하고물에
    빠지는 소리가 났어 그래도 아무도 별로 걱정을 안했지 그랬는데 조금있다가 두개 세게 풍덩 풍덩 소리가 나드니 갑자기 하꺼번에 와르륵 천지가 진동하는소리

  • 11.03.18 17:52

    그렇게 해서 그샘물은 매꾸어지고 아버지 오빠 안계시니 뒷감당 할사람이 나밖에 없었잖아 내가 학교 갔다 오면서 동성로 길에 펌푸 있는 가게를 봐뒀거든 사람이
    당하면 못당할 일이 없다는것을 그때 알게 되더라.그사람들이 와서 펌프 설치하니 두래박으로 하던것보다 훨신 좋잖아.그러고 얼마 안되서 그과수원은 남의 손으로
    넘어 갔지. 우리집 역사의 한 패이지야.

  • 작성자 11.03.20 02:13

    언니, 놀라워요. 그런 일도 있었나요?
    같이 자랐으면서도 모르는 일이 이렇게 많다니...
    제가 아버지와 오빠를 따라 서울로 온 뒤의 일이었나요?
    그 물 맑은 우물에 두개의 두레박이 도르레로 오르내린 기억밖에 없어서..
    존경스런 우리 언니... 갑자기 숙연해져요.
    엄마가 말씀하시던 "영숙이는 나의 열쫑!" 하신 뜻이
    선명해지는 순간입니다. 열명의 종 몫을 혼자 다 해내는 고마운 내딸!!
    언니가 엄마에게 어떤 맏딸이었던가!! 새삼스럽게 고개가 숙여져요!
    계속 생각나는대로 옛날얘기 올려주시기를..부탁드려요.

  • 11.03.19 15:52

    내가 소풍 갔다가 하루 종일 비를 쫄딱 맞고 집이 너무 멀어 그날밤을 친구 집에서 소풍 뒤풀이를 신나게 하고 집에는 연락할 길이 없었잖아 엄마가 그날밤 한잠도
    못 자고 아침에 인숙이 넌 학교도 결석하고 우리 학교에 왔더라.학교 마치고 빨리 집에 가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니가 학교까지 결석하고 온게 너무 미안해서 할말을
    잃었지 그런데 넌 나 만나서 안심이 되었는지 불평 한마디 않했어 착한 내동생 내가 미안하다고 말이라도 했었는지 그냥 만나서 씩 웃고말았을거야.지금이라도 너무 너무
    미안해.

  • 11.03.19 16:23

    그리고 인숙이 너 밀양 갔던 얘기 할까 말가. 집에 아무 얘기도 안하고 삼일 밤을 안들어왔어.하루도 아니고 사흘씩이나 둘쩨딸이 종무소식이니 엄마 얼굴이 수심이
    가득했거든 딸이 소식이 없다는 말을 누구에게 할수도 없고 계속 근심에 쌓여 있다가 삼일만에 니가 대문쪽에 보였거든 부엌에 계시든 엄마가 후닥닥 뛰어 나갔어
    막대기를 들고 쫓아 오는 엄마 걸음도 빨랐지만 그걸보고 도망가는 니가 더 빨랐지.인숙이너 설마 그일 잊진않았지.나중에 안 일이지만 친구들하고 밀양에 갔었대.

  • 11.03.19 16:43

    밀양에 간 이유는 모르지만 하여간 넌 잘도 싸돌아 다녔거든 나는 친구들이 모여서 공부 하자고 몇명이서 밤에 같이 모이는데 나는 무서운 아버지 때문에 한번도 같이
    공부 못해봤다.모일수 있는 다른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골수에 사무치는것 같았어.아버지가 한번 안된다고 하시면 나는 꼼짝을 못했는데 인숙이는 잘도 저질렀지.

  • 작성자 11.03.20 02:21

    사랑하는 언니! 혼자 지금 한참 웃다가, 눈물이 날만큼...
    이서방에게 놀라운 언니의 총명함을, 감동스런 언니의 기억력에... 한참 자랑하다가,
    다시 캄앞에 돌아와 앉았어요.
    언니에 비해서 내 기억력은 캄캄한 밤이네요.
    몇살 때였는지 언니학교에 갔던 기억이 안나요.
    어릴 때부터 요조숙녀였던 언니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나요?
    그러니까 엄마가 더 많이 걱정 하셨겠지요

    밀양 갔던 이야기!!
    5학년때 였어요. 우리 반 친구중에 박무숙이라고,
    자기 집이 밀양인데 부모님이 그 곳에서 아주 큰 여관을 하고 계셨어요.
    제일 똑똑하고 우리를 리드하던 박해옥, 그당시 반장이 주동하여
    갑자기 반에서 공부 제일 잘 하던 여섯명이 밀양행 했던 일

  • 작성자 11.03.20 00:21

    지금 생각해도 어찌 그리도 용감했었는지!!
    그중 아무도 집에 연락, 허락받은 아이 없었어요.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그 때의 친구들 얼굴이, 그 이름들이,
    방이 많고 멋있던 여관, 그 복도를 몰려다니며 걷던 일이,
    잘 대해주시던 친구 부모님의 얼굴까지도, 여기저기 추럭을 타고
    돌아 다녔던 일들이, 기억속에 선명히 남아.. 신기하기만 합니다.
    언니가 기억하시는 장면, 집에 돌아와서 겪은, 엄마의 매를 피해 도망친 일까지도..
    그후 엄마는 그 일에대해서 한번도 물으신 적 없어요.
    잘 돌아 왔으니.. 무슨 큰 일될것 없었다고 저를 믿으셨던것 같아요.
    언니, 고마워요. 옛날의 즐거웠던 추억 살려주셔서....

  • 작성자 11.03.20 02:36

    아마 방학하는 날, 친구 무숙이가 자기 집에 돌아기는 날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학교 선생님과는 그 일에 대해서 아무 일이 없었거든요.
    언니의 회고담을 들으니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이라고 놀리시던
    어른들 말이 생각나요.
    엄마가 뭘 시키고 싶어도 눈에 보이지않아 못하셨을만큼,
    많이 쏘다니고, 잘난척 하고,
    조신하고 얌전했던 언니와 대조적으로
    주책없이 굴었던 어린 시절,
    절로 웃음이 납니다.

  • 11.03.25 14:30

    그때 나도 기억나는데...작은 언니가 들어오니 엄마가 집어 든 것이 큰언니는 막대기라고 썼는데
    막대기가 아니고 수금포였어...벽에 기대져 있던 삽 말이야...커다란 삽을 들고 돌아보니 언니는 벌써 줄행랑...
    눈에 보여야 때리지...ㅋㅋ..
    큰언니가 지는 죽었다 속으로 생각하며 기다렸는데...한 대도 맞지 않고...달아나고...
    밤중에 걱적이 되어 나가 봤더니 대문 옆에 숨어 있는 작은 언니를 발견...몰래 데리고 들어왔다는 이야기는 왜 안하실까나요?
    나중에 작은 언니를 보고 화가 다 풀려버린 엄마는 언제 그랬더냐는 듯 때리지도 않고...
    속으로 한 걱정을 하다가 무사히 들어 온 것만 해도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 내리셨겠지모.

  • 11.04.01 22:20

    혜자 니말이 맞기는 맞는데 니가 그때 몇살인데 그걸 기억하니가만히 따저보니 인숙이가 오학년이면 혜자 넌 여섯살이야 니말하고 그때 나이하고
    좀 안맞는거 같다. 니가 그걸 다 기억 하면 천재란 말이 맞네.

  • 11.04.02 23:38

    언니는 네살때의 기억도 하는데...창한이 오빠 울집에 와 있었던 거...언니 네살때라며..
    창한이 오빠가 왜 울집에 와 계셨나? 궁금했는데...새형님이 말 했어요..
    그때 상주 아지메의 시아버진가 시할아버진가...암튼 사돈이 돌아가셔서 문상을 왔다가..
    과음하시고...쓸어지셔서...아버지가 가까운 울집에 모셨다는...그때부터 울집에서 요양하고 투병생활을 하고...
    언니! 이야기가 끝이 없네요...ㅎㅎ..

  • 11.04.03 06:36

    형님이 나 모르는 일을 예기하니 마음이 이상해진다.내가 다 큰 다음에 시집온 형님이 아는일을 나에게는 말을 안해준 부모님이 어쩐지 섭섭하네.
    형님에겐 우리집 사람이라고 예기 해주고 난 나갈 사람이라고 몰라도 되 이렇게 됬나봐.좌우간 부모님 생각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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